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7:37:13

기독교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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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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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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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교회를 떠납니다!
Kirchenaustritt Heute![1]
Christianophobia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과 적개심을 가지는 반기독교적 감정 및 기독교에 대한 차별혐오를 일컫는 말. 대상은 기독교 전반으로,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정교회든 종파를 가리지 않는다.

2. 설명

반기독교와 완전 동일시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기독교는 기독교에 대한 단순 반감까지 포함하는 광의라면 기독교공포증은 단순한 반감 수준이 아니라 그로 인해 촉발되는 증오 범죄를 말한다. 과격한 반기독교도 기독교공포증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 국가가 기독교공포증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슬람권이라고 꼭 기독교공포증이 심한 것이 아니며, 이슬람권이 아니라고 해서 기독교공포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당장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 힌두교 문화권인 인도나 아시아 불교권에서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리고 기독교공포증은 종교간의 이해관계로 인해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련,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국가 무신론을 채택하므로 사회나 문화 차원에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부 차원에서 기독교를 탄압하는 수준이다.[2]

기독교는 근대문명을 주도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첨병이 되어 전세계에 대한 식민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일조했던 과거가 있으므로 마치 기득권의 종교라는 식으로 비난당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도 개신교의 온갖 구설수가 있는데다 문화 검열에서 개신교 및 관련 단체들의 정치적 입김도 작용하며 사회문화적으로 경직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는 관계로 개신교에 대한 인식이 현대 한국에서의 유교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매우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3] 그러나 기독교는 역사적 이유로나 종교적 이유로나 여러 나라 및 문화권들과 엮여왔으며, 이 때문에 제1세계를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는 종교이자 동시에 순교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종교다.

한국의 경우엔 구한말 조선이 병인박해를 했던 적이 있다. 현대에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오히려 다른 종교에 비해 강해졌으며, 기득권층과도 밀접해져 정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정치인들을 포함해 국내 인사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으며, 또 한국 자체가 유교의 영향이 남아있어 문화적인 면에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기에, 보수적인 종교의 교리와 잘 맞았는지 교세도 상당히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인구 절반 이상이 종교가 없으며, 기독교인이 여전히 비율적으로 강세가 아니다. 또한 정권과 결탁하는 등의 숱한 논란 등으로 인해 사회 내에 반기독교 감정도 크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국은 기독교공포증을 겪는 나라는 아니다. 여전히 기독교가 기득권 내에 힘이 있고,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며,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기에 인터넷 등에서 마주할 수 있는 반기독교적 행태는 개인 및 집단들의 반감 정도에 불과하며,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인 이찬희 정도가 설친 정도 등을 제외하면 온/오프라인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증오범죄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4]

일본은 근대화 전까지는 기독교를 박해했다가 이후엔 멈췄다. 1945년 이후 기준으로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났다는 사례는 나오지 않으나, 일본 내 기독교도의 대다수가 한국계와 부라쿠민[5]인데다 동북아시아 국가 중 대한민국이 인구 대비 기독교인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이유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으며, 일본인 중 반미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주요 종교가 기독교라는 이유로 반기독교 성향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기독교인, 그중에서도 개신교인들이 좌파 야당(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 레이와 신센구미 등)을 지지하는 경향을 꼬투리 잡아 "기독교=잠재적 반국가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극우 정치인들이나 네티즌들이 많으며 기독교에 부정적인 시민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3. 사례

3.1. 이슬람교 지역

3.1.1.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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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공격에 의해 불타버린 성당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콥트 정교회 사제.

아랍의 봄 이후 종교적 극단주의를 억압하고 세속주의 국가관을 강요하던 독재 정권이 사라지고, 이슬람주의를 추구하는 정부가 들어서자 콥트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괴롭힘과 탄압은 더 악랄해져,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집트 인구 중 11%인 콥트 정교회 신자들은 독재 타도 후 오히려 성당 방화, 성폭행, 상해, 살인 등의 위험에 처했다. 기독교인들이 이에 대한 항의시위를 열자 정부군이 발포, 최소 24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참극도 있었다. 2012년 이후로 10000명 이상의 이집트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의한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를 떠났다.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군사정권을 세웠지만 기독교 박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엘 시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독교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금지하는데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에 입국할 때에는 종교를 기재해야 하며, 이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세 종교만 인정된다. 이외 종교는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 대한 일체의 '신성모독'을 금지한다. 종교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수 무슬림들이 신성모독을 빌미로 기독교를 탄압하는 빌미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 2016년에는 기독교 청년들이 자기들끼리 다에시의 참수형을 조롱한 것을 두고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을 했다며 크리스천 청년 4명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집트 제2의 이슬람주의 정당인 알누르당의 경우 콥트교 축출과 이집트 고대 역사유산 반달이 당 강령에 포함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3.1.2. 소말리아

무정부 상태인 정국을 이용하여 남쪽에서 깽판치는 알 샤바브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소수 기독교인들을 매우 가혹하게 박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수도 모가디슈가 이슬람 법정연합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한 감시가 이루어졌고 모든 교회들은 지하로 숨었다.

소말리아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무정부상태로 남아있고 아프리카연합 평화 유지군과 정부군에 의해서 최근 퇴각한 반군 단체인 알 샤바브샤리아법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자신들의 광분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말리아의 한 기독교인은 “소말리아의 기독교인은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단 한 번 누군가를 잘못 믿는다면 문자 그대로 무슬림들에 의해 머리가 날아갈 수 있는 곳이 소말리아다.”라고 탄식했다.

알 샤바브는 점령지에서 현지 고아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는 기독교인 4명을 납치해서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하다가 끝까지 거절하자 즉시 처형했으며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3.1.3. 수단

북수단의 아랍계 수니파 무슬림 독재정권[6]남수단 기독교인들을 수십 년간 박해해왔다.

남수단아랍인누비아인 위주의 북수단과 문화가 다르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일로트 계통의 흑인들이 주를 이루는데 내전으로 알려진 이 지역분쟁은 사실상 수단 정부의 기독교/흑인 문화와 종교+인종 박해이다. 1983년 샤리아를 기독교인이 다수인 남부 지역에 적용하려다가 일어난 2차 수단 내전에서는 83-98년간 190만 명이 사망했으며, 2003년 발생한 다르푸르 대학살에서는 30만명이 사망하고 27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남수단 지역의 비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은 자발적으로 현대 서구식 복장, 기독교 선교사들, 서양식 생활문화를 받아들여 북수단과의 어떤 문화적 접점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오랜 학살, 탄압과 투쟁 끝에 남수단은 2011년 독립국 지위를 얻었지만, 독립 전후까지도 북수단에 의해 공중폭격과 표적살해, 어린이 납치 등 잔혹행위(atrocities)의 피해자가 되는 기독교인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독교인 5-7만여 명이 쫓겨났고, 집과 건물들은 약탈당했다. 또한 북수단에 남은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은 여전하다. 지금도 기독교계 누비아인들 같은 경우는 탄압을 못견디고 에티오피아로 도망가는 실정이다.

3.1.4. 케냐

케냐는 기독교도가 다수인 국가이자 이슬람과 힌두교가 공존하는 국가인데 최근 이슬람계 테러조직들과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기독교인 박해와 테러가 급증하고 있다. 알 샤바브케냐 쇼핑몰 테러가리사 대학 테러 사건에서는 같은 무슬림은 살려주고 기독교인만을 골라 학살하는데 행각으로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그 외에도 버스를 납치해서 기독교인들만을 골라 죽이기도 하고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개종자에 대한 탄압을 저지르고 있다. 케냐 기독교계에서는 더 이상 박해를 참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적극 저항할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3.1.5. 탄자니아

탄자니아는 이슬람과 기독교, 토착종교들이 공존하지만 목사의 목을 참수하거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살해가 벌어지고 있으며 무슬림이 99%에 달하는 자치령 잔지바르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극소수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교회 파괴, 성직자에 대한 테러를 시도때도 없이 자행해 몸살을 앓고 있다. 쿠란을 모독했다는 불확실한 이유로 소년에게 살해협박을 했던 일도 있다. 그리고 잔지바르 무슬림 당국은 소수 기독교 탄압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비판을 심하게 받고 있다.

3.1.6. 알제리

알제리의 종교탄압은 다른 이슬람국가들 못지않게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과거 지배자였던 프랑스가 뿌린 원인이다. 실제로 130년이 넘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 및 알제리 전쟁으로 200만이 넘는 사망자를 냈고 프랑스의 종교탄압정책[7]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컸다. 독립초부터 기독교에 대한 차별 및 테러가 이어져왔다.

알제리에는 토착 기독교도들도 살고 있는데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대대로 살아온 기독교도들과 공존하며 지내고 있다. 극단주의가 심했을 때 피해를 입긴 입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놓고 교회 등에서 종교행사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진 못하고, 친목계나 월례회 등의 명목으로 모인 다음 예배를 드리는 수준으로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형태가 되었다.

1996년 의료봉사와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던 가톨릭 수도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으며 [8] 이슬람세력과 군부와 민간정부의 대립, 부족갈등과 같은 내부 문제가 깊어지면서 점차 민간정부 및 군부까지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집하는 경향이 커져갔다. 2003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수녀들이 과격파에게 산 채로 난도질했으며 2005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를 난도질을 오랫동안 하며 고통스럽게 죽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알제리 지배에 대하여 책임없고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여러 모로 부정하고 알제리에게 프랑스 지배를 긍정하라는 병크적인 정치인 발언으로 인해 반프랑스 감정이 커지면서 보복으로 살해당했다. 결국 이 사건들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는데 과격파도 과격파지만 알제리 정부가 일부러 묵인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2008년 오로지 이슬람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선교사들이 무조건 추방 및 입국 금지되었으며 56개의 교회를 경찰 및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폐쇄하였다.

이후 극단주의는 살짝 사그러들고 2011년 이후 알제리 정부가 개신교회를 인정하는 등 # 유화책을 펴면서 그나마 기독교에 대한 차별도 약간은 줄어들었다. 다만, 2016년 들어서 또다시 기독교에 대한 테러와 박해가 늘었다고 한다. 참고1 참고2

3.1.7. 예멘

기독교로 개종한 전 무슬림을 이웃들이 몰려들어 때려 죽이고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사건이 있다. 2009년 한국인 여성 1명을 비롯한 외국 선교사들이 잡혀 총살당한 적도 있다. 그나마 예멘인은 선교단에 있던 아이들 2명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묻혔다.

