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ton Heston | |
<colbgcolor=#262626><colcolor=#ffffff> 본명 | 존 찰스 카터 John Charles Carter |
출생 | 1923년 10월 4일 |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 |
사망 | 2008년 4월 5일 (향년 84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 |
묘소 |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9.2cm |
부모 | 부 러슬 윗퍼드 카터(1897년~1966년) 모 릴러 카터(1899년~1994년) |
배우자 | 리디어 클라크(1944년 결혼~2008년 사별) |
자녀 | 아들 프레이저 헤스턴(1955년) 딸 할리 헤스턴(1961년) |
종교 | 개신교 (감리회) |
정당 | (?~1971년) (1971년~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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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배우. 영원한 벤허이자 모세.[1] 전성기에는 번듯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에다가 몸매도 건장한 근육질의 터프한 사나이로, 영화배우로서는 주로 문무겸비하고 도덕건전한 영웅 이미지가 강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1950년대 남배우 중 누적 흥행 순위 2위였다.[2]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이력
1923년 10월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존 찰스 카터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계부의 성을 따서 헤스턴으로 바꾸었다.
공부를 꽤 잘했는지 일리노이의 명문대인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진학했고, 여기서 연극 전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급생인 리디아 크라크와 사랑에 빠졌고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1941년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찰턴 헤스턴도 미국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서, B-25 폭격기의 무전수와 기관총 사수로 알래스카에서 근무했고 1944년 리디아와 결혼했다. 리디아와는 그가 죽을 떄까지 60년간 해로한다.
찰턴 헤스턴은 1945년 하사로 제대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초반 몇년간은 캐스팅 기회를 얻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1947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된 셰익스피어의 연극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단역을 하나잡으면서 겨우 기회를 잡았다.
이 연극을 시작으로 TV방송국 드라마로 연기 지평을 넓혔고, 당시 대작 사극을 제작하던 할리우드에서 주목하게 되어 그는1950년대에서 할리우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영화데뷔작은 The greatest show on Earth 인데 이 영화는 의외로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지만 헤스턴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당시 대작이었던 하이 눈과 콰이엇 맨을 제쳐고 상을 타서 수상이 의외라는 평가를 들었다.
1956년 아직 30대인 그는 영화 십계에서 수염을 달고 할아버지와 같은 모세역을 맡아 람세스 2세를 맡은 율 브리너와 함께 카리스마적 연기를 보여줌으로서 스타덤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는 매출로 1억 2천만달러를 벌어들여 제작비(1300만달러) 의 거의 10배를 건지는 대흥행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의배우 전속시스템 때문에 이런 대흥행을 하고도 개런티를 크게 받지 못했으며, 계속 배우계약을 한 파라마운트사의 대작 사극에 출연해야 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가 그야말로 전성기로,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 역, 십계에서 역시 주인공 모세 역, 그리고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우주비행사 테일러 역 등은 아마도 21세기인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율리우스 케사르(줄리우스 시저)의 일생을 그린 영화들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세 번이나 맡았다. 특이하게도 목소리 출연 외에는 코메디 영화 출연은 거의 없다. 악역도 거의 안 맡았다.
1976년 영화 미드웨이에서 주연을 맡는 것으로 주연 커리어는 사실상 종료한다. 이후에 출연작은 모두 조연이나 게스트 출연이었다.
영화 감독으로도 몇편 손댔으나,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2.2. 전미 총기 협회(NRA) 회장
"총을 뺏으려면 나를 죽여라!"
1977년 이후 굵직한 필모그래피가 별로 없다. 1940년대 초부터 활동하여 평생 80여 편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중 77년 이후가 20여 편이니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까지도 쭉 연기를 한 것이지만, 미국 영화연구소 의장을 지낸 이후 1998년부터 5년간 전미 총기 협회(NRA)의 회장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얼굴이 안 나오는 내레이션, 목소리 출연, 조역이나 특별 출연 등으로만 나와서 기억에 남을만한 배역이 없기 때문이다.
헤스턴의 NRA 행보가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히 총기 협회 회장을 역임해서가 아니라, 콜롬비아 리틀톤이나 총기 사고가 일어난 지역마다 사건 발생 후 바로 찾아가서 총기 찬성 집회와 연설을 열어 물의를 빚은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짓을 저지른 데 대해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것을 두고 '평생 일관된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살다 간 사람이다' 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는 부정적 입장도 있다. 이런 헤스턴의 행보가 훗날 NRA를 극우 단체로 변질시킨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비판론이 있는가 하면, 미국인 특유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모습이었을 뿐이라고 옹호하는 입장 또한 만만치 않다.
