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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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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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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 지하철 1호선 노선도(2021_11).svg
노선 정보
노선 분류 도시철도
차량 분류 대형 중전철
기점 서울역
종점 청량리역
역 수 10개
구성 노선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일 1974년 8월 15일([age(1974-08-15)]주년)
소유자 서울특별시
운영사 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1]
사용차량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
차량기지 군자차량사업소
노선 제원
노선연장 7.8㎞
궤간 1,435㎜
선로구성 복선
급전방식 직류 1,500V
신호방식 지상신호방식
폐색방식 4현시 복선자동폐색방식
신호장비 kyosan signal ATS-S2
표정속도 평균 24.6km/h
통행방향 좌측통행
1. 개요2. 역할3. 역사
3.1. 1960년대 전까지의 지하철 계획3.2. 지하철 건설 결정3.3. 노선 확정과 설계3.4. 공사와 개통3.5. 5호선과의 선로 공용 계획
4. 전 구간 주행 영상5. 운행 열차6. 사건 사고
6.1. 2012년 2월 한파와 탈선6.2. 2018년 8월 지하서울역 열차 고장6.3. 2019년 5월 신호 체계 장애
7. 역별 승하차 통계8. 특징9. 기타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지하철 종로선 개통에 즈음하여

여기 땅 속을 뚫기 3년 4개월 서울 시민 교통에 신기원을
이룩할 지하철 종로선이 650만 시민의 뜨거운 염원과
대망리에 완공되었다
이 거역이 우리의 기술진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졌으니
민족의 저력을 과시할 장한 일이다 그동안 이 일에 힘을
기울인 모든 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오늘 역사적인 개통을 맞아 줄기찬 의욕으로 자랑스러운
수도 서울과 영광된 조국에 힘을 다할 것을 다 함께
다짐하는 바이다

1974. 8. 15.
서울특별시장 양택식
이 기념비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대합실 2번 출구 근처 벽면에 부착되어 있다.
1974년 8월 15일에 개통된, 서울 지하철의 한 노선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노선이다. 이 노선이 개통하면서 아시아 7번째[2]로 지하철을 개통한 국가가 되었다. 노선색은 파란색이다. 2000년도 노선색 통합 전에는 빨간색이었는데, 1호선 열차의 도색이 빨간색인 이유도 노선색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며 개통 초기부터 종로선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노선색 통합 때 색이 바뀐 이유는 직결되어 있는 간선철도 때문이다. 국철로 불리며 파란색으로 표기되던 이 구간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2. 역할

서울도심을 관통하느라 엄청난 승하차량을 보이며, 수도권 전철 1호선을 먹여살린다. 노선색이 빨간색이던 시절부터 2호선처럼 이 구간은 1호선의 몇 안되는 흑자 구간이었다. 별칭의 이름이 '종로선'일 정도로 이 노선은 종로구를 지하로 훑고 지나간다. 그 종로에는 종로1~2가(종각)에 업무시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 서울의 주요업무시설이 모두 몰려 있다. 200km가 넘는 수도권 전철 1호선에 비해 길이 비중은 4%도 채 되지 않으나 이용객 수로는 2015년 기준 292,950명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의 10%에 달한다. 역 평균 이용객은 약 29,295명이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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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식건설 중인 [[시청역(서울)|{{{#white 시청역}}}]](개통 때의 명칭은 시청앞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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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3]1974년 8월 31일 대한뉴스 제998호 - 수도권 전기철도}}}

3.1. 1960년대 전까지의 지하철 계획

1호선이 지나가는 종로 구간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이미 수요가 과포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지하철 건설이 논의 중이었다.[4] 1939년 착공이 허가 되었는데[5], 당시 계획은 제기정(제기동)~동대문이었고, 추후 경성역으로 연장될 계획이었다. 같은 시기에 경인선의 복선전철화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었는데, 해당 계획에 경인선 복선전철과 직결하는 경성역(현 서울역) ~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간 약 1km 구간의 지하철 건설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6] 그러나 이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은 후순위로 밀려났으며, 말년으로 갈수록 일반인에게도 강제공출을 했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해졌기 때문에, 건설은 취소되었다. 이후 일제 패망으로 8.15 광복이 되었고, 지하철을 건설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6.25 전쟁이 터져서 전국이 한 번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전후복구가 우선시되어서, 사업 우선순위에서 지속적으로 밀려났다.

