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1:03:16

찰턴 헤스턴

'찰턴 헤스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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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허숄트 박애상 수상자
'''[[틀:진 허숄트 박애상 수상자|Jean Hersholt Humanitarian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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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수상의 하나로, 오랜 기간 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에 현저한 공적이있는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보통 아카데미상과는 달리,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이사 회원이 후보 선정과 투표를 한다.
1957년1958년1960년1961년1962년
Y. 프랭크 프리먼 새뮤얼 골드윈 밥 호프 솔 레서 조지 시튼
1963년1966년1967년1968년1969년
스티브 브로이디 에드몬드 드페티 조지 베그넬 그레고리 펙 마샤 레이
1970년1971년1973년1974년1975년
조지 제셀 프랭크 시나트라 로절린드 러셀 류 와서만 아서 B. 크림
1976년1978년1979년1980년1982년
줄스 C. 스테인 찰턴 헤스턴 레오 자페 로버트 벤자민 대니 케이
1983년1984년1985년1986년1990년
월터 미리쉬 M. J. 프랭코비치 데이비드 L. 월퍼 버디 로저스 하워드 W. 코치
1993년1994년1995년2002년2005년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폴 뉴먼 퀸시 존스 아서 밀러 로저 메이어
2007년2009년2012년2013년2014년
섀리 랜싱 제리 루이스 오프라 윈프리 제프리 카첸버그 안젤리나 졸리
2015년2016년2020년2021년2022년
해리 벨라폰테 데비 레이놀즈 지나 데이비스 대니 글로버 마이클 J.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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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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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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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 1978년 <colbgcolor=#fff,#1f2023>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안젤라 랜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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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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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2001년<colbgcolor=#fff,#1f2023>줄리 앤드류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롤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코세이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행콕, 빌리 조엘, 셜리 맥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롤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먼 리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레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2019년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세서미 스트리트, 샐리 필드, 린다 론스태드, 마이클 틸슨 토머스
2020년 데비 엘렌, 조안 바에즈, 가스 브룩스, 미도리, 딕 반 다이크
2021년 저스티노 디아즈, 베리 골디, 론 마이클스, 베트 미들러, 조니 미첼
2022년 조지 클루니, 에이미 그랜트, 글래디스 나이트, 타니아 레온, U2 (보노, 디 에지,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2023년 퀸 라티파, 르네 플레밍, 빌리 크리스탈, 디안 워윅, 배리 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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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세실 B. 드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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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1956년
세실 B. 드밀 월트 디즈니 대릴 F. 재넉 진 허숄트 잭 L. 워너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머빈 르로이 버디 아들러 모리스 슈발리에 빙 크로스비 프레드 아스테어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1966년
주디 갈랜드 밥 호프 조셉 E. 레빈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찰턴 헤스턴 커크 더글러스 그레고리 펙 조안 크로포드 프랭크 시나트라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앨프리드 히치콕 새뮤얼 골드윈 베티 데이비스 핼 B. 월리스 월터 미리쉬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레드 스켈튼 루실 볼 헨리 폰다 진 켈리 시드니 푸아티에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로런스 올리비에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버라 스탠윅 안소니 퀸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도리스 데이 오드리 헵번 잭 레먼 로버트 미첨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로렌 바콜 로버트 레드포드 소피아 로렌 숀 코너리 더스틴 호프먼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셜리 맥클레인 잭 니콜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 파치노 해리슨 포드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로빈 윌리엄스 안소니 홉킨스 워렌 비티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로버트 드 니로 모건 프리먼 조디 포스터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우디 앨런 조지 클루니 덴젤 워싱턴 메릴 스트립 오프라 윈프리
2019년 2020년 2021년 2023년 2025년
제프 브리지스 톰 행크스 제인 폰다 에디 머피 비올라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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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조합 평생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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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964년 1965년 1966년 1967년
에디 캔터 스탠 로렐 밥 호프 바버라 스탠윅 윌리엄 가건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제임스 스튜어트 에드워드 G. 로빈슨 그레고리 펙 찰턴 헤스턴 프랭크 시나트라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마샤 레이 월터 피전 로잘린드 러셀 펄 베일리 제임스 카그니
