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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자치시(특례시)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창원시 昌原市 Changwon City | }}} | |||
<colbgcolor=#f35e19><colcolor=#fff> 시청 소재지 | 성산구 중앙대로 151 (용호동) | |||||
광역자치단체 | 경상남도 | |||||
하위 행정구역 | 5일반구 2읍 6면 47동 | |||||
면적 | 749.23㎢ | |||||
인구 | 1,001,245명[1] | |||||
인구밀도 | 1,336.37명/㎢[2] | |||||
시장 | | 홍남표 (초선) | ||||
시의회 | | 27석[3] | ||||
| 18석[4] | |||||
도의원 | | 16석[5] | ||||
국회의원 | <colbgcolor=#f35e19><colcolor=#fff> 의창 | | 김종양 (초선) | |||
성산 | | 허성무 (초선) | ||||
[[창원시 마산합포구(선거구)| 마산합포 ]] | | 최형두 (재선) | ||||
[[창원시 마산회원구(선거구)| 마산회원 ]] | | 윤한홍 (3선) | ||||
진해 | | 이종욱 (초선) | ||||
상징 | 시화 | 벚꽃 | ||||
시목 | 소나무 | |||||
시조 | 괭이갈매기 | |||||
시가 | 창원시민의 노래 | |||||
지역번호 | 055-2**[6], 54*[A], 55*[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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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3년 창원시 시정홍보영상 |
Plus Changwon, 창원특례시
플러스 창원, 동북아 중심도시 창원
플러스 창원, 동북아 중심도시 창원
경상남도의 시.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경상남도청 소재지이자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특례시다.[9] 한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10],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11]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로 경상남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경상남도청[12], 경상남도의회,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경남지방경찰청, 경상남도교육청, 정부경남지방합동청사, 그 외 정부 부처 및 관계 기관들의 경상남도 청사가 상당 부분 창원시에 몰려 있다.[13]
현재의 창원시 영역은 일제강점기 이전의 창원부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1989년 부산에 편입된 천가면(현 가덕도동)이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창원'이란 명칭은 조선 태종 때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부를 신설한 것에 기원하며 이후 조선 시대까지는 줄곧 한동네였다. 이 두 지명은 현재도 일반구의 명칭인 의창구와 마산회원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4년 마산부 분리[14], 1955년 진해시가 분리[15]된 이후 2010년 7월 1일 다시 통합하기 전까지는 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개의 지자체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은 통합 이전부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기존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3개 시는 시내버스를 통합해서 운영했고, 오늘날 창원시의 주요 관문인 동마산IC를 비롯한 고속도로 출입구, 시외버스터미널 노선 또한 공유하는 등 교통, 문화, 인프라 부분에서 뿌리 깊게 연계, 협력하였고 지금도 인프라 상당 부분을 변함없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인구수 대비 상당히 큰 편이다. 2019년 기준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약 39조 86백만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5위,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1위에 해당되며[16] 대전광역시(약 43조 9백만), 광주광역시(약 41조 51백만)와도 비견되는 수준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공장들이 많이 상주해 있는 곳으로, 외국계 글로벌 기업 사업장도 다량 위치해 있다.
2. 상징
창원시의 CI |
Dynamic Change, Changwon |
통합 이전 마산, 창원, 진해 도시브랜드 슬로건 로고 | 2010년 7월 통합 직후 창원시 임시로고 |
창원시의 상징물 | |
시화 | 벚꽃: 번식이 강하고 화사한 모습과 매혹적인 향기는 열심히 사는 창원시민의 모습이다. |
시조 | 괭이갈매기: 창원시 마산만에서 오랜 세월동안 시민과 벗하여 왔으며, 예리한 관찰력과 부지런하고 협동심이 강한 것은 진취적 기상과 화합을 상징한다. |
시목 | 소나무: 소나무는 의와 깨끗한 절개를 상징하며, 이것은 곧 창원시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
창원시의 도시브랜드 슬로건 |
창원시의 마스코트 | |
| |
창원시의 꿈과 희망의 메신저, 피우미 |
창원시민의 노래 |
1절 아름다운 창원 뿌리깊은 고장 가슴가슴 이어지는 두터운 인정 무학천주산 어깨동무 장복산 감아돌고 가고파 푸른물결 진해만 손잡았네 2절 사랑하는 도시 마주보는 이웃 거리거리 삶터마다 넘치는 열정 꽃피운 예술향기 희망을 노래하고 언제나 푸른청춘 세계를 감싸안았네 3절 살기좋은 누리 함께하는 마음 믿음으로 하나가 된 든든한 기상 동남공단 힘찬도전 번영을 약속하고 꿈이있는 녹색마을 우리 힘으로 키우네 후렴 이어가자 찬란한 창원의 역사 거룩하다 민주성지 위대한 함성 남도일등 행복시 우리네 창원 영원하라 길이 빛나라라 |
창원 문인 일동 작사 / 임긍수 작곡 |
3. 역사
창원시 행정구역 변천사 | |||||||||||
창원부 (昌原府, 1908년) | |||||||||||
마산부 (馬山府, 1910년) | 창원군 (昌原郡, 1914년) | ||||||||||
마산시 (馬山市, 1949년) | 창원군 (昌原郡) | 진해시 (鎭海市, 1955년) | |||||||||
마산시 (馬山市) | 의창군/창원군 (義昌郡/昌原郡, 1980년~1990년/1991년~1994년) | 창원시 (昌原市, 1980년) | 진해시 (鎭海市, 1983년) | ||||||||
마산시 (馬山市, 1995년) | 창원시 (昌原市, 1995년) | 진해시 (鎭海市) | |||||||||
창원시 (昌原市, 2010년 7월 1일) |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통합 이전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마산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진해시 문서 참고하십시오.
3.1. 특례시 지정
<rowcolor=#fff> 2022년, 창원특례시 출범 공식 영상 |
2022년 1월 13일, 특례시로 지정되었다.
3.1.1. 특례시 박탈 가능성?
수도권 집중화 현상 탓에 전국의 네 개 특례시 중 인구가 가장 적다. 창원시 인구가 감소하면서 특례시 지위를 상실 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118조는 해당 인구 인정기준을 근거로 전년도 인구가 2년 연속해서 100만 명 미만이면 특례시 지위를 박탈하도록 규정한다. 그나마 특례시 기준에 외국인 인구도 포함되기 때문에 내국인 인구가 100만 미만이 됐다고 바로 박탈되는 건 아니지만 2026년에는 외국인 인구를 포함해도 100만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렇게 될 경우 2028년 특례시 지위를 박탈당한다. 일단 창원시에서는 특례시 지위 유지를 위해 특례시 기준 변경을 요청하고 있다.# 요구안 중에 특례시 지장 유예와 80만 이상 특례시 지정이 있는데, 이게 수용되면 아직 특례시로 지정되지 않은 경기 화성시[17], 경기 성남시[18], 충북 청주시[19] 3개 자치시가 특례시로 지정된다.4. 지리
4.1. 지형
경상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와 창녕군,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부산처럼 산이 많다. 구 창원 시가지는 정병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팔용산, 천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며, 마산회원구 북쪽에는 무학산도 있다. 성주동 불모산에서 발원하는 남천이 서쪽으로 흘러 마산만으로 유입하는데 창원천, 안민천, 토월천 등 (구)창원시 남부의 하천 대부분이 남천으로 합류한다.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및 진해구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구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중에 생긴 매립지들이다. 이 과정은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의 동읍과 대산면 지역에는 꽤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저수지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논농사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지금의 주남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4.2. 기후
"따뜻한 남쪽바다"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지역이다. 인근의 부산과 매우 비슷한 기후특성을 보이지만, 동해/남해상에 접하고 있는 부산에 비해 창원은 마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부산보다는 좀 더 내륙분지적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대신 겨울에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기는 해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답지 않게 의외로 눈이 일단 매년 한 번씩은 따박따박 오기는 온다, 얼마 안 와서 그렇다.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2년 7월 현재, 눈이 몇 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 있었던 것은 2015년 2월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하루이틀 만에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공군, 해군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 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 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 치면 서울에서는 이 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시에서는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에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20]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진해구 지역은 장복산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고 남쪽으로 바다가 트여 있어 창원에서 가장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약 50년 동안 기록된 최대 적설량이 4cm이다.
바다에 바로 접해 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와 강풍 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m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 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과 2009년에는 7월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21]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 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36.7°C),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 가지만 창원은 거기보다는 최고기온은 조금 덜할지라도 해안가+분지+열섬으로 인해 최저기온이 그쪽 지역보다 높아 평균기온은 이들 지역과 맞먹는다.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정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 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4.3. 뚜렷한 지역성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했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됐으며,[22]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됐다.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마산+창원+함안이었고 창원시가 밀었던 모델이 마산+창원+진해였다. 당시 마산시의 생각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 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 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 등 미개발 지역이 남아 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다른 이점을 찾을 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 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됐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결정이 나지 못하고 기존 창원시청이 여전히 시청으로 기능하는 중이다. 한때는 구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 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 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같은 날 통합 창원시의 시청사 입지를 조속히 선정하자는 결의안도 통과됐다.
물론 창원시는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 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자진통합으로 중앙정부에서 받아먹은 추가 재정지원이 교부세만 연간 10% 수준인데 재분리한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가만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교부세 추가분을 반환한다고 하면 분담률을 두고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어이없는 사실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세 도시로 분리된, 원 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구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과 현 임시청사의 시청사 확정안이 동시에 통과됐다.# #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주영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되었다.#[23]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부산, 대구 등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경상북도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른다.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이미 도시화된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지라 이렇게 갈등이 심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가 있다.
문제는 마산 지역 중장년층이 마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타 지역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데 있다. 발단은 원 창원 지역이 1973~1980년 사이에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었던 데 있다. 즉 이 시기를 겪어봤던 마산 중장년층의 입장에서는 '새로 생긴 촌동네가 박혀 있던 마산 지명을 밀어냈다'고 인식[24]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 통합에서 이리저리 치고받고 볶은 지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의 명칭이 역사성이나 인지도에서 압도적이었던 데 반해[25] 마산은 창원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도, 역사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고[26] 오히려 앞선 적도 있다 보니 계속해서 마산 지명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산은 창원에 맞서 자신들이 통합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랬으면 통합마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같은 마산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유소년기부터 지역의 몰락을 봤다. 2019년 기준 만 30세인 1989년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산의 구 폐지를 겪었다. 즉 이들이 눈 뜨고 말 익힌 후로 알고 있는 마산의 모습은 1990년대에 이미 15만의 인구가 빠져나가고 한일합섬이 이전해 몰락해 버린 인구 30만 수준의 지방 중소도시일 뿐이다. 이들은 마창진 지역에서 창원시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며 살아오다 보니 중장년층의 마산 바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사례처럼 지역 중장년층들의 마산 타령이 동네 망신만 시킨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27]
아무튼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 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인 데다가 진해는 특히 군사도시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창원-진해 사이는 장복산으로, 창원-마산 사이는 팔룡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일산신도시나 분당신도시의 사례처럼[28] 지역간 자부심 문제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의 주민들은 마창진 통합 이후에도 본인을 주로 "창원 사람"보다는 "마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창원에 산다."라고 대답하는 경우 역시 많지 않다. 다만 통합을 한 지 10년을 훌쩍 넘긴 2020년대 이후로는 타 지역 사람이 물을 경우 창원 사람이라고 하면서 창원에 산다고 대답을 하는 마산 지역 거주민들도 많아지고 있다. 진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29]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30] 그러나 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31]와 회원현[32]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하기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현재 창원시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 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2010년 중후반 광역시 승격을 노렸었다. 사실 창원의 광역시 승격 떡밥은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있었으나[33] 실현되지 못했고 안상수 시장 시절에 적극적으로 창원광역시 승격을 추진했으나 경상남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 시 규모가 큰 쪽이 작은 쪽을 흡수하는 형태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법률상으로는 기존 지자체를 모두 폐지한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지자체를 설치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 창원시도 마찬가지지만 창원 이전의 통합시인 여수시, 제주시, 서귀포시는 물론 이후의 통합시인 청주시 역시 각각 구 여수시, 구 제주시, 구 서귀포시, 구 청주시의 명칭만 잇고 있을 뿐 이들도 여천시와 여천군, 북제주군, 남제주군, 청원군과 마찬가지로 통폐합되어 사라진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는 기존 시군의 시장 및 군수, 통합시의 시장을 분리해서 설명하며 통합시장은 초대부터 시작하고 있다. 창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 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어떻게 정해졌든간에 결국 이름을 잇고 있는 건 창원이기에 '창원시가 마산시, 진해시를 흡수했다'는 인식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도농복합시들도 법리적으로는 옛 A시와 B군을 모두 폐지하고 새로운 A시를 설치하는 형태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 A시를 옛 A시의 연장선상으로 보지, 새 A시와 옛 A시를 별개로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창원시의 난리버거지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대에 한때 유력하게 제시되었던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논의는 그야말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름대로 지역간 교류가 활발해 통합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던 창원이 이 지경이니, 아예 남남인 지자체를 묶어버리자는 도 폐지론은 지자체고 중앙정부고 민간학계고 간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인구를 근거로 광역시 승격까지 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중앙정부로서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없는 상황이다.
관습적 지명으로서 '창원'이라고만 하면 통합 이전의 창원시 영역만을 마산·진해와 구분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통합 창원시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하니 문맥에 따라 잘 구분해야 한다.[34][35]
5. 인구
경상남도 창원시 인구 추이[36] (1966년~현재) |
1966년 410,362명[1966창원시] |
1970년 440,699명[1970창원시]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상남면·웅남면 → 마산시 편입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
1975년 571,424명[1975창원시] |
1976년 9월 1일 마산시 中 현재 성산구·의창구 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경상남도 창원시 승격 분리 경상남도 창원군 → 의창군 개칭 |
1980년 698,277명[1980창원시] |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
1985년 818,484명[1985창원시] |
1989년 1월 1일 의창군 천가면 → 부산직할시 강서구 편입 1990년 7월 1일 마산시 구제 실시[42] |
1990년 1,009,020명[1990창원시] |
1991년 1월 1일 의창군 → 창원군 명칭 환원 1995년 1월 1일 창원군 폐지 → 창원시와 마산시로 분할 편입 |
1995년 1,048,933명[1995창원시] |
2000년 1,079,359명[2000창원시] |
2000년 12월 31일 마산시 구제 폐지[46] |
2005년 1,079,837명[2005창원시] |
2010년 7월 1일 창원시 + 마산시 + 진해시 → 창원시 통합[48] |
2010년 1,090,181명[2010창원시] |
2012년 5월 1,092,554명(정점)[2012.05창원시] |
2015년 1,070,064명[2015창원시] |
2020년 1,036,738명[2020창원시] |
2021년 7월 1일 의창구 일부 → 성산구 편입 |
2024년 10월 1,001,24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10만 명 |
읍면동별 인구 통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내서읍 59,924명 |
의창동 48,841명 | |
사파동 44,941명 | |
웅동2동 43,628명 | |
북면 43,049명 | |
월영동 41,285명 | |
반송동 39,244명 | |
명곡동 38,917명 | |
가음정동 37,682명 | |
중앙동 36,505명 | |
양덕2동 32,472명 | |
봉림동 29,690명 | |
용지동 26,523명 | |
상남동 26,505명 | |
성주동 25,850명 | |
팔룡동 25,257명 | |
풍호동 24,908명 | |
자은동 20,273명 | |
교방동 19,022명 | |
동읍 18,585명 | |
오동동 18,299명 | |
석동 17,135 | |
석전동 16,032명 | |
충무동 15,757명 | |
현동 13,602명 | |
웅천동 13,558명 | |
반월중앙동 13,361명 | |
진동면 11,647명 | |
산호동 11,527명 | |
문화동 10,915명 | |
경화동 10,581명 | |
양덕1동 10,475명 | |
회원1동 9,668명 | |
회원2동 9,644명 | |
덕산동 9,336명 | |
자산동 9,189명 | |
구암2동 8,888명 | |
합성1동 8,754명 | |
완월동 8,573명 | |
이동 8,354명 | |
구암1동 8,324명 | |
여좌동 7,901명 | |
웅동1동 7,680명 | |
웅남동 7,184명 | |
합성2동 7,034명 | |
병암동 6,983명 | |
대산면 6,721명 | |
합포동 6,679명 | |
회성동 5,302명 | |
가포동 4,371명 | |
구산면 3,957명 | |
진전면 3,667명 | |
태백동 3,524명 | |
진북면 3,136명 | |
봉암동 2,911명 | |
2024년 6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각 행정동별 색깔은 각각 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 지역임. |
통합 직후에는 수원시의 인구를 추월하여 잠시 동안 전국 기초자치단체 1위였으나, 다시 감소하여 1위 자리를 내주고 2010년대 수도권 집중화로 인하여 고양시와 용인시의 인구가 창원을 따돌리면서 현재는 특례시 중 인구 순위 4위이다.[53] 그래도 여전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54]
2023년 11월 기준 창원시의 인구는 101만마저 붕괴하는 등 인구 감소세가 매우 심각하다. 이 같은 인구 감소 추세로는 특례시의 기준인 인구 100만의 붕괴가 기정 사실이기 때문에 창원시청에서도 이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세로는 2025년 100만 인구가 무너지며 그 후로도 계속 줄어들 예정이라 특례시 기준이 하향되지 않는 이상 특례시 박탈이 불가피하다.
