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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갈등/아시아/대한민국/소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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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권2. 강원
2.1. 춘천시(영서 북부) vs 원주시(영서 남부) vs 강릉시(영동)2.2. 철원군 vs 구 김화군2.3. 이외
3. 충북4. 대전, 세종, 충남5. 부산, 울산, 경남6. 대구, 경북7. 전북8. 광주, 전남9. 제주
9.1. 제주시(북부) vs 서귀포시(남부)9.2. 서부 vs 동부9.3. 제주도 vs 한반도

1. 수도권

1.1. 서울특별시 vs 강남

1970년대 말 지금의 강남구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이 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 교육, 복지 등의 인프라가 엄청나게 좋아진 것에 비해 강북 지역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1] 생활 수준 격차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어떤 우월의식이나 자괴감 같은 것도 한 가지 원인. 정치 성향의 경우에도 제법 차이가 나는데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경우는 본래 민주당계가 강세였지만 90년대부터 현 국민의힘 계열 지지세가 막강해졌으며[2][3] 강북의 경우는 본래 강북이 80~90년대까지만 해도 토박이들이 많이 살아 보수정당이 제법 힘을 쓰는 구도였지만 민주당계도 제법 당선되었다. 하지만 강북이 노후화되고 민주당계에 힘이 쏠렸지만 그래도 뉴타운 열풍 등으로 보수정당이 다시 막강해졌다. 21세기 이후로는 어느 정도 변동은 있지만 대체로 강남3구는 보수정당, 나머지 지역은 민주당계가 선전하는 경향이 존재하며,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규제가 정치적 차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는 민주당계가 단 한번도 당선되지 않은 강남 지역으로 유명하다.

1.2. 서울특별시 강남 내부

강남 안에서도 서초구&강남구 vs 송파구로 나뉜다. 서초-강남은 강남역, 신사역, 신논현역, 양재역 등 강남 주요 상권을 양분하고 있고, 세무서 등 행정, 생활권, 자연경계가 거의 없는 모호한 경계이지만, 서초,강남 - 송파 사이에는 서울과 경기도 동남부의 대표적인 하천이자 한강의 동남방향 제1지류인 탄천이 있다.

심지어 교육청(학군)도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즉 강남 8학군으로 서초강남 2개구가 같이 묶이고 서울 시내버스 번호도 4번으로 같이 묶이지만, 송파는 강동으로 묶인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 강남3구로 불리는 송파구는 학군이 6학군이고, 송파구 잠실 일대는 강남 중심 상권 접근성도 좋고 매우 발달되어 있지만 강동에 인접한 곳은 번화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심지어 강남구, 서초구의 일부 몰지각한 주민들은 송파를 잠실 파출[4]이라고 비하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강동구가 껴 강남 4구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언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단, 잠실 일대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서울 등으로 급부상하면서 송파구의 부촌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 실제로 2010년대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구가 송파구였다. 2023년 기준으로는 서울 아파트 평당가 TOP3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였던 송파구가 용산구에 역전당했다.

역사적으로 봐도 송파구는 1988년 강동구에서 분리 신설된 것이고, 서초구는 1988년 강남구에서 분리 신설된 것이라 강남이라는 명칭을 자주 공유하고 강남역, 신사역 등 강남 핵심 상권도 서초구 일대에 모두 절반씩 걸쳐있는 반면, 송파구는 강남구 삼성동과 잠실이 인접한 것을 제외하면 강남 핵심상권과 거리가 다소 있어 강남권 안에서는 송파구를 진정한 강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은 확실히 있다.[5]

KB부동산 1월 주택가격 동향에 의하면, 서울 아파트 3.3㎡(1평)당 평균 매매가격 1위는 강남구로 8728만원으로 집계되었고 다음으로 서초구가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격 8555만원으로 2위를 차지하고 3위는 용산구 아파트는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6661만원으로 기록됐고 송파구는 6359만원이다.

강남서초와 평균 평당 가격이 2023년 기준으로 2,000만원 이상 나다보니 완전한 동급 가격대라 보기에는 어렵고 사실과 상당한 간극이 있어 강남권 내부에서도 지역감정이 발생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실제로 송파구 주민들도 강남 소재 사설학원과 서울전역에서 선발하는 강남의 자사고를 제외하면 강남 8학군과는 1999년 이후로 같은 학군 학교에 배정되지 않아 초중고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닐 기회도 많지 않은게 사실이라 같은 동네라는 의식은 희박한 편이다. 잠실이라는 네임벨류 자체로도 전국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파구 내부에서도 잠실구와 송파구로 분구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빅3' 지각 변동…송파 빠지고 '강남·서초·용산'

1.3. 서울특별시 강남 vs 서울특별시 강북

지역 구도만 달라졌을 뿐 갈등 양상은 위의 강남 vs 비강남 또는 경기도 남부 vs 북부와 동일하다 봐도 된다. 비강남 지역들 중 서남권이나 서북권이 대기업, IT밸리 또는 대학교와 같은 경제효과 유발 인프라가 동북권보다 비교적 많다는 점, 그리고 철도 인프라도 관악구만 제외한다면 서부 영등포권역이나 그 외 지역이 동북부보다 풍부한 편인데 2010년대에 들어 추가 인프라 확충 및 개발 계획 역시 동북부가 다소 미약하다보니 해당 지역에서 푸념이 나오는 편. 없지는 않지만 노원.도봉의 창동기지 이전+서울아레나 계획 확정, 2017년 하반기의 우이신설선 완공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적고 진전이 더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일부 자치구들에서 '우리가 강남에 버금간다'라는 인식에서,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강남에 크게 꿇리지 않는 지역(강북의 3대 신흥부촌)을 묶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이라는 말이 퍼져있고, 가끔 '강남 제4구' 자리를 두고 강동구와 동작구 사이 은근한 다툼이 있다던가 하는 것이 있다.

1.4. 서울특별시 vs 경기도·인천광역시

일부 서울시민들은 경기도, 인천에 대해 '서울의 높은 집값에 밀려난 패자들의 거주지' 또는 '서울 근처 촌동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서울부심 참조.

한편 경기도민들은 서울시계 출입 광역버스 노선 증차 억제 정책 등 수도권 교통 광역행정에 관한 서울시의 이기주의적 행태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인천시민들은 서울부심을 가진 일부 서울시민들이 인천을 비하하는 것과 인천에 서울의 각종 혐오시설을 밀어넣은 것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다.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 실시 당시에 "꼬우면 서울로 이사오면 될 것 아니냐!"라는 서울시민과 "집값 비싸서 경기도에 사는 게 서러운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항변하는 경기도민 간의 갈등도 있었다.

서울이 경인 지역을 압도하고 경기도, 인천은 베드타운, 위성도시로만 인식되던 2000년대까지만 해도 경인지역 사람들도 이를 쉽게 인정하고 경인 지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약했으므로 서울과 경기 간 지역감정이 덜했으나, 2010년대 이후 경기도, 인천이 크게 발전하고 자족기능도 강해지면서 서울 사람과 인천, 경기도 사람을 구분하려는 의식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이에 편승하듯 7회 지방선거에선 경기도가 서울의 변방이라고 주장하는 캐치프레이즈도 등장하였다. 거기에 한술 더떠 인천과 경기 지역(특히 부천) 주민들을 서울에서 밀려난 빈민이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2018년 서울 부동산 폭등에 대한 신규 택지지구 발표에 대해, 경기도 중에서 비교적 서울편입 정서가 강하다던 광명시에서조차도 "우리는 서울의 베드타운이 아니다. 정부가 경기도민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며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중.[6] 다만 서울의 인구감소와 경기도, 인천의 인구증가는 집값 때문이 아니라 경기도, 인천에 아이를 키우기 좋고 젊은층이 많은 쾌적한 신도시가 많고 판교, 동탄, 송도 등에 IT,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산업 관련 자체 일자리가 많은 것도 크다.

2010년대 이후 경기도도 남부 위주로 각종 기업 유치를 통한 경제력 성장과 인구급증으로 젊은층 인구나 신도시 인프라, 반도체, IT 등 첨단산업 일자리 같은 면에서는 오히려 서울을 앞서고 있고 무엇보다 인구에서 서울과 계속 격차를 벌리면서 경기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서 더 이상 서울의 베드타운이나 위성도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커지기는 했지만, 서울에 대한 전통적인 선호 인식과 인프라 등으로 인해 여전히 위와 같은 갈등이 존재하며 전체 인구에서 수도권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서울은 노른자, 경기도는 흰자"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했으며[7], 정치계에서도 8회 지선에서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가 "서울보다 나은 경기특별도"를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인천의 경우 경기도와는 다른 인천만의 정체성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과의 대립구도에서는 경기도와 비슷한 입장에 선다. 사실 이 쪽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인식과 쓰레기 매립지 등의 문제도 있어서 어찌 보면 갈등이 더 심하다.

