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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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2814> 웨일스 공 Prince of Wales Tywysog Cymru | |
현직 |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
임명 | 2022년 9월 9일 |
찰스 3세 | |
경칭 | 전하 (His Royal Highness) |
관저 | 켄싱턴 궁전[1]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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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 공 찬가 God Bless the Prince of Wales [2] |
2022년 9월 웨일스 공 찰스가 국왕 찰스 3세로 즉위하게 되면서 장남 윌리엄 왕자가 새 웨일스 공에 책봉되었다.
2. 상징
웨일스 공기[3] | 웨일스 공 문장 |
웨일스 공기(개인) | 웨일스 공 문장(소형) |
3. 작위 수여
일반적으로 영국 국왕 계승 예정자에게는 웨일스 공 작위 말고도 콘월 공작과 로스시 공작 작위 등이 자동으로 내려진다. 다만 국왕의 공식 계승 예정자이면 받을 수 있는 웨일스 공과는 달리 콘월 공작·로스시 공작은 국왕의 장남, 정확히는 국왕의 생존한 아들 중 가장 연장자이자이자 계승 예정자가 함께 되어야 받는다. 그러니까 어느 영국 왕이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가정할 때, 첫째 왕자가 자손 없이 사망하면 둘째 왕자가 국왕의 새 법정추정 계승 예정자로서 웨일스 공 작위와 그 다음 아들로서 콘월 공작위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고, 첫째 왕자가 일찍 사망했지만 자식을 두었다면 웨일스 공 작위는 첫째 왕자의 자식(현 국왕의 장손)이 새 확정상속인 자격으로 받지만 콘월 공작위는 국왕에게 반환되는 것이다.[4] 1301년 이후로 웨일스 공인 상속인에게 체스터 백작 작위도 같이 겸해서 내리기 시작했고, 찰스 3세도 왕세자 시절 웨일스 공 작위와 동시에 체스터 백작 작위를 받았다.이 칭호는 상속되지 않고, 웨일스 공이 왕좌에 오르면 왕좌와 병합되어 사라지기 때문에 국왕이 법정 계승 예정자에게 웨일스 공 작위를 다시 내려야 한다.
남성에게만 수여되는 칭호이므로 왕위 계승자라도 왕의 장녀에게는 수여되지 않았으며, 선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웨일스 여공을 거치지 않았다.[5] 영국 왕실이 2015년에 절대적 맏이 계승제로 왕위 계승법을 개정하였으므로 훗날 왕의 맏이로 태어난 장녀는 웨일스 여공 칭호를 받게 된다. 일단 지금 영국 왕실은 워낙 아들복이 많아[6] 가까운 시일 안에 웨일스 여공이 탄생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즉 현재 왕실 구성원들을 볼 때 정말로 빨라봐야 최소 2080년대 이후[7]에나 가능할 것이다.
4. 역사
웨일스 공 작위는 13세기에 웨일스 지역을 통일한 귀네드 왕국의 왕이자 브리튼인의 왕 허웰린(Llywelyn)이 스스로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Tywysog Cymru)이라 칭한 데서 나왔고, 이후 잉글랜드 왕국의 헨리 3세가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면서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 Tywysogaeth Cymru)이 수립된 것이 기원이다. 하지만 헨리 3세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무력으로 정복하면서 새로운 작위를 만드는 대신 웨일스 공을 그대로 잉글랜드의 작위로 편입하였고, 곧 이것을 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 2세에게 수여하였다.뒤이어 즉위한 에드워드 3세도 조부인 에드워드 1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이자 왕세자인 흑태자 에드워드[8]에게 웨일스 공 칭호를 수여하였고, 후대 왕들도 이를 따라하면서 일종의 관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결과 잉글랜드 왕국에서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장차 왕이 될 왕족에게 부여하는 칭호로 굳어졌다. 중세 이후로는 영역제후로서 기능하지 않고 명목상 칭호에 머물렀지만, 부모가 웨일스인이라서 역대 영국 총리 중 유일하게 모어가 영어가 아니라 웨일스어였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제안이 영향을 미쳐 웨일스의 카나본 성에서의 책봉식을 부활시켜, 1911년 미래의 에드워드 8세, 1969년 미래의 찰스 3세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책봉식이 있었다.