인구 감소의 첫 번째 원인은 주요 산업인 조선, 기계,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지역 내 일자리 감소가 크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여타 지방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 문제 때문이다. 일자리가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막 학령 인구를 벗어난 다수의 20대들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추세가 창원에서 특히 극심하다. 2023년 하반기에는 기초지자체 인구감소율 전국 1위를 경신하기도할만큼 심각한 인구감소율을 보여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 번째로는 비싼 집값을 피해 상대적으로 공동주택의 공실이 많아 저렴한 집값의 인근 지역 김해의 장유나 진영[55], 양산 등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5.1. 의창구, 성산구
의창구 · 성산구 인구추이 |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동면[56], 북면, 대산면, 상남면, 웅남면 |
1966년 96,506명 |
1970년 88,692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
1975년 87,141명 |
1976년 9월 1일 舊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승격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창원시 승격 |
1980년 149,520명 |
1985년 207,591명 |
1990년 357,794명 |
1995년 1월 1일 창원군 폐지로 동면, 북면, 대산면 → 창원시 동면, 북면, 대산면으로 조정[57] |
1995년 481,694명 |
2000년 517,410명 |
2005년 501,705명 |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옛 창원시 일대를 성산구, 의창구로 분구 |
2010년 502,720명[2010구창원] |
2015년 490,870명[2015구창원] |
2020년 476,978명[2020구창원] |
2021년 7월 1일 의창구 일부 → 성산구 편입 |
2024년 7월 455,541명[현재구창원]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
그러나 외환 위기를 거치며 2000년대부터 인구 증가와 감소가 반복되는 상황이었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인구 감소세가 심각한 실정이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창원시는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보다도 집값이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산시는 아파트 수가 옛 창원시에 비해 적었고, 진해시는 군사도시로서 공동주택 개발이 고도 제한이 걸린 채 개발되다 보니 창원의 인구를 많이 흡수하지 못했고[64] 창원에서 유출된 인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층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부산 및 창원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김해시로 상당 부분 이동하여, 현재 옛 창원시 시가지 인구는 김해시 시가지 인구보다 못 미치는 실정이 되었다.
성산구의 경우 현대로템, LG전자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버티고 있지만, 의창구는 정주요건이 성산구에 비해 안 좋고 상대적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아 그 감소세가 더욱 가파르기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의창구, 성산구 읍면동별 인구 #====
동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8,104명 |
1970년 15,887명 |
1975년 15,954명 |
1980년 14,849명 |
1985년 13,553명 |
1990년 13,925명 |
1995년 3월 2일 창원시 동면 → 동읍 승격[65] |
1995년 16,387명 |
2000년 22,890명 |
2005년 23,866명 |
2010년 23,673명 |
2015년 23,038명 |
2020년 20,051명 |
2024년 6월 18,58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북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6,614명 |
1970년 14,556명 |
1975년 12,717명 |
1980년 10,692명 |
1985년 9,583명 |
1990년 9,809명 |
1995년 9,529명 |
2000년 11,755명 |
2005년 11,334명 |
2010년 11,705명 |
2015년 28,932명 |
2020년 43,411명 |
2024년 6월 43,04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5만 명 |
대산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8,676명 |
1970년 15,941명 |
1975년 14,231명 |
1980년 12,303명 |
1985년 10,947명 |
1990년 10,837명 |
1995년 9,537명 |
2000년 8,920명 |
2005년 8,037명 |
2010년 7,975명 |
2015년 7,420명 |
2020년 7,225명 |
2024년 6월 6,72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의창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3,586명 |
1970년 14,167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창원면 → 의창1동, 의창2동 분리 |
1975년 10,830명 |
1976년 4월 1일 의창1동 → 의창동 개칭 1980년 4월 1일 의창동 → 의안동, 동정동, 소계동 분동 |
1980년 22,768명[1980의창동] |
1985년 27,353명[1985의창동] |
1990년 37,685명[1990의창동] |
1995년 3월 1일 의안동 → 의안동, 도계동 분동 |
1995년 49,945명[1995의창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의안동 + 동정동 + 소계동 → 의창동 합동 |
2000년 39,602명 |
2005년 39,264명 |
2010년 37,570명 |
2015년 38,178명 |
2020년 50,992명 |
2024년 6월 48,84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
팔룡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창원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창원면 → 의창1동, 의창2동 분리 |
1975년 11,005명 |
1976년 4월 1일 의창2동 → 팔용동 개칭 1980년 4월 1일 팔용동 → 팔용동, 두대동 분동 |
1980년 5,800명 |
1985년 6,287명 |
1990년 8,159명 |
1995년 16,438명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팔용동 + 대원동 → 팔룡동 합동 |
2000년 45,299명 |
2005년 44,304명 |
2010년 46,118명 |
2015년 38,989명 |
2020년 37,958명 |
2021년 7월 1일 팔룡동 일부 → 성산구 중앙동 편입 |
2024년 6월 25,25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75만 명 |
명곡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
1975년 3,505명 |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봉림동, 반송동 분동 |
1980년 3,207명 |
1985년 12,242명 |
1990년 41,573명 |
1991년 8월 28일 상북동 → 명서동, 봉곡동 분동 1992년 9월 1일 명서동 → 명서1동, 명서2동 분동 1995년 3월 1일 의안동 → 의안동, 도계동 분동 |
1995년 60,167명[1995명곡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명서1동 + 명서2동 + 도계동 → 명곡동 합동 |
2000년 60,994명 |
2005년 57,086명 |
2010년 53,202명 |
2015년 52,374명 |
2020년 42,402명 |
2024년 6월 38,91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6.25만 명 |
봉림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봉림동, 반송동 분동 |
1980년 1,560명 |
1985년 8월 1일 봉림동 → 사림동 개칭 |
1985년 3,257명 |
1990년 11,780명 |
1991년 8월 28일 상북동 → 명서동, 봉곡동 분동 |
1995년 33,132명[1995봉림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사림동 + 봉곡동 → 봉림동 합동 |
2000년 38,212명 |
2005년 38,278명 |
2010년 34,224명 |
2015년 37,061명 |
2020년 30,336명 |
2024년 6월 29,69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반송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80년 4월 1일 상북동 → 상북동, 반송동 분동 |
1980년 12,400명 |
1985년 20,753명 |
1990년 47,650명 |
1991년 8월 28일 반송동 → 반림동, 반지동 분동 |
1995년 51,731명[1995반송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반림동 + 반지동 → 반송동 합동 |
2000년 47,881명 |
2005년 34,870명 |
2010년 50,931명 |
2015년 47,831명 |
2020년 41,935명 |
2024년 6월 39,24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25만 명 |
용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5,442명 |
1970년 14,017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
1975년 10,381명 |
1980년 4월 1일 용지동 → 용지동, 토월동, 내동, 외동 분동 |
1980년 8,783명[1980용지동] |
1985년 8월 1일 용지동 → 용호동 개칭 |
1985년 18,772명[1985용지동] |
1990년 5월 1일 토월동 → 신월동, 사파동 분동 |
1990년 41,714명[1990용지동] |
1995년 42,318명[1995용지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용호동 + 신월동 → 용지동 합동 |
2000년 40,212명 |
2005년 40,163명 |
2010년 37,180명 |
2015년 30,479명 |
2020년 30,033명 |
2024년 6월 26,52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25만 명 |
중앙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80년 4월 1일 용지동 → 용지동, 토월동, 내동, 외동 분동 팔용동 → 팔용동, 두대동 분동 |
1980년 23,473명[1980중앙동] |
1985년 8월 1일 두대동 → 대원동 개칭 외동 → 중앙동 개칭 |
1985년 37,276명[1985중앙동] |
1990년 46,912명[1990중앙동] |
1995년 43,262명[1995중앙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팔용동 + 대원동 → 팔룡동 합동(대원동 인구 일시 제외) 내동 + 중앙동 → 중앙동 합동 |
2000년 25,806명 |
2005년 25,482명 |
2010년 24,689명 |
2015년 24,638명 |
2020년 22,953명 |
2021년 7월 1일 팔룡동 일부 → 중앙동 편입 |
2024년 6월 36,50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75만 명 |
상남동 인구 추이 (1995년~현재) |
1995년 3월 1일 사파동 → 사파동, 상남동 분동 |
1995년 35,240명 |
2000년 35,923명 |
2005년 35,206명 |
2010년 34,364명 |
2015년 31,998명 |
2020년 28,257명 |
2024년 6월 26,50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
사파동 인구 추이 (1990년~현재) |
1990년 5월 1일 토월동 → 신월동, 사파동 분동 |
1990년 20,255명 |
1994년 9월 1일 남산동 → 남산동, 대방동 분동 1995년 3월 1일 사파동 → 사파동, 상남동 분동 |
1995년 59,645명[1995사파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사파동 + 대방동 → 사파동 합동 |
2000년 55,990명 |
2005년 59,774명 |
2010년 57,804명 |
2015년 53,826명 |
2020년 45,636명 |
2024년 6월 44,94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6만 명 |
가음정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80년 4월 1일 성주동 → 성주동, 가음정동, 남산동 분동 |
1980년 10,356명[1980가음정동] |
1985년 22,303명[1985가음정동] |
1990년 39,672명[1990가음정동] |
1994년 9월 1일 남산동 → 남산동, 대방동 분동 |
1995년 55,544명[1995가음정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가음정동 + 남산동 → 가음정동 합동 |
2000년 54,967명 |
2005년 50,546명 |
2010년 46,378명 |
2015년 38,133명 |
2020년 41,241명 |
2024년 6월 37,68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
성주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상남면 → 상북동, 용지동, 성주동 분리 |
1975년 5,883명 |
1980년 4월 1일 성주동 → 성주동, 남산동, 가음정동 분동 |
1980년 4,811명 |
1985년 4,629명 |
1990년 5,161명 |
1995년 4,502명 |
2000년 16,794명 |
2005년 22,992명 |
2010년 26,589명 |
2015년 28,321명 |
2020년 26,615명 |
2024년 6월 25,85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
웅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4,084명 |
1970년 14,124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남면 → 마산시 편입 및 폐지 웅남면 → 웅남1동, 웅남2동 분리 |
1975년 12,540명[1975웅남동] |
1980년 4월 1일 웅남1동 → 웅남동 개칭 웅남2동 → 양곡동, 삼귀동 분동 |
1980년 18,518명[1980웅남동] |
1985년 8월 1일 양곡동 → 신촌동 개칭 |
1985년 20,636명[1985웅남동] |
1990년 22,662명[1990웅남동] |
1995년 3월 1일 웅남동 + 신촌동 → 신촌동 합동 |
1995년 16,285명[1995웅남동] |
1997년 7월 14일 창원시 대동제 실시 신촌동 + 삼귀동 → 웅남동 합동 |
2000년 12,165명 |
2005년 10,503명 |
2010년 10,318명 |
2015년 9,652명 |
2020년 7,933명 |
2024년 6월 7,18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5.2.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 인구추이 |
경상남도 마산시 및 창원군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
1966년 209,204명 |
1970년 239,973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상남면, 웅남면, 창원면, 구산면 일부[91], 내서면 일부[92] → 마산시 편입 창원면을 의창1동, 의창2동으로, 웅남면을 웅남1동, 웅남2동으로, 상남면을 상북동, 성주동, 용지동으로 전환 |
1975년 357,664명[93] |
1980년 425,015명 |
1976년 9월 1일 마산시 中 현재 성산구·의창구 동 지역 →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설치 1980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 마산시 의창동 → 경상남도 창원시 승격 분리 |
1985년 485,052명 |
1989년 1월 1일 함안군 여항면 산서출장소 → 진전면 편입 1990년 7월 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설치 |
1990년 531,374명[1990구마산] |
1995년 1월 1일 창원군 일부[95] → 마산시 합포구 일부[96], 창원군 내서면 → 회원구 내서면[97] |
1995년 441,242명[1995구마산] |
2000년 434,371명[2000구마산] |
2000년 12월 31일 마산시 회원구, 합포구 폐지 |
2005년 428,069명 |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마산시 일대를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로 분구 |
2010년 411,602명[2010구마산] |
2015년 393,461명[2015구마산] |
2020년 367,005명[2020구마산] |
2024년 7월 358,194명[현재구마산]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5만 명 |
2010년대에 들어서부터 북마산 노후 주택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고, 한일합섬 터 및, 한국철강 부지가 초대형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며 인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인구 감소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로 남아 있다. 창원에서 양덕2동, 가포지구, 보금자리 주택 등으로 활발한 재개발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과거 기대를 많이 받았던 로봇랜드는 2009년부터 시작된 사업임에도 아직까지 잇다른 문제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며# 마산해양신도시 역시 2003년부터 개발계획이 수립됐지만 4번이나 민간사업자를 공모했음에도 실패하여 2019년 완공 이후 2023년 현재까지도 아직 텅빈 공터에 불과한 상태라 전망이 좋지 않다.