3.2. 지하철 건설 결정


1960년대에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가 엄청나게 몰려와서 전차와 버스 모두 수요가 폭증하였지만, 서울 전차가 1968년에 폐지되면서 서울의 대중교통의 거의 전부였던 서울특별시 시내버스는 포화상태를 맞았다. 이미 서울 전차를 대체하려는 목적에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재임하던 1960년대에 지하철 노선들이 계획되었다. 당시 1호선은 현재의 1호선과 같은 경로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기술 수준에서 지하철을 건설 및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컸고, 더불어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각종 건설사업으로 인해 서울시의 재정상태는 매우 나빴다. 또한 "지하철이 서울 인구집중을 오히려 부추길 것"이라는 중앙정부 관료들의 반발에 부딪혀 계획은 지지부진했다.

김현옥 시장이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양택식 시장이 부임했다. 양택식은 전 철도청장으로서 철도지하철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서울의 만성적인 교통혼잡을 지하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 하에 계획을 밀어붙인다. 이에 따라 지하철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자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서울로의 인구 집중,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폭언을 쏟아부어가며 반대했다. 평소에도 욕을 입에 달고 살던 김학렬은 보고를 듣자마자 "촌놈이 알지도 못하고 건방지게?!"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막대한 돈이 드는 계획은 중앙정부 경제관료의 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지하철 건설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면서 양 시장의 손을 들어주자 박정희 대통령도 지하철 건설을 지지했다.[7]

3.3. 노선 확정과 설계

파일:attachment/서울 지하철 1호선/1_subway.jpg

이 때 양택식 시장의 서울시청은 현재의 1호선과 함께 2호선에서 5호선까지 계획을 세운다. 당시 계획을 보면 2호선은 순환선이 아니었고, 3, 4호선은 도심을 한바퀴 돈 후에 다시 한강을 넘는 방식이었으며, 한강 넘는 한쪽은 4호선, 다른 쪽은 3호선으로 하여 건설될 계획이었다. 5호선은 1호선과 일부 구간을 공유하여 운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리하여 서울역과 청량리를 잇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계획이 입안되고, 경부선 서울~수원 구간과, 경인선 전 구간, 경원선 청량리~성북 구간을 전철화해 1호선과 직통하도록 하였다. 즉, 주변 간선철도와의 직통은 처음부터 확정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하철을 지을 자금과 이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에 따라 일본 OECF(JICA의 전신)에서 차관을 들여오기로 하고, 일본 기술자와 관료를 초청해 지하철 계획 및 공사, 운영에 대한 자문을 얻었다. 일본 기술자들이 한국에 도착해 현장조사를 한 결과 한국의 지하철 건설에서 차량이나 신호 및 통신 분야에는 일본이 제조 및 기술 제공 등으로 협력하고 지하철 공사 그 자체는 한국 기술진이 추진하는 것으로 하였다.[8]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의 통행방향 및 전력방식을 결정할 때 서울시와 철도청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통행방향에 있어서 철도청은 좌측통행인 국유철도와 직통하므로 좌측통행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울시는 노면교통과의 호환과 대부분의 나라가 도시철도를 우측통행으로 건설하는 세계적 추세를 들어 우측통행을 지지했다. 또한 문순경 한국철도시설학회 명예회장에 따르면 당시 철도청은 이미 중앙선 전철화 당시에 채용된 교류 25,000V 60Hz을 원했고 서울시는 교류를 사용하면 전화선에 전류가 흘러들어 통신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직류 1,500V을 원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 따라 전류방식은 서울시, 통행방식은 철도청의 주장이 수용되어, 현재처럼 직류 좌측통행으로 건설되었다.[9]

통신장애는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전화선을 이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직교류겸용에 2곳의 절연구간을 도입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직류로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최초의 도시철도 노선이었으므로 타 도시철도 노선과의 연결선로 등을 미리 생각하며 우측통행으로 설계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단순히 노면교통 호환과 세계적 추세라는 이유만으로는 꽈배기굴을 2개씩이나 만드는 것을 감수하고 우측통행으로 건설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타당성이 부족하므로 직류 좌측통행이 가장 합리적인 건설 방법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3.4. 공사와 개통

파일:42865.jpg
한창 공사중인 시청역



1호선의 공사는 1971년 4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1호선은 모든 구간을 개착식 흙막이 공법으로 지었다. 개착식 흙막이 공법으로 인해 교통량이 많은 종로왕산로세종대로를 4년간 몇 개 차로씩이나 막은 탓에 정체가 심각했다.

