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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한국 아이돌
관련 문서: 보이그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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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아이돌, 나아가서 K-POP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태동기를 포함한 현 시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알 필요가 있다. 목록에 적혀있는 가수들 가운데에 아이돌 컨셉이 아닌 가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은 1980년대 후반을 포함한 2020년대 이후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 서술한 것이다.2. 주요 그룹 항목 포함 기준
주요 그룹 항목에 속해 있음과 동시에 전체 목록에서 볼드체가 표시된 아티스트들은 그 세대의 가요계와 아이돌 시장을 주도했던 가수들이다. 다만, 3세대 이후 아이돌의 경우는 대부분이 현재 왕성한 활동 중인 관계로 팬들의 잦은 수정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기준에 맞는 아이돌 그룹에만 볼드체를 적용하도록 한다. 기준은 다음 중 한 개 이상 해당하는 경우이다.- 남자 아이돌은 초동 50만 장 이상, 여자 아이돌은 초동 10만 장 이상
- 써클(가온) 월간 음원 차트 3개월 이상 진입
- 3회 이상 지상파 음악 방송 1위 달성[1]
- 신인상 3개 이상 수상[2]
- 본상 1개 이상 수상[3]
3. 1세대 아이돌 이전 (~1994년 이전)
1세대 아이돌 이전 (~1994)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밴드 · 보이그룹 | 샌드페블즈[4] (1970) 산울림 (1977) 송골매 (1979) 들국화 (1985) 시나위, 백두산, 부활 (1986) 소방차 (1987) 제3세대 (1988) 야차[5] (1989) 015B (1990) 서태지와 아이들[6], N.EX.T, 더 블루 (1992) 노이즈, 듀스, 솔리드, 잉크, 모자이크, 전람회, E.O.S, 모노 (1993) | |
걸밴드 · 걸그룹 | 김시스터즈 (1953), 펄 시스터즈 (1968), 바니걸스 (1970), 희자매 (1978), 국보자매 (1981), 세또래 (1987) 휘파람새 (1989)[7] S.O.S, 애플, 칼라[8], 크림, 혜성 (1993) 코코 | |
혼성그룹 | 현이와 덕이 (1976), 높은음자리 (1985), 세대교체 (1988), 마로니에 (1989), 철이와 미애, 1730[9] (1992) 잼 (1993) | |
남성솔로 | 신중현 (1958), 김민기 (1971) 전영록 (1975) 이수만 (1977) 구창모 (1978) 조용필[10] (1979)[11] 이문세 (1983) 김광석 (1984) 김승진 (1985) 박혜성[12], 이승철 (1986) 변진섭, 유재하 (1987) 박학기, 박남정, 신해철[13], 이정현[14] (1988) 김현철, 이승환[15], 최용준 (1989) 윤상[16], 심신, 신승훈, 이현우, 윤종신, 현진영, 김민우 (1990) 임재범, 양준일, 이범학, 김장훈 (1991) 김민종[17], 김건모, 김원준, 신성우, 손지창, 이덕진 (1992) 강산에, 김준선, 김동률 (1993) | |
여성솔로 | 양희은 (1971), 윤시내 (1974) 혜은이, 이은하 (1975) 나미 (1979), 민해경 (1980) 정수라 (1982) 이선희 (1984) 박미경, 원미연 (1985) 김완선, 조갑경, 유미리 (1986) 이미키, 이지연 (1987) 안혜지[18], 김혜림, 이상은, 양수경, 신효범 (1988) 강수지 (1990) 이재영, 장혜진 (1991) 하수빈, 최연제, 윤영아, 박준희 (1992) 이소라, 엄정화[19] (1993) | }}}}}}}}} |
3.1. 1970~1980년대
1970년대 이전의 한국 음악 역사에 대해서는 한국 음악 문서를 참고.1970~80년대의 포크송 음악을 주도한 세시봉과 김광석을[20] 중심으로 포크음악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을 중심으로[21]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22], 백두산, 시나위 등의 락그룹이 이어져내려오면서 록 음악이 뿌리를 내렸고, 당대의 주류음악이었던 트로트 가수들이 군웅할거로 경쟁하던 가운데에는 가왕 조용필이 있었으며, 1970년대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구도와 1980년대 김승진-박혜성의 라이벌 구도가 존재했지만, 이들은 10대~20대뿐만 아니라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다.
1970년대 중후반 적당한 댄스 등도 겸업하며 인기를 모은 혜은이가 일본 잡지에 "코리안 아이돌"로 소개된 바 있고, 이전 가수들에 비해 가창력에 더해 비주얼적인 면도 부각시킨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의 아이돌과는 의미가 엄연히 달라서 혜은이는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마케팅하였고 발표곡들 역시 성인 취향에 맞춰졌다. 1980년대 당시의 10~20대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목이 말라있었다. 물론, 1980년대 당시에도 댄스 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미, 윤시내, 민해경, 희자매, 국보자매[23] 등 댄스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있었다. 허나 이들은 10대~20대만 타겟으로 노리는 가수들은 아니었다. 특히, 윤시내는 당시 학생들에게 악명높던 "공부합시다"를 불렀던 가수였다.[24]
이러다보니 현대식 아이돌도 딱히 없던 1980년대 당시의 10~20대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 컨텐츠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이들의 취향에 맞는 영미권 음악을 하던 마이클 잭슨, 컬처 클럽, 듀란 듀란, 프린스, 신디 로퍼, 마돈나 등의 유명 외국 가수들은 국내 가수들보다 젊은층에선 더 스타일 정도였다. 실제 여부를 떠나 당대 한국 가수들 중 마이클 잭슨과 겨룰만한 10~20대 젊은층의 인기를 가진 가수는 조용필 정도 뿐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할 정도였다. 80년대는 트로트나 포크같은 음악이 대세였던 시대였고, 젊은층에서 이런 노래는 이미 한 물 가버린 노래 정도로 인식되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기차와 버스 안에서 영미권의 영향력이 컸던 시대에 맞는 팝송을 부르고 경쾌한 댄스 곡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386세대 중에서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흉내내보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초반~1990년대 당시의 영미권 팝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탄생[25]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같은 대스타의 등장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국내에서도 이들 영미권 팝스타의 인지도는 한국의 10~20대 연령층에게도 영향력이 엄청났었다. 동네 레코드샵에서 빌보드 싱글 핫 100 복사판을 나눠줬을 정도였고,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유로댄스 가수[26]들의 내한공연에서도 만석을 채웠을 정도였다.
사족으로, 1980년대에는 영화계도 국내 영화계는 영 힘을 못써서, 할리우드나 프랑스 배우인 브룩 실즈나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등이 이른바 '책받침 3대 여신'이라 불리면서 남학생들 책받침 사진에 붙여지기도 하던 시대였다. 반면 한국 영화계는 군사독재정권의 영향으로 검열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인해 그야말로 암흑기나 다름 없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3S정책 일환으로 영화계도 애마부인 시리즈, 산딸기 시리즈같은 질 낮은 한국형 에로영화들이 주류를 이뤘기에, 어린 학생들은 당연히 영화관에 쉽게 드나들기 어려웠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에 밀렸던 데다, 국내 영화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졌던 1980년대에서 그나마 나오는 한국 영화들은 청소년 관람불가투성이였으니.. 그래서 한국의 영화 배우들은 10~20대들 사이에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긴 살짝 부족했던 시대였다.[27]
80년대 중후반 들어선, 김완선, 박남정, 이상은 등 댄스 솔로 가수들에게 소소하게 10대 팬덤 형성이 됐으며, 1987년 소방차와[28] 세또래가 어느정도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후술되어있듯 90년대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랩댄스 뮤직 붐이 일어나면서 여기에 현진영, 김원준, 이현우, 노이즈, 듀스, 잼 등이 댄스뮤직을 들고 나와 가세해 10~20대 팬들이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일각에선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등이 한국의 댄스 가수, 아이돌의 효시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들은 냉정히 말하면 팝과 뉴 잭 스윙, 힙합 등의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현대 댄스뮤직과는 다른 기존의 성인가요를 빠른 템포로 바꾼 것에 불과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즉, 과도기적 전신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직접적인 전신으로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이런 식이면 상기되어있듯 이들보다도 더 위로 갈수도 있고.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첫 남성 솔로 댄스 가수로는 SM에서 90년 데뷔한 현진영이 있었지만 자신의 실책으로 너무나 전성기가 짧았다. 특히 1993년 그가 발표한 3집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명반으로 재평가받는 등 완성도가 높았기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그가 정상적으로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흑인음악이 주류로 올라오는 시기가 더 빨라졌을 것이다. 한편, 그의 필로폰 투약으로 인한 구속으로 인해 소속사 대표였던 이수만은 다른 보이그룹의 론칭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아이돌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아무튼 이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트로트와 포크음악으로 대표되는 한국음악계의 주류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지는 못한 한계가 있었다.[29]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 아직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1세대 아이돌 성립 전 문화를 향유한 세대는 대략 1970년대 초반~ 후반 출생 세대가 된다. 대략 70년대 후반 출생자(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년도 기준 중-고등학생)부터는 1세대 아이돌 문화를 직접 향유한 세대로 친다.
결국, 국내의 음악시장은 군사독재 시대의 문화 검열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장르의 탄생보다는 기성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위주로 만들어졌었다. 한 마디로, 댄스나 랩, 힙합을 비롯한 새로운 장르[30]를 받아들일 토양은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무르익었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검열같은 제도적인 미비와 음악인들 역량 부족 등으로 10대~20대의 취향에 맞는 수준까지 따라가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미권 팝 음악에 심취했고, 일부는 심지어 컨텐츠를 갈구하다 당시에는 수입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던 J-POP까지 손을 뻗쳐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때 암암리에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초반, 음악성을 겸비한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태동은 10~20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대중음악의 수요에 불을 당긴 셈이었다. 땔감은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쌓여왔지만 본격적으로 불을 붙일만한 가수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기술 발전에 따라 마이마이로 대표되는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음악시장의 수요도 커지면서 그야말로 혁신적인 스타가 나타나길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3.2. 1990년대 초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늘날 본격적인 한국 아이돌 그룹의 효시, 시초로 거론되는 가수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라는 것이 중론이다. # 이후 1년 뒤 듀스의 데뷔를 더해서 두 그룹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이전의 한국 대중가요계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30~40대 혹은 그 이상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었지만, 두 그룹의 충격적인 데뷔는 10~20대에게 대중음악계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계기가 되어, 이후 가요계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불기 시작한다.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의 대중가요계는 성인가요같은 트로트와 포크 음악 위주에서[31] 10대~20대 취향의 댄스 음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노이즈, 듀스, DJ DOC, 룰라, 투투와 같은 댄스 그룹들이 점점 등장하게 된다. 점점 나이가 어린 가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10대~20대에게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그룹들이 만들어졌고, 미국발 음악이었던 힙합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뉴 에디션, 뉴 키즈 온 더 블록(NKOB) 등 10대에서 20대 초반을 묶어서 만든 가수 그룹들[32]이 대한민국 아이돌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는 뉴 잭 스윙, 힙합, R&B가 대유행하는 시대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K-POP이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 아이돌은 10~20대를 비롯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다.[33]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힙합 Remix |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이전, 한국의 기성세대 음악인들은 "한국의 대중음악은 한국어의 한글 구조상 절대로 랩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34][35]이 있었다.
그리고 듀스는 미국발 흑인음악이었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아이돌이자 뮤지션이었다. 듀스가 현역으로 활동했던 시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노이즈 등과 같은 소속사의 그룹 룰라의 그늘에 가려져서 활동 기간 내내 정점을 찍었다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면이 있었다. 듀스의 1위 경력은 거의 없는 편이고 실제로 당시 한국의 빌보드 차트라고 불리울 만큼 공신력이 컸던 <가요톱10>에서도 1위 경력이 전무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뉴 잭 스윙을 받아들여서 대중적이고 세련된 힙합 음악으로 대중화를 이끈 듀스의 시도는 힙합의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실제로 1990년대 중후반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의 영향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두 그룹이 자신들의 우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정말 많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자란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미래에 서태지처럼 멋있는 가수가 되어서 꼭 TV에도 나가고 무대에 서고 싶다" 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준 인물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룰라의 멤버였던 채리나였는데 실제로 듀스의 광팬이었고 김성재의 도움을 받아 연예계에 데뷔를 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있다.[36]
그래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대에는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들과 남녀노소 누구나 모두 다 좋아했었고 라이벌로 맞설 수 있었던 가수들이 사실상 없었던데다 (그나마 듀스 정도가 대등하게 따라가는 정도였다) 거의 싫어하는 경우도 없었기 때문에 2020년대 현재의 대중가요계처럼 "나는 OOO 팬인데 너는 누구 팬이냐?"라고 묻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 + 다른 가수들도 좋아한다" 정도의 느낌이다. 이러니 당연히 여성 팬들은 어땠을지... 농담이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이 앨범을 발매했을 때 음반점에서도 타 가수의 음반을 구입하면 주인이나 점원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안 사요?" 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그만큼 누구나 원하는 앨범이라 재고도 충분히 많았고 팔아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때는 전국민 모두가 음반가게에 가서 음반을 사던 시절로 어떤 동네든 작은 음반 가게가 서점만큼[37] 많이 있었다. 음반 사재기 같은 건 생각도 못 하던 시절이다.
또한 이들의 성공에 고무받아, 미국에서 활동하던 드렁큰타이거, 조PD 등이 한국에 들어와 미국 스타일에 기울은 힙합을 소개했고,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이들이 기반을 닦은 한국어 랩의 형식적 완성이 이루어져 힙합 음악은 대중음악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특징인 짧은 활동 기간과 컴백 시스템[38]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혁명적으로 가져온 개념이었다. 무대 구성, 격렬한 안무, 아이돌 멤버들의 캐릭터 기믹 부여, 그리고 립싱크 등 현재 한국 아이돌의 기원이 되는 모든 시스템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연습생 개념이라는 것은 희박했다고 하더라도, 백댄서 등의 기회로 연예계로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연습생 시스템의 기반을 다졌다고도 볼 수 있다.[39]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10대~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굉장히 발달하였으며, 이들은 10대들의 자긍심과 저항을 표현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는 댄스가수 위주로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비교적 나이가 어린 가수들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관점에는 반론도 있다. 70년대 이전의 가요계와 90년대 이후의 댄스, 아이돌 음악의 사이를 메우는 음악 창작의 바탕으로서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등 이름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20대 초중반 음악인들이 창출하던 청년 음악의 흐름은 70년대 말~80년대 초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그 당시의 10~20대들은 당연히 이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도 서술된 바 있는, 이후의 기획사에 의해 조직된 아이돌 음악에 대하여 경멸하는 분위기는 단순히 기성세대의 신세대에 대한 경멸만이 아니고, 20대 청년들이 스스로 작사•작곡한 노래를 스스로 연습한 반주를 통해 공연하던 예술가적 전통과 비교해, 새로이 등장한 아이돌 음악은 지나치게 음악 본연의 가치를 소홀히 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는 10~20대 내에서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공유하던 인식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고리타분한 관점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과도기에 새로운 흐름에 대해 생소해하는 자체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라는 것.
아이돌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상에서 특정인에게 최초로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차범근이며, 여성의 경우는 김완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년도인 1992년 이후 처음 사용된 사람은 손지창. 아이돌, 아이돌 스타, 틴아이돌 스타, 하이틴 스타[40], 틴에이지 그룹, 인기 댄스 그룹 등의 표현이 중복되어 사용되었다. S.E.S.까지만 해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며, "인기 아이돌 스타", "인기 그룹", "인기 댄스그룹"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심지어 IDOL이라는 그룹은 이름을 아이돌로 쓸 정도로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는 표현이 생소하였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고착된 것은 인터넷 신문 등에서 2000년 초부터 10대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수를 지칭하는 단어로 '아이돌'을 자주 사용하면서부터다. 한편 '걸그룹(Girl Group)' 혹은 '소녀 그룹(少女-)'이라는 용어는 1993년부터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41] 이후 1997년경부터 S.E.S. 핑클 등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그룹을 만들어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42] 일반적으로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어리고 젊은 여성 가수의 집단적 구성을 일컫는 용어다.
4. 1세대 아이돌 (1994~1998년)
1세대 아이돌 (1994~1998)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구분 | 팀명 (데뷔년도) |
보이그룹 | 윤도현밴드(YB), 토이, DJ DOC (1994) R.ef, 터보, 패닉, 벅, 육각수 (1995) 클론, 구피, IDOL, 킵식스, H.O.T.[해체][44], 언타이틀[해체], 하모하모[46] (1996) 젝스키스[해체][48], NRG, 지누션, 태사자, 유비스[해체][50], UNO(우노), TNB, A.R.T (1997) 신화, OPPA[51], 이글파이브[해체][53], 팬클럽[54] , EVE, 원타임[해체], 스피드, 포맨, 컨츄리꼬꼬 (1998) | |
걸그룹 | 비비, 에코, 미스미스터, 뚜띠[56] (1996) 베이비복스[57], S.E.S., 디바 (1997) 핑클, 한스밴드[58], 써클[59], O-24 (1998) | |
혼성그룹 | 룰라, 투투, 뮤, 쿨[60] (1994) US[61] (1995) 마운틴[62], UP[63], 콜라[64], 자자, 주주클럽[65], 영턱스클럽 (1996) 줄리엣[66], 자우림, 스페이스A, 업타운, 소호대[67], 고구려, 척(Chuck) (1997) S#ARP, 코요태, 비쥬, 오룡비무방[68] (1998) | |
남성솔로 | 서지원, 박진영[69], 김경호[70], 바비 킴, 김정민, 성진우, 구본승 (1994) 박지원, 임창정[71], 김성재 (1995) 포지션, 김연우, 이현도, 이지훈, 이기찬, 김수근[72] (1996) 홍경민, 박완규, 얀, 김현성, 유승준 (1997) 조성모[73], 최창민 (1998) | |
여성솔로 | 이예린[74], 황세옥[75] (1994) 소찬휘, 리아, 양파 (1996) 박지윤, 임성은, 진주 (1997) 김현정, J.ae, 박정현, 이소은, 박기영, 루머스 (1998) | }}}}}}}}} |
1990년대 Kpop Idol History |
H.O.T. '캔디' |
젝스키스 '폼생폼사' |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고 1996년 하반기 이후 H.O.T.의 데뷔를 기점으로 현재 말하는 아이돌 전성시대로 1세대 아이돌의 정의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H.O.T.를 비롯한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는 1998년부터 KBS에서는 가요톱10이 종영하고 뮤직뱅크가 방영되기 시작, MBC에서는 인기가요 베스트 50이 종영하고 음악캠프가 방영되기 시작, SBS에서는 생방송 TV가요 20이 종영하고 SBS 인기가요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1997년 IMF 사태로 지상파의 음악 순위프로그램이 전부 폐지되었던 것의 영향이었다.
참고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발표하던 날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와 허탈감에 빠졌으며 심지어 3대 방송사 9시 뉴스의 메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 그리고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만 아쉬워하는 수준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날 학교에선 서태지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다.
당연히 1980년대~1990년대 청소년들의 영원한 우상이라고 불리던 인기 최정상의 아이돌이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서술의 내용이 단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띄우기 위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을 조금 덧붙여서 거짓말이 아니라 거의 대통령이 하야를 했다는 반응과 거의 비슷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10~20대 정도의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큰 충격에 빠졌으며 "사실상 대중가요계가 텅 비었다!"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당장 1년 전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보다도 그 실질적인 임팩트가 컸다.