====#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읍면동별 인구 #====
구산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3,950명 |
1970년 12,936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구산면 덕동리·예곡리·우산리·현동리 → 마산시 편입 및 현동 신설 |
1975년 8,899명 |
1980년 7,846명 |
1985년 6,901명 |
1990년 6,768명 |
1995년 5,531명 |
2000년 5,312명 |
2005년 4,921명 |
2010년 5,427명 |
2015년 4,865명 |
2020년 4,318명 |
2024년 3월 3,97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
진동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8,954명 |
1970년 8,029명 |
1975년 8,921명 |
1980년 9,178명 |
1985년 9,233명 |
1990년 9,678명 |
1995년 9,230명 |
2000년 9,433명 |
2005년 9,320명 |
2010년 9,978명 |
2015년 12,688명 |
2020년 12,349명 |
2024년 3월 11,70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진북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8,089명 |
1970년 7,084명 |
1975년 6,524명 |
1980년 5,649명 |
1985년 4,977명 |
1990년 4,937명 |
1995년 4,977명 |
2000년 4,760명 |
2005년 4,851명 |
2010년 4,343명 |
2015년 4,080명 |
2020년 3,544명 |
2024년 3월 3,16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8천 명 |
진전면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0,179명 |
1970년 8,841명 |
1975년 8,352명 |
1980년 7,311명 |
1985년 6,366명 |
1989년 1월 1일 함안군 여항면 산서출장소 → 의창군 진전면 편입 및 폐지 |
1990년 6,643명 |
1995년 5,467명 |
2000년 5,619명 |
2005년 4,935명 |
2010년 4,556명 |
2015년 4,393명 |
2020년 4,004명 |
2024년 3월 3,68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
현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구산면 덕동리·예곡리·우산리·현동리 → 마산시 편입 및 현동 신설 |
1975년 4,916명 |
1980년 4,941명 |
1985년 4,408명 |
1990년 4,048명 |
1995년 3,835명 |
2000년 3,398명 |
2005년 2,448명 |
2010년 2,274명 |
2015년 6,677명 |
2020년 14,293명 |
2024년 3월 13,68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
가포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가포동(법정동) → 가포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가포동 → 가포동, 가율동 분동 |
1966년 1,663명[1966가포동] |
1970년 1월 1일 가포동 → 가포1동 개칭 가율동 → 가포2동 개칭 |
1970년 1,682명[1970가포동] |
197?년 ??월 ??일 가포1동 + 가포2동 → 가포동 합동 |
1975년 3,099명 |
1980년 2,677명 |
1985년 2,680명 |
1990년 3,850명 |
1995년 3,122명 |
2000년 2,489명 |
2005년 2,204명 |
2010년 1,770명 |
2015년 1,192명 |
2020년 941명 |
2024년 3월 3,37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천 명 |
월영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내동 + 월영동 + 화영동 + 해운동 → 월영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월영동 → 월영동, 월포동 분동 |
1966년 6,832명 |
1970년 1월 1일 월영동 → 월영2동 개칭 |
1970년 10,402명 |
1975년 15,030명 |
1980년 15,706명 |
1985년 16,621명 |
1990년 18,594명 |
1995년 23,906명 |
1997년 5월 12일 월영2동 → 월영동 개칭 |
2000년 39,901명 |
2005년 38,665명 |
2010년 34,376명 |
2015년 30,674명 |
2020년 35,173명 |
2024년 3월 41,42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25만 명 |
문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외동 + 두월동3가 + 월남동3가~5가 + 유록동 + 창포동1가~3가 + 청계동 + 홍문동 → 창포동 신설 대창동 + 두월동1가 + 두월동2가 + 문화동 + 신창동 + 월남동1가 + 월남동2가 + 평화동 → 월남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월영동 → 월영동, 월포동 분동 |
1966년 15,278명[1966문화동] |
1970년 1월 1일 월포동 → 월영1동 개칭 |
1970년 16,173명[1970문화동] |
1975년 20,603명[1975문화동] |
1980년 19,494명[1980문화동] |
1985년 20,207명[1985문화동] |
1990년 20,112명[1990문화동] |
1995년 18,635명[1995문화동] |
1997년 5월 12일 월영1동 + 창포동 + 월남동 → 문화동 합동 |
2000년 17,071명 |
2005년 15,406명 |
2010년 13,673명 |
2015년 12,873명 |
2020년 11,277명 |
2024년 3월 10,97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반월중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대성동1가 + 반월동 + 신월동 + 월포동 + 장군동1가 + 중앙동1가 → 반월동 신설 대성동2가 + 신흥동 + 장군동2가 + 장군동3가 + 중앙동2가 + 중앙동3가 → 중앙동 신설 1963년 4월 15일 중앙동 → 장군동 개칭 |
1966년 18,597명[1966반월중앙동] |
1970년 1월 1일 장군동 → 중앙동 개칭 |
1970년 19,174명[1970반월중앙동] |
1975년 26,042명[1975반월중앙동] |
1980년 24,138명[1980반월중앙동] |
1985년 27,040명[1985반월중앙동] |
1990년 27,388명[1990반월중앙동] |
1995년 22,049명[1995반월중앙동] |
2000년 20,442명[2000반월중앙동] |
2005년 13,885명[2005반월중앙동] |
2010년 18,550명[2010반월중앙동] |
2015년 17,587명[2015반월중앙동] |
2017년 1월 1일 반월동 + 중앙동 → 반월중앙동 합동 |
2020년 14,882명 |
2024년 3월 13,42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
완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완월동 + 장군동4가 + 장군동5가 → 완월동 신설 |
1966년 9,357명 |
1970년 11,895명 |
1975년 16,873명 |
1980년 16,786명 |
1985년 17,531명 |
1990년 18,202명 |
1995년 16,330명 |
2000년 13,558명 |
2005년 13,402명 |
2010년 12,280명 |
2015년 11,180명 |
2020년 9,274명 |
2024년 3월 8,57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자산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자산동(법정동) → 자산동(행정동) |
1966년 9,585명 |
1970년 11,335명 |
1975년 15,418명 |
1980년 15,803명 |
1985년 15,450명 |
1990년 18,507명 |
1995년 18,576명 |
2000년 17,091명 |
2005년 16,352명 |
2010년 14,563명 |
2015년 13,103명 |
2020년 10,874명 |
2024년 3월 9,27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교방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교방동, 교원동, 상남동(법정동) → 교방동, 교원동, 상남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상남동 → 상남동, 상원동 분동 |
1966년 17,701명[1966교방동] |
1970년 1월 1일 상남동 → 상남1동 개칭 |
1970년 20,353명[1970교방동] |
1975년 28,957명[1975교방동] |
1980년 31,270명[1980교방동] |
1985년 34,741명[1985교방동] |
1990년 36,419명[1990교방동] |
1995년 28,688명[1995교방동] |
1997년 5월 12일 상남1동 + 교원동 → 노산동 합동 |
2000년 24,310명[2000교방동] |
2005년 19,199명[2005교방동] |
2010년 19,261명[2010교방동] |
2015년 18,441명[2015교방동] |
2020년 1월 1일 노산동 + 교방동 → 교방동 합동 |
2020년 15,508명 |
2024년 3월 19,05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
오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서성동 + 수성동 + 신포동1가 + 신포동2가 → 서성동 신설 남성동 + 동성동 → 동성동 합동 부림동 + 창동 → 부림동 신설 추산동, 중성동, 성호동, 오동동(법정동) → 추산동, 중성동, 성호동, 오동동(행정동) |
1966년 37,615명[1966오동동] |
1970년 39,046명[1970오동동] |
1975년 50,612명[1975오동동] |
1980년 42,843명[1980오동동] |
1985년 39,179명[1985오동동] |
1990년 40,884명[1990오동동] |
1995년 23,159명[1995오동동] |
1997년 5월 12일 서성동 + 동성동 + 부림동 → 동서동 합동 추산동 + 성호동 → 성호동 합동 중성동 + 오동동 → 오동동 합동 |
2000년 18,660명[2000오동동] |
2005년 20,868명[2005오동동] |
2010년 21,330명[2010오동동] |
2015년 22,358명[2015오동동] |
2017년 1월 1일 동서동 + 성호동 + 오동동 → 오동동 합동 |
2020년 19,688명 |
2024년 3월 18,46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
합포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4월 15일 상남동 → 상남동, 상원동 분동 산호동 → 산호동, 합포동 분동 |
1966년 8,958명[1966합포동] |
1970년 1월 1일 상원동 → 상남2동 개칭 합포동 → 산호2동 개칭 |
1970년 15,598명[1970합포동] |
1975년 20,726명[1975합포동] |
1980년 18,482명[1980합포동] |
1985년 18,726명[1985합포동] |
1990년 18,622명[1990합포동] |
1995년 11,471명[1995합포동] |
1997년 5월 12일 상남2동 + 산호2동 → 합포동 합동 |
2000년 11,116명 |
2005년 9,180명 |
2010년 8,465명 |
2015년 7,585명 |
2020년 6,921명 |
2024년 3월 6,73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산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산호동(법정동) → 산호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산호동 → 산호동, 합포동 분동 |
1966년 7,760명 |
1970년 1월 1일 산호동 → 산호1동 개칭 |
1970년 5,493명 |
1975년 16,686명 |
1980년 24,835명 |
1985년 29,830명 |
1990년 30,922명 |
1995년 20,772명 |
1997년 5월 12일 산호1동 → 산호동 개칭 |
2000년 19,934명 |
2005년 17,584명 |
2010년 15,574명 |
2015년 13,974명 |
2020년 12,670명 |
2024년 3월 11,63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내서읍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3,432명 |
1970년 16,193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두척리·회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회성동 신설 창원군 내서면 구암리·합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합성동 신설 |
1975년 7,195명 |
1980년 8,280명 |
1985년 8,829명 |
1990년 9,617명 |
1995년 3월 2일 마산시 회원구 내서면 → 내서읍 승격 |
1995년 30,054명 |
2000년 50,731명 |
2005년 74,236명 |
2010년 73,767명 |
2015년 71,820명 |
2020년 64,835명 |
2024년 3월 60,34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5만 명 |
회원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회원동(법정동) → 회원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회원동 → 회원동, 회산동 분동 |
1966년 5,083명 |
1970년 1월 1일 회산동 → 회원1동 개칭 |
1970년 6,202명 |
1975년 13,456명 |
1980년 23,528명 |
1985년 22,755명 |
1990년 25,185명 |
1995년 18,912명 |
2000년 15,272명 |
2005년 13,785명 |
2010년 13,408명 |
2015년 12,115명 |
2020년 10,504명 |
2024년 3월 9,68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회원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4월 15일 회원동 → 회원동, 회산동 분동 |
1966년 8,592명 |
1970년 1월 1일 회원동 → 회원2동 개칭 |
1970년 12,016명 |
1975년 15,767명 |
1980년 16,870명 |
1985년 23,918명 |
1990년 32,112명 |
1995년 24,235명 |
2000년 19,370명 |
2005년 16,979명 |
2010년 15,180명 |
2015년 13,471명 |
2020년 9,994명 |
2024년 3월 9,68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석전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석전동(법정동) → 석전동(행정동) |
1966년 2,431명 |
1970년 5,120명 |
1975년 11,626명 |
1980년 23,517명 |
1983년 10월 1일 석전동 → 석전1동, 석전2동 분동 |
1985년 31,977명[1985석전동] |
1990년 36,284명[1990석전동] |
1995년 28,335명[1995석전동] |
2000년 23,170명[2000석전동] |
2005년 21,198명[2005석전동] |
2010년 18,955명[2010석전동] |
2015년 17,344명[2015석전동] |
2017년 1월 1일 석전1동 + 석전2동 → 석전동 합동 |
2020년 17,142명 |
2024년 3월 16,14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75만 명 |
회성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두척리·회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회성동 신설 |
1975년 8,510명 |
1980년 11,469명 |
1985년 15,686명 |
1990년 18,873명 |
1995년 14,688명 |
2000년 11,615명 |
2005년 9,943명 |
2010년 8,729명 |
2015년 7,698명 |
2020년 6,298명 |
2024년 3월 5,38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양덕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양덕동(법정동) → 양덕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양덕동 → 양덕동, 율림동 분동 |
1966년 1,584명 |
1970년 1월 1일 양덕동 → 양덕1동 개칭 |
1970년 6,330명 |
1975년 22,717명 |
1979년 5월 1일 양덕1동 → 양덕1동, 양덕3동 분동 |
1980년 15,195명 |
1985년 19,542명 |
1990년 21,095명 |
1995년 17,618명 |
2000년 16,201명 |
2005년 15,143명 |
2010년 13,991명 |
2015년 12,953명 |
2020년 11,289명 |
2024년 3월 10,53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양덕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4월 15일 양덕동 → 양덕동, 율림동 분동 |
1966년 1,598명 |
1970년 1월 1일 율림동 → 양덕2동 개칭 |
1970년 3,254명 |
1975년 6,064명 |
1979년 5월 1일 양덕1동 → 양덕1동, 양덕3동 분동 |
1980년 24,355명[1980양덕2동] |
1985년 24,196명[1985양덕2동] |
1990년 24,533명[1990양덕2동] |
1995년 16,435명[1995양덕2동] |
1997년 5월 12일 양덕2동 + 양덕3동 일부 → 양덕2동 합동 |
2000년 20,013명 |
2005년 24,898명 |
2010년 29,751명 |
2015년 31,491명 |
2020년 31,851명 |
2024년 3월 32,31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합성1동 인구 추이 (1975년~현재)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내서면 구암리·합성리 → 마산시 편입 및 합성동 신설 |
1975년 11,627명 |
1979년 5월 1일 합성동 →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
1980년 31,432명 |
1981년 2월 15일 합성1동 → 합성동 개칭 1982년 9월 1일 합성동 → (신)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
1985년 20,270명 |
1990년 24,482명 |
1995년 18,329명 |
2000년 15,246명 |
2005년 12,625명 |
2010년 10,981명 |
2015년 7,895명 |
2020년 9,479명 |
2024년 3월 8,80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합성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
1982년 9월 1일 합성동 → (신)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
1985년 19,413명 |
1990년 22,421명 |
1995년 16,049명 |
2000년 12,654명 |
2005년 12,570명 |
2010년 10,973명 |
2015년 10,181명 |
2020년 7,772명 |
2024년 3월 7,08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구암1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9년 5월 1일 합성동 → 합성1동, 합성2동 분동 |
1980년 14,768명 |
1981년 2월 15일 합성2동 → 구암동 개칭 1985년 10월 21일 구암동→ 구암1동, 구암2동 분동 |
1985년 17,129명 |
1990년 22,358명 |
1995년 19,678명 |
2000년 17,002명 |
2005년 14,740명 |
2010년 12,612명 |
2015년 11,244명 |
2020년 9,082명 |
2024년 3월 8,41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구암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
1985년 10월 21일 구암동→ 구암1동, 구암2동 분동 |
1985년 14,312명 |
1990년 17,406명 |
1995년 12,738명 |
2000년 13,816명 |
2005년 12,526명 |
2010년 12,029명 |
2015년 11,295명 |
2020년 9,674명 |
2024년 3월 8,94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
봉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8년 8월 15일 마산시 행정동제 실시 봉암동(법정동) → 봉암동(행정동) 1963년 4월 15일 봉암동 → 봉암동, 봉덕동 분동 |
1966년 1,872명[1966봉암동] |
1970년 1월 1일 봉암동 → 봉암1동 개칭 봉덕동 → 봉암2동 개칭 |
1970년 2,817명[1970봉암동] |
197?년 ??월 ??일 봉암1동 + 봉암2동 → 봉암동 합동 |
1975년 5,195명 |
1980년 8,642명 |
1985년 13,135명 |
1990년 11,434명 |
1995년 8,413명 |
1997년 5월 12일 양덕3동 일부 + 봉암동 → 봉암동 합동 |
2000년 6,187명 |
2005년 6,206명 |
2010년 4,812명 |
2015년 4,284명 |
2020년 3,369명 |