1969년 찰스 3세의 웨일스 공 책봉식 기록영화 |
유럽에서 왕세자(황태자)에게 전용 작위를 주는 다른 사례로, 프랑스 왕국의 도팽[10], 스페인 왕국의 아스투리아스 공, 사보이아 공국과 사르데냐 왕국의 피에몬테 공, 벨기에의 브라반트 공, 불가리아 왕국의 터르노보 공,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왕,[11] 보헤미아 왕국의 모라비아 변경백이 있다.
5. 전설
영국의 왕세자가 웨일스의 프린스 칭호를 받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원래 웨일스는 프린스(Prince)라는 지배자의 명칭을 사용하며 잉글랜드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웨일스를 정복한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의 귀족들을 모아놓고 충성서약을 요구하였으나 웨일스 귀족들은 웨일스의 지배자는 웨일스 출생이며 웨일스어를 할 줄 알 것, 비행이 없어야 할 것 등의 조건을 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에드워드 1세는 그 조건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1285년 왕비를 웨일스의 카나번 성으로 데려와 에드워드 2세를 낳게하고 웨일스 출신의 사람을 유모로 붙여주었다. 그리고 웨일스의 귀족들을 불러들여 "이 아이는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가장 먼저 하게 될 말은 웨일스의 말일 것이다."라 선언하였다. 이에 웨일스 귀족들도 만족하고 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의 작위를 주었다. 이것이 이후 전통으로 굳어져 영국 왕세자의 명칭은 실제로 웨일스와는 별 상관 없어도 항상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이 되었다.
워낙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역사가들의 연구 결과 후대에 창작된 내용이다.에드워드 2세가 웨일스 원정이 한참 진행 중이던 시기 웨일스의 카나번 성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 공국과 그에 복속된 제후들을 무력으로 때려잡고 있던 시기였기에 웨일스 귀족들이 저런 요구를 했다간 바로 밟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2세가 웨일스 공위를 수여받은 것은 1301년으로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 지역을 완전히 정복한 직후 상징적인 의미에 따라 직접 서임한 작위이다. 저런 내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 이야기는 사실 에드워드 1세의 능란한 정치술을 부각시키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일화다. 웨일스 귀족들이 "우리의 새 통치자는 웨일스에서 태어나고, 영어를 쓰는 자가 아니며, 잘못을 저지른게 없어야 한다."라고 요구하자 에드워드 1세가 알았다고 하면서 "내 아들은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아직 신생아라서) 영어는 (물론 그 어떤 언어도) 못하고, (갓 태어나서) 잘못한게 (아직) 하나도 없어."라고 받아쳤다는 의미의 창작인 것이다.