3.1.8.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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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가톨릭 성당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장례식 행렬.

이라크에서는 세속주의와 종교 공존을 비교적으로 중시하는 아랍 민족주의 계열의 바트당 정권 후세인 독재 시절까지는 기독교혐오증이 실질적인 박해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다만 이때도 기독교 선교를 엄격히 금지했고 개종자는 처벌했다. 단지 이전부터 살아오던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공존을 허락했던 거였다. 그래도 이 시절이 훨씬 평화로웠다고 기독교인들은 한탄한다. 테러는 응징하고 국고금으로 테러당한 종교건물을 재건했으며 군대가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사담 정권이 몰락하자마자 이라크 내의 기독교 및 야지디교, 만다야교와 같은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헬게이트가 열려버렸다. 2007년에는 극단주의자들이 가톨릭 사제를 암살하였으며 2010년에는 칼데아 가톨릭 소속 성당의 미사 시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9]이 쳐들어와 "기독교도들은 지옥에 가고 우리 무슬림들은 천국에 간다!"라고 외치며 사제들과 경찰들을 포함한 58명을 학살하고 78명을 부상시키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이 종식되고 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70개의 성당들이 무슬림들의 테러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이렇게 극심한 탄압과 치안부재를 틈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활개로 인해 이라크 기독교도들의 숫자는 이라크 전쟁 전 140만 명에서 현재 50만 명 미만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대부분 극심한 박해를 피해서 이라크를 뜬 기독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다에시 점령지에서 기독교인 남자들은 어마어마한 인두세를 물지 못하면 살해당하기 일쑤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시장에서 인신매매되어 수니파 계열 살라피스트들에게 강간당하여 임신되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수니파 이외의 이교도들은 터키 국경을 통해 앙카라나 이스탄불 매춘굴로 보내지기도 한다는 모양. IS 점령지 내 교회와 성당들은 폭파되거나 문이 닫히고, 혹은 이슬람 센터로 개조당하는 지경에 처했다.

일단 기독교도들은 무지막지한 종교세를 내서 목숨은 보장 받는건 가능하지만 밖에선 '절대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다. 수니파 극단주의 만을 추종하는 다에쉬는 자신들 입장에선 죽여야 할 이교도인 시아파[10]와 악마숭배자로 몰리는 야지디교에 비해면 선택이라도 할 수는 있다.

대대적인 모술 탈환전이 시작되면서 이라크 군경과 시아파 민병대, 지역 수니파 민병대와 기독교, 야지디 민병대 등의 여러 연합 부대가 다에쉬의 점령지를 치면서 모술 주변의 아시리아인 기독교계의 마을들을 수복하고 있고, 강제 폐쇄되었던 교회와 성당들의 꼭대기엔 십자가가 다시 세워지는 등 다에시에 의한 박해가 끝나갈 조짐이 보이곤 있다. 최근 탈환된 모술 인근의 기독교 마을 바르텔라에 도착한 기독교 성직자 예수의 사진을 들고 있는 이라크 병사 파괴된 관련 동상을 복구하는 이라크 특수작전부대원 모술 인근, 폐쇄되었던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이라크군
3.1.8.1. 관련 문서

3.1.9.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미디어 워치의 조사에 따르면 하마스 등의 팔레스타인 기득권층 주도의 언론에서는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기독교도를 악마로 몰아가는 왜곡과 선전이 방영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파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단속하기에 함부로 못하지만 샤리아 통치가 시행되는 가자지구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자행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강요까지 한다.# 가뜩이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와 공격으로 지옥 같은 땅인데 하마스로부터 박해까지 받으니 가자지구의 기독교인들은 가자지구를 떠나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에는 기독교인이 고작 천명밖에 안되는 데다 지금도 계속 가자지구를 떠나거나 죽어가고 있어 숫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3.1.10.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극심하게 기독교를 탄압하는 나라로 내국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것이 당연히 불법이며 와하브파 이슬람의 영향으로 아예 기독교를 사악한 서구의 악랄한 악마종교라고 왜곡하는 감정이 국민적인 보편정서일 정도이다. 심지어는 기독교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예배나 기도조차도 할 수 없게 막아놓기도 한다. 현지인이 기독교를 믿으면 체포되며 감옥에서 가혹행위, 박해와 함께 이슬람으로 개종하라는 무지막지한 강제적 압력을 받는다. 극소수 기독교인들은 고대 카타콤 교회처럼 가정집이나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의 발상지인 메카 등 몇몇 지역은 기독교인이라면 관광객조차도 못 들어간다.

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공사를 하러가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죄다 종교를 불교로 기재해 신고하고 입국했으며 기도하다가 걸려서 즉시 추방당한 일도 여럿 있다. 사우디는 이슬람 외 다른 종교를 금지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다른 종교를 믿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조차도 기독교만은 예외가 없었다. 지금도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는 파키스탄이나 인도나 방글라데시인, 네팔인 같이 비기독교인이 대다수이다. 이웃 카타르나 아랍 에미리트가 외국인노동자의 종교를 그리 개의치 않고, 그래서 필리핀인 같은 가톨릭 및 다른 기독교를 가진 외국인노동자가 다수를 점하는 것과 대조된다.

우습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스포츠에서 외국선수에 대하여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일부 기독교인 선수들이 통역이나 매니저랍시고 몰래 선교사를 속여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오게 하다가 걸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은 영구추방당하고 그 이후로 이런 통역이니 뭐니 하는 이들이 선교사인지 아닌지 검증받도록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3.1.11.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1세의 압둘 라흐만(Abdul Rahman)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샤리아법이 적용,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했으나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간신히 망명했다. 그 외에 탈레반에 의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랍 사건은 위험지역인 현지에 무리한 선교를 자행한 선교단체의 잘못이 크지만 그 1차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기독교 박해를 일삼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라는 점에서 비판 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3.1.12. 이란

사산 왕조 시기부터 정교회가 국교였던 동로마 제국과 전쟁을 벌여왔으며 때문에 기독교를 국가적으로 탄압했다. 동로마에게서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시기 아예 기독교 신자 9만 명을 학살한 적도 있었다.

현대에도 이런 기조는 이어져서 호메이니 주도의 이슬람 혁명 이후 기독교 교회나 성당은 싸그리 파괴 당하고 목사신부참수되거나 마구잡이로 살해당했다. 이후로도 기독교 및 바하이교 같은 소수 종교에 대한 박해가 급증했다. 기독교인에 대한 형식적인 권리 보장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광신자들에 의한 사적인 린치가 매우 빈번하며 포교 행위를 비롯한 일체의 선교가 금지되며 적발되면 사형이다. 기독교 개종자도 당연히 사형. 지정된 구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당국과 종교경찰에 의해 체포당하는 인권탄압이 버젓이 벌어진다. 그나마 이란은 호메이니가 아르메니아인 지지와 지원을 받은 것 덕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만은 공존을 허락했다. 여기도 개종은 금기시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과 우호를 위하여 무슬림을 개종하거나 선교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이란 정부가 묵인하였다. 이슬람 성지인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공존하는 걸 허락 받을 정도이다. 이슬람 혁명 당시 이스파한이나 여러 성지에 이전에 있던 다른 기독교 건물이 박살나거나 이슬람 성원으로 개조당하고 신부와 목사들이 참수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만은 호메이니의 엄명으로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기독교에 대한 이란의 극심한 핍박과 포비아는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인데 2006년에는 모라드 모크타리(Morad Mokhtari)라는 사람이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만으로 국외추방시켰으며 최근에도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당국의 감시를 피해 가정교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자국민 18명에게 최대 징역 24년형을 선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신정정권 지도부들과 성직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2014년에만 해도 최소 75명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감옥행이 선고되었다. 이란에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견디지 못해 이민가거나 난민이 되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으로 향한 피난으로 도중에 세속화되거나 이란에서 사망하기도 해서 이란에서도 기독교 신자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3.1.13.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비이슬람 소수 종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악명높기로 유명한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평온하게 공존했으나 70년대 군사정부의 이슬람 극단 정책으로 말미암아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21세기 초부터 이러한 경향이 더욱 극심해져 무슬림들이 교회에 쳐들어가 신자들을 죽이고 총살하는 정도는 예사이며 2005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민병대 3000명이 파키스탄 상글라 힐에서 가톨릭 성당, 구세군 본부, 장로회 교회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불태운 사건도 발생했다. 2006년 라호르에서는 나시르 아샤라프(Nasir Ashraf)라는 기독교인이 공공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려 하자 더러운 기독교인이 물을 더럽힌다는 죄로 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2009년에는 무슬림들이 신성한 쿠란을 모독했다는 핑계로 어린아이와 여성들을 포함한 기독교인 6명을 산채로 불태워 죽이고 교회까지 덤으로 불태우는 만행을 벌였으며, 2011년에는 파키스탄 정부의 유일한 기독교도 장관인 샤하바즈 바하티가 탄 차에 무슬림들이 총 수십발을 난사했고 조카와 함께 있던 바하티 장관은 죽었다.