1.5. 서울특별시 vs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항목 참조. 이 때문에 성남시의 어르신들은 아직도 서울특별시하면 이를 간다. 다만 이 부분은 서울시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어서 갈등으로 보기도 뭐하다. 서울특별시는 서울 지하철 8호선 구성남 구간을 서울시 예산으로 건설한 등 이 일에 대해 계속 사과하고 있다.

현재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역감정이 거의 사라졌다.

1.6. 서울특별시, 경기도 vs 인천광역시, 김포시

인천과 경기 지역(특히 부천) 주민들을 서울에서 밀려난 빈민이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인천을 촌구석이라 비하한 국회의원 덕분에 감정의 골이 생겼다. 특히나 인천 서구와 김포시 일대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8]가 2025년 매립종료를 앞두고 매립기한을 늘리려는 서울과 대체 매립지 조성을 요구하는 인천, 김포 시정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9]

1.7. 경기북부[10] vs 경기남부[11]

경기도는 크게 한강북한강을 기준점으로 남부와 북부로 나뉘는데, 북쪽 지역을 한수이북으로 부르고 남쪽 지역을 한수이남으로 부른다. 게다가, 같은 수도권이면서도 경기북부는 경기남부와 서울에 비해 최전방 지역으로 인한 그린벨트로 묶여서 상대적으로 꽤나 낙후되어 있다. 하지만, 경기북부 지역의 인구는 웬만한 다른 도를 뛰어넘고 또 면적도 상당한 편이지만, 경기도 내 주요 도시들과 신도시들은 대부분 경기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경기남부는 수원, 성남, 부천, 용인, 화성 같이 인구가 7, 80만명이 넘는 준대형급 도시들이 많이 포진해있지만 여전히 경기북부는 고양, 남양주 외엔 없어 인구에서도 밀린다. 또한 기업들이 많은 경기남부에 비해 경기북부는 전방 지역이거나 서울의 베드타운이다. 인구가 100만이 넘는 고양시마저도 베드타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은 건 파주시 정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시의 경기도청 북부청사와 수원시의 경기도청 본청 사이의 행정단절 및 거리감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데, 일단 경북 남부 vs 북부 갈등에서 후술하겠지만 행정적 단절에 대해서는 공직사회에서의 불만이 크지만 경기도민들은 이 문제 인식에 둔감한 편. 198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경기북도 분도가 경기도의 지역 문제로 정부에서조차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는데, 행정적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주로 개발 소외 문제와 남북통일 대비라는 과제 덕분에 분도 논의의 생명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중.

다만, 북부 주민들 사이에서 남부와의 격차/소외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동의는 하나, 북부 안에서도 도로망, 생활권, 인근 서울 지역과의 연계성을 두고 크게 셋(고양-파주권, 의정부-양주권, 구리-남양주권)으로 나뉘기에 경기북도로 인한 이해관계[12]나 경기북도 분도 자체에 대한 시선[13]이 세 지역의 주민들의 의견차가 크게 있다. 2016년 이후로는 부동산이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북부지역의 내부 갈등이 많이 목격되는데, 테크노밸리 관련으로 의정부-양주 VS 구리-남양주 지역 갈등 구도가 펼쳐졌고, 민락2지구의 경우 7호선 역 추가 논란 때문에 양주신도시와, 그리고 구도심 vs 신도심 구도가 항상 있어왔듯이 의정부 나머지 지역과도 갈등이 제법 있는 편이다. 다산신도시의 경우에도 같은 남양주시에 있는 별내신도시와 갈등이 있는데 남양주시 및 경기도가 다산만 밀어준다는 푸념을 하고 작은 규모지만 거리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그렇지만 구리/남양주 권의 경우 다산신도시, 의정부/양주권의 경우 민락2지구가 도시 위치상으로 볼때 크게 성장하게 되고 지역 대표성까지 띠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각각 이 둘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경기북부 콩라인을 가지고 동북부 vs 북부 간 알력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물며 경기북도 분도에도 의견차가 제법 큰 편인데, 의정부,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고양, 파주, 구리, 남양주, 가평의 경우에는 적극적이지 못하고 회의감을 보이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가평군의 경우 의정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고 남양주 - 춘천 사이에 끼인 이중 생활권 문제 때문에 분도에 대해 상당히 무관심하고 반대 의사를 관 차원에서까지 밝혔으며[14] 남양주시의 경우 신도시 주민들 및 외지인들이 내키지 않아하며, 구리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해서 일부 주민들은 서울과 더욱 동질감까지 느끼는 편이다.[15][16] 일단 경기북도 등장을 내키지 않을만한 곳으로는 보통 GRDP 및 재정 면에서 우위를 보이는 고양시, 파주시 지역이며 특히 경기 서북부는 LG 디스플레이와 같은 돈줄이 충분하고 의정부권과는 교류도 적다는 점에서 분도를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뚜렷하다. 비록 최성 고양시 시장이 도지사 자리가 생긴다는 전망 등에 힘입어 립서비스 차원으로 경기북도에 호의적이었으나, 이재준 시장은 그마저도 없고 도의원 시절에 분도에 회의적인 의사를 밝힌 바가 있다.

1.8. 성남시 수정구-중원구(성남 본시가지, 통칭 구성남) vs 성남시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1

위의 비(非) 강남 vs. 강남 구도와 비슷한 소득수준 격차 차원이 다르다.

크게 광주대단지사업 때 개발된 원도심[17] 지역과 1기 신도시 지역인 분당신도시 지역으로 나뉜다. 분당신도시는 개발 당시 연일 폭등하던 강남의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한 신도시로 계획되었다. 이로 인해 고급 아파트[18], 대기업 본사 등이 분당에 위치하게 되었고 강남에 거주하던 중산층과 신흥부자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이러한 소득수준의 격차로 인해, 원도심 지역과 분당 지역은 학업 분위기, 학력, 흡연율, 음주율 등등의 많은 지표가 보여주듯이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분당의 일부 주민들은 원도심 지역에 대해 과도한 거부감 내지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19]

한편, 원도심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분당구로 오게 되면 도시에 생기가 없다는 인상을 말하는데 계획적으로 나뉘어진 도시구획과 아파트 위주의 주거공간이 번잡하지만 개성있는 원도심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이 원도심 또한 재개발이 진행 중으로 주거 환경이 급속히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 서울의 새로운 도심으로 자리잡은 강남의 핵심적인 배후지로써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제공받는 바, 이전과 같은 현격한 격차 또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생활권 측면에서도 정확히는 분당선/신분당선 등등의 교통인프라를 통해 강남구의 직접적인 배후지 역할을 수행하는 분당구와, 성남대로/서울 지하철 8호선 등등의 교통 인프라로 송파구의 직접적인 배후지 역할을 하는 수정-중원구로 이원화되어가는 모양새이다. 아울러 서울 경전철 위례신사선이 성남 본시가지 방면으로 연장되면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성남 원도심과 분당의 갈등은 한동안 일었던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의 통합을 가로막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 도시가 생활권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데, 성남시 내부 지역감정이 이런 정도이니 통합을 한들 실효성이 별로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또, 한때 분당구를 분당시로 분리독립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당장 분당구청 부지부터가 분당시청으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성남시의 항의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당이 성남시에서 독립해 버린다면, 성남 본시가지로 불리는 원도심 지역만으로는 좁은 면적과 많은 인구 그리고 낮은 세수 등등의 요인들이 합쳐저 시정이 마비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남시도 분당의 요구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어서 태평동에 있던 성남시청을 중원구와 분당구와의 경계 지점인 여수동으로 이전하여, 시정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또한 성남아트센터나 그밖에 수 많은 도서관공원들을 분당에 배치하여 구애한 결과, 독립시를 주장하는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1.9. 화성시 서부[20] vs 수원시 & 화성시 동부[21]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2

2000년대 들어 동탄신도시가 개발됨에 따라 생긴 지역감정이다. 화성 동부 주민들은 생활권이 수원시 영통구, 권선구, 용인시 기흥구, 오산시, 평택시 진위면 북부와 밀접하지만 서부는 수원시 나머지 지역, 안산시, 시흥시, 평택시 안중출장소 관할 구역과 일치하며 서로 간의 왕래도 거의 없다. 이는 교통편도 문젠데, 동부에서 서부로 가기 위해 수원역에서 환승하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할 정도이다. 시에서 이 문제를 체감했는지 최근에는 화성 서부의 대표 랜드마크인 화성시청과 동부의 대표 랜드마크인 동탄 메타폴리스를 연결하는 1000번과 1001번 버스로 대표되는 노선이 많이 증가됐다.