6. 번역
영국의 공작(Duke)과 혼동이 많으나 프린스(Prince)는 왕자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족, 소국군주, 영역제후라는 다양한 뜻이 있다. 어쨌거나 이 프린스는 왕자의 의미가 아니라 영국 고유, 더 정확히는 웨일스 고유의 작위이다.[12] 웨일스 공(公) 내지 대공으로 번역하는 것은 귀족 작위로서의 프린스를 대개 동양식 오등작의 비슷한 작위인 공이나 대공으로 번역하는 데서 온 것이다.[13] 주한영국대사관은 웨일스 공이라고 표기하고 있다.7. 논란
잉글랜드가 웨일스 정복으로 획득한 작위이다보니, 현대에 들어서는 웨일스 민족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작위 사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 이후 2022년 9월 9일 윌리엄이 웨일스 공으로 서임되자 웨일스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는데, 마크 드레이크포드 웨일스 제1장관은 "작위 서임에 대해 통보를 받은 바가 없다"라고 밝히며 간접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당시 웨일스 공 작위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접수되었으며, 며칠 동안 2만 5천명이 동의했다.웨일스 공 작위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듯, 윌리엄은 "웨일스 국민에 대한 겸손과 큰 존경심을 가지고 봉사하겠다"고 밝혔으며 웨일스 공 역할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웨일스 공 작위 서임을 찬성하는 여론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1999년 BBC 웨일스의 여론조사 결과 찰스 3세 이후에도 웨일스 공이 이어져야 한다는 응답은 73%였지만, 2022년 6월 ITV와 유고브의 조사 결과 찬성 응답은 46%로 줄어들었다. 반면 31%는 웨일스 공 작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2022년 9월 유고브의 조사 결과 웨일스 공 서임식을 카나본 성에서 전통 의식으로 치러야 한다는 응답은 19%에 불과했으며, 30%는 서임식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8. 역대 웨일스 공
8.1. 잉글랜드 정복 이전
웨일스 공국 성립 이전에도 웨일스 공을 자처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브리튼인의 왕 문서에 있다.이름 | 출생 | 사망 | 재위 |
허웰린 압 요르웨르스 (Llywelyn ap Iorwerth) | 1173년 | 1240년 4월 11일 | 1228년 ~ 1240년 4월 11일[14] |
다버드 압 허웰린 (Dafydd ap Llywelyn) | 1212년 4월 | 1246년 2월 25일 | 1240년 4월 11일 ~ 1246년 2월 25일 |
허웰린 압 그리피드 (Llywelyn ap Gruffudd) | 1223년 | 1282년 12월 11일 | 1246년 2월 25일 ~ 1282년 12월 11일 |
다버드 압 그리퍼드 (Dafydd ap Gruffydd)[15] | 1238년 7월 11일 | 1283년 10월 3일 | 1282년 12월 11일 ~ 1283년 10월 3일 |
마독 압 허웰린 (Madog ap Llywelyn) | 1277년 | 1312년 | 1294년 ~ 1295년 |
오와인 압 토마스 압 로드리 (Owain ap Thomas ap Rhodri) | 1330년 | 1378년 | 1372년 |
오와인 압 그리퍼드 (Owain ap Gruffydd)[16] | 1354년 | 1415년 | 1400년 ~ 1415년 |
8.2. 잉글랜드 정복 이후 왕세자
국왕으로 즉위한 경우는 칸을 노란색으로 표시했다.9. 기타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찰스 3세와 만난 후 트위터에서 이 칭호를 고래 공(Prince of Whales)으로 썼다가 국내외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는데, 고래를 뜻하는 영어 단어 whales와 작위명 Wales의 발음이 비슷해서 나온 해프닝이다.얼음과 불의 노래의 드래곤스톤 공(Prince of Dragonstone)은 여기서 따와 타르가르옌 가문의 왕세자들이 대대로 임명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이 칭호에서 따온 영국 군함의 함명으로 기억한다.
중국의 전차 코레류 게임인 강철의 왈츠에 등장하는 A43 블랙 프린스 온디 바크에 대사 중 웨일스 공이 나오는데 무장인 A43 블랙 프린스의 명칭이 웨일스 공이였던 흑태자 에드워드였기 때문.