여담으로 찰턴 헤스턴이 NRA 회장 시절 총기를 치켜드는 모습은 워낙 유명하여 여러 패러디 짤을 낳았다. 예를 들어 영화 십계에서 출연했던 모세 역에 빗댄 짤이라든지.
2.3. 사망
2002년 8월 자신이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신경계 질환에 걸렸다는 기자회견을 했고, 회견에 맞서 자신의 이런 고백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기자들에게 공개하였다. 이듬 해 4월 NRA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은둔하며 투병생활을 했다.투병 5년만인 2008년 4월 5일, 병상에서 아내 리디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시신은 포레스트 론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에서는 원로배우 이순재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3. 정치적 성향의 변화
사진 전면에 나온 인물들은 각각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시드니 푸아티에이, 해리 벨러폰테이, 그리고 찰턴 헤스턴이다. 이 사진은 1963년 흑인민권운동의 획기적 전기인 워싱턴 대행진에 헤스턴이 참가한 사진으로 당시 100만명의 인파가 참가하여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참정권 보장 및 경제적 평등을 부르짖었다. 이 행진 후 흑인의 투표를 구조적으로 막던 남부 여러 주의 제도가 대부분 철폐된다.
흔히 젊었을 때는 진보적인 성향을 띠다가 늙어서 보수적 성향을 띠는 대표적 인사로 꼽힌다.
젊었을 때는 할리우드 인사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매우 진보적 성향이었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 반공적인 매카시즘이 덮쳐서 많은 배우와 각본가들이 공산주의자라고 박해받을 때, 이를 매우 개탄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위에도 참여하는 등의 리버럴한 인권운동에 적극 동조했다. 배우 말런 브랜도, 마틴 루터 킹 등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3] 60년대말부터 70년대까지 개인의 자유를 업악하는 정부권력을 비판하는 사회비판적 SF 영화에 많이 출연해 극렬 좌파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또한 늙었을 때와는 정 반대로 이 당시만 해도 총기규제를 찬성했다.
이후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전통 가치를 죄악으로 보는 좌파운동가들이나 정치적 올바름 주의자들에게 환멸을 느끼면서 정치 노선이 극우적으로 변했다. 기본적으로 찰턴 헤스턴은 1950년대 여러 기독교 관련 영화에 출연한 것에서 보듯이 미국 전통가치의 바탕을 이루는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 그 선상에서 미국 좌파가 주도했지만 자신에 이념과 부합하는 흑인 민권 운동이나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들어서 미국 좌파들이 주도한 성해방 운동[4]이나 정치적 올바름운동이 전통적인 미국 전통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자 거기에 반감을 갖고 우파로 전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헤스턴이 말한대로 "내가 민주당을 떠난게 아니라 민주당이 자기를 떠났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하여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면서 보수쪽으로 한걸음 이동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하고 부터는 사상이 극우적으로 변했다. 이 당시에는 아예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인 쿠 클럭스 클랜의 회장과 우호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은 극우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영화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올리버 스톤, 로버트 드니로 같은 사람들은 친민주당 성향의 좌파 영화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애니 기븐 선데이에 출연한 인연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진보적 영화인인 마이클 무어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도 출연해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 했는데, 헤스턴은 공격적인 영화만들기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인터뷰 요청을 기꺼히 받아들였고 무어가 계속 도발적인 질문을 했음에도, 노여움을 자제하며 최대한 자기의 신념을 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5] 헤스턴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면서 뭔가 굉장히 극우적인 발언을 하려다가도, 바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음을 의식하고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4. 기타
-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서 영화나 벤허 같은 영화에 출연한 것 때문에 유대계라는 루머도 있다. 구글 검색어에 "ethnicity(민족)"이 최상위 연관검색어니 말 다했다. 실제로 유태인이 아닌 앵글로색슨(잉글랜드) 혈통에 스코틀랜드가 조금 섞인 혈통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90년대 후반에 나온 유태인 분석 책자니 뭐니 하던 어느 엉터리 책자에서는 그가 유태인이라고 나왔는데, 분명 이름만 보고 대충 유태인이라고 넣은 거다. 유태인들이 많이 쓰는 성씨인 스턴(Stern)으로 봐서인지 역시 유태인이 아닌 글래드스턴이라든지 스티븐 소더버그까지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기 때문이다. 항목 보면 알겠지만 둘 다 아니다. 실제 스펠링으로 글래드스턴과 마찬가지로 -ton인 앵글로색슨 계열 성씨로, 알파벳이 유태인들이 쓰는 스턴이나 버그랑 다름에도 비슷하거나 한국 발음으로 같다고 적은 것이다.