1호선 전체 길이는 7.8km 정도이지만 의외로 난공사 구간이 꽤 있었다.

첫번째로 문화재 보호 문제가 있었다. 1호선은 숭례문흥인지문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지하철 공사로 인해 문화재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1호선은 최대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에서 멀리 통과한다. 지하철 운행에서 발생하는 진동은 문화재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대레일을 깔고 터널 내외부에 방진벽을 설치했으며 숭례문과 흥인지문에도 기초 부분에 방진벽을 설치하여 각 문화재에 지하철의 진동이 닿지 못하도록 하였다.

서울 도심을 흐르는 수많은 하천과 지하보도도 공사를 어렵게 했다. 굵직한 것으로 청계천정릉천이 있지만, 도로 아래 복개된 각종 소하천들도 문제가 되었다. 이들을 함부로 막고 공사하면 범람의 원인이 되므로, 본격적인 공사 전에 가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우회한 다음 지하철 터널을 파고 다시 수로를 복구하는 식으로 작업하였다. 특히 꽤 큰 하천인 정릉천 아래에 있는 제기동역은 정릉천 물줄기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공사했다. 지하보도가 있으면 지하보도를 보 등으로 강화시켜 놓고 그 밑을 파는 방식으로 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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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종각역도 난공사 구간 중 하나였다. 이곳은 세종대로에서 종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급곡선이 불가피했는데, 곡선반경을 완화하자니 개착식 흙막이 공법으로 인해 건물 아래를 통과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건물을 매입해 철거하고 나서 공사하는 방법도 있고, 실제로 처음 계획은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서울 지하철 1호선은 넓은 세종대로와 종로를 최대한 이용하여 주변 건물 밑을 통과하지 않고 커브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때문에 시청 - 종각 사이의 광화문사거리에서 1호선은 도로를 따라 90도에 가까운 커브를 냈다(곡선반경은 상행 140R, 하행 136R). 그런데도 동아일보 사옥과는 고작 1.7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공사와 동시에 동아일보 건물 기초를 보강하는 공사를 해야 했다. 이곳은 서울 지하철에 있는 곡선구간 중 회전반경이 가장 작으며, 현재에도 여기서의 운행 속도는 약 30km/h 정도로 대단히 느려서 1호선의 표정속도를 감소시키는 주 원인이 된다. 이로 인한 선로의 마모를 줄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윤활유를 뿌리는 장치도 있다. 과거에는 여기서 탈선사고가 가끔 있었으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 보조레일을 설치하였고, 이로 인해 열차 운행 시 쇠소리가 난다. 여기서 가까운 광화문 지하도와 지상에서도 환풍구를 통해서 쇠소리가 뚜렷이 들린다.

파일:jonggak Drift new.png

실제로 드리프트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한다. 드리프트 소음은 지상 환풍구에서 귀를 기울여도 들린다.[10] 코너를 돌 때 선로와 전동차 바퀴 사이의 마찰에 의해 생기는 쇠갈리는 소리를 가감없이 듣게 된다.

지하철 실제 선형 지도

1호선 공사는 1971년 4월 12일에 시작해 1974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로서 개통식이 성대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개통식 직전의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때문에 무산됐다. 원래는 박정희 대통령도 올 예정이었지만, 영부인 육영수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엄청난 사건을 당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박정희 본인은 그럼에도 개통식에 가려고 했는데 참모진이 말리고 말려서 가까스로 고집을 꺾었다고 한다.