그래서 다음 날 학교를 가면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태지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다. 서태지의 골수 여학생 팬들은 해체를 반대한다면서 매일마다 서태지의 소속사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을 정도로 시대고증에 너무 잘 맞았고 골수팬들의 충성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극 중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예 식음을 전폐하자 삼천포가 못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왔을 정도로 골수팬들의 반응은 거의 다 그랬었다.
물론, 당시에는 충격받고 밥만 안 먹은 것 정도는 축에도 못 꼈다. 그 당시 언론의 핵심은 자살소동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300명 자살예비조 같은 흉흉한 소리가 돌던 시기였다. 다행히 실제로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H.O.T.나 젝스키스가 해체를 했을 때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다.
당시의 증언을 빌리자면, 나이어린 초등학생들 고학년 사이에서도 "도대체 왜 해체하는데?"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초등학생들도 저학년들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한다고 싫어하는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학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싫어하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형, 누나, 오빠들이 매일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들었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만화를 보면서도 지상파 음악방송 할 시간에는 당연히 채널을 돌리니까 노래 들으면서 랩 열심히 연습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막 나타났던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는 정말 지겹게 흘러나왔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늦게나마 듣고 자랐기 때문에[76] 싫어하지도 않았고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는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세대는 H.O.T.와 젝스키스의 데뷔를 보면서 1세대 아이돌을 응원하는 중심세력이 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아이돌 가수들이 은퇴를 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큰 충격을 받는 대중들의 반응은 앞으로도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1996년 H.O.T.의 데뷔를 시작으로 1세대 아이돌 시장이 열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가 1대 아이돌 붐이라 불리는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였다. 보이그룹은 19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은 H.O.T.와 젝스키스 세대가 선발주자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은 신화와 god 세대가 후발주자로 구분된다. H.O.T.가 아이돌의 정석을 확립해 거대 팬덤을 형성했다면, god는 탈아이돌성을 어필해 대중성을 잡았다. 선발주자들이 H.O.T.의 영향을 받아 정통파 아이돌의 양상을 띄었다면 후발주자들은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별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걸그룹은 1997년 11월 S.E.S.의 데뷔를 기점으로 1998년 핑클과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걸그룹 경쟁이 시작되었다. 둘은 전통적인 청순파 걸그룹의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S.E.S.는 신비주의를 핑클은 친근감을 어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핑클은 영원한 사랑으로 가요대상을 차지한적이 있고, S.E.S.는 음반에 강세를 보이며 3집 Love가 단일 앨범 판매고 76만장을 기록했는데 이는 BLACKPINK가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기 전까지 20여년간 걸그룹 단일 앨범 판매량 역대 1위 기록이었다. 그리고 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3인자 베이비복스가 있었고 걸그룹 최초로 섹시 컨셉을 시도하면서 S.E.S, 핑클과의 차별성을 확보한다. 물론, 그 이후로 몇 팀이 한꺼번에 1위를 다투는 춘추전국시대같은 혼돈양상은 있었지만 베이비복스처럼 독보적인 3인자 이미지의 걸그룹은 현재까지도 전혀 없다.#
1세대 아이돌 중 1군 걸그룹으로 통하는 S.E.S.-핑클의 양강구도로 라이벌이었고,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1.5군 걸그룹으로 군림했지만, 히트곡 수는 이들에게 꿀리지 않았고, 걸그룹 중에서 거의 최초로 섹시컨셉을 시도한 걸그룹이다. 히트곡은 <야야야>, <Change>, <Get Up>, <Killer>, <Missing You>, <Why>, <배신>, <인형>, <우연>, <나 어떡해> 등, 히트곡이 많았다.
더구나, 당시 베이비복스는 2000년 이후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나 디바, 클레오등과는 크게 격차를 가지고 있었으며[77]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 핑클을 바로 이어서 항상 3위를 기록했었다. 그야말로 라이벌이 없는 걸그룹계의 3인자였다. 하지만, 2002년 우연을 통해 S.E.S.와 핑클을 제치고 정상을 누렸던 적도 있었고 S.E.S와 핑클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대등한 양대산맥으로 인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베이비복스가 실질적인 2인자나 다름없다. 또한, 총 음반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한 몇 안되는 걸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역대 걸그룹 총합 판매량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총판 1위 기록은 S.E.S.가 갖고 있다.
다만,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1세대 아이돌의 문화를 둘 다 향유하였다. 1981년 이전 세대를 "서태지 세대"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고, 통상적으로 1981년생~1987년생들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을 보고 들으면서 자란 세대이며, 1986년생보다 2살 어린 1988년생까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78]로 "국초딩 세대", "중학교도 의무교육없이 돈 내고 다니던 세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79]
1990년대 중후반 당시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이었던 1980년생~1987년생들도 나이가 어렸을 때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늦게나마 듣고 자란 경우가 많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없었으므로...[80] 그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이 대학생, 20대가 되면서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1996년~1999년경 국민→초등학교 4, 5학년 정도였던 1987년 이후 세대들(1987년~1989년생)은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1세대 이전 아이돌의 문화는 거의 모르고, 그 이후 세대인 H.O.T.,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god 등 1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을 조금씩 접하게 된다.[81]참고로 1989년생까지는 윈도우98세대, 이해찬 세대에 해당된다.[82]
특히 1997년~2000년 당시는 그룹 못지않게 솔로 또한 아이돌 스타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유일한 시절이다. 남성솔로의 경우 유승준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임창정은 <그때 또 다시>라는 노래로 H.O.T.와 맞붙어 1997년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1998년 조성모가 등장하면서 뮤직비디오가 드라마, 영화화 되기 시작했고 연이은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며, 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 대상을 석권했다. 이렇게 1세대의 날고 긴다는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순위에서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면서도 엄청난 팬덤을 몰고 다니면서 이 시대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성솔로의 경우 엄정화가 1997년 발표한 <배반의 장미>로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이 후 <포이즌>, <몰라>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등장한 김현정이 <그녀와의 이별>로 발매 1년 여만에 역주행을 일으키며, <혼자한 사랑>, <되돌아온 이별>, <멍>, < 너 정말> 등으로 당시 아이돌 그룹 핑클, 신화, 젝스키스 등을 제끼며 1위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여성솔로가 바로 이정현이다. 데뷔곡 <와>가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바꿔>, <너>까지 연이은 히트를 기록했다.
2000년 보아를 기점으로 트레이닝은 더 혹독해지며 일본,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 외국어도 공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보아의 경우는 1세대와 1.5세대 사이인 과도기에 데뷔했지만 소속사의 물량공세를 감안한다면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1.5세대 아이돌에 들어서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대략 1980년대 초반~중반 정도 출생 세대가 1세대 아이돌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대가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구매력이 좋은 현재 30대~40대가 되었는데 그들의 당시 문화코드를 관통한 토토가의 대 성공은 당시의 한국 아이돌의 영향력을 잘 알지 못하였던 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그때의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응답하라 1997은 당시의 팬덤 문화를 잘 재현한 드라마.
4.1. 1.5세대 아이돌 (1999~2003년)
1.5세대 아이돌 (1999~2003)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구분 | 데뷔년도 | 팀명 |
보이그룹 | 1999 | god, 드렁큰 타이거, 스냅, 야다, Y2K, 쟈니버니, A4, 피플크루, 팀, 조이디, 클릭비, 브론즈, 플라워, 프리스타일, 뉴클리어,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2000 | 량현량하, 문차일드(M.C The Max), UN, CB Mass, 디토, 발렌타인, 듀크 | ||
2001 | 넬[83], 보이클럽, 뉴오더, PLT, 디베이스, 리오, 프릭스, 위즈, 엑스라지, K-POP, 부가킹즈, jtL, 오션 ,브라운 아이즈 | ||
2002 | 바이브, 4U[84], 블랙비트, 7Dayz, 제이워크, 악동클럽, Q.O.Q, 리쌍, O2R, F-iv[85], 멘사, 노을 | ||
2003 | 테이크, 차니미니, 젠티, 원투, 더 크로스, 스맥스, 브라운 아이드 소울, 투샤이, 버즈, 에픽하이 | ||
걸그룹 | 1999 | 클레오, 티티마, 애즈원[86], 타샤니, See U, 두리안 | |
2000 | 샤크라, 파파야 | ||
2001 | 쥬얼리, M.I.L.K., 슈가, 투야, KISS, S[87], 걸프렌드[88], 보이스코[89] | ||
2002 | SWi.T, 신비, 이삭 N 지연, Luv, 데자뷰 | ||
2003 | 빅마마, 컬러링 베이비 7공주, 모닝, 버블시스터즈 | ||
혼성그룹 | 1999 | 허니 패밀리 | |
2000 | 체리필터[90] | ||
2001 | 더 자두, 거북이 | ||
2003 | 퍼니[91] | ||
남성솔로 | 1999 | 강현수, 김범수, 박효신, 현승민, 조PD, 김사랑 | |
2000 | 은지원 | ||
2001 | 성시경, 싸이[92], 강타, 문희준, 강성훈, 이재진, 리치, 론[93], 주니퍼, 김종국 | ||
2002 | 비, 휘성, 채동하, 한경일, JK김동욱,MC 스나이퍼 | ||
2003 | SE7EN, 이정[94], JR, 팀 | ||
여성솔로 | 1999 | 유채영[95], 이정현, 백지영[96], 소냐, 샤니, 채정안, 이수영[97] | |
2000 | 화요비, 보아, 왁스 | ||
2001 | 장나라, 하늘, 죠앤, 다나, 유리, 린, 페니, 이가희, 윤미래 | ||
2002 | 별, 미나, 정인 | ||
2003 | 혜령, 거미, 렉시, 이효리, 옥주현, 바다, 유진, 채연, 서연[98], 유니, 솜이 | }}}}}}}}} |
이효리 '10 Minutes' |
쥬얼리 '니가 참 좋아' |
2000년대 초반에는 조성모를 비롯해 발라드 가수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1세대 선발주자인 H.O.T.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으며 젝스키스 또한 돌연 해체[99]를 선언하여, 아이돌 1세대 팬덤이 주도하던 문화현상은 일단락되었다. 그 바람에 아이돌 팬덤의 영향력이 전보다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1세대 후발주자들은 선발주자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1999년 데뷔한 god는 탈아이돌성과 친근감을 내세워 국민 아이돌에 등극했고, 1998년 데뷔한 신화 역시 2000년대 초반 남성적인 반항아로 컨셉을 틀며 제 2의 보이그룹 라이벌 구도를 확립한다. 2004년부터는 아시아 시장을 노린 독특한 그룹명과 멤버 작명을 선보인 동방신기와 보이밴드 컨셉의 버즈가 1군급 인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 걸그룹 또한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S.E.S가 해체하고, 핑클의 활동도 잠정 휴지기에 들어가며 왕좌는 공백이 되었다. 1.5인자로 취급받던 베이비복스 또한 서서히 하락세를 타다 활동을 중지했고 샤크라와 슈가마저 짧은 전성기 이후 그 뒤를 따랐다. 결국 2003년경부터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7년까지의 4년은 뒤늦게 터진 쥬얼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진공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로 1세대 선배그룹의 인기를 계승한 걸그룹은 없다시피 했다. 아이돌 팬덤이 형성된지 햇수로 5년이 되어, 그 시장이 충분히 성숙해가자 사회적 메시지와 강렬한 퍼포먼스로 무장했던 1세대 아이돌의 문법은 다소 유연하게 바뀌게 되었고, 컨셉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또한 2000년대 초중반은 소몰이 창법으로 대변되는 팝발라드와 랩과 힙합으로 2분된 장르의 전성기가 되어,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다소 쇠퇴했다.
그만큼, 1세대 이전 출신의 수많은 컴백 가수들이 명곡을 쏟아냈기 때문에[100] 음반시장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 정점을 찍었지만 인터넷과 국민PC의 대중화로 소리바다같은 P2P 방식의 음원 공유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가 점점 증가하는 바람에 음반 시장 규모의 수명을 단명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지만 가수 제이의 2집 히트곡 '어제처럼'이 R&B 대중화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고, 윤건과 나얼이 의기투합한 브라운 아이즈는 단 2장의 앨범으로 가요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101]
결국, 2001년부터 1세대 아이돌의 영향력과 음반 시장의 규모마저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1세대 아이돌의 1인자였던 H.O.T.가 2001년 5월 13일에 공식적으로 해체[102]되었다. 6월 초부터 R&B 보컬 그룹 브라운 아이즈가 '벌써 일년'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연제협 사건과 걸프렌드 대리 녹음 사건 이후 음악방송에서 라이브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는 음반 시장의 규모가 가파르게 축소되어 큰 타격을 받게 되자 수많은 음반 매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인터넷 발달로 인해 불법 다운로드는 멈출줄 모른 채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2003년부터는 S.E.S.의 해체와 핑클의 잠정적인 활동 중지로 1세대 아이돌 최후의 주역 걸그룹들마저 물러나게 되었다. 또한 시대의 흐름과 겹쳐 god는 사실상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데다 멤버 탈퇴로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막혀있던 여성솔로가수들의 가요대상 수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틈에서 꾸준히 활동했던 신화는 2004년 가요대상 수상을 마지막으로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다른 솔로 가수들 및 일부 댄스 그룹들이 과거 1세대 주역 아이돌 그룹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음악시장의 대중적인 트렌드는 예전의 1세대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방신기와 쥬얼리가 각각 보이밴드와 걸그룹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특히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해체되거나 활동 중단을 하게 되면서 기존 멤버들이 솔로로 데뷔했지만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세대 아이돌의 메인보컬로 각광받던 강타, 바다, 옥주현 등은 그룹시절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고, 오히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핑클의 이효리가 엄정화의 섹시 여가수 계보를 이으며 대성했다.
남성솔로에서는 1세대에서 독보적 존재였던 유승준의 부재로 인해 신인으로 데뷔한 비와 SE7EN의 양강구도가 2003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여성솔로 중에는 21세기를 앞두고 파격적인 콘셉트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켰던 이정현과 1세대 말에 데뷔해서 다소 고전하다가 1.5세대에 들어서면서 2002년부터 빛을 보게 된 보아와 장나라의 양강구도를 중심으로 팬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보아와 장나라보다는 약했지만 하늘, 죠앤이 엄청난 팬덤을 몰고 왔다. 그리고 보아나 장나라와 차별된 스타일의 섹시코드를 주축으로 하는 미나, 채연, 유니 등의 여자 가수들까지 데뷔하게 되면서 2003년부터 여성 솔로 가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혼성그룹의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이어졌다. 혼성 댄스그룹으로 가장 인기가 높던 쿨과 코요태의 활동이 줄어들었고, 이 둘의 후계자로 점쳐지던 거북이가 불의의 사고로 활동이 중단되는 악재가 겹쳤다. 이후 아이돌 그룹들이 발표한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혼성그룹의 비중이 거의 공기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여성팬덤의 지지가 탄탄한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의 타격이 커지게 되면서 2007년까지 걸그룹은 사실상 궤멸상태였다. 밀크, 신비 등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걸그룹마저 처참한 실패를 겪은 시기다.[103] 보이그룹의 경우, 동방신기가 H.O.T.의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1인자로 대동단결하는 와중에 SS501[104], PARAN[105], 그리고 굳이 보이그룹으로 분류하자면 버즈[106] 정도가 명맥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는, 한창 불어닥친 R&B 열풍을 바탕으로 휘성, 박효신, KCM, SG워너비, 엠투엠, V.O.S,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플라이 투 더 스카이[107], 먼데이키즈, 이정 등 가창력과 보컬을 강조한 남성 솔로 또는 그룹 R&B 아티스트들이 음악시장의 대세를 차지하면서 아이돌 그룹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부침을 겪게 된다. 여자 가수들도 또한 이수영은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데뷔했으나, 인기도에서 다소 밀려있었다가 2000년대 중반 발라드의 여왕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며 빅마마, 거미, 박화요비 등의 정통파 보컬리스트들이 이 시기부터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MC 스나이퍼, 아웃사이더, 배치기, 의 등 스나이퍼사운드 계열의 아티스트들과, 그리고 에픽하이, 리쌍, 다이나믹 듀오 등을 필두로 랩과 힙합을 위시로 상기 소몰이창법의 R&B 계열과 대척점에서 인기를 끌며 수요를 이끌어가기도 했다. 다만, 이때 당시의 힙합 매니아들은 아이돌 팬덤과는 거의 물과 기름과도 같은 극단적인 배타주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힙합을 표방하는 아이돌 그룹은 1TYM, 디베이스 등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힙합 팬들은 강하게 배척하고 거리감을 둬서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는 2010년대 쇼미더머니가 흥행한 이후에야 비로소 사그라들게 되고 지코와 같은 아이돌형 래퍼도 등장하게 되면서 한국 아이돌의 장르적 분화도 뚜렷해지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를 대표하는 노래방 대통령은 SG워너비, 브라운 아이즈, 버즈, 엠씨더맥스, V.O.S, 빅마마 등 발라드와 소몰이창법으로 무장한 가수들 아니면 힙합 레이블 아티스트들이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당시 대중가요계의 대세는 소몰이창법을 위시한 R&B와 발라드 또는 랩과 힙합으로 양분된 장르가 득세하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다시 2세대 아이돌을 중심으로 대중가요계가 다시 새롭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는 R&B 열풍이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변질되면서 R&B를 가장한 이른바 소몰이창법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조영수, 류재현 등 유명 작곡가들이 계속 확대재생산하는 이른바 '양산형 소몰이 음악' 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비슷한 음악들이 지나치게 범람하게 되자 대중들이 쉽게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라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는데, 천편일률적인 노래들에 대중들이 싫증과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대중가요계의 암흑기" 라고 자주 언급되면서 유독 많이 까였던 시기였던지라[108] 그에 따라 음악적 평가가 온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몰이창법 문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속적인 최루성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성행으로 인해 많은 질타를 받았다.
다만, 이 시기 아이돌이라는 체계가 쇠퇴했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대중가요계의 암흑기라고 확대해석 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된다. 2007년 원더걸스와 BIGBANG으로 인해 시작된 아이돌 전성시대 이후 또 다시 너무 오랫동안 후크송만 부르는 양산형 아이돌 mk2만 나오는 것이 반복되어버리다 보니[109] "이 시절의 가수들은 가창력도 좋았고 가사도 좋은 명곡들도 흘러넘친다!" 라고 다시 그리워하는 여론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든싱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등의 음악예능의 성공에는 과거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과 1.5세대 아이돌의 팬을 자처했던 사람들과 그 아랫세대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그저 추억보정 하나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큰 어폐가 있다. 실제로 이 시대의 음악들은 2010년대 현재까지도 여전히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많이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110]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등장하면서 대 아이돌 시대가 펼쳐젔다고 해서 2000년대 중반 아이돌그룹의 형식이 잠시 쇠퇴한 시기에 주가를 올리던 소울 발라드나 랩과 힙합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케이윌과 슈프림팀의 사이먼 도미닉이나 블락비의 지코 처럼 싱어송 라이터나 프로듀서형 아티스트로 발전하는 등 그 장르 자체를 향유하는 소비층의 대중성을 유지하면서 명맥은 차후 세대로도 계속해서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는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이 시기의 팬덤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시기상으로 나이대가 큰 차이가 없는 만큼 1세대 아이돌 문화를 향유한 세대와도 팬덤 층이 겹친다. 그리고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회자되고 명맥을 잇는 태조 왕건이나 야인시대가 유행한 것이 이 시점이었는데, 당시 청소년 세대였던 이들이 컨텐츠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시점인 2010년대에 이 시대의 아이돌들과 위의 컨텐츠들이 다시 재조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2000년대 초중반 아이돌 침체기에는 아이돌 수요층 중의 일부가 외국 가수와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이그룹 수요층은 린킨 파크나 Sum 41같은 락이나 메탈 장르를 향유하거나[111] KinKi Kids, 아라시, KAT-TUN 등 일본 쟈니스 아이돌의, 걸그룹 수요층은 걸그룹 대신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팝 아이돌 가수의 팬이 된 것이다. 비록 이것은 어디까지나 틈새 시장 정도의 수요였고, 대규모로 일어난 현상은 아니지만[112] 아이돌에 대한 수요가 해외 콘텐츠에 대한 관심으로 어느 정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1.5세대로 분류하지만 실제 복고 컨셉트의 방송이나 매체에서는 이들도 대부분 1세대 아이돌로 묶는다.