아시아 비비라는 어느 파키스탄 기독교인이 어떤 목마른 일반 무슬림 이웃에게 을 줬는데 무슬림들이 더러운 이교도 기독교인이 준 물은 안먹는다며 거절하자 말다툼으로 번졌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이를 본 무슬림 주민들이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을 했다는 날조까지 섞어 모스크에 있는 이맘(성직자)에게 알렸고, 이맘은 광신적 무슬림들과 함께 국민들을 선동했으며, 정부는 무슬림 편을 들어 자세한 조사도 안 하고 그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파키스탄 공직자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암살당했고 암살자들은 이슬람을 수호한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그 외에도 파키스탄에서는 개인 원한을 풀거나 타종교인과의 개인관계에서 기분상하는 일이 있으면 당사자를 억울하게 신성모독 이교도로 허위 고발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하며 이내 타종교인 당사자들은 광신적 포비아에 사로잡혀 앞뒤 정황은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자신들을 죽이려드는 수많은 일반 무슬림 군중들과 그들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극단주의 정부의 체포 및 처벌에 시달린다. 기독교인 부부를 신성모독 혐의로 몰아 현지 무슬림들이 불태워 죽이는 사건까지 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고 수도 많다 보니, 선거 기간에 주요 정치 입후보자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공연히 탈레반에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2009년에는 탈레반들이 반탈레반 시위를 벌인 기독교 마을을 습격해 가옥을 파괴하고 재산을 약탈했으며 기독교인 노인들과 여성들을 집에서 머리채를 잡고 끌아내 고문하고 폭행하고 여성들은 임신할때까지 강간했다. 2013년에는 교회에 대한 폭탄 테러로 기독교인 119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연대와 평화를 위한 운동’(이하 MSP)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기독교인 여성을 강제로 납치해서 아내로 삼고 강간하는 짓거리가 무슬림들에 의해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피해자 부모가 경찰에 고발하면 가해자의 지인들이 나서서 납치 아니었다고 뻔뻔하게 변명해대고 무죄로 처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렇게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하다보니 많은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이민가거나 파키스탄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고 있다.

3.1.14. 방글라데시

가난하고 여러 모로 외부 도움이 큰 방글라데시라 극단주의에 대하여 호불호가 갈리는 편. 그러나 기독교에 대하여 거부감이 큰 것은 맞다. 힌두교에 대한 거부감도 크기에 극소수 기독교도와 힌두교도들은 온갖 차별에 테러를 당하는 처지다. 이때문에 힌두교도들은 힌두교 국가인 인도로 탈출하고 기독교도들은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3.1.15.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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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자카르타 주지사로 임명되자 이를 극렬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슬람 광신도 학생들.[11]

인도네시아에서는 인구 10%를 차지하고 인구 증가세가 빠른 기독교인들에 대한 현지 무슬림 원주민들의 증오감정이 늘어나고 있다. 2005년 술라웨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개신교 신자 소녀 3명을 참수하여 잘린 목을 교회 앞에 던져놓고 가는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샤리아 통치가 시행중인 아체와 기독교인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술라웨시, 말루쿠 등지에서는 제노사이드 수준의 기독교인 박해가 일어나 교회 수백 채가 파괴되거나 폐쇄되고 기독교인들이 강제 개종당하고 강제 (이슬람식)할례까지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기독교 교회 앞에서 확성기로 예배방해 및 위협을 가하거나 교회 가는 신자들을 방해하거나 교회에 총격을 가하는 행위도 일어나고 있다. 웨스트 자바의 보고르에서는 지역 정부가 성당 건립 금지를 유지하는 등 기독교 차별 행위를 버젓이 자행했지만 중앙정부에서는 권고만 할 뿐 방관하는 데 그쳤다. 이렇듯 무슬림들의 주도로 교회나 성당 건립에 엄청난 제한을 두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 나라의 크리스티아노포비아는 화교와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을 겸한다는게 큰 문제. 말루쿠 제도같은 경우 네덜란드 선교사에 호의적이어서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역사가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인도네시아와 따로 놀려고 했지만 결국 개신교인에 대한 잔혹한 유혈진압과 비개신교인에 대한 강력한 동화 정책이 추진되어서 원주민 상당수가 해외로 쫒겨났고, 이미 1950~60년대부터 대다수의 말루쿠계 기독교인이 네덜란드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져 지금도 20만 명 정도가 네덜란드에 정착해 살고 있는 상황이다.

1998년 자카르타 반 화교 폭동 당시 자카르타의 교회들이 대거 불에 탔는데 인도네시아인과 화교 교회를 불문하고 교회가 불 타고 기독교인 여성들이 강간 살해당했다. 화교 기독교인들은 아예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도망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다.

3.1.16.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중국인이 주류인 가톨릭 신자들[12]말레이어에서 신을 지칭할 때 알라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법원에 제소했다. 알라는 오래전부터 말레이어 성서 등에서 신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했기에 이를 금지하는 것은 영어로 치면 야훼를 부를 때 God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한 격. 법원은 가톨릭 신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무슬림들이 성당을 불태우고 신부들을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2013년 10월에 항소법원에서 이를 뒤집고 폭력 행위를 자행한 무슬림을 편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항소법원, 기독교 '알라' 표현 금지 (미국의 소리)

그 외에도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엄청난 차별이 가해지며 비무슬림 남자와 이슬람 여성의 혼인도 금지된다.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인과 비말레이인 간의 통혼이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통혼을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 말레이시아의 거의 10%인 기독교인들은 거의 다 사라왁, 사바의 원주민들이고[13] 이들 교회의 활동은 자유이지만 말레이인에게 포교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며 말레이 우익들은 대놓고 돼지고기 먹는 더러운 종교라며 기독교를 말살해버리자는 소리도 서슴치 않고 떠든다.

3.1.17. 필리핀 남부 이슬람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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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남부 술루 제도 홀로(Jolo) 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으로 크리스마스에 파괴된 성당. 술루 제도는 말레이시아브루나이 접경지대로 현재 여행금지 상태이다. 아부 사야프의 테러와 말레이시아 해군과의 국경 분쟁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인구 80%가 가톨릭이고 10%가 개신교도라 인구 9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도인, 인구비율로 쳐도 아시아 최대 기독교 나라인 필리핀이지만 민다나오섬 서부지역을 비롯해 무슬림이 다수인 몇몇 지역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320년이 넘는 스페인 지배에서도 굴하지 않고 죽어라 싸웠으며[14] 필리핀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근대 미국의 침략 아래 수십여만이 무차별로 학살되었기에[15] 스페인미국 등 서구, 기독교에 대하여 증오가 깊게 뿌리박혔다. 이후 여러 번 독립하려고 했으나 필리핀 정부가 강제로 막으면서[16] 내전을 오랫동안 벌여왔고 스스로를 필리핀인이 아니라고 여기며 대다수 기독교인들도 적으로 여겨 허구헌날 테러납치를 벌이며 필리핀과 따로 독립을 외쳤다. 과거 마르코스 군부라든지 필리핀은 가혹하게 탄압하여 이 지역에 대하여 사회적 지원 및 도시개발은 일부러 하지 않아서 다수 인구가 경제난에 시달리기에 더더욱 갈등은 커져갔다. 그리고 아부 사야프 등 답이 없는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국외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이들을 지원하면서 필리핀 무슬림들의 기독교 공격도 나날이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합법적으로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납치해 죽이거나 가톨릭 성직자를 살해하기도 한다. 최남단의 도서지역에서는 알 카에다와 연관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기독교 교회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정치적으로 여기도 오랜 내전과 경제적 문제로 시달리기에 이제 우리도 좀 평화롭게 살자고 독립 포기하고 자치권을 굳게 가지는 것으로 필리핀 정부와 협상에 들어갔다. 이 협상을 이끄는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주역들은 이젠 기독교에 대한 테러를 멈출 것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도 과격파가 있어 완전 독립이 아니라면 안된다며 따로 국밥으로 필리핀 정부와 내전을 벌이고 기독교에 대한 테러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아부 사야프 등의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협정을 이끄는 MILF도 난감해하고 있다. 이들 극단 과격파가 당연히 말로 통할 게 아닌데다가 그렇다고 총들고 이들이랑 싸울 수도 없고[17] 평화협정을 수단방법 안 가리고 방해하거나 협정을 인정하지 않으니 MILF도 냉가슴 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부정부패가 많은 필리핀에서는 기독교 정부 요인까지 때론 이들의 돈에 매수되어 과격파 토벌에 대한 정보를 누출한다든지 필리핀 내 여러 문제까지 여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어쨌든 2012년 이슬람 독립국가 방사모로(현지에서 부르던 이름) 건국은 포기했지만 대신 방사모로 자치 정부로 의견을 바꾼 MILF 는 2012년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참가한 협정에 서명하고 2014년 방사모로 자치정부 수립을 필리핀 정계에서 결의안이 통과하여 2016년부터 자치지역이 수립되는데 다른 조직은 여전히 반대하면서 어찌될지 관심사이다. 참고로 MILF는 자치지역 내 종교는 자유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부 사야프는 여기에 반발, 다에시와 동맹을 맺는 등 극단적인 수를 두며 막 나가고 있다.

다행히도 현재 이들이 날뛰는 잠보앙가 및 술루 제도는 여행금지 상태이니 한국인이 여기 휘말릴 일은 없다. 또 민다나오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다바오 시는 괜찮다. 전 대통령이기도 한 전 다바오 시장이 워낙 강하게 범죄를 때려 잡았었고, 스페인이 만든 도시라 기독교도가 원래부터 더 많기 때문이다.

3.1.18. 브루나이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 브루나이는 기독교인의 이민을 금지하고 선교를 법적으로 막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나 힌두교에 대해서도 극도로 차별을 자행하는데 이는 브루나이가 왕실 주도로 이슬람 극단주의 샤리아 강압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나이 화교의 경우 거의 영국인들을 따라서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매우 차별 받고 있으며 많은 수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교회가 많은 싱가포르홍콩으로 도망쳐 버렸다. 브루나이인들은 이슬람에서 엄금하는 돼지고기를 먹는 중국인들이 믿는 기독교를 굉장히 혐오하여 정부의 이슬람 극단주의를 지지한다. 화교계 기독교 언론들에서 브루나이의 기독교 탄압이 심심찮게 이슈화된다.

3.1.19. 몰디브

브루나이와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몰디브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웃을 구타한 평범한 무슬림이 찬양받던 일도 벌어졌고, 그 개종자는 사회적으로 매장[18]되어 이민가야 했다.

3.1.20. 시리아

시리아는 기독교에 대하여 관대한 나라이다. 독재자인 아사드 일가부터 이슬람에서도 극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여서 이슬람 내에서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하여 관대함을 베풀고 여러 모로 잘해줬지만 시리아 정교회와는 갈등이 있었다. 친공성향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도 탄압했으며 이스라엘이나 아랍 지역에서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춘 고대 기독교어로 쓰인 아람어가 쓰이고 아람어로 예배로 보는 교회가 극소수로 남은 나라가 시리아였으며 아랍권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살기 좋았던 나라였다. 이는 한국 기독교방송이 취재하던 2008년에 여기 기독교인들은 꽤 우대받아서인지 참된 믿음(?)인 기독교랑 단절된다고 개드립을 날렸을 정도다. 이집트 취재 당시 극심하게 핍박받는 콥트 정교회 기독교인들이 개신교인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거랑은 대조적. 다만 자국 내 터줏대감 기독교인에 한해서일 뿐 외부 기독교를 극도로 싫어하여 선교는 철저하게 막았다.