2024년 3월 2,95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5.3. 진해구
진해구 인구추이 |
경상남도 진해시 및 창원군 웅천면, 웅동면 |
1966년 98,266명 |
1970년 106,358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및 웅천1동, 웅천2동 분동 |
1975년 111,097명 |
1980년 119,150명 |
1983년 2월 15일 창원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웅동1동, 웅동2동 분동 |
1985년 121,341명 |
1990년 120,212명 |
1995년 125,997명 |
2000년 127,578명 |
2005년 150,063명 |
2010년 7월 1일 창원시+마산시+진해시 통합 → 진해시 일대에 진해구 설치 |
2010년 175,859명 |
2015년 185,733명 |
2020년 192,755명 |
2024년 7월 189,44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0만 명 |
====# 진해구 행정동별 인구 #====
충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충무로1가동~충무로6가동 신설 |
1966년 26,214명[1966충무동] |
1970년 27,708명[1970충무동] |
1975년 28,846명[1975충무동] |
1980년 28,717명[1980충무동] |
1985년 28,299명[1985충무동] |
1990년 25,717명[1990충무동] |
1995년 23,975명[1995충무동] |
1996년 7월 1일 충무로1가동 + 충무로4가동 → 중앙동 합동 충무로2가동 + 충무로3가동 → 태평동 합동 충무로5가동 + 충무로6가동 → 충무동 합동 |
2000년 20,698명[2000충무동] |
2005년 18,353명[2005충무동] |
2010년 17,368명[2010충무동] |
2015년 20,492명[2015충무동] |
2020년 1월 1일 중앙동 + 태평동 + 충무동 → 충무동 합동 |
2020년 17,355명 |
2024년 6월 17,75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여좌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여좌1가동, 여좌2가동 신설 |
1966년 15,930명[1966여좌동] |
1970년 19,564명[1970여좌동] |
1975년 21,564명[1975여좌동] |
1980년 22,685명[1980여좌동] |
1985년 22,780명[1985여좌동] |
1990년 21,372명[1990여좌동] |
1995년 16,696명[1995여좌동] |
1996년 7월 1일 여좌1가동 + 여좌2가동 → 여좌동 합동 |
2000년 15,858명 |
2005년 13,966명 |
2010년 13,151명 |
2015년 11,050명 |
2020년 8,754명 |
2024년 6월 7,90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태백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여좌3가동, 태백동 신설 |
1966년 10,116명[1966태백동] |
1970년 11,404명[1970태백동] |
1975년 12,077명[1975태백동] |
1980년 14,205명[1980태백동] |
1985년 14,483명[1985태백동] |
1990년 13,779명[1990태백동] |
1995년 11,184명[1995태백동] |
1996년 7월 1일 여좌3가동 + 태백동 → 태백동 합동 |
2000년 9,272명 |
2005년 8,222명 |
2010년 7,494명 |
2015년 6,552명 |
2020년 5,040명 |
2024년 6월 3,52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
경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경화1가동, 경화2가동 신설 |
1966년 7,863명[1966경화동] |
1970년 8,583명[1970경화동] |
1975년 9,097명[1975경화동] |
1980년 11,420명[1980경화동] |
1985년 11,878명[1985경화동] |
1990년 12,015명[1990경화동] |
1995년 10,967명[1995경화동] |
1996년 7월 1일 경화1가동 + 경화2가동 → 경화동 합동 |
2000년 9,951명 |
2005년 9,411명 |
2010년 11,798명 |
2015년 10,733명 |
2020년 11,402명 |
2024년 6월 10,58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병암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경화3가동 신설 |
1966년 5,080명 |
1970년 5,644명 |
1975년 5,809명 |
1980년 6,403명 |
1985년 6,998명 |
1990년 8,762명 |
1995년 8,931명 |
1996년 7월 1일 경화3가동 → 병암동 개칭 |
2000년 8,914명 |
2005년 8,393명 |
2010년 8,744명 |
2015년 8,635명 |
2020년 7,545명 |
2024년 6월 6,98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9천 명 |
석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석동 신설 |
1966년 987명 |
1970년 1,024명 |
1975년 1,121명 |
1980년 1,291명 |
1985년 1,634명 |
1990년 1,897명 |
1995년 2,257명 |
2000년 3,387명 |
2005년 8,738명 |
2010년 18,838명 |
2015년 19,174명 |
2020년 17,463명 |
2024년 6월 17,13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이동 신설 |
1966년 4,526명 |
1970년 5,204명 |
1975년 5,642명 |
1980년 6,814명 |
1985년 6,937명 |
1990년 6,968명 |
1995년 12,281명 |
2000년 12,584명 |
2005년 11,849명 |
2010년 11,378명 |
2015년 10,820명 |
2020년 8,576명 |
2024년 6월 8,35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자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자은동 신설 |
1966년 3,367명 |
1970년 3,799명 |
1975년 4,011명 |
1980년 5,496명 |
1985년 5,924명 |
1990년 6,307명 |
1995년 10,265명 |
1998년 9월 14일 자은동 일부 → 덕산동 편입 |
2000년 12,088명 |
2005년 12,291명 |
2010년 12,514명 |
2015년 15,539명 |
2020년 21,460명 |
2024년 6월 20,27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덕산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덕산동 신설 |
1966년 2,336명 |
1970년 2,616명 |
1975년 2,759명 |
1980년 2,816명 |
1985년 2,810명 |
1990년 3,980명 |
1995년 3,960명 |
1998년 9월 14일 자은동 일부, 풍호동 일부 → 덕산동 편입 |
2000년 6,977명 |
2005년 8,233명 |
2010년 11,602명 |
2015년 12,080명 |
2020년 10,224명 |
2024년 6월 9,36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풍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55년 9월 1일 창원군 진해읍 → 진해시 승격 풍호동, 장천동, 행암동 신설 |
1966년 4,030명[1966풍호동] |
1970년 4,321명[1970풍호동] |
1975년 4,497명[1975풍호동] |
1980년 4,523명[1980풍호동] |
1982년 9월 1일 웅천2동 일부 → 행암동 편입 |
1985년 4,474명[1985풍호동] |
1990년 4,192명[1990풍호동] |
1995년 11,158명[1995풍호동] |
1996년 7월 1일 장천동 + 행암동 → 장암동 합동 1998년 9월 14일 풍호동 일부 + 장암동 → 풍호동 합동 |
2000년 11,812명 |
2005년 13,964명 |
2010년 18,345명 |
2015년 23,222명 |
2020년 26,083명 |
2024년 6월 24,90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
웅천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9,161명 |
1970년 8,403명 |
1973년 7월 1일 창원군 웅천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천면 북부리·서중리·성내리·남문리·제덕리·수도리·연도리 → 웅천1동 신설 웅천면 명동리·죽곡리·원포리 → 웅천2동 신설 |
1975년 8,258명[1975웅천동] |
1980년 7,834명[1980웅천동] |
1982년 9월 1일 웅천2동 일부 → 행암동 편입 |
1985년 7,416명[1985웅천동] |
1990년 7,084명[1990웅천동] |
1995년 5,914명[1995웅천동] |
1996년 7월 1일 웅천1동 + 웅천2동 → 웅천동 합동 |
2000년 5,349명 |
2005년 5,385명 |
2010년 5,039명 |
2015년 4,196명 |
2020년 12,733명 |
2024년 6월 13,55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
웅동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8,609명 |
1970년 8,088명 |
1975년 7,457명 |
1980년 7,126명 |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동면 남양리·마천리·소사리·대장리·두동리 → 웅동1동 신설 웅동면 청안리·안골리·용원리·가주리 → 웅동2동 신설 |
1985년 3,539명 |
1990년 3,747명 |
1995년 3,813명 |
2000년 3,941명 |
2005년 6,610명 |
2010년 8,661명 |
2015년 8,492명 |
2020년 6,465명 |
2024년 6월 7,68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9천 명 |
웅동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
1983년 2월 15일 의창군 웅동면 → 진해시 편입 및 폐지 웅동면 남양리·마천리·소사리·대장리·두동리 → 웅동1동 신설 웅동면 청안리·안골리·용원리·가주리 → 웅동2동 신설 |
1985년 4,169명 |
1990년 4,392명 |
1995년 3,884명 |
2000년 6,747명 |
2005년 24,648명 |
2010년 30,927명 |
2015년 34,748명 |
2020년 39,655명 |
2024년 6월 43,62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5만 명 |
6. 교통
창원시의 교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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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교통 | }}}}}}}}} |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교통 문서 참고하십시오.
경남의 중심 도시인 만큼 교통이 전반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지만 도로 교통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창원시 시내버스는 시내를 오가는 핵심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 중이며, 그 이전에는 창원 도시철도가 계획되었다가 무산되었으나 2021년 들어 재추진되고 있다. 전국 최초로 고급간선급행버스체계(S-BRT)가 들어섰으며 2024년 5월 15일 원이대로 구간이 개통했고 3.15대로 구간도 착공할 예정이다. 이 노선은 추후 노면전차로 전환될 계획이다.
고속철도는 KTX 및 SRT가 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3개 역에 정차[214]할 정도로 정차 역사는 많지만, 문제는 경전선 KTX라 철도 이용 수요에 비해 운행 횟수가 현저히 적다. 수서평택고속철도(SRT)는 2023년 9월부터 왕복 2회(일 4회) 개통했으나 이것만으로는 창원의 철도 수요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국토교통부에서는 현재 경부고속선이 포화상태라 2027년 평택-오송 간 고속선로 복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증편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7. 경제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대한민국 경제 성장사에서 울산광역시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며, 현재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힘입어 기계 공업, 수출 산업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특히 외환 위기 당시 외화가 부족했던 국내에 많은 달러를 벌어다 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마산항은 한때 한국 수출 산업의 메카였으며, 거제 조선소들에게 전달되는 선박 관련 엔진, 기계 설비 상당 부분이 창원시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비앤지스틸), LG그룹(LG전자),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그룹(두산중공업
2024년 3월 창원국가산업단지 일대의 직장인들의 직무와 연차별 연봉에 대해 진학사 계열의 캐치TV가 거리 인터뷰를 가졌다. 생각보다 높은 연봉의 직장인이 많은 편이나, 창원과는 연이 없는 예체능계열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의 애환도 동시에 보여주며 창원시의 일장일단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상.
8. 관광
8.1. 관광지
<colbgcolor=#f35e19><colcolor=#fff> 용지호수공원 | 창원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로 창원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며 각종 예술제, 연등제, 음악회 등도 이곳에서 열린다. 호수의 음악분수가 예쁘다. 또 호수 내에서 8인승 보트도 탈 수 있으며, 여러 조형물 등이 있어 야경이 예쁜 곳으로도 꼽힌다. |
창원 옥계마을 | 창원 옥계마을에서는 해군부대와 풍호동과 창원해양공원이 보인다. 가끔 밤에 멸종위기종 수달을 볼 수 있다. 위치는 마산합포구 구산면 옥계리. |
창원의 집 | 200년 전, 순흥 안씨 5대조인 안두철 선생이 거주하던 조선시대 전통 한옥이다. |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 창원의 대표 카페 거리. 경남도청 인근에 위치해 있다. |
죽동마을 메타세콰이어 길 | 동읍 죽동마을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 길. 도심 외에 있어 풍경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잦다. |
창원실내체육관 | 창원 LG 세이커스의 홈구장으로 농구 도시 창원시의 농구 열기를 느낄 수 있다. |
창원축구센터 | 경남 FC와 창원시청 축구단의 홈구장이다. 비록 창원시청은 세미프로인 내셔널리그-K3리그에 있어 관심도가 떨어지고 프로 팀인 경남은 현재 K리그2에 있지만 과거에는 K리그1에서 돌풍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2018년 K리그1 준우승과 201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루며 큰 명예를 얻어내면서 이전보다 많이 알려졌다. 축구 전용 구장이다 보니 가장 좋은 시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
저도 콰이강의 다리 | 저도연륙교. 주변에 카페들이 많으며 야경이 예뻐 사진찍기 좋은 장소이다. |
안민고개 | 성산구와 진해구를 잇는 장복산 자락의 고갯길로 진해 시가지 야경이 뛰어나다. 봄철에는 벚꽃 명소 중 하나이다. |
마산 상상길 |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을 잇는 약 150m의 아름다운 거리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으며 많은 맛집들이 이곳에 위치한다. |
마산 어시장 | 230년의 전통을 가진 경남 최대의 어시장이다. |
마산로봇랜드 | 총 7천억의 사업비를 투자해 만들어진 로봇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이다. |
창원 돝섬 | 전국 최초의 해상 유원지. 동물원과 유희시설을 갖춘 명소였지만 현재는 위락 시설은 모두 제거되고 소규모의 휴양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
창원 NC 파크 |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으로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와 메이저리그 구장급 시설로 야구 시즌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야구장 건물에는 상점, 음식점, 야구 박물관, 카페 등이 위치해 있다. 구장 자체도 예쁘고, 주변 공원, 야구공 조형물, 메트로시티 등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에도 좋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주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꽉 차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
창동예술촌 | 창동은 과거에 경남의 명동으로 불리던 중심가다. 2000년을 전후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창동예술촌을 주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창원시는 창동 일대 빈 점포를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이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의 이름을 딴 문신예술골목, 마산 예술의 역사를 담은 마산예술흔적골목, 상점과 예술을 접목한 에꼴드창동골목이 차례로 생겨났다. |
창원해양공원 | 舊 진해해양공원. 높이 136m의 창원 솔라타워 외에 어류생태학습관, 해전사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 99m 짚트랙이 조성되었다. |
해양드라마 세트장 |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있는 곳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바닷가에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
진해루 | 해변공원 내에 있어 진해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귀산 카페거리 | 마창대교와 바닷가를 바라보는 푸드트럭, 카페,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특히 인스타 핫플, 데이트 명소로 유명하다. |
무학산, 장복산, 용추계곡&폭포, 성주사, 진동리유적, 진해우체국, 시티세븐, 문신미술관, 오동동거리, 경화시장, 주남저수지, 창원시 국제사격장 |
8.2. 주요 행사
- 진해 군항제: 창원시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행사. 일년에 딱 한 번 이때만큼은 진해구 전체가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한때 통합 후 제1회 창원 군항제로 변경하여 진행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원래대로 바꾸었다.
- 마산가고파국화축제: 국화가 유명한 마산 지역의 명성을 이용하여 대규모 꽃 축제를 매년 가을에 연다. 원래는 마산 앞바다의 돝섬 유원지에서 열었으나 섬이라는 특성상 입/퇴장에만 세 시간이 걸리는 헬게이트가 열리는 등 여러 부작용으로 2016년까지는 용도폐기된 제1부두에서 열렸다.[217] 그러다 마산 어시장 해안대로변 마산수협위판장 등지에서 진행하다, 2020년부터 마산해양신도시 인공섬에서 개최되고 있다.
- 만날재: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예곡리를 잇는 고개인 만날재에 전해지는 민담을 주제로 20세기 후반에 재구성한 축제. 舊 마산시의 마스코트인 '만남이'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창원시 홈페이지
- 창원시 진동 미더덕축제: 미더덕 생산량이 전국 2~3위권을 다투는 곳이라 이를 이용한 향토축제를 열고 있다.
- 창원 시민의 날 축제
- 천주산 진달래 축제: 동요 고향의 봄의 무대가 된 천주산의 진달래를 이용한 향토축제.
- 창원시립교향악단 연주회: 2010년 7월 통합으로 마산시립교향악단이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2012년 4월 두 악단이 통합되었다.
- 창원 길마켓: 시민을 대상으로한 대규모 중고장터로 매달 셋째주 토요일 성산 아트홀 가로수길에서 열린다. 꼭 창원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 창원KPOP월드페스티벌: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하는 KPOP축제로 당대 유명 아이돌 들도 많이 참석한다.
