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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채널 터널 관련 다큐 |
직경 7.6m의 터널이 30m 간격으로 3개 설치되어 있고 중간의 하나는 비상용 터널이며 나머지 2개 터널을 각각 프랑스 방향/영국 방향 표준궤 선로로 사용한다. 각 선로는 교류 25kV 50Hz로 전철화되어 있다. 총 길이는 50.45km이고, 이 중 해저 길이는 37.9km이며 해저 길이는 세이칸 터널보다 이 채널 터널이 더 길다.
유로스타가 이 터널을 지나 영국과 유럽 대륙을 연결하고 있다. 후술하듯 화물열차도 운행되고, 트럭 버스 자동차를 기차에 실어 통과할 수 있다.
첨부된 지도상의 영국쪽 기차역인 애시포드역에서 프랑스 칼레역까지 가는 시간이 35분이다. 유로스타는 과거 영국 내 광고문구에서 "당신은 35분이면 영국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썼었다.[3]
터널에서의 최고속도는 160km/h로 제한되어 있지만, 특별 허가를 받으면 300km/h 주행이 가능하다.
해저 지점의 가장 깊은 곳은 해저 바닥 기준 75m이고, 해수면 기준으로는 115m이다.
2. 명칭
이 해저터널의 영어 이름은 채널 터널(Channel Tunnel)이다. '채널'은 이 터널이 영국 해협(The Channel / English Channel)을 통과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프랑스어 이름은 Tunnel sous La Manche[4]로 '망슈 터널'을 의미하는데, 망슈(La Manche)는 영국 해협(The Channel)의 프랑스어명이니 결국 의미는 동일하다.대한민국의 언론 매체에서 이 터널을 유로터널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 시설은 영국과 프랑스에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각각 채널 터널, 망슈 터널이라 하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한때 운영사 이름이 유로터널이었고, 운영사에서 유로터널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해서 유로터널을 터널 이름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BBC 등 언론, 방송에서는 줄여서 처널(Chunnel)[5]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잦다.
3. 역사
도버 해협에 터널을 놓자는 아이디어는 1802년 처음 나왔다. 19세기 철도의 발명과 토목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여러 엔지니어와 사업가들이 계속해서 제안을 했지만, 그 때는 영국-프랑스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매국노란 소릴 듣고 사장되었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터널은 유럽 대륙 국가가 자국을 침공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음모론이 유행했는데, 침공 문학이라는 장르 문학의 일종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수의 터널 지지자들에 의해 지질 조사가 이루어져, 해협이 터널 공사에 적합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짧은 터널이 시험으로 건설되는 등, 나름의 수확이 있었다.터널 아이디어는 20세기에도 주기적으로 제기되었고, 윈스턴 처칠같은 저명한 정치인들도 해저터널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마침내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프랑스 관계가 나아져 채널 터널 건설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벽이 사라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1964년에 채널 터널 건설에 합의했다. 그리고 양국은 채널 터널 건설에 대한 지질조사를 마쳤다.
1970년대 영국이 영국병에 빠지면서 채널 터널 계획은 잠시 중단되었고, 도선업자들의 반발과 마거릿 대처 내각의 자동차 터널 제안 등으로 인해 사업이 우왕좌왕한 적도 있었으나, 마침내 1986년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조약을 맺고, 조약이 각국의 비준을 받아 공사를 시작했다. 영국,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한 TBM 공법과 실드 공법을 사용해 공사를 진행했으며, 건설비용은 약 150억 유로가 들었다.
채널 터널은 1994년 5월 6일에 개통했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개통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고속철도, 화물열차, 유로터널 셔틀 등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개통 당시의 여객 수가 예상의 1/3에 지나지 않은데다가 공사비가 예상보다 너무나 커지는 바람에 엄청난 이자 부담에 시달려 결국 운영사인 유로터널 SA가 2006년에 파산 위기에 처했다. 결국 프랑스 법원의 중재로 부채 만기 연장과 추가 융자 등을 받아 유로터널 SA는 Groupe Eurotunnel S.A.로 재편되었다.
2017년에는 Groupe Eurotunnel S.A.가 Getlink로 이름을 바꾸었다.
4. 운행
4.1. 여객열차
▲ ICE 3 진입 장면 |
이 구간을 이용하는 여객열차는 고속철도인 유로스타 뿐이다. 채널 터널에서 160km/h로 운행한다.
2007년 이전에는 영국 쪽 구간에 고속선이 없어서 여객열차도 영국에서는 기존선(사우스이스트 본선)을 들어가야 했다. 이 기존선은 제3궤조집전식이었기 때문에 제3궤조 집전장치를 달고 다녀야 했다. 2007년 High Speed 1이 개통한 덕에 지금은 영국에서도 300km/h로 잘 날아다니는 중이다.