한 일례로, 혐오시설은 거의 서쪽에 몰려있는데[22] 동쪽 혼자 꿀빤다며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산다. 역사적으로 서부 지역은 남양군이었고 동부는 수원군이었던 이유도 큰데, 지역감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사실상 동부(병점/동탄신도시)은 최근 20년간 유입된 인구가 대부분이라서 화성시 서부에 대한 거리감이 수원에 대한 거리감보다 훨씬 크고, 실제로도 수원시청이 화성시청보다 3~4배는 더 가까운 등 여러모로 비합리적인 행정구역의 현실을 보여주는 곳이다. 자세한 사항은 화성시 문서 참고. 당장 확실히 서부인 우정읍만 봐도 수원군이었고, 서부로 분류되는 편인 향남읍도 수원군이었고, 사실상 중부로 취급하는 봉담읍은 한 술 더떠 동부처럼 시내+수원권이다. 그리고 봉담은 수원역과 가까워 태안읍(병점) 서부와 함께 수원 생활권이고, 남부 일부는 향남권이다. 애초에 송산그린시티, 태안지구, 동탄1,2신도시, 남양뉴타운, 봉담1,2지구, 향남1,2지구 등이 다 신도시이며, 인구 비중은 매우 높다.

1.10. 안양시 만안구 vs 안양시 동안구(평촌신도시)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3

면적이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평촌신도시(동안구)와 구시가지(만안구) 간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만안구는 재개발 이야기가 매년 나올 정도로 낙후된 아파트와 빌라가 많은데다, 예비군 훈련장을 비롯한 군부대까지 있는 지역이라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치안과 사창가 문제도 있다. 따라서 평촌신도시(동안구)와는 집값, 소득, 교육환경 등에서 격차가 심하다.

이러한 양극화적인 발전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안양시의 지리적인 문제가 큰데 만안구는 대부분의 영토가 산지이며 도심지는 1호선안양천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 부근(북쪽에서는 약간 동쪽도 포함)에 산지라 신도시는 커녕 아파트단지 하나 지을 변변한 터가 거의 없는 반면에, 동안구는 아예 동네 이름이 '평촌', '벌말'이었을 정도로 현 비산3동(비산3동일부)과 관양동(관양동일부)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형이 평지(논밭,과수원)였으므로 건물을 지을 터가 넘쳐났기 때문이며, 지하철도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전철 4호선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따라서 90년도에 1기 신도시로 동안구에 평촌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서 두 '구'간의 발전의 차이가 점점 양극화되기 시작한다. 2006년 부동산 폭등시기 이른바 버블세븐 시기를 거치면서 극에 달한다.

또한 대부분이 농사짓던 땅이었던 동안구와는 달리 이미 어느정도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만안구에서는 뭐 하나 지을려면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등 발전하는데 꽤 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 예시로 전 덕천마을 터에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래미안 안양 메가트리아로, 철거와 이주를 시작한 2010년경부터 완공되어 입주가 거의 완료된 2018년 현재까지 원래 주민들과 안양시 당국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그래도 노년층 시민들은 별로 지역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유로는 당시 평촌신도시는 대부분 젊은층이 유입되어 계속해서 동안구에 거주하고 만안구 주민은 계속해서 만안구에 거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동안구로 이사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다 보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원래 있다가 없어야 아는 법

청년층 시민들의 지역감정이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는 청소년도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데, 평촌에 학원가가(분당과 더불어 경기도 최대) 발달되어 있다 보니 대학 진학 수준에서 평촌과 만안구 간에 격차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은 만안구에 있는 안양외고랑 신성고가 가장 잘 가는데 이는 신성고 학생의 대부분은 동안구 출신이기 때문이다. 안양외고는 외고라는 특수성도 있고. 신성고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균적으로 동안구쪽 학교들이 진학률이 더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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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고양시 일산신도시 vs 고양시 덕양구

3기 신도시 문서(문제점 문단), 창릉신도시 문서(반응 및 논란 문단) 각 항목 참조 바람.

이쪽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10만명 남짓한 조용한 경기도 변두리의 시골 동네였어서 조용하다가 1992년 고양시로 승격하고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가 되면서 "천하제일 일산, 천당 아래 분당"[23] 소리 나올때부터 치고받기 시작했다.
  • 일산신도시 관련 갈등
    요약하자면 한적한 경기도 변두리 시골동네였던 곳에 19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를 위시한 현대적 도시를 지어놓아 생긴 일. 인프라와 재정지원과 같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은 당연히 신도시 쪽으로 집중되었으며 그 여파로 배제된 구일산[24], 원당, 삼송 일대에선 불만이 매우 많았었다. 특히 구일산의 경우에 고양 경전철 관련해서 주민들이 물리적인 충돌을 포함하여 여러 사건사고가 있기도 하였다.

    일례로 인지도 면에서도 지금은 옛말이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일산은 알아도 덕양구나 고양시 자체는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고 한다.

    고양시 덕양구의 생활여건이 나아졌지만 관산, 내유, 벽제 같이 북부 산간지방쪽 지역들은 여전히 90년대 이전 농촌 지역 상태 그대로 더 이상 개발될 여지도, 생활환경이 나아질 여지도 전혀 없어서 아직도 불만에 가득차 있는 듯 하나 인구가 너무 적고 영향력도 적어서 존재감이 없는 상태이다. 가끔 몇 년에 한두 번 꼴로 90년대 뺏어간 3호선 전철 돌리도~ 를 부르짖으며 파주 구도심과 함께 조리금촌선 등을 추진하면서 지명이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는 수준이지만 너무 낙후된 지역이라 도저히 타당성이 나오지 않으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사실 고양시 북부 농촌 지역의 경우에는 현재 시점에서는 개발수혜 보다는 도농분리시 시절의 일괄적 전환으로 인해 농어촌주민복지를 못 받는 차별을 당하고 있어서 해당 문제로 클레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대학 진학 또는 지역 공기업 취직시에도 파주시, 양주시의 비슷한 생활환경의 읍면리 동네들과 달리 농어촌전형, 지역인재전형을 쓰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인프라나 생활환경 문제에 대한 불만은 자가용이 귀하던 1980~90년대 시절에는 큰 불만거리였지만 이제는 그냥 차 끌고 20분 정도 달려서 일산 가면 되니까 잠잠해졌다.
그리고 시청이 있는 원당 지역(주교동, 성사동과 그 인근) 또한 시청이 새로 지어진 1980년대 이후 주거시설과 인프라가 갈수록 낙후되고 최근들어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다가 2023년 이동환 시장이 고양시청을 원안대로 신축하지 않고 백석동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자 덕양 지역의 큰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아무튼 이 파장은 생각보다 커서 평상시 대다수 시민들은 관심없긴 하지만 선거철 고양광역시 승격 떡밥이 나오면 항상 이참에 자치시광역시 승격 대신에 일산구는 일산시로, 덕양구는 덕양시로 일반구자치시 승격해서 분리독립하자는 1990년대 당시에도 있었던 쉰떡밥이 딸려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산신도시는 당초 분리독립을 목표로 삼았던 지역으로 1994년 개발계획도를 참조하면 현재의 일산동구청 부지는 일산시청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2022년 1월 13일부로 특례시로 지정되면서 분리승격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인구수로는 일산동구+일산서구 약 62만 명, 덕양구 약 46만 명으로 고양광역시 대신 각각 일산시와 덕양시가 되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지만 분리될 경우 특례시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므로 고양시 측이 분리독립을 허용해 줄 리가 없다.
일산덕양의 갈등은 헌혈 인프라의 차이도 만들어냈다. 일산 지역은 대한적십자사 헌혈의집(정발산역 일산센터, 대화역센터), 덕양 지역은 한마음혈액원 헌혈카페(화정역점)만 있다.
  • 창릉신도시 건설 관련: 일산신도시 VS 덕양구 내 신도시 지역(원흥, 삼송, 지축)
    다만 2020년대 현재로써는 삼송,원흥지구 개발 등에 힘입어 덕양구가 자산가치 등의 면에서 거의 따라잡았고,[25] 일산신도시가 안정화되고 화정동과 행신동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많이 생기면서 1990년대나 2000년대 중반 보다는 개발 수혜 문제나 시정 문제로써의 충돌은 확실히 분쟁이 덜해지게 되었다. 108만명 수준으로 인구가 불어나며 시 재정의 압박이 덜해지면서 이런저런 지원이 많아진 것도 있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창릉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어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대략 삼송+지축+원흥은 인프라 때문에 결사 찬성[26], 화정+행신+능곡+원당은 원론적 찬성[27], 일산신도시+주변 택지지구는 결사 반대[28], 킨텍스지구는 원론적 반대[29], 그 외의 화전+향동+덕은 및 농어촌 지역의 경우 무관심. 정확히 말하면 화전+향동+덕은은 집안일엔 관심없고 서울특별시 편입으로 고양시 탈출할 기회만 노리는 중.
반대여론이 큰 일산신도시 지역의 경우 발표 당시 중앙로 가두행진시위 및 국토교통부 장관(당시 김현미) 집무실 점거를 시도할 정도였다.
다만 덕양구 내 신도시 개발로 인해 덕양구 내 분구 가능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1.12. 남인천[30] vs 동인천[31] vs 서인천[32] vs 북인천[33][34]