8.3. 특산물
8.3.1. 먹을거리
- 각종 해산물: 250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어시장이 있기에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의 질이 웬만한 고급 백화점 뺨친다.
- 마산 아구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는 아예 아구찜 거리가 있을 정도다.
- 복국: 복어를 조리해서 탕(지리)처럼 끓여 먹는 냄비 요리. 복국 골목은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 전어: 전어는 대개 가을에 서해안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치지만 마산 전어는 그에 못지않은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옛 마산시 시절부터 시작하여 현재도 매년 전어 축제를 열고 있다.
- 미더덕: 전국 수위권의 생산량이며 일단 이 동네 된장찌개에는 높은 확률로 들어간다. 쇠고기는 안 넣어도 미더덕은 넣는다.
- 멍게: 미더덕과 함께 많이 양식되는 해산물이다.
- 무학소주: 진짜 마산 야구장에서 보면 지역 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로. 舊 마산시 시절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콘셉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 하이트맥주: 하이트 제2공장이 천주산(마산역과 창원역 사이)에 있다.[218] 창원시의 지질이 화강암반이라 물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고, 1990년 페놀 사태 당시 이 점을 크게 활용하여 광고했다. 그 결과 하이트가 히트 상품이 되었고 사명을 아예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바꿔버렸다.
- 몽고간장: 일제강점기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식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 점유율 부동의 No. 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 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식당들이 플라스틱 벌크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 단감: 창원시 하면 국가산업단지의 정밀기계공업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한데, 의외로 단감의 전국 최대 생산지이다.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논과 밭이 펼쳐져 있고 감나무 과수원과 산에 빼곡하게 심어진 감나무를 볼 수 있다. 단감은 창원과 가까운 진영읍이 전국적으로는 더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생산량은 창원이 더 많다. 진영이 더 알려진 이유는 진영에도 단감이 많이 생산되는 이유도 있지만 폐쇄적인 지형의 창원은 유통이 불편해 창원에서 나는 단감을 진영에 가져가 팔아 전국적인 생산지로 진영이 더 알려졌다.
- 얼큰이: 문서 참조.
창원향토문화백과에 따르면 이외에도 국화, 수박(대산면), 고구마(평촌), 멜론이 있다고 한다. 지리적 표시제에는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진동 미더덕이 등록되어 있다. 창원시는 야자수가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온난한 지역이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눈 보기가 힘들 정도로 따뜻한 지역이기에 고구마가 한국에 제일 처음 도입되었을 때도 기후가 맞는 곳을 찾아 현 진해구(옛이름 웅천)에서 실험 재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열대 과일도 잘 자랄 수 있다.
8.3.2. 가전제품 및 기계 설비류
이 항목들은 디지털창원문화대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기계공업이 흥한 창원의 특성 때문인 듯.9. 생활 문화
구 창원은 계획도시답게 넓은 도로, 인도 및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며, 공공 자전거 서비스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였다. 창원시 공공 자전거 서비스는 누비자 참조. 도심 곳곳에 공원 등 녹지도 많아 좋은 외관을 자랑한다.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11개 점이 있으며 롯데백화점 창원점,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시티세븐 등 백화점 및 쇼핑몰 5개 점, 이마트, 홈플러스, 농협 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가 15개 점이 있다. 창고형 대형마트의 경우 2022년 현재 롯데마트 맥스 창원중앙점 1개가 있으며 차후 2027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스타필드와 더불어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이 추가적으로 생길 예정이다.
하지만 진해 지역은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구 창원과 마산에 비하면 부족하다. 일단 진해구 인구부터가 창원시 인구의 20% 정도로 적고, 시가지가 연담화되어 있는 구 창원-마산에 비해 산과 군사보호구역으로 둘러싸인 진해구 특성상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도 있다.
9.1. 교육, 문화 시설, 의료 기관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생활환경 문서 참고하십시오.9.2.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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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 경남 FC | ||
유소년 | 진주고등학교 | ||
주요 인물 | 현재 | 선수단 | 박동혁 감독 | 코칭스태프 | |
역대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레전드 | ||
시설 관련 문서 | 홈구장 | 창원축구센터 | |
제2 홈구장 | 진주종합경기장 | ||
클럽하우스 | 함안클럽하우스 | ||
역사 | 구단 | 창단부터 지금까지 | AFC 챔피언스 리그 기록 | |
시즌별 | 시즌별 일람 | 역대 유니폼 | ||
K리그2 | 2017 | ||
현재 시즌 | 2023 | ||
라이벌 | 낙동강 더비 | ||
응원가 | 응원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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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 사건·사고 | 심판 매수 | 자유한국당의 경기 난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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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보 | 역사 | 창단 과정 | 역대 시즌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역대 외국인 선수 | 역대 트레이드 | 1차 지명 | 사건·사고 | ||||
최종 우승 | 2020년 한국시리즈 | ||||
세부 정보 | 팀 컬러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기록 | 공식 SNS | 랠리 다이노스 (치어리더) | 응원가 | 마스코트 | ||||
라이벌리 | vs | 낙동강 시리즈 | ||||
지역 연고 | 마산고등학교 | 마산용마고등학교 | 김해고등학교 물금고등학교 | 울산공업고등학교 | 창원공업고등학교 | ||||
경기장 | 1군 | 창원 NC 파크 | 마산 야구장 | |||
2군 | 마산 야구장 | 남해 스포츠파크 야구장 | 포항 야구장 |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 | ||||
팬덤 정보 | NC 다이노스 갤러리 | 나인하트 | 다톡 | 마산아재 | 타운홀 미팅 | ||||
기타 문서 | 낙동강 시리즈 | 나테이박(나테의박) | 단디 4(김원임) | 배구장 트리오 | 엔나쌩 · 엔상바 클럽 | 흥행참패동맹 |
2024 시즌 참가 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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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컵 참가 구단 | 과거 참가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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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부 | |||||||||
SK 슈가글라이더즈 | 경남개발공사 | 광주도시공사 | 부산시설공단 | ||||||
삼척시청 | 서울시청 | 인천광역시청 | 대구광역시청 | ||||||
과거 참가 구단 |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스포츠 문서 참고하십시오.
수원시와 함께 현재 특례시 기준 프로스포츠 3대 종목을 보유한 연고지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으로는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를 시작으로 축구의 경남 FC와 야구의 NC 다이노스, 핸드볼의 경남개발공사 여자 핸드볼단과 두산 핸드볼단이 있다. 그 중 경남 FC는 엄밀히 따지면 창원시의 연고 구단은 아닌 경상남도 전체가 연고지이지만 주 경기장으로 창원축구센터를 사용한다. 또한 세미프로 축구팀으로는 3부리그 K3리그에 참가하는 창원시청 축구단이 있다.
9.3. 방송
KBS창원, MBC경남 창원방송, 창원극동방송 등 창원에 위치한 대부분 방송사들이 불모산에 송신소 및 중계소를 두고 있다. 양산을 제외한 동부 경남 지역을 가청권으로 하나, FM 라디오의 경우 동부 경남과 인접한 서부산[219], 양산[220], 진주, 청도[221] 일부에서도 수신 가능하다.예외로 부산불교방송,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중계소가 천주산에 있는데, 산 정상 대신 정렬대로 도로변에 송신 시설이 있어서 중계소 고도가 100m 정도로 매우 낮다. 게다가 창원시를 온전히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가청 권역이 상당히 좁다. 일례로 창원의 외곽 지역 중 하나인 의창구 대산면에서는 부산 주파수로 수신하는 것이 유리하다. 경남교통방송(당시 창원교통방송) 역시 천주산 자락에서 송출했으나 2016년에 불모산으로 송신소를 이전하여 가청 권역이 넓어졌다.
위치에 따라 부산 황령산/봉래산, 진주 장군대산, 거창 감악산, 하동 금오산, 대구 팔공산, 남해 망운산 전파가 추가로 잡히기도 한다. 특히 거창 주파수 중 MBC경남 진주 FM4U(96.1)와 EBS FM(104.7)은 의창구 봉림동에서 창원 주파수 못지않게 수신이 잘 된다.
10. 정치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장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청 문서 참고하십시오.
11. 군사
진해구는 한국 해군의 최대 거점 도시로 유명하다. 구한말에 일본 제국 해군이 주둔할 만큼 입지가 그 정도로 좋아서 해방 직후부터 해군의 핵심이자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해군의 핵심 주둔지인 진해 해군기지에는 매번 입대 철마다 전국 여러 각지에서 오는 해군 신병들을 교육하여 수병으로 만드는 해군기초군사교육단, 해군의 각종 보급들을 담당하는 해군군수사령부, 해군뿐만 아니라 해병대의 장교를 양성하는 4년제 특수대학인 해군사관학교와 진해기지사령부가 있다. 과거 해군작전사령부도 진해에 있었으나 부산으로 이전. 이러한 이유로 진해구 예비군은 해군에서 담당하며, 예비군훈련장은 행암동 끝쪽에 있다.진해기지사령부 안에는 국방부 및 해양경찰청 소속의 모든 선박들을 정비하는 해군정비창이 있어 각 함대 수리창에서 정비가 안 되는 함정들은 모두 진해로 온다. 해군 및 육군의 헬기 정비창도 풍호동에 위치해 있고 육, 해군의 헬기부대를 운용하는 진해비행장도 마련되어 있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위산업체들이 몰려 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 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국방부 청사가 제 1순위 폭격 지역으로 지목되고, 다음 순위 폭격 지역으로 창원 군수공장 단지가 지목받기도 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완파되고 말 경우 스타크래프트에서 아군 본진 군수공장 단지가 날아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나치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 너머로 옮겨 독일 국방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도시이다.
전군 지상 공통 장비에 대한 창정비 지원을 하는 육군종합정비창이 동읍에 주둔한다. 또한 육군군수사령부 예하 탄약지원사령부 소속의 9탄약창이 창원예비군훈련장으로 가는 길인 반계동에 있다. 그와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동시험장 역시 창원 동읍에 있다. 경상남도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9보병사단 사령부도 창원에 존재했었으나, 2015년 5월부로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함안은 창원 바로 옆이라 그렇게 멀지는 않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유사시 활주로 대용으로 쓰려고 만든 설계다. 계획도시답게 다른 주요 도로가 꼬박꼬박 중앙 분리대를 끼고 있는 와중에도 기본이 왕복 10차선인 대로에 중앙 분리대가 없었던 것이 그 증거. 2010년 즈음부터 중앙 분리대를 깔기 시작하며 활주로 기능은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 상황의 비상 활주로 역할인 만큼 창원시는 계룡시 못지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예비군훈련장은 구 창원 지역은 반계동에, 구 마산 지역은 내서읍 삼계리에 있으며 둘 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12. 하위 행정구역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행정 문서 참고하십시오.13. 논란
13.1. 탈성매매 여성 매입임대주택 지원 특혜 논란
2020년부터 창원시는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를 탈성매매화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에게 지원금을 주고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해 근린공원을 조성하는 정책을 펼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이후 창원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 경남 본부와 계약해 탈성매매 여성에게 매입임대주택을 4년간 지원한다는 협약을 맺자,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일반 시민을 도외시하고 탈성매매 여성에게 먼저 주택을 임대하는 특혜라는 반발을 사게 되었다.
창원시는 성매매 특별법 중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이하 성매매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시행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입장이지민, 국민들은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똥별의 똥군기에 고통받는 일반 병사나 의식주에 어려움을 겪는 고아 등의 진짜 사회적 약자부터 먼저 도우는 것이 맞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혜택을 받아 기록이 남거나 낙인이 찍히게 되어 취업과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성매매 여성 사이에서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제도다.
14. 여담
- 구 창원시 지역의 경우 법정동 구획이 굉장히 이상하다. 여느 시들처럼 시 승격 이전에 쓰던 법정리들이 일단 계승되었는데, 산지는 남겨두고 딱 개발 구획 한정으로 새로운 법정동을 마치 포토샵 레이어 쓰듯 덮어썼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 있는 미개발된 언덕이나 시가지 둘레의 산지에 한해서 법정리 시절부터 있던 법정동이 남아 있고 개발된 지역은 네모반듯한 법정동이 만들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월경지나 땅거스러미 등이 난무한다. 관련 글 한국에서 가장 늦은 날짜에 열린 축구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그날이 성탄절이었다.