문제는 시리아 내전이 점차 진행되면서 다에시알 누스라 전선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은 기독교는 물론이고 시아파, 알라위파, 드루즈교까지 마구잡이로 학살 중이기에 내전 지역에 사는 기독교인이나 소수 종파, 소수 종교인들은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매우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다. 시리아 내전 기간 학살과 박해에 의해 추방당한 아랍계 기독교인만 50만 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소수 종교에서도 시리아 정교회나 드루즈교도들을 빼면[19] 대부분의 관련 인사들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우호적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2012년 7월 18일자 한국어판 및 영어판 뉴스위크 지를 보면 다마스쿠스를 가서 취재했는데 알라위파 신도 및 기독교 신도들은 정말로 아사드를 굳게 지지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반군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가게를 불태우고 약탈한다면서 폭도라고 이를 갈고 '민병대를 조직해서라도 아사드를 지키겠다. 시리아에서 쫓겨나면 우린 파멸' 이라고 강조했다. 반군에게 공격받아 팔과 다리를 잃은 기독교 군인이 이 상태라도 반군이 온다면 자폭해서라도 그들을 죽이고 아사드를 지키겠다고 당당하게 인터뷰도 했다고 한다. 사실 다에시가 아니여도 FSA 등의 반군들 자체가 세속주의와 극단주의 간의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반군들을 믿었다간 어떤 꼴 날지도 모르니. 다에쉬가 준동하기 전인 2013년 한해에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213명이 살해당한걸 보면 답이 나온다. 이땐 한참 이슬람 수니파 세력의 준동이 커지던 때이다.

3.1.21. 리비아

희대의 막장 독재자 중 하나인 무아마르 알 카다피 통치 시절의 리비아는 사우디에 버금갈 만한 이슬람 극단주의 이념의 수출지였다. 카다피의 세속주의 정책은 무슬림들과 극소수 기독교인들은 예배나 모임조차도 당국의 극심한 감시를 받으며 진행해야 했고 개종자에게는 극심한 박해와 처벌이 이어졌다. 이로 인하여 세속주의 국가였음에도 극단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다녔다. 카다피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몰락하고 리비아 국가 자체가 내전으로 헬게이트에 빠지고 일부 지역에서 다에시까지 득세하면서 리비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빈번한 납치와 교회 파괴, 학살의 상태에 놓이게 되어 버렸다. 1971년 15만명 수준이었던 리비아 소수 기독교인들은 현재까지 극악의 탄압이 이어지면서 불과 수백여 명 추산 수준으로 급감해 버렸다.

현재 리비아는 기독교인에게는 생지옥 그 자체인 상황으로 리비아를 탈출하려는 버스에 다에시 조직원들이 뛰어들어 기독교인들만을 골라낸 뒤 20명을 처형하는 만행도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으며 십자가를 지니고 있기만 해도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해진다고 한다.리비아 난민과 기독교인들의 처지에 대한 CNN기사

3.1.22. 니제르

니제르는 국가에서 세속주의를 추구하기에 광신을 금지하고 단속하지만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에 대해 무슬림들이 벌인 반 샤를리 엡도 폭동과 폭력시위 과정에서 현지 교회 81곳이 무슬림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왜 기독교와 아무 상관도 없는 샤를리 엡도에 대한 시위에서 기독교 교회가 불에 탔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서구=기독교=악마라고 보는 편견과 차별의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3.1.23. 튀르키예

터키는 미국의 군사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른바 '악의 축'이라고까지 언급한 북한, 이란, 이라크 등과 더불어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가 특별 감시국가 명단에 올라있다. 일단 터키가 공식적인 국교가 없는 데다 다른 중동의 국가들에 비하면 세속적이지만 터키의 종교적 분위기는 생각보다 매우 보수적이다.[20] 특히 정교회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비롯하여 터키 내의 많은 성당을 대거 빼앗겨 강제로 모스크나 박물관으로 개조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은 물론, 신학교를 폐쇄당하고, 터키의 정교회 성직자들을 교육시킬 수도 충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21]

2013년 아야 소피아 성당(이스탄불에 있는 그 박물관 말고 트라브존에 이름이 같은 작은 아야 소피아 성당이 또 있다.)을 터키 이슬람청이 멋대로 모스크화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이 성당에서 예배를 보던 현지 동방정교회인들이야 당연히 반발했지만 그 성당이 있는 지역의 무슬림도 기독교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 이 곳 돈줄인데 왜 멋대로 모스크로 만드느냐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은 2014년에 흰 장막으로 이콘벽화를 가려서 모스크로 쓰던것을 원상복구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으며 현재는 이전처럼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한편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도 모스크로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에르도안 대통령부터도 블루 모스크가 있는데 이건 됐다며 반대하고 있었다. 사실 트라브존의 아야 소피아든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든 아타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보존된 곳이기때문에 세속국가를 지향하는 아타튀르크의 뜻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세속주의자들의 세도 크지만 결국 2020년 에르도안은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성당 박물관의 모스크화를 추진하였다.

서부 터키의 경우 사실 상 명목만 무슬림인 무신론자들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에르도안 대통령 부터가 동부가 지지 기반이며 서부는 세속주의 정당이 우세하다. 다만 세속주의란게 기독교에 딱히 호의적이란 뜻은 아니다. 원래 튀르크인들 자체가 종교에 관대했으며 러시아에는 정교회를 믿는 가가우즈나 크리아센 등의 튀르크 주민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튀르크계 중에서 30%가 넘는 알레비파 역시 기독교에 호의적인데 자신들도 탄압 받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니파는 기독교인보다 알레비를 더 죽일 놈 취급하며 악마숭배 사이비 종교 내진 이단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없애 버리려고 해서 알레비인들은 수니파인 척 한다.

다만 터키 서부 쪽 대도시는 이렇지만 동부는 분위기가 나쁘다. 쿠르드인들이 다수인 동부 지역은 기독교에 대하여 무척 반감을 보이는데, 이쪽은 또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게 기독교=아르메니아=서구의 앞잡이 도식때문이다. 과거 아르메니아 학살이 일어나게 된 원인중 하나가 오스만 제국 후기부터 부유한 기독교인[22]과 가난한 무슬림의 관계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기회가 오자 적극적으로 학살에 가담하게 된 것 때문이었다. 또한 이 학살 이전이나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나 불가리아에서 벌어진 무슬림 학살 및 추방에서도 수십여만이 학살당하고 재산 다 빼앗긴 채로 맨몸으로 추방당해 터키로 들어온 오스만인 무슬림도 수십여만이나 되었는데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큰 이들도 아르메니아 학살 당시 군인 및 민병대로 써버리면서 학살이 다른 곳으로 돌고 도는 비극이 벌어진 점도 있다. 여하튼 지금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워낙 거세서 현지인 경찰이나 군인들도 함부로 선교하는 것을 막을 정도이다. 애초에 터키 법률 상 어느 종파든 선교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선교사가 입국해 활동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인 비자를 받고 활동하는 종교인만이 합법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포함한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해서 그런것만은 또 아니고, 이슬람 선교 또한 금지다.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가 터키를 감시국가 리스트에 올린 다른 이유를 언급하자면, 현재 진행중인 터키의 종교정책이 유난히 개신교에게 빡빡하기 때문이다. 윗 문단에 언급된 정교회 신학교 문제는 1970년대에 정부의 세속주의 교육정책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신학교,이슬람 학교들이 정부 산하에 들어갈때, 정교회 측에서 헤이벨리 섬에 위치한 할키 신학교를 "이스탄불 대학교 신학부"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폐쇄된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항목에 가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교회에 대해 터키정부는 전통문화로써 존중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정교회 행사에 방문하기도 하고 EU로부터 문화지원예산을 받아 기존의 정교회 성당 및 유적에 대한 복구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 교단의 경우도, 이 지역에는 중세시대부터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활동해오고 있었는데 현재에도 터키에는 이스탄불, 이즈미르, 앙카라, 안티오키아 총 4개의 가톨릭 교구가 존재하고 있으며 터키인 신자들도 천단위긴 하지만 있다. (다만 사제수사, 수녀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인이며, 터키인 사제도 9명 정도 있다.) 가톨릭 교구들을 건드리면 바티칸을 비롯해 유럽과의 관계상 좋을 리가 없기 때문에 터키 정부는 가톨릭에 대해서 자치적인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마르딘을 중심으로 한 시리아 정교와 아르메니아 교회에 대해서도 전통문화로써 존중받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 신규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수백년 된 역사를 가진 다른 교단의 교회들과 달리 허가가 안나오고 있다. 그러자 모든 종교의 포교가 금지된 나라에서 지하교회를 세우고, 드러내놓고 포교를 하며 강경한 성향의 무슬림과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의 어그로를 끌고 있으니 철퇴를 안 맞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선교사 혹은 단기 여행을 가장한 선교단을 보내서 관광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추방된 한국인 수도 상당하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쓴 책[23]에서도 인정하고 있으며, 터키 가서 선교하다가 추방당한 이들도 적지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또한 종교인 비자가 아닌 사업가나 근로자 자격으로 터키에 입국해서 선교 및 교회활동을 하는 교회 목사나 전도사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래에 안티오크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한국에서 와서 합법적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목회중인 한국인 목사도 있다. 감리회 소속의 장성호 목사인데 현지의 정교회와 가톨릭 인사들과도 교류하고 있다.

3.1.24. 아제르바이잔

일단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독재 체제 속에서 극단주의를 금지하고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자고 나서던 인물을 극단주의자라며 10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고 수감할 정도이다. 여길 여행하면 이슬람 나라인지 모를 정도이다.

