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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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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오해
2.1. 오탈자, 맞춤법 검사?2.2. 문법 나치?2.3. 기본 맞춤법만 알면 누구나 한다?2.4. 국어 과목, 수능 국어 점수가 좋으면 유리하다?2.5. 교열자=한국어 문법 전문가?
3. 장점4. 교열자가 되는 법5. 문제점
5.1. 잘못 잡힌 업무 정체성5.2. 현실에 맞는 기준이 없음5.3. 우리말 운동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함
5.3.1. 여러 주장의 난립5.3.2. 구체적인 사례
5.4. 저자와의 갈등
5.4.1. 방언을 구사하는 작가와의 갈등
5.5. 교열자 또는 출판 직원 간 갈등5.6. 인성 문제5.7. 왜 업무 정체성이 변질되었는가?
5.7.1. 기술의 변화5.7.2. 한글 전용과 더불어 나타난 전반적인 교육 수준의 상승5.7.3. 경계가 불분명한 출판계 업무의 특성5.7.4. 언어순화 운동가들의 문제
5.8. 교육 방식의 문제
5.8.1. 이미지와 디지털 기술의 관계를 간과한 교육5.8.2. 스푸너리즘 대책 미비5.8.3. 시사용어, 전문용어 교육을 안 함5.8.4. 획일화된 문장 주입5.8.5. 맥락에 소홀한 교육 방식5.8.6. 가스라이팅으로 변질5.8.7. 학계의 다양한 학설을 무시5.8.8. 도제식 시스템의 한계5.8.9. 서울 공화국식 교육으로 인한 방언에 대한 오해
5.9. 업무 환경의 문제
5.9.1.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5.9.2. 인력 미스매칭5.9.3. OJT 시스템의 부재5.9.4. 박봉
5.10. 문법 나치로 매도당하는 경우5.11. 독자와의 갈등
5.11.1. 서브 컬쳐의 경우
5.12. 어두운 전망
6. 여담7. 교열을 다른 창작물

1. 개요

교열(校閱)이란 문서나 원고의 내용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며 검열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교정, 교열'이라고 묶어서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둘은 서로 다른 작업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는 교열을 고도의 지적 작업을 수행하는 업무라고 설명했다. 링크 예를 들어 '장안의 화제가 되다'라는 표현이 우리나라 기사에 쓰였다면,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고 바로잡는 것이 교열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장안은 중국의 옛 수도인데, 이런 표현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에 쓰는 것을 다산 정약용은 비판했다.

이처럼, 단순히 글의 문법만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글이 쓰여진 배경, 사실 여부, 지식까지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교열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이 궁금하면 일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교열 업무 종사자들은 교열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출판 편집 업무의 일환으로 교열을 겸하는 사람, 일반 회사에서 문서 업무의 일환으로 교열까지 보는 직원까지 포괄한다.

2. 오해

2.1. 오탈자, 맞춤법 검사?

교열은 엄밀히 따지자면 팩트체크 업무이다. 단순히 오탈자와 맞춤법을 점검하는 것은 교정(校正)에 가깝다. 그런데 교정(校正)도 엄밀히 따지면, 단순히 문법적인 체크만 하는 업무가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교정쇄와 원고를 대조하여 오자, 오식, 배열, 색 따위를 바르게 고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페이지 수나 폰트를 확인하는 작업이 교정이다. 따라서 문장 자체에는 오류가 없는 인쇄물이라도, 잘못 들어간 폰트를 확인하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그리고 교열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글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문법, 인쇄물 디자인에는 오류가 없지만, 글의 내용에 잘못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를 잘못 썼다면 이를 바로잡는 작업이 교열이다.
또한 유관순이 유관덕으로 잘못 들어가는 등, 사람 이름이 잘못 들어가는 경우는 맞춤법 검사기도 못 걸러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교열을 문법 체크로만 생각해서 이러한 오류가 빚어지기도 한다.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가 그 예시이다.링크 이 경우는 차칸 남자처럼 의도한 것이 아니라, 뭐가 잘못인지도 몰라서 문제가 되었다.[1] 하지만, 차칸 남자 때와는 달리, 한글 단체에서 언론사를 통해 성명문까지 내며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물리학자가 SNS로 자기 의견을 낸 것이 전부다.

일반 대중들은 이과가 또?라며 생트집으로 받아들였다.[2]

대중들은 실제로 시적 허용을 의도한 경우는 언어 파괴라 비난하면서, 무지에 의한 실수일 가능성이 높은 사례에선 정반대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3]

경제, 과학 관련 글은 숫자가 중요하다. 그래서 문법적 요소보다는 글에 나온 숫자가 정확한지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는 사전을 볼 게 아니라, 관련 문서를 따로 찾아서 교차검증해야 한다.

2.2. 문법 나치?

미국의 권위 있는 매체 더 뉴요커에서 교열 전문 직책인 '오케이어'로 근무한 메리 노리스는 “우리의 모토는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며 “교열자는 무대 뒤편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받는 순간은 실수할 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케이어는 ‘자아(ego)’를 억누르면서 글의 세부 사항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국어에 대한 헌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링크

따라서, 글을 수정하기 전에, 먼저 저자의 의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노리스가 진정한 콤마퀸이라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오자나 군더더기를 찾아내기 힘든 최고의 문장가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읽을 때다. 설터의 ‘가벼운 나날’ 중 ‘방 저쪽에 서 있는 이브의 얇은, 버긴디 드레스는…’란 문장의 쉼표(콤마)가 불필요해 보였다. 결국 노리스는 설터에게 편지를 썼고 답장을 받는다. 설터는 ‘그 콤마는 드레스 속 배의 윤곽선을 강조하고 싶어서 썼어요. 교열자가 없애려 했던 것을 제가 남겼을 것’이라고 한다. 링크

메리 노리스는 문법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관점, 독자의 관점을 먼저 생각했다.[4] 따라서 상대방이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흠을 잡으려 드는 문법 나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실제로는 오탈자 체크를 위해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탈자가 문서의 신뢰성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히 중요한 거래처일 경우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오탈자 하면 카톡 창에 급하게 쓰는 글에서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고, 평균적인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잡아낼 수 있다고 여기지만, 의외로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즉,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실수를 잡아내는 것이 교열 업무라고 할 수 있다.

2.3. 기본 맞춤법만 알면 누구나 한다?

교정지로 볼 땐 정말 없었다. CTP[5]파일에서도 없었다. 그런데 왜 출간된 책을 펼치면 떡하니 오타부터 눈에 보이는 걸까? 세기의 미스테리다.
나는 믿는다. '오타자연발생설'을. 오타는 어디선가 저절로 생기는 게 틀림없다. 활자 틈바구니를 뚫고 스스로 돋아나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컴퓨터로 한 번 본 원고를 종이로 뽑아서 1교, 2교, 3교를 보고 크로스교도 모자라 화면교까지 봤는데, 왜 오타가 있겠는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혹시 내가 까칠하게 굴어서 인쇄소 기장님이 몰래 집어넣는 걸까.
세상에 오타 없는 책은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출처: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오탈자 체크를 위해 교열자를 고용한다는 점 때문에 평균적인 학력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여기고, 실제로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인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교열을 따로 거쳐서 내는 출판물에도 의외로 오타가 많기 때문에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는 내가 알아 보는 오타를 왜 출판사에서 못 걸러냈을까?하고 출판사의 직무유기를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출판물도 실제로는 원문에 있는 심각한 오탈자를 이미 고친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도저히 무슨 의도로 썼는지 알아보기 힘든 비문투성이 글을 바로잡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는 말이 교열이지 실제로는 윤문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6]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래 사람의 뇌는 오류를 자동으로 보정하게 되어 있어 오히려 글을 여러 번 정독할수록 오탈자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독자의 눈에 오히려 오탈자가 더 쉽게 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오타자연발생설이 나올 정도이다.

2.4. 국어 과목, 수능 국어 점수가 좋으면 유리하다?

절대 그렇지 않다. 후술하겠지만, 교열계에 각종 주장이 난립하므로 학교에서 배운 문법이 통하지 않고, 과거 수능의 언어영역이나 현재 수능의 수능 국어는 글의 내용과 출제자 의도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능력을 보는 것이지, 문법 능력을 보는 시험이 아니다.[7]
더군다나, 교열자들이 문맥은 안 보고, 지엽적인 문법에 집착하여, 글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이렇다 보니, 수능 언어영역 점수는 1등급이었지만, 사설 교열 업체에서 내는 테스트 점수는 처참한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업계 지식과 의외로 호환이 안 된다. 후술하겠지만, 직장마다 로컬 룰이 있어, 운영체제에 비유하자면, 윈도우맥 OS의 차이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2.5. 교열자=한국어 문법 전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교열자가 언어순화나 맞춤법 바로잡기를 많이 하다 보니 주시경, 최현배 선생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지만, 국문과나 국어교육과를 나오지 않고 출판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사람들도 진출하는 게 교열계이다.[8]
후술하겠지만, 이렇다 보니 근거 없는 일본어 잔재설을 주입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국어국문과라 할지라도 문법만 따로 연구한 것이 아니면 100% 다 안 다고 할 수 없고, 한국어 사전은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생긴 것이니, 셰익스피어 시절부터 사전을 편찬하고 문법 연구를 하던 영어권과 비교하면 문법 연구의 역사도 매우 짧다. 통념과는 달리,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문법이 생긴 것이 아니라, 문법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말글 생활을 해 오다가, 주시경, 최현배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이 언중들의 언어 속에 숨어 있던 내적 규칙을 찾아내 정리한 것이 한국어 문법인 것이다.
당장 나무위키의 한국어 문법 문서만 보더라도, 어떤 단어가 동사이냐 표준어냐를 놓고 장기간 갑론을박이 있었고, 이에 따라 올바른 쓰임의 기준이 수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어 문법은 연구 역사가 짧은 만큼, 학자들 간에도 결론이 안 난 부분이 있고, 그래서 깊이 들어갈수록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시제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만 있는 3시제론을 가르치지만, 일부 학자는 시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언어란 견해를 내고, 영어처럼 한국어에도 대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모든 교열자들이 저런 다양한 학설을 접한 게 아니므로 이오덕 류의 글쓰기 책을 기준으로 한국어에는 대과거가 없다고 믿고 ~었었이 들어가는 문장은 모조리 칼질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올바른 글쓰기 기준을 알려준다는 책은 문법서가 아니라,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을 알려 주는 책인지라, 의외로 문법 관련 이론은 빈틈이 있는 경우가 많다.[9] 심지어 이오덕은 이중 피동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누누이 했으면서도 정작 본인 책에 그런 문장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이를 지적하니, 백성들이 흔히 쓰는 말이라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10]

물론, 문법 지식과 글솜씨는 별개 영역이므로, 어쨌든 글솜씨가 있는 저자이면 글을 쓸 때 참고해 볼 수는 있겠지만, 남의 글을 손볼 때 이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3. 장점

남의 글을 보는 직업이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글쓴이가 어느 정도 필력이 있다면 글을 잘 쓰는 법을 터득하는 기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글쓴이가 글을 너무 못 쓰는 경우에는 교열을 넘어서 사실상 윤문, 개작의 차원으로 나아가는데, 오히려 이 경우가 글쓰기 기술을 익히기 좋다.

다만, 저자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이러한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4. 교열자가 되는 법

출판사나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이 과거에는 공식적인 루트였다. 특히 언론사 교열기자는 경쟁률이 높은 언론사 입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라 장기 근속자의 경우는 언어학자에 준하는 깊은 학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20년대 시점에서는 언론사에서 교열 기자를 두지 않아 메이저급 언론에서도 오타가 허다하게 나오는 상황인지라, 이런 루트는 의미가 없어졌다.

교열은 번역과 마찬가지로 정답이 없는 분야이므로, 공인 시험이 딱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의 경우, 토익, 일본어능력시험 등의 공인 시험 자격증이 있으면 좋듯이, 교열의 경우는 한국어능력시험, 한자 검정시험 자격증이 있으면 좋다. 사실, 공인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 한자 검정시험 정도를 제외하면 자격증은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맥락을 파악하는 고도의 눈치가 중요하다.[11]

교열을 단순히 맞춤법 교정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말을 바로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적으론 도움이 안 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이 분야에서 여러 학파가 있어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의견 충돌이 나기 때문이다. [12]
그보다는 자신이 교열을 보게 되는 글에서 다루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IT면 IT 관련 서적, 골프면 골프 관련 서적을 읽고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현행 규정이 어떠한 이유로 생겼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책도 도움이 된다. 단순히 이게 맞고 이게 틀리다는 것만 알려주는 책은 규정이 바뀌면 쓸모가 없어지지만, 규정이 생긴 이유를 알려 주는 책은 규정을 맹신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교열이란, 독자적인 업무로 존재하기보다는 출판사의 여러 업무 중 하나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아직 업무를 잘 모르는 초짜에게 주어지는 업무였다. 따라서 교열자로 진로를 처음부터 한정짓지 말고, 글쓰기, 편집 기획 등, 출판 업무 전반을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이 분야를 다루는 문화센터도 있는데, 다양한 분야의 업계 전문 강사들이 포진해 있어 평판도 괜찮고, 한 가지만 공략하는 교열자격증 시험 대비 강의료에 비하면 가성비가 높다.

5. 문제점

제대로 교열을 하는 이들은 절대로 문법 나치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교열이란 업무의 개념이 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만 국한되어서 업무를 배우는 과정에서 문법 나치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서구권에서 교열이란 앞서 언급한 메리 노리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자와 소통하는 작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훈계를 하려든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교수, 박사 같은 지식인이나 대문호와 맞짱떠서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겠다는 패기를 보이는 이도 있다.