10.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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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실제 거주지는 윈저의 애들레드 코티지이지만, 공식 사무실과 런던 거주지는 켄싱턴 궁전에 있다. 때문에 영국 왕실 홈페이지에서도 켄싱턴 궁전을 웨일스 공 일가의 공식 거주지로 소개하고 있다.[2] 1863년 당시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다. 이후 웨일스 공 찬양 노래로 사용되고 있으나, 공식석상에서는 주로 국가인 God Save the King을 연주하기 때문에, 부를 일이 거의 없다. 군기분열식 등 영국 근위대의 주요 행사가 진행될 때 웨일스 공이 연대장으로 있는 웰시 가드의 행진곡으로 사용되기도 한다.[3] 웨일스에서만 사용하는 공식기로, 그외 개인으로서 사용하는 표준기와 로스시 공작으로서 스코틀랜드에서만 사용하는 공식기가 따로 존재한다.[4] 즉 확정상속인인 조카가 생존 중인 한(=본인이 계승 예정자가 아닌 한) 국왕의 차남이 콘월 공작위를 승계할 수 없다.[5] 엘리자베스 2세가 1순위 왕위계승자가 되면서 Princess of Wales 칭호 수여 여부가 논의되었지만 아버지 조지 6세는 해당 칭호가 왕세녀보다는 왕세자비 느낌이 너무 강하다며 거절했다.[6] 찰스 3세, 윌리엄 왕세자, 조지 왕세손까지 모두 아들이며, 직계 공주는 엘리자베스 2세의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과, 웨일스 공 윌리엄의 장녀 샬럿 공주뿐이다. 그나마도 앤 공주는 오빠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방계가 되었고, 샬럿 공주도 오빠 조지 왕세손이 있으니 별 일 없는 한 1순위 왕위 계승자가 될 가능성은 낮다.[7] 웨일스의 조지 공자의 맏이가 딸인 경우를 가정했을 때이다. 만약 웨일스의 조지 공자가 맏이로 딸을 낳았을 때를 가정하고도 최대한 늦추어 보면 영국 왕실의 장수 유전자도 그렇고 인간 수명이 평균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사고나 병으로 일찍 죽거나 생전 퇴위를 하지 않는 이상 찰스 3세와 웨일스 공 윌리엄, 웨일스의 조지 공자 세 사람 모두 90세 이상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엘리자베스 2세 이후 또다른 여왕의 등장은 22세기 이후로 훌쩍 넘어간다. 조지 왕세손이 2013년생이므로 90까지 살면 2103년경에 조지 왕세손의 자녀가 즉위하게 되는 것이다. 그마저도 웨일스의 조지 공자가 맏이로 아들을 낳았을 경우에는 조지 왕세손의 장남이 맏이로 딸을 낳아야 하므로 또 2120년대 내지 2130년대가 되어야 웨일스 여공의 등장이 가능할 것이다.[8] 이 사람은 최초로 콘월 공작 칭호를 받기도 한다.[9] 찰스 3세의 차남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는 현재 왕족 지위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차기 요크 공작위는 왕위계승 순위상 웨일스 공 윌리엄의 차남 루이 왕자가 물려받을 확률이 크다.[10] 도팽의 뜻은 돌고래인데, 돌고래 문장을 쓰는 비엔누아 백작의 별칭이었다. 원래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처럼 왕실 구성원의 작위가 아니었으나, 비엔누아 백작이 도피네(비엔누아 백작이 도팽으로 불리면서 비엔누아 백작령 역시 도피네로 불림) 작위를 프랑스 왕에게 팔았고, 이것을 국왕이 세자 전용 작위로 삼은 것이다.[11] 로마왕은 원래 대관식을 치르기 전의 신성 로마 황제를 의미한다. 선거군주제인 신성 로마 제국의 특성상 황태자를 둘 수 없었기 때문.[12] 오히려 잉글랜드에서는 앵글로색슨 시대나 크누트 대왕 치세나 노르만 정복 이후나 prince에 대응하는 작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Tywysog는 웨일스인이 만든 것을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영어로는 prince, 독일어로는 fürst와 동격이다.[13] 중국어의 경우 prince를 일괄적으로 친왕으로 번역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威尔士亲王/威爾士親王(Wēi'ěrshìqīnwáng, 웨일스 친왕)으로 번역한다.[14] 사실상의 웨일스 통일은 1216년부터다.[15] 이후 잉글랜드 왕세자가 웨일스 공으로 재위하고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지배 이후에도 웨일스 공을 자칭한 웨일스인들이 있었다.[16] 오와인 글린두르(Owain Glyndŵr)로 잘 알려져 있다.[17] 1536년 웨일스 공국 합병[18] 역대 프린스 오브 웨일스 중 최장 재임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