역사적으로는 각각 인천도호부, 부평도호부로 서로 별개의 지역들이었다.[35] 물론 인천은 일찍이 도시화되어 지자체가 통합된 농어촌 지역처럼 양 지역간의 지역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나 큰 이질감은 없다. 부평권에 거주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1940년 인천 편입 이후에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부평권에서는 인천시의 남동구&연수구 위주의 개발(송도국제도시, 구월동, 논현지구)을 좋게 봐줄수는 없는 상황. 부평권 주민들은 같은 인천광역시인 원인천과의 왕래만큼이나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경기도 부천시와 왕래가 잦다.[36] 문화생활을 즐길때도 부평권 주민들은 부평역 인근[37], 원인천 주민들은 구월동으로 간다는 것도 큰 차이점.

1.13. 인천광역시 vs 부천시

부천시와 인천광역시는 인접한 지방자치단체인데 시정끼리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단 참조.

2. 강원

2.1. 춘천시(영서 북부) vs 원주시(영서 남부) vs 강릉시(영동)

춘천(영서북부) vs 원주(영서남부) vs 강릉(영동)

강원도는 애시당초 태백산맥 때문에 영동영서라는 별개의 지역심이 강하게 유지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신기한 점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옛 한국어의 흔적이 많이 남는 형태이다. 또한, 같은 영서 지역이라도 영서 북서부[38], 북동부[39], 중부[40]와 영서 남부[41]도 언어가 약간 다르며 미묘한 문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영동의 최대 거점도시였던 강릉시는 영동을 대변하기 위해서, 원주시는 영서 남부 및 전통적으로 충주시와 함께 중부지역의 핵심 거점이었고 조선 시대 때는 강원도 감영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춘천시 역시 대대로 영서 북부의 거점 도시여서 통일신라고려 시대주(州) 치소가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강원도청 소재지인 점을 내세우기 위해 이들 세 도시간의 견제심이 고무적이다. 또 춘천은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성장 동력을 모두 원주시에게 뺏겨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강원특별자치도/역사 문서 참조. 미래에는 철원도 지역 중심도시의 역할이 부활하여 싸움에 재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강원도는 춘천, 원주, 강릉이 트로이카 노릇을 하고 있고, 실제로 선거철에 강원도 정치 판세를 분석할 때 이 세 도시들이 표심을 좌지우지 하는 big3 지역으로 표시되고는 한다. 일명 강원도 3대도시. 특히나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한 정치 진영이 강릉(영동)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면 대체로 다른 진영에선 춘천(영서 북부) 또는 원주(영서 남부) 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는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42]

춘천 원주 강릉이 강원도 선거에서 맨날 박터지게 싸우다가 최종적으로 정선군에서 이기는 사람이 강원도를 먹는다. 그래서 춘천 원주 강릉 백날 싸워봐야 의미없고 강원랜드(정선에 있다)가 진짜 강원도 정치 신탁의 장소라고 부른다.

물론 정치력 결투에서나 세 도시가 삼파전을 벌이는 양상이지, 실제로는 춘천 vs 원주가 가장 심하고 원주 vs 강릉도 약간씩 존재하나 현시점에는 사실상 없는 편이고, 춘천 vs 철원은 일제강점기에 갈등이 컸으나 6.25 전쟁으로 철원이 큰 피해를 보게 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춘천 vs 강릉은 1920년대 강원도내 고등보통학교 유치전 이후 그냥 남남 관계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주는 춘천과 사이가 나쁘고, 강릉은 춘천을 가느니 원주가 훨씬 가까운 관계로 원주와 강릉이 서로 춘천에 뺏기느니 각각 강릉 또는 원주에 뺏기는 게 낫다 하는 때도 있다는 것.

춘천과 원주는 1888년 춘천이 유수부로 승격되어 도관찰사 사무에서 이탈하고, 1895년 23부제 실시 후부터 강원도의 수부도시 자리를 가져가면서 1896년 13도제 실시 당시 원주 지역 유생들이 집단상소를 올린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원주가 쇠락하고 경원선 철도가 부설된 철원이 발전하면서 도청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춘천에서는 군민 1만 명이 집회를 벌이며 반발하였으며 결국 총 12만 주 중 춘천에서 6만 주를, 가평, 화천, 양구, 인제, 홍천에서 합 4만 5천 주를 매입하여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세워 1939년 경춘선을 부설하기에 이르렀으며 경춘철도 부설 이후 춘천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1940년 강원도청이 전소 후 신축할 때에는 반발이 없어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삼팔선이 지나가는 춘천이 최전방이 되어 1951년부터 원주에 강원도청 임시청사를 두었는데, 정전 이후인 1953년 8월 도청이 다시 춘천시로 돌아가자 원주군에서는 도청 간판을 들고 야반도주했다며 도지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대대적으로 반발하였다. 이 사건은 이후 '도청간판 야반도주사건'이라고 불리며 일부 원주시민들이 춘천에서 도청을 전쟁 이후 빼앗아갔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후 2005년 혁신도시 선정 과정에서 선정위원회가 춘천 10명, 원주 6명, 강릉 3명을 선택했으나 춘천, 강릉을 1위로 꼽은 심사위원들과 달리 원주를 1위로 꼽은 심사위원들이 죄다 점수 차등을 20점 이상으로 주면서 춘천에서는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춘천종합운동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등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고, 강릉 역시 이때 영서-영동 분도론을 꺼내들며 엄청나게 반발했었다. 50년 간 서로 거의 엮일 일이 없었던 이 세 도시는 이때부터 원주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원주와 강릉 간에는 2014년 원주의 아이스하키 경기 유치 시도 이외에는 서로 별 악감정이 남아있지 않으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발판으로 성장해서 춘천의 시내 인구를 뛰어넘은 원주가 주요 도급 행정기관의 이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특히 2019년 강원도청 재건축 결정 당시 원주시의회에서 강원도청 이전 공론화를 요구하면서 다시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물론 원주시의회가 도청을 원주로 옮기자고 한 것도 아니고 원주시의회에서만 공론화를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43] 춘천 입장에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춘천은 일제가 춘천에 철도가 없다며 도청을 경원선이 있는 철원으로 이전하려 하자 춘천 유지들이 경춘선을 지어버릴 정도로 도청에 대한 사수의지가 강한데, 원주시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버린 것. 반면 춘천과 강릉은 서로 영 연관이 없는 지역이다보니 사실상 남남으로 사는 상태이다.

다만 사람들끼리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 편. 아무래도 강원도민이라는 동질감이 약간은 있는 모양새다. 서울 같은 타 지역에서 만나면 티격태격대면서도 항상 붙어다니는 경향을 보인다.

2.2. 철원군 vs 구 김화군

구 철원군 지역: 철원읍(+묘장면, 내문면, 북면), 동송읍(+어운면), 갈말읍 (+평강군 남면 정연리)
400.89㎢, 33,926명
구 김화군 지역: 김화읍, 서면, 근남면,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 + 김화 생활권인 갈말읍 지경리, 토성리
490.71㎢, 12,609명

현재의 철원군 지역은 과거의 철원군김화군이라는 2개의 독립된 군[44]이었다. 그러다가 8.15 광복 이후 북한 지역(삼팔선 이북)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이 38선 이북으로 북상하여 휴전선을 그으면서 철원군과 김화군 모두 두동강이 나 버렸다.[45]

대한민국에서 수복한 철원군과 김화군 지역이 1963년 병합되었고[46] 신서면연천군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철원군이 되었고, 북한 쪽의 철원군은 현재도 철원군이며(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은 근처 군에서 빌려온 것이다) 북한 쪽의 김화군은 김화군과 창도군으로 쪼개졌다... 지못미 김화군. 다만 김화라는 명칭은 현재도 철원군 김화읍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철원군의 경제 중심은 동송권 & 갈말권 두곳인데, 김화권 지역 인사들이 철원지역에서 파워그룹을 형성한 탓에(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 국회의원 한기호 & 군의회 & 철원군수 이현종 등등)[47] 안그래도 철원권 & 동송권 & 갈말권 주민들은 김화권 주민들을 거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적대하고 김화권 주민들은 나머지 권역 철원주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서 선거 때마다 이런 소지역주의가 발동하곤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인구수가 훨씬 적은 김화권이 이기냐 하면, 우선 보수세가 영서지방에서 가장 강한 철원에서도 김화권의 보수세가 강하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후보가 대부분 김화권 출신이기도 하고, 철원권 내의 힘싸움에서 인구수 때문에 밀린데다 김화권과 교류가 많은 신철원이나 문혜리 등의 갈말권에서 김화권을 지지하는 경우가 꽤나 있기 때문이다.