국내에서 왜곡된 업무 개념 탓에, 스펙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흑백논리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사람들이 교열을 맡게 되기도 한다.[13]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교열을 겸하는 경우에도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친 만큼 더욱 지독하게 진화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된 한국경제신문의 홍성호 기사심사부장은 문법에만 치중한 교열 업무를 비판했다. 팩트 확인, 지식의 오류 수정 등 콘텐츠에 집중하는 교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사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교열은 이러해야 한다.

하지만, 국어국문학과 출신들이 업무를 처음 배울 때 좁은 의미의 교열을 중심으로 배우다 보니, 본래 학과 성격이 그렇지 않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세뇌를 당할 수 있다. [14] 국어국문학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강화되는 것은 사실, 자격이 부족한 일부 교열자의 책임이 크다.[15] [16]

게다가 아직도 교육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이들이 근거 없는 일본어 잔재설을 퍼트리고 있다. 강원도교육청에서 제작한 자료도 있다. 당연히 절대 다수의 교열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7][18]

물론 외국에서도 교열자 하면 문장 부호로 트집이나 잡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문법 나치라는 표현도 영어권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위에서 예를 든 메리 노리스도 영어 원어민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까탈스런 사람이고, 본인도 자신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 부정적임을 인식한다. 하지만, 적어도 메리 노리스는 저자에게 먼저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문법상으론 그른 것일지라도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다고 보이면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열자 중에는 멀쩡한 글을 오타라고 생각해서, 저자에겐 묻지도 않고 틀리게 바꾸는 사람도 있다. 비유하자면 "오만에 일하러 간 아빠"라는 문장을 "오랜만에 일하러 간 아빠"라고 수정하는 식이다. 이는 유치원 교사의 사례였지만, 이와 매우 비슷한 체험담이 교열 업무 과정에서 숱하게 나온다.

한국어/문법의 난해함으로 인해 의외로 교열자들도 실수를 많이 한다.[19]
하지만, 교열자들이 직접 쓴 글을 보면 자신들의 실수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들이 제시하는 기준이 2020년대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지식 업데이트가 안 되어서 국립국어원 규정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업계에 발들였을 당시 기준만 고집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전문 분야 글은 문법 지식보다는 해당 분야 지식이 우선이라, 교열자가 옳고 그름을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 보니, 교열 관련 지침의 상당 부분은 2020년대 기준에서 쓸모가 없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챗지피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직업 자체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나올 법하다.[20]

따라서 현실적 관점에선 문법 숙지보다는 그 매체에서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고, 이를 다루는 글을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게 다듬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윗선이 원하는 것도 문법이 아닌, 독자 눈높이에 맞춘 전달력이다.
그러나 열악한 중소기업 여건상, 업무를 잘못 배운 젊은 사수가 신입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입하여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정작 실무에 맞는 노하우는 본인이 알아서 터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IT 같은 분야는 국립국어원 기준이니 뭐니 하는 것은 싹 다 무시하고, 판교 사투리부터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풀어 쓰는 게 우선이라, 교열자의 가르침은 쓸모가 없는 상황이다. 그들이 배운 지식은 IT 산업이 태동하기 전에만 쓸모가 있었던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5.1. 잘못 잡힌 업무 정체성

본래 개념대로라면 종합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 백과사전과 같은 존재가 교열자이지만, 앞서 지적되었듯이, 교열이란 업무 자체가 단순 문법 체크로만 인식되다 보니, 다른 업무와 연관된 허드렛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교열 업무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케이스가 있다.

첫 번째는 출판 업무의 첫 단추로서 교열을 배우는 케이스다. 이 경우 교열에서 출발해 리라이팅, 기사 작성 등을 배운다.

두 번째는 교열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앞서 언급된 메리 노리스, 메이저 언론사의 교열 전문 기자가 이러한 케이스이다. 이 경우는 언어학자에 준하는 교양을 갖춘 먼치킨급 인재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케이스는 아주 희귀하며 전자가 일반적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메리 노리스의 경우, 더 뉴요커라는 매체 자체가 사진을 전혀 싣지 않고 필요할 경우 삽화만 조금 넣는 철저한 텍스트 중심 매체이다. 당연히 그만큼 문법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으므로 학자급 인재를 쓰는 것인데, 이러한 매체는 현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드니 자연히 메리 노리스 같은 교열자도 희귀한 것이다.

5.2. 현실에 맞는 기준이 없음

교열의 기준은 콘텐츠의 특성,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자막 교열이라면 면적도 고려해야 하므로 설령 띄어쓰기 기준에 어긋났다 해도, 알아보는 데 문제가 없다면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뉴스 자막에 물건 가격 표기할 때, 원칙대로 '1만 원'이라 안 하고 '1만 원'이라 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한, IT 분야처럼 외래어를 많이 써야 할 경우라면 판교 사투리를 무리하게 순화할 것이 아니라, 업계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문제는 교열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이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으며, 언어를 다루는 원리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말 운동가 역할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오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말 운동가가 쓴 글 중에는 독특한 글맛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글쏨씨를 갖춘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순수한 문학 청년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그 원칙을 업무에 살려 보려는 생각을 품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오덕 문서에도 나오듯, 이런 사람들의 주장 중에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적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오덕은 개성 있는 글솜씨를 발휘하는 작가이지만, 애초에 학자가 아니므로 문법 지식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21]

그나마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은 메이저급 언론사 교열부장이 쓴 글이다. 하지만 메이저급 언론사 출신의 지도를 받으려면 일단 메이저급 언론사에 취직을 해야 하고, 교열 담당을 줄이는 추세라 입사 자체가 어렵다.
그런 반면, 교열이란 업무 자체는 진입 장벽이 매우 낮기 때문에 국문학 지식이 부족해도 사수 행세를 할 수는 있다.
이렇다 보니, 어설픈 우리말 운동가의 관점이 알게 모르게 업무에 스며들게 되고, 본래 그런 성향이 아닐지라도, 사수의 갈굼을 피하려고 그 기준을 받아들이게 되며, 그게 또 후임에게로 전달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22]

5.3. 우리말 운동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함

본래 운동가들은 사회가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학자들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그래서 글을 고치고 다듬는 작업인 교열의 기준은 자연히 이런 운동가들이 만들게 된다.

문제는 이런 운동가들이 제대로된 자료를 접할 수 없었던 과거 시대에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한 사람들이라, 이들의 주장 중에는 학자들의 검증으로 오류가 드러난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표현이 좋은 예로, 한때는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사전에 그대로 반영했지만, 2010년대 이후 역사학계의 지적을 받아 현재는 수정됐다. 하지만 수정이 비교적 뒤늦게 이뤄진 탓에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언어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면 먼저 언어의 변천사부터 알아야 하고, 여기에는 주변 국가 언어 지식이 필수이다. 게다가 현재 쓰이는 한자어가 알고 보니 서구권 언어를 번역하기 위해 새로 만든 한자어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 언어 지식도 매우 중요해졌다.

그런데 우리말 운동가 중에는 다양한 나라의 자료를 접하지 못했던 고령층이 많아서 정작 일본에서 번역을 목적으로 만든 한자어는 거부감 없이 쓰면서도, 일본어의 영향이 아닌 것을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말이라고 잘못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5.3.1. 여러 주장의 난립

시중에 나온 글쓰기 서적을 보면 저자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제각각이다. 과거에 흔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동문학가 이오덕의 저서였고, 한글학회 쪽 주장이나 국립국어원의 규정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또한 언론사에 실리는 우리말 운동가의 주장이나, 해당 언론사 교열 부장의 글을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사람은 문제 삼지 않는 표현을 다른 사람은 문제 삼아 언중들에게 혼란을 안겨 준다.
심지어 같은 언론사에 실리는 글도 기고자 성향이 제각각이다. 예컨대 한글연구회라는 단체에선 이 일본어라는 근거 없는 주장과 함께 와플을 밀떡지짐이로 순화하자는 주장을 했고, 이 주장이 한겨레신문에 실렸다. 하지만 이는 한겨레신문 자체의 편집 방침은 아니다.
또한 단체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다. 일례로 민초라는 단어를 둘러싼 논란을 들 수 있는데, 국어순화운동가 이수열은 일제강점기 체험을 바탕으로 이 단어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 보고 백성이란 단어를 쓰자고 권했다. 기사에 언급되지만, 이수열은 이 단어를 '우리말큰사전'에 올린 한글학회를 비판했다.
다만, 한겨레신문에서는 여전히 민초라는 단어가 꾸준히 쓰인다. 즉 해당 언론사에서도 굳이 배척할 표현이란 근거를 못 찾았다는 얘기다.[23]
이렇다 보니, 교열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선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24]
정부 산하 기관인 국립국어원 규정을 참고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본 문서에도 나오듯이 실무에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위의 사례는 주로 어휘에 대한 것이지만, 극단적으로 띄어쓰기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서로 다른 기준으로 배운 사람끼리 충돌도 빚어진다.

예를 들어 번역체를 피하면서 정확한 한자어 사용을 주로 배운 사람은 전문용어로 보이는 부분은 어지간해선 손을 대지 않는데, 이런 경우 번역체를 피하기 위해 문장을 다 뜯어고쳐도, 생소한 전문용여로 인하여 번역투를 안 고쳤다는 오해를 받는다. 이때 지적을 하는 사람은 이오덕처럼 너무 지식인스러운 글을 혐오하는 사람한테서 배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25]
또한 띄어쓰기의 정확성을 추구했을 경우, 번역체, 오탈자를 다 잡아도 띄어쓰기를 지적한다. 예를 들면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의 대표적인 예시인 "~할 수밖에 없다"가 있는데, 단어의 형태소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이를 "~할 수밖에 없다"로 과잉수정한다. 이 때문에 기껏 공들여 문장을 고쳐 놨는데도 "이런 기본도 모르냐"고 혼나는 일도 있다.[26]

또한, 어느 한쪽 학파의 주장이 아닌, 여러 주장을 뒤섞어 받아들인 경우도 있고, 근본을 알 수 없는 주장의 영향을 받은 이도 있을 수 있어 더 복잡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5.3.2. 구체적인 사례

분야별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나마 보편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국립국어원 규정이다.
문제는 국립국어원/비판 및 논란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립국어원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도 비판을 수용해 세부 규정을 수정하긴 한다. 하지만 교열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바뀐 규정을 몰라서 과도 교정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인명 규정이 있다. 1995년 규정으로는 잭 니클라우스의 외래어 표기법이 잭 니클로스였으나, 20년 후에 잭 니클라우스 본인이 등판하여 한국에서 관용적으로 굳어진 표기인 잭 니클라우스를 정식 표기로 해 달라고 요청하여 지금은 잭 니클라우스가 옳은 표기이다. 물론 골프계에서는 규정 변경 여부와는 상관없이 잭 니클라우스라고 통일해서 표기해 왔다. 이 사람 이름 자체가 하나의 상표인데, 상표에는 애초에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 골퍼 잭 니클로스의 이름을 딴 잭 니클라우스 브랜드라는 식의 기사는 이상하게 보일 테니 당연하다. 이는 업종에 따라서 교열 규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예시이다.

그렇다면, '업계 용어를 제외한 나머지만 국립국어원 기준을 따르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업계 용어 종류가 워낙 다양하여 사전에 아예 안 실린 경우도 많으니 기준점도 없다.

일례로, 호텔경영, 관광업 종사자들이라면 숱하게 들었을 Hospitality라는 단어가 있다. 실제로 이 단어를 한글로 적는 법을 문의한 사람이 있었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심의한 바가 없어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라고 했다.링크 다만 영어 발음을 그대로 적는다면 호스피탤리티라고 적을 수 있다고는 했다. 하지만 저 답변은 영어사전도 확인하지 않은 틀린 답변이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미국 발음이냐, 영국 발음이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li부분은 공통적으로 lə(러)라고 발음한다. 링크 국립국어원은 철자를 되도록 그대로 읽은 것을 실제 영어 발음이라 착각하고 저렇게 답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니, 해당 업계 관련 기사를 보면 기자 성향에 따라 표기법도 하스피탤러티, 호스피탤러티, 호스피탈리티, 호스피탤리티 등등 제각각이다. 미국식 발음을 따르는 기자는 하스피탤러티라고 표기하고, 영국식 발음을 따르는 기자는 호스피탤러티로 표기하며, 국립국어원 답변을 따르는 사람은 호스피탤리티, 철자를 곧이 곧대로 읽는 사람은 호스피탈리티라고 적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문서를 담당하는 교열자들 간에도 기준을 못 정해서 이렇게 고쳤다, 저렇게 고쳤다 왔다갔다 하게 되며, 결국 이런 문제로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진짜 문제는 국립국어원이 이런 업계 전문 용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억지 순화어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Hospitality라는 단어도 손님맞이로 순화하라고 했다(...) 분명 이 단어는 호텔경영업계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인데, 교열자가 국립국어원 지침대로 호텔경영학 기사를 손 봤다면 그 교열자는 당장 실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어원은 교열 업계 종사자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기준도 법조문처럼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게 문제다. 그중 악명 높은 것이 띄어쓰기인데, 사실상 합성어로 쓰이는 단어임에도, 국립국어원에서는 '단어+단어=구'라고 해석하여 합성어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일반인이 보기엔 합성어로 인정하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가 결정적인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링크

그리고 업계 전문용어 중에 국립국어원에서 실수로 누락시킨 단어도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안 실린 단어라고 해서 합성어가 아니라는 건 공감하기 어렵다. 띄어쓰기 제50항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업계에서 발간한 전문용어 사전에 실린 단어는 붙여 써도 된다.