개통 초기에는 자동 검표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미비했기 때문에, 개찰구역무원이 서서 마치 놀이동산이나 영화관, 관광지마냥 직접 수작업으로 검표했다. 서울 1호선에 지금과 같은 자동검표를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3.5. 5호선과의 선로 공용 계획

원래 종각역~신설동역은 지하 2복선으로 5호선과 정거장을 공유하며 운행이 실행될 예정이었다. 향후 종로의 성장에 따른 수요 대폭발에 대비해 일본 JARTS의 기술진에게 자문한 것이었다. 따라서 1호선 공사 당시 종로 구간 일부 역은 추후 2복선으로 공사가 될 것을 대비하여 설계되었다.[11]
파일:종로5가(구 5호선 개통시).png
파일:신설동(구 5호선 개통시).png
▲ 구 5호선을 반영한 종로5가역과 신설동역 안내도. 신설동역 5호선 승강장은 지하 2층이 서쪽만 있어야 정확하다. 혹은 종착면으로 이해하면 좋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개통식 당일 벌어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이 사임하고, 후임이 된 구자춘 시장이 기존 계획을 다 갈아엎고 현재의 1기 지하철 계획을 완성시켰는데, 그때 종로의 지하 2복선 계획도 백지화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1호선은 양 옆으로 지금도 공간이 남아 있는데, 이 공간은 각종 파이프나 통신 케이블 등이 들어서 있고 몇몇 추가 지하 구조물이 들어서 있어 지하철 선로로 재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시 도로를 뜯어내고 이설하여 공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똑같은 지하철을 하나 더 건설하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우선 구자춘 시장의 계획대로 착공된 지하철 3호선이 종로3가역에서 1호선과 환승하게 되었는데 1호선의 2복선화를 위해 미리 뚫어 놓은 지하공간을 활용하여 환승통로를 만들었고 1호선 동묘앞역 역시 이 구조물을 활용해 지은 역이다. 종각역종로3가역은 예비 구조물을 활용하여 승강장을 확장하였다.

4. 전 구간 주행 영상

청량리역 서울역 전 구간 주행 영상
서울역 청량리역 전 구간 주행 영상

5. 운행 열차

총 119개 편성이다.

6.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6.1. 2012년 2월 한파와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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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18년 8월 지하서울역 열차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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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2019년 5월 신호 체계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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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별 승하차 통계

2023년 기준 서울 지하철 1호선 일평균 승하차 순위이다. 환승역 승하차량은 다른 노선의 승하차량을 제외한 수치이며, 서울역은 서울교통공사 구간인 지하서울역 구간의 승하차량만을 포함한 수치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노선 총합
역수 구간 역당 일평균 이용객 일평균 승하차량 2023년 승하차량 최다 이용역 최저 이용역
10개 서울역 ↔ 청량리 46,050명 460,502명 168,083,270명 서울역 동묘앞
일일 이용객 수
역수 구간 10만명 이상 5만명~10만명 2만명~5만명 1만명~2만명 1만명 이하
10개 서울역 ↔ 청량리 1개역
(역별 순위 1위)
1개역
(역별 순위 2위)
7개역
(역별 순위 3~9위)
1개역
(역별 순위 10위)
없음
서울 지하철 1호선
역별 순위
순위 역명 일평균 승하차량 2023년 승하차량
1위 서울역 100,595명 36,717,344명
2위 종각 71,194명 25,985,778명
3위 종로3가 49,427명 18,040,987명
4위 시청 49,190명 17,954,414명
5위 종로5가 47,501명 17,337,814명
6위 청량리 40,322명 14,717,613명
7위 제기동 33,568명 12,252,402명
8위 신설동 26,111명 9,530,348명
9위 동대문 22,892명 8,355,573명
10위 동묘앞 19,701명 7,190,997명

8.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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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 방식은 한국철도공사 운영 구간과 동일한 좌측통행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도 노선 중에서 유일하게 직류+좌측통행 방식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동묘앞역에서 신설동역 방향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지선과 연결되는 선로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입체교차가 발생하며 통행 방향 문제로 꽈배기굴이 형성되었다. 이 연결선로는 신설동역의 유령 승강장 때문에 연결선로 중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들의 군자차량기지 입출고뿐만 아니라 2호선이나 5호선, 8호선에서 운행할 신형 전동차를 도입할 때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선로이다.