1978년 1979년 1980년 1982년 1983년
에드가 버겐 캐서린 헵번 레온 아메스 대니 케이 랄프 벨라미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나네트 페브레이 레드 스켈튼 진 켈리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잭 레먼 브록 피터스 버트 랭카스터 오드리 헵번 리카르도 몬탈반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조지 번즈 로버트 레드포드 안젤라 랜스버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커크 더글러스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시드니 푸아티에 오시 데이비스 루비 디 에드워드 애스너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칼 말든 제임스 가너 셜리 템플 줄리 앤드류스 찰스 더닝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제임스 얼 존스 베티 화이트 어니스트 보그나인 메리 타일러 무어 딕 반 다이크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리타 모레노 데비 레이놀즈 캐롤 버넷 릴리 톰린 모건 프리먼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앨런 알다 로버트 드 니로 취소[1] 헬렌 미렌
[1]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시상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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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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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e5e5e5
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제3회
(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에밀 야닝스
(최후의 명령)
(육체의 길)
워너 백스터
(추억의 아리조나)
조지 알리스
(디즈레일리)
라이오넬 배리모어
(자유의 혼)
프레드릭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월레스 비어리
(챔프)
제6회
(1934년)
제7회
(1935년)
제8회
(1936년)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찰스 로튼
(헨리 8세)
클라크 게이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빅터 맥라글렌
(밀고자)
폴 무니
(과학자의 길)
스펜서 트레이시
(굿바이 마이 라이프)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스펜서 트레이시
(소년의 거리)
로버트 도나트
(굿바이 미스터 칩스)
제임스 스튜어트
(필라델피아 스토리)
게리 쿠퍼
(요크 상사)
제임스 카그니
(성조기의 행진)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폴 루카스
(라인의 감시)
빙 크로스비
(나의 길을 가련다)
레이 밀랜드
(잃어버린 주말)
프레드릭 마치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로널드 콜먼
(이중 생활)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로런스 올리비에
(햄릿)
브로데릭 크로포드
(모두가 왕의 부하들)
호세 페레
(시라노)
험프리 보가트
(아프리카의 여왕)
게리 쿠퍼
(하이 눈)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윌리엄 홀든
(제17 포로수용소)
말론 브란도
(워터프론트)
어니스트 보그나인
(마티)
율 브리너
(왕과 나)
알렉 기네스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데이비드 니븐
(애수의 여로)
찰턴 헤스턴
(벤허)
버트 랭카스터
(엘머 갠트리)
막시밀리안 셸
(뉘른베르크의 재판)
그레고리 펙
(앵무새 죽이기)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시드니 푸아티에
(들백합)
렉스 해리슨
(마이 페어 레이디)
리 마빈
(캣 벌루)
폴 스코필드
(사계절의 사나이)
로드 스타이거
(밤의 열기 속으로)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클리프 로버트슨
(찰리)
존 웨인
(트루 그릿)
조지 C. 스콧
(패튼 대전차군단)
진 해크먼
(프렌치 커넥션)
말론 브란도
(대부)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잭 레먼
(호랑이를 구하라)
아트 카니
(해리와 톤토)
잭 니콜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피터 핀치
(네트워크)
리처드 드레이퍼스
(굿바이 걸)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존 보이트
(귀향)
더스틴 호프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드 니로
(분노의 주먹)
헨리 폰다
(황금 연못)
벤 킹슬리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로버트 듀발
(텐더 머시스)
F. 머레이 에이브러햄
(아마데우스)
윌리엄 허트
(거미여인의 키스)
폴 뉴먼
(컬러 오브 머니)
마이클 더글러스
(월 스트리트)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더스틴 호프먼
(레인 맨)
다니엘 데이루이스
(나의 왼발)
제러미 아이언스
(행운의 반전)
안소니 홉킨스
(양들의 침묵)
알 파치노
(여인의 향기)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톰 행크스
(필라델피아)
톰 행크스
(포레스트 검프)
니콜라스 케이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제프리 러시
(샤인)
잭 니콜슨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로베르토 베니니
(인생은 아름다워)
케빈 스페이시
(아메리칸 뷰티)
러셀 크로우
(글래디에이터)
덴젤 워싱턴
(트레이닝 데이)
에이드리언 브로디
(피아니스트)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제79회
(2007년)
제80회
(2008년)
숀 펜
(미스틱 리버)
제이미 폭스
(레이)
필립 시모어 호프먼
(카포티)
포레스트 휘태커
(라스트 킹)
다니엘 데이루이스
(데어 윌 비 블러드)
제81회
(2009년)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숀 펜
(밀크)
제프 브리지스
(크레이지 하트)
콜린 퍼스
(킹스 스피치)
장 뒤자르댕
(아티스트)
다니엘 데이루이스
(링컨)
제86회
(2014년)
제87회
(2015년)
제88회
(2016년)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매튜 매커너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에디 레드메인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케이시 애플렉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게리 올드만
(다키스트 아워)
제91회
(2019년)
제92회
(2020년)
제93회
(2021년)
제94회
(2022년)
제95회
(2023년)
라미 말렉
(보헤미안 랩소디)
와킨 피닉스
(조커)
안소니 홉킨스
(더 파더)
윌 스미스
(킹 리차드)
브랜든 프레이저
(더 웨일)
제96회
(2024년)
제97회
(2025년)
제98회
(2026년)
제99회
(2027년)
제100회
(2028년)
킬리언 머피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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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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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찰턴 헤스턴
Charlton Heston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1628 Hollywood Blvd. }}}}}}}}}