5. 2세대 아이돌 (2004~2008년)
2세대 아이돌 (2004~2008)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40%; min-height: 2em" {{{#!folding [ 주요 목록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 <rowcolor=#fff> 구분 | 팀명 | |||
보이그룹 | 동방신기, V.O.S, SG워너비, 엠투엠, 다이나믹듀오, 원티드, 슈퍼주니어, SS501, 먼데이키즈, izi, 소울스타, 노라조, BIGBANG, SHINee, 2AM, 2PM | ||||
걸그룹 |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가비엔제이, 브라운아이드걸스, 씨야,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다비치 | ||||
혼성그룹 | 클래지콰이, 8eight | ||||
남성솔로 | 테이, 아웃사이더, 이루, 견우, 나얼, 범키, 사이먼 도미닉, 하동균, 황치열, 염따, 케이윌, San E, 매드클라운, 태양, 스윙스, Basick | ||||
여성솔로 | 윤하, 아이비, 임정희, 제시카 H.O(제시), 서인영, 아이유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40%; min-height: 2em" {{{#!folding [ 전체 목록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 <rowcolor=#fff> 구분 | 데뷔년도 | 팀명 |
보이그룹 | 2004 | 동방신기, 트랙스[사실상해체], V.O.S, SG워너비, 엠투엠, 다이나믹듀오, 원티드[사실상해체], 엠스트리트(M.street) | |||
2005 | 슈퍼주니어, SS501, 먼데이키즈, PARAN[사실상해체], izi[사실상해체], 스윗 소로우, 소울스타, 비욘드(Beyond), 노라조 | ||||
2006 | BIGBANG, 배틀[해체] | ||||
2007 | FT아일랜드, 초신성[118], 티맥스, 타키온, 딕펑스, 데이브레이크 | ||||
2008 | SHINee, 2AM, 2PM, 유키스, 언터쳐블, 에이스타일[해체], 스매쉬[해체], 마이티 마우스, 국카스텐 | ||||
걸그룹 | 2004 | Shyne[해체] | |||
2005 |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사실상해체], LPG[사실상해체], 레드삭스[해체], 더 빨강[해체], 가비엔제이, 다미앤주니어, i-13[해체], 퍼퓸[해체], 카사 앤 노바, 오렌지[해체] | ||||
2006 | 브라운아이드걸스, 씨야[해체], 키로츠[해체], 2NB, BGH4 | ||||
2007 |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블랙펄[해체], 써니힐[132], 베이비복스 리브[해체], 캣츠[해체], 가비퀸즈[사실상해체] | ||||
2008 | 다비치[136] | ||||
혼성그룹 | 2004 | 클래지콰이 | |||
2005 | 익스[사실상해체] | ||||
2006 | 타이푼 | ||||
2007 | 8eight | ||||
2008 | 소울라이츠 | ||||
남성솔로 | 2004 | 테이, KCM, 이승기, 일락, 아웃사이더, K | |||
2005 | 이루, 견우, 나얼, 범키, 사이먼 도미닉 | ||||
2006 | 하동균, 황치열, 염따 | ||||
2007 | 케이윌 | ||||
2008 | San E, 매드클라운, 태양[BIGBANG], 스윙스, Basick | ||||
여성솔로 | 2004 | 럼블 피쉬[139], 윤하[140], 데이라이트, 이안, 한나[141] | |||
2005 | 아이비, 메이비, 임정희, 제시카 H.O(제시), 알리, 하유선, 성은, 전혜빈[142] | ||||
2006 | 레이디 제인, 장리인, 오윤혜 | ||||
2007 | 손담비, 지아, 서인영, XENO, 세이, 제이민, 마망 | ||||
2008 | 아이유, JOO, 선하, 문지은, 이현지[143] | }}}}}}}}}}}} |
2004년 2월 21일, MBC 음악캠프 중 동방신기 'Hug' |
2007년 9월 8일, MBC 음악중심 중 원더걸스 'Tell Me' |
2007년 9월 29일, MBC 음악중심 중 BIGBANG '거짓말' |
2009년 7월 18일, MBC 음악중심 중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 [144] |
2세대 아이돌로 구분되는 동방신기는 2004년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신화의 다음 세대격 아이돌이었기 때문에 동방신기를 2세대 아이돌의 시작으로 보는 데에는 달리 이견이 없지만, 실질적인 2세대 아이돌의 세대 교체는 2007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45] 이런 반응이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04년은 2세대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을뿐더러 베이비복스와 디바, 코요태 그리고 NRG와 신화, god 등 1세대 아이돌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했고, 핑클과 샤크라가 해체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또, SBS는 여의도 사옥을 이용했고, KBS는 뮤직뱅크에서 ARS 투표제도를 실시하였으며, MBC는 구 로고와 음악캠프가 전파를 탔던 시절인 만큼 방송가에서도 20세기 말엽의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1세대 아이돌이 솔로 유닛 또는 배우 활동 등으로 사라지거나 영향력을 점차 잃어갔으며, 동시에 SS501, 슈퍼주니어 등 여러 보이그룹이 데뷔를 하게 되면서 2세대 아이돌 시대가 도래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 2005년부터 1세대가 사라지고 2세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니 2년 후인 2007년부터 2세대 아이돌 열풍의 시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시작이 원더걸스의 <Tell Me>와 BIGBANG의 <거짓말>이다. Tell Me는 중독성 있는 후크송과 포인트 안무로 전국민이 쉽게 따라 부르고 춤추며 대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So Hot과 Nobody가 연달아 신드롬 및 메가 히트침으로써 걸그룹 후크송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의 화제성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보통 나잇대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아이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더걸스는 그걸 넘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Tell Me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느낄 정도로 큰 화제성을 불러왔으며 원더걸스 자체가 신드롬 이었다.
BIGBANG 또한 같은 해 <거짓말>을 메가 히트시키면서 랩과 힙합 또는 발라드와 소몰이 창법으로 양분되어 지배하던 한국 대중음악시장을 일렉트로닉, 후크송 위주의 트랜드로 바꾸었고, 이후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붉은 노을>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가요계를 아이돌 전성시대로 만들었다. 또한 BIGBANG은 음악뿐 아니라 전국에 하이탑 운동화를 대유행시키는 등 패션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며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로서 자리매김하였고 더 나아가 세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적 존재가 되어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탈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만들며 아이돌을 대하는 대중들의 시선을 단순한 상품에서 엄연한 아티스트로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잠시 동안은 대중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보이그룹이었지만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대중음악시장에서 가장 센 스트리밍 파워를 가진 그룹이자 가장 큰 대중성과 음악성을 가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 멜론 주간차트, 월간차트, 연간차트 최다 1위, 최다 진입과 동시에 00년대, 10년대, 20년대 모두 월간차트 1위를 하는 대기록을 달성, 보이그룹 최초 멜론 연간차트 1위, 최초 1억 스트리밍 달성, 최초 갤럽 올해의 가수 1위를 달성하며 이를 증명하였다. 2012년에는 <ALIVE> 음반이 한국어 음반 최초로 빌보드 200 진입을 하였고 뱅뱅뱅은 일본 라인 뮤직 연간 차트 2위를 하는 등 활동 기간 K-POP의 세계화를 이끈 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3세대의 해외 진출의 밑바탕이 되었다. 2020년대에도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본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봄여름가을겨울’은 4년이 넘는 공백기와 자정 발매, 음방 출연 및 홍보의 부재, 멤버의 탈퇴 및 불명예 은퇴라는 불리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트 1위, 퍼펙트 올킬(PAK)[146], 빌보드 글로벌 차트 3위 등을 기록하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후에도 리더인 GD까지 컴백하며 여전히 자신들이 2세대 아이돌의 대장급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BIGBANG, 소녀시대 이후의 아이돌 음악은 '일렉트로닉 팝을 기반으로 한 화려한 퍼포먼스로 대표되는 댄스음악'을 큰 줄기로 하여, 세부적인 장르에서만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방향으로 큰 줄기를 잡게 되었다.
이후 2009년 소녀시대의 <Gee>가 초대박 히트를 치고 <소원을 말해봐>가 히트를 치면서 걸그룹 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소녀시대만의 세상이 열렸다.[147] <Gee>는 2000년 대를 통틀어 음원 1위인 노래인 만큼 당시에도 그 인기가 엄청났고, 소녀시대가 입은 스키니진 또한 전국적인 대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소녀시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셈이다. 그간의 걸그룹은 가수보단 노래가 더 주목받고 유행이 됐었더라면, 소녀시대는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 자체가 범국민적 신드롬 및 유행이었다. 즉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148]걸그룹 최초로 1위에 선정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아이돌 그룹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2년 연속(2011, 2012년) 1위라는 대기록이다. (참고로 H.O.T.와 방탄소년단이 각각 1999년, 2018년에 1회씩 1위를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최초이자 유일하게 해당 조사에서 6년 연속 TOP 10 순위권 안에 들었다. (2009년 6위, 2010년 6위, 2011년 1위, 2012년 1위, 2013년 5위, 2014년 9위.)]이 되어 가요계에 새 역사를 쓴 것이다. 각종 대상 수상 및 여론조사 및 음반, 음원 기록 등에서 줄곧 아이돌 그룹 신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한국갤럽 한국 가수 인지도 여론조사에서 1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소녀시대가 1위[149]를 차지하며 아이돌 그룹으로서 유일무이한 대기록을 남겼다. 다인원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불문, 전국민이 소녀시대 모든 멤버들의 이름을 다 알 정도로 최고의 인지도를 지녔으며 그렇게 국민 걸그룹 및 아이돌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뒤이어 <소원을 말해봐>와 <Oh!>, <Run Devil Run>[150], <훗>, <MR.TAXI>[151], <The Boys> 등 다양한 컨셉을 연달아 히트침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걸그룹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소녀시대의 컨셉 시도 이후로 다양한 컨셉의 걸그룹도 많이 나올 수 있었고, 다인원 걸그룹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그전까지는 팬덤보다는 대중성에 더 강했던 걸그룹이었는데, 소녀시대가 대중성뿐만 아니라 엄청난 팬덤을 잡음으로써 "대중성과 팬덤, 그리고 실력을 모두 갖춘 걸그룹"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빌보드가 “지난 10년 동안 강력한 커리어를 보여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POP 제왕'”[152]이라고 언급한 만큼 K-POP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에 앞장섰고, 특히 일본에서 K-POP 열풍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그룹이 되었다. 이에 따라 후배 그룹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큰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또한 소녀시대는 특히 걸그룹 최초로 골든디스크어워즈 음반 대상을 수상하며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걸그룹 유일무이한 실물 앨범의 대상 기록으로 남아있다.[153] 또한 소녀시대는 2011년에 음반으로 써클차트(당시는 가온차트) 연간 음반 판매량에서 연간 1위를 차지하면서 이 또한 걸그룹의 유일한 음반 판매량 연간 1위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카라, 2NE1, 티아라[154]가 잇따라 큰 인기를 끌면서, 댄스 음악이 다시 가요계의 1순위 주류로 자리잡으며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돌의 음악과 춤은 단연 화제가 되었으며[155], 특히 2008년 이전에 데뷔하여 가요계를 석권한 동방신기[156], SS501[157], 슈퍼주니어[158], BIGBANG[159], FT아일랜드[160], 소녀시대[161], 원더걸스[162], 브라운아이드걸스[163], 카라[164]
당시 가요계는 말 그대로 걸그룹의 군웅할거 시대라고도 했는데 원더걸스-카라-소녀시대를 묶어 데뷔 순으로 원카소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원더걸스의 시작과 소녀시대를 중심으로 걸그룹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슈퍼주니어의 경우, 데뷔는 생각보다 빠르지만 멤버들의 예능에서의 활약을 통해 롱런하고 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경우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컬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가열차게 실패한 뒤, 일렉트로닉 뮤직을 장착해 아이돌 시장에 뛰어들게 되며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원더걸스는 무리한 미국 진출의 후유증으로 개점휴업상태가 길었고, FT아일랜드는 아이돌보다는 음원 중심의 발라드 그룹으로 노선을 변경한 듯하다.
이 시기부터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인터넷 환경이 완전히 본격화된 시점 이후 (2000~2002년)에 공교육을 받게 되어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고 싸이월드와 같은 1세대 SNS가 아닌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좀 더 익숙한 편이다. 멜론과 같은 음원사이트로의 재편이 이미 완성된 시점에 곡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게 되어 컨텐츠의 소비 경향 또한 뚜렷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TV 음악 프로의 영향력 감소, 1달 미만으로 극단적으로 짧아진 활동 기간 등은 당시의 문화 소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2.5세대 아이돌에까지 이어진다.
5.1. 2.5세대 아이돌 (2009~2011년)[165]
2.5세대 아이돌 (2009~2011)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40%; min-height: 2em" {{{#!folding [ 주요 목록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 <rowcolor=#fff> 구분 | 팀명 | |||
보이그룹 | 비스트, 엠블랙, CNBLUE, 인피니트, 틴탑, 포스트맨, 10CM, B1A4, 블락비, 버스커버스커 | ||||
걸그룹 | 2NE1, 포미닛, 애프터스쿨, 티아라, f(x), 시크릿, 미쓰에이, 걸스데이, 씨스타, Apink, 브레이브걸스 | ||||
혼성그룹 | 어반자카파, 트러블 메이커 | ||||
남성솔로 | 서인국, G-DRAGON, 허각, 김현중, 기리보이, 마크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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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 2009 | 슈프림팀[해체], 비스트[167], 엠블랙[해체], SHU-I[해체], 디셈버[계약종료] | |||
2010 | CNBLUE, 제국의아이들, F.CUZ, 인피니트, 틴탑, JYJ, 대국남아, 레드애플[해체], 엑스크로스, 포스트맨, 10CM, J2(제이투), 리듬파워 | ||||
2011 | B1A4, 블락비, 보이프렌드, 마이네임, M.I.B[해체], 버스커버스커, 긱스 | ||||
걸그룹 | 2009 | 2NE1, 포미닛[해체], 애프터스쿨[계약종료], 티아라, f(x)[계약종료], 레인보우[해체], 시크릿[계약종료], JQT[해체], HAM[해체], 브랜뉴데이[해체] | |||
2010 | 미쓰에이[해체], 나인뮤지스[해체], 걸스데이[계약종료], 씨스타[해체], 걸스토리[해체], GP Basic[사실상해체], 바닐라루시[해체], 베베미뇽[해체], VNT[해체] | ||||
2011 | 라니아[해체], Apink, 브레이브걸스[계약종료][192], 쇼콜라[해체], 파이브돌스[해체], 스텔라[해체], 달샤벳[해체], 치치[해체], 코인잭슨[해체], 벨라[해체] | ||||
혼성그룹 | 2009 | 어반자카파 | |||
2010 | 남녀공학[해체] | ||||
2011 | 트러블 메이커[사실상해체] | ||||
남성솔로 | 2009 | 태군[202], AJ[비스트][204], 청림[205], 서인국, G-DRAGON[BIGBANG] | |||
2011 | 허각, 제이클리[207], 김현중[SS501], 기리보이, 마크툽 | ||||
여성솔로 | 2009 | NS윤지, 김소리, 메이다니, 박봄[투애니원] | |||
2010 | 현아[포미닛], G.NA | ||||
2011 | 한그루, 살찐 고양이, CHEEZE | }}}}}}}}}}}} |
2009년에 이르러 YG(BIGBANG, 2NE1), SM(동방신기, 천상지희,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JYP(원더걸스, 2PM)의 3강 구도가 뚜렷해졌다.
2NE1은 빅뱅과 콜라보한 광고 음악 Lollipop으로 이름을 알렸고, 후에 I Don't Care가 히트를 치며 레전드 걸그룹이자 당시 걸그룹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소녀시대와 은근하게 라이벌 구도로 엮이기도 했다.[211] 또 내가 제일 잘 나가를 히트시켰고 2NE1만의 걸크러시 트렌드를 주도했다.[212]
2.5세대 아이돌의 특징이라면 그룹에 확실한 캐릭터가 있다는 점,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노리고 기획되었다는 점, 멤버별 파트가 보다 체계적으로 나뉘었다는 점 등이다. 특히 이 시기부터 대중 가요 곡에서는 3대 기획사 중소 가리지 않고 영어 가사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으며##,[213] 그리고 아주 중요한 특징은 일렉트로니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며 소위 'K-POP 사운드'를 만들었다는 것. 이전까지의 아이돌 음악은 현재와 같은 일렉트로니카 중심은 아니었다.
한편 이 일렉트로니카 도입에 있어서 절대 빠지지 않는 팀은 보컬그룹으로 데뷔했다가 아이돌그룹으로 변신한 브라운아이드걸스와 티아라가 있다.
SM은 라차타라는 곡으로 그간 걸그룹 사이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컨셉을 가진 f(x)를 데뷔시켰다. 호불호가 다소 갈리긴 했으나 누예삐오와 피노키오, Hot Summer, Electric Shock와 같은 강한 비트와 독특한 컨셉의 노래들이 대중들의 호흥과 함께 음악적으로는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다.
또 실력과 외모를 고루 겸비한 씨스타는 So Cool, 나혼자, Give It To Me, Touch my body, SHAKE IT 등의 노래들이 매년 여름마다 히트를 치면서 썸머퀸의 입지를 다졌으며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걸그룹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청순컨셉으로 나온 Apink는 NoNoNo, Mr. Chu, LUV가 히트했으며, 7년차 이후에는 1도 없어, 덤더럼으로 대표되는 컨셉 변화에 성공했다.
이렇게 2000년대 후반~말기의 가요계는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없으면 한국 가요시장 이 망할 정도로 이들은 불법 공유로 신음하고 있는 한국 가요계에서 특정 소비층을 가지는 가수들이다. 가온차트 기준으로 2011년 앨범 판매량 1위부터 14위가 전부 아이돌 가수다. 2012년 들어서도 한터차트 기준 10만 장 이상 앨범판매을 판매한 가수 중 대다수가 아이돌[214][215]이었다.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이 갈라지게 되는데[216], 전자는 거대 팬덤을 가지고 팬덤을 통한 수익을 위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보이그룹들이 속하며 후자는 팬덤 기반은 미약하지만 노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여 거기서 나오는 음원 수익을 주로 하는, 일부 걸그룹들이 속한다.