문제는 이런 단어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안 실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업데이트가 잘 안 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사전이지만, 국립 기관에서 펴낸 사전이란 권위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교열자들이 있다. 그래서 교열자마다 성향이 다르면 교열 방침을 놓고 충돌하기 쉽다. 그리고 이렇게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 충돌할 경우, 그나마 기준점이 되는 게 국립국어원이니, 국립국어원이 일을 이상하게 한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이렇다 보니 교열자 본인도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모짜렐라 치즈 같은 단어는 규정을 따르지 않고 관용적인 표기를 하면서도, 메리골드 꽃은 국립국어원 기준대로 마리골드라고 수정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메리골드마리골드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규정이 그래야 하는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데 말이다.[27]

쉼표 같은 문장부호도 우리나라에선 보편적인 기준이 없는 문제다. 앞서 예시로 든 콤마 퀸 메리 노리스의 경우는 그래도 콤마 사용 기준이 철저한 영어권의 이야기이므로, 왜 이 경우엔 콤마를 찍어야 하고, 왜 이 경우엔 찍어선 안 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본래 영어는 콤마 하나로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문장 구조상 그런 일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액세서리 개념이다. 다만 접속어 다음에 반점을 쓰지 않는다는 규정은 있는데, 여기서 반점이 바로 쉼표를 말한다. 링크 그러나 이 경우를 제외하면 딱히 사용상의 제약이 없다. 그래서 문학인의 경우 쉼표를 자주 찍어서 문체의 리듬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이 아닌 기사문, 실용문에서 쉼표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다. 나무위키의 쉼표 문서에도 이 문제로 유저들 간에 충돌이 잦았다고 나올 정도다.

예를 들어 글쓴이가 문학인 출신이면, 기사문을 쓰더라도 문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쉼표를 좀 많이 쓸 수 있다. 그런데, 기사문, 실용문 작성 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쉼표 사용을 절제하라고 교육받은 교열자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무위키는, 지식의 나무라는 문장에 쓰인 쉼표가 교열자의 눈에는 군더더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 입장에서는 이게 문법상으로 틀린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면서 교열자를 못마땅하게 볼 수 있다.[28][29]

교열을 가르치는 사람이 일제강점기 출생자인 경우, 한자어를 맥락에 맞게 정확히 사용하는 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우, 1988년에 개정된 국립국어원의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통 기준은 구체적으로 다루긴 하지만, 개정된 기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스승이라면, '왜 이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는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그 기준을 헷갈리지 않고 따라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이렇다 보니, '~로서'와 '~로써'의 구별처럼 비교적 최근에 생긴 규칙을 헷갈리지 않고 잘 따르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규정이 정작 독립운동가들이 생존했던 시절엔 없었기 때문이다.[30]

문제는 한글전용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자주 틀리는 한국어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람이 정작 한자어를 정확히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억울하게 기본도 안 된 사람으로 몰리기도 쉽다.

5.4. 저자와의 갈등

교열 직종을 다룬 기사라든가 교열 관련 서적에 숱하게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저자와의 갈등이다. 이 기사 제목에서도 저자와의 신경전이란 표현을 쓰며 마치 교열자가 저자라는 빌런과 싸우는 어벤저스인 양 묘사했다.

또한 각종 교열 관련 서적에서도 교열자는 저자를 계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장차 교열 업무를 맡게 될 신입들의 앞길만 막을 뿐이다.

일단, 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교열자 중에 저자를 계도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언론사의 교열부장뿐인데, 현재는 교열 직책을 따로 두지 않는 언론사가 많고, 지금 활동 중인 교열부장들이 은퇴하면 그 자리가 아예 사라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그런 높은 위치에 있다 해도, 교열자의 기준이 저자가 반드시 따라야 할 만한 항상 옳은 기준인 것은 아니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저자를 부드럽게 설득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정작 설득의 기술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물론 선을 용감하게 휙 그어 보내면 불손해 보인다고 불만을 제기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갑질로 보이는 사례이지만, 정작 저자 본인의 입장을 담은 기사가 없다 보니 어느 정도는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31] [32]저자의 성향이 까다롭다면 처음부터 오탈자만 체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33] 특히 전문 분야를 다룬 글은 교열자의 능력을 벗어난 범위일 가능성이 높아서 오탈자 체크만 하도록 합의하는 게 독자를 위해서도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언어란 여러 사람을 거쳐가면서 와전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애초에 글의 주인은 저자이지 교열자가 아니다. [34] 문장 단위로 뜯어 고친다면 그건 사실상 교열자가 새로 쓴 글이니, 저자가 따로 요청한 게 아니라면 월권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식인 저자 중에는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검열에 시달렸던 사람도 많으니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언론사의 경우, 기자가 쓴 글이 데스크의 승인을 받아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교열부장의 손을 거쳐 원문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는 애초에 그 기사에 대한 권한이 언론사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즉 언론사는 이고 기자는 그 언론사에 고용된 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불만이라면 기자가 따로 책을 써야 한다.

그래서 저자가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내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맞춤형 제작을 하겠다는 의미이다.[35] 이런 경우라면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게 고객인 저자를 위한 예의이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이라면, 그 책은 저자보다는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하므로, 저자의 의도에 무조건 맞춰 주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교열자의 전공이나 관심 분야와 일치하는 글이면, 교열자가 저자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독자를 위한 좋은 책을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교열자가 자신이 근무하는 출판사에서 내는 책의 모든 분야를 파악한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다. [36] [37]

앞서도 언급했듯이, 해외에선 저자와 대화를 해 가며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고 저자의 의도대로 책이 잘 나오도록 돕는 게 교열자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교열자 인터뷰를 보면 저자와 교열자를 대립 관계로 설정하며, 저자가 교열자 의도를 안 따라줘서 속상하다는 주장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란 것이 안 그래도 논란이 많은 국립국어원의 기준이다. 대표적으로 외래어 표기법띄어쓰기가 있다. 외래어표기법의 경우, 출판사마다 외래어 표기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학술 서적 출판사가 그러한데, 칼 마르크스칼 맑스라고 표기한다. 따라서 학술서적 출판사에서 책을 내 봤던 교수가 국립국어원 기준을 따르는 출판사에서 책을 낼 경우, 국립국어원 규정대로 수정한 교열자에게 불만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교열자 입장에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표기가 일관성이 없으면 안 되므로, 무조건 교수가 하자는 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외래어 표기법의 경우는 어느 한쪽이 잘못이라고 보긴 애매하다.

다만 띄어쓰기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는 애초에 기준이 없는 단어도 많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사전에 아직 안 올라간 단어가 있을 수 있어 업계 관습대로 붙여 쓰는 게 관련 분야 교수의 관점에선 오히려 타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띄어쓰기는 굳이 국립국어원 기준을 철저히 따르지 않아도 독자가 읽기에 문제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 출판사에서는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같은 경우만 아니면 넘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도가 낮은 부분이란 얘기다. 따라서 띄어쓰기를 교열자 의도대로 하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했다면 이는 교열자의 독선일 가능성이 90%이다. 한글은 애초에 모아쓰기로 가득성을 살린 과학적인 문자이므로, 어지간해서는 띄어쓰기 잘못으로 인해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가 띄어쓰기를 의식하는 성향이 아닌 한, 저자가 남이 띄어쓰기를 손봐 준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낮다. 보통은 외래어 표기법이나 문장을 손 봤을 때 마찰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업무에서 띄어쓰기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는 띄어쓰기 수정으로 인해, 자간 조절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거의 100%이다. 즉 저자가 아닌, 디자이너와의 갈등이 대부분이란 얘기다.[38]

물론 글솜씨가 형편없는 지식인의 글이라면 교열만 할 게 아니라, 과감하게 뜯어고치는 것이 독자를 위해서도 예의다.
하지만, "저자가 외국물에 젖어서 번역투로 썼을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는 일부 교열자가 문제다. 이런 사람은 어조사 , 접사 적(的)만 보면 칼질을 하려고 달려든다. 어떤 글이든 앞서 언급된 메리 노리스의 사례처럼 작가에게 의견을 물어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어떻게 고칠지를 정해야 하는데, 이런 교열자들은 사고의 폭이 좁아서 글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저자와 트러블을 빚게 된다.

게다가 누가 봐도 교열자가 글을 망친 것이 명백한 과도 교정 사례도 있다. 고종석 작가가 언급한 미얀마제비 사건이 대표적이다.
몇 해 전, 그가 엿본 출판사 편집자의 우직한 원칙주의가 빚어낸 엽기적 풍경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그가 읽던 고려시대 번역문집 문장 한가운데 ‘미얀마제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마귀란 뜻의 당랑(螳螂)을 옮긴 ‘버마재비’를, ‘버마제비’의 오자로 예단한 교열자는 버마의 바뀐 나라이름에 맞춰 ‘미얀마제비’로 바로잡았던 것.
극단적인 경우, 글의 내용도 모르면서 글에 손대는 경우마저 있다. 오역 문서에도 나오지만, 번역문을 교열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원문도 모르고, 배경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감에 의존해 판단하다 보니, 그냥 자기가 읽어서 이해가 안 되면 번역투라 단정 짓고 황당한 내용으로 마개조하기도 한다.

또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열자의 특성상, 이들이 쓰는 문장은 일반인들이 쓰는 문장과 많이 달라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지도 않고, 게다가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는 특성상 의외로 비문이 많기도 하다.[39] 이러한 경우는 오히려 교열자가 원활한 의사소통을 저해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본적인 문장력을 갖춘 저자라면 교열자가 굳이 손을 대야 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도저히 그대로 못 내보낼 정도로 문장 수준이 처참하다면 과감히 칼을 대야 하겠지만, 이러한 경우는 교열이 아니라 리라이팅의 영역이므로, 굳이 남의 글에 손을 대고 싶다면 차라리 대필 작가로 전업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교열자와 같은 시각을 가진 교열자가 없지는 않다. 현직 교열기자 엄민용 씨는 교열자는 싸움꾼이 아니라 유능한 협상가다라고 교열자라는 직업을 정의했다.
무작정 자신의 국어 실력만 내세우지 말고, 규범의 언어와 실용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글쓴이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판단케 해야 한다. 교열자는 편집자나 글쓴이의 조력자이지, 그들을 가르치거나 그들과 대립하는 사람이 아니다.

5.4.1. 방언을 구사하는 작가와의 갈등

파일:케장 국립국어원 비판.jpg
앞서 언급된 과도 교정 문제처럼 교열을 거치면서 내용이 오히려 왜곡되는 경우도 문제지만, 작가가 쓰는 방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교열자도 있어서 더욱 논란이 된다.

위 만화는 본래 케장국립국어원을 비판하게 위해 그린 것이지만, 이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단어의 어원을 밝히기 때문에 비록 현재는 비표준어이지만, 적어도 그 단어가 근본 없는 단어가 아님은 알 수 있게 하는데, 늘 사전을 확인한다는 교열자들이 정작 이런 내용은 못 보고 지나친 채, 작가가 쓴 방언을 맞춤법 실수로 오해하고 "작가도 맞춤법을 틀린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대중적인 방언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은 국립국어원이 원인 제공을 하긴 했지만, 사전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작가가 잘못을 했다고 단정 짓는 교열자들이야 말로, 케장이 만화로 비판한 횡포를 저지른다 할 수 있다.

2000년이윤기 작가가 교열 전문가 권오운과 비문논쟁을 한 것이 좋은 예이다. 링크

이 논쟁은 권오운이 이윤기 작가가 속닥하게라는 방언을 쓴 것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지금 기준으로는 논란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방언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게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어문규정 중에는 정작 세종대왕 한글 창제 이후 수백 년간 없었다가 불과 수십 년 년에 만들어진 규정도 있는데, 이 규정대로라면 오히려 세종대왕이 언어파괴범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논란이 있는 규정에 집착해 글쓴이의 개성을 죽이고 틀에 박힌 문장을 양산하는 것이 일반 독자의 기준에서는 오히려 전통 문화 파괴이다.

물론, 권오운은 이미 사망한 인물이므로, 2020년대에 저 기준을 금과옥조로 따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문제는 후술할 서울 공화국식 교육 방식으로 인해, 방언에 무지한 교열자들이 이를 틀린 말이라 오해하여 저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40]

5.5. 교열자 또는 출판 직원 간 갈등

앞서 언급했듯이 오타자연발생설이 나올 정도로 오타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직원 두 명 이상이 교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전문 교열자 또는 출판 직원 간에도 기준이 다르다 보니, 사람 사이 다툼도 자주 발생하는데, 해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메리 노리스의 저서에도 나온 사례로, 본인은 선배들의 다툼을 반면교사로 삼아 갈등을 만들지 않는 절충안을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다.

위에 예문으로 나온 엄민용 교열기자의 글도 다른 교열자의 기준으로 보자면 번역체로 흠 잡힐 부분이 있다. 물론 일본어 잔재설에 찌들었거나 번역체 말살에 집착하는 교열자의 기준이며, 엄민용 교열기자가 누누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엄민용 교열기자의 경우는 일간지 출신이므로 국립국어원을 참고해 현실적인 교열을 본다. 다만 이 사람이 쓴 글에도 나오듯, 국립국어원을 맹신하는 게 아니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누락된 단어를 지적하는 등,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기도 했다. 즉, 정부 산하 기관에서 편찬한 사전도 교열해 주었다는 얘기.