Charlton Heston
파일:4-charlton-heston--album.jpg
<colbgcolor=#262626><colcolor=#ffffff> 본명 존 찰스 카터
John Charles Carter
출생 1923년 10월 4일
미국 일리노이에번스턴
사망 2008년 4월 5일 (향년 84세)
미국 캘리포니아베벌리힐스
묘소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9.2cm
부모 부 러슬 윗퍼드 카터(1897년~1966년)
모 릴러 카터(1899년~1994년)
배우자 리디어 클라크(1944년 결혼~2008년 사별)
자녀 아들 프레이저 헤스턴(1955년)
딸 할리 헤스턴(1961년)
종교 개신교 (감리회)
정당

(?~1971년)
(1971년~2008년)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이력2.2. 전미 총기 협회(NRA) 회장2.3. 사망
3. 정치적 성향의 변화4. 기타5.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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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영화배우. 영원한 벤허이자 모세.[1] 전성기에는 번듯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에다가 몸매도 건장한 근육질의 터프한 사나이로, 영화배우로서는 주로 문무겸비하고 도덕건전한 영웅 이미지가 강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1950년대 남배우 중 누적 흥행 순위 2위였다.[2]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이력


1923년 10월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존 찰스 카터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계부의 성을 따서 헤스턴으로 바꾸었다.

공부를 꽤 잘했는지 일리노이의 명문대인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했고, 여기서 연극 전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급생인 리디아 크라크와 사랑에 빠졌고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1941년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찰턴 헤스턴도 미국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서, B-25 폭격기의 무전수와 기관총 사수로 알래스카에서 근무했고 1944년 리디아와 결혼했다. 리디아와는 그가 죽을 때까지 60년간 해로한다.

찰턴 헤스턴은 1945년 하사로 제대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초반 몇년간은 캐스팅 기회를 얻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1947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된 셰익스피어의 연극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단역을 하나잡으면서 겨우 기회를 잡았다.

이 연극을 시작으로 TV방송국 드라마로 연기 지평을 넓혔고, 당시 대작 사극을 제작하던 할리우드에서 주목하게 되어 그는1950년대에서 할리우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영화데뷔작은 The greatest show on Earth 인데 이 영화는 의외로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지만 헤스턴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당시 대작이었던 하이 눈과 콰이엇 맨을 제쳐고 상을 타서 수상이 의외라는 평가를 들었다.

1956년 아직 30대인 그는 영화 십계에서 수염을 달고 할아버지와 같은 모세역을 맡아 람세스 2세를 맡은 율 브리너와 함께 카리스마적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스타덤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는 매출로 1억 2천만달러를 벌어들여 제작비(1300만달러) 의 거의 10배를 건지는 대흥행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의배우 전속시스템 때문에 이런 대흥행을 하고도 개런티를 크게 받지 못했으며, 계속 배우계약을 한 파라마운트사의 대작 사극에 출연해야 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가 그야말로 전성기로,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 역, 십계에서 역시 주인공 모세 역, 그리고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우주비행사 테일러 역 등은 아마도 21세기인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율리우스 케사르(줄리우스 시저)의 일생을 그린 영화들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세 번이나 맡았다. 특이하게도 목소리 출연 외에는 코메디 영화 출연은 거의 없다. 악역도 거의 안 맡았다.