허나 보이그룹인데도 음원 성적도 좋은 그룹이 있고[217] 걸그룹인데도 음반 성적이 좋은 그룹도 많다.[218] 아이돌의 음원 성적은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하락, 그룹의 하락세 등등 으로 쉽게 떨어지고 한 번 궤도에서 떨어지면[219] 회복이 거의 불가능 하나 음반(팬덤) 성적은 위와 같은 이미지 하락, 하락세의 영향을 받아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돌 중 중견 아이돌이 된 10년 이전에 데뷔한 그룹들은 전성기에 비해 떨어 졌으나 평균은 유지 하고 있는 음원 성적인 그룹과 거기에 팬덤도 갖춘 그룹과 음원 성적도 음반 성적도 안 좋아 사실상 활동 중단인 그룹과 아직도 전성기에 필적하는 그룹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아이돌이 범람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한류. 동아시아권에서 한국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이에 편승해 시장성이 넓은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수익을 얻기 위한 아이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덕분에 명백하게 국내의 아이돌 수요(?)에 비해서 공급과잉이 된 상황. 동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인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아이돌 그룹들을 보고 있자면 정작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인지도 바닥의 아이돌 그룹인 경우도 꽤나 있을 정도다.
나이 많은 남성팬, 일명 '삼촌팬'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여성 아이돌들의 선정적인 의상/안무 등이 늘어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남성 아이돌 역시 나이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짐승돌이니 뭐니하면서 노출이 많이 늘어난 편. 이 탓에 선정성 논란도 많이 불거졌다.[220] 이러한 아이돌들의 나이가 남녀불문하고 대체적으로 어린 것이 가장 큰 문제.
그나마 TV쇼에서는 규제로 인해 많이 점잖은(?) 편이지만, 규제를 받지 않는 행사에서는 기본이 쫄티, 초미니스커트, 핫팬츠, 이런 식이다.[221] 특히 섹시 컨셉이 대중화 된 2012년 부터 몇몇 아이돌들이 도끼자국 노출(?) 등으로 화제가 되고[222] 인터넷에 도끼자국 사진이 돌며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로는 이것도 홍보전략이 되어 의도적으로 도끼자국이 잘 보이도록 꽉끼는 옷을 입고 하반신을 강조하는 춤을 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덕분에 이 당시 직캠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들은 막말로 란제리쇼같은 느낌이 대부분이다.
뮤직뱅크등의 TV 음악방송 1위를 기준으로 유망 아이돌과 듣보 아이돌 등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음반 점수로 1위가 가능했기 때문에 음반형 아이돌이 유리했다. 그래서인지 비록 아이돌이 꽉 잡은 음악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종종 아티스트들이 앨범판매 덕에 1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
본업인 가수 이외에 연기나 예능 프로그램으로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외모와 연예인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가수에게 중요한 요소들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아이돌에게 제대로 된 가수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게 2005년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이후로 실력파 가수들은 완전히 사장되고 갈려 버려서 경쟁자가 같은 아이돌밖에 안 남았으니 가창력보다 외모가 훨씬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해외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유튜브와 같은 UCC의 발전도 한 몫하고 있다. 동방신기 시절 오로지 일본 활동만으로 인지도를 쌓았던 것과 달리, 이러한 UCC의 발달을 기반으로 소녀시대와 카라가 일본에서 인지도를 얻고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소녀시대 의 <I Got A Boy>는 미국에서 개최한 제 1회 유튜브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며, 이 당시 한국 가수 중 유일하게 유튜브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을 한 쾌거를 이루었다.
실제로 이때 한국 아이돌들이 세계 시장에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편견에 휩쓸려 무조건 노래 못한다고 까지만, 그래도 (해외 아이돌들에 비하면) 한국 아이돌들의 실력은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현지화가 대세였던 보아나 동방신기 시절과 구분하여 최근 아이돌 그룹의 해외진출 열풍은 일본에서 "신한류"로 부르며 이전까지의 한류와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1년 기준 성공적으로 일본에 입지를 쌓은 한국 아이돌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카라, BIGBANG[223], SHINee 정도뿐이다.
여러 방송사에서 우후죽순으로 한류라는 미명하에 해외에서 K-POP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고[224] 실질적인 성과에는 거품이 끼어있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2018년 기준으로, 현재 아이돌 판에서 해외진출을 못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이른바 1군 취급을 안 해주는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도 아이돌 음악이 잠시 쇠퇴하는 시기가 있을 순 있으나, 아이돌의 인기는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MTV의 등장 이래로 어디든지 비주얼을 내세우는 가수들은 항상 존재했었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2010년대 이후부터 연예계 내의 연애스캔들이나 개인의 향후 전망과 진로 선택에 대해서 마치 지금의 마약스캔들급으로 범법자 취급되며 대서특필되던 과거와 달리 이전보단 많이 관대해진건 사실이지만 한번 진로를 틀면 한명만 이탈해도 그룹은 유닛 또는 배우활동으로 다른 활로를 모색하거나 개인기 비중이 특출나거나 빼어난 멤버는 프로듀서형 아티스트로 성장해서 자리를 굳건히 하지 않는한은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잠정 활동중단 및 해체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각 소속사 3대장 그룹중에 가장 먼저 활동을 중단한 원더걸스의 경우 선예의 비교적 이른 결혼 소식에 완전체 활동이 어려워지자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미쓰에이를 출범시켰고 그 미쓰에이도 배수지의 활발한 배우활동 등으로 인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TWICE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2NE1과 BLACKPINK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며[225] 완전히 해체되기 전까지 완전체 활동 가능성이 0%는 아니지만 일단 공백기가 대략 4년정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팬덤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접어들기에 컴백이 어렵고 어떤 컨셉으로 재등장 할지부터가 어려워지는데다 이미 개인이 배우로써 아티스트로써 다른 활로를 모색한 뒤인 경우가 많다.
한국 한정으로 아이돌의 "아이"(I)를 "어린 아이들"할 때 "아이"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을 이용해 '어른돌' 등의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가끔 나이는 30대 이상인데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혹은 아이돌 포지션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을 농담삼아서 이렇게 부른다.[226] 2011년부터는 △△돌 하는 식으로 특징에 접미사를 붙이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면 연기돌, 예능활동이 활발하면 예능돌같은 수식어로 부른다.
2.5세대의 막바지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예상치 못한 흥행 잭팟을 터트렸는데, 그 원동력이 유튜브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자, 이후 아이돌 산업에서 유튜브를 이용한 홍보가 본격화되었다. 또한 국적을 초월하고 싸이의 음악에 열광하는 성공 사례가 나타나자, 후발 그룹들도 보다 더 넓게 K-PoP을 알리려는 시도를 하고, 그를 위해 외국인 멤버를 더 적극적으로 데뷔시키게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한 연도가 2012~2013년이고, 3세대로 구분되는 시기가 대략 2012~2013년을 기점으로 나뉘니 강남스타일의 메가 히트는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돌 세대의 분화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6. 3세대 아이돌 (2012~2017년)[227]
SM엔터테인먼트의 EXO가 데뷔 처음부터 한국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기획된 만큼 이전까지의 아이돌과는 약간 다른 홍보 방식을 보이는데, 덕분에 정작 데뷔한 해인 2012년에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한국 아이돌들과 차별화된 기획을 선보였기 때문. 그러다가 엑소가 정식 데뷔 1년여만에 정규 1집 앨범 '늑대와 미녀'를 시작으로 되고, 급기야 히트곡 '으르렁'으로 대형 팬덤을 형성하면서 사실상 3세대의 시작점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질세라 다른 기획사들에서도 2012년 이후 2.5세대~3세대 보이그룹들을 대거 런칭하기 시작했다. 2012년의 비투비, VIXX, B.A.P, A-JAX, 백퍼센트, 뉴이스트, 2013년의 방탄소년단, 2014년의 GOT7과 WINNER, 2015년의 iKON, 세븐틴, 몬스타엑스, 엔플라잉, DAY6, 업텐션이 있다.
그러던 와중 2세대의 최후의 보루이자 끝판왕인 빅뱅이 2015년 5월 3년만에 완전체로 컴백하면서 '루저', '뱅뱅뱅' 등 메이드 앨범 시리즈 타이틀의 연이은 메가히트로 2007년 '거짓말'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렇게 세대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으로 흘러가지만 빅뱅 멤버들의 군입대가 다가오고 팬층의 세대가 바뀌면서 2016년 방탄소년단의 판매량 급증과 함께 엑소를 한해 검색량에서 앞서는 등 본격적으로 3세대의 막이 열리기 시작한다.
걸그룹 부문에서는 2014년 SM에서 Red Velvet을 런칭한 이후, 2015년 JYP에서도 SIXTEEN 서바이벌 프로를 열어 트와이스 멤버를 선발했으며, YG엔터테인먼트 걸그룹도 4년째 데뷔준비를 하다가 2016년에야 BLACKPINK를 데뷔시켰다. 큐브에서도 포미닛이후 다음 세대를 준비할 걸그룹 CLC가 2015년 초 데뷔했으며, 그외에도 2010~2011년경 인피니트, B1A4, 시크릿, 카라 등 2세대 아이돌로 히트한 소속사들[354]이 2014년 후반 - 2015년을 기점으로 러블리즈(울림), 오마이걸(WM), 소나무(TS), 에이프릴(DSP)등 신인 걸그룹들을 속속 데뷔시키면서 걸그룹들이 대거 등장했다. 또한 무명 기획사였던 RBW에서도 2014년 마마무를 런칭하고, 쏘스뮤직 역시 2015년 여자친구를 런칭하면서 이 두 기획사도 3세대 아이돌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한편 이처럼 걸그룹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자 2010년대 중반부터는 걸그룹들이 음원차트에서 하락세를 보이게 되었다. 2015년 가온 연간 최종순위에선 10위 내에 걸그룹 노래가 안보였을 정도. 이는 '앞으로 나올 3세대 걸그룹들이 원더걸스 또는 소녀시대만큼의 커리어를 뽑아내지 못할 경우, 걸그룹 침체기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걸그룹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곡 제작자와 안무가의 풀이 거의 말라버린 상황이라는 모양.[355] 덕분에 걸그룹들은 데뷔를 앞두고 받는 노래와 안무만 보고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지경이라고 한다. 다만 아직도 대다수의 기획사들이 걸그룹의 혁신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만큼 AOA, EXID,[356] 마마무, Red Velvet, 여자친구, TWICE[357] 등등의 신세대 걸그룹도 롱런 노래들을 뽑아내는 등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걸그룹들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레드벨벳이 14~15년 3세대 아이돌 기근현상 속에서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해내며 맥을 잇고 있던 상황에서 2016년 그야말로 걸그룹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한동안 허덕였던 걸그룹계가 활기가 돋는 동시에 음원시장에서의 대중성도 다시금 찾았다. 먼저 여자친구가 '시간을 달려서'로 연간 2위를 차지하는 대박을 쳤으며, 이어서 7월에 나온 정규앨범 '너 그리고 나'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마마무도 '넌 is 뭔들' 로 데뷔 첫 1위를 차지했으며, 그 해 연말에 나온 '데칼코마니' 가 뒤늦게 역주행을 하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Red Velvet도 '7월 7일', '러시안 룰렛' 등을 통해 1위를 지속적으로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YG에서 드디어 내보낸 새 걸그룹 BLACKPINK도 데뷔곡 '휘파람' 을 통해 데뷔 2주일 만에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후에 나온 '불장난' 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TWICE의 「CHEER UP」은 연간 1위 곡이 되었고, 이어서 발표된 「TT」 역시 'CHEER UP'을 넘어서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음원뿐만 아니라 음반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수까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소녀시대 라인의 계보를 잇는 걸그룹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프로듀스 101을 통해 선발된 연습생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도 막강한 팬덤을 바탕으로 한 히트곡을 냈다. 이와 같은 신진급 걸그룹들의 활약으로 인해 기존 걸그룹들은 상대적으로 하향세를 걷는 편이었다.
이처럼 3세대 아이돌의 경우 2016년에는 걸그룹의 활약이 보이그룹보다 돋보이던 한 해였다. 마마무, 레드벨벳, 여자친구, TWICE, I.O.I, BLACKPINK 등의 그룹들이 매섭게 달려나가고 있으며, 결국 2016년을 결산하는 시상식 및 각종 음원 차트는 3세대 걸그룹들이 휩쓸게 되었다.[358] 이에 비해 3세대 남자아이돌은 부진하는 중이다. 그나마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에서 내보낸 세븐틴이 2016년에 2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EXO와 방탄소년단을 잇는 차세대 보이그룹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방탄소년단의 경우 EXO와 맞먹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중소기획사 출신 가수로는 오랜만에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359]
2017년은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데뷔한 Wanna One이 데뷔와 동시에 대박을 터뜨리며 단숨에 정상급 아이돌이 되었다. 또한 방탄소년단은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의 쟁쟁한 후보를 꺾고 빌보드에서 탑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고 미국에 데뷔를 함으로써 세계적인 인기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WINNER가 〈REALLY REALLY〉로 전성기를 맞이했고, 몇몇 이름있는 기획사들에서 온앤오프(WM), 골든차일드(울림), 더보이즈(크래커) 등 신인 보이그룹들이 데뷔하면서 보이그룹 시장의 도약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I.O.I가 해체됐는데, 멤버의 일부가
2017년 말, 「MBC 가요대제전」에 나온 VIXX가 이목을 끌게 되면서 네이버TV차트 200만 뷰를 달성, 네이버TV 역주행을 하며[364] 화제의 도원경 리믹스 버전 외에도 〈Love Me Do〉, 〈The Closer〉가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결국 보이그룹 최초 음악 방송 강제 소환을 이뤄내며 IOC 총회 개막식에도 오르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3세대의 흥행 열풍은 2018년에도 이어졌다. 2018년, iKON이 〈사랑을 했다〉로 1~4월 음원 차트에서 장기 집권하면서 연간 1위를 차지했으며, 당시 팀의 리더였던 B.I는 보이그룹 멤버 최초로 MMA "올해의 송라이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모랜드도 〈뿜뿜〉이 연간 5위를 차지하는 대히트를 치며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365] 또, 5월에는 방탄소년단의 〈FAKE LOVE〉가 빌보드 차트에서 우수한 성적을[366] 거두었고 같은 해 8월에도 〈IDOL〉로 [367]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몰았다. 6월은 BLACKPINK가 〈뚜두뚜두〉로 국내 음원 차트 석권, 빌보드 UK차트에서 걸그룹 최초의 성과를 냈고 유튜브에서도[368]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11월엔 제니의 솔로곡 〈SOLO〉[369] 역시 연달아 성공을 거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3세대 아이돌에 들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은 유튜브를 통한 홍보의 완전한 정착, 교포 출신이 아닌 아예 국적이 한국이 아닌 멤버를 둔 다국적 그룹의 성공적 안착, 아시아권을 뛰어넘은 다른 대륙에까지 팬덤을 형성하는 사례의 증가, 〈프로듀스 101 시리즈〉 기획의 연달은 성공에 따른 성장형 기간제 아이돌의 유행을 들 수 있다. 3세대 아이돌의 팬덤을 형성하는 주류 세대는 이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생에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사실상 2023년 현재 진행형인 아이돌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3세대 중반(~2015년)까지 인기 있었던 섹시 콘셉트가 여성 상품화 논란과 레이샤, 밤비노 등 댄스팀 출신 걸그룹 등장으로 기존 섹시 콘셉트의 판도를 뒤엎어서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다.[370]
역대 아이돌 세대 중 전성기를 누렸던 기간이 가장 길고, 전 세대 아이돌 보다 더 오랫동안 활동을 하고 있다. 전성기 시점이 지난 여자아이돌들은 2020년대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371] 3세대 남자아이돌은 2020년대에 들어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기도 했다.[372]
6.1. 3.5세대 아이돌 (2018~2019년)[373]
2018년은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2018년에 데뷔한 아이돌들은 4세대 시작의 기준인 2019년 이전에 데뷔하였지만, 활동의 대부분을 4세대 시기에 하여, 3세대 아이돌의 속성보다 4세대 아이돌의 속성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 다만 이들 역시 데뷔년도의 기준으로는 3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3세대 혹은 3.5세대로 부르는 편이다.[430]
2018년 말 〈프로듀스 48〉을 통해 IZ*ONE이 데뷔하면서 상당한 데뷔 성적을 기록했다.[431] [432]
2019년부터는 본격 4세대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기존 3세대 아이돌을 히트시켰던 소속사에서 후속 그룹을 속속 데뷔시키기 시작했다. TWICE를 히트시켰던 JYP엔터테인먼트의 ITZY, 방탄소년단을 히트시켰던 빅히트 뮤직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대표적이다. 두 그룹 모두 데뷔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기대치였던 성적을 모두 만족시키며[433] 언론 및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팬덤을 이루었다.
한편, 거대 보이그룹이었던 Wanna One이 프로젝트가 종료되어 그 멤버들 일부가 솔로로[434] 혹은 파생 그룹으로[435] 데뷔하기 시작했다.
7. 4세대 아이돌 (2020년~)
4세대 아이돌 (2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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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은 방탄소년단의 첫 번째 영어 싱글 곡인 〈Dynamite〉가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3주 동안 1위를 했으며 총 32주 간 차트인으로 종전 싸이의 〈강남 스타일〉 31주 간 기록을 경신했다. 하반기엔 한국어로 발표한 〈Life Goes On〉이 또 다시 빌보드 핫 100 1위를 오르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빌보드에 완전히 안착했다.
2010년대 극후반~2020년대에 들어 대부분 아이돌들의 음반 판매량이 상승하는 추세인데, 한터 차트의 가맹점 수 증가, 해외로 공구하는 앨범 양의 상승, 아이돌 판의 대중성 하락과 더불어 이루어진 코어화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2020년 컴백 기준, 걸그룹의 경우 오마이걸, 드림캐쳐, 이달의 소녀 등이 초동 3만 장 이상, 보이그룹의 경우 더보이즈, ATEEZ, TREASURE, ENHYPEN 등이 초동 10만 장 이상의 음반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또한 걸그룹은 IZ*ONE이 걸그룹 최초 초동 30만 장 이상을 경신했고, 몇 개월 후 BLACKPINK가 최초 초동 하프 밀리언 및 걸그룹 최초 100만 장 시대를 열었다.[550] 특히나 블랙핑크는 음반, 음원, YouTube 조회수 3가지 핵심 지표와 YouTube 구독자, SNS 폴로어 등의 압도적인 수치를 보이며 3세대 걸그룹 최종 보스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2020년 말에는 EXO와 Red Velvet, NCT 등을 히트시켰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 드디어 신인 걸그룹 aespa를 런칭시켰으며 역대 신인 유튜브 24시간 조회수 신기록을 세웠다.
2021년 상반기엔 2세대로 분류되면서 해체를 거의 앞두고 있었던 브레이브걸스의 4년 전 발표한 노래 롤린의 기적스러운 역주행을 기점으로 연예계 사건·사고들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걸그룹 암흑기를 다시 밝혀 걸그룹 재도약의 신호를 터뜨렸으며,[551] 방탄소년단의 영어 싱글 〈Butter〉가 또 다시 국내외 차트를 집어 삼켰다. 머지않아 aespa가 〈NEXT LEVEL〉로 음원 1위를 하면서 신진 걸그룹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했고, 같은 시기에 STAYC도 <ASAP>의 흥행으로 소형 기획사의 한계를 딛고 4세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늦봄에는 오마이걸이 <Dun Dun Dance>로 컴백하여 여전한 음원 성적을 보여줬으며, 여름에 컴백한 TWICE와 Red Velvet 역시 해외 차트와 음반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줬다.
2021년에는 거대 걸그룹이었던 IZ*ONE이 기간 연장 없이 프로젝트가 종료되었고, 멤버들 중 일부가 솔로[552]로 혹은 다른 아이돌[553]로 데뷔하기 시작했다.