- 2010년 UN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15.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6. 관련 문서
- 계획도시
- 역사
- 랜드마크
- 스포츠
- 대중교통
- 특산물
- 창원컨벤션센터(CECO)
-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17. 자매 도시
17.1. 국내
17.2. 해외
범례 |
(☆)마산시로부터 계승 |
(★)진해시로부터 계승 |
- 미국
- 중국
- 안휘성 마안산시
- 길림성 서란시☆
- 러시아
- 독일 베를린 노이쾰른☆
- 튀르키예 이스탄불 카흐트하네구☆
- 칠레 발파라이소주 비냐델마르시★
- 멕시코
- 사뽀빤시☆
- 과달라하라
- 일본
- 인도
- 우타르프라데시 노이다시
- 베트남
- 모로코 나도르시☆
- 폴란드 포즈난
1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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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 수원시 | 용인시[★] | 창원시[★] | |
[★]: 도농복합시 |
[1]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2024년 10월 기준.[3]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권성현, 김우진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구점득, 김혜란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안상우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강창석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정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김경수, 성보빈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김영록
창원시 아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김이근, 이천수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서영권, 홍용채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박선애, 정길상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남재욱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황점복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박승엽, 손태화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이해련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김헌일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최정훈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한상석
창원시 비례대표: 김미나, 김수혜, 박강우[4]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최은하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묘정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김남수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해정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김경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한은정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백승규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이원주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전홍표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이우완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서명일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문순규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김상현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정순욱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이종화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심영석
창원시 비례대표: 오은옥, 진형익[5] 창원시 제1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서민호 (초선)
창원시 제2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백태현 (초선)
창원시 제3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박해영 (재선)
창원시 제4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준 (재선)
창원시 제5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찬호 (초선)
창원시 제6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이재두 (초선)
창원시 제7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박남용 (초선)
창원시 제8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강용범 (재선)
창원시 제9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정규헌 (초선)
창원시 제10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정쌍학 (초선)
창원시 제11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진상락 (초선)
창원시 제12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이장우 (초선)
창원시 제13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조영명 (초선)
창원시 제14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박동철 (초선)
창원시 제15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김순택 (초선)
창원시 제16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이치우 (초선)[6] 舊 0551 사용 지역(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추가 국번은 055-60*, 71* 국번.[A] 舊 0553 사용 지역(진해구).[A] [9] 전국 특례시 4곳 중 3곳은 경기도에 몰려 있으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인시와 더불어 유이한 도농복합시의 특례시이다.[10]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인 수원시보다도 일반구가 1개 더 많다.[11]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 이후 '하' 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12] 원래 경상남도청은 진주에 먼저 들어섰으나 일제강점기에 부산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경상남도에서 분리되면서 도청을 이전해야 되는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때 마산과 진주가 도청 유치를 놓고 서로 다투었으나 이전지는 이 둘이 아니라 창원으로 결정되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사림동으로 확정되었는데, 구 마산시 지역은 시내버스 탑승만으로 경상남도청에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진주시에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을 달려야 한다. 다만 2015년 홍준표 前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자리에 경상남도청 서부청사를 개청하면서 도청의 일부 기능이 진주시로 환원되었다.[13] 창원은 수원과 더불어 21세기 이전에 도청을 물려받은 지역이며 이는 기존 도청 소재지였던 서울과 부산의 분리 승격이 다른 광역시들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한참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수도권 집중도 지금만큼 심하지도 않았기에 도청을 비롯한 도내 주요 관공서들을 받아낸 창원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 창원도정이 시작되었던 1983년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에서 분리독립한 지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며 광주, 대전은 각각 전라남도 광주시, 충청남도 대전시로 여전히 도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도청을 이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와서야 경상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도 비로소 관내로 도청을 이전했지만 이때는 지역 균형 발전 분위기가 매우 강해진 탓에 도내 주요 도시와는 동떨어진 지역, 거기에 두 개의 지역 경계에 도청 신도시를 갖다 박는 관행이 생겨버렸고 이는 주변 인프라 부족, 도청을 유치한 두 지역 간의 갈등 초래 및 수도권 집중도의 심화까지 겹쳐 도청을 받아내도 제대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4] 1910년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 1914년 개항장 일대만 마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창원군으로 분리됨.[15] 창원군 진해읍이 승격.[16] 창원보다 더 순위가 높은 기초자치단체인 화성시(약 74조 53백만), 서울 강남구(약 71조 85백만), 서울 중구(약 53조 82백만), 성남시(약 44조 8백만)는 모두 수도권이다.[17] 958,444명[18] 915,871명[19] 853,642명[20]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21] 이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였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 개씩 통과하는 1987, 1995, 1998, 2002, 2009, 2011년에는 많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연도도 있다.[22]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23] 재분리의 필요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기존 지자체의 통합을 유도하는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니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24] 고양시-일산신도시의 사례와 비슷한데 고양군 일산읍 시절이나, 일산신도시 초창기에 입주한 주민들은 고양시 전체를 일산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마산이 창원보다 먼저 개발된 것 처럼, 고양시 일대도 일산신도시가 먼저 개발되고 덕양구 화정동이 그 다음에 개발되었다. 최초에는 원릉(원당+능곡)과 더불어 일산시로의 분리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25] 이미 도농 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이리, 평택-송탄, 남양주-미금, 여수-여천, 청주-청원, 광양-동광양, 정읍-정주, 경주-월성, 사천-삼천포, 거제-장승포, 통영-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경군-점촌시, 아산군-온양시, 구미시-선산군의 경우처럼 통합시 명칭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사례도 없었던 건 아니고, 일산시·원당시·고양시 분할승격 대신 고양시로 통합된 고양군의 사례처럼 승격 이후에도 고양vs일산 대표지명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26] 비록 '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정구역이 생긴 것은 일제시대부터지만, 명칭 자체는 조선 초기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마산포'라는 포구도 조선 초기 실록에 등장한다.[27] 분당신도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무조건적인 독립시 타령이 지역 망신이라며 자성론이 있다.[28] 성남시/고양시에 산다고 하지 않고, 분당구/일산동구·서구에 산다고 한다.[29]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30]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었으며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31] 현 창원시 의창구[32]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33] 기사에 따르면 재정재립도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과 창원이 우선적인 직할시 승격대상으로 거론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면 전주를 우선적으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34] 비슷한 경우로 '성남'의 경우 성남 본시가지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35] 대체로 창원 안에서 같은 창원 사람들끼리 얘기할 때에는 전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고 창원 밖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자신이 사는 곳의 지자체를 소개할 때에는 후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36] 구제가 실시된 지역이라면 구별로 인구를 나뉘어 집계함.[1966창원시] 마산시 154,600명 + 진해시 80,496명 + 창원군 175,266명[1970창원시] 마산시 186,890명 + 진해시 89,867명 + 창원군 163,942명[1975창원시] 마산시 371,917명 + 진해시 103,640명 + 창원군 95,827명[1980창원시] 창원시 111,676명 + 마산시 386,751명 + 진해시 112,024명 + 의창군 87,826명[1985창원시] 창원시 173,508명 + 마산시 448,746명 + 진해시 121,341명 + 의창군 74,889명[42] 합포구, 회원구 설치[1990창원시] 창원시 323,223명 + 마산시 합포구 237,548명 + 마산시 회원구 256,183명 + 진해시 120,212명 + 의창군 72,214명[1995창원시] 창원시 481,694명 + 마산시 합포구 215,748명 + 마산시 회원구 225,494명 + 진해시 125,997명[2000창원시] 창원시 517,410명 + 마산시 합포구 213,094명 + 마산시 회원구 221,277명 + 진해시 127,578명[46] 합포구, 회원구 폐지[2005창원시] 창원시 501,705명 + 마산시 428,069명 + 진해시 150,063명[48] 구창원 일대 구제 실시(의창구, 성산구), 옛 마산시 합포구, 회원구 재설치[2010창원시] 의창구 251,647명 + 성산구 251,073명 + 마산합포구 186,420명 + 마산회원구 225,182명 + 진해구 175,859명[2012.05창원시] 의창구 255,415명 + 성산구 247,287명 + 마산합포구 186,213명 + 마산회원구 222,504명 + 진해구 181,135명[2015창원시] 의창구 256,471명 + 성산구 234,399명 + 마산합포구 181,670명 + 마산회원구 211,791명 + 진해구 185,733명[2020창원시] 의창구 262,408명 + 성산구 214,570명 + 마산합포구 175,716명 + 마산회원구 191,289명 + 진해구 192,755명[53]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자연적 감소와 수도권 이주로 인한 사회적 감소가 겹치면서 아주 빠른 시일내에 화성시에게 역전 당할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54]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인구 2위인 청주시와는 약 15만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창원시의 인구 감소로 격차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55] 2000년대 들어서는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장유신도시, 진영신도시를 개발하며 창원시 인구를 상당 부분 흡수하였다.[56] 現 동읍[57]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2010구창원] 의창구 251,647명 + 성산구 251,073명[2015구창원] 의창구 256,471명 + 성산구 234,399명[2020구창원] 의창구 262,408명 + 성산구 214,570명[현재구창원] 의창구 210,608명 + 성산구 244,933명[62] 창원대로 문서만 보아도 이렇게 직각형 식으로 드넓게 개발된 도시는 2020년대 현재까지만 보아도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63] 그러나 대동제의 첫 시범 대상으로 지정된 탓에 통합 이전까지는 분구를 하지 못했다.[64] 이후 고도 제한이 해제되어 공동주택이 다량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베드타운 역할이 강화되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등 산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옛 진해시 영역을 차지하는 진해구의 인구수가 늘어나게 된다.[65] 도농복합시의 면중 1개는 읍으로 할 수 있다에 따라 승격[1980의창동] 의안동 9,703명 + 동정동 6,985명 + 소계동 6,080명[1985의창동] 의안동 11,704명 + 동정동 8,976명 + 소계동 6,673명[1990의창동] 의안동 17,119명 + 동정동 10,297명 + 소계동 10,269명[1995의창동] 의안동 19,519명 + 동정동 20,432명 + 소계동 9,994명[1995명곡동] 명서1동 25,544명 + 명서2동 14,191명 + 도계동 20,432명[1995봉림동] 사림동 10,194명 + 봉곡동 22,938명[1995반송동] 반림동 29,235명 + 반지동 22,496명[1980용지동] 용지동 3,243명 + 토월동 5,540명[1985용지동] 용호동 7,844명 + 토월동 10,928명[1990용지동] 용호동 18,964명 + 신월동 22,750명[1995용지동] 용호동 18,862명 + 신월동 23,456명[1980중앙동] 두대동 6,468명 + 내동 8,715명 + 외동 8,290명[1985중앙동] 대원동 11,605명 + 내동 7,594명 + 중앙동 18,077명[1990중앙동] 대원동 15,584명 + 내동 9,128명 + 중앙동 22,200명[1995중앙동] 대원동 14,008명 + 내동 8,590명 + 중앙동 20,664명[1995사파동] 사파동 35,240명 + 대방동 24,405명[1980가음정동] 가음정동 4,831명 + 남산동 5,525명[1985가음정동] 가음정동 14,768명 + 남산동 7,535명[1990가음정동] 가음정동 24,332명 + 남산동 15,340명[1995가음정동] 가음정동 23,438명 + 남산동 32,106명[1975웅남동] 웅남1동 7,357명 + 웅남2동 5,183명[1980웅남동] 웅남동 8,103명 + 양곡동 8,650명 + 삼귀동 1,765명[1985웅남동] 웅남동 6,476명 + 신촌동 12,038명 + 삼귀동 2,122명[1990웅남동] 웅남동 1,246명 + 신촌동 19,363명 + 삼귀동 2,053명[1995웅남동] 신촌동 14,416명 + 삼귀동 1,869명[91] 예곡리·우산리·현동리·덕동리[92] 구암리·합성리·회성리·두척리[93] 위의 의창구, 성산구 인구추이에서의 마산시 편입지 인구 제외[1990구마산] 합포구 + 삼진 지역 265,574명 + 회원구 + 내서면(현 내서읍) 지역 265,800명[95]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96]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97]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1995구마산] 합포구 215,748명 + 회원구 225,494명[2000구마산] 합포구 213,094명 + 회원구 221,277명[2010구마산] 마산합포구 186,420명 + 마산회원구 225,182명[2015구마산] 마산합포구 181,670명 + 마산회원구 211,791명[2020구마산] 마산합포구 175,716명 + 마산회원구 191,289명[현재구마산] 마산합포구 179,160명 + 마산회원구 179,034명[104]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1963년~1985년 이전. 