철원 지역에서 군대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나 철원 출신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철원 & 동송 & 갈말 지역과 김화권 지역은 주민들의 정서도 완전히 다르고 김화권 주민들이 유난히 보수적이고 깐깐하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 와수리에서 "철원 주민 여러분~" 이라고 하면 "여기 김화인데요..." 라는 답변이 100%의 확률로 돌아온다. 젊은 사람들끼리는 지역감정이 없다고 한다. 강원도의 국립대에 다니는 철원 출신(와수리, 동송)사람들이 직접 증언해줬다.

동송권 & 갈말권과 김화권이 나누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강원도청 소재지인 춘천시보다 경기도청 북부청사 소재지인 의정부시가 대체로 가깝다.
구철원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65km, 1시간 10분
구철원 ~ 강원도청 약 85km, 1시간 45분
신철원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55km, 1시간
신철원 ~ 강원도청 약 80km, 1시간 35분

다만 김화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김화 ~ 강원도청 약 70km, 1시간 20분
김화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75km, 1시간 15분
철원권에서 경기도청 북부청사로 가는 게 35분 빠르다. 다만 김화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도역이 크고 도시들은 완전히 분산되어 있는 강원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48], 전쟁으로 지역 중심도시 능력을 잃어버린 철원에서는 경기도 편입 떡밥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려 때부터 수도 근처에 있는 도시였기도 하고. 그래서 법원, 검찰, 세무 업무는 모두 의정부지방법원, 의정부지방검찰청, 포천세무서에서 담당한다. 따라서 철원, 동송, 갈말권에서는 실생활권이 경기북부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도로 편입하자는 떡밥이 돌기도 한다.

다만 이것은 일제강점기 도내 최대 읍이었으며 1944년 당시 강원도 제2의 도시였던[49][50] 철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당시 경원선이라는 주요 간선을 끼고 있던 철원권(철원, 김화, 평강, 이천, 회양)은 서울과 원산 사이에 끼여 춘천권(춘천, 화천, 양구, 인제, 홍천)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던 생활권이었기 때문이다.

군민들 여론은 철원, 동송, 갈말에서는 경기도 편입을 바라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반응이 시큰둥한데다 강원도는 철원군을 그렇게 홀대하고도 철원이 경기도로 가는건 필사적으로 막고 철원군민들 사이에서도 김화권 주민들은 경기도 편입을 반대해서 철원 & 동송 & 갈말권 주민들과 싸우기도 한다.

현재는 김화 지역에서도 편입 여론이 높아져 있다. 다만 여전히 존치여론이 훨씬 많다.[51] 김화권과 화천군간 도로의 경우 빗길에 다니기 위험하거나(56번 국도 수피령) 민통선 안에 있어서 낮에만 다닐 수 있거나(5번 국도 말고개)하지만, 유일한 활로가 463번 지방도 하오터널[52]이다. 다만 중간중간 산양리, 다목리 등의 마을은 김화와 매우 가까운 편이다. 화천은 지나지 않더라도 길의 선형이 나쁜 편은 아니고 사실 김화와 화천을 오갈 일도 별로 없으며 춘천 시내까지 1시간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특히, 경기도 편입 논란은 소지역주의가 배타적으로 강한 케이스다. 자세한 것은 행정구역 개편/강원철원군 문서 참고.

2.3. 이외

이외에 강원도에서 소지역주의가 나타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본래 조선시대 낭천현이었던 지역과 1954년 춘성군에서 넘어온 사내면 간의 지역감정. 두 지역은 서로 간의 왕래가 거의 없고, 춘천 생활권이라는 접점만이 있다. 사내면의 인구가 약 7,000명이고, 간동면을 제외한 나머지 화천군 지역의 인구가 거의 16,000명임에도 이 두 지역을 잇는 시내버스는 2000년대 후반에야 생겼을 정도. 일 10회 정도 다니나 그마저도 거의 비어서 다닌다. 애초에 화천에서는 놀러갈 일 말고는 사내면에 갈 이유가 없고, 사내면에서도 화천군청이나 화천경찰서를 가지 않는 이상은 시내를 갈 일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양 지역 간의 갈등이 있었다. 군 체육대회를 하면 화천고등학교 vs 화천실고 (현 화천정보산업고등학교) vs 사내고등학교 간의 3파전이 벌어지다 화천고나 화천실고 중 하나가 탈락하면 화천 시내의 학교를 응원하며 화천 vs 사내 대결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동네 사람들 역시 서로를 별로 안 좋아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인제역 위치 논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두 지역은 위와는 달리 상당히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서 지역감정이 생기는 경우. 인구규모 등이 대등하기 때문에 서로 위의 화천 vs 사내처럼 자존심 싸움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고, 상대 지역에 시설이 생기는 경우 그것을 자신의 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3. 충북

3.1. 충주시 vs 청주시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청도(충북도)의 유력한 도시로써 충청도의 이름 유래부터 충주랑 청주를 합친 것이다.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을 벌여봤는데 과거에 도청이 충주에 있었다가 청주로 이전했기 때문에 충주 사람들은 청주 사람들을 도둑놈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2014년 청주시가 청원군과의 통합으로 충북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몸집을 불렸고 충주시를 비롯한 충북 북부는 개발이 부진함에 있어 소외되고 있다. #

3.2. 충주시 vs 제천시

충주시제천시의 관계도 별로 좋지 않다. 충주호의 이름을 가지고 싸움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충주시는 충주시에 댐이 있으니 충주호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주장하며 제천시는 제천이 더 수몰지역 면적이 넓고 충청북도는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며 청풍호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충주사람과 제천사람이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단골 소재로 오르는 내용이 충주호가 맞냐 청풍호가 맞냐는 내용이다.

하지만 두 지역 간 교류가 거의 없는 관계로 별로 두드러지는 지역감정은 아니다. 제천에서는 충주보다 원주가 더 가까운 데다 도시 규모도 원주가 더 크기 때문에 충주로 갈 일이 별로 없고, 충주도 자기네보다 더 작은 도시인 제천에 갈 일이 잘 없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고개 두 개는 덤.

3.3. 음성군 vs 진천군

충북혁신도시를 기점으로 혁신도시가 위치한 음성군과 진천군 사이의 행정문제 해소를 이유로 음성군이 음성과 진천이 시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진천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아직은 못먹는 감 찔러라도 보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충북혁신도시 내에서는 통합 안되면 충북혁신도시가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3.4. 증평군 vs 괴산군

증평군은 옛날에 청안군이라는 이름이었다가 일제강점기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생활권이 워낙 달라 지속적으로 독립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마침내 2003년 괴산군에서 분리되었다. 독립 이후 증평군은 청주시, 대전광역시, 경기도와의 가깝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산업단지 유치 성공, 청주의 위성도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괴산군은 불리한 입지로 인해 계속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괴산군이 충주시와 가깝다고 해도 교통의 불리함으로 인해 산업단지 유치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서 증평군과 다시 통합하려고 한다. 당연히 서로의 입장차가 크므로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다.

3.5. 청주시 vs 충청북도

청주시는 예전부터 광역시를 요구했었고, 이마저도 인되자 특례시를 요구를 했었다. 청주시의 대도시 특례 지정을 놓고 청주시를 제외한 나머지 충북 지자체들이 반대했으며, 이시종 충북도지사 역시 반대했다. 결국 특례시 기준이 인구 100만명으로 지정되었고 청주 자체적으로도 특례시 기준을 채울 수 있는 인구 도달은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도출하여 불발로 끝났다. 청주시는 충북에 50% 이상의 세금을 반납하고 38% 정도밖에 안되는 예산을 받고 있다.

3.6. 충청북도(청주시) vs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제천시, 단양군

충북의 중요한 인프라가 청주에만 쏠려있어 인프라가 약한 지자체들이 충청북도(특히 청주)를 매우 싫어한다. 오죽하면 제천은 단양과 함께 강원특별자치도 편입을, 옥천군과 보은군, 영동군은 경북이나 충남 편입을 요구할 정도다.