SM, JYP, YG 3강 구도를 깨버린 빅히트가 HYBE로 사명을 변경한 후 처음으로 론칭한 LE SSERAFIM과 NewJeans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대형 기획사의 4강 구도를 견고히 하고 있다.
2022년에는 IVE를 비롯한 LE SSERAFIM, NewJeans가 데뷔한 지 1달도 되지 않은 채 지상파 1위를 달성하며 걸그룹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고 있다. 데뷔 5년차의 (여자)아이들은 2022년에 〈TOMBOY〉가 연간 차트 2위를 기록했고 그이어 발매한 〈Nxde〉까지 히트를 하며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2022년은 4세대 걸그룹의 본격적인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먼저 지난해 연말에 데뷔한 IVE가 〈ELEVEN〉, 〈LOVE DIVE〉, 〈After LIKE〉가 3연속 히트를 기록, 특히 〈LOVE DIVE〉는 멜론 차트 연간 1위[554]까지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5월에 데뷔한 LE SSERAFIM은 〈FEARLESS〉, 〈ANTIFRAGILE〉의 비교적 실험적인 콘셉트로도 높은 화제성을 거머쥐는 데 성공한다. IZ*ONE의 경력직 멤버들이 코어가 되어 팬덤 형성이 비교적 쉬웠던 것도 있겠지만[555] 고급화 전략을 통해 퀄리티 높은 곡[556][557]과 완성도 높은 안무를 가져가고, 멤버 선정 또한 병풍화가 아닌 캐릭터를 초점으로 흥행 가능성이 있는 멤버들로 구성[558]하면서 그룹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2022년 8월 데뷔한 NewJeans는 트리플 타이틀인 〈Attention〉-〈Hype Boy〉-〈Cookie〉 모두 차트 줄 세우기에 성공하며 데뷔와 함께 높은 화제성을 거머쥐었다. NewJeans의 등장은 대중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는데, 10대 소녀들의 하이틴 콘셉트이면서도 곡과 안무가 매우 트렌디했고, 정제되고 칼 같은 군무가 아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등 이전의 없던 새 시대의 트렌드 세터의 등장을 알리는 듯했다. 비주얼, 음색, 심지어 성격마저 비슷한 멤버들로 구성하여, 데뷔 전부터 이미 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준비된 느낌을 주었다. 이처럼 막강한 화제성의 4세대 걸그룹들의 등장은 숏폼 위주의 미디어 트렌드와 함께 어우러져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대중성으로만 본다면 역대로 따져도 최전성기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한편, 지난해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aespa도 2022년에 활약을 이어 갔으나 메가 히트였던 2021년보다는 다소 약한 성적이었다.
2023년에도 4세대 걸그룹의 강세가 이어졌다. NewJeans가 멜론차트 최다 기간 1위 기록을 세운 〈Ditto〉에 이은 〈OMG〉의 흥행으로 2023년의 시작을 장식했으며[559], 2월에는 STAYC가 타이틀 곡 〈Teddy Bear〉은 물론 일본 컴백곡 〈POPPY〉의 한국어 버전까지 음원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560] 3월에는 NMIXX가 〈Love Me Like This〉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4월에는 IVE가 드디어 첫 정규 앨범을 내며 〈I AM〉과 〈Kitsch〉 둘 다 음원차트 1위를 비롯하여 엄청난 성공을 기록했다.
5월은 거대 걸그룹들의 전쟁이었는데, LE SSERAFIM은 〈UNFORGIVEN〉과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히트로 여전히 세련된 콘셉트가 통함을 보여 주었으며, aespa는 〈Spicy〉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또(여자)아이들은 〈퀸카 (Queencard)〉로 지난해에 이어 3연속 흥행을 이어갔다. 여름에는 NewJeans가 〈ETA〉, 〈Super Shy〉, 〈Cool With You〉의 트리플 타이틀로 전격 컴백하여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STAYC의 〈Bubble〉도 청량함으로 음악 방송 1위를 다수 가져갔다.
가을에는 게임과 협업한 걸그룹 곡들이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는데, 드디어 멜론 차트 1위를 달성한 LE SSERAFIM의 〈Perfect Night〉와 NewJeans의 〈 GODS〉가 대표적이다. 또 IVE가 〈Either Way〉, 〈Off The Record〉, 〈Baddie〉의 각기 다른 매력의 트리플 타이틀로 활약하였고, SM 자매 Red Velvet과 aespa가 컴백하여 높은 성적을 보여 주었다. 겨울에는 VIVIZ의 〈MANIAC〉이 챌린지의 인기에 힘입어 엄청난 역주행을 보여 주었다.
이런 걸그룹의 흥행은 2009년 ~ 2010년대 초중반에 단기적으로 있던 2~2.5세대 걸그룹 황금기[561]보다 더 오래 갈 가능성이 많은데, 사실상 3.5세대부터 시작된 보이그룹의 고령화와 대중성 관련 장기적 침체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전부터 보이그룹의 코어 팬덤들은 앨범과 굿즈 구매를 훨씬 열심히 하면서 오랫동안 연예 기획사들의 메인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 보이그룹 시장은 팬덤 장사와 유사 연애 마케팅 위주로 돌아가며 발전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그나마 대체재가 군백기가 끝나고 컴백하는 대략 2010 ~ 2013년[562] 또는 그 전에 활동했던 이전 2 ~ 2.5세대 보이그룹들인데, 그럼으로 말미암아 현재 활동 중인 보이그룹의 평균 나이대 인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졌으며, 걸그룹들과 나이 차이가 매우 벌어지게 된다.[563] 일명 보이그룹의 나이대가 밸런스 붕괴 현상이 일어났다.[564][565] 동시에 K-pop의 글로벌화로 해외 음원 수익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장 구조가 형성이 되니 좋은 곡들로 승부를 보던 걸그룹 시장에게 역전을 당하는 형세가 이루어졌다. 또한 팬덤 장사 위주로 돌아간 보이그룹 시장 때문에 남자 어린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남자 아이돌에 대한 인지도나 인식도 이전보다 나빠졌고, 이에 따라 국내 남성 연습생 인재풀이 급속도로 감속하며 이전과 궤를 달리하는 보이그룹 침체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566]
또한 2~3세대 보이그룹의 전성기가 길어진 탓도 있다.[567] 결국 4세대 그룹들이 노렸어야 할 팬덤층을 여전히 2~3세대 그룹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568]
다만 3.5세대 이후 남돌의 침체가 2~3세대 아이돌들의 전성기 장기화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3.5세대 이후 남돌의 침체가 2~3세대 아이돌들의 전성기 장기화를 야기했다는 시각도 많다. 그도 그럴것이 3.5세대 이후 남돌의 약점은 대중성이지 팬덤이 아니다. 사실 3세대도 대중성보다는 팬덤에 크게 치우친 경향을 보여 주기는 하나[569] 3.5~4세대에서는 이게 더 극대화되어 사실상 남돌의 주류가 되어 밀리언셀러이면서도 히트곡이 거의 없는 Stray Kids, ATEEZ,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REASURE, ENHYPEN 등의 보이그룹들이 파이를 다 차지하고 있다. 그 예시로 2023년 틴탑의 역주행이 있는데, 3세대도 아니고 2.5세대 아이돌에다가 전성기 시절에도 탑까지는 못 간 그룹인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서 다시 추억 소환으로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한다.[570]
2022년 이후 연습생 기근 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 여러 기획사 관계자 취재 결과, 대형 기획사면 몰라도 과거 아이돌 명가로 불렸던 중견급 기획사조차 연습생 기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연습생이 연습생 생활에 잘 적응하고 기획사가 투자금을 신중히 사용하기 위해서 수습 기간을 거치는 연습생 예비생이라는 개념이 최근에 등장하였다. 아직까지도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을에 위치에 놓인 연습생들이 많다. 그런데 정말로 재능이 있는 연습생은 오히려 갑의 위치에 올라가기도 한다.[571][572] 연습생을 육성하거나 타 회사와 연습생 이적 거래를 할 때는 막대한 돈이 필연적으로 빠져나가지만, 연습생 수급을 위해서 기획사가 그것까지 기꺼이 지불하기도 한다. 그나마 여자 연습생이면 상황이 낫지만, 남자 연습생의 경우 선술했듯 정말 심하게 씨가 말랐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얼굴의 인재를 찾기 어려워 해외로도 미팅을 다녔지만, 연예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타 기획사 소속(주로 대형 기획사 소속)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연습생으로 지원하는 청소년들도 기약 없는 데뷔에 대한 불안감이 많아,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 즉시 출연을 조건으로 기획사를 알아보거나, 아예 아이돌 연습생의 길을 그만 걷고 래퍼나 개인 방송인 등의 길을 걷기도 한다. 이외에는 기획사가 너무 지나치게 많아져서 연습생들의 파이를 나눠 가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제대로 인기를 얻어 성공하면 아이돌만큼의 유명세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아이돌보다는 활동 및 사생활이 자유로운 여러 직업들, 대표적으로 분야별 프로게이머, 인터넷 방송인, SNS 인플루언서 등의 직업들이 코로나19 전후로 많이 생겨났고 몇몇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방송계로 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직업들에 연습생이 되었어야 할 어린 인재들을 빼앗기지 않도록, 기획사들은 어린이들이 아이돌을 선망하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 쪽에서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어느 언론기사에서는 남녀 연습생 신인 지원자 비율이 9대 1에 달한다고 한다.[573]
그러나 대형 기획사 소속 보이그룹이 데뷔하기 시작한 2023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2023년에는 RIIZE, BOYNEXTDOOR가 데뷔했고, 2024년에는 TWS와 NCT WISH가 데뷔했으며, 그 중 특히 RIIZE와 TWS가 대중성과 음원 성적의 측면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세우고 있어 시장은 신인 보이그룹 침체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다만 이 두 그룹 이외의 보이그룹들은 대중성과 음원 성적 면에서 다소 부진하며, 아이돌 그룹들 자체[574]가 현재 침체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큰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들이 앞으로 4세대 보이그룹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미래 세대를 이어갈 어린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담이지만 3.5~4세대에 들어설수록, 비한국인 출신[575], 언어 또는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이루어진 K-POP도 등장하는 등, 대한민국 국적을 완전히 초월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K-POP이 국적과 인종의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종의 음악 장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K-POP 아티스트, 작곡가, 안무가 등 업계 전반에 걸쳐서 외국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일부는 우리나라에 직접 거주 및 활동도 하고, 몇 명은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한국인이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철저히 외국 시장을 타겟팅하여 지역 음악 시장의 플레이어로 뿌리내리는 경우도 있다.
대형 기획사 위주로 이러한 현상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 소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몇몇은 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매출 규모에 상관없이 혁신적인 아이돌 모델을 개발하는 엔터테인먼트가 K-POP 업계 트렌드 변화나 패러다임 시프트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엔터테인먼트사들도 프로모션을 위해 각자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독자적인 매체와 채널을 구축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세대 아이돌이 TV 방송, 3세대 아이돌이 SNS 플랫폼에 의존하는 등 외부 채널만으로 홍보를 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팬 카페'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대형 포털의 카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제작하는 경우(예시: HYBE Weverse)도 잦아지고 있다. 추가적으로 몇몇 기획사에서는 최신 IT 기술을 반영한 콘셉츄얼한 시도도 있는 편.
팬덤 문화 역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X세대, 밀레니얼세대인 2세대 아이돌의 팬덤이 계속해서 K-POP 노래와 팬덤 문화를 향유하면서 K-POP팬덤의 연령 스펙트럼이 커지게 되면서, 1세대 아이돌 때, K-POP이 신세대만을 대변하던 노래였던 것과 달리, 지금의 K-POP은 최신 스타일을 유지하고도 전 연령대를 공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M세대와 Z세대에만 특화된 전략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아이돌을 포지셔닝할 때 고려해야 할 타겟층을 더 넓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독특하게도, 이들은 과거의 팬덤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최신 팬덤 문화에 다소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존과는 다른 독자적인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한편 외국에서 들어 온 멀티 팬덤 문화가 확산되기도 하고, K-POP 용어들이 교환되기도 했다. 반면, 외국에서는 특정 그룹에 충성적인 한국의 팬덤 문화와 한국어 용어들이 슬슬 정착되고[576], 이게 안좋은 쪽으로 심화되는 경우 fanwars라고 불리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3세대 이후의 아이돌의 공통된 특징이자 큰 위기가 있는데 바로 코로나19의 장기화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시대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전에 인지도를 얻은 아이돌이나 새로이 등장할 아이돌이나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중대한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다.기사 다만 예외적으로 버츄얼 유튜버 걸그룹이라는 특수한 구조를 지닌 이세계아이돌은 오히려 비대면 시대 때문에 발생한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량 증가로, 인터넷 방송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본인들의 인지도를 크게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고 이후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특수한 사례도 있다.
2020년대 이후 또다른 변수가 있다면 알파세대의 본격적인 팬덤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대는 다른 세대와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화된 환경에 살아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SNS를 통하여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수 있으며 유치원생만 되어도 아이돌 노래 자체는 음이라도 알 수 있다.[577] 이런 저연령층 팬덤 유입은 미래의 후배 세대 아이돌들에게 또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할 경우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고 팬덤 활동을 시작할 연령이 2~3세대 아이돌보다 현저하게 어려질 것이므로, M세대, Z세대 그리고 알파 세대 마케팅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CLASS:y를 만든 〈방과후 설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본격적인 알파 세대 존재를 M세대와 Z세대에게 미세하게나마[578] 처음으로 각인시킨 사례이다.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아이돌에 관심을 가져야 다음 세대 연습생 수급이 원활해질 수 있는 점도 중요하지만, 팬덤 사이에서는 갈등이 심한 상황이니만큼 기획사가 이 부분을 제대로 컨트롤하는 것 또한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 지금 데뷔시켜서 즉각적으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습생·팬덤 연령층과, 나중에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습생·팬덤 연령층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장기화로 메타버스와 VR&AR 기술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사이버 가수라는 기존에는 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아이돌 유형도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 알파 세대는 특히나 이러한 기술에 조금 더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고, 이러한 가상 아이돌이라는 유형에 들어맞으며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크게 얻고 다양한 음원 차트의 상위권 순위에도 드는데 성공한 이세계아이돌이란 사례의 존재로 많은 기획사들에서도 눈여겨보며 사이버 가수에 관련한 여러가지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소녀 리버스〉도 방영 전 우려보다 나름대로 성공한 편이란 평가가 있으며, 2023년에 등장한 버츄얼 보이그룹인 PLAVE 역시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덕분에 앞으로도 최신 기술을 통한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의 아이돌 사업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짧아진 노래 길이가 있다. 3.5세대까지 3분 15초 내지는 3분 30초 하던 노래들이 4세대로 들어와서 3분 이내로 짧아졌다. 2000년대까지 일부 트롯에 적용된 2분대 노래도[579]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여자)아이들 〈퀸카〉(2분 40초), ENHYPEN 〈Bite Me〉(2분 38초), NewJeans 〈Super Shy〉(2분 35초), IVE 〈Baddie〉(2분 34초) 등 길이가 2분 40초 이하에 해당되는 곡들도 있다. 예전 세대 아이돌도 예외는 아닌데, 예를들면 2024년 1월에 발표한 씨스타19의 〈NO MORE (MA BOY)〉가 2분 44초로 2010년에 데뷔한 씨스타의 기존 노래들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짧다.
2~3세대 걸그룹은 4글자 팀명이 대부분이었고[580] 4글자여야 성공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으나#, 4세대 걸그룹부터 3글자 팀명이 유행하고 있다.[581] 또한, 4세대에 전성기를 맞이하거나 재데뷔한 이전 세대 아이돌도 3글자 팀명인 경우가 많다.[582] 2023년부터는 남녀 불문 6~7글자인 그룹도 많아졌다.[583]
2023년 데뷔 아이돌부터 언론이나 방송사에서는 이들을 5세대 아이돌로 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엠넷이 보이즈플래닛을 방영할 때 '5세대 보이그룹'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는데, 하이브와 SM 등 다른 대형기획사들도 이에 동참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다만 아직 대중들의 반응은 갈리는 상황이다.
8. 세대 구분의 모호성
- 아이돌이란 태생부터 미디어 환경(라디오, TV, 인터넷 등)에 따라 변화해 왔으므로, 어떤 매체를 통해 비추어지고 인기를 얻었는가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특히 Red Velvet, 여자친구 등의 세대는 개인 인터넷 방송이라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을 통해 팬들과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홍보를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아이돌 그룹들이 그룹의 이름을 걸고 단독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을 거의 보편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이다. 예능 쇼의 1회 게스트에 불과했던 시절에서, 이젠 아이돌에 따른 아이돌을 위한 방송이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이런 아이돌 방송은 아이돌 산업의 위상과 규모가 커지기 전엔 불가능하다.)
- 해외 진출 계획이 아닌 실제 해외 활동과 실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최정상 아이돌들과 차세대 아이돌들은 실제로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수익이 클 정도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러한 시장 구조로 아이돌의 음악과 퍼포먼스 등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이다. 앨범의 수록 곡은 해외 지향을 넘어서 아예 외국인 작곡가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퍼포먼스 또한 기존 국내 안무, 연기, 콘셉트와 다르게 다소 이질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 사실 1세대와 2세대는 특별한 기준을 긋지 않아도 명백하게 구분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1세대 아이돌의 시스템이 너무나도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계약서가 존재하질 않았고, 수입 배분도 불투명할뿐더러, 육성 또한 비효율적이고 열악했다. (그냥 굶기고 굴렸다느니, 몇몇은 맞아 가며 연습을 했다고 십여 년 후 밝히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습생으로 지내며 보컬, 춤, 화술을 기본은 준비해 데뷔하는 2세대와는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이런 1세대 아이돌들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기에 자유로운 행동, 발언, 치장(염색, 노출) 또한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유닛 활동 또한 불가능했고 예능이나 드라마에 단독으로 출연하기 또한 불가능, 이성 그룹과 버라이어티 쇼에서 만나기도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무엇보다도 동방신기가 데뷔한 2004년을 기준으로, 1세대 아이돌의 대표 주자인 H.O.T.와 젝스키스, S.E.S.가 공식적으로 해체하였고[584], 핑클은 해체하진 않았으나 2002년 정규 앨범 발매 이후 2005년에 디지털 싱글을 발매함을 제외하면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물론 god, 신화가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1세대 아이돌이 활동 중단인 상태에서 해외 시장 진출을 겨냥하여 이름부터 한자어였던 동방신기, 아시아 등용문이란 타이틀을 건 슈퍼주니어가 등장했기에 활동 시기와 방향성이 겹치치 않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 그룹이 등장한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 2세대와 3세대의 명확한 구분은 한류의 세계화로 발전하는 범글로벌화라고 할 수 있다. 2세대의 팬덤이 아시아권이 한계였다면 3세대는 비아시아권인 유럽, 남미, 북미 등에서의 차원이 다른 팬덤의 확장과 인지도를 통한 유튜브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및 각종 해외 음원 성적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수천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SNS 플랫폼에서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 3/4세대 아이돌을 굳이 구분하고 싶다면, 멤버들의 나이대로 분류해 보면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들을 제외하면 3세대 그룹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가 대부분이고,[585] 4세대 그룹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586]
- 일반적으로 보이그룹의 세대와 걸그룹의 세대가 똑같이 가지 않고, 몇 년의 차이가 나고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실 3세대도 보이그룹은 이미 2012년에 EXO의 데뷔로 3세대가 시작되었지만 걸그룹은 2013년까지는 2.5세대로 간주하고 2014년에 마마무와 Red Velvet의 등장으로 3세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하며, 4세대의 경우 걸그룹에서는 3세대 아이돌들이 7년간 쥐고 달렸던 바통을 신생팀이 곧바로 이어받는 식으로 데뷔가 활발하게 이뤄져서 4세대라는 용어가 일찍부터 활발하게 쓰이고 있지만[587], 보이그룹 시장의 침체기가 지속되면서 오히려 2020년부터 4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해 온 걸그룹과는 반대로 2023년 이후에 데뷔하는 보이그룹들을 4세대 보이그룹으로 일컫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이그룹/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이 이후에도 상술했듯이, 이전 2~2.5 세대 보이그룹들이 전원 30대 넘은 나이에 군백기를 마치고 컴백하거나 일부 노래들이 역주행을 하는 케이스도 상당히 많고, 1~2세대 보이그룹들이 2022년 이후 유닛으로 데뷔하는 케이스도 있다. 심지어 팬 문화가 활발한 10대 기준으로 40대인 이특, 희철같이 거의 아버지뻘 나이대 보이그룹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08~2011년생 여성 아이돌 나이대 또는 차후 이보다 더 어린 나이대의 여성 아이돌들이 활동하고 있을 때와[588] 비교하면 심각한 밸런스 붕괴 수준이다.