문제는 독재정부가 원수지간인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나라임을 이야기하며 정부에 대한 비난을 기독교 측으로 돌리고 있다. 아랍권이나 다른 이슬람권과 달리 극단주의 무슬림이 아닌 정부 정책으로 기독교인에 대하여 차별적인 정책이 취해지며 외부 기독교 선교는 절대 금지, 개종자는 처벌받는다. 그나마 아제르바이잔은 대대로 사는 정교인들이나 기독교인은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차별이나 테러는 철저하게 금지하며 응징하고 있는 터라 터키와 달리 기독교 탄압국가에는 일단 해당되지 않는다.

3.1.25.소련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

다른 옛 소련 나라이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들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가담하고 있다. 그렇긴 해도 이들 나라도 일단 이슬람 극단주의를 법적으로 막으며 돼지고기나 술에 대한 금기시가 그리 없다.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 인구 26%가 정교회를 믿는 나라이다 보니 정교회를 상대로는 딱히 뭐라 하지 않으며 법적으로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기독교 선교사에게 비자 발급을 빡빡하게 하고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운영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한다. 이는 이웃 유라시아 나라들도 그렇다.

3.1.26. 기타 아랍 동맹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보단 낫다고 해도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요르단, 오만 같은 아라비아 반도 측 서아시아 나라들이나 튀니지, 모로코같은 북아프리카 이슬람 아랍 동맹 국가들도 기독교 선교 및 자국 기독교인에 대하여 차별 정책이 많고 법적으로 여러 피해가 있다. 그나마 극단주의적으로 좀 덜하긴 하지만. 모로코나 요르단같은 경우 다른 분석도 있는데 왕실이 기독교에 대하여 탄압을 그리 하지 않으려고 해도 여론 반발(모로코)이나 여러 부족이 있어서 그 세력과 이를 통솔하는 부족장을 무시할 수 없는 요르단 같은 경우 법적인 기독교 차별정책을 요구하여 이를 무시하다가 내전같은 반발로 이어질 수도 없이 왕실에서 허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3.1.27. 특수 상황

심지어 생사를 걸고 중동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가는 난민선에서도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집단살해했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기사 이탈리아로 가는 난민선에서 세네갈코트디부아르 출신 무슬림들인 가운데 15명이 소수인 나이지리아가나 출신의 기독교인 난민들을 성경 구절을 읊었다는 이유로 계속 살해 위협을 했으며 실랑이끝에 결국 12명을 바다에 밀어넣어 살해했다고 한다. 이들은 남은 기독교인들마저 모조리 죽이려고 하다가 기독교인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버텨서 실패했다고 한다. 이 무슬림들은 유럽 상륙 즉시 서구 경찰들에 체포되었다. 이외에도 유럽 현지에서 이슬람 난민들이 기독교이거나 기독교로 개종한 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3.2. 불교 지역

3.2.1. 스리랑카

이슬람공포증에서도 나오는 스리랑카지만 이슬람 말고도 힌두교와 기독교에 대해서도 똑같이 차별이 늘어나고 법적으로도 전도를 금지하는 법안이 늘어나고 있어 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혐오의 원인은 예전에 식민지배를 겪을 당시 기독교 교회의 만행 때문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승려 학살과 사찰/경전 훼손[24] 그리고 영국의 불교 가정 자녀 출생 신고 거부 같은 불자 차별이 원인이다.

현재 기독교가 소수인 것도, 기독교측의 불교계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 열린 파아나두라 대논쟁에서 기독교가 참패하고[25], 그 이후 정신승리를 시전하다[26] 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지금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상술된 영국 식민지 시기 기독교 강제 정책도, 원래 영국정부는 스리랑카 현지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려고 했지만 기독교인들이 이에 반대해 들고 일어나 시작된 거라 기독교는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여하튼 현재 스리랑카에선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층 지역 공동체와 승려들에 의해 박해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얀마 혹은 인도네시아와 판박이인 경우다. 그리고 10% 이상으로 수가 많은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도 기독교도를 탄압하여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교회를 불 태운다. 이 나라 기독교도도 포르투갈어를 쓰고 포르투갈식 이름을 쓰는 등[27] 이질적이라 눈에 금방 띄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이 마카오로 망명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3.2.2. 부탄

부탄은 중국와 인도 틈바구니에서 생존전략으로 쇄국 정책을 펼치며 정체성의 보존을 목표로 가장 큰 세력인 티베트계의 티베트 불교와 문화의 보존을 핵심정책으로 하고 있다. 일명 '일국 일민족' 정책을 통해 부탄에 근대 학교 등을 보급하고 거의 1세기 동안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펼치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추방이 1974년에 단행되었다. 이 정책은 나아가 1990년 네팔계 주민들의 차별 시위가 폭력시위로 번지자 네팔계를 모두 추방해서 100만여 명의 인구가 60만명으로 줄어든 사건에서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스리랑카와 부탄은 세계 기독교 차별 국가 50개국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부탄에 대하여 무척 좋게 서술한 반면, 기독교계는 부탄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않으며 선교를 내뱉고 있다. 다만 부탄은 나라 사정을 보면 알겠지만 티베트 불교를 포기하는 순간 중국에 합병될 운명이라서 가톨릭계는 개신교계에게 불법적인 선교를 자제하라고 하고 심지어는 이슬람계도 가톨릭하고 동일한 생각이다. 허나 개신교계는 계속해서 불법적인 선교를 자행하는데 이중에는 중국인이 대다수라 부탄 정부는 "중국을 앞세운 개신교 침략"이라고 하며 날이 갈수록 개신교를 비난하는 수위를 높이고 박해하는 강도도 강해지고 있어서 개신교는 불리한 조건에 처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즌브레이크를 시도해서 악순환이 커지고 있다.

3.2.3. 라오스

2010년 라오스는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으며 기독교 개종에 대하여 법적인 차별 정책을 통과했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해외 자원봉사단도 엄격한 조사를 하기에 개신교 선교 봉사단은 입국부터 막는다.

3.2.4. 미얀마

미얀마도 아제르바이잔처럼 군부 독재체제 아래에서 이슬람과 더불어 허구한 날 까이는 게 기독교다. 이를테면 미얀마에 맞서던 소수민족 카렌족도 기독교인이 요직을 차지하자 불교도랑 갈등을 빚어 분열된 틈을 타서 미얀마 군부가 카렌 불교도군을 지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카렌 민족해방군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극소수인 기독교도들이 불교도를 차별하여 벌어진 일이 컸고 미얀마 소수민족들에 대한 복음화에 대하여 현지인의 여러 종교와 갈등이 커진 터라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분열에 이용하면서 갈등이 더 커졌다. 군부가 일단 물러난 현재도 미얀마 정계는 기독교에 대하여 서구물 먹고 비기독교적인 불교를 뒤엎은 위험분자로 인식하여 지방 여러 곳에서 교회가 불태워지고 차별당해도 경찰이 나몰라라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 나라도 인도네시아처럼 화교와 현지인의 갈등이 섞여있기도 하다. 영국이 의도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을 이주시켜 양곤에 살게 했다. 불교도인 중국인도 미움 받는 판에 기독교도 중국인은 말이 필요 없다. 현재 버마족에 의해 중국인들도 핍박 받는 처지인데 원나라 때 몽골 침입에 청나라의 침입, 국민당의 침임 등 악연으로 점칠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3.3. 기독교 지역

3.3.1.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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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마달라의 한 교회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공격으로 파괴되어 버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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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력에 의한 성당 테러로 숨진 기독교인들의 장례 미사 장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은 주로 남부지역에 거주하며 전 인구의 40%~50%를 차지하지만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이러한 박해는 ‘서방식 교육은 신성모독’이라는 뜻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보코 하람과 나이지리아 이슬람 과격파들이 부추기고 있는데 나이지리아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 독단적으로 샤리아법을 도입시켜 북부지역의 소수 기독교인들을 대놓고 차별하고 있는 것은 예사이며(이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종교갈등을 샤리아 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샤리아 확립을 위해 나이지리아 기독교인을 말살하겠다”고 선포했다.

1990년대부터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오랜기간 거주해왔던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무슬림들이 집으로 처들어가 불태워죽이고, 시장에서 기독교인을 죽이고 강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28]

기독교 학살과 탄압으로 악명높은 나이지리아 북부지방에서는 무슬림들의 기독교 혐오 때문에 교회나 성당 예배/미사시간마다 앞에는 경찰이 물탱크를 배치해 놓고 있을 지경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미숙한 대처를 하는 틈을 타서 이러한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도 수가 많으니 당하기만 하지 않는다. 극단주의자들은 양 종교에 대한 우호를 외치는 기독교인들을 테러하거나 죽이고 무슬림을 학살하기도 하며 증오가 증오를 낳고 있다. 2000년 2월과 5월 사이, 카두나(Kaduna) 지역에서 두 차례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먼저 2000년 2월 21일, 지역 주민의 절반이 기독교를 믿는 카두나에서 종교 분쟁이 발생했다. 2월 25일 집계된 사망자만 해도 400명에 이른 이러한 분쟁은 남부 지역으로도 번졌다. 기독교인이 다수인 남부지역 아바(Aba)시에서 발생한 기독교인의 공격으로 무슬림 130여명이 사망하였다. 이렇듯 남부 지역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을 살해하면서 2만명이 넘는 무슬림이 피난가야 했었다. 이에 대한 북부 지역에서도 기독교인들에 대한 테러가 이어져 반대로 여기 기독교인들 8천여명이 남부로 피난가야 했다.

아프리카의 또다른 큰 문제인 부족갈등도 은근히 들어가 있다. 이슬람 및 기독교 충돌에 부족이 다른 것을 종교 탓으로 하여 서로 죽이고 약탈하는 문제도 크다. 2002년 10월, 나이지리아 플라토 주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기독교도 타록(Tarok)족이 무슬림 플라니족이 소유하고 있는 가축들을 대량 도살했으며 이를 막으려던 양치기들을 학살했다. 타록 족과 풀라족은 오래전부터 사이가 나뻤다고 하지만 이 사건으로 양 부족이 서로 학살을 벌여 양 측 다 합쳐 1,000여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004년 5월, 옐와(Yelwa)시에서 기독교인들에 의한 800명이 넘는 무슬림 학살이 벌어졌듯이 이 쪽 기독교도 극단파들이 나날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기독교가 다수인 지역에서 무슬림들이 보복학살당하고 당연히 무슬림 다수 지역에선 반대로 보복 학살이 이뤄진다.