공사 당시에는 야간열차 운행도 계획되었으나 백지화되었다.
유로스타 개통 이전의 짧은 기간동안에는 터널 내 가공전차선 높이에 맞게 개조된 영국철도 319형 전동차 2개 편성(319008 Cheriton & 319009 Coquelles)이 여객 서비스를 실시했었다.
2010년에는 ICE 3가 시운전을 위해 입선한 바 있다. 도이치반은 향후 런던 ↔ 브뤼셀 ↔ 암스테르담 / 프랑크푸르트 노선 운행을 염두에 두고 시운전을 실시했으나 수익성에 대한 불확실성 및 승차전 출입국 심사 완화와 관련된 영국 정부와의 협상이 실패해 추진이 보류되었다.
4.2. 화물열차
이 터널을 통해 유럽과 영국을 잇는 화물열차가 운행된다. 영국국유철도는 채널 터널의 화물열차 운행을 위해 92형 전기기관차(Class 92)를 도입했다. 국철의 민영화 이후로는 DB 쉥커가 화물열차를 운행한다.화물열차는 영국에서 High Speed 1뿐만 아니라 제3궤조 기존선으로도 들어가기 때문에 제3궤조 집전장치를 탑재하고 있으며, 긴 터널구간을 지나기 때문에 일부 위험물질은 운반할 수 없다. 최고속도는 140km/h로 규정되어 있다.
92형 전기기관차의 운행 영상.
4.3. 유로터널 셔틀
Eurotunnel Shuttle (The Shuttle/Le Shuttle)채널터널 운영사인 겟링크에서 유로터널 셔틀이라는 열차를 운행하는데, 자가용이나 버스, 트럭 등의 자동차를 카페리처럼 자동차째로 2층 높이의 열차에 실어 이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 #
영국 포크스톤과 프랑스 칼레에 있는 터미널[6]에서 현지의 출국 심사[7]와 가려는 나라의 입국심사를 모두 받고 자동차째로 열차에 실린 후 상대 쪽 터미널에 도착해 바로 내려서 목적지로 가는 구조다. 터미널은 각국의 고속도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열차는 앞뒤로 기관차가 붙고 그 사이에 초대형 유개화차와 무개화차가 있으며 이 화차에 자동차가 실린다. 편성 길이가 775m에 달하며, 트럭을 싣기 위해 화차를 무식하게 크게 만들었기 때문에 채널 터널 이외의 구간에서는 운행이 불가능하다. 최고속도는 160km/h.
이용 요금은 여기를 참고할 것. 과거에는 영국에서 유럽 본토를 잇는 유로라인 국제버스가 이 경로를 이용했으나 최근에는 카 페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가용이 실려 있는 광경. 밑은 적재하는 과정의 영상.
자가용이 실리는 화차는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주차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차에서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자가용이 실릴 때에는 적재 편의를 위해 모든 화차가 화차 사이즈만큼의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지만 운행 중에는 방화문으로 닫아버리고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는 문을 따로 두었다. 이 화차 안에는 화장실도 있다.
버스도 실을 수 있다. 2개 층으로 나누어진 화차에 적재되는 승용차와 다르게 버스나 탑차(전고 1.89m 이상의 차량)는 2층짜리 높이에 천장이 있는 1층형 객차에 적재된다. 화차 내부의 모습은 승용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럭은 이렇게 실린다. 트럭을 대놓고 나서는 바퀴에 고임목을 괴어놓으며, 트럭 기사는 열차 운행 중 트럭 안에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트럭을 싣는 화차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므로 운행 중에 기사가 트럭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트럭 기사들은 트럭을 대놓은 후 별도로 마련된 버스를 통해 선두 혹은 후미에 마련된 별도의 객차로 이동하여 그곳에 탑승한다. 객차 사진
트럭 운전사의 시점에서 바라본 채널 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가는 모습[8]
오토바이도 자가용 칸에 실을 수 있다.
유로터널 셔틀이 칼레와 포크스톤을 오가는 운행시간은 편도 35분이다. 다만 영국 국경통제국의 입국심사가 깐깐한 편이다보니 이를 감안하면 더 오래 걸린다. 대신 영국 출국 - 프랑스 입국 측은 널널하다. 프랑스 자국민들을 포함하여 솅겐 협정에 해당하는 국적의 입국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유로라인 버스를 예로 들면 프랑스 출국심사 받으러 우르르 한 번 내리고 영국 입국심사 받으러 또 한 번, 총 두 번 버스에서 하차해야 하는데, 영국인, 영연방 왕국 시민권자, 유럽인들 30명 통과할 동안 비유럽인은 5명 정도 통과하는 난이도를 보여준다.