4. 대전, 세종, 충남

4.1. 천안시, 아산시 vs 충청남도

충청남도 내 대부분의 인구와 경제력, 인프라는 경기도와 붙어있어 수도권 규제로 인해 성장하기 시작한 충남 북부의 천안시아산시에 집중해 있다. 그나마 수도권 인접지역이라는 측면에서는 천안, 아산과 비슷한 상황인 서산시, 당진시서해대교 개통 이후로 수도권과 육상으로 직접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산업단지를 많이 유치하여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홍성군, 예산군충청남도청유치했지만 이 지역들도 아직 천안, 아산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고 나머지 서해안 지역은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거 이외에는 이렇다 할 발전동력이 없어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비록 과거에 비해서 충남 서해안이 발달됐다고는 하지만 도시 인프라 발전은 여전히 미약한 상태로, 과거 산업화 시기는 물론 최근까지도 북부에 더 많은 개발이 있었다. 천안시, 아산시는 여전히 여타 충남 지역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53] 그나마 서산시와 당진시가 조금 사정이 나을 뿐 나머지는 거의 허허벌판과 다를 바 없다.

충남 북부는 다른 충청도 지역보다는 수도권과의 교류가 더 많으며, 특히 천안시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다니고 수원이 대전보다 더 가깝다. 충남 북부와 남부는 지형적으로도 삽교천과 차령산맥으로 지리적으로 꽤 크게 갈라져 있기도 한 데다 충남 북부는 천안, 충남 남부는 대전으로 중심 도시도 다르기 때문에 충남 북부와 충남 남부는 교류를 하지 않으려 들고, 알게 모르게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4.2.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 vs 천안시 & 아산시

후삼국시대 고려와 후백제 간의 충남 내 경계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지역번호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내포-천안권은 300~600번 국번을, 남부는 700~900번 국번을 사용하며, 세종은 044를 쓰기 이전에는 공주와 같은 041-800번대를 썼다. 그리고 대전과 천안은 각각 남부와 북부의 중심도시로 충남 지역의 패권싸움을 두고 경쟁해온 터라 사이가 그리 좋지는 못했는데, 충남도청 이전, 야구장 신축, 3차 종합병원 선정, 호남고속선 분기역 선정 관련해서 두 도시간의 갈등이 제대로 터져버렸다.

충남도청 이전이 결정된 이후 천안에서도 충남도청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접근성 문제와 형평성으로 인해 반려되었다. 천안 생활권인 홍성과 예산 경계지에다 내포신도시를 만들기는 했으나[54], 이것으로 인해 한때 천안과 대전 사이의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다.

야구장 관련해서도 두 도시가 갈등했다. 기존 한화 이글스 홈구장은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에 있는데, 한화그룹 측에서 천안에 제 1홈구장을 만들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것. 한화그룹의 발상지가 엄연히 천안인만큼 연고도 있었지만, 문제는 야구팬 규모나 수요, 접근성으로만 봐도 대전의 압승인데다가 천안이 야구장 예정 부지에다 시민 야구장을 지어놓고는 관리 소홀로 인해 한화그룹이 손을 뗀 것.

3차 종합병원 선정은 천안의 욕심과 대전 관내 대학병원의 삽질의 혼합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다. 당시 3차 종합병원은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대학병원 중 일부는 2차에 머물러야 했는데[55] 대전/충남 지역의 경우 대학병원이 5개나 있어[56] 2개 병원은 2차 병원에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충남 북부[57]보다 남부[58]가 인구가 1.5배정도 많으므로 천안에 1개, 대전에 2개 배정되는 것이 정상이다.[59] 그러나 대전 관내 병원인 건양대학교병원과 대전을지대학교병원이 소모전을 벌이다가 그 와중에 천안에서는 행정력을 발휘해[60] 관내 병원 2곳을 모두 3차병원으로 배정해버렸다. 그 때문에 의료 불균형이 생긴 것은 덤.

호남고속선 오송역 분기 역시 두 도시의 마찰과 충남도청의 입지 때문에 그런 것이 크다. 당시 충남도청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 전이라서 대전 한복판에 있었다. 거기에 충남도청 소속 공무원이 대부분 대전과 대전을 배후로 하는 시군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던 것. 그러니까 충남도청을 밀어주면[]여기서 충남도청을 밀어준다는 것은 천안아산역 분기를 추진하는 것이다.] 정작 도청 공무원들은 지역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충남도청은 천안아산역 분기, 대전광역시청은 대전역 분기, 충북도청은 오송역 분기를 주장했는데, 천안아산역 분기는 소요시간과 선형이 좋았지만 문화재 보호와 대전과 전주 수요를 놓치는 문제가 있었고, 대전역 분기는 반대로 대전과 전주 수요는 잡을 수 있고, 문화재 보호도 문제가 없지만, 소요시간과 요금이 문제였다. 그렇게 충남도청과 대전광역시청이 소모전을 벌일 때, 오송역 분기는 어부지리로 호남고속선 분기역에 선정되었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게 되었다.

충청권의 절대맹주인 대전 입장에서는 천안을 위시로 한 북부가 경기와 충청 사이에 껴서 은근히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영 좋지 않았고, 반대로 천안 입장에서는 대전이 천안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해 준 적도 없으면서 자꾸 간섭하려는 모양새로 비춰진다는 듯. 다만 천안도 수돗물 관련해서는 무조건 대전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금강 상류인 대청호 면적의 절반 이상이 대전 소유이기 때문.

물론 충남 북부와 남부의 다툼은 대전•세종•충남 vs 충북 구도보다는 훨씬 약하긴 하다.

4.3.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 vs 청주시

대전과 세종은 오송역에 대해서는 서로 한마음이 되어 청주시와 오송역을 깐다.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안에 대해 청주는 패싱하고 청주공항만을 편히 이용하고자하는 목적이 달성된 대전과 세종은 자축하고있다. 청주를 위시로 하는 충북에서는 당연히 적극 반발하며 충청이라는 이름을 광역철도에서 빼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 광역철도 역시 인터넷상에서 대전, 세종 및 청주 시민들끼리 개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전이 독단으로 청주국제공항의 명칭 변경을 제안하여 논란이 되고있다. 충북에서는 청주국제공항의 명칭 변경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4.3.1. 대전광역시 & 세종특별자치시 & 천안시 & 아산시 & 공주시 vs 청주시

충남권과 충북권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듯이, 이 지역들은 오송역 관련 문제에서만큼은 서로 한마음 한뜻이 된다. 오송역으로 인해 경부고속선호남고속선의 분기역을 놓친 대전과 천안/아산, 그리고 오송역으로 인해 철도 접근성에 괴멸적인 피해를 본 세종시와 공주시가 오송역에 반감을 가진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 혹은 CTX의 노선에 대해서도 대전과 세종은 오송역과 청주국제공항 이용이 목적이기에 청주 도심 통과 반대를 해왔고 청주와 충북은 지속적으로 도심 통과를 요구해왔다.

5. 부산, 울산, 경남

5.1. 부산광역시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vs 그 외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

2000년대 들어서 부산광역시 내부에서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과 나머지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인 격차가 커지며 점점 두 지역 사이에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중이다.

일단 다른 지역에서 생각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나 명소들이 대부분 해운대구나 수영구 일부에 몰려 있기에 해운대가 부산의 정체성을 독차지한다는 다른 지역들의 불만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당장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보통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부분 해운대, 광안리, 광안대교, 마린시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구도심의 명소 중에도 알려진 장소가 꽤나 있었으나 최근에 들어서 부쩍 해운대광안리 일대의 장소들만 유명하게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해운대와 수영구 일대만을 둘러보고[62] 부산을 다 둘러보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동부산 지역은 여름철 대규모 피서객을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이 많고, 또한 그에따라 숙박업소나 음식점, 유흥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하기에 더더욱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동부산 권역으로 집중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관광객의 방문이 해운대 권역에 집중되게 되고 이는 각 지역 상인들 사이의 소득에 있어서 차이를 유발하며, 또한 부산시의 지원도 해운대구와 동부산 해운대 권역 일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제적 격차도 크게 작용한다. 모든 해운대 권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운대권에는 마린시티, 센텀시티와 같은 부산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높은 가격의 상류층 주거지가 많다. 또한 전통적인 부촌으로 유명했던 수영구 남천동, 광안동 일대와 대단위 아파트들이 개발된 남구용호동 일대, 해운대 신시가지도 입주한 지 20년 정도 된 아파트들만 있지만, 신시가지로 개발된 지역이라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며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학군도 좋다고 알려진 편이기에 집값은 부산에서 비싼 편은 아니라도 충분히 평균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전체로 보아도 이들지역은 동래구와 함께 부산에서 평균 이상의 집값을 보이는 편이다. 즉 해운대 권역 지역이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고소득층, 중산층 거주자가 다른 지역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시설이나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발생하는 큰 격차가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63][64]

게다가 이러한 부의 격차나 지명도의 차이에 따라 부산광역시가 지나치게 해운대 권역 및 동부산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점이 지역감정의 가장 큰 발생 원인이다.