1976년 영화 미드웨이에서 주연을 맡는 것으로 주연 커리어는 사실상 종료한다. 이후에 출연작은 모두 조연이나 게스트 출연이었다.

영화 감독으로도 몇편 손댔으나,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2.2. 전미 총기 협회(NRA) 회장

파일:Charlton Heston NRA.jpg
"총을 뺏으려면 나를 죽여라!"

1977년 이후 굵직한 필모그래피가 별로 없다. 1940년대 초부터 활동하여 평생 80여 편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중 77년 이후가 20여 편이니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까지도 쭉 연기를 한 것이지만, 미국 영화연구소 의장을 지낸 이후 1998년부터 5년간 전미 총기 협회(NRA)의 회장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얼굴이 안 나오는 내레이션, 목소리 출연, 조역이나 특별 출연 등으로만 나와서 기억에 남을만한 배역이 없기 때문이다.

헤스턴의 NRA 행보가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히 총기 협회 회장을 역임해서가 아니라, 콜롬비아 리틀톤이나 총기 사고가 일어난 지역마다 사건 발생 후 바로 찾아가서 총기 찬성 집회와 연설을 열어 물의를 빚은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짓을 저지른 데 대해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것을 두고 '평생 일관된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살다 간 사람이다' 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는 부정적 입장도 있다. 이런 헤스턴의 행보가 훗날 NRA를 극우 단체로 변질시킨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비판론이 있는가 하면, 미국인 특유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모습이었을 뿐이라고 옹호하는 입장 또한 만만치 않다.

여담으로 찰턴 헤스턴이 NRA 회장 시절 총기를 치켜드는 모습은 워낙 유명하여 여러 패러디 짤을 낳았다. 예를 들어 영화 십계에서 출연했던 모세 역에 빗댄 짤이라든지.

2.3. 사망

2002년 8월 자신이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신경계 질환에 걸렸다는 기자회견을 했고, 회견에 맞서 자신의 이런 고백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기자들에게 공개하였다. 이듬 해 4월 NRA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은둔하며 투병생활을 했다.

투병 5년만인 2008년 4월 5일, 병상에서 아내 리디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시신은 포레스트 론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에서는 원로배우 이순재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3. 정치적 성향의 변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23px-Poitier_Belafonte_Heston_Civil_Rights_March_1963.jpg
사진 전면에 나온 인물들은 각각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시드니 푸아티에이, 해리 벨러폰테이, 그리고 찰턴 헤스턴이다. 이 사진은 1963년 흑인민권운동의 획기적 전기인 워싱턴 대행진에 헤스턴이 참가한 사진으로 당시 100만명의 인파가 참가하여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참정권 보장 및 경제적 평등을 부르짖었다. 이 행진 후 흑인의 투표를 구조적으로 막던 남부 여러 주의 제도가 대부분 철폐된다.

흔히 젊었을 때는 진보적인 성향을 띠다가 늙어서 보수적 성향을 띠는 대표적 인사로 꼽힌다.

젊었을 때는 할리우드 인사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매우 진보적 성향이었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 반공적인 매카시즘이 덮쳐서 많은 배우와 각본가들이 공산주의자라고 박해받을 때, 이를 매우 개탄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의 리버럴한 인권운동에 적극 동조했다. 배우 말런 브랜도, 마틴 루터 킹 등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3] 60년대말부터 70년대까지 개인의 자유를 업악하는 정부권력을 비판하는 사회비판적 SF 영화에 많이 출연해 극렬 좌파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또한 늙었을 때와는 정 반대로 이 당시만 해도 총기규제를 찬성했다.