버스뿐 아니라 자가용도 입국이 까다로운 건 마찬가지다. 영국 국경통제국 소속 출입국 심사관과 세관원이 트렁크 개봉도 하고 차내 검사도 한다. CBP와 CBSA의 미국-캐나다 국경 수준의 난이도다. 제일 까다로운 곳이 트럭이나 트레일러인데 이 쪽은 아예 밑에도 확인한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오는 난민들도 많고 불법체류자들이 트레일러의 화물칸에 숨는 케이스, 밀수 등이 있기 때문이다. 2층열차인 유로터널 셔틀 운행을 위해 채널 터널 크기가 커지고 가공전차선 높이도 높아지는 바람에 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집전장치를 펼 때의 높이가 다른 열차보다 높아야 한다.
5. 사건 사고
5.1. 화재사건
1996년 11월 18일 이 터널 내에서 화재가 일어났으나 이듬해 5월 15일 전면 복구되었다.2008년 9월 11일 터널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2009년 2월에 전면 복구되었다.
5.2. 열차고장
1996년 열차 전기공급 이상으로 약 1,000여 명의 승객이 터널에 갇혔다.2009년에 폭설로 인한 전기고장으로 2,000여 명의 승객이 터널에 갇혔다.
5.3. 난민과 밀입국자 문제
영국으로 가는 길목이라 예전부터 밀입국 시도는 잦았지만 유럽 난민 사태로 그 규모가 커지고 방법도 과감해지고 있다. 칼레 주변의 난민촌에 사는 난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영어만 구사할 줄 아는 국가 출신이 대부분으로, 이로 인해 프랑스보다는 적응이 더 쉬운 영국에 가고 싶어한다.
이들은 주로 프랑스 쪽 유로터널 셔틀 터미널에서 영국으로 가는 트럭 화물칸에 숨어 가는데 트럭 기사들이 화물칸을 닫고 있어도 뜯고 들어가거나 숨는 경우가 많다. 인원이 많다보니 트럭 기사들이 말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9]
당장 베트남인들이 중국을 거쳐 밀입국한 영국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사건, 2000년 도버항 밀입국 참사 등으로 인해 도버와 칼레 루트에서 밀입국이 증가했고 영국 국경통제국과 프랑스 국경 경찰이 협력하기도 했지만 영국 - 프랑스 간 책임 소재 논란도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와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이 영국으로 진입하는 난민들을 르완다로 송환시키는 대신 경제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가 자국 내 비판으로 인해 보류했다.[10]
현지 프랑스 국경 경찰이 칼레 난민 수용소와 채널 터널 주변을 경비하고 있고 영국 정부가 프랑스 정부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경찰보다 난민수가 10배는 많으니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매일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걸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난민촌 주위로 방어벽을 만들고 있지만 벽을 만든다고 해도 얼마든지 넘어올 수 있으니 경찰력 증원 말고는 답이 없는데 영국 국경통제국 소속 인원들 역시 심사 수요에 비해 수가 적다.
그러나 이곳을 통한 밀입국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며 트럭의 검사 또한 점점 철저해지고 있기에, 개중에서는 기회를 노리다 포기하고 그냥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하여 칼레에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
6. 기타
- 터널 개통 전까지는 일본의 세이칸 터널처럼 철도연락선으로 자동차와 열차를 실어 날랐다.
- 터널 개통 이전 대형 호버크래프트를 사용해 도버와 칼레 사이를 잇던 Hoverspeed사가 개통 이후 수익성 악화로 인해 2005년에 운영을 중단했다.
- LPG 차량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7. 관련 문서
[1] 프랑스어명은 La Manche(라 망슈)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English Channel(영국)과 La Manche(프랑스)가 각각 같은 해협의 영어명/프랑스어명이라고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주고 있기 때문에 명칭 분쟁은 없다.[2] 본사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명을 쓴다.[3] 코로나 19로 인해 현재는 이 애시포드 역을 사용할 수 없기에 런던역에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2시간 정도 걸린다.[4] 영역하면 Tunnel under the Channel이다.[5] Channel + Tunnel의 합성어.[6] 영국 쪽 터미널의 이름은 포크스톤 빅토르 위고 터미널이고 프랑스 쪽 터미널의 이름은 칼레 찰스 디킨스 터미널이다. 영국-프랑스간 우애를 위해 상대국의 유명 문학가 이름을 붙인 것이다.[7] 단 출국 심사가 없는 영국 측에서는 바로 프랑스 국경경찰의 입국심사를 받는다.[8] 열차가 달리는 모습까지 영상에 있으니 궁금하면 보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9] 위 영상들을 봐도 그냥 보기만 하지 나와서 말리지 못한다. 또한, 트럭에 올라 타서 터널을 통과해 영국으로 간다고 해도 심사 과정에서 잡히니 굳이 건드려서 위험해질 필요는 없다.[10] 당장 같은 당 소속이자 전임 내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테레사 메이부터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