실제로 허남식 前 부산시장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월 25일 부산 사하구 갑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이 허 前 시장이 재임 중 서부산을 홀대해놓고는 사하구에서 국회의원을 하려 한다며 기자회견장으로 쳐들어가 시위를 벌였으며, 같은 당의 경선 경쟁 후보도 이에 편승해 허 전 시장을 비판했다.관련 보도. 결국 허남식 前 시장은 경선에서 김척수 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되었으며[65], 김척수 후보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후보에 밀려서 낙마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부산광역시 내부에서는 허 前 시장의 재임기간 동안 지나치게 동부산 해운대 권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서부산을 홀대했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5.2. 부산광역시 vs 울산광역시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댐의 물의 부산 공급 문제, 현 부산 강서구 영역인 낙동강 서부 지역의 지역 환원 문제, 김해국제공항 명칭 변경 문제, 부산신항 명칭과 관할구역 조정 문제,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 등으로 자주 다툰 사이다. 특히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면에서는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 후보가 양산시의 부산편입을 주장하자 홍준표 당시 경상남도지사가 자신의 선거유세에서 부산의 상수원을 틀어막겠다며 반발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동남권 광역환승할인을 부산 중심의 제도로 보고 참여에 퇴짜를 놓은 울산의 사례가 있다.

부울경의 메가시티를 구축하기 위해 제안된 부울경특별연합도 울산과 경남에서는 부산 중심의 통합으로 보고 실익이 없다고 결론내려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5.3. 서부경남 vs 동부경남

전통적으로 경남의 중심도시는 서부경남에 있는 진주였고 원래 경상남도청도 진주에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부산에게 경상남도청을 빼앗기고 1960년대부터 부산을 위시한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조성으로 부산, 울산, 창원 등 동부경남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된 반면 서부에는 이렇다 할 만한 발전이 없었고, 1983년 경상남도청을 다시 이전하게 될 때에도 재유치 노력은 했지만 도청은 동부에 있는 창원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동서간 격차가 크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나마 진주는 경상남도청 서부청사와 혁신도시를 받아내서 어느정도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서부는 동부에 비해서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2027년 개통 예정인 남부내륙선 건설에서 노선 변경 문제로 창원과 진주 간 갈등이 있었으나 다행히 이쪽은 창원이 자기 주장을 접으면서 기존 노선으로 확정되었다.

이 문제는 단순 경남의 동서 지역갈등이 아닌, 부울경의 종주도시인 부산의 위치와 애매한 역내 영향력[66]도 영향을 끼쳤다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경상남도 자체가 부산과 가까울수록 발전한 역사를 미루어보아[67] 이는 어마어마한 동서 사이의 격차에 따른 폐해에 가깝다.

이러한 지역 갈등의 자매품으로는 대구vs안동[68], 광주vs순천[69], 대전vs천안[70] 등이 있다.

5.4. 사천시 삼천포 vs 구 사천군

1956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삼천포시로 분리 승격되었다가 1995년 도농통합 때 다시 통합되었으나, 통합 당시에도 삼천포 주민들이 시명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고 2014년 기준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 타 지역 사람들이 사천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삼천포 지역은 삼천포에서 왔다고 하고, 사천 지역은 사천에서 왔다고 한다.[71]

사천시청은 허허벌판인 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유는 사천과 삼천포가 시청 유치로 아웅다웅하면서 결국 중간 지점에 세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매 선거 결과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2010년 지방선거와 삼천포 출신 후보와 사천 출신 후보의 지역간 득표율을 보면 삼천포 출신 후보는 동 지역에서, 사천 출신 후보는 읍면 지역에서 모두 우위를 보였다.
2011년에는 사천 부분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삼천포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을 표출하는 낙서가 곳곳에 발견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문제는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지역감정이 사그라든 흔적이 보인다.

5.5. 창원시 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옛 마산시) vs 성산구 + 의창구(옛 창원시)vs 진해구(옛 진해시)

지방자치단체 통합이 쉽지 않음을 보여 주는 예. 역사성, 생활권, 지역 간 밀접성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통합의 필요성이 높게 보였던 창원이 여러 잡음을 일으키면서 여타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72]

일제강점기 전까지 한몸이었던 창원부가 국권 피탈 후 마산부로 명칭이 변경되고 비도심 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한 이후 옛 마산시는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며 큰 도시로 성장했고, 경상남도 및 남부지방 전체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지만, 옛 창원시 지역은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러다가 한국 최초로 계획도시로 지정되어 공단이 들어서고, 마산이 원조 경상남도청 소재지인 진주와 도청 이전 싸움을 벌였으나(이전에는 부산에 있었다), 결국 창원시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에 있던 한국은행 마산지점을 비롯해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등 공공기관들이 모두 창원으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시에서 창원시로의 인구 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인구 역전 현상이 일어나 마산은 창원은 물론 김해시에게도 뒤지게 되었다.

통합당시 진해 쪽에서는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유독 창원과 마산 사이에서 잡음이 많았다. 결국 정치적 요인에 의해 2010년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하게 되었다. 통합 합의에 의해 창원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마산시, 진해시에게 창원시 측에서 지원금을 주는 형태로 합의했다. 즉 창원시는 명예를 택하고 진해, 마산시는 실리를 택한 셈.

그리고 창원시에서는 마산이라는 명칭을 유지해 달라는 마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거 마산시에서 폐지되었던 구 이름에 '마산'을 붙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라는 이름으로 구를 신설했다. 그러나 통합 창원시청사 위치 문제, 창원에 새로 유치한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주경기장 위치를 지역적 안배라는 이유로 진해에 지을 뻔한 일 등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마산 지역을 재분리하자는 건의가 통과되었으나 중앙정부가 절대 동의할 일이 없어 흐지부지된 상태.

한편, 구 진해시와 구 창원시간의 간극도 심화되었다. 과거 창원시의 경우 방위산업과 백색가전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세수가 높았고 구 진해시는 해군기지로 인한 서비스업, STX조선을 통한 산업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해군이 기지를 부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진해의 세수 부족으로 적자기조를 보였었다. 이후 부산북항이 폐쇄되고 진해와 중첩된 부산신항으로 물류가 이전이 되자 진해에 산업기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신항의 행정구역 문제로 잠시 갈등이 있었을 때 나왔던 내용이 진해를 부산으로 편입하는 방안이었다.

이후 창원-마산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창원시의 선심성 예산으로 마산으로 재원이 돌려지자 진해구 시민들의 갈등이 쌓여갔던 것이다. 진해구민들은 부산신항으로 인해 세수와 고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통합창원시보다는 독립하거나 부산시로 편입하는 것도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73]

마산 지역은 과거 '마산연합'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연합체계를 이루었는데(과거 200점 만점에 180점 이상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과거 마산이 경남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였을 때 연고 학교들이 연합고사 형태로 치렀던 것에 기인한다. 반면 옛 창원 지역은 80~90년대 계획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인문계 학교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정치/경제적인 학연구성이 약했다. '창원 특수지역' 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마산 지역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었다. 이 학교들은 공립, 사립을 불문하고 연합체계가 아니라 학교별로 학생을 선발했다.(그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옛 창원 지역에 위치한 창원고등학교경상고등학교는 처음부터 이 마산연합에 속했다. 나중에는 공립인 창원중앙고등학교창원여자고등학교가 합류) 하지만 2000년 이후 지역경제 주도권이 마산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면서 마산연합의 지위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 갔다.

1990년 초기 이 학교들을 한데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마산 지역이 극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창원과 마산을 아예 분리하여(창원시 소속인 창원고, 경상고를 창원으로 보내고) 연합을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었지만 여기에 마산이 또 반대했다. 이유인즉 마산의 상권이 죽어버린다고... 통합 이후 학군도 합쳐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분리 상태로 평준화 지역인 창원학군, 마산학군 지역 학생은 서로가 다른 지역으로 지원하는 게 불가능하다. 반면 진해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아 있어 마산, 창원 지역으로 지원 가능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는 경남교육청이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학교를 신설하는 대신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가포고등학교'를 의창구 북면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가포고 동창회 및 지역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5.6. 창원시 vs 경상남도

창원이 대도시인 것은 인정하나 현재로써는 광역시, 즉 시 승격은 사실상 어렵다.
- 행정자치부
창원시를 창원광역시로 승격시키는 것이야말로 부산, 울산, 창원을 통틀어 세 광역도시를 통해서 영남권의 발전이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자 창원시민들 모두가 더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안상수 前 창원시장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경남도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경남도민 모두를 기만하는 반역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부산이나 울산도 경남에서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떨어져나갔는데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경남에서 이탈하려는 그거는 도지사로서 절대 반대합니다.
- 홍준표 前 경남도지사

창원광역시 승격을 두고 창원시와 경상남도 그리고 창원을 제외한 경남 관할 시군간의 갈등과 분쟁이 심했다. 창원시는 창원은 광역시급에 가까운 거대도시가 되었으니만큼 창원을 경상남도에서 분리해 광역시로 승격하겠다는 굳고 틀림없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면 창원이 자치적으로 시정을 볼 수 있고 경남도의 지휘없이 창원시 독자적으로 행정을 볼 수 있다는 점과 기존 부산, 울산광역시와 삼벽을 이루며 부울경의 거점도시로 성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경상남도는 절대적인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상남도 입장에서는 한때 경남 관할이었다가 1961년과 1997년에 각각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 및 광역시로 승격한 부산시와 울산시의 사례와 창원시가 현재 경남도청 소재지이자 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만큼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반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창원시와 경상남도간의 갈등이 생기게 되었으며 신경전으로까지 가게 되었다.