- 그리고, 2020년대 이후부터 한국 아이돌판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존재한다. 마치 컴퓨터의 세대가 고밀도 집적회로의 시대가 열림과 동시에 5세대 이후가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아이돌도 마찬가지의 길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589] 일반적으로는 아이돌의 세대를 7~8년 단위로 끊는데, 세대의 의미가 사라진다면 5세대는 2028년, 6세대는 2036년, 이런 식일 가능성이 높다.
- 소녀시대의 멤버 효연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핸드폰 기기도 아닌데, 아이돌의 세대구분을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가?" 를 주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사실 이런 정형화된 '세대론'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3세대 이후부터로, 2세대까지는 너무나도 선명히 구분되는 1세대와의 차이 때문에[590] '옛날 아이돌' 대 '최근 아이돌' 정도로 구분했지 이렇게 숫자로 된 정형화된 구분은 잘 찾아볼 수 없었으며,[591] 현재처럼 세대 구분이 대중적으로 합의되지도 않았다.[592] 그리고 2세대와는 연속되었지만 차별화가 된 3세대가 등장하여 1세대, 2세대, 3세대라는 대중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큰 틀이 완성되었고, 4세대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아이돌 세대론이 아이돌 판의 주요 토픽으로 부상하게 됐다. 세대론이 인기를 끌자 동시에 '세대를 열었다'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일부 팀의 팬덤이나 몇 방송사가 대중적 인식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주장을 하게 되어서 '세대라이팅'[593]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 다만 그것을 주장하는 쪽이 SM, HYBE 등 어쨌거나 케이팝 시장을 선도하고 케이팝 내 영항력이 강한 대형 기획사들이며, 현재는 어느정도 5세대를 받아들이는 여론이 꽤 생겨났다.
[1]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2]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Mnet ASIAN MUSIC AWARDS, 멜론 뮤직 어워드[3] 골든디스크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마마 어워즈 남녀 그룹상/가수상, 멜론 뮤직 어워드 TOP 10[4]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동아리이다.[5] ZAM의 조진수가 이 그룹으로 데뷔했었다.[6] 한국 대중가요계의 레전드이자 오늘날 K-POP의 시초로 평가받는 그룹이다. 1990년대 대중문화를 대표한 아이콘 중 하나로, 한국 아이돌의 역사를 사실상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그룹이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7] 고적대 컨셉으로 활동한 3인조 걸그룹 참조 영상[8] 1993년 처음으로 언론에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걸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 수있기 때문에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형태의 최초 걸그룹은 애플이 시조새라 할 수 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9] 배우 이혜영이 '로미'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었다. 해체 이후로는 윤현숙과 같이 여성 듀오 '코코'에서도 활동했다.[10] 전 세대에 걸쳐서 사랑받는 국민가수였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대 시절에 최대 규모로 수많은 10대 팬들을 거느렸던 아이돌이었으며 팬클럽도 있었다.[11] 물론, 음악활동은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게 시작이며, 이미 1979년 이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몇개의 앨범을 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히트곡을 남겼지만, 공식적으로는 <창밖의 여자>가 나온 1979년을 데뷔년도로 친다.[12] 김승진과 박혜성은 1980년대 여학생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며, 남성 솔로 "하이틴 스타"의 원조격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다. (물론, 남진과 나훈아가 라이벌 구도이긴 했지만...) 영화 품행제로에서도 "이 둘 중에 누가 더 멋있냐?"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13] 못 믿겠지만 무한궤도 때와 솔로활동을 할 때만 해도 아이돌 포지션에 가까웠다. 물론 신해철 본인은 이 시절을 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팬들은 넥스트 때보다 이 때의 신해철을 더 좋아한다는 게 함정.[14] 동명의 여가수 이정현과는 다른 가수.[15] 한창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에는 사실상 아이돌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었고, 당시의 19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도 장난아니었던 시기였다.[16] 실질적인 음악활동은 1987~88년부터. 작곡가▶아이돌 루트를 탄 특이한 케이스다.[17] 김민종은 가수 데뷔 이전부터 탤런트로 유명했지만, 발라드 가수로도 같이 활동했으며 히트곡도 많이 남겼다. 발라드 장르로서는 신승훈이나 이승환 정도는 아니지만 가수로서도 존재감이 컸고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케이스다.[18]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를 부른 여고생 가수였다.[19] 물론, 엄정화는 1993년에 이미 가수로 데뷔를 했었고, 이미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가수로 활약했던 리즈 시절 히트곡의 시대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그 유명한 1997년 3집의 배반의 장미, 4집의 포이즌부터 5집의 몰라, 페스티벌 등으로 연달아 히트곡을 냈다. 오히려 다나, 하늘같은 아이돌 가수보다 실질적인 여자 싱글 가수로서 톱을 차지했던 가수는 역시 엄정화, 김현정, 박지윤, 이정현, 백지영, 채정안이었다.[20] 다만 김광석은 데뷔가 1984년이고 이후 90년대까지가 활동 기간이라 세시봉과는 연대 차이가 제법 난다.[21] 사실 항목에도 있지만 신중현은 한국대중음악의 대부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긴 하다. 이미 60~70년대부터 펄 시스터즈, 바니걸스처럼 걸그룹을 지원하거나 만들기도 했고, 김추자처럼 신중현 키드에게 당시로선 혁신적인 곡들을 주기도 했다.[22] 사실 한국 락밴드의 대중화를 이끈 그룹이기도 했다.[23] 70년대 후반 일본 아이돌 핑크 레이디 스타일을 카피한듯한 흔적이 있지만, 시대상 때문인지 정작 발표곡들의 스타일은 10~20대 연령층은 아니었고, 아이돌이라 부르기엔 거리가 있었다.[24] 한편, 공교롭게도 민해경은 "공부합시다" 안티테제의 가사를 담고 있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부르면서(노래 가사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도입부와 후렴구인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에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학생들의 지지 속에 4주 연속 1위라는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허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부모님들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노터치!"라는 가사 내용 때문에 화가 난 일부 부모님들의 압력으로 인해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는(...) 흑역사가 있다.# 이 노래는 원래 김현준과 같이 부른 듀엣곡이었으나 민해경이 스캔들 때문에 잠시 국내 활동을 중단했고, 김현준이 가요계를 떠나면서 사실상 민해경의 솔로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25]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이 저물면서 이를 대체할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특히 해당시기 MTV의 등장으로 영미권에서도 비주얼이 중심이 된 아이돌 음악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26] touch by touch의 조이, 더 놀란스의 sexy music, atlantis is calling의 모던 토킹, bambina의 데이비드 라임. 영미권에서는 전혀 인지도가 없으며 유럽 일부지역에서만 인기였었다. 물론 유로댄스는 80년대 전반 국내에서 대유행했다. words의 F.R. 데이비드, I like chopin의 가제보 등.[27] 그나마 안성기, 박중훈 정도가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본격적인 한국 영화 붐의 시초는 1999년 개봉작 쉬리다.[28] 훗날 DSP미디어의 창립자가 되는 이호연이 한밭기획 전무이사 시절 기획했다. 이호연은 이 성공을 바탕으로 한밭기획에서 독립해 대성기획(후에 DSP미디어로 명칭변경)을 설립한다. 소방차의 성공을 보고 한국에도 아이돌이 뜰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살던 집을 털어 창업했다고 한다.[29] 다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게, 80년대 후반부턴 팝 발라드가 본격적으로 치고 나오던 시기긴 했다.[30] 물론, 락의 역사는 198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정부의 탄압을 당했던 암흑기였다.[31] 사실 90년대 초부터 이미 성인가요는 점점 저물고 있었고, 발라드가 대세로 떠오르던 시절이긴 했다. 그리고 이런 팝발라드 역시 이후 록발라드, R&B발라드 등과 결합하면서 아이돌이나 댄스 음악과 함께 90~2000년대 한국 문화 황금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32] NKOB는 1990년대에 국내에서 대유행을 했으며 이 여파로 1992년 내한공연까지 했다. 참고로 국내 엔터사가 공연장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관객 중 사망자가 나왔다. 당연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공연장 관리 이야기보다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연장에 드나드는 10대들이 이상하다' 같은 뉘앙스의 언론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대중문화의 발전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대 청소년들이고, 부모 세대는 대부분 시골에서 자랐고 서울도 일부를 제외하면 뭐 대단히 번화하진 않았다. 당시의 부모 세대는 공동체 문화를 위주로 열심히 일해서 잘 살기 시작했고 더욱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형•누나 세대는 옳은 가치인 민주화와 독재 타도에 한 몸 바쳤으니, 대중가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이 세대 청소년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도 이해할 만하다. 반면에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본격적인 서구인, 도시인, 대한민국의 시민이다.[33] 여담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드림콘서트에서 3층 센터석을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만 앉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가수이기도 했다. 사실은 3층 센터석이라고 해서 별로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1995년 1회 드림콘서트의 참가 가수 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가 "공식 팬클럽 같은거 인정하면, 공식 팬클럽이 아닌 사람은 팬도 아니란 거냐?" 라는 말과 함께 공식 팬클럽을 해체한 상태라서 사실상 공식적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다. PC 통신상의 팬클럽 참가 의사를 체크해서 3층의 하프 센터를 배정했다. 그런데 당일 동원된 인원수가 워낙 많아서 그냥 3층 센터 전체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를 뒤져봐도 "가요계의 일대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끝판왕"이었고, 남성 그룹인데도 당대의 10~20대 소년들에게도 절대적인 충성도를 자랑했었다.# 이러니까 당연히 여성 팬덤들은 어땠을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즉, 이 시기에 "3층 센터는 다른 팬클럽에게 주려고 한 자리를 먹어치웠다"는 이미지가 조성되었고 2년 뒤인 1997년엔 당시 최고 주가를 자랑하던 H.O.T.가 차지하면서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을 위한 자리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3층 센터는 공연을 관람할 목적으론 가면 후회할 정도로 전망이 매우 나쁘다. 면봉드립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34] 이게 코메디인 게, 서정적인 샹송 정도나 어울린다고 생각한 프랑스어 노래도 국내에서 프랑스어로 된 랩 음악인 debut de soiree의 nuit de folie가 이미 80년대 후반 클럽에서 대 유행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본어로 된 랩이 있는 쿠보다 토시노부의 TIMEシャワーに射たれて도 국내에서 암암리에 유행했었다. 당대 프로듀서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랐든가, 아니면 높은 사람들의 검열을 뚫을 수 없어 에둘러서 말했던 것이다.[35] 이 부분은 약간 후대에서 뭘 모르고 멋대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80년대는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옛날 경향대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또렷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시나위나 들국화 같은 80년대 중반의 일부 락스타들이 이상한 발음을 활용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체로 볼 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79년에 데뷔한 송골매의 경우만 해도 구창모나 배철수 모두 상당히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여타 대중가요나 변진섭이 날아다니던 발라드, 마지막 맹위를 떨치던 민중가요 등과 비교하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서태지가 랩을 하려고 괜히 몇 달간 골방에 처박혀 사식처럼 들여다주는 밥 먹으며 연구했던 것이 아니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영어랑 훨씬 비슷한 언어고, 일본어는 평탄어가 아니라 억양이 분명히 있다. <난 알아요>의 랩은 잘 들어보면 한국말이면서도 약간 교포처럼 억양이 희한, 혹은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서태지에 뒤이어 나온 거목인 듀스만 해도 억양은 대단히 평탄해서 마치 내레이션을 방불케 하지만, 초보적인 각운이 있고 평탄하나마 가사가 리듬에 딱딱 맞춰가거나 괜찮게 엇박을 타는 부분도 있어서 랩이 성립된다. H.O.T.나 젝스키스의 랩도 들어 보면 노래 못하는 70년대 출생자 멤버를 대강 랩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외국물 좀 먹어본 은지원 빼면 가관도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랩을 바비 킴이 짜줬다고 고백해 주는 바람에 대강 바비 킴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어로 랩을 못한다고 하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평론가들이 괜히 했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36] 비록 듀스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룰라, 김건모, 신승훈의 명성에 가려진 면이 있었지만, 트렌드를 앞서 간 김성재의 세련된 힙합 패션스타일과 이현도의 뛰어난 작곡능력은 후배 힙합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1995년 7월 듀스의 해체 이후 김성재의 솔로 앨범과 이듬해 1996년 이현도의 솔로 앨범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1997년 이후의 힙합계는 DJ DOC, 지누션, 원타임, 드렁큰타이거, 가리온, 업타운 등으로 활발하게 이어진다.[37] 당연하지만, 이때는 서점도 지금이랑 비교가 안 되게 많았다.[38] 이전에는 컴백같은 휴식기의 개념이 없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신곡을 내면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똑같은 타이틀 곡이 오랫동안 나오기 때문에 금방 식상해진다.[39]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은 YG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고 아이돌 후배가수들을 키우면서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성공적인 음반 기획자가 되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셈이다.[40] 이 경우엔 가수와 배우를 모두 포함.[41]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 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42] 당돌한 ses 걸그룹 핑클 2.5집 앨범 출반[해체] [44] 대중적인 영향력은 1997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96년엔 김건모, 클론, 솔리드 등의 선배 가수들이 H.O.T.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H.O.T.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가요계를 이끌게 되었다. 종종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교되는데, 아이돌로서 팬덤파워나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파급력은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 현대적인 한국 아이돌의 시초였고 영향력 부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변화와 가요계 주류를 완전히 뒤바꾼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H.O.T.는 서태지 이후 댄스, 랩뮤직으로 재편된 가요계 주류 안에서도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의 왕조를 세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해체] [46] NRG의 전신으로 이성진, 천명훈이 속한 2인조 남성듀오였다. 당시에는 노유민, 문성훈이 백댄서로 활동했었다.[해체] [48] 2000년 5월 18일에 공식 해체, 2016년 4월 재결합해 활동을 재개하다 2024년 3월 YG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끝남에 따라 활동을 종료하였다.[해체] [50] 장민호가 멤버로 있던 그룹이었다.[51] 송원근, 유건, 뮤지컬 배우 이창희가 속해 있었던 그룹으로 당시 8인조라는 최다 인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 아이돌 최초로 유닛 활동을 시도했다.[해체] [53] 2001년에 론이 솔로로 재데뷔, 이글파이브의 막내 대니는 리치로 재데뷔 했으며 심재원은 2002년 블랙비트로 재데뷔.[54] 2002년 가수 비는 재데뷔이다.[해체] [56] 노정현, 노현정 일란성 쌍둥이로 구성된 듀엣. '대리민족'이라는 노래가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몇년 뒤 트로트로 전향했다.[57] 1집이 실패해서 그렇지, 데뷔는 S.E.S., 핑클, 디바보다 먼저 했다.[58]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에서 거의 유일한 걸밴드 컨셉으로 데뷔 및 활동했다. AOA의 경우는 데뷔만 걸밴드로 하고 얼마 못가 걸댄스 그룹으로 전향했다. 이 과정에서 걸밴드에만 관심이 있었던 서유경이 AOA에서 탈퇴했다.[59] 대한민국 사상 최초 다국적 걸그룹이다. 당시 이지현, 한보람이 소속되었던 팀이다.[60] 1994년에 데뷔를 했지만, 당시 음악적 스타일은 어설픈 힙합 스타일로 완전 딴판이었던데다 여자 멤버 또한 당시에는 유리가 아닌 유채영이었다. 그리고 유채영이 쿨에서 탈퇴를 하고 1995년 그룹 US에서 활동했으며, 나중에 솔로로 다시 데뷔한다. 그리고 영입된 유리가 활동하는 시점인 1996년부터 지금의 쿨의 음악적 이미지를 갖췄고,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했다.[61] 유채영이 쿨을 탈퇴했던 혼성그룹으로 활동했던 그룹이다.[62] 김준희, 원투 오창훈이 당시 활동했던 혼성듀오.[63] 이켠이 속해있던 혼성그룹으로 쿨과 비슷한 이유로 1997년부터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64] 1996년에 모기야, 우울한 우연이라는 곡을 불렀다. 이 중 우울한 우연은 베이비복스가 나중에 리메이크해서 유명해졌다. 본래 3인조로 데뷔했었지만 후에 5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강원래의 배우자로 유명한 김송이 과거 소속되었던 혼성 그룹으로만 기억할 뿐.[65] 비록 아이돌적인 요소는 부족하지만, 10대~20대를 대상으로 강하게 어필하였고 아티스트적인 요소가 강했다. 1집뿐이었지만 락밴드로서는 드물게 국민적인 히트곡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이 치열한 죽음의 조나 다름없었던 시대에도 데뷔곡 '16/20'과 '나는 나'가 가요차트에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모던 락의 붐을 지속적으로 일으킨 선구적인 공로가 인정된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주주클럽의 곡을 리메이크한 사례가 많다.[66] 공전절후의 히트곡 기다려 늑대를 부른 가수다.[67] 룰라의 멤버 이상민이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에 참여했던 에스더가 데뷔했던 혼성그룹이다. 동년배 나이대 가수들 사이에서는 가창력으로 호평받았던 것으로 유명했었다.[68] 김완선이 기획한 혼성그룹이다.[69] 박진영은 데뷔 컨셉부터 현재까지 10대보다 노골적으로 20대 이상을 타겟으로 노렸다.[70] 1997년 가을, 김경호는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김경호는 아이돌적인 요소보다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다.[71] 1995년, 1집 앨범 "이미 나에게로"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했지만, 실질적인 메가 히트곡의 시대는 유승준이나 H.O.T., 그리고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가 활약했던 시기가 겹친다. 물론, 임창정은 아이돌 컨셉이 아니라 이미 영화배우로 유명했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데뷔를 했지만 10대 소년들을 비롯한 소녀팬들도 정말 많았었다. 1세대 아이돌이 피터지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던 1997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3집 앨범의 '그때 또 다시'가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여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쥐게 되고, 하반기에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면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1997년 KBS 가요대상을 거머쥔다. 실제로 1위곡을 두 번 연속으로 차지한 골든컵의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이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72] 배우 출신이다.