그런데, 출판 매체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오덕 같은 우리말 운동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들이 이끄는 곳도 있고, 이런 사람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배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직을 하면, 실용 정보를 다루는 내용임에도 자기도 모르게 우리말 운동가의 기준을 적용하게 되기 쉽고, 하필 언론사 기준으로 배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달라서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41]

통념과는 달리, 이런 문제는 편집장 같은 사람에 의한 내리갈굼이 아니라 경력 차이가 크지 않은 직원 간 갈등, 또는 직원과 알바생 간 갈등일 수도 있다.
오히려 연장자일수록 국립국어원 기준, 특히 띄어쓰기에 골치아파 하므로, 맞춤법만 맞으면, 띄어쓰기는 적당히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립국어원/비판 및 논란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정작 윗선이 규칙을 정해 주기 어려운 상황이란 얘기다.
어차피, 윗선에선 글의 내용과 편집 방향, 오탈자가 중요한 것이지, 복잡한 한국어 문법은 나중 문제이므로, 이런 갈등을 중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42]

5.6. 인성 문제

다만, 이런 문제는 교열만 하는 교열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다방면의 업무를 하더라도 그중에 교열과 비슷한 것이 조금이라도 포함되면 위와 같은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복지가 좋은 일반 회사에서 미디어 홍보 업무를 해도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교열이란 업무 자체가 남의 실수를 잡아내는 일이다 보니, 이 일에 집중하다 보면 지적질에 심취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평생 사냥만 하다 살아온 사냥개가 아무나 공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정당한 지적을 하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지적을 위한 지적에 몰두하다가 망상에 가까운 지적을 하기도 한다.[43]

후술하겠지만, 맥락도 모르고 과학 기사 데이터까지 손을 대는 교열자도 있는데, 이는 직업에 과몰입하여 나타난 편집증이나 강박장애일 수도 있지만, 원래 그런 성향이라 일반적인 업무에 부적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교열만 하는 사람이 저런 사고를 칠 수도 있다.

5.7. 왜 업무 정체성이 변질되었는가?

크게 보면 기술의 변화, 전반적인 교육 수준의 상승, 매체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필수 지식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5.7.1. 기술의 변화

과거에는 납활자로 글자를 일일이 찍어냈다. 그런데, 활자 인쇄 작업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손글씨 원고 확인이었다. 타자기가 이미 쓰이던 시절이었음에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제난 탓에 원고지에 쓴 손글씨 원고가 많았으며, 이를 보고 일일이 활자를 골라 내서 조판을 해야 했다.
그런데, 손글씨가 악필이거나, 흘림체인 경우,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으며, 게다가 국한문혼용은 기본이었다. 한자는 그 특성상 글씨체가 조금이라도 특이하면 잘못 읽기 일쑤다. 자연히 오탈자와 문법에 치중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교정과 교열이 사실은 다른 개념임에도 같은 업무인 것처럼 퉁치는 것은 이런 사정이 있다.

하지만, CTS로 신문을 제작하면서, 오탈자를 체크하는 교열 인력은 불필요한 잉여 인력으로 여겨져 자체적으로 교열 전문 기자를 두지 않고 외주로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홍성호 기자가 지적했듯이, 메이저급 언론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교열 담당 기자를 둔다.

요즈음에는 AI가 발달하면서 단순 오탈자 체크는 덜 중요해졌다. 홍성호 기자의 주장처럼 맥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며, 사실 이게 교열의 본질인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이제 하나둘씩 은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5.7.2. 한글 전용과 더불어 나타난 전반적인 교육 수준의 상승

과거 매체는 국한문 혼용이었으므로,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저 당시에는 한글 맞춤법도 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 오탈자 점검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보면 모양이 비슷한 한자를 잘못 입력한 사례가 은근히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마약(痲藥)을 임약(藥)으로 잘못 입력하는 식이었다.[44]

그러나 지금은 동음이의어가 등장하지 않는 한, 저런 단어를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자 지식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한자를 몰라도 교열을 볼 수는 있게 됐다는 얘기다.
물론 자문, 접수처럼 정반대 의미로 쓰이는 한자어는 바로 잡아야 하는 잘못된 관행이지만, 옳게 바로잡으면 독자들이 반대로 해석하는 일이 벌어져 건드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보면, 국민들의 교육 수준, 지식 수준이 높아졌기에 한글 맞춤법을 체크할 일은 많지 않다. 있더라도 급하게 타이핑을 해서 생긴 단순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단순히 잘못된 글자만 바로잡을 게 아니라 비문을 바로잡는 맥락 중심의 고차원적인 교열로 진화해야 하는데, 문제는 저런 능력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능력을 갖춘 인재라면 논술교사 등 다양한 길이 있기 때문에 굳이 교열만 고집할 이유도 없다.
결국, 맥락 중심의 교열로 진화할 능력이 안 되는 교열자들은 자연히 밀려나게 되고 그들이 밥벌이를 위해 찾아낸 블루 오션이 한국어의 애매한 어문규정이다.

사설 교열 업체에서 출제한 테스트용 문제를 보면 일반적인 기준으로 멀쩡한 문장을 오답이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한다"를 굳이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도 잘한다"라고 고치는 교열자가 있는데, 언중들은 읽기 편한 전자를 선호하고,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나온 예문을 봐도 맞는 것으로 나오지만, 교열자는 국립국어원 예문에 그런 문장이 없으니 "~는 물론, ~도"는 틀린 문장이라고 주장한다. 물론을 명사로 보면 '~는 물론이다'라는 식의 구성으로 쓰여야 한다고 저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는 물론, ~다'도 명사로서 '~는 물론이다'라는 구성으로 쓰인 문장으로 본다. 링크
당연히 일반인 기준으로는 왜 이게 틀린 것인지 알 수도 없으며,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을 찾아봐도 이에 대한 질문 답변 내역이 아예 없어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질문 내역조차 없다는 것은 이게 논란이 되는지도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이고, 교육 현장에서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단 얘기다.[45] 새로 질문을 하려고 해도 국립국어원 게시판이 비정상적인 접근이라고 차단해 불가능하다.

논란이 있는 문법 중에는 국립국어원에서도 지적을 받아들여 옳은 것으로 인정한 사례가 있는데, 맞다가 좋은 예이다. 문제는 저런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기준이 바뀐 걸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 이전에 교열자로 활동했던 세대 중에서 한자어 지식, 문장 맥락 파악 능력 등이 애매한 사람들이 한국어 문법의 모호한 기준을 악용해 갑질을 하고, 이게 후배에게 내리갈굼식으로 고착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46]

5.7.3. 경계가 불분명한 출판계 업무의 특성

앞서도 언급했듯이, 출판계에서 편집 업무의 첫 단계로 교열을 배우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그러다 보니 번역가, 작가와 업무 영역이 겹치게 되기 쉽고, 각자 자존심이 있다 보니 충돌하기 쉽다.

편집자 문서에도 나오지만, 소설가가 술을 퍼마시느라 원고의 완성도가 아쉬워서 뒤에서 편집자가 원고를 대폭 손질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편집자는 교열부터 시작해 업무를 배운 사람들이니, 교열자와 편집자의 경계 자체가 애매하기도 하다.
그래서 교열이라기보다는 윤문에 가까운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지식인이 맨정신으로 팩트를 전달한 글에 칼질을 하는 선 넘는 교열자가 나오기도 한다.

5.7.4. 언어순화 운동가들의 문제

서구권에서는 저자의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열자의 임무라고 가르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의 영향으로 문화가 파괴되다 보니, 언어순화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고, 그래서 한국 한정으로 교열자=언어순화 운동가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됐다.
물론, 기본이 안 된 글이면 언어순화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경우가 많지만, 문제는 전문 분야의 글에서도 무리하게 이런 관점을 적용하여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서도 저자를 무조건 의심하라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시중에 나온 교열자의 저서에도 지침으로 나와 있다. 애초에 논리 정연하고 술술 잘 읽히게 쓴 글일지라도, 저자가 해외 유학파이면 번역체에 물들지 않았는지를 의심하고 업무에 임하라고 가르친다.

이 때문에 후술할 저자와의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설령 교열자가 전문분야를 존중하여 신중하게 일처리를 했을지라도, 그 교열자가 신입이면 선배 교열자는 신입이 일을 성의 없이 했다고 오판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신입을 혼내는 부조리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후술하겠지만, 회사가 열악하면, 선배도 경력이 짧아서 애초에 업무 개념이 잘못 잡힌 채로 입사하고, 직원들의 잇단 퇴사로 인해 입사하자마자 신입의 업무 지도를 맡게 되기 때문에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저런 잘못을 종종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언어순화 운동가들은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이라 아집에 빠지기 쉽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어가 일본에서 많이 쓰인다는 이유로 일본어의 잔재라고 가르쳤는데 실제로는 조선시대 문헌에 있는 단어이거나, 자신들이 거부감 없이 쓰는 한자어가 정작 일본인이 만들어낸 단어로 드러나는 등, 무지에서 내로남불을 저지르기 쉽다. 이러한 문제는 한자어 지식이 지금 세대보다 뛰어난 일제강점기 출생자라 할지라도 자유롭지 못하다. 애초에 한문 지식이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이 극소수인데다가, 그 시대 여건의 한계로 인해, 단어의 형성 과정과 전래 과정을 알 수 있는 고문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서구와는 달리 여러 사람을 만나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배우는 문화가 이니기 때문에, 독학이라 하면, 책에만 의존해 뇌피셜로 의미를 지레짐작하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러한 사람이 쓴 책들은 모르고 읽었을 땐 그럴듯해 보이지만, 교차검증을 통해 잘못된 추측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5.8. 교육 방식의 문제

앞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콘텐츠 제작 방식이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오탈자를 체크하는 작업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미지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이미지와 글의 관계도 고려해서 교열을 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교육 방식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5.8.1. 이미지와 디지털 기술의 관계를 간과한 교육

예를 들면 사진 밑에 들어가는 설명을 의미하는 사진 캡션 체크가 그렇다. 사람 사진에 엉뚱한 이름이 들어가거나, 지역 사진에 엉뚱한 지명이 들어갔다면, 그건 대형 사고다. 이런 오류는 문법만 중시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절대로 못 걸러낸다. 사전에 인물에 대한 조사, 지역에 대한 조사를 해야만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중에 출간된 교열자를 위한 서적들은 문법에만 치중한다.

또한, 종이책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시대인 만큼 편집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출판 업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날로그 시대 인물이다 보니 이런 건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나무위키라는 단어가 페이지 하단에 있을 경우, 맨 마지막 글자인 자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부분을 체크하여, 디자이너에게 단어가 한 페이지 안에 다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문제는 텍스트의 양이 많을 경우, 디자이너가 최대한 애를 써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문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사를 빼서 글자 수를 조절해 주는 수밖에 없다. 이젠 이런 디지털 프로그램을 다루는 편집 디자이너와의 케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대다.

하지만, 교육 방식이 아날로그이다 보니, 편집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교열자가 디자이너를 오해하고 쪼아 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편집부에서 기자 및 교열자는 디자이너와 앙숙이란 말이 있다.[47]

다만, 디자이너가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문서 편집 특성상, 사진과 글이 들어가는 위치는 정해진 패턴이 있으므로, 디자이너는 예전에 해 둔 디자인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래 잡아 둔 자리에 사진과 글만 갈아 끼우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때 디자이너가 예전에 넣었던 사진이나 글을 다 지우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일감을 많이 받을수록 저런 실수가 발생하기 쉽다. 그러나 어차피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감 많이 받은 디자이너를 탓해 봐야 소용없다.

또한, 디자이너가 교정지에 표시된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원래 없던 오타를 내거나, 손이 삐끗해서 문서 내용을 날려 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날로그식 조판 시절에는 없었던 디지털 시대의 오류이다.
따라서 교열자는 문장의 문법만 체크할 게 아니라, 디자이너의 실수도 매의 눈의로 체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정지에 표시된 내용을 디자이너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대로 근거 없는 문법 관련 논란 등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런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5.8.2. 스푸너리즘 대책 미비

고용주가 교열자를 뽑는 이유는 문법 체크를 위함이 아니다. 공문서 등에 오타가 있을 경우 그 문서의 신뢰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런 사소한 실수가 복병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흔히 글을 과몰입해서 읽다 보면, 본문 내용에만 신경을 써서 정작 큰 글씨 오타는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잎사귀만 보다가 나무를 놓치고, 나무만 보다가 숲을 놓치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교열자를 쓰는 것이다.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라 앞서도 언급했듯이 업계에선 오타자연발생설이 농담처럼 회자될 정도이고 문학평론가가 기고한 기사에도 언급된다.
오타가 났다. 도대체 어디 숨었다가 이제 나타난 걸까. 그것도 딱 펼치니 책의 서문에서 보란 듯이 당당하다. ‘읽기’라고 친다는 것이 ‘읽지’가 되어 있다.

서너 번 종이 교정지와 최종 화면 교정을 보는 동안에도 ‘기’ 자에 달린 거스러미 같은 사선의 정체와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필이면 가장 마지막에 덧붙인 그 낱말이 외면당한 서러움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내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게 할 줄이야.

잘못된 한 획의 위력은 대단했다. 출간된 1000권의 책을 거실 바닥에 줄줄이 펼쳐놓고 이틀 동안 커터 칼로 긁어내기 시작했다. 내 꼴이 마치 문자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불경죄를 저지르고 독방에 구금된 죄수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알량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남의 오타나 쪽쪽 집어내고 틀린 문장이나 지적해대던 형벌을 오지게 받은 것인가. 일상의 과업을 뒷전으로 미룬 채 정신일도하여 하사불성을 되뇌며 오타의 티끌을 걷어내었다.