이 즈음에 마산시는 전국 7대 도시 중 한 곳이었다.[105] 특례시가 된 게 아니다. 특례시란 말은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법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존재하는 명칭이 아니었다.[106] 한국은행 경남지역본부, 각종 관공서 및 금융기관 경남지부, KBS 방송국은 원래 마산에 있었다가 창원으로 이전했다. MBC 역시 창원으로 이전하려 했다가 마산의 필사적인 회유로 간신히 남았다.[107] 같은 시기 김해시의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인 50만을 돌파하였다. 김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장유신도시가 첫 신호탄이었다.[1966가포동] 가포동 762명 + 가율동 901명[1970가포동] 가포1동 714명 + 가포2동 968명[1966문화동] 월포동 4,099명 + 창포동 6,015명 + 월남동 5,164명[1970문화동] 월영1동 3,576명 + 창포동 4,904명 + 월남동 7,693명[1975문화동] 월영1동 6,286명 + 창포동 6,478명 + 월남동 7,839명[1980문화동] 월영1동 5,459명 + 창포동 5,541명 + 월남동 8,494명[1985문화동] 월영1동 5,437명 + 창포동 6,056명 + 월남동 8,714명[1990문화동] 월영1동 4,659명 + 창포동 6,616명 + 월남동 8,837명[1995문화동] 월영1동 3,906명 + 창포동 8,032명 + 월남동 6,697명[1966반월중앙동] 반월동 9,407명 + 장군동 9,190명[1970반월중앙동] 반월동 9,937명 + 중앙동 9,237명[1975반월중앙동] 반월동 12,247명 + 중앙동 13,795명[1980반월중앙동] 반월동 13,564명 + 중앙동 10,574명[1985반월중앙동] 반월동 14,400명 + 중앙동 12,640명[1990반월중앙동] 반월동 14,250명 + 중앙동 13,138명[1995반월중앙동] 반월동 11,567명 + 중앙동 10,482명[2000반월중앙동] 반월동 10,237명 + 중앙동 10,205명[2005반월중앙동] 반월동 6,061명 + 중앙동 7,824명[2010반월중앙동] 반월동 9,552명 + 중앙동 8,998명[2015반월중앙동] 반월동 8,922명 + 중앙동 8,665명[1966교방동] 상남동 6,133명 + 교원동 7,454명 + 교방동 4,114명[1970교방동] 상남1동 7,772명 + 교원동 6,283명 + 교방동 6,298명[1975교방동] 상남1동 10,873명 + 교원동 8,383명 + 교방동 9,701명[1980교방동] 상남1동 11,385명 + 교원동 8,378명 + 교방동 11,507명[1985교방동] 상남1동 10,285명 + 교원동 7,633명 + 교방동 16,823명[1990교방동] 상남1동 8,553명 + 교원동 8,145명 + 교방동 19,721명[1995교방동] 상남1동 7,446명 + 교원동 5,394명 + 교방동 15,848명[2000교방동] 노산동 10,307명 + 교방동 14,003명[2005교방동] 노산동 8,352명 + 교방동 10,847명[2010교방동] 노산동 7,134명 + 교방동 12,127명[2015교방동] 노산동 7,446명 + 교방동 10,995명[1966오동동] 서성동 7,050명 + 동성동 4,255명 + 부림동 2,910명 + 추산동 4,384명 + 중성동 4,494명 + 성호동 6,366명 + 오동동 8,156명[1970오동동] 서성동 7,592명 + 동성동 4,481명 + 부림동 2,869명 + 추산동 5,154명 + 중성동 4,190명 + 성호동 6,200명 + 오동동 8,560명[1975오동동] 서성동 10,826명 + 동성동 5,126명 + 부림동 3,727명 + 추산동 6,648명 + 중성동 5,389명 + 성호동 7,687명 + 오동동 11,208명[1980오동동] 서성동 9,528명 + 동성동 3,463명 + 부림동 2,613명 + 추산동 7,472명 + 중성동 4,198명 + 성호동 7,554명 + 오동동 8,015명[1985오동동] 서성동 9,058명 + 동성동 3,498명 + 부림동 2,150명 + 추산동 5,433명 + 중성동 3,786명 + 성호동 6,894명 + 오동동 8,360명[1990오동동] 서성동 10,554명 + 동성동 3,413명 + 부림동 2,529명 + 추산동 5,241명 + 중성동 3,689명 + 성호동 6,769명 + 오동동 8,689명[1995오동동] 서성동 6,451명 + 동성동 1,775명 + 부림동 1,209명 + 추산동 2,800명 + 중성동 1,945명 + 성호동 4,133명 + 오동동 4,846명[2000오동동] 동서동 6,473명 + 성호동 6,363명 + 오동동 5,824명[2005오동동] 동서동 9,656명 + 성호동 5,787명 + 오동동 5,425명[2010오동동] 동서동 11,102명 + 성호동 5,028명 + 오동동 5,200명[2015오동동] 동서동 11,390명 + 성호동 4,386명 + 오동동 6,582명[1966합포동] 상원동 6,150명 + 합포동 2,808명[1970합포동] 상남2동 6,031명 + 산호2동 9,567명[1975합포동] 상남2동 7,443명 + 산호2동 13,283명[1980합포동] 상남2동 6,502명 + 산호2동 11,980명[1985합포동] 상남2동 6,150명 + 산호2동 12,576명[1990합포동] 상남2동 6,436명 + 산호2동 12,186명[1995합포동] 상남2동 3,549명 + 산호2동 7,922명[1985석전동] 석전1동 15,784명 + 석전2동 16,193명[1990석전동] 석전1동 17,974명 + 석전2동 18,310명[1995석전동] 석전1동 14,170명 + 석전2동 14,165명[2000석전동] 석전1동 11,288명 + 석전2동 11,882명[2005석전동] 석전1동 10,184명 + 석전2동 11,014명[2010석전동] 석전1동 8,862명 + 석전2동 10,093명[2015석전동] 석전1동 7,524명 + 석전2동 9,820명[1980양덕2동] 양덕2동 6,483명 + 양덕3동 17,872명[1985양덕2동] 양덕2동 6,520명 + 양덕3동 17,676명[1990양덕2동] 양덕2동 7,039명 + 양덕3동 17,494명[1995양덕2동] 양덕2동 7,728명 + 양덕3동 8,707명[1966봉암동] 봉암동 929명 + 봉덕동 943명[1970봉암동] 봉암1동 1,075명 + 봉암2동 1,742명[1966충무동] 충무로1가동 2,382명 + 충무로2가동 5,245명 + 충무로3가동 2,968명 + 충무로4가동 4,976명 + 충무로5가동 5,446명 + 충무로6가동 5,197명[1970충무동] 충무로1가동 2,385명 + 충무로2가동 5,516명 + 충무로3가동 3,341명 + 충무로4가동 5,287명 + 충무로5가동 5,582명 + 충무로6가동 5,597명[1975충무동] 충무로1가동 3,274명 + 충무로2가동 5,962명 + 충무로3가동 4,155명 + 충무로4가동 4,446명 + 충무로5가동 4,565명 + 충무로6가동 6,444명[1980충무동] 충무로1가동 4,154명 + 충무로2가동 5,558명 + 충무로3가동 4,218명 + 충무로4가동 4,297명 + 충무로5가동 4,517명 + 충무로6가동 5,973명[1985충무동] 충무로1가동 4,631명 + 충무로2가동 5,242명 + 충무로3가동 4,089명 + 충무로4가동 4,091명 + 충무로5가동 4,590명 + 충무로6가동 5,656명[1990충무동] 충무로1가동 4,687명 + 충무로2가동 5,208명 + 충무로3가동 3,595명 + 충무로4가동 3,561명 + 충무로5가동 3,672명 + 충무로6가동 4,994명[1995충무동] 충무로1가동 5,385명 + 충무로2가동 4,662명 + 충무로3가동 3,755명 + 충무로4가동 3,017명 + 충무로5가동 2,697명 + 충무로6가동 4,459명[2000충무동] 중앙동 7,206명 + 태평동 7,504명 + 충무동 5,988명[2005충무동] 중앙동 5,977명 + 태평동 7,396명 + 충무동 4,980명[2010충무동] 중앙동 4,855명 + 태평동 7,408명 + 충무동 5,105명[2015충무동] 중앙동 9,331명 + 태평동 6,731명 + 충무동 4,430명[1966여좌동] 여좌1가동 8,379명 + 여좌2가동 7,551명[1970여좌동] 여좌1가동 10,643명 + 여좌2가동 8,921명[1975여좌동] 여좌1가동 12,155명 + 여좌2가동 9,409명[1980여좌동] 여좌1가동 12,540명 + 여좌2가동 10,145명[1985여좌동] 여좌1가동 12,489명 + 여좌2가동 10,291명[1990여좌동] 여좌1가동 11,506명 + 여좌2가동 9,866명[1995여좌동] 여좌1가동 10,521명 + 여좌2가동 6,175명[1966태백동] 여좌3가동 4,750명 + 태백동 5,366명[1970태백동] 여좌3가동 5,735명 + 태백동 5,669명[1975태백동] 여좌3가동 5,637명 + 태백동 6,440명[1980태백동] 여좌3가동 5,455명 + 태백동 8,750명[1985태백동] 여좌3가동 5,046명 + 태백동 9,437명[1990태백동] 여좌3가동 4,603명 +태백동 9,176명[1995태백동] 여좌3가동 3,693명 + 태백동 7,491명[1966경화동] 경화1가동 4,527명 + 경화2가동 3,336명[1970경화동] 경화1가동 4,865명 + 경화2가동 3,718명[1975경화동] 경화1가동 5,164명 + 경화2가동 3,933명[1980경화동] 경화1가동 6,105명 + 경화2가동 5,315명[1985경화동] 경화1가동 6,441명 + 경화2가동 5,437명[1990경화동] 경화1가동 6,431명 + 경화2가동 5,584명[1995경화동] 경화1가동 5,353명 + 경화2가동 5,614명[1966풍호동] 풍호동 1,222명 + 장천동 2,030명 + 행암동 778명[1970풍호동] 풍호동 1,746명 + 장천동 1,927명 + 행암동 648명[1975풍호동] 풍호동 1,881명 + 장천동 2,005명 + 행암동 611명[1980풍호동] 풍호동 1,871명 + 장천동 1,975명 + 행암동 677명[1985풍호동] 풍호동 1,739명 + 장천동 1,837명 + 행암동 898명[1990풍호동] 풍호동 1,696명 + 장천동 1,655명 + 행암동 841명[1995풍호동] 풍호동 9,876명 + 장천동 1,203명 + 행암동 791명[1975웅천동] 웅천1동 5,104명 + 웅천2동 3,154명[1980웅천동] 웅천1동 4,749명 + 웅천2동 3,085명[1985웅천동] 웅천1동 4,850명 + 웅천2동 2,566명[1990웅천동] 웅천1동 4,647명 + 웅천2동 2,437명[1995웅천동] 웅천1동 4,190명 + 웅천2동 1,724명[214] 이용객 숫자는 창원중앙역이 마산역과 창원역 이용객수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지만 필수정차역은 마산역이고 창원중앙역 쪽이 빈도가 더 많기는 해도 창원역과 더불어 선택적으로 정차한다. 원래는 창원역의 위치가 창원 구도심에 위치해 있고, 마산역과의 거리가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애매한 위치의 역이라 창원중앙역 개통 후 창원역을 폐지하거나 일반열차만 정차시키려 했으나 지역민의 반발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질로 무산되었다.[215] 현대중공업에 인수.[216] 이제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도 있었다.[217] 마산항제1부두선 선로는 흙이 덮인 화단으로 쓰였다.[218] 원래는 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219] 황령산보다 송신소 고도가 높으며 동쪽은 높은 산이 있고 서쪽은 평야 지형인 특성상 창원 방송이 잘 들린다. 다만 만덕, 주례 등은 부산 전파가 잘 잡힌다.[220] 본시가지, 동면 중·서부, 물금, 원동, 상북, 하북 남부 등 꽤 넓은 지역을 커버한다.[221] 청도읍(읍내 이남 한정)에서 양호하게 수신된다.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구점득, 김혜란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안상우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강창석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정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김경수, 성보빈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김영록
창원시 아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김이근, 이천수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서영권, 홍용채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박선애, 정길상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남재욱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황점복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박승엽, 손태화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이해련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김헌일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최정훈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한상석
창원시 비례대표: 김미나, 김수혜, 박강우[4] 창원시 가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최은하
창원시 나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김묘정
창원시 다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김남수
창원시 라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해정
창원시 마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김경희
창원시 바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한은정
창원시 사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백승규
창원시 자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이원주
창원시 차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전홍표
창원시 카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이우완
창원시 타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서명일
창원시 파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문순규
창원시 하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김상현
창원시 거선거구 (진해구 경화동, 병암동, 석동): 정순욱
창원시 너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이종화
창원시 더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심영석
창원시 비례대표: 오은옥, 진형익[5] 창원시 제1선거구 (의창구 동읍, 북면, 대산면): 서민호 (초선)
창원시 제2선거구 (의창구 의창동, 팔룡동): 백태현 (초선)
창원시 제3선거구 (의창구 명곡동, 봉림동): 박해영 (재선)
창원시 제4선거구 (성산구 반송동, 용지동): 박준 (재선)
창원시 제5선거구 (성산구 중앙동, 웅남동): 이찬호 (초선)
창원시 제6선거구 (성산구 상남동, 사파동): 이재두 (초선)
창원시 제7선거구 (성산구 가음정동, 성주동): 박남용 (초선)
창원시 제8선거구 (마산합포구 구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현동, 가포동): 강용범 (재선)
창원시 제9선거구 (마산합포구 자산동, 오동동, 교방동, 합포동, 산호동): 정규헌 (초선)
창원시 제10선거구 (마산합포구 월영동, 문화동, 반월중앙동, 완월동): 정쌍학 (초선)
창원시 제11선거구 (마산회원구 내서읍): 진상락 (초선)
창원시 제12선거구 (마산회원구 회원1동, 회원2동, 석전동, 회성동, 합성1동): 이장우 (초선)
창원시 제13선거구 (마산회원구 양덕1동, 양덕2동, 합성2동, 구암1동, 구암2동, 봉암동): 조영명 (초선)
창원시 제14선거구 (진해구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박동철 (초선)
창원시 제15선거구 (진해구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김순택 (초선)
창원시 제16선거구 (진해구 웅천동, 웅동1동, 웅동2동): 이치우 (초선)[6] 舊 0551 사용 지역(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추가 국번은 055-60*, 71* 국번.[A] 舊 0553 사용 지역(진해구).[A] [9] 전국 특례시 4곳 중 3곳은 경기도에 몰려 있으니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인시와 더불어 유이한 도농복합시의 특례시이다.[10]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인 수원시보다도 일반구가 1개 더 많다.[11]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 이후 '하' 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12] 원래 경상남도청은 진주에 먼저 들어섰으나 일제강점기에 부산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경상남도에서 분리되면서 도청을 이전해야 되는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때 마산과 진주가 도청 유치를 놓고 서로 다투었으나 이전지는 이 둘이 아니라 창원으로 결정되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사림동으로 확정되었는데, 구 마산시 지역은 시내버스 탑승만으로 경상남도청에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진주시에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을 달려야 한다. 다만 2015년 홍준표 前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자리에 경상남도청 서부청사를 개청하면서 도청의 일부 기능이 진주시로 환원되었다.[13] 창원은 수원과 더불어 21세기 이전에 도청을 물려받은 지역이며 이는 기존 도청 소재지였던 서울과 부산의 분리 승격이 다른 광역시들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한참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수도권 집중도 지금만큼 심하지도 않았기에 도청을 비롯한 도내 주요 관공서들을 받아낸 창원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 창원도정이 시작되었던 1983년 당시 대구는 경상북도에서 분리독립한 지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며 광주, 대전은 각각 전라남도 광주시, 충청남도 대전시로 여전히 도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도청을 이전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와서야 경상북도, 충청남도, 전라남도도 비로소 관내로 도청을 이전했지만 이때는 지역 균형 발전 분위기가 매우 강해진 탓에 도내 주요 도시와는 동떨어진 지역, 거기에 두 개의 지역 경계에 도청 신도시를 갖다 박는 관행이 생겨버렸고 이는 주변 인프라 부족, 도청을 유치한 두 지역 간의 갈등 초래 및 수도권 집중도의 심화까지 겹쳐 도청을 받아내도 제대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4] 1910년 창원부가 마산부로 개칭, 1914년 개항장 일대만 마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은 창원군으로 분리됨.[15] 창원군 진해읍이 승격.[16] 창원보다 더 순위가 높은 기초자치단체인 화성시(약 74조 53백만), 서울 강남구(약 71조 85백만), 서울 중구(약 53조 82백만), 성남시(약 44조 8백만)는 모두 수도권이다.[17] 958,444명[18] 915,871명[19] 853,642명[20]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21] 이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였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 개씩 통과하는 1987, 1995, 1998, 2002, 2009, 2011년에는 많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연도도 있다.[22]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23] 재분리의 필요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기존 지자체의 통합을 유도하는 방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니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24] 고양시-일산신도시의 사례와 비슷한데 고양군 일산읍 시절이나, 일산신도시 초창기에 입주한 주민들은 고양시 전체를 일산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마산이 창원보다 먼저 개발된 것 처럼, 고양시 일대도 일산신도시가 먼저 개발되고 덕양구 화정동이 그 다음에 개발되었다. 