[73] 발라드 가수지만 프로듀서가 아이돌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리즈시절에는 아이돌 가수와 유사한 방식의 활동을 했다.[74] 1994년 1집 LEE YE RIN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는 아이돌적인 컨셉도 있었고 타겟을 10대보다는 20대 이상을 노렸다. 이 당시는 청순녀 컨셉으로 발랄한 미드 템포의 포크 곡 '포플러 나무 아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냥 반응만 있었을 뿐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1996년 2집 때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컨셉을 섹시 노선으로 변경한 뒤 발표한 2집 Impression의 타이틀곡 '늘 지금처럼'이 대박이 터졌다. 노래도 좋았지만 이예린의 골반 댄스가 제대로 먹혔었다. 대한민국 여가수의 섹시 컨셉 전환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3집 용서, 4집 변심 등의 댄스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2003년까지 활동하다가 소속사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2007년에 싱글을 발표했지만, 200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했다. 2011년에 귀국한 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75] 1994년에 데뷔했다. 레게풍의 노래 '결론'을 발매했고, 보이쉬한 컨셉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가수였다. 이후, 2집 '알라딘의 램프', 3집 '너만의 이유' 로 가수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7년에 배우 최재성과 결혼한 뒤 연예계에서 은퇴했다.[76] 시기상으로 봤을 때 교실 이데아, 필승, 컴백홈 정도는 알고 있을 나이대며 3집과 4집으로 활동했을 때다.[77] 상기한 걸그룹이 사실상 2군으로 분류된다.[78] 국민학교는 1995년 명칭이 폐지된다. 다만, 시기상으로 완전히 폐지가 된 것은 사실상 1996년 3월 1일 부터다. 1986년생은 초등 3학년까지는 국민학교였다가, 4학년이 되어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보다 2살 어린 1988년생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였다.[79] 참고로 중학교 의무교육시작, 중학교 7차교육과정은 2002년 1989년생부터 시작되었다. 2004년 1989년생들이 중3 무렵에 중학교 의무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이 완료되었다.[80] 당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똑같았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H.O.T.는 1996년, 젝스키스는 1997년에 데뷔했다. 비록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유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로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81] 물론, 초등학생들도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82] 89년생이 초등학교 때 이수했던 6차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실과시간에 컴퓨터 수업이 편성되어 있어서 집에 컴퓨터가 없었던 89년생이라도 이 당시 컴퓨터를 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89년생까지는 Window 98을 접하면서 공교육을 받았던 세대이다.[83] 99년 결성. 언더그라운드 데뷔는 2001년이지만 서태지의 발굴로 메이저에 진출한건 2003년 Let it Rain앨범부터[84] 원티드 김재석이 당시 활동했었다.[85] 이 팀의 멤버인 장해영은 1997년 2인조 남성 그룹 키드에서 '오! 난리야'라는 곡으로 활동한 바 있다.[86] 여기 작성된 1세대 걸그룹 목록에서 유일하게 해체나 긴 공백기 없이 18년동안 꾸준히 활동했다. 원하고 원망하죠는 거의 국민 노래방 애창곡 수준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87] 강성진의 아내인 이현영이 당시 활동했었다.[88] 립싱크로 인한 부작용이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걸그룹으로 이후로 립싱크 무대는 전멸하게 된다.[89] 트로트 가수 연지후가 속해 있었던 걸그룹.[90] 결성은 1997년에 이루어진 혼성밴드.[91] 배우 박하나가 당시 활동했었다.[92] 사실, 성시경이나 싸이는 아이돌로 생각하기에는 살짝 부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0~20대를 타겟으로 하는 음악들을 많이 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93] 이글파이브 출신 론은 유승준을 닮아 당시 제 2의 유승준으로 불렸다.[94] 솔로 이전에 남성그룹 세븐데이즈의 멤버로 먼저 데뷔한 바 있다.[95] 혼성그룹 쿨 출신이었다.[96] 백지영은 1999년 데뷔 1집보다, 2000년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는다. 2001년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5년 후에 복귀했다.[97] 데뷔는 1999년이었지만, 이수영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03~04년이었다. 역시, 아이돌적인 컨셉보다 발라드 가수같은 면이 강했다.[98] 듀스의 명곡으로 유명한 '여름안에서'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99] 인기댄스그룹 '젝스키스' 해체 발표[100] 사실,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로 유명했던 1990년대에 나왔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 데뷔 이전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가창력을 비롯해서 음악성이 저평가를 받는 감이 있지만, 그 시절에도 음악성이나 가창력이 뛰어났던 가수들은 많았다. 얀, 야다, 플라워, 김상민, 이브, 김경호, 박완규, 더 크로스 등등... 이 때 당시 유명해졌던 명곡들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101] 미디엄템포 R&B는 아니지만 미디엄템포는 혼성그룹 쿨의 정규 5집 수록곡이자 응답하라 1997의 메인 OST의 원곡이었던 All For You도 해당된다.[102] 댄스그룹 H.O.T 해체됐다...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103] 물론, 블랙비트 등 보이밴드도 실패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 시기는 이수만이 경영에서 손을 떼던 시기였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104] DSP에서 동방신기의 대항마로 내놓은 보이밴드로 김현중이 이쪽 출신이다. 전성기 시절은 동방신기에 못지 않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105] 국내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랬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106] 사실, 버즈는 아이돌로 보는 시각과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갈린다. 하지만, 버즈는 스스로 아이돌을 자처하지 않았으며 보컬리스트 민경훈이 잘생긴 외모로 마치 조성모처럼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인기를 얻었어도 아이돌과 같은 팬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한,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별로 각광받지 못했으며 밴드의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2집의 대히트 이후 사실상 SG워너비나 김종국 등의 당시 인기 발라드 가수들과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창법은 당시 유행했던 소몰이창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버즈가 잠정 해체된 이유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형태의 활동보다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활동들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해당 문서 참조.[107]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아이돌 컨셉으로 데뷔했으나,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스스로 점차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R&B 보컬 그룹으로 성격을 전환했다. 후일의 브라운아이드걸스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그래서 본인들도 아이돌 시절의 컨셉을 원하지 않았었고 색깔이 맞지 않았다고 했었다.[108] 이 시기는 이효리와 비가 가요대상을 수상한 시기였다. 그런데 앨범 판매가 다른 전성기를 차지했던 가수들보다 판매량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들과 음반업계의 반응은 "왜 이효리나 비가 가요대상을 받았지? 미쳤냐?" 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이효리가 없는 가수 시상식을 열겠다" 라고 말이 많았던 때였다.[109] 물론, 2020년대를 기준으로 현재에는 장르의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져 인디가수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아이돌 그룹(대표적으로 f(x), SHINee)들도 EDM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크송이 가요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110] 대표적으로 버즈 역시 발라드 계열의 노래로 득세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엮여서 취급받는 경우가 많으나 버즈는 어디까지나 군입대로 인해 해체한 것이지, 이들처럼 약발이 다 되어 몰락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동시대 테이의 히트곡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와 버즈의 '겁쟁이' 의 지금 위상을 잘 비교해보자.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테이가 버즈의 노래를 부를 때 그럭저럭 잘 커버한다는 것이다.[111] 이쪽은 아무래도 e스포츠의 영향을 일부 받은 덕이 크다.[112] 당시까지만 해도 서구권 아티스트들이 발매한 곡들을 뭉뚱그려 팝송이라고 부를 정도인데다 특히나 듣는 노래에 가까웠지 따라 부를 만한 애창곡 수준까지 나아가기 까지는 진입장벽이 높았고 이에 따라 그 비중이 턱없이 적었다.[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118] 팀 이름을 슈퍼노바로 변경하였다.[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132] 혼성그룹으로 시작했으나, 2014년부터 걸그룹으로 전환되었다.[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136] 완전한 아이돌 컨셉이라기 보단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발라드 가수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사실상해체] [BIGBANG] [139] 일본의 ZARD처럼 초기에는 혼성밴드였으나 나중에는 여성보컬 1인 체제이자 여성 솔로 가수로 변경되었다.[140] 국내 정식 데뷔는 이보다 2년 뒤인 2006년이다.[141] 2011년 예명을 한지서로 변경해 배우로 전향했다.[142] 그룹으로는 2002년 데뷔했고 2003년 다이어트 비디오 홍보를 위해 깜짝 활동했으나 2005년 정규 1집 2AM으로 솔로 데뷔 신고식을 치뤘다.[143] 가수 데뷔 기준으로는 2008년이지만 포켓걸이라는 컨셉의 방송인으로는 이미 그 전에 활동했다. 바나나걸의 객원 보컬로도 활동했었다.[144] 순간 시청률 17.2%에 달했던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한 전설의 영상이다. 출처 #[145] 3세대도 시작은 데뷔 기준으로 2012년/2013년에 시작이지만 전반적인 세대 교체는 2016년에 이루어 진것과 일맥상통하다.[146] 총 82회[147] 이 당시 소녀시대의 인기는 당연 걸그룹 중 탑이었을 뿐 아니라 팬덤이 막강한 남돌 사이에서도 막강한 탑이었다. 즉 아이돌 최강자 자리에 있었던 셈.[148] 실제로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요 대중 조사에서[149] 그 외 순위로는 빅뱅, 조용필 등이 있다.[150] Oh!와 Run Devil Run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서로 상반되는 컨셉으로, 소녀시대는 이 두 컨셉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인기를 끌었다.[151] 일본 발매곡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한국어 버전이 흥행하였다. 이것만 봐도 그 당시 소녀시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152] #[153] 앨범 단위의 음원을 통합해서 주는 '올해의 앨범상' 같은 앨범 대상과 달리 순수 실물 앨범 판매량으로 주는 음반 대상은 소녀시대가 지금까지 걸그룹 유일무이한 기록이 맞다.[154] 당시 연간 음원 1등을 하며 인기 걸그룹 중 하나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왕따 논란이 발생하며 인기가 하락해 버렸다.[155]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아이돌로 통일된 것도 이 시기다.[156] 데뷔 시기는 2003년 말부터였지만, 후배 아이돌 그룹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2008년에도 4집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157] 싱글 2집 <스노우 프린스>가 대박을 쳤고, 2007년에는 정규1집 <4CHANCE>로 지상파 첫 1위를 달성했으며, <암욜맨>으로 아이돌 유닛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158] 2집으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2009년 3집 <Sorry, Sorry> 활동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2007년 이후에 데뷔한 후배 아이돌 못지 않는 영향력을 지녔다.[159] 2006년 싱글 <LaLaLa>로 데뷔한 후, 2007년에 낸 미니 1집 <거짓말>이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고 연말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붉은 노을> 등이 연달아 대히트하는 등 후에 음악과 스타일적으로 후배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수많은 빅뱅키즈들을 양산해낸다. 이후에도 내는 곡마다 엄청난 음원 성적을 유지하고 보이그룹 최고 연간 1위, 1억 스트리밍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음원 강자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2018년까지 최고의 아이돌을 뽑는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1위를 하며 KING OF K-POP이란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고 국내 음악방송 최고 시청률, 음악방송 최다 1위와 음원차트 줄세우기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전문가, 대중들이 선정한 최고의 보이그룹 1위, 최고의 보이그룹 히트곡 1위를 하며 국내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그룹이자 2세대를 상징하는 그룹이란 평가를 받는다.[160] 2007년 당시 데뷔한 남성 아이돌 그룹 중에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아이돌 시장의 자리를 어느 정도 선점할 수 있었다.[161]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 - <소녀시대> - <Baby Baby> - <Kissing You>로 BIGBANG과 원더걸스 사이에서 존재감을 알린 뒤, <Gee> - <소원을 말해봐>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입지를 굳히면서 레전드 걸그룹이라는 소녀시대의 길을 열었다. 특히 <Gee>는 이후의 아이돌 시장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소원을 말해봐>는 여돌 최초로 걸그룹 칼군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으며, <The Boys>는 여돌 최초이자 유일하게 남돌의 음반 판매량을 넘어서서 연간 음반 판매량 1위를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발매 당시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현재는 후배 걸그룹들의 데뷔 시 필수로 쓰이는 명곡이 되었다. <I Got A Boy>는 초반에는 호불호가 있었지만, 해외에서 엄청난 극찬을 받으며 빌보드가 선정한 2010년대 최고의 K-Pop 100곡에서 5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K-Pop 걸그룹 중 가장 높은 순위이다.) 또한, 빌보드가 선정한 10년을 정의하는 100곡에도 선정이 되어 걸그룹으로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K-Pop 명곡으로 많이 선정되는 곡이다.[162] 2007년 싱글로 데뷔 후, <Tell Me> - <So Hot> - <Nobody>로 3연타의 성공을 이루었다.[163] 2007년 정규 2집의 실패 이후 장르를 댄스로 변경해 2008년에 여러 곡들을 발표한다. <L.O.V.E> - <어쩌다> - <My Style>이 3연타 대박을 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2009년 활동곡인 <Abracadabra> - <Sign>이 연달아 메가히트를 치며 가요계에 큰 획을 긋게 된다.[164] 김성희의 탈퇴 이후 낸 <Rock U>가 좋은 반응을 얻고, <Pretty Girl>에서 카밀리아의 고무장갑 응원을 비롯한 열정적인 서포트, 인지도 급상승으로 <Honey>와 엉덩이춤인 미스터를 통해 자리를 매김했다. 이후 일본 진출에 성공을 하며 인기 걸그룹 반열에 올랐으며 한국 아이돌중 유일하게 관련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165] 다만 2009년에 데뷔한 그룹들의 경우는 2.5세대 보다는 2세대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해체] [167] 2017년 하이라이트(아이돌)로 재데뷔[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계약종료]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192] 다만 원년 멤버들은 전부 탈퇴했고 현 멤버들은 모두 3세대인 2016년에 합류한 멤버들이다. 대표곡 롤린은 4세대때 떴다. 이후 브브걸로 재데뷔하였다.[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202] JYJ 김재중의 고향 친구.[비스트] [204] 비스트 데뷔 이전 솔로로 먼저 활동했었다.[205] 당시 제 2의 비로 불렸다.[BIGBANG] [207] 그 유명한 슈퍼스타 K의 힙통령이다.[SS501] [투애니원] [포미닛] [211] 하지만 결과적으론 두 그룹은 이미지가 상반되어 서로 윈윈하는 구조가 되었다.[212] 이들이 시작한 걸크러쉬 트렌드는 소속사 후배인 BLACKPINK로 인해 3세대에서는 걸그룹 세계화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4세대에 와서는 ITZY, aespa 등의 대활약으로 걸그룹 주류 트렌드가 되었다.[213] 예를 들면 2010년에 발매된 씨스타의 Push Push[214] 남돌 중에선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샤이니, 인피니트, 비스트, 엑소가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여돌 중에선 유일하게 소녀시대가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215] 비아이돌 가수로는 버스커 버스커와 싸이와 나얼 등이 10만장을 넘겼다.[216] 참고로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의 구분은 그 아이돌의 음악성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대중 공략에 유리한 음악과 음악성이 높은 음악과는 (오히려 반비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 특히 후크송이 범람하고 쉽고 짧고 강렬한 반복소절로 수 초 안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걸 목표로 하는 노래들이 대부분인 요즈음의 가요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빌보드에서 'K-pop이 지닌 혁신을 증명했다'며 '2012년 최고의 K-pop'으로 꼽은 곡은 인피니트의 "추격자"였다. 앨범형 아이돌의 경우 팬들의 고정 수요가 보장되기에 음악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특히 타이틀 곡보다 부담이 적은 앨범 수록곡에서 음악성에 집중한 곡 선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항상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형편없는 곡으로 트랙 개수만 채워서 앨범이라고 내놓는 그룹도 있다. 물론 이런 그룹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지만.[217] 소위 1군 보이그룹으로 평가 받으려면 걸그룹보단 덜 하지만 팬덤뿐만 아니라 어느정도의 음원 성적도 받쳐 줘야 한다.[218] 이 쪽도 1군으로 평가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팬덤은 받쳐 줘야 한다.[219]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에 들지 못했을 때이다.[220] 예를 들면 2010년에 발매된 레인보우의 A[221] 씨스타를 시작으로 식스밤의 일명 분홍소세지 의상 이라든가 스텔라처럼 높은 선정성을 컨셉화한 걸그룹까지 등장했다.[222] 대표적으로 (구)원더걸스, 4Minute의 현아나, 시크릿의 전효성[223] 단, BIGBANG은 2007년부터 일본진출을 했다. 싱글(How Gee, With U) 등을 내고 일본 언더에서부터 데뷔해 시장을 개척했고, 이때부터 팬이 된 일본 팬들도 상당수다.[224]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송사한테 밉보이기 때문에 많은 기획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225] 이쪽은 대놓고 활동중단시기와 데뷔시기가 겹치며 가요계 문화에 무뢰한이 듣는 입장에선 2NE1은 없어졌는데 계속해서 2NE1의 신곡이 나온다고 생각할 정도로 장르적 색체가 상당한 유사성을 띈다. 대표적인 예시가 마지막처럼. 씨엘의 솔로유닛활동, 공민지의 이탈, 박봄의 마약스캔들 등이 주 활동중단요인으로 보인다. 몰론 마약스캔들은 오해였음이 밝혀졌지만 외부적 요인들로 인해 그 피해가 후폭풍으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두 팀은 멤버들도 4명으로 똑같은 데다가 포지션이나 색깔도 매우 유사해 (보컬에도 능해 올라운더에 가까운 메인래퍼: CL -> 제니, 서브래퍼를 겸하는 메인댄서: 공민지 -> 리사, 메인보컬: 박봄 -> 로제, 비주얼: 박산다라 -> 지수) 블랙핑크는 2NE1 Mk. 2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226] 허나, 2020년대 이후 군백기를 끝나고 컴백하는 보이그룹들이 많아져 여기에 상당수 해당된다.[227] 사실 2012~2013년을 2.5세대로 볼지 3세대로 볼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3세대 자체는 보통 EXO를 3세대 시작의 주역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이그룹인 EXO, B.A.P, 비투비, VIXX, 뉴이스트, 방탄소년단은 3세대로 보는 경우가 많고, 특히 EXO와 방탄소년단은 3세대 남돌의 대표 그룹으로 꼽히는 만큼 반론이 적지만 걸그룹인 AOA, EXID는 2.5세대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걸그룹의 3세대는 보이그룹보다 약 2년 늦은 2014년에 Red Velvet, 마마무의 데뷔로 시작했다고들 평한다.