저자: 김정화 문학평론가·수필가

이 기사에서는 서너 번 체크를 했다고는 하지만, 교정지를 무려 20번을 보고, 디자이너가 작업하는 모니터 화면까지 체크했음에도 못 걸러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스푸너리즘의 마수에 걸려들기 쉬워서 무조건 체크를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열자를 위한 도서를 보면 번역체 말살에 치중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현까지 뜯어고치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흔히 오탈자 체크는 따로 교열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현직 교열자가 문법에 집착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업무 현장에서 문법에 집착하는 교열자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가는 오히려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된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업무 현장에서 현직 교열자들이 강조하는 한국어 문법 지식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업무 특성상 사전에 없는 외래어도 많이 쓰고, 특히 상품명이나 기업명에 알파벳이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한데, 문법 체크는 꼼꼼하게 했는데도 정작 상품명이나 기업명에 들어가는 알파벳 철자의 오타를 놓치는 경우도 많고, 외래어 오타로 인해 의미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클럽클립이라고 오타를 냈는데, 번역체 말살에 집착하는 교열자일 경우, 이런 실수는 놓치기 쉽다.

고용주 입장에선 번역체 순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품명이나 기업명의 영어 철자 오타 여부가 중요하다. 만약 이런 단어가 중요한 거래처의 상품명이나 기업명이라면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업무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현직 교열자들의 독선으로 인해 후배 교열자들을 민폐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업무 특성을 고려한다면, 남이 쓴 글을 언어 파괴로 낙인 찍는 문법 위주의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전환해 숨은그림 찾기 훈련으로 커리큘럼을 바꾸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각적 피로를 줄이는 요령도 포함되어야 한다. 사람의 두뇌는 오탈자도 자동변환하기 때문이다.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가 좋은 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평소에 책을 한 줄도 안 읽는 사람일수록 저런 오탈자를 쉽게 발견한다. 물론 평소에 눈을 혹사하지 않으니 그만큼 시력이 좋아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맹점에서 자유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맥락에 집착하지 않고 글자 자체에만 집중하라는 조언도 있다. 링크 이 글의 저자는 업무용 서류를 작성해 온 사람인데, 앞서 언급한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를 예로 들며, 맥락 중심으로 읽기보다는 글자 하나 하나를 검토하라고 말한다. 때로는 무지성으로 문서를 대하는 것이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

5.8.3. 시사용어, 전문용어 교육을 안 함

그래도 과거에는 한자어를 자주 사용하는 만큼 한자어 교육을 철저히 해서 두드러지지 않는 문제였다. 당시 사용하던 시사용어와 전문용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였기 때문에 한자어를 공부하면 이러한 용어도 저절로 공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등장한 한자어들이다. 이러한 용어는 알고 보면 영어를 한국식 한자어로 직역한 것이 많은데, 연로한 교열자의 경우 이게 전문용어인 줄 모르고 과잉수정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이란 단어가 있는데, 원문이 가치 제안을 강화한다이면 가치를 강화한다라고 잘못 고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문맥상으로는 어색하지 않아 보이지만, 본래 가치 제안은 '우리 회사의 제품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왜 우리 회사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고객에게 알리면서 고객이 그 제품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을 말한다.링크 Proposition(제안)이란 단어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방적으로 홍보를 때려붓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 이런 제품이 있는데 어떤가요?라고 정중히 제안하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가치 제안을 강화한다는 것은 고객 앞에서 조곤조곤하게 제품의 장점을 전달하여 고객이 자연스럽게 그 제품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 제품이 가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큰 틀에서는 가치를 강화한다는 것도 포함되긴 하지만, 가치 제안은 고객을 설득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둔 것이다. 따라서 이걸 가치를 강화한다라고 고쳐 버리면 저자의 의도에 어긋나는 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저자는 제품만 잘 만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보 교열을 볼 경우엔 판교 사투리를 잘 알아야 하는데, 기존 교열자들은 이런 언어 문화를 극혐하므로, 무조건 배척하도록 가르치는 게 문제다. 현실을 생각하면, 사회 초년생 교열자들이 기업 문화에 잘 녹아들도록 가르쳐야 옳은데, 오히려 이를 배척하는 투사가 되도록 선동하는 것이다.

5.8.4. 획일화된 문장 주입

국문법은 학자들 간에도 견해가 다르다. 그래서 학교 문법은 애초 논란이 있는 부분은 다루지 않고 주술 호응 문제 등 기본적인 것만 다룬다.

또한 글쓰기 지도는 주로 실용문을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간결체가 기준이 된다. 따라서 문법에 어긋나지는 않을지라도 지양하는 문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열 교재의 상당수는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본인의 생각을 주입한다. 게다가 그중에는 근거가 부족한 일본어 잔재설도 섞여 있다는 게 문제다.[48] 이는 심지어 교열을 지도하는 사람들도 지적하는 문제다. 엄민용 씨가 '건방진 우리말' 시리즈를 통해 누차 지적했다.

또한 번역문 교열을 봐야 할 때 번역체 지양에 집착하여 저자와 충돌하는 일도 허다하다. 게다가 여러 업무를 겸하는 출판계 특성상 번역가가 자기가 번역한 문장을 교열 보기도 하기 때문에 교열자끼리 입장이 충돌하기도 한다.

이는 언어순화에 집착하는 교열자일수록 한 세기 전에 쓰던 표현을 억지로 되살리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로지 교열만 해 온 사람일 경우, 외국어 지식(X), 글에서 다루는 분야에 대한 지식(X)이고, 기계적으로 문법만 달달 외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 애초에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것이다.[49]

게다가 번역체 중에는 한문투 문장처럼 이미 자연스럽게 우리말에 스며들어 독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번역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마저 있다.

애초에 번역체를 피하는 목적은 시제에 너무 충실하거나 이중 피동 표현을 남발하다 보면 간결체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되기 쉽고, 그게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용적 관점에서 봤을 땐 무분별한 외래문화 추종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필 이런 문장이 외국어를 직역했을 때 나오는 문체와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어쭙잖게 멋 부린 글이란 오해를 사기 쉬울 뿐이다.
반대로 번역체 피하기에 집착하여, 현대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문장을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번역가가 '곤충학자에 의해 반딧불이로 밝혀졌다'라고 번역했다면, 사설 교열 업자는 번역체를 뿌리 뽑겠다며 '곤충학자가 반딧불이로 밝혔다'라는 식으로 교정을 한다. 일반 독자가 보면 곤충의 종류를 규명했다는 내용은 아니라, 곤충을 이용해 어두운 곳을 밝혔다고 오해하기 쉽다. '곤충학자로 말미암아 반딧불이로 밝혀졌다', '곤충학자가 반딧불이임을 밝혀냈다'라는 식으로 교정하면 모를까.

5.8.5. 맥락에 소홀한 교육 방식

매체를 편집하는 실무자들은 교열은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다루는 내용과 문맥에 따라 옭고 그름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라서 기준 잡기가 더욱 까다롭다.
문제는 그 실무자 밑으로 들어오는 교열자나 편집부 신입 직원들을 지도하는 실무자들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무자들은 원래 여러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사람들이라 직원 교육에 공을 들일 수가 없기도 하지만, 애초에 저자에게 문의해 봐야 알 수 있는데, 실무자들도 저자와 접촉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신입 직원이 알아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열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실무에 문외한이란 것이다. 더군다나 학력고사 세대인 나이 지긋한 분들도 많다 보니 글에 제시된 정보를 기준으로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안 되어 있고, 이미 실생활에선 무의미한 죽은 문법에 집착하거나, 글 내용을 오독하는 일들도 의외로 많다.

이렇다 보니 교열 업무를 맡는 사람들은 입사 전에 잘못 주입된 관념에 의존하여, 답정너식으로 글을 읽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황당한 왜곡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잉 수정은 애교이고, 자기 머릿속 상상으로 마개조하여 소설을 쓰는 사람까지 있다. 예를 들어 숫자가 중요한 경제, 과학 관련 글에 등장하는 숫자를 지레짐작으로 오타로 판단하고 바꾸는 경우도 있다.

5.8.6. 가스라이팅으로 변질

메리 노리스의 사례에서 보듯, 서구권의 교열은 철저히 실용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독자가 글을 쉽게 이해하고, 저자의 의중이 정확히 전달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교열이 정신 교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올라아 나라가 오른다라는 명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그냥 글쓰기가 서툰 사람들이 쓴 서툰 문장을 이렇게 번역체로 오염된 글이 정신을 병들게 한다라면서 과하게 비난한다는 것이다. 이오덕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저서에서 번역체 문장을 비난하면서 병신 같은 말이라는 격한 비속어를 서슴없이 썼다. 지금 MZ 세대라면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사람이 어떻게 비속어를 쓰느냐라며 황당해이뭐병 하겠지만, 살아생전에는 저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은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사람의 필력으로 인해, 이 사람의 주장은 교열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한 마디로,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해 온 것이다.

설령, 저러한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실용적 측면에서 접근할 문제이다. 일본어의 잔재이거나 번역체라 할지라도 장점이 있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번역체라고 지적받는 문장 중의 상당수는 문어체를 어설프게 구사한 비문이 많으며, 군더더기 표현도 많다. 비유하자면, 스타일링 감각 없는 사람이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잘못 코디해서 망신 당하는 거랑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이게 영 거슬린다면, 그냥 이렇게 쓰면 문장이 깔끔해져 읽기가 편하다라고 조언하면 되는 것인데, 이오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네가 무심코 쓰는 외국식 표현이 나라를 병들게 한다라는 식으로 언중들을 갈라치기 하면서 죄책감을 심어 준다.

가장 큰 문제는 독선적인 주장을 하는 교열자 중에 글을 왜곡하는 사기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번역문을 교열 봤을 경우에는 사실과 아예 다른 내용으로 날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세간의 인식은 '그래도 우리말 전문가니까 자연스럽게 잘 바꿨겠지', '바르게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설마 사기를 치겠어'이므로 번역가가 매의 눈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5.8.7. 학계의 다양한 학설을 무시

나무위키의 이중 피동이나 문서에도 나오듯이, 비문인지, 번역체인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교열을 지도하는 사람들 중에 저런 다양한 학설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엔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이 바뀐 것도 모르고 과거의 이론을 적용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걸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학계의 의견이 무조건 정설은 아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 건의를 할 능력이 되는 분들은 무조건 주류 학설이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류 학자들은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이게 맞느다고 했지만, 나의 견해로는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
이처럼 반대 쪽의 주장과 그 근거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토론 방식으로서도 올바르기 때문에, 설령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한 세기 전의 문법관을 주장한다 해도, 올바른 토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다가 반대 쪽 주장의 근거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여지가 주어진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 직접 건의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이런 과정을 건너 뛰고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잘못된 관념을 주입받기 쉽다.

5.8.8. 도제식 시스템의 한계

사실상 앞서 나온 모든 문제점의 원인이라 보면 된다. 입사 전에 배울 만큼 배우고 들어왔더라도, 입사 후에는 그곳 직원들에게 도제식으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날로그 시대 직업이다 보니 100년 전 방식이 고인물처럼 남아 있기가 쉽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전문용어가 쏟아져 들어오는 요즘 시대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하고 옛방식만 강요하기 쉬운 데다가, 도제(교육) 문서에도 나오듯, 가르치는 사람의 인성이 좋지 못하면 괴롭힘으로 변질되기 쉽다. 띄어쓰기 규정 헷갈렸다고 펜을 던졌다느니, 교열자끼리 머리채 잡고 싸웠다느니 하는 소문이 좋은 예시이다.
게다가 사회 초년생들은 입사 이전에 문화센터 강사의 커리큘럼대로 배웠거나, 한국어 능력시험 기준으로 배운 경우가 절대 다수인데, 이게 도제식으로 교육이 진행되는 직장문화와 결이 맞지 않으니, 앞서 언급된 것처럼 기준이 달라 갈등을 빚기도 쉽다.

특히 자주 틀리는 한국어인 경우, 이게 왜 틀렸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업무 여건상 불가능하므로 맞춤법 검사기 돌려 보라고 가르치는 사수도 있는데, 문제는 여기에 일본어 잔재설 등, 학계의 검증을 안 거친 허위 정보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입사 전에 올바르게 배웠을지라도 여러 주장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되는 부작용도 있다. 어린 시절에 외국을 오가며 성장한 아이가 0개 국어가 되는 것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볼 수 있다.

5.8.9. 서울 공화국식 교육으로 인한 방언에 대한 오해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방언이므로, 문학 작품을 교열 본다면 방언 지식은 필수인데, 방언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특성상, 중앙정부에서 편찬한 방언 사전은 전무하다. 현재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는 것은 전라북도 방언사전뿐이다. 사실 좀 더 찾아보면 민간에서 편찬한 각 지역 방언사전이 있긴 하지만, 인지도가 매우 낮다.
이렇다 보니, 문학작품에도 실린 방언을 썼을 따름인데도 이를 틀린 말로 오해하는 교열자도 있다. 대표적으로 슴슴하다가 있는데, 사실은 채만식의 작품에도 쓰인 단어였다. 링크

다만, 요즈음에는 과거처럼 싱겁다는 의미로 쓰진 않고, 염도는 낮지만 은은하게 맛이 난다는 의미로 저런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교열자들이 사전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슴슴하다가 표준어인 심심하다와 어떻게 늬앙스가 다른지도 모르고, 잘못된 말이라고 오해한다.[50]

현재는 지방 사람들도 방언을 점점 안 쓰는 추세이다 보니, 멀쩡한 우리말인데도 비속어로 오해하는 일이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면, 방언을 간직한 나이 많은 저자와 충돌이 날 가능성도 높다.