최초에는 원릉(원당+능곡)과 더불어 일산시로의 분리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25] 이미 도농 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이리, 평택-송탄, 남양주-미금, 여수-여천, 청주-청원, 광양-동광양, 정읍-정주, 경주-월성, 사천-삼천포, 거제-장승포, 통영-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경군-점촌시, 아산군-온양시, 구미시-선산군의 경우처럼 통합시 명칭을 놓고 갈등이 있었던 사례도 없었던 건 아니고, 일산시·원당시·고양시 분할승격 대신 고양시로 통합된 고양군의 사례처럼 승격 이후에도 고양vs일산 대표지명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26] 비록 '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정구역이 생긴 것은 일제시대부터지만, 명칭 자체는 조선 초기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마산포'라는 포구도 조선 초기 실록에 등장한다.[27] 분당신도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무조건적인 독립시 타령이 지역 망신이라며 자성론이 있다.[28] 성남시/고양시에 산다고 하지 않고, 분당구/일산동구·서구에 산다고 한다.[29]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30]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었으며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31] 현 창원시 의창구[32]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33] 기사에 따르면 재정재립도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울산과 창원이 우선적인 직할시 승격대상으로 거론된 것으로 나온다. 다만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면 전주를 우선적으로 승격시키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34] 비슷한 경우로 '성남'의 경우 성남 본시가지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35] 대체로 창원 안에서 같은 창원 사람들끼리 얘기할 때에는 전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고 창원 밖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자신이 사는 곳의 지자체를 소개할 때에는 후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36] 구제가 실시된 지역이라면 구별로 인구를 나뉘어 집계함.[1966창원시] 마산시 154,600명 + 진해시 80,496명 + 창원군 175,266명[1970창원시] 마산시 186,890명 + 진해시 89,867명 + 창원군 163,942명[1975창원시] 마산시 371,917명 + 진해시 103,640명 + 창원군 95,827명[1980창원시] 창원시 111,676명 + 마산시 386,751명 + 진해시 112,024명 + 의창군 87,826명[1985창원시] 창원시 173,508명 + 마산시 448,746명 + 진해시 121,341명 + 의창군 74,889명[42] 합포구, 회원구 설치[1990창원시] 창원시 323,223명 + 마산시 합포구 237,548명 + 마산시 회원구 256,183명 + 진해시 120,212명 + 의창군 72,214명[1995창원시] 창원시 481,694명 + 마산시 합포구 215,748명 + 마산시 회원구 225,494명 + 진해시 125,997명[2000창원시] 창원시 517,410명 + 마산시 합포구 213,094명 + 마산시 회원구 221,277명 + 진해시 127,578명[46] 합포구, 회원구 폐지[2005창원시] 창원시 501,705명 + 마산시 428,069명 + 진해시 150,063명[48] 구창원 일대 구제 실시(의창구, 성산구), 옛 마산시 합포구, 회원구 재설치[2010창원시] 의창구 251,647명 + 성산구 251,073명 + 마산합포구 186,420명 + 마산회원구 225,182명 + 진해구 175,859명[2012.05창원시] 의창구 255,415명 + 성산구 247,287명 + 마산합포구 186,213명 + 마산회원구 222,504명 + 진해구 181,135명[2015창원시] 의창구 256,471명 + 성산구 234,399명 + 마산합포구 181,670명 + 마산회원구 211,791명 + 진해구 185,733명[2020창원시] 의창구 262,408명 + 성산구 214,570명 + 마산합포구 175,716명 + 마산회원구 191,289명 + 진해구 192,755명[53]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자연적 감소와 수도권 이주로 인한 사회적 감소가 겹치면서 아주 빠른 시일내에 화성시에게 역전 당할 것이 확정적인 상황이다.[54]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인구 2위인 청주시와는 약 15만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창원시의 인구 감소로 격차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55] 2000년대 들어서는 김해시가 전략적으로 장유신도시, 진영신도시를 개발하며 창원시 인구를 상당 부분 흡수하였다.[56] 現 동읍[57]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2010구창원] 의창구 251,647명 + 성산구 251,073명[2015구창원] 의창구 256,471명 + 성산구 234,399명[2020구창원] 의창구 262,408명 + 성산구 214,570명[현재구창원] 의창구 210,608명 + 성산구 244,933명[62] 창원대로 문서만 보아도 이렇게 직각형 식으로 드넓게 개발된 도시는 2020년대 현재까지만 보아도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63] 그러나 대동제의 첫 시범 대상으로 지정된 탓에 통합 이전까지는 분구를 하지 못했다.[64] 이후 고도 제한이 해제되어 공동주택이 다량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베드타운 역할이 강화되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등 산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옛 진해시 영역을 차지하는 진해구의 인구수가 늘어나게 된다.[65] 도농복합시의 면중 1개는 읍으로 할 수 있다에 따라 승격[1980의창동] 의안동 9,703명 + 동정동 6,985명 + 소계동 6,080명[1985의창동] 의안동 11,704명 + 동정동 8,976명 + 소계동 6,673명[1990의창동] 의안동 17,119명 + 동정동 10,297명 + 소계동 10,269명[1995의창동] 의안동 19,519명 + 동정동 20,432명 + 소계동 9,994명[1995명곡동] 명서1동 25,544명 + 명서2동 14,191명 + 도계동 20,432명[1995봉림동] 사림동 10,194명 + 봉곡동 22,938명[1995반송동] 반림동 29,235명 + 반지동 22,496명[1980용지동] 용지동 3,243명 + 토월동 5,540명[1985용지동] 용호동 7,844명 + 토월동 10,928명[1990용지동] 용호동 18,964명 + 신월동 22,750명[1995용지동] 용호동 18,862명 + 신월동 23,456명[1980중앙동] 두대동 6,468명 + 내동 8,715명 + 외동 8,290명[1985중앙동] 대원동 11,605명 + 내동 7,594명 + 중앙동 18,077명[1990중앙동] 대원동 15,584명 + 내동 9,128명 + 중앙동 22,200명[1995중앙동] 대원동 14,008명 + 내동 8,590명 + 중앙동 20,664명[1995사파동] 사파동 35,240명 + 대방동 24,405명[1980가음정동] 가음정동 4,831명 + 남산동 5,525명[1985가음정동] 가음정동 14,768명 + 남산동 7,535명[1990가음정동] 가음정동 24,332명 + 남산동 15,340명[1995가음정동] 가음정동 23,438명 + 남산동 32,106명[1975웅남동] 웅남1동 7,357명 + 웅남2동 5,183명[1980웅남동] 웅남동 8,103명 + 양곡동 8,650명 + 삼귀동 1,765명[1985웅남동] 웅남동 6,476명 + 신촌동 12,038명 + 삼귀동 2,122명[1990웅남동] 웅남동 1,246명 + 신촌동 19,363명 + 삼귀동 2,053명[1995웅남동] 신촌동 14,416명 + 삼귀동 1,869명[91] 예곡리·우산리·현동리·덕동리[92] 구암리·합성리·회성리·두척리[93] 위의 의창구, 성산구 인구추이에서의 마산시 편입지 인구 제외[1990구마산] 합포구 + 삼진 지역 265,574명 + 회원구 + 내서면(현 내서읍) 지역 265,800명[95] 내서면,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96] 구산면,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97] 인구는 이전부터 합산하여 계산중이었음.[1995구마산] 합포구 215,748명 + 회원구 225,494명[2000구마산] 합포구 213,094명 + 회원구 221,277명[2010구마산] 마산합포구 186,420명 + 마산회원구 225,182명[2015구마산] 마산합포구 181,670명 + 마산회원구 211,791명[2020구마산] 마산합포구 175,716명 + 마산회원구 191,289명[현재구마산] 마산합포구 179,160명 + 마산회원구 179,034명[104]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1963년~1985년 이전. 이 즈음에 마산시는 전국 7대 도시 중 한 곳이었다.[105] 특례시가 된 게 아니다. 특례시란 말은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법 이전까지는 법적으로 존재하는 명칭이 아니었다.[106] 한국은행 경남지역본부, 각종 관공서 및 금융기관 경남지부, KBS 방송국은 원래 마산에 있었다가 창원으로 이전했다. MBC 역시 창원으로 이전하려 했다가 마산의 필사적인 회유로 간신히 남았다.[107] 같은 시기 김해시의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대도시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인 50만을 돌파하였다. 김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장유신도시가 첫 신호탄이었다.[1966가포동] 가포동 762명 + 가율동 901명[1970가포동] 가포1동 714명 + 가포2동 968명[1966문화동] 월포동 4,099명 + 창포동 6,015명 + 월남동 5,164명[1970문화동] 월영1동 3,576명 + 창포동 4,904명 + 월남동 7,693명[1975문화동] 월영1동 6,286명 + 창포동 6,478명 + 월남동 7,839명[1980문화동] 월영1동 5,459명 + 창포동 5,541명 + 월남동 8,494명[1985문화동] 월영1동 5,437명 + 창포동 6,056명 + 월남동 8,714명[1990문화동] 월영1동 4,659명 + 창포동 6,616명 + 월남동 8,837명[1995문화동] 월영1동 3,906명 + 창포동 8,032명 + 월남동 6,697명[1966반월중앙동] 반월동 9,407명 + 장군동 9,190명[1970반월중앙동] 반월동 9,937명 + 중앙동 9,237명[1975반월중앙동] 반월동 12,247명 + 중앙동 13,795명[1980반월중앙동] 반월동 13,564명 + 중앙동 10,574명[1985반월중앙동] 반월동 14,400명 + 중앙동 12,640명[1990반월중앙동] 반월동 14,250명 + 중앙동 13,138명[1995반월중앙동] 반월동 11,567명 + 중앙동 10,482명[2000반월중앙동] 반월동 10,237명 + 중앙동 10,205명[2005반월중앙동] 반월동 6,061명 + 중앙동 7,824명[2010반월중앙동] 반월동 9,552명 + 중앙동 8,998명[2015반월중앙동] 반월동 8,922명 + 중앙동 8,665명[1966교방동] 상남동 6,133명 + 교원동 7,454명 + 교방동 4,114명[1970교방동] 상남1동 7,772명 + 교원동 6,283명 + 교방동 6,298명[1975교방동] 상남1동 10,873명 + 교원동 8,383명 + 교방동 9,701명[1980교방동] 상남1동 11,385명 + 교원동 8,378명 + 교방동 11,507명[1985교방동] 상남1동 10,285명 + 교원동 7,633명 + 교방동 16,823명[1990교방동] 상남1동 8,553명 + 교원동 8,145명 + 교방동 19,721명[1995교방동] 상남1동 7,446명 + 교원동 5,394명 + 교방동 15,848명[2000교방동] 노산동 10,307명 + 교방동 14,003명[2005교방동] 노산동 8,352명 + 교방동 10,847명[2010교방동] 노산동 7,134명 + 교방동 12,127명[2015교방동] 노산동 7,446명 + 교방동 10,995명[1966오동동] 서성동 7,050명 + 동성동 4,255명 + 부림동 2,910명 + 추산동 4,384명 + 중성동 4,494명 + 성호동 6,366명 + 오동동 8,156명[1970오동동] 서성동 7,592명 + 동성동 4,481명 + 부림동 2,869명 + 추산동 5,154명 + 중성동 4,190명 + 성호동 6,200명 + 오동동 8,560명[1975오동동] 서성동 10,826명 + 동성동 5,126명 + 부림동 3,727명 + 추산동 6,648명 + 중성동 5,389명 + 성호동 7,687명 + 오동동 11,208명[1980오동동] 서성동 9,528명 + 동성동 3,463명 + 부림동 2,613명 + 추산동 7,472명 + 중성동 4,198명 + 성호동 7,554명 + 오동동 8,015명[1985오동동] 서성동 9,058명 + 동성동 3,498명 + 부림동 2,150명 + 추산동 5,433명 + 중성동 3,786명 + 성호동 6,894명 + 오동동 8,360명[1990오동동] 서성동 10,554명 + 동성동 3,413명 + 부림동 2,529명 + 추산동 5,241명 + 중성동 3,689명 + 성호동 6,769명 + 오동동 8,689명[1995오동동] 서성동 6,451명 + 동성동 1,775명 + 부림동 1,209명 + 추산동 2,800명 + 중성동 1,945명 + 성호동 4,133명 + 오동동 4,846명[2000오동동] 동서동 6,473명 + 성호동 6,363명 + 오동동 5,824명[2005오동동] 동서동 9,656명 + 성호동 5,787명 + 오동동 5,425명[2010오동동] 동서동 11,102명 + 성호동 5,028명 + 오동동 5,200명[2015오동동] 동서동 11,390명 + 성호동 4,386명 + 오동동 6,582명[1966합포동] 상원동 6,150명 + 합포동 2,808명[1970합포동] 상남2동 6,031명 + 산호2동 9,567명[1975합포동] 상남2동 7,443명 + 산호2동 13,283명[1980합포동] 상남2동 6,502명 + 산호2동 11,980명[1985합포동] 상남2동 6,150명 + 산호2동 12,576명[1990합포동] 상남2동 6,436명 + 산호2동 12,186명[1995합포동] 상남2동 3,549명 + 산호2동 7,922명[1985석전동] 석전1동 15,784명 + 석전2동 16,193명[1990석전동] 석전1동 17,974명 + 석전2동 18,310명[1995석전동] 석전1동 14,170명 + 석전2동 14,165명[2000석전동] 석전1동 11,288명 + 석전2동 11,882명[2005석전동] 석전1동 10,184명 + 석전2동 11,014명[2010석전동] 석전1동 8,862명 + 석전2동 10,093명[2015석전동] 석전1동 7,524명 + 석전2동 9,820명[1980양덕2동] 양덕2동 6,483명 + 양덕3동 17,872명[1985양덕2동] 양덕2동 6,520명 + 양덕3동 17,676명[1990양덕2동] 양덕2동 7,039명 + 양덕3동 17,494명[1995양덕2동] 양덕2동 7,728명 + 양덕3동 8,707명[1966봉암동] 봉암동 929명 + 봉덕동 943명[1970봉암동] 봉암1동 1,075명 + 봉암2동 1,742명[1966충무동] 충무로1가동 2,382명 + 충무로2가동 5,245명 + 충무로3가동 2,968명 + 충무로4가동 4,976명 + 충무로5가동 5,446명 + 충무로6가동 5,197명[1970충무동] 충무로1가동 2,385명 + 충무로2가동 5,516명 + 충무로3가동 3,341명 + 충무로4가동 5,287명 + 충무로5가동 5,582명 + 충무로6가동 5,597명[1975충무동] 충무로1가동 3,274명 + 충무로2가동 5,962명 + 충무로3가동 4,155명 + 충무로4가동 4,446명 + 충무로5가동 4,565명 + 충무로6가동 6,444명[1980충무동] 충무로1가동 4,154명 + 충무로2가동 5,558명 + 충무로3가동 4,218명 + 충무로4가동 4,297명 + 충무로5가동 4,517명 + 충무로6가동 5,973명[1985충무동] 충무로1가동 4,631명 + 충무로2가동 5,242명 + 충무로3가동 4,089명 + 충무로4가동 4,091명 + 충무로5가동 4,590명 + 충무로6가동 5,656명[1990충무동] 충무로1가동 4,687명 + 충무로2가동 5,208명 + 충무로3가동 3,595명 + 충무로4가동 3,561명 + 충무로5가동 3,672명 + 충무로6가동 4,994명[1995충무동] 충무로1가동 5,385명 + 충무로2가동 4,662명 + 충무로3가동 3,755명 + 충무로4가동 3,017명 + 충무로5가동 2,697명 + 충무로6가동 4,459명[2000충무동] 중앙동 7,206명 + 태평동 7,504명 + 충무동 5,988명[2005충무동] 중앙동 5,977명 + 태평동 7,396명 + 충무동 4,980명[2010충무동] 중앙동 4,855명 + 태평동 7,408명 + 충무동 5,105명[2015충무동] 중앙동 9,331명 + 태평동 6,731명 + 충무동 4,430명[1966여좌동] 여좌1가동 8,379명 + 여좌2가동 7,551명[1970여좌동] 여좌1가동 10,643명 + 여좌2가동 8,921명[1975여좌동] 여좌1가동 12,155명 + 여좌2가동 9,409명[1980여좌동] 여좌1가동 12,540명 + 여좌2가동 10,145명[1985여좌동] 여좌1가동 12,489명 + 여좌2가동 10,291명[1990여좌동] 여좌1가동 11,506명 + 여좌2가동 9,866명[1995여좌동] 여좌1가동 10,521명 + 여좌2가동 6,175명[1966태백동] 여좌3가동 4,750명 + 태백동 5,366명[1970태백동] 여좌3가동 5,735명 + 태백동 5,669명[1975태백동] 여좌3가동 5,637명 + 태백동 6,440명[1980태백동] 여좌3가동 5,455명 + 태백동 8,750명[1985태백동] 여좌3가동 5,046명 + 태백동 9,437명[1990태백동] 여좌3가동 4,603명 +태백동 9,176명[1995태백동] 여좌3가동 3,693명 + 태백동 7,491명[1966경화동] 경화1가동 4,527명 + 경화2가동 3,336명[1970경화동] 경화1가동 4,865명 + 경화2가동 3,718명[1975경화동] 경화1가동 5,164명 + 경화2가동 3,933명[1980경화동] 경화1가동 6,105명 + 경화2가동 5,315명[1985경화동] 경화1가동 6,441명 + 경화2가동 5,437명[1990경화동] 경화1가동 6,431명 + 경화2가동 5,584명[1995경화동] 경화1가동 5,353명 + 경화2가동 5,614명[1966풍호동] 풍호동 1,222명 + 장천동 2,030명 + 행암동 778명[1970풍호동] 풍호동 1,746명 + 장천동 1,927명 + 행암동 648명[1975풍호동] 풍호동 1,881명 + 장천동 2,005명 + 행암동 611명[1980풍호동] 풍호동 1,871명 + 장천동 1,975명 + 행암동 677명[1985풍호동] 풍호동 1,739명 + 장천동 1,837명 + 행암동 898명[1990풍호동] 풍호동 1,696명 + 장천동 1,655명 + 행암동 841명[1995풍호동] 풍호동 9,876명 + 장천동 1,203명 + 행암동 791명[1975웅천동] 웅천1동 5,104명 + 웅천2동 3,154명[1980웅천동] 웅천1동 4,749명 + 웅천2동 3,085명[1985웅천동] 웅천1동 4,850명 + 웅천2동 2,566명[1990웅천동] 웅천1동 4,647명 + 웅천2동 2,437명[1995웅천동] 웅천1동 4,190명 + 웅천2동 1,724명[214] 이용객 숫자는 창원중앙역이 마산역과 창원역 이용객수를 다 합친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지만 필수정차역은 마산역이고 창원중앙역 쪽이 빈도가 더 많기는 해도 창원역과 더불어 선택적으로 정차한다. 원래는 창원역의 위치가 창원 구도심에 위치해 있고, 마산역과의 거리가 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애매한 위치의 역이라 창원중앙역 개통 후 창원역을 폐지하거나 일반열차만 정차시키려 했으나 지역민의 반발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질로 무산되었다.[215] 현대중공업에 인수.[216] 이제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도 있었다.[217] 마산항제1부두선 선로는 흙이 덮인 화단으로 쓰였다.[218] 원래는 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219] 황령산보다 송신소 고도가 높으며 동쪽은 높은 산이 있고 서쪽은 평야 지형인 특성상 창원 방송이 잘 들린다. 다만 만덕, 주례 등은 부산 전파가 잘 잡힌다.[220] 본시가지, 동면 중·서부, 물금, 원동, 상북, 하북 남부 등 꽤 넓은 지역을 커버한다.[221] 청도읍(읍내 이남 한정)에서 양호하게 수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