[2기] 2기[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260] 2019년 이후로 활동 전무[사실상해체] [계약종료] [계약종료]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268] 비스트 원년멤버 5명이 재데뷔한 그룹.[해체] [해체] [프로젝트종료] [프로젝트종료] [프로젝트종료]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283] 황지현과 이해인이 속해있었던 7인조 걸그룹[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계약종료]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프로젝트종료] [해체] [프로젝트종료] [프로젝트종료] [계약종료] [프로젝트종료]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A] 정준영 등 불법촬영물 제작 및 유포 사건에 덜미가 잡혔다.[327] 위너 데뷔 이전 솔로로 먼저 데뷔를 했었다.[샤이니] [블락비] [슈퍼주니어] [샤이니] [블락비] [틴탑]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투애니원] [씨스타] [애프터스쿨] [f(x)] [소녀시대] [AOA] [에이핑크] [343] 원래는 2인조 그룹이었으나 2020년 멤버 1명의 탈퇴로 솔로가 되었다.[소녀시대] [f(x)] [소녀시대] [소녀시대] [IOI] [씨스타] [(여자)아이들] [351] 그룹 데뷔보다 솔로 데뷔를 더 먼저 했다.[IBI] [네이쳐] [354] 인피니트의 울림엔터테인먼트, B1A4의 WM엔터테인먼트, 시크릿의 TS엔터테인먼트, 카라의 DSP미디어[355] 하지만 그만큼 작곡가와 안무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제작팀들의 역량이 쌓이면서 2세대보다 더욱 음악적 퀄리티가 높아지고, 질 좋은 K-POP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디지페디, 손성득, 이기용배, SM의 해외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 등 과 같은 새로운 스타 제작진들도 탄생했다.[356] 앞의 두 걸그룹은 2.5세대때 데뷔했지만, 3세대때 전성기를 누렸다.[357] 뒤의 네 걸그룹을 묶어서 여레마트라고 부른다.[358] TWICE의 대상 수상 및 음원 연간차트 1위, 여자친구의 음원 연간차트 호성적 등.[359] 참고로 3세대 보이그룹 중 WINNER의 경우 이듬해인 2017년이 되어서야 REALLY REALLY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iKON의 경우 그 다음해인 2018년이 되어서야 사랑을 했다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엔플라잉 역시 그 다음해인 2019년에야 옥탑방의 대성공으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나머지 GOT7, 몬스타엑스, 업텐션, ASTRO, NCT, SF9, 펜타곤, VICTON 등은 2017년 이후에도 여전히 일부 멤버들의 인지도와 팬덤에서만 강세를 보이고 히트곡을 거의 내지 못하는, 그야말로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그룹들이었다.[360] 2022년 9월 17일 활동 종료[361] 2020년 12월 31일 해체[362] 2019년 5월 24일 해체[363] 2024년 8월 8일 해체[364] 여러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1위를 하기도 했다.[365] 〈뿜뿜〉과 〈사랑을 했다〉는 당시 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유행한 곡이었다고 한다. 3세대 아이돌 음악 중 사실상 전 세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노래라고 봐도 무방한 편이다.[366]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핫 100 10위와 빌보드 200 앨범차트 1위의 역사를 썼다.[367] 빌보드 핫 100 11위, 빌보드 200 앨범차트 1위[368] 뚜두뚜두 뮤비는 현재 K-POP 남녀 그룹 통틀어 최고 조회수를 기록중이다[369] K-POP 아이돌 솔로 뮤비 최고 조회수[370] 그나마 이에 비견되는 섹시 콘셉트 퍼포먼스 가수는 현아, 효린, 제시 등 솔로 여성 가수 정도다.[371] 블랙핑크는 2023년까지 발매하는 곡들마다 연간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레드벨벳은 2022년 발매한 Feel My Rhythm이 히트를 쳤고, 트와이스는 음반 판매량과 투어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372] 방탄소년단은 2020년, NCT는 2021년, 세븐틴은 2023년[373] 앞선 2012~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9년을 3.5세대로 분류할지 4세대로 분류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프로젝트종료] [375] JBJ의 95년생 멤버 2명이 제데뷔한 그룹.[해체] [프로젝트종료] [해체] [조기해체] [380]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의 여파로 인해 활동기간을 1년도 못 채우고 해체했다.[사실상해체] [해체] [계약종료] [프로젝트종료]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프로젝트종료] [해체] [해체] [해체]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활동일시중단] [해체] [위아이] [샤이니] [샤이니] [빅스] [유니크] [WINNER] [워너원] [핫샷] [워너원] [워너원] [엑소] [엑소] [워너원] [핫샷] [JBJ] [업텐션] [WINNER] [마마무] [마마무] [여자친구] [원더걸스] [소녀시대] [블랙핑크] [마마무] [IOI] [에이핑크] [러블리즈] [IBI] [430] 특히 세대교체가 빨리빨리 이루어지는 걸그룹의 경우 2018년에 데뷔한 그룹은 보통 3세대로 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IVE, LE SSERAFIM, NewJeans의 등장으로 세대가 완전히 갈아엎어진 2022년 이전에 활동을 종료하거나 와해된 3세대 그룹이 꽤 다수이기 때문이다.[431] 미니 1집 컬러아이즈로 역대 걸그룹 데뷔 초동 기록을 다시 썼다[432] 이 기록은 무려 3년이 지난 2021~2년 IVE, LE SSERAFIM에 의하여 깨지는데, IZ*ONE의 멤버였던 IVE의 장원영과 안유진, LE SSERAFIM의 김채원과 사쿠라가 속해 있는 그룹이다.[433] ITZY는 데뷔곡 달라달라가 모든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걸그룹 최초로 데뷔곡 지상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음반 판매량이 많은 보이그룹임을 감안해도 데뷔 앨범 초동 7만 7천장을 넘기는 성과를 얻었다.[434] 윤지성, 하성운, 박지훈, 김재환, 강다니엘, 옹성우[435] 황민현이 재합류한 뉴이스트, 박우진과 이대휘가 재데뷔한 AB6IX, 배진영이 재데뷔한 CIX.[역주행] [해체] [계약종료] [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446]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세 번째 프로젝트 그룹. 역대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 최고령 멤버가 있는 그룹이다. 그의 나이에서 무려 4를 나누어도 최연소 아이돌 나이보다 더 많다.[447] 前 레볼루션 하트[사실상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452]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두 번째 프로젝트 그룹.[해체] [해체] [사실상해체] [해체] [해체] [프로젝트종료] [459] 소속사 측에서는 J-POP도, K-POP도 아닌 자신들만의 장르를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XG를 담당하는 실무진들 대다수가 케이팝 산업에서 동원된 인력이며 그들의 프로모션 활동 또한 한국의 음악방송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서 진행된다는 점을 보았을 때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XG는 해외 케이팝 팬덤을 주 타겟으로 삼고 있고 또 이들을 그들을 케이팝 그룹으로 소비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언론에서도 이들을 케이팝 그룹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을 보았을 때 그들의 의사와는 별개로 케이팝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하지만 소속사의 표리부동 그 자체의 행보, 그리고 계속되는 소속사 사장의 망언들로 인해 싫증을 느낀 국내의 아이돌 팬들은 XG가 여타 그룹들과 함께 케이팝 아티스트로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 국내에선 의견이 나뉘고 있다.[460]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네 번째 프로젝트 그룹.[461] 2024년 4명의 멤버들을 영입, 7인조로 개편해 MADEIN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재데뷔하였다.[462] 원 그룹 브레이브걸스가 소속사를 이적하여 팀명을 변경하였다. 사실 롤린 역주행 이후 활동으로도 4세대 걸그룹에 가까웠다.[계약종료] [464] MBC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첫 번째 프로젝트 그룹.[해체] [엑소] [업텐션] [트레저] [빅톤] [YOUNITE] [DAY6] [엑소] [몬스타엑스] [GOT7] [GOT7] [GOT7] [디원스] [엑소] [빅톤] [DAY6] [GOT7] [WINNER] [그루비룸] [DAY6] [몬스타엑스] [방탄소년단] [뉴이스트] [방탄소년단] [뉴이스트] [방탄소년단] [GOT7] [온앤오프] [AB6IX] [뉴이스트]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몬스타엑스] [NCT] [방탄소년단] [DKZ] [방탄소년단] [펜타곤] [NCT] [ASTRO] [NCT] [업텐션] [비아이지] [iKON] [WINNER] [ASTRO] [엑소] [NCT] [펜타곤] [투바투] [IOI] [구구단] [마마무] [러블리즈] [에이핑크] [오마이걸] [블랙핑크] [레드벨벳] [레드벨벳] [다이아] [아이즈원] [블랙핑크] [아이즈원] [아이즈원] [여자친구] [러블리즈] [소나무] [러블리즈] [(여자)아이들] [여자친구] [트와이스] [위키미키] [레드벨벳] [아이즈원] [CLC] [다이아] [블랙핑크] [러블리즈] [다이아] [트와이스] [ARTMS] [우주소녀] [(여자)아이들] [트와이스] [레드벨벳] [550] 단일 음반 판매량 여자 가수 역대 1위[551] 본격적인 4세대 걸그룹들이 데뷔하기 전까지 롤린이 차트를 아예 장악해 버렸다. 때문에, 현재의 4세대 걸그룹들도 잦은 컴백으로 롤린의 기록들을 깨기에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552] 권은비, 이채연, 조유리, 최예나[553] IVE, LE SSERAFIM[554] 6년 만에 걸그룹 음반의 연간 차트 1위.[555] 이전 아이오아이 파생 그룹들의 실패를 생각해 보면 해당 멤버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머지 멤버들이 병풍화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중소 기업의 한계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곡과 안무, 미흡한 기업 운영 방식으로 화제성을 그대로 끌고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56] 일명 "돈 냄새" 나는 곡. 예시로 IVE의 데뷔 곡 〈ELEVEN〉은 중견기업 걸그룹의 데뷔곡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고급졌다는 평이 많았다.[557] 4세대 보이그룹 역시 당당하고 주체적인 콘셉트와 퀄리티 높은 곡을 내세우는 편이다. 다만, 팬덤 위주로 마케팅이 돌아가다 보니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558] 특히 IVE는 대부분을 장신 멤버로 구성한다.[559] 〈Ditto〉의 발매는 2022년 12월이긴 했지만 앨범은 OMG까지 포함하여 2023에 발매하였다.[560] 특히 〈POPPY〉는 일본 컴백 곡의 한국어 버전으로는 유례없는 음원 성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561] 3세대 걸그룹 전성기는 2016~2019년으로 더 짧았다.[562] 걸그룹으로 치자면 섹시 콘셉트가 유행했던 때였다. 재결합을 한 씨스타19를 제외하면 저때 활동했던 걸그룹들은 현재 음악방송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563] 이들의 나이대는 대부분 30대이며, 곧 40대를 바라보거나, 희철, 이특처럼 이미 40대가 됐음에도 활동중이거나 컴백을 하는 보이그룹 멤버들이 나올 정도다. 걸그룹의 경우 이 나이대가 되면 그룹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배우, 솔로 가수, YouTuber 등 개인 활동의 길을 걷거나 연예/방송 활동을 모두 종료하고 연애, 결혼, 출산을 하기도 하는 나이대다. 10대 팬들한테는 거의 아버지 나이대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셈이다.[564] 당장 여돌에서는 2010년생과 2011년생이 데뷔를 하고, 다른 2010년대생 연습생들도 널려있는 마당에, 이들과 주민번호 앞자리만 3자리나 차이나는 1990년 이전에 출생한 남돌 멤버들이 30대는 물론, 곧 40대를 바라보거나 희철, 이특같이 이미 40대를 돌파한 나이임에도 2024년 기준 상당수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밸런스가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수준이다. 2024년 기준 무려 10년전인 2014년만 해도 1990년생 여성 아이돌들이 반오십 드립으로 놀려졌던 시기다. 지금 여돌계에서 저 나이대 멤버는 소녀시대 태연(1989년생) 말고는 거의 없다. 당장에 남돌 중 태연이랑 동년생인 89년생은 물론이고 그 이상 나이대 남돌들도 널려 있다. 역주행 및 높은 나이대로 유명한 브레이브걸스의 연장자 민영도 이에 약간 못 미치는 경계선인 1990년생이다. 차후 2010년대생 여돌이 상당수 데뷔했을 때도 이들이 활동 중이라면 남돌계에서는 일본의 쟈니스 사무소와 같이 지금보다 더 많은 40대 이상의 아이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565] 1983년생인 희철, 이특의 경우 국민학교를 졸업한 거의 드문 아이돌 가수들이고, 국민학교를 입학한(~1988년생까지) 남성 아이돌 가수들도 2024년 기준 지금도 상당수 널려 있지만, 여성 아이돌들 중에서 거의 연장선인 태연이 1989년생으로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어, 국민학교를 입학했거나 졸업한 여성 아이돌은 2024년 기준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566] 이로 인해 소년판타지 참가자들이 대부분 외국인, 데뷔경험이 있으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인 참가자가 대다수이며, 보이즈플래닛도 K그룹 참가자들 중 전 시즌과 다르게 경력직이 다수 참여하였다.[567] 현 시점에서도 3세대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 등이 여전히 굳건하게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군 입대를 하기 전, 멤버들의 솔로활동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나 지민의 Like Crazy, 정국의 seven이 빌보드 핫백에서 1위를 달성했다. 세븐틴은 2022년에 방탄소년단 이후 처음으로 초동 200만장을 달성, 2023년에는 초동 500만장과 더불어 손오공을 히트시키며 데뷔 9연차에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또한 세븐틴의 유닛인 부석순도 파이팅 해야지 연간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NCT 역시 3세대 아이돌로 분류돼지만 커리어하이는 2020년대 이후에 달성했다. 2022년, NCT 유닛인 NCT DREAM이 2022년에 발매한 Candy 연간차트에 진입 시켰고 2023년에는 초동 300만장을 기록했다.[568] 그러나 이것은 2019년 당시 아이돌계에 매우 부정적인 파동을 일으켰던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에 따른 후유증 때문이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만약 X1이 조작 없이 정당하게 데뷔하여 5년 간 활동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IZ*ONE에서 파생된 그룹들이 4세대 탑을 차지하고 4세대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X1 및 X1 파생 그룹들이 4세대 보이그룹을 이끌어가고(만약 세대 구분을 7년 기준으로만 잡는다면 X1 파생 그룹들 중 일부는 5세대까지 활약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 팬덤층의 유입 또한 이끌어낼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569] 대중성을 갖추었다는 방탄소년단이나 EXO도 1세대 또는 2세대처럼 전국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의 히트곡은 거의 없다.[570] 당장 3.5~4세대 남자 아이돌 중에 10년 뒤에 대중들에게 추억 소환될 팀이 단 한 팀이라도 있는지 생각해 보자.[571] 연습생 예비생의 역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정 기간 동안 이 회사를 다니고 계속 다닐 것인지 결정을 하겠다는 연습생도 나타난다. 유명 연습생은 프로 선수들, 유명 연예인들의 FA 시장마냥 더욱 색깔에 맞는 기획사나 더욱 빠른 데뷔를 할 수 있는 기획사로 이적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572] 연습생의 전체 지원자 수가 급속도로 적어졌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습생이 있다면 FA 신분이 되는 순간 인적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여러 군데의 기획사에서 영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만약 연습생을 공개 입찰로 거래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몇 군데의 기획사가 동시에 나서서 낙찰 경쟁을 벌일 상황이나 다를 바 없다. 2022년의 예시는 아니지만,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면 여러 기획사에서 즉시 데려가야 하는 인재 0순위는 전소연이라는 말이 당시 연예업계에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전소연 수준의 재능이 아니더라도, 타 기획사에서 데뷔조 즉전감이라고 평가된다면 오히려 회사 측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모셔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573]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연예계에 아이돌이 등장할 때쯤 미스코리아를 필두로 한 국내 미인대회가 점점 쇠락한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대두된 여성주의 여성 단체의 미인대회 반대 시위, 대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부정 행위 및 비리 문제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연예 업계에 아이돌이 등장한 이후 남녀 불문하고 모두 아이돌 기획사로 몰려들고 아이돌 연습생에 뽑혀가고 남은 인원들로만 미스코리아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미스코리아 우승자는 각종 홍보대사 활동 및 상위 국제 대회 준비 등으로 인해 30대가 되어서야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마저도 이하늬 이후로는 아무도 연예계에서 제대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돌의 경우 유명세를 얻고 7년을 안정적으로 넘기면 20대 중후반에도 배우, 예능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보니, 빼어난 인재들은 아이돌로 많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 방송인과 SNS 인플루언서, 프로게이머들이 성공하면 아이돌보다 비슷한 젊은 나이에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와 수입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미스코리아 인재 유출이 아이돌 인재 유출로 또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574] 2024년 들어 기존 메인 걸그룹은 aespa, (여자)아이들을 제외하고 NewJeans, IVE, LE SSERAFIM까지 하락세를 겪었으며, (여자)아이들도 Super Lady로 하락세를 겪을 뻔하다가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로 하락세를 면했다. 신인 걸그룹은 ILLIT이 유일하게 지상파 1위를 수상했다.[575] VCHA를 예로 들 수 있다.[576] 특히 한국의 K-POP 관련 웹 페이지를 번역하던 이들은, 그냥 한국어를 음차해 한국어 단어 그대로 부르는 식으로 수입해 갔고, 그대로 해당 단어가 정착되었다. 예시: Maknae.[577] 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에서는 중학생은 되어야 아이돌 노래를 알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나온 노래는 알더라도 유치원 시절까지는 아이돌 노래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2010년대 후반은 되어야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다.[578] 전체적인 아이돌 팬덤 규모로 보자면 미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서바이벌 및 해당 데뷔 그룹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존재감이 컸다. 성인 팬덤을 제대로 확보하고 관리하지 못하여 어린 팬덤의 규모가 상당수를 차지했고, 이들이 몰표를 준 멤버들이 모두 데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579] 노라조의 〈카레〉(02:54), SS501의 Love Like This(02:47) 등 트롯이 아닌 곡도 있다.[580] 소녀시대, 에프엑스, 원더걸스, 미쓰에이, 투애니원, 레인보우, 걸스데이, 에이핑크,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여자친구, 오마이걸, 우주소녀, 러블리즈, 에이프릴 등.[581] 뉴진스, 아이브, 에스파, 엔믹스, 케플러, 하이키, 위클리, 라잇썸, 클라씨, 첫사랑, 아일릿, 유니스, 메이브, 영파씨, 리센느, 캔디샵, 메이딘, 미야오, 이즈나 등.[582] 비비지, 브브걸, 루셈블 등. (여자)아이들은 보통 '(여자)'를 묵음하여 '아이들'로 불리기에 이 또한 포함될 수 있다.[583] 베이비몬스터, 피프티피프티, 제로베이스원, 판타지보이즈, 키스오브라이프, 보이넥스트도어, 나우어데이즈, 세이마이네임, 큐더블유이알 등.[584] 단, H.O.T.와 젝스키스는 재결합을 하였으며 SES 역시 단기간 재결성하여 활동을 한 바 있다.[585] 대부분 90년대 중후반생들이 많으며 2000~2002년생 멤버들이 그룹에서 막내 멤버이다. 막판에는 2003~2005년생 멤버들까지 있었다. 번외로 1989년생 멤버와 2005년생 멤버가 한 팀인 그룹도 있었다.[586] 앞선 3세대에서 막내 라인이었던 2000년~2002년생들은 보통 최연장자나 리더 포지션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고, 2024년 현재는 200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멤버들이 그룹의 주 연령층을 구성하고 있다.[587] IVE, aespa, LE SSERAFIM, NewJeans 등의 신생 팀이 벌써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군림하는 등, 새로운 세대가 생성되었다고 충분히 여길 만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588] 2~2.5세대 보이그룹의 수명이 반영구적이라는 특성상 저때는 40대를 돌파한 보이그룹 멤버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거의 영구 패턴에 준하는 수준이다.[589] 이것은 아이돌이 점점 대중성을 상실하고 갈라파고스화되어가는 것 때문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점점 세대 교체가 옅게 느껴질만큼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590] 두 세대가 워낙 발전도 차이가 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1세대 전성기 이후로 2세대가 개막할 때 까지 수년 간 아이돌 암흑기였다.[591] '2세대 아이돌'이라는 키워드를 구글에 검색하면 2015년 6월 30일 까지는 약 7만 건, 2024년 8월 11일 까지는 약 8백만 건이 뜬다.[592] 2011년 기사에서는 시크릿, 인피니트 등 2.5세대 아이돌을 '제 3세대 아이돌'이라고 지칭하였다.[593] '세대' + '(가스)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