2012년 5월에는 플라토 주에서 무슬림 풀라족 목동 100여명이 학살당하자 6월과 11월에는 무슬림이 다수인 카두나주와 요베주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공격과 보복이 이어졌다. 서로가 모스크와 교회와 성당을 불태우고 보복 공격과 학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양 종교가 제발 평화를 갖길 기원하는 양 종교 온건파들은 같은 종교 극단파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도 다뤘는데 무슬림 직원을 둔 남부 교회가 무슬림들을 잘 대해준다고 극단파 기독교인들이 목사를 구타한 사례가 나오고 반대로 기독교인 청소부를 뒀다는 이유로 이슬람 이맘이 역시 무슬림에게 구타당하던 사례가 나왔다. 이렇게 구타당해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이맘과 다리가 부러며 목발을 짚고 나와 인터뷰한 목사는 이젠 닥치고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잘대해주는 같은 교인도 적이라고 할 판국입니다...라고 우려했다.

3.3.2. 러시아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 무신론의 아성으로써 모든 종교를 탄압하던 적이 있으나 연방이 무너진 뒤로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치적 협력관계인 러시아 정교회가 사회적인 주축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 와중에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하여 탄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 푸틴도 러시아 정교회 신도로서 다른 기독교 선교를 부정적으로 본다. 그나마 법적인 사항이나 대놓고 벌어지지 않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다룬 바 있는데 정교회 사제가 미국의 꼭두각시 개신교가 돈으로 무장하고 러시아를 종교적으로 망치려고 들어오려 한다면서 푸틴에게 그 간첩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항의하자 푸틴은 기다리라고 말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3.3.3. 콜롬비아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인 콜롬비아도 이런 움직임이 커져서 개신교에 한정해 기독교 탄압국가 50위권에 들어간 상황이다. 반군 장악지역에서 납치와 암살 등의 개신교인을 향한 박해가 매우 심하다. 반군들도 대다수가 가톨릭이라서 개신교=미국으로 인식해 침략자의 종파로 본다.

3.3.4. 멕시코

40위권에 들어가 있다. 미국이 바로 위에 있고 오랜 스페인 식민지 경험으로 가톨릭 및 개신교 인구가 많지만 반대로 기독교의 악랄한 지배와 탄압에 이를 가는 원주민계 빈민층들이 반군 조직을 만들어 저항했기 때문.

또 토착 가톨릭 신자들의 개신교에 대한 텃세와 박해가 일부 지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멕시코 뿐 아니라 중남미 전반에 걸쳐서 원주민이나 메스티소 하층민들 중심으로 개신교로 개종하는 현상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 콜롬비아를 제외하면 중남미 개신교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일지라도) 사회 참여 문제에 관해선 진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3.3.5. 에리트레아

기독교이슬람이 거의 반반인 에리트레아에서는 1991년 독립 이후 정부에 의한 가혹한 외부 기독교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데, 토착 기독교 종파들은 내버려 두지만 외부 기독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이어진다. 주로 개신교가 타겟이 되나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가톨릭도 가끔 탄압받는다. 에리트레아 정교회도 자기들의 정치적 기득권[29]을 지키기 위해서 개신교와 가톨릭 박해에 침묵하거나 동조하기까지 한다는 것. 심지어 명목상 허용되었다고 알려진 루터교회조차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 나온 상당수 나라들이 토속 교회나 일부 종파에게만 관대하고 공존하지만 외부 선교나 다른 종파를 가혹하게 탄압하는 것이랑 똑같다.

적법한 절차도 없이 183명이나 되는 신자와 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했으며 개신교나 독립교회 등의 기독교 신자들은 걸리기만 하면 감금당하고 온갖 인권침해에 시달린다. 에리트레아 정부를 고발한 유엔인권조사위원회(U.N.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의 보고에 따르면 에리트레아 정부 당국은 개신교 전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개신교인들을 체포해 투옥시키고 갖은 고문을 자행했으며 발가벗겨서, 낮에는 더위 속에 밤에는 추위 속에 방치하거나 심지어 쓰레기를 먹게 강요했다고 한다. 질병에 걸려 죽어가도 치료를 해주지 않으며, 치료받기 위해서는 '개신교 신앙 포기 각서'를 써야 한다. 에리트레아에서 탈출하는 개신교 난민이 상당수이며 국제사회도 기독교 박해 국가순위 상위권에 올려 놓고 있다.

3.4. 기타

3.4.1.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시작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공포증 국가이다.[30]

이스라엘 내 유대인 기독교도나 메시아닉 쥬[31]들은 엄청난 차별을 당하기 일쑤다. 그들은 같은 유대인으로 취급받지도 못하고 경제적, 인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한다. 토착 기독교인 정교회오리엔트 정교, 마론파도 심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한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종철이 예루살렘에서 사는 유대인 개신교도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 듣기론 되려 요르단이 예루살렘 지배할 때조차도 지금 이스라엘처럼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으니 말 다했다. 그 당시 요르단이 물러나고 같은 유대인이라 반겼더니만 극우 민병대들이 허구헌날 와서 구타하고 이스라엘을 떠나라고 협박하며 공무원이나 군인도 될 수 없는 현실이 이스라엘 기독교인 모습이라고 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탄압을 하여 개종했다는 이유만으로 3년을 수용소에 갇히는데 일반 교도소가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라서 고문이나 온갖 인권탄압이 적나라하게 이뤄진다. 이스라엘의 토착 기독교인들도 무슬림처럼 걸핏하면 이유없이 잡혀가서 고문당한다. 그럼에도 개종을 포기하지 않겠다면[32] 직장도 가질 수 없고 시민권도 박탈당하며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이는 이스라엘 기독교인들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처럼 취업을 못해서 실업률이 매우 높다. 기독교의 선교도 금지하며 해외에서 오는 선교사들 역시 추방한다. 이러다보니 이스라엘을 찬양하던 미국의 유명한 팻 로버트슨도 이스라엘의 악랄한 기독교 탄압을 직접 보고는 경악을 해 주장을 확 바꿔 이스라엘이야말로 사탄이라며 철저한 반이스라엘이라고 이를 갈고, 반유대주의자가 되었을 정도다.

팔레스타인의 기독교인들은 예전부터 이스라엘 정부의 본질을 알아차리고 무슬림들과 함께 반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해방 진영에 선 지 오래고 대표적으로 하마스의 부상 이전 PLO에 이어 제 2의 팔레스타인 해방 무장 단체였으며 이념적으로 이슬람주의보다 세속적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던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의 창립자인 조지 하바쉬가 있다. 아닌게 아니라 유대인들을 역사적으로 집중 박해해 온 종교는 현대 이전 까지만 해도 대충 세금만 내면 알아서 살게 냅 두는게 더 일반적이었던 이슬람 국가들보다 십자군 전쟁 때나 근대 제정 러시아의 포그롬이나 기독교 세력이 훨씬 더 심했고 이스라엘인들도 이런 원한을 잊지 않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며 건국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십자군 전쟁의 유산으로 현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던 기독교인들을 오히려 무슬림들 보다 심하게 박해했다. 무슬림들을 상대로는 이스라엘이 이슬람 세계의 신앙적 차원의 공적으로 몰리는 건 무마하기 위해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핍박하는 것은 별개로 역사적인 모스크나 순례자들의 성묘등은 그럭저럭 관리를 하게 놓아 두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이스라엘도 그나마 이정도의 최소한 양식은 있는 세속적 지도자들이 사라져가고 진짜 주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 뺨치는 극우 유대민족주의 꼴통들이 중심이 되어가면서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 성지에 대한 훼손과 공격 또한 심해져가고 있다. 특히 백인 유대인 아슈케나짐 외에는이스라엘인이 아니라는 유대민족법까지 추진하고 있으니 이스라엘은 갈수록 막장이 되고 있다.[33] 거기에 21세기 들어서는 이슬람 및 기독교, 외국인에 대하여 정치적, 사회적 매장을 부르짖는게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봐주는 것이 이스라엘에 충성하는 드루즈교 밖에 없을 정도. 하지만 드루즈교 역시 차별을 받는 처지다. 이러다보니 해외의 유대인들과 유대교가 정상이라 할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무장단체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에 많은 수가 가입해 대이스라엘 투쟁을 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 기독교인들은 종파가 다르다보니 서구 열강들이야 버린지 오래고 유대인들 본인들의 원한도 불타오르니 오히려 집중적으로 테러와 박해를 당했다. 현대의 교회 상대로 테러질, 협박질은 일상적이고 역대 이스라엘이 영토를 확장한 전쟁 때마다 교회들 또한 상부의 제지를 받지 않는 병사들에 의해 오히려 모스크들 보다 더 집중적으로 박살났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자취가 빨리 사라졌던 집단은 무슬림들이 아니라 동방 가톨릭,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믿는 현지 아랍,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들이었다.[34] 거기다 최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등장과 그에 따른 중동정세 변화로 인해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더이상 아니게 되어버렸다. 맨 윗 문단 사례처럼 이제는 팔레스타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유대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더더욱 형편이 어려워진 상황.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는 기독교인들도 같이 박해받고 투쟁하는 처지라서 그들에 대한 적대를 금지하며 이런 극단주의자들을 단속하고 기독교인들과의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인 박해에 대해서는 김종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회복도 참고할 것.

3.4.2. 인도

인도에서도 과격 힌두교 극우주의자들 사이에서 기독교에 대한 만연한 박해와 핍박, 혐오가 팽배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인도에서 힌두교 신자의 기독교 개종을 어렵게 만드는 반개종법을 추진하거나, 틈만 나면 교회 및 성당과 선교사를 공격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더욱이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계층이 많은데, 기존의 차별적인 가치관에 기독교 혐오까지 더해져서 혐오와 차별이 극심해지는 것이 특히 문제이다. 심심하면 힌두교 광신자들에 의해 불타 죽는 기독교 달리트 계층 신자가 발생하는 건 일상이라고. 거기다 기독교 말고도 이슬람이나 시크교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그나마 불교나 자이나교는 유일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약간은 낫긴 하지만.