사실, 나이 많은 신문사 어문 기자들은 이 단어가 방언임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세대에선 은근 많이 쓰인 단어이다 보니, 표준어로 인정해 주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지적해 왔다. 동아일보 기사
또한 한국경제에선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어원 정보를 인용하며, 심심하다의 원래 형태가 '슴슴하다'라는 정보를 실었다. 링크

5.9. 업무 환경의 문제

5.9.1.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

미국의 메이저급 매체는 기사를 12번이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오탈자 확인도 안 거치고 기사를 내보낸다. 그래서 앞서 언급된 교열 인력 수준 하향 평준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뭐든지 서둘러 해결하려는 문화 탓에, 저자의 의도를 확인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교열자가 뇌피셜로 글을 마개조하기가 쉬워졌다. 게다가,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시간 관계상 생략되니, 애초에 업무를 배울 때 사회생활의 필수인 남을 배려하는 화법을 못 배운다. 우리나라에서 교열 담당자가 성격이 모나고 독선적으로 변하기 쉬운 것도,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을 생략하는 업무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5.9.2. 인력 미스매칭

과도 교정 문서에도 언급되는 사례이지만, 전문 분야를 다룬 글, 자신의 전공 분야와 동떨어진 글에서 교열자들이 유독 헛발질을 많이 한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그 분야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아야 한다.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풀어달라고 저자에게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비용이나 시간 문제로 인해 그런 정석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교열자가 알아서 확인하라고 놔 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을 맡긴 윗분들이 원하는 건, 그냥 기본적인 오탈자 확인해서 망신 당할 일만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만, 문제는 교열자가 지나치게 의욕을 부려 과도 교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의도 자체는 순수한 사회 초년생 교열자로, 고친 부분이 너무 없으면 일을 안 했다고 오해를 받을까 봐 어떻게든 고칠 부분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다가 전문 용어를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어 글을 오해한다. 모르는 분야의 글을 억지로 집중해서 읽다 보면 내용은 전혀 안 들어오고, 겉껍데기인 문법적 요소만 들어오니 문법 나치가 아닐지라도 문법에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어학 사전에 의존하게 되는데, 문제는 어학 사전에 없는 전문 용어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골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골프의 스코어 개념을 단어(Score) 그대로 해석해 점수 개념으로 오해하고, 언어 순화 차원에서 스코어 100을 100점이라고 바꾸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스코어 100은 100타를 의미한다. 이건 기준 타수인 72타보다 무려 28타를 더 많이 친 거라서 백돌이라고 놀림감이 된다.

또한 수소 이온 농도 지수 기호도 문과 출신들은 십중팔구 두문자어로 오해해서 애초에 pH라고 바르게 표기한 걸 Ph라고 틀리게 바꿔 놓기 쉽다. 이는 영어 사전에서 수소 이온 농도 지수두문자어 약어라고 잘못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어학사전에 잘못된 단어 뜻풀이가 의외로 많아서 문과 출신들은 어쩔 수 없이 낚이게 된다.[51]

두 번째는 반대로 경력이 많은 교열자인 경우인데, 첫 번째 케이스처럼 때묻지 않은 순진한 사회 초년생들의 실수와는 정반대 케이스로,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이들은 닳고 닳은 영악한 부류라 일종의 과잉 진료를 시전하여 이득을 취하려 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는 문장에 생트집을 잡으면서 기상천외한 내용으로 마개조를 한다.

이 두 부류의 차이점은 과도 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솔직하게 인정했다면 그냥 직업병인 것이고, 죽어도 인정 못한다면 문법 나치인 것이다.

어쨌든 과도 교정은 어문 전공자라면 필연적으로 저지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방지하려면 차라리 그냥 실무자에게 교열을 보라고 하는 게 효율적이다. 다만 요즈음에는 금일, 사흘 논란처럼 기본적인 단어를 잘못 아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서 이 방법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5.9.3. OJT 시스템의 부재

의외로 국어학자나 메이저급 언론사의 교열 부장들은 유연한 면이 있다. 이 사람들은 왜 현행 기준이 이렇게 정해졌는지를 설명하지, 언중들이 그 기준을 못 지킨다고 쉽게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문제는 OJT 시스템이 부재한 작은 회사에서 벌어진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윗분들이 아닌 경험이 부족한 사수 직원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의외로 윗분들은 세세한 어문 규정엔 관심이 없으며, 중요한 단어에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러나, 실무를 하다 보면, 매뉴얼에는 없는 애매한 상황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헷갈리는 규정 때문에 신입이나 교열 알바가 과잉 수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수 입장에선 일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니 실수한 신입이나 교열 알바가 못마땅해서 험한 말을 하게 된다.
문제는 반대로 사수가 과잉 수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자존심 때문에 실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고 이런 자잘한 갈등이 누적되기 쉽다.

또한, 사수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정작 윗선에선 지시하지도 않은 기준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회사는 이직이 잦다 보니,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수가 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문용어가 많은 글인 경우, 일본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은데, 회사 내에 이런 콘텐츠를 다룰 만한 전문가가 없는 경우, 중요도가 낮은 구색 맞추기용 콘텐츠로만 쓰인다. 그래서 윗선에선 이런 콘텐츠에 대한 지시를 굳이 내리지 않는다.[52]
그런데 경험이 부족한 사수는 업무 우선순위를 잘 모르다 보니, 이런 콘텐츠를 대할 때도 자기 능력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게 의욕을 보이기 쉽다. 이렇다 보니, 신입이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번역기 돌렸냐"라고 독설을 내뱉는다.

이런 경우, 그 사수가 전에 일을 배울 때 일본어 잔재설에 찌든 교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그 기준을 현 직장에까지 무의식적으로 적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전문 분야 글을 대할 때, 오히려 손 대기를 꺼려 오탈자 위주로만 교열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야 전문가일수록 남이 교열을 보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53] [54]

그런데, 알바생 시절에 일을 배울 때 앞서 언급한 이오덕 류의 가르침에 세뇌당한 상태로 다른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초고속 승진했을 경우, 아직 세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를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라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로 쓴 글을 대할 때도, 내용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일본스러운 느낌을 지우려는 자세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조심스럽게 업무에 임하면 맞춤법 검사기나 번역기보다 못 하다며 트집을 잡히니, 그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흑화하는 것이다.

애초에 제대로된 OJT가 있었다면, 윗선에서 우린 우리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전달하여 전 직장에서 받았던 세뇌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왔을 것인데, 중소기업에서 이런 교육을 할 여력이 없다 보니, 편집장 같은 중간 관리자급 사람들이 나름대로 기준을 마련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세뇌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55]

경력이 짧은 사수가 비합리적인 기준에 세뇌당하기 쉬운 것은 본래 출판계 업무 특성상 꼼꼼함과 박봉에 불만 갖지 않는참을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어른들에게 쉽게 반항하지 못하면서 강박증에 가까운 꼼꼼함을 지닌 사람들을 채용하게 된다. [56] [57]

또한 정량적 평가가 중시되는 일반 회사 업무와는 달리, 정성적(定性的) 평가가 중시되는 분야라는 점도 제대로된 OJT가 불가능한 이유다.
꼼꼼함이 중시되는 것은 출판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지만, 의외로 이 분야는 비율, 명도, 채도, 자간 등의 정량화된 기준이 있어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꼼꼼함과 교열자에게 요구되는 꼼꼼함은 다르다고 봐야 한다.

5.9.4. 박봉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단순히 오탈자만 잡아내는 교열도 현재까지는 여러 사람이 매달려야 불량률 0%에 수렴하는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하지만 출판계 자체가 어렵고, 후술하겠지만, 소위 필수직종과는 동떨어져 있다 보니, 교열만 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이라도 저소득자이다. 이는 교열자가 입사하는 곳이 그만큼 블랙기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프리타로 근무할 경우, 돈에 구애받는 처지가 아니고 출판물 덕후이며,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마인드라면 덕업일치를 할 수 있어 그리 나쁘지 않은 알바일 수도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연봉이 곧 사회적 평판이란 것이다. 물론 배달원이나 생산직 근로자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버는 돈이 많다고 사회적 인식이 좋은 것은 아니나,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사회적인 인식보다는 실속을 추구하면서 명문대 출신 여성 도배공이 나오는 등, 육체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다 보니, 저임금 화이트칼라 직종 종사자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추락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교열자의 갑질도 교열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되는 환경에 일부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준을 주입하는 강의를 하는 경우, 돈 나올 곳이 절박한 취준생밖에 없기 때문에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라고 동정할 여지도 있다.

앞서 언급한 저자와의 갈등이나 교열자 간의 갈등도 열악한 근무 환경이 일부 원인일 수 있다. 물론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라는 요즘 MZ세대라면 쿨하게 금방 때려 치우면 그만이겠지만, 직원을 새로 뽑기가 어려워지니 기존 직원은 슈퍼 을이 되어 저자와 싸우거나 교열자끼리 싸우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58] 기상캐스터간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인 오요안나 사건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59] [60]

5.10. 문법 나치로 매도당하는 경우

앞서 열거한 사례는 주로 교열자의 독선이 문제이지만, 반대로 교열자가 억울하게 문법나치로 몰리기도 쉽다. 물론 교열자는 애초에 글의 주인이 아니니 아무리 전문 지식이 많아도 을의 운명일 수밖에 없지만, 저자를 무시하고 월권을 하는 일부 교열자들의 악명 탓에 정당한 지적을 했음에도 비난받기 쉽다.

5.10.1. 이공계 전공자와의 갈등

특히 이공계 전공자가 쓴 글을 교열 볼 경우, 글쓴이가 토씨 하나 바꾸는 것에도 민감한 스타일이면, 누가 봐도 이상한 비문을 고쳤을지라도 문과가 이과 분야를 모르고 함부로 내용을 왜곡했다고 오해한다.

심지어 일을 맡긴 사람이 비문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말하지면, 이공계 중에서도 기계를 사용해 현장 작업을 하는 전문직군 중에 그러한 케이스가 있는데, 업무 특성상 평상시 대화가 주어목적어마저 생략된 불완전한 언어가 되기 십상이고, 글도 그런 식으로 쓰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기껏 바로잡아 놓은 문장을 평소 자신의 문장 스타일로 바꿔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적어도 같은 분야 사람들끼리는 의미는 통하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도 제 멋대로 바꿔 쓰는 사례마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공계 전공자의 원문에 일사량이란 단어가 있을 경우, 교열자는 전문 용어라 판단해서 그대로 놔 두는 반면, 감수를 맡은 업계 관계자가 일조량으로 제멋대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일조량이란 단어를 더 많이 쓰니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였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나무위키 문서에도 나오듯이 일사량일조량은 다른 개념이란 것이다.
오히려 정확한 한자 사용을 중시하는 문과는 이런 경우, 혹시라도 의미가 왜곡될까 봐 아예 안 건드리기 때문에 단순히 전공 탓이라 볼 수만은 없는 문제다. 어찌 보면 앞서 언급한 교열자 빌런 사례와 같은 경우인데, 어설프게 아는 것을 다 안 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5.10.2. 맞춤법을 틀렸다고 매도당하는 경우

틀렸다고 오해하기 쉬운 한국어 문서에도 나오듯, 옳게 쓴 것을 그른 것으로 오해하고 지적하는 일도 생각보다 자주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이공계 전공자 중에서는 자기 분야에 대한 감수만 보는 게 아니라, 엄연히 교열자의 업무 영역인 맞춤법을 지적하는 월권을 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면 원문이 드러나다이면 이를 들어나다로 바꾸거나, 에와 의의 구분 문서에도 나오듯, '~의'라고 써야 하는 상황에서 를 맞게 쓴 것을 라고 틀리게 고치는 일이 있다.

5.10.3. 맡긴 고객의 문제점

정작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도 교열이 정확히 뭔지를 모른다. 클라이언트가 교열을 의뢰하는 경우, 맞춤법이 틀렸거나 오타가 나서 망신을 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지, 흔히 생각하듯이 고도의 문법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는 잘 없다.

물론 업무를 맡은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간혹 클라이언트가 문법 지식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자문처럼 한국에서만 의미를 뒤바꿔 쓰는 한자어가 있을 경우, 올바르게 바꾸면 '다들 그렇게 쓰니까 넘어가자'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님 귀하같은 중복 존칭이나, 사물존칭을 요구하는 무식한 클라이언트가 있을 수 있다.

반면 이중 피동 표현이라 수정했는데, 고친 글이 낯선 표현이라 클라이언트가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애초에 과감한 윤문을 요구했으면서 막판엔 수정 전으로 되돌리는 저자도 있다. 처음부터 오탈자만 확인하고 문체에 손대지 말라고 했으면 없었을 문제인데, 이런 저자의 글은 애초에 비문투성이라 업무 난도가 높고, 저자가 쓸 데 없이 고집이 세서 교열자뿐만 아니라 출판인 전체를 애먹인다.

5.10.4. 편집자와의 갈등

교열자가 저자의 의도를 존중해 주다가, 월권하는 편집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경우이다.