파일:빨간색 1호선.jpg
노선색이 빨간색이던 시절 1호선 환승 표지(2호선 시청역에서)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1호선의 운임 수취와 역 구내 및 선로 관리를 맡지만, 열차운행은 한국철도공사의 역할이 지배적이다. 종로 구간을 포함한 1호선 열차운전계획 수립 권한도 한국철도공사에 위임되어 있다.[12]

승강장 크기가 다른 노선에 비해 상당히 작은데, 칙칙한 분위기 탓에 더 작아 보인다. 몇몇 역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칙칙한 역은 칙칙하다.

승강장 평균깊이 및 심도가 제일 얕은 편인데, 동묘앞역청량리역만 지하 1층에 승강장이 있고 나머지 역은 지하 2층에 승강장이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짧은 도시철도 노선이었다가 2022년 5월 28일부터는 7.5km의 신림선이 개통하면서 신림선이 가장 짧은 도시철도 노선이 되었다. 현재 신림선은 서부선 110정거장으로 연장 계획이 있고 신림선의 지선인 난곡지선이 확정됨에 따라 개통 시, 가장 짧은 도시철도 노선은 다시 서울 지하철 1호선이 된다. 하지만 위례선이 개통 연기 없이 2025년 개통하면 위례선이 가장 짧은 도시철도 노선이 된다. 하지만 가장 짧은 중전철 도시철도 노선인 것은 변함이 없다.

9. 기타

  • 199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영 효율화를 명목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운영권과 과천선+안산선+일산선의 운영권(수도권 전철 3, 4호선 전 구간 운영권)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당시의 서울지하철공사에 제안했다. 이에 서울지하철공사는 "분당선까지 얹어주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2017년 기준 분당선은 한국철도공사 광역전철 중 흑자폭이 가장 크고, 1호선은 노인 무임의 영향으로 소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철도청 노선 한가운데 박혀있어서 운영 계통 책임소재가 복잡해지는 1호선 vs 서울지하철공사와 아무 관련없는 분당선이라는 명분을 생각해 보면 애초에 서울지하철공사 측이 1호선을 절대 넘겨주지 않으려는 게 확실했고, 결국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지 철도청에서도 포기했다. 결국 서울지하철공사의 행보로 1호선, 3호선, 4호선에 민원신고나 여러가지 제안을 하는 것이 복잡해졌다.
  • 2016년 3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1호선 지하 구간이 서울 지하철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표정속도가 느리며, 평일 기준 표정속도가 29.3km/h라고 한다.[13] 노선연장 7.8 km에 10개 역이라서 평균 역간 거리가 약 870 m이다. 단, 지상 구간과 급행을 포함한 수도권 전철 1호선은 표정속도가 가장 빠르다. 표정속도로 따지면 광운대발 신창행 완행(44.7km/h)이 9호선 급행(38~43km/h)보다도 더 빠르다.
  • 동묘앞역은 초창기에는 없었지만 6호선과의 환승을 위해서 중간에 추가된 역이다. 이 역이 생긴 뒤로 군자차량기지 입고차가 동대문행에서 동묘앞행으로 연장되었다.
  •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열차 사고가 발생해 운행이 불가능하면 다른 열차들은 보통 경원선(이촌~왕십리)으로 우회해 운행하기도 한다. 인천, 서동탄 방면 기준으로 회기역에서 청량리역 사이 평면교차로 경원선 선로로 갈아타서 이촌역까지 무정차 통과한다. 이촌역 통과 후 용산삼각선을 경유, 한강철교 급행선로로 진입해 노량진역으로 진입한다. 역방향은 반대이다. 현재 이 구간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이 운행한다.
  • 신창행 열차 진입 시에는 병기역명(순천향대학교)까지 붙여서 "지금 신창, 순천향대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방송한다.
  • 동두천급행 열차 진입 시에는 천안급행과 달리 "지금 동두천, 동두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방송한다. 반대로 동두천에서 출발하는 인천급행도 "지금 인천, 인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방송하지만 경원선 구간만 급행이고 나머지는 각역정차라 상관없다.
  • 2020년 4월부터 일부 역에서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 선로의 일부 역명판을 제외하면 지하철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 거리가 7.8km 정도로, 같은 1호선의 평택~성환(9.4km) 및 연천~전곡(8.7km), 경강선의 부발~세종대왕릉(8.3km), 신분당선의 판교~청계산입구(8.2km), 인천국제공항철도의 마곡나루~디지털미디어시티(8.6km) 및 청라국제도시~영종(10.3km)보다 짧고, 경강선의 신둔도예촌~이천(7.8km)과는 거리가 같으며, 4호선의 오남~별내별가람(7.7km), 서해선의 김포공항~능곡(7.4km)보다 아주 살짝 길다. 하지만 전체 운행시간은 18분 정도로, 대략 6~8분이 소요되는 다른 구간들과 비교하면 2~3배 더 길다.
  • 개통 당시 요금은 서울역 출발기준으로 대방역까지 기본 요금인 30원이었고, 당시 경부선 종점인 수원역과 경인선 인천역까지는 120원으로 책정되었었다. 2023년 가치로 환산하면 442원/1,770원이다. 당시 근로자 평균 월급이 35,738원(2023년 가치로 527,242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체감상으로는 오늘날의 2배 이상으로 비쌌던 셈. 이 요금은 200원으로 대폭 인상된 1986년 12월 29일까지 12년 넘게 이어졌다.
  • 서울 지하철 노선들 중 심도가 가장 얕다. 반대로 가장 심도가 깊은 노선은 6호선이다.
  • 개통 당시에는 역 내에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현재의 1호선 화장실은 역 직원들이 쓰던 직원용 화장실을 1982년부터 이용객에게 개방한 것이다. 1호선에 화장실을 갖추지 않은 건 요금에 비해 화장실 유지비용이 너무 비싸고 1호선 서울역-청량리의 운행시간이 짧으며 화장실이 우범지대가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언론 기사들을 보면 화장실 개방 전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민원이 빗발쳤고, 개방 당시에는 "너무 좁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 때의 교훈을 살려 서울 지하철 2호선부터는 모든 역에 공중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1호선 화장실도 대대적으로 리뉴얼했다.
  • 2023년 말쯤 새로운 전광판이 생겨났다. 서울남산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도입 초기라 기존 전광판과 혼용하며 사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LCD 행선기 도입 초기에 플랩 행선기도 혼용한 2호선과 비슷한 모습이다.
  • 서울 지하철 노선 중 유일하게 비환승역이 연속하는 구간이 없다. 다만 수도권 전철 1호선으로 범위를 넓히면 세마~신창 구간 19개역이 수도권 전철 전체에서 비환승역이 가장 많이 연속된다.
  • 서울 지하철 노선 중 유일하게 개통 당시부터 타 노선과 직결운행을 한 노선이다.
  • 서울 지하철 숫자 노선 중 5호선과 함께 지상구간이 없는 유이한 노선이다.
  • 양 끝인 청량리역서울역만 섬식 승강장이고, 지상역 및 좌측통행 노선과 환승이 된다. 나머지 역들은 모두 상대식 승강장이고, 지하역 및 우측통행 노선하고만 환승된다.