- 자식으론 1남 1녀를 뒀는데 1955년생인 아들인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바로 아버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십계에서 바로 아기 모세로 나온 바 있다.)이 영화감독, 제작자로 나서서 스티븐 킹 원작을 영화로 만든 욕망을 파는 집 감독을 하기도 했지만, 1996년 아버지인 찰턴이 조연으로 나온 영화 알래스카를 감독했다가 제작비 절반도 못 거두는 흥행 참패를 당하자 영화 활동을 은퇴했다. 2010년 아버지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을뿐. 딸인 할리 헤스턴 로쉘은 영화 활동을 하지 않았다.
- 십계, 벤허 같은 대하서사극, 혹성탈출 같은 SF영화, 그외 액션영화에서 강인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히어로로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연극 무대에 꾸준히 출연했고 직접 극장도 운영할 정도로 연극, 특히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났을 때 '배우라면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야된다'는 충고도 했다. 하지만, 같은 메소드 배우인 말론 브란도나 알 파치노와는 달리 드니로는 역사적 위인이나 유명한 캐릭터는 배우가 자유로운 해석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해서 셰익스피어 연극 출연을 기피하는 입장이였다.
- 보디빌딩 방법이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인 시대부터 활동했는데도 뛰어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배우였다. 벤허같은 영화에서 보면 다른 배우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6] 헤스턴의 외모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영웅처럼 보일 정도다. 이후 한참 지나 거의 나이 50줄에 접어든 장년에 출연한 오메가맨 같은 영화에서도 웃통을 벗고 여전한 근육질 몸을 자랑한다. 실제로 초기 성경 등의 서사 영화에 등장하는 헤스턴과 중기 SF 영화에 등장하는 헤스턴은 10~15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크게 변한게 없다는 게 놀라운 점. 비슷한 시기에 시대극에서 영웅 캐릭터로 활동한 빅터 마추어, 타잔으로 유명한 (그것도 수영 선수 출신인)조니 와이즈뮬러 등의 30대부터 나잇살 붙은 후덕한 몸매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물론 후대의 아놀드 슈워츠네거처럼 체계적으로 근육을 다듬은 보디빌더들과는 근육 모양이 다르다.
<rowcolor=#fff> ▲ 찰턴 헤스턴 | ▲ 아놀드 슈워제네거 |
-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그와 매우 닮았다. 위압적인 덩치도 그렇고[7] 특유의 강인한 인상이나 필모 그래피를 보면 아주 마초적인 영웅 이미지 등 행보가 비슷한 편이다. 사진상으로는 감이 좀 안 올 수도 있는데, 억세어 보이는 하관이라든지 옆모습, 웃는 모습을 보면 비슷하다는 게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물론 연기력은 같지 않지만. 재미있는 우연으로 둘 다 헤라클레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다.
- 1994년에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트루 라이즈에서 비밀첩보기관 오메가 섹터의 국장으로 출연해서 주연배우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극중에서 선후배를 연기했다. 어찌보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마초적 영웅 역할 배우로 찰턴 헤스턴의 후계자 격이기도 하고, 같은 공화당 지지자니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8] 다만 감정 표현이 대체로 절제되어 있는 슈워제네거의 연기 스타일[9]과 달리 찰턴 헤스턴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영웅적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고 당대 연기 패턴을 땨랐기에 감정 표현이 아주 거창하고 연극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외에 대표작에 SF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는 점도 슈워제네거와의 비슷하다. 혹성탈출, 오메가 맨, 소일렌트 그린이 헤스턴의 대표 SF 작품이다. 들 다 필모그라피에 SF영화가 포함된 정도가 아니라 SF의 영원한 걸작으로 손꼽는 혹성탈출,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에 출연하였고, 암울한 미래가 배경이라는 점도 같다.