굉장히 희귀한 사례이지만, 글쓴이가 처음부터 오탈자 없고 띄어쓰기까지 완벽한 글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교열자는 오류가 없는 글임을 알고 전혀 손대지 않았지만, 윗선인 편집자가 띄어쓰기를 안 한 걸로 오해하고 과도 교정을 한다. 예를 들어 보도블럭보도 블럭이라고 띄어 놓는 식이다.
이를 본 교열자가 보도블럭은 규정상 합성어이므로 붙여 쓰는 게 맞다라고 메모를 해 놓으면 이를 편집자가 언짢게 여기기도 한다.

5.11. 독자와의 갈등

번역 관련 문서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외래어 표기법 관련 갈등이 있을 수 있다.

5.11.1. 서브 컬쳐의 경우

일본 대중문화를 다루는 나무위키에서는 캐릭터명 표기가 정발명 기준인 경우가 많지만, 교열자들은 국립국어원 기준을 우선시하므로 기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5.12. 어두운 전망

직업의 전망이 밝은지 어두운지를 보는 기준은 그 직업이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느냐이다.
그런데 교열은 없어져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직종이다. 이는 교열직을 없앤 언론사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61]
물론 기사의 오타를 보고 불쾌함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그게 뭐의 오타였는지를 알아채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62]
더군다나 챗지피티가 발달하면서, 단순히 오탈자를 바로잡거나 문맥을 가다듬는 일은 굳이 교열자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서 언급된 홍성호 기자의 주장처럼, 교열이란 업무의 정의를 '오탈자 점검'이 아닌 팩트체크로 바꾸어야만 교열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챗지피티환각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선, 글의 날조를 가려내는 '매의 눈'이 필요한데, 이는 오직 인간의 지성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6. 여담

상술한 교열 빌런 사례들은 월간지, 단행본을 낼 때 일어나는 일이다. 일간지가 중심인 언론사의 경우 마감 시간이 촉박해서 오탈자 위주로 체크하므로, 적어도 띄어쓰기에 집착하는 일은 없다. 물론 기자가 급하게 원고를 넘기다 보니 비문도 숱하게 있어서 교열부장이 '이렇게 쓰지 말라'라고 일일이 지시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기사문에 적합한 간결체로 다듬는 것이 중점이다. 예를 들어 ~하고 있다라는 원문을 했다로 바꾸면 읽기 편하다고 권고하는 정도이지, 애매한 어문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은 의외로 드물다.
일부 교열자 중에 ~는 물론, ~도라는 식의 기사문을 ~는 물론이고 ~도라고 무조건 바꾸려 드는 사람도 있는데, 애초에 학자마다 견해가 다른 부분이고, 적어도 기사문 기준으로는 전자가 더 낫기 때문에, 신문사 교열부장은 이런 것까지 걸고 넘어지지 않는다.

신문사 교열부장의 글도 현행 어문 규정과 현실과의 조화를 고민하는 것이지, 언중들이 규정을 안 따른다고 화 내는 내용이 아니다.[63]
오히려 신문사 교열부장이 어문 규정 개선에 기여한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자고 주장한 엄민용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간지, 뉴스가 중심인 언론사 기준이 출판사와 다른 경우도 있다. 뉴스 자막이나 신문 기사를 보면 1만 원 이런 식으로 가격 표기를 한 경우가 많은데, 원칙대로라면 1만 원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걸 안 지켰다고 사실 전달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촉박한 시간에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순 없기 때문에 최대한 기준을 간소화하는 듯하다.[64]

이렇다 보니, 일간지 기준으로 일을 배워서 다른 곳으로 입사했을 때 사수 직원이 이런 기본도 모르냐며 혼내는 일도 있다. 이는 혼내는 사수가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수를 가르쳤던 곳에선 그게 국룰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 사수도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일 수 있다.[65]

7. 교열을 다른 창작물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다만 일본 패션잡지계를 다룬 것이라, 이 문서에 등장하는 케이스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일본은 띄어쓰기 규정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 이웃집 꽃미남: 박신혜가 맡은 고독미가 바로 교열을 하는 사람이다. 다만 윤시윤이 맡은 엔리케가 한국말이 서툰 스페인 교포인지라 윤문 업무도 겸하게 되는데, 실제로 교열자는 윤문을 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이 경우는 사실상 공동 창작인지라, 보수가 후한 편.[66]