10. 관련 문서


[1] 열차운전계획 수립 및 기동검수실 운영[2] 아시아에서 서울보다 지하철이 먼저 들어선 도시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 베이징, 삿포로, 평양으로 모두 6곳이다.[3] 제일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 양택식 당시 서울특별시장[4] 1927년 12월 도쿄에 긴자선이 개통되어 아시아 최초로 지하철 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조선철도주식회사가 1928년 식민지 경성에 지하철 건설을 추진한다.[5] 「城東驛(성동역)에서東大門(동대문)까지 地下鐵敷設(지하철부설)을許可(허가)」, 동아일보, 1939-12-23[6] 「電鐵化計劃遂具體化(전철화계획수구체화)」, 동아일보, 1939-07-22[7] 「"한국도시 발전 속 드라마 같은 이야기"」, 노컷뉴스, 2005-08-29[8] 출처: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지[9] 수도권 전철의 국철.서울시철의 공용노선에 얽힌 사연, 사단법인 한국철도시설협회 협회지 107호[10] 관련 영상, 출처: 유튜브[11] 관련 게시글, 출처: 디시인사이드 모노레일 갤러리[12] 반대로 일산선을 포함한 수도권 전철 3호선의 열차운전계획 수립 권한은 서울교통공사가 전부 담당한다.[13] 「'1호선 서울역~청량리' 서울지하철 노선중 가장 느려」, 연합뉴스, 201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