다만 헤스턴은 연기 전공자임에도 사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아니다. 1950년대 전성기 당시에도 연기의 뻣뻣함을 계속 지적받았다. 헤스턴은 연기보다는 자신의 피지컬이나 비주얼에 맞는 배역을 잘 골라 맡아서 대성공한 케이스로, 이런 의미에서 헤스턴은 슈워츠네거와도 비슷한 길을 걸은 셈.
5. 출연작
- 지상 최대의 쇼(1952년)
- 십계(1956년) - 모세 역
- 거대한 서부(1958년) - 스티브 리치 역
- 악의 손길 (1958년) - 바르가스 수사관 역 (헤스턴의 최애작으로, 그는 스튜디오를 설득해서 오손 웰즈에게 감독 겸 공동주연을 맡겼다.)
- 벤허(1959년) - 유다 벤허 역
- 엘 시드(1961년) - 엘 시드 역
- 북경의 55일(1963년) - 매트 루이스 역[10]
- 던디 소령(1965년) - 에이머스 찰스 던디 소령 역
- 고통과 환희(1965년)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역
- 하르툼(1966년) - 찰스 조지 고든 역
- 최고의 이야기(1967년) - 세례자 요한 역
- 혹성탈출(1968년) - 조지 테일러 역
- 혹성탈출: 지하도시의 음모(1970년) - 조지 테일러 역
- 율리우스 시이저 - 안토니우스 역
- 오메가 맨(1971년)[11] - 주인공 로버트 네빌 역
- 소일렌트 그린(1973년) - 로버트 쏜 역
- 대지진(1974년) - 주인공 역
- 미드웨이(1976년) - 매튜 가쓰 해군 대령 역
- 위기의 핵잠수함(1978년) - (원제 : Gray Lady Down)) - 폴 블랜차드 대위 역
- 공포의 피라밋(1980년) - (원제 : The Awakening)) - 매튜 코벡역
- 천사가 된 사나이(1990년) - (원제 : ALmost An Angel) - 카메오 출연. 주인공이 꿈에서 만난 하느님 역할.
- 트루 라이즈(1994년) - 오메가 섹터 국장 역
- 매드니스(1994년) - 잭 하글로우, 아케인 출판사 편집장 역
- 혹성탈출(2001년) - 자이우스 역[12]
- 디 오더(2001년) - 월터 핀리 교수 역
- 볼링 포 콜럼바인(2002년) - 찰턴 헤스턴 본인
[1] 보통 벤허와 모세만 생각하기 쉽지만 엘 시드, 혹성탈출에도 주인공으로 나왔다. 여러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며 '선인 주인공' 기믹을 헨리 폰다의 뒤를 이어 물려받았다.[2] 1위는 미국의 국민배우인 제임스 스튜어트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였다면 찰턴 헤스턴의 경우 당시 30대로 근육질 미남,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헤라클레스같은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제임스 스튜어트는 당대 이미 기성배우였으나 찰턴 헤스턴은 1950년대 라이징 스타였다.[3] 그에 반해 전향한 이후인 2003년 4월에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들을 지지한 적이 있다.#[4] 헤스턴은 혼외관계나 이혼-재혼을 밥먹듯이 하던 그세대의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달리 80이 넘어서까지 조강치저와 해로한 전통적 가족주의자이다.[5] 다만 무어의 의도적인 편집 때문인지 중언부언 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나, 당시 헤스턴은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있었다.[6] 당시 미국 백인의 평균 키는 173cm정도였고 배우들도 180cm가 안 되었다. 헤스턴은 평균보다 15cm이상 큰 거인이었다.[7] 프로필상 아놀드는 188cm, 찰턴 헤스턴은 191cm 이다. 실제 키는 헤스턴이 약간 크다.[8] 슈워츠네거는 이민자 출신임이 그 정치 성향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9] 대사가 적다.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이라 초기엔 영어 실력이 모자라고 독일식 억양이 억세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런식의 조정을 거친다. 출세작인 터미네이터 1편에서 대사는 단 10여 줄에 불과하다.[10] 의화단 사건을 다뤄서 유명한 영화. 시대가 시대라서 백인배우들이 중국인 역을 했다.[11] 나는 전설이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12] 팀 버튼이 오리지널 혹성탈출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특별 출연시켰지만 특수 분장을 하고 있어 알아보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