[1] 저 제목만 봐서는 493km가 시속인지, 분속인지, 초속인지 모른다. 물론 시속 493km도 엄청 빠르지만, 뒤에 /s(퍼세크)를 붙였으면 1초에 493km 속력으로 도달했다는 뜻이니 과장법의 묘미가 더 살아났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오히려 단위를 정확하게 표기함이 시적 허용이다.[2] 그런데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경우는 시속 몇 Km 같은 식으로 표현했다. 지금처럼 속도 몇 km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속=속도라고 인식하니까 저게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것이다.[3] 그만큼 이과적 지식에 문외한인 대중들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절대 다수가 문과 출신인 교열자들은 이런 중대한 오류는 바로잡지 못한다. 과학 서적 출판사에서 애초 비전공자는 안 뽑는 게 다 이유가 있다.[4] 메리 노리스의 선배 교열자 중에는 문법을 중시하는 사람과 저자의 의도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었고 양쪽의 입장이 대립했다 한다. 그래서 메리 노리스는 양쪽을 절충하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5] 인쇄기에 거는 판을 말한다.링크[6] 실제로 교열자를 뽑을 때 윤문도 겸할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하는 경우가 많다.[7] 게다가 2026학년도 수능 국어 3번 문항 논란에서 보듯이, 아예 잘못된 지문으로 문제를 냈다고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교열자 본연의 임무는 이런 잘못된 지문 자체가 아예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 잘못된 지문 안에서 출제자가 의도한 답을 고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8] 주시경, 최현배 선생은 우리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언어학의 기틀을 다진 분들이다.[9] 일단 저자가 무슨 전공을 했는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물론 원로 중에는 스펙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라에서 인정받은 분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뛰어난 한자어 실력으로 그 세대 원로만의 장점을 보여 준 사례이고, 전공이 불분명한 저자의 상당수는 한국어 문법의 체계를 다진 최현배 선생이나 최현배의 스승인 주시경 선생처럼 학문적 깊이가 있거나 과학적인 연구방법이 확립된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면 허점이 나온다.[10]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오덕의 글쓰기 책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아동문학계에서 그가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그의 저서가 접근성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려운 말을 배척하니 술술 잘 읽혔던 것.[11] 교열 자격증이란 것이 있다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자격증이라 실제 채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인 시험 자격증은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어도 서류로서 가치가 있고, 인지도가 높아 응시자가 많으니, 수강료나 응시료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사설 자격증의 경우, 심지어 현행 국립국어원 규정 변경 사항을 모르는 사람이 발급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의 필라테스 사설 자격증처럼 사설 자격증이 난립하는 사례에 해당된다. 설령, 그 사설 자격증이 실력자가 발급해 주는 자격증이라 해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장점이 없는데, 교열이란 분야 자체가 인지도가 없다 보니 자격 시험 응시자 자체가 적어서 응시료가 비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2] 예를 들면 이렇게 쓰는 글이 바로 쓴 글이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책은 피하는 것이 좋다. 본인의 문장 스타일이 정답이라는 아집에 빠진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술하겠지만, 실제로는 교열자들도 실수를 많이 하는데, 자기 실수는 절대로 책에서 언급 안 하고, 남이 잘못한 것만 줄줄 늘어놓다 보니, 심지어 교수에게 쌍욕을 퍼붓는 불쏘시개 같은 출판물이 나오기에 이르렀다.[13] 문과 고스펙인데, 교열 위주로만 업무를 해 왔다면 이런 케이스일 가능성이 있다. 보통 문과 고스펙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번역을 하거나 빼어난 글솜씨로 자기 글을 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한정으로 교열은 출판업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스펙이 교열만 전담하는 경우는 메이저급 언론사 정식 기자가 아닌 한 보기 어렵다.[14] 나무위키에 기재된 국어국문학과 관련 내용은 2020년대 기준으로 서술된 것이므로, 외국어에 대해 개방적인 사례도 많이 서술되었지만,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이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생들이 이런 학풍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는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언어가 생각을 규정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강사는 일본어에 수동태 표현이 많아서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행세를 한다고, 수동태 문장은 그런 점에서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국문과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문학 청년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타인의 주장에 같이 공감해버리는 경향이 강하고 그러다 보니,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이 잘못된 관념을 받곤 한다.[15] 황당한 기준을 들이대는 경우를 보면 알고 보니 타 학과 출신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글에서 뜬금없이 종교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사이비 논란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교열자 경력이 일반적이지 않다면 일단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모든 직종이 다 그렇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사이비의 포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교열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비 종교 신자는 영원불변의 규칙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고를 수 있는 직업이 규칙을 적용하는 직업으로 한정되기 쉽다. 후술하겠지만, 정식으로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사람과는 애당초 근본이 다른 것이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은 적어도 언어의 변천사는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불변의 규칙을 믿지 않는다.[16] 애초에 국어국문학과 나와서 출판계 메이저급에 평생 몸담는 성골 루트를 탄 사람들은 저런 황당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또한 성골 루트가 아닌 케이스를 보면 대학 레벨도 어중간한데, 이런 케이스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아집이 강한 성격 탓에, 타고난 머리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레벨이 더 높은 대학에 못 갔을 가능성이 있다. 공부도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유리한데, 실무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주입식 교육이 대세였던 시대에도 아집이 강한 사람은 위에서 떠먹여 주는 내용을 못 받아들여서 불리했다. 즉, 본인의 성격적 결함 탓에 학벌 뿐만 아니라 직업 경력도 뭔가 애매해졌을 가능성이 높고, 사회 초년생들은 저레벨자를 만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으므로, 이런 부류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17] 그래서 현직 교열 기자인 엄민용 씨가 이런 점을 자주 지적하지만,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18] 일본어 잔재설 중에는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국어 교육자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도 있다. 한 마디로 실제 일제강점기를 겪어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척을 한다는 얘기다.[19] 일례로 휴렛팩커드휼릿팩커드로 수정하거나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와아이들로 붙여 쓰는 고유 명사 관련 과잉수정이 의외로 잦다.[20] 심지어 교열계 빌런들은 인간이면서도 스스로 챗지피티 환각을 시전하기까지 한다.[21] 그런데, 글 잘 쓰는 사람을 따라하면 당연히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탓인지, 그동안 이오덕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철저히 검증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어쨌든 문학청년 성향의 독자가 보기에 이런 사람들의 글은 어휘부터가 남달라서 무공해 채소 같은 매력이 있으므로, 그런 스타일을 따라하고 남에게 전파하는 것이 교열이란 인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오덕의 손자뻘 되는 70년대생 중에도 이에 강한 영향을 받아 만화를 '그림꽃'이라 하는 등 독자적인 단어를 창조하는 저자가 있는데, 교열 관련 저서도 여럿 남겼다.[22] 정말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생존 기술 전달 차원에서 그런다는 것이다.[23] 다만 이수열 선생의 주장을 받아들일지와는 별개로, 이 분의 저서에는 한자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지와 그 용례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적어도 한자어를 정확하고 다채롭게 사용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24] 비록 화해하긴 했지만, 이오덕 선생은 다른 우리말 단체와 견해 차이로 대립했던 적도 있다. 당연히 대립 시점에선 누구의 주장을 기준으로 교열을 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25] 다만 그렇다고 그 교열자가 실제로 현학적인 표현을 쓰는 저자를 싫어하는 성향도 아니다. 실제로는 교열일을 배울 때 하필 그런 사람에게 갈굼을 당했기에 이게 생존방식이 됐을 가능성도 높다.[26] 그런데 어차피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애초에 혼 날 이유도 없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맞춤법 실수를 못 잡아 낸 것이 크지,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후술할 블랙기업 문제로 인해 사수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곳(전 직장)에서는 펜 던지면서 혼 낸다, 여기처럼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는다"라는 식의 말을 했다면 그 사수가 전 직장의 가스라이팅 문화의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100%다. 애초에 국립국어원장도 헷갈릴 수 있는 규정이면, 왜 그런지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것이 사수의 의무다. 게다가, 실용 매체에선 기업이나 단체 명칭 표기에서 일관성이 없는 경우 아니면 문제 삼지도 않으므로, 규정상으론 띄어쓰기가 옳더라도, 기사에 언급된 단체에서 붙여 썼다면, 문서를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붙여쓰기로 통일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말고는 정작, 그 사수보다 높은 상사 쪽에선 신경도 안 쓰는 게 띄어쓰기라, 사수가 전 직장에서 갈굼당한 트라우마가 그만큼 깊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경우 전 직장에서 그 사수를 갈군 사람이 얼치기 우리말 운동가일 가능성도 높다. 그만큼 출판계에 악랄한 블랙기업이 많다는 얘기다.[27] 애초에 단어 자체가 영어이며, 실제 발음은 매리골드이다. 참고로 마릴린 먼로는 영어 발음 기준으로 매릴린 먼로라고 표기하도록 했다. 이처럼 기준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국립국어원에 영어 무식자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배우 Meg Ryan을 한글로 어떻게 표기하냐는 질문에 발음 기호 몰라서 답변을 못 드린다라고 하기도 했다.[28] 과거에는 호흡이 긴 문장을 문장력의 척도로 보았기 때문에 쉼표를 자주 써서 호흡을 끊는 것을 좋지 않게 본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지도하는 분이 되도록이면 쉼표를 자주 쓰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서구권에서 유학하신 분의 경우, 콤마 사용법을 철저히 지키는 언어 습관이 우리말로 글을 쓸 때도 반영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호흡을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 싸이월드 감성글, 트위터 글 같은 스타일이 은연 중에 영향을 미쳐서 젊은 세대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29] 그런데 문장 중간에 쉼표를 남발하는 경우는 일본어 번역체의 영향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は、' 같은 문장을 번역기에 넣어 보면 '~는,'이라고 나온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쉼표를 많이 찍게 되며, 맞춤법 검사기에도 그런 부분이 반영되어 쉼표를 없앤 문장으로 교정해 준다. 다만, 번역체 하면 특정한 단어의 사용이나 문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작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30] 독립운동가조차도 오늘날 기준에선 '틀린' 한국어를 썼다는 것은 한국어 문법을 틀리는 것이 애국심 부족이라는 문법 나치의 주장을 논파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기준은 어차피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31] 예를 들어 저자가 자문, 접수 같은 단어의 의미를 반대로 쓰는 등, 어떤 전문가가 봐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면 기사에 분명 언급되었을 것이다. 하도 이런 일이 많아서 기사가 나도 누군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엔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이런 일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교열부장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연재했고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있다.[32] 물론 나무위키의 출판사 편집자 문서에도 나오듯, 투잡 뛰는 작가가 글을 날림으로 써 내거나 술 퍼 마시다가 이상한 글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편집자의 업무이지 교열자의 업무는 아니다.[33] 교열자가 저자의 글에 과감히 손을 대는 경우는 저자가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라서 전문가가 첨삭지도를 해 줘야 하는 경우다. 실제로 기업인 자서전을 낼 때 자주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윤문의 영역이므로, 당연히 지식인 저자라면 치욕으로 여기는 일이니 자존심 강한 지식인 저자라면 처음부터 오탈자 체크만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34] 대중음악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교열자는 레코딩 엔지니어이고 저자는 일정 부분 프로듀서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에 가깝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맨밴드형 저자도 있을 수 있다.[35] 실제로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수요를 위해 존재하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많다.[36] 원래 메이저급 출판사슈퍼 을의 위치에 있고, 이런 회사는 고스펙이어야 입사가 가능하니, 교열자가 저자와 싸우는 전사라는 비유가 가능했을 것이다.[37] 다만 신문기자는 원래 교열자와 앙숙이므로, 철저히 교열자를 대변하는 기사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이례적인데, 앞서 나온 기사의 경우는 중요하지만 무시당하는 일은 여성이 많이 한다는 예시로 교열자를 내세운 것이다. 즉 처음부터 페미니즘적인 프레임으로 작성한 기사이다.[38] 한글의 특성상 자간 조절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이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어를 붙여서 쓰는 것으로 타협을 하기도 하는데, 일부 교열자는 이를 편집 디자이너의 구차한 변명이라 단정 짓고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39] 예를 들면 번역체 말살에 집착해 꼭 필요한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40] 실제로 작가들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사례를 소개하는 연재물을 보면 언어의 원래 형태를 지킨 방언을 틀린 맞춤법이라고 잘못 소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심심하다'라고 써야 맞는데 작가들이 '슴슴하다'라고 종종 맞춤법 실수를 한다는 식인데, 사실 슴슴하다는 '슴슴ㅎㆍ다에서 아래아 발음이 발음으로 변한 것이기 때문에, 맞춤법을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의 원래 형태를 비교적 잘 지킨 방언으로 봐야 한다.링크 게다가 표준어와 늬앙스도 다르므로, 어문기자도 슴슴하다를 비표준어로 규정한 것은 적절히 못하다고 지적한다. 링크[41] 만약, 해외의 전문 분야 글인데 사수가 번역투를 문제 삼으며 우리가 말할 때 이렇게 안 하잖아요라며 유독 입말을 강조한다면 우리말 운동가에게 갈굼 당하며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업무에 맞춤법 검사기를 쓰라고 권유한다면 그쪽 계통일 가능성이 더 높다. 맞춤법 검사기는 재야 쪽 주장이 검증도 없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편협한 운동가에게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후배에게 자기도 모르게 까칠하게 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럴 때, 이 바닥에선 원래 이런 말을 쓰고, 이 분야 독자들은 다 알아듣는다라고 조리 있게 설명한다면, 사수가 악한 사람이 아닌 한 오해를 풀 가능성이 있지만, 신입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해명도 못하고 당할 수 있다. 이왕이면 국립국어원 게시판을 참고하도록 하자.[42] 설령 자체적인 규정을 정해 준다 해도, 나중에 가선 본인이 어떻게 했는지 까먹는 일이 자주 발생하므로,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국립국어원 기준에 의존하게 된다.[43] 경찰이 범인 잡기에 몰두하다 흑화하여 망상이 빠지는 경우와 비슷하다.[44] 한 마디로 마약이 성병 치료약으로 둔갑했단 얘기다.[45] 즉, 애초에 국립국어원에서 틀렸다고 한 적이 없는데, 사설교열업자가 예문에 없다는 이유로 확대해석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46] 예를 들어 진검승부라는 단어의 유래를 설명할 때, 메이저급에 몸담은 기자는 역사적 유례와 실제 사용 사례를 들어 가면서, 왜 이런 말을 조심해서 써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반면,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는 교열자는 이 들어갔으니 무조건 쓰지 말라고 한다.[47] 출판계에서는 여러 업무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자가 교열자를 겸하기도 하는데, 기자 또한 교열 업무를 맡으면 교열자의 나쁜 점을 그대로 답습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자기가 취재 하는 전문 분야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어중간한 기자가 그냥 있어 보이는 척하려고 디자이너 상대로 갑질 하는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48] 이오덕 선생이 저술한 책에서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 사실 이 사람은 언어학자나 국문학자가 아니므로, 아마추어식 넘겨짚기를 하기 쉽다는 약점이 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워낙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쓴 탓에 글 잘쓰려고 이 사람의 책을 사서 읽은 독자들이 이 사람의 잘못된 생각까지 고스란히 흡수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이오덕 선생은 진보 진영의 김지하 시인 배척을 동조하여 비판받기도 하는데, 이런 점이 언어관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49] 회사에서 한 사람에게 여러 업무를 맡기는 것은 그 사람이 업무 전반을 파악할 기회를 주기 위함인 것이고, 교열자를 여럿 두는 것은 보통 외국어로 쓴 글이 한국 사람들에겐 생소한 분야인 경우가 많아서, 그 생소함을 없애기 위함이다. 그런데 윗분들 의도와는 달리, 교열만 한 사람의 언어 감각은 일반인들과 달라서,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자연스럽게 글을 고치려면, 글에서 다루는 분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걸 자기식으로 소화해서, 아예 처음부터 글을 새로 쓸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평생 인간 맞춤법 검사기로 길들여진 교열자에겐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50] 다만 저런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 중에 민간 단체의 사전편찬작업에 참여했다는 사람도 있어서 순진한 사회 초년생의 실수라고 볼 수는 없다. 후술하겠지만, 심심하다의 원래 형태가 슴슴하다였다는 내용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언급돼 있다. 이처럼 어원을 밝혀 주는 것은 그나마 국립국어원이 민간 단체보다 나은 부분이다.[51] 다만 후술하겠지만, 패션이과가 빌런인 경우도 있다. 문과인 경우는 글자 하나 하나의 차이에 민감해서 적어도 한자 지식이 많은 사람이면 일사량일조량으로 바꾸지 않는데, 패션이과는 저 두 개념을 혼용한다.[52] 굳이 순화를 하자면 요즈음 추세에 따라 영단어로 순화할 수는 있는데, 어차피 독자가 어렵게 느끼는 건 마찬가지이다.[53] 일례로 회계 분야 글은 저자가 교열자에게 토씨 하나도 고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열자 입장에선 오히려 같이 일하기 편한 저자이다. 어쨌든 자신의 판단만을 과신하지 않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오탈자를 걸려 내기 위해서 교열자를 믿고 일을 맡긴 것이니, 교열자가 자존심 상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54] 애초에 이런 상황에선 사수가 그 분야 종사자를 찾아가 감수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부터 해야 정상인데, 여건이 안 되니, 전 직장에서 주입한 의심병을 금과옥조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신입이 내놓은 결과물이 번역기 돌린 수준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도, 본인이 그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 그 분야 종사자가 보면 오히려 너무 많이 손댔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55] 과거처럼 한 직장에 머물지 않고, 다종다양한 직장을 전전하는 것이 뉴노멀이 된 21세기에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데, 교열을 가르치는 위 세대가 같은 회사에서 오래 근무했던 세대이다 보니,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저자를 투쟁의 대상으로 대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까지 있다 보니, 저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은 안 가르치고 저자를 의심하도록 세뇌한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에 질려서 새 직장으로 이직했더라도, 낯선 업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기준을 잡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전 직장에서 주입된 기준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새 기준을 전달하는 OJT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56] 예를 들면 식사 자리에서 V자로 젓가락질을 해도 이게 어딘가 어색하다고 지적하는 등, '이러면 어른들이 싫어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유형이다. 물론, 애초에 사수가 규칙성애자였을 리는 없고, 어려서부터 이미 어른들의 가스라이팅에 익숙한 사람이 교열계의 맞춤형 인재란 얘기다.[57] 여담이지만, 이런 사람이 실생활에선 일본 대중문화 오타쿠인 경우가 있는 등, 의외로 문화적인 취향은 개방적인 면이 있으며, 로코의 클리셰로 나오는 엄격하지만 매력적인 남자 상사를 여성 시청자들과는 달리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즉 실제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저렇게 만들 정도로 이 업계 가스라이팅이 심하다는 방증이다.[58] 사실 과거에는 교열자를 새로 구하기 쉬워서 교열자가 저자와 싸우다 잘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래서 2020년대 기준 50대 편집자가 오히려 적당히 하라고 교열자를 타이르는 경우도 있다.[59] 방송계와 출판계 모두 여초 직장이며, 이미지에 비하면 박봉이고, 똥군기가 존재하는 직종이며, 일부 업무는 향후 AI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오해해선 안 될 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처음에는 사소했던 문제가 더 글로리 급으로 폭발할 수도 있으니, 대형 사고가 나는 남성 간 갈등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케바케인 것이, 용돈벌이 정도로 생각하고 안빈낙도하는 여성 교열자도 있다. 시중에 나온 교열 관련 서적 대부분을 남성이 저술했다는 점이 그 방증일 수 있다. 그중에는 규정을 맹신하지 않고, 현행 규정의 문제점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책도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합리화하는 억지 주장을 담은 책이나,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을 담은 수준 미달 책도 있어서 문제가 된다. 터무니없는 고액 강의도 남성 교열자 사이에서 나타난다. 그 판단 기준은 강사가 언어 변천사를 배웠는지이다. 대학에서 전공을 했든, 서당 훈장에게 배웠든, 언어의 역사를 깊이 파고 든 사람은 어디서 누구한테 무엇을 배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반면, 전공 분야가 언어학이나 국문학과 무관한 사람들은 경력 사항을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기 때문이다.[60] 물론 앞서 예문에 나온 것처럼 여성 출판 편집인이 출판 업무 전반을 다룬 에세이에서 교열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교열만을 주제로 한 책은 남성 저자가 많은 편이다. 최근 1인 출판사가 많아지면서 편집인 혼자서 일당백으로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편집 업무 전반을 주제로 한 에세이류에서는 여성 저자가 많이 보이는 듯하다. 사실, 재택근무하며 오탈자만 교정 보는 정도로 상술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즉, 성별을 떠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도 사무실 내에서 파벌 갈등을 일으켰을 사람들이란 얘기다. 불쏘시개급 책을 써내거나, 실생활에 도움도 안 되는 고액 강의를 뛰는 경우는 남성이 좀 더 외향적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61] 실제로 일반인들은 배달업 종사자나 환경미화원이 없어져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 여긴다. 반면 교열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된 각종 학설의 난립이나 문법나치 논란으로 인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시장의 원리도 이를 반영하여 배달업 종사자와 환경미화원이 버는 돈이 교열자가 버는 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다.[62]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고유명사 연속 오타임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하필 기사가 인지도가 낮은 국가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63] 이렇다 보니, 신문사 덕분에 교열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졌다가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출판계는 회사마다 업무 방식이 많이 다르고, 그래서 현직 편집자도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정답이 없다고 할 정도다.[64] 반대로 출판사 쪽은 언론사와는 달리 시간이 남아 돌기 때문에 저런 똥군기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65] 업무 얘기 이외에선 쿨하게 넘어가는 사수라면, 본래 인성은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교열 업무를 하러 들어가는 회사의 상당수가 업무 분장이 명확치 않은 블랙기업이라 그만큼 중간 이탈자가 많기 때문에 사수가 본의 아니가 상대방 말을 꼬아서 듣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블랙기업을 다룬 풍자성 유튜브 콘텐츠에도 나오듯, 이런 회사들은 직원들이 화분 관리도 해야 하며 교열자도 예외는 아닌데, 예를 들어 사수 앞에서 별다른 의도 없이 저 화초 안 키워 봤는데요라고 하면, 이 말을 사수는 저 안 할래요라고 해석해 버린다. 수많은 직원의 탈주를 본 사수 입장에선 트라우마이므로 본의 아니게 날카로운 반응이 나온다는 얘기. 다만 퇴직금 받을 만큼, 즉 1년 만큼만 버티면, 대체적으론 오해를 풀고 잘해 주긴 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 초년생일 때만 얘기지, 어느 정도 직장 경력이 있으면 굳이 오래 버틸 필요는 없다.[66] 외국에선 아예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려 주는 경우도 있어서 엔리케가 공동 작가로 올려 주려고 하는데, 당당하게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강한 고독미가 거절한다는 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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