이후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전통 가치를 죄악으로 보는 좌파운동가들이나 정치적 올바름 주의자들에게 환멸을 느끼면서 정치 노선이 극우적으로 변했다. 기본적으로 찰턴 헤스턴은 1950년대 여러 기독교 관련 영화에 출연한 것에서 보듯이 미국 전통가치의 바탕을 이루는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 그 선상에서 미국 좌파가 주도했지만 자신에 이념과 부합하는 흑인 민권 운동이나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들어서 미국 좌파들이 주도한 성해방 운동[4]이나 정치적 올바름운동이 전통적인 미국 전통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자 거기에 반감을 갖고 우파로 전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헤스턴이 말한대로 "내가 민주당을 떠난게 아니라 민주당이 자기를 떠났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하여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면서 보수쪽으로 한걸음 이동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고 부터는 사상이 극우적으로 변했다. 이 당시에는 아예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인 쿠 클럭스 클랜의 회장과 우호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은 극우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영화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올리버 스톤, 로버트 드니로 같은 사람들은 친민주당 성향의 좌파 영화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애니 기븐 선데이에 출연한 인연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진보적 영화인인 마이클 무어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도 출연해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 했는데, 헤스턴은 공격적인 영화만들기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인터뷰 요청을 기꺼히 받아들였고 무어가 계속 도발적인 질문을 했음에도, 노여움을 자제하며 최대한 자기의 신념을 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5] 헤스턴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면서 뭔가 굉장히 극우적인 발언을 하려다가도, 바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음을 의식하고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4. 기타

  •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서 영화나 벤허 같은 영화에 출연한 것 때문에 유대계라는 루머도 있다. 구글 검색어에 "ethnicity(민족)"이 최상위 연관검색어니 말 다했다. 실제로 유태인이 아닌 앵글로색슨(잉글랜드) 혈통에 스코틀랜드가 조금 섞인 혈통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90년대 후반에 나온 유태인 분석 책자니 뭐니 하던 어느 엉터리 책자에서는 그가 유태인이라고 나왔는데, 분명 이름만 보고 대충 유태인이라고 넣은 거다. 유태인들이 많이 쓰는 성씨인 스턴(Stern)으로 봐서인지 역시 유태인이 아닌 글래드스턴이라든지 스티븐 소더버그까지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기 때문이다. 항목 보면 알겠지만 둘 다 아니다. 실제 스펠링으로 글래드스턴과 마찬가지로 -ton인 앵글로색슨 계열 성씨로, 알파벳이 유태인들이 쓰는 스턴이나 버그랑 다름에도 비슷하거나 한국 발음으로 같다고 적은 것이다.
  • 자식으론 1남 1녀를 뒀는데 1955년생인 아들인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바로 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십계에서 바로 아기 모세로 나온 바 있다.)이 영화감독, 제작자로 나서서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만든 욕망을 파는 집 감독을 하기도 했지만, 1996년 아버지인 찰턴이 조연으로 나온 영화 알래스카를 감독했다가 제작비 절반도 못 거두는 흥행 참패를 당하자 영화 활동을 은퇴했다. 2010년 아버지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을뿐. 딸인 할리 헤스턴 로쉘은 영화 활동을 하지 않았다.
  • 십계, 벤허 같은 대하서사극, 혹성탈출 같은 SF영화, 그외 액션영화에서 강인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히어로로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연극 무대에 꾸준히 출연했고 직접 극장도 운영할 정도로 연극, 특히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났을 때 '배우라면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야된다'는 충고도 했다.[6] 하지만, 같은 메소드 배우인 말론 브란도알 파치노와는 달리 드니로는 역사적 위인이나 유명한 캐릭터는 배우가 자유로운 해석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셰익스피어 연극 출연을 기피하는 입장이었다.
  • 배우로 데뷔하기 전부터 로렌스 올리비에를 롤 모델로 삼을 정도로 좋아해서 다른 대작들의 출연제의를 거절하고 카르툼에 출연했다.
  • 보디빌딩 방법이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인 시대부터 활동했는데도 뛰어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배우였다. 벤허같은 영화에서 보면 다른 배우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7] 헤스턴의 외모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영웅처럼 보일 정도다. 이후 한참 지나 거의 나이 50줄에 접어든 장년에 출연한 오메가맨 같은 영화에서도 웃통을 벗고 여전한 근육질 몸을 자랑한다. 실제로 초기 성경 등의 서사 영화에 등장하는 헤스턴과 중기 SF 영화에 등장하는 헤스턴은 10~15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크게 변한게 없다는 게 놀라운 점. 비슷한 시기에 시대극에서 영웅 캐릭터로 활동한 빅터 마추어, 타잔으로 유명한 (그것도 수영 선수 출신인)조니 와이즈뮬러 등의 30대부터 나잇살 붙은 후덕한 몸매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물론 후대의 아놀드 슈워츠네거처럼 체계적으로 근육을 다듬은 보디빌더들과는 근육 모양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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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 찰턴 헤스턴 ▲ 아놀드 슈워제네거
  •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와 매우 닮았다. 위압적인 덩치도 그렇고[8] 특유의 강인한 인상이나 필모 그래피를 보면 아주 마초적인 영웅 이미지 등 행보가 비슷한 편이다. 사진상으로는 감이 좀 안 올 수도 있는데, 억세어 보이는 하관이라든지 옆모습, 웃는 모습을 보면 비슷하다는 게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물론 연기력은 같지 않지만. 재미있는 우연으로 둘 다 헤라클레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다.