1999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개신교 선교사와 자식 3명이 이러한 극우 힌두광신자들에게 산 채로 불타 죽은 참극[35]이 벌어졌으나 인도 정부는 "'그러기에 누가 죽으러 오래?"'라며 대충 수사하곤 '도둑들이 벌인 짓인가벼' 라면서 사건을 마무리했던 걸 비롯하여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36] 2008년에는 인도의 과격 힌두교단체 중 하나인 RSS(힌두의 군대라는 뜻) 인원들이 종교 갈등이 첨예한 오릿사 주에서 인도 내 기독교 신자들을 마구 학살하고 강제 개종시키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때문에 선교사들이 많이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교회 건물은 파괴되고 심지어 개신교 여자선교사들과 가톨릭수녀들은 강간을 당하여 임신해버리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후에 인도 정부와 오릿사 주도 더는 묵과할수가 없어 경찰을 대규모로 투입해 힌두교 광신자들을 전부 구속하고 처벌하여 치안이 정상화되면서 기독교도들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이 기독교인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럼에도 2000년대 들어서 인도 기독교도 수가 상당히 늘어나서 한국 인구보다 많아진 7천만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반기독교와 탄압은 더더욱 심해지며 일부 주정부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기독교 개종을 금지하며 개종하며 처벌 당하고 직장도 금지되며 사회적인 사형을 내리고 있다. 힌두교 과격파 및 극단 무슬림들도 기독교인들을 매우 질색하여 서로 싸우면서도 기독교인 박해에 뜻이 맞는지 비슷한 시기에 휴전하고 교회나 성당에 대한 테러 및 개종자에 대한 사적제재를 벌인다.

여기서 탄압받는 기독교도들은 주로 외국인이 선교하러 오는 외국 기독교와 힌두교의 차별을 피해 개종한 현지 불가촉천민 계층이 많다. 인도에서는 예수12사도 중 하나인 사도 토마스를 1대 교황으로 받드는 기독교 종파들이 있으며,(시로말라바르 가톨릭 등등)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등을 비롯한 자체 토속 기독교인도 2천만 명이 넘게 있다. 문제는 이들이 힌두교화되어 카스트가 있다든지 해서, 다른 기독교에서는 "그들은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하여 서로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 더군다나 토착 기독교라고 차별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토착 기독교로 개종하면 가족들에게 의절은 물론 힌두교 광신자들에 의한 구타와 차별, 멸시 등이 만연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이건 불교나 자이나교나 시크교도 다 마찬가지다. 한 지방에서 불교로 수만여 명 불가촉 천민이 집단 개종을 선언했는데, 힌두교 과격파가 인정 못 한다고 막으려고 하자 수만여 명 불가촉인들이 "그럼 우릴 다 죽여봐라!"라고 맞서며 아주 난리가 나던 실화도 있다.) 그나마 바하이교가 힌두교와 비슷한 다신교 종교로 비쳐서 그런지 덜한 편이긴 하지만.

그 밖에 고아 주에서는 가톨릭에 대하여 마구잡이 테러가 벌어진다. 450년에 이르는 포르투갈 식민지 역사 시절 호되게 당한 차별로 인한 분풀이도 크다. 문제는 이 RSS를 비롯한 극우 극단 힌두 광신자들이 정치 세력 및 온갖 기득권과 손잡은 게 많아서 인도 중앙정부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지만 정작 지방정부가 단속에 무관심하다보니 인도 내 기독교(이슬람이나 다른 유일신 종교도 그렇지만) 차별과 여러 탄압문제는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어를 쓰는 가톨릭 주민들은 언어도 다르고 해서 더 눈에 띈다. 그나마 인도 중앙정부의 힘이 강한 수도 델리와 수도권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폭력을 힌두교 광신도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여 사정이 낫지만 중앙정부의 단속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들은 기독교의 박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 외에 힌두교가 다수인 시골 마을 등지에서는 극렬 힌두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이 힌두교 축제에 참가 안한다는이 무슨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유 핑계로 나무 곤봉과 막대기로 폭행하고 신자들의 목을 졸라 실신시키는 일도 벌어진다. 이에 1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은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인도 모닝스타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2013년 1월 13일에도 100여명의 힌두교인들이 경찰관들이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남아있는 기독교인들의 집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방해하고 신자들을 폭행하고 집기를 부수며 성경을 찢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2018년에 들어서도 주로 시골 지역에서 목회자를 살해하거나, 교회를 습격하는 등의 폭력 행위가 수십 건이 일어났다. 펀자브 주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9세 소녀를 집단 성폭행 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힌두교 신자 말고 무슬림도 인도 기독교인을 탄압한다. 똑같이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에게 공격 받고 탄압당하는 입장인데도 무슬림들이 기독교인 마을을 공격하는 사례가 많다.[37]

3.4.3. 중국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인도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들어서 기독교인 수가 늘어났다고 찬양하기도 하는 중국도 실상은 엄청난 차별국가이다. 현재 중국 기독교인은 최대 3억(!)까지 추정될 정도인데, 이 정도면 미국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물론 그들의 99%는 지하교회 교인들로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받는 대상이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간주하는 공산당은 파룬궁 못지않게 반정부 세력으로 커져갈까봐 예의주시하고 법적으로 개종금지에 교회에 십자가를 떼어 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종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처럼 당에서 관리하는 꼭두각시 교회(삼자교회, 가톨릭의 경우는 천주교 애국교회 등)에 반감을 느낀 신자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게 몇십년 전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지하교회, 가정교회의 숫자와 신도들은 공식 교회 통계, 종교 수치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우습게도 이러다보니 중국인 선교사들도 해외에 인구빨로(?) 선교를 시작하고 있으며 거꾸로 한국 선교사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우려하는 한국 개신교인들도 있는가하면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환영할 일이잖아? 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한국교회도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서양 종교'에 대한 특유의 배타적인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단 제국주의 침략을 받았던 근대사 때문에 서양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거니와 현실적 대립 때문에 기독교를 서방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 또한 천주교의 경우 교황청의 교칙에 따라 교회가 움직이는데 이는 중국정부 입장에서는 외국세력의 내정개입으로 취급한다. 이런 사상들을 받아들이는 민중들도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지지기반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따지고보면 불교는 본토 종교는 아니지만 불교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로컬라이징을 거쳤고 매우 역사가 오래된데다.[38] 전통적으로 믿는 종교라는 명분과 사고치지 않도록 다독여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가 있으니.

같은 중국의 영토이지만 특별행정구인 홍콩마카오중화권대만, 싱가포르는 기독교 혐오도 없고 기독교인은 꾸준히 증가해 100만 명을 내다보고 있다. 영국령 당시부터 기독교인이 상당수였으며 최근에 셀교회 시스템의 도입과 중국 대륙인의 개종 내진 가정교회를 믿는 광둥성 기독교인의 망명 등으로 2014년 기준 87만명이나 되며 우산 혁명 등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가해 이미지가 좋다. 심지어 파룬궁 신자들과 홍콩 기독교도는 매우 친한 관계라 파룬궁 탄압 반대집회도 대신 열어줄 정도이다.[39] 이때문에 본토에서 기독교 입지가 더 좁아지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어 가톨릭은 엄연한 로마 교황청 산하 정상적 수위권 내에 있다.

시진핑 정권 들어 종교의 자유는 다시 위축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아예 불법화하는가 하면 삼자교회 소속이 아니란 이유로 교회 건물을 묻지마식으로 부수는 일까지 일어났다.

3.4.4. 북한

북한은 지금까지의 통계에서 거의 한번도 빠지지 않고 독보적인 세계 기독교 박해 1위를 달성하고 있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23년까지 빠짐없이 네덜란드복음주의 선교단체 오픈도어(Open Doors)가 선정한 기독교 탄압 국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제외한 모든 사상과 종교가 불법이다. 기독교는 대외 선전용으로 평양에 어용 내지 전시 목적으로 세워 둔 장충성당정백사원, 봉수교회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의 종교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본래 분단 전만 해도 '고개 숙인 선천'이라는 선천군처럼 주민의 50% 가량이 신도였던 곳도 있을 정도였고 특히 개신교는 한국에 들어온 경로가 평안도 지역을 가쳐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천주교도 충청도만이 아니라 황해도[40]도 선교의 통로였으나 북한이 세워지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권 수립 시 기독교인은 숙청 대상 1호였고 평양 한복판에 명동성당보다 크게 지으려던 관후리 성당은 건설 도중 빼앗겨[41] 소년궁전으로 쓰이게 되었고, 장대현 교회라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끈 교회의 자리는 철거되고 매우 유명한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세워졌다. 선교사 자녀가 다니던 학교는 김일성의 별장이 되었다가 경루동이라는 신설 행정구역의 충성계층용 주택단지가 되었다. 원산의 덕원대수도원은 농업대학으로 쓰이고 있는데, '명당자리'에 잡아주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 그나마 있는 어용 종교 시설도 평양의 하급지에 있다.

지금도 성경, 십자가, 묵주, 성모상을 비롯한 각종 성상 등 기독교와 관련된 물품을 소지하는 행위, 기독교를 포교하는 행위, 기독교 예배를 드리는 행위 등이 발각되면 공개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동 교화형에 시달린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3대까지 투옥되는 것이 현재 북한의 실정이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거나, 미사/예배를 드린다거나, 전도를 하는 것 등이 발각되면 사형시키거나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법률에 명시되어 있고 실제로 매우 적극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국가보위성 같은 첩보기관까지 동원해가면서 그동안 하도 심하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해서, 이제는 김씨 정권의 감시를 피해 음지에 존재하는 몇몇 지하 교회를 제외하면 교회들이 씨가 말랐다.

태영호의 저서에 따르면 과거 식량난으로 세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가톨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전국을 샅샅이 뒤져 가톨릭 신자 한 명을 찾아내어 교황에게 보낸 적도 있으며, 이후로 일단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전하고는 있다.