파일:external/images3.cinema.de/1890231,yp+T7PMY5lKvdiJRNP2232rRcIxVh8A_S7N9IsWuz4QEwaEPZZrjpU+rJbihmueTTpJCTKIusJ0qmDEDRKo4WA==.jpg
  • 1994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트루 라이즈에서 비밀첩보기관 오메가 섹터의 국장으로 출연해서 주연배우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극중에서 선후배를 연기했다. 어찌보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마초적 영웅 역할 배우로 찰턴 헤스턴의 후계자 격이기도 하고, 같은 공화당 지지자니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9] 다만 감정 표현이 대체로 절제되어 있는 슈워제네거의 연기 스타일[10]과 달리 찰턴 헤스턴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영웅적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고 당대 연기 패턴을 땨랐기에 감정 표현이 아주 거창하고 연극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외에 대표작에 SF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는 점도 슈워제네거와의 비슷하다. 혹성탈출, 오메가 맨, 소일렌트 그린이 헤스턴의 대표 SF 작품이다. 들 다 필모그라피에 SF영화가 포함된 정도가 아니라 SF의 영원한 걸작으로 손꼽는 혹성탈출,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에 출연하였고, 암울한 미래가 배경이라는 점도 같다.
    다만 헤스턴은 연기 전공자임에도 사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아니다. 1950년대 전성기 당시에도 연기의 뻣뻣함을 계속 지적받았다. 헤스턴은 연기보다는 자신의 피지컬이나 비주얼에 맞는 배역을 잘 골라 맡아서 대성공한 케이스로, 이런 의미에서 헤스턴은 슈워츠네거와도 비슷한 길을 걸은 셈.

5. 출연작


[1] 보통 벤허와 모세만 생각하기 쉽지만 엘 시드, 혹성탈출에도 주인공으로 나왔다. 여러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며 '선인 주인공' 기믹을 헨리 폰다의 뒤를 이어 물려받았다.[2] 1위는 미국의 국민배우인 제임스 스튜어트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였다면 찰턴 헤스턴의 경우 당시 30대로 근육질 미남,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헤라클레스같은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제임스 스튜어트는 당대 이미 기성배우였으나 찰턴 헤스턴은 1950년대 라이징 스타였다.[3] 그에 반해 전향한 이후인 2003년 4월에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들을 지지한 적이 있다.#[4] 헤스턴은 혼외관계나 이혼-재혼을 밥먹듯이 하던 그세대의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달리 80이 넘어서까지 조강치저와 해로한 전통적 가족주의자이다.[5] 다만 무어의 의도적인 편집 때문인지 중언부언 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나, 당시 헤스턴은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있었다.[6] 이순재 배우도 네이버캐스트에서 <리어 왕> 등을 읽어보라고 함으로써, 같은 도움말을 자신보다 나중인 배우들에게 하였다.[7] 당시 미국 백인의 평균 키는 173cm정도였고 배우들도 180cm가 안 되었다. 헤스턴은 평균보다 15cm이상 큰 거인이었다.[8] 프로필상 아놀드는 188cm, 찰턴 헤스턴은 191cm 이다. 실제 키는 헤스턴이 약간 크다.[9] 슈워츠네거는 이민자 출신임이 그 정치 성향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10] 대사가 적다.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이라 초기엔 영어 실력이 모자라고 독일식 억양이 억세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런식의 조정을 거친다. 출세작인 터미네이터 1편에서 대사는 단 10여 줄에 불과하다.[11] 의화단 사건을 다뤄서 유명한 영화. 시대가 시대라서 백인배우들이 중국인 역을 했다.[12] 나는 전설이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13] 팀 버튼이 오리지널 혹성탈출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특별 출연시켰지만 특수 분장을 하고 있어 알아보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