북한 김씨왕조를 세운 김일성의 아버지김형직과 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김일성의 어머니 이름은 베드로(그리스어로 반석을 의미)에서 따온 강반석이다. 다만, 김씨 일가와 연줄이 있는 개신교인 한정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선술한 강반석의 친척인 강량욱 목사는 엄연히 김씨 일가의 최측근으로서 그들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고, 그런 권력에 대한 대가로 기독교인들을 신앙을 제한하는 어용 단체에 가입시켜 탄압했다. # 김일성은 종교인을 탄압하지 않는다며 종교인들을 속이면서 김일성의 종교인 숙청을 돕기도 했다. 기독교인의 조직력을 두려워한 김일성이 권력을 미끼로 내분 공작을 일으켜서 탄압을 시도한 것이다. 그 이후에는 그를 중심으로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 결성되어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합법적으로 종교 활동 아닌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들은 일체의 포교나 반정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초창기부터 북한의 체제를 지지해왔던 핵심계층이라서 이 정도의 자유는 보장받는 것이다. 탄압을 받는 지하교회의 신자들은 십중팔구 핵심계층이 아닌 사람이 개신교 신앙을 몰래 간직하고 있던 게 발각된 경우다.

4. 같이 보기

영위백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42]


[1] 독일어[2] 극단적인 경우에는 알바니아적도 기니(다만 이쪽은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었다)처럼 대놓고 '무신론 국가'를 선포하는 경우까지 있다.[3] 반면 가톨릭에 대한 인식은 불교와 비슷하게 좋은 편이고, 정교회는 아예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4] 기독교 내에서 교리로 공격당하는 여호와의 증인 같은 경우 보통 병역기피 문제로 시비가 걸려왔는데, 2020년부터 국방부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며 이들을 대체복무에 투입하기로 했으므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5] 부라쿠민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일본 신토와 일본 불교의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 풍조가 가장 큰 원인이다.[6]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무슬림도 온건파를 무력으로 뭉개고 푸르족같은 흑인 무슬림까지 박해하여 인종차별 학살자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자이다. 대놓고 수단 내 기독교 박멸을 부르짖고 무슬림이라도 이걸 안 따르면 기독교놈과 같은 한패라고 큰소리치던 인물이다.[7] 성지 메카 순례를 금지하거나 프랑스인 거주지역에 이주 금지, 허드렛일하는 사람만 예외.[8]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신과 인간>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9] 이라크 알카에다, 미래의 다에시가 되는 조직이었다.[10] 다에시 공식 대변인 아부 무함마드 알 아드나니는 2012년에도 수니-시아 종파갈등을 단순한 '종파 전쟁'이 아닌 거룩한 종교 전쟁이며 불신앙(시아파)과 무슬림(수니파) 간의 전쟁이라 한 적이 있다. 2014년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연설만 보더라도 기독교인은 개종하거나 종교세를 내면 살려줄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시아파는 '무조건' 죽일 것을 독려하고 있다. 그 덕분에 다에쉬 해외 쪽 지부도 이 말을 충실히 지켜 시아파를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11] 그 주지사는 아혹이다.[12] 98%가 중국계이고 인도 남부의 고아 출신들과 포르투갈인의 후손들이 좀 있다.[13] '중국인'이라고도 하나, 실제로는 여기서도 겨우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동말레이시아에 분포한 원주민들. 물론 중국인들도 근래에는 신도가 늘어나고 있는데, 선조들은 대게 불교, 도교도들이지만 젊은 세대는 무종교화되거나 기독교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며 명목상 도, 불교도 젊은 세대는 사실 상 무종교인이다.[14] 무자비한 콘키스타도르들도 이 지역만은 고개를 젓고 나와 버렸다. 민다나오 내에서 스페인인들은 잠보앙가다바오 등 대도시와 도로만 점거한, 철저한 점과 선 점령에 그쳤고 산악지대 및 섬은 독자적 술탄국이었다.[15] 그 미군도 점령하는데 고생하다보니 섬멸전으로 초토화시키자 당해내지 못하고 항복했다. 나중엔 필리핀을 독립시키면서 결국 점령을 포기했다.[16] 필리핀이 주권을 회복한 후 필리핀 신생정부가 해군 및 해병대 등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복속해 버렸다.[17] 그러다가 되려 프로파간다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 좋을 일이 된다. 되려 자신들이 필리핀 기독교에 빌붙은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18] 몰디브 헌법에서는 무슬림에게만 시민권을 준다.[19] 당연하지만 이 사람들도 아사드 정권에 부정적이라서 반군을 좋아라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시리아 정교회 교인들은 쿠르드계 시리아 민주군과 연합해 있다.[20] 이스탄불같은 대도시 지역말고 시골 깡촌들이 그렇다.[21] 부연설명하자면 현재 터키 내에서 활동하는 정교회 성직자는 대부분 그리스계 터키인이지만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휘하의 관구들로 유학을(주로 테살로니키로) 보낸다. 1912년 발칸 전쟁 이전에 오스만 제국령이었던 북부 그리스와 크레타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관할의 교구이기 때문에 애초에 터키, 그리스 상관없이 같은 교구로 묶여있다.[22] 오스만 제국때는 각 민족들마다 역할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 고위 재상과 관료들은 어린시절 이슬람으로 개종한 발칸인들이 주를 이루었고, 상업은 각각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터키 동부지방의 경우 귀금속업, 금속공예같은 수공업에서도 아르메니아인들이 높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작 원래부터 무슬림인 아랍인쿠르드인은 홀대받았으며 유목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무슬림만을 징병했기 때문에 군대로 진출한 무슬림들도 있지만, 정작 고위 장교나 군부인사들은 유럽출신의 개종자들이었으니 출세길이 제한되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유명인들 중에서 비유럽계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셰이훌 이슬람(Şeyh-ûl İslam, 이슬람 최고성직자)를 제외하고는 개종자출신이 압도적이다.[23]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라든지 해외 선교 한국인 목사들이 쓴 책들에서 언급하고 있다.[24] 이 때문에 현존 빠알리어 불전은 원본이 아니다. 원본은 당시 서양인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 현존 빠알리어 불전은 승려들의 기억과 동남아 각국에 남아있던 잔간본, 필사본 등을 모아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25] 기독교 측 토론자는 목사와 전도사 2명, 불교 측은 승려 1명이었다. 근데 2:1인데도 털렸다. 거기다 이 논쟁의 결과가 다른 국가로 전파되면서 서구에선 본격적으로 서구권 백인들이 불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당시 신토 우월주의를 내세우던 메이지 정부의 억불정책과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억눌려 있던 불교계에 활기를 되찾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괜히 기독교측의 참패가 아니다.[26] 당시 토론 현장이 개방되어 있어 토론 당사자들 외에도 수많은 청중과 언론들이 와서 관람 중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측은 토론 내내 상대편 토론자는 물론 청중들에 대해서도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고, 토론 패배 이후에도 패배를 시인하지 않고 자신들이 이겼다며 어그로를 끌었다.[27] 개신교는 그냥 싱할라어나 타밀어를 쓰지만 네덜란드어도 가끔 사용한다.[28]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177p.[29] 기독교를 가혹하게 탄압하는 현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도 에리트레아 정교회 신자이다.[30] 두말할 이유도 없는것이,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를 죽이라고 한 자들이 바로 유대교 제사장들이었다. 로마 시대에도 홀로 예루살렘 성을 지키지 않고 도망쳤다고 기독교인들을 유대인들이 박대한 사실은 역사서를 찾아보면 나온다.[31] 메시아닉 쥬 역시 기독교도와 마찬가지로 탄압을 받긴 하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대교인이지 기독교인이 아니다. 메시아닉 쥬는 유대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유대교인을 말한다. (기독교처럼 예수를 신으로 믿지는 않으며, 기독교 - 천주교, 개신교, 정교 공통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삼위일체론을 부정한다.) 즉, 같은 유대교 신자임에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이유로 기독교와 묶어서 탄압하는 것이다.[32] 당연히 기독교인들이 포기할리가 없다. 유대교도 유대인들이 포기하지 않는 판국인데 기독교인이야...[33] 그것도 네타냐후 총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국무회의에서 압도적인 표로 통과되었으며 반대하는 장관들은 불이익받거나 파면당했다. 그나마 대통령인 레우벤 리블린이 결사 반대하며 세속주의 정당들이 기를 쓰고 의회 통과를 저지하여 보류만 해놓은 상황이다. 참고로 레우벤 대통령은 악명높은 극우 정치인이며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자다. 이런 사람이 반대할 정도면...[34] 베들레헴의 경우 19세기 전반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에는 인구 80%가 기독교도였고 20세기 전반 영국이 지배할때는 인구 90%가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전반인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인구 80%가 유대교인이며 기독교인들은 강제로 내쫓겼다.(2011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베들레헴 기사에서[35] 밤중에 들이닥쳐 무기로 위협하여 차 안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36] 이러한 충격적인 참극이 벌어진 뒤에도 살아남은 선교사의 부인은 인도를 떠나지 않고 인도인들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계속하여 공로를 인정한 정부로부터 상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집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과격파가 늬들도 개신교 놈이냐? 라고 하자 예수믿는 힌두교인이오만? 이라고 답하자 그래? 라고 풀어줬다...[37] 애초 인도 무슬림은 그 정치적 지형과 사회적 차별 때문에 인도에 대한 반감이 강한데다 인도 무슬림 내에서도 우려할만큼 이슬람 극단주의가 심각해서 다에시탈레반에도 엄청 많이 가담한다. 애초 탈레반 구성원들 자체가 똑같은 인도계 국가인 파키스탄인들이 많다.[38] 당나라때 전파된 기독교인 경교삼무일종의 법난에 황소의 난으로 맥이 끊겨버렸다.[39] 우산혁명을 고3 시절에 주도한 조슈아 웡이나 "센트럴을 점령하라" 등의 홍콩 민주/독립파 시민단체들의 멤버들은 전부 가톨릭 신자 및 성공회, 감리회 신자들이었고 특히 가톨릭의 참여가 현재도 활발하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도 홍콩 가톨릭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홍콩마카오 그리고 대만 외성인들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교황의 방한을 반겼다.[40] 백령도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41] 공산당은 천주교계와 협상을 통해 돌려준다고 했으나 그 약속을 어기고, 나중에는 성직자까지 보위부가 납치해버렸다.[42] 다만 여기에 없다고 박해가 적거나 크리스티아노포비아가 약하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 이스라엘이 목록에 없으며 법적인 선교 금지를 대놓고 하고 있는데 목록에 없는 것만 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