여기에 경상남도와 함께 창원시를 제외한 나머지 경남 시군들도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부산시와 울산시가 광역시로 분리되었던데다가 창원시가 경남도에서 광역시로 분리될 경우 창원과 경남 시군간의 시경계 지정문제, 창원 - 주변 경남 시군간 교통망 문제, 해수로 및 어로 경계문제, 농지 경계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차등화되는 가능성이 높아서 경남도민 및 경남 시군민의 행정적, 경제적 부담도 커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산과 울산이 경남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도 경남도의 도역이 줄어졌던 적이 있으며 울산시가 분리되면서 경남도는 동해안 남부지역과 경북 경주시와의 시도 경계선 등을 상실하게 되어서 현재는 남해안 지역을 관할하는 도가 되었다.

거기에 창원시가 광역시로 분리되면 경남도는 지금 남아있는 창원시 몫의 바다와 항구, 어촌 등도 모두 상실하게 된다. 바다 뿐 아니라 창원시 몫의 농촌 및 농토, 도시, 주거, 교육, 행정도 상실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경남 시군들 역시 창원시가 광역시로 분리되면 경남도의 행정망, 교통망, 치안망, 해안망 등이 앞으로 달라지게 될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과거 부산시와 울산시가 분리되었을 때도 경남도의 별개의 행정구역이 되었던만큼 교통망에서는 경남도가 따르는 요금제가 아닌 부산과 울산의 독자요금에 따라서 적용되었기 때문에 시계외 요금이 추가되어서 창원시마저 광역시로 분리되면 앞으로 경남도에서 지시하는 교통 요금제가 아닌 창원광역시 독자 요금제에 따라 시계외 추가요금 등을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생긴다.

교육에 있어서도 지금은 창원이 경남도교육청 소속이지만 창원광역시가 되면 창원광역시교육청을 통해서 경남 교육과 차별, 차등화된 교육을 지향할 가능성도 있다.

치안도 지금은 경상남도경찰청이 창원까지 모두 관할하고 있지만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면 창원광역시경찰청이 독립체제로 창원광역시만을 관할하게 되기 때문에 경남경찰 입장에서는 창원이 광역시가 되면 창원 지역을 관할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창원에 있는 경남도청 이전문제 역시 빠질 수 없다. 경남도청은 부산에 있었다가 1961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해 경남도에서 분리됨에 따라 도청을 창원시로 이전했다. 그러나 현재 창원마저도 광역시로 분리된다면 경남도청은 다시 이전이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남도와 경남 시군들의 입장에서는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그리 반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혼자만 잘 살려고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결국 안상수 시장의 후임인 허성무 前 시장이 광역시 추진 중단을 선언하면서 무위로 끝났다.

6. 대구, 경북

6.1. 수성구 vs 대구광역시[74]

서울의 강남 vs 비강남과 마찬가지의 모습. 수성구의 집값, 교육수준, 생활수준이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릴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보니 수성구 중심으로 관광지 개발, 교육시설, 공공시설, 편의시설 및 오락시설 등이 주로 들어섬으로써 인구도 늘고 집값도 상승세를 탄 반면 달서구, 중구 등을 제외한 대구 내 타 구ㆍ군이 지속적인 인구하락세와 함께 별다른 발전이 없자 불균형발전을 주장하며 수성구와 비수성구[75] 간의 갈등구조가 생겨났다. 그리고 대구광역시청 신청사마저 수성구 못지 않게 발전한 달서구에 건립하는 것으로 확정되며, 안 그래도 낙후의 길을 걷는 서구[76]와 남구는 더욱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이에 수성구동구, 북구 접근성을 강화하는 4호선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구에서 불만이 있었다.[77][78]

다만 타 지역에서 어거지로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도 있는데, 한 예로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 문제에 관해서 당초 수성구에 대구대공원을 조성하여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달성군에서 항의하며 하빈면으로의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또한 수성구는 예전부터 낙동강 수계가 아닌 동구, 경산시와 함께 청도군 운문댐에서 상수도를 끌어와 쓰고 있었다. 사실 아무래도 댐인 만큼 낙동강보다는 오염될 확률도 적고 관리도 잘 될 뿐더러 물 온도나 질감도 훨씬 우수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수성구청도군과 인접하며 수성구 동쪽의 시지지구는 원래 경산시 소속이었으나 1981년 대구로 편입되어서이다.[79] 그러나 2018년에 대구 수돗물 과불화 화합물 사태가 터지면서 다른 구 주민들이 왜 우리는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흘러오는 더러운 강 물을 마시고, 수성구에서는 깨끗한 댐물을 마시냐고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6.2. 경북 북부 vs 경북 남부

경상북도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북부와 1970년대 이후 발전된 경북 남부와의 이질감이 있으며 감정은 껄끄럽다.

불과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국 15대 도시에 경북 안동이 들어가 있었고[80]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시절에는 경북 북부도 나름대로 사정이 나쁘진 않았으나, 1970년대 반도체 산업과 철강 산업 육성으로 인해 구미-포항권역이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경북 북부와 경북 남부의 사정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갈등이 증폭되었던 시기는 1980년대 대구가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그에 따른 도청 이전 문제로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도청 이전은 수많은 갈등을 겪었고, 최고 갈등으로 치달았던 시기는 1996년이었는데 드디어 안동으로 도청 이전이 결정되고 공단까지 유치하자 남부 시의원들은 낙후와 타당성을 들고 일어나 안동 이전을 반발했고 안동은 이에 반발해 가두행진과 삭발시위, 급기야는 안동댐을 일시 단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도청이 안동시로 이전되면서 갈등이 많이 누그러졌으나 경상북도 일부에서는 경상동도 분도를 논하고 있다.

경북의 남부, 북부의 갈등은 행정적인 면이 강하다. 도청 이전 시 지역감정이 좀 격해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도의 갈등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물론 포항과 구미, 포항과 안동, 구미와 안동의 사이가 포항 - 경주, 구미 - 김천처럼 좋은 것은 아니나, 일단 같은 경북이라는 마인드가 매우 강한 편이며 같은 경북이면 대체적으로 우호적으로 바라본다.[81]

위에 내용에 의하면 구미,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남부와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일단 구미와 포항 간 교류가 많지 않다. 가운데 대구라는 대도시가 있어서 구미나 포항 모두 대구와의 교류가 많지, 서로간의 교류는 적다. 오히려 누가봐도 경북 북부가 될 울진군영덕군포항시와 비슷한 입장이 많다.[82]

동해를 접하고 있는 울진·영덕·포항·경주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경북 내에서의 지역간 갈등을 다룰 때 구미를 중심으로 한 남부내륙,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내륙,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83]

6.3. 영덕군 vs 울진군

이쪽은 '대게 전쟁'으로 지역간 갈등과 경쟁이 심한 편이다. 영덕군은 한국 대게의 원조는 영덕이며 역사적으로도 영덕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대게 생산도 활발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울진군도 한국 대게의 원조는 울진이며 역사적으로 울진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서로 대게 문제로 분쟁 중이다. 이들 지역은 대게를 모태로 외지 관광객 유치에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다.

6.4. 안동시 vs 예천군

경북도청이전신도시 참조. 남악신도시를 시작으로 두 개의 행정구역 경계에 신도시를 박는 행위가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원래 의도와는 달리 지역 간 갈등을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6.5. 구미시 vs 김천시

원래 경북 서부의 중심지는 김천이었다. 김천의 시 승격시기는 1949년으로 매우 빠른 편인데 당시 김천 주변에는 전부 군밖에 없었고, 당시 구미는 선산군 산하의 일개 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이후로 산업도시로 변모한 구미는 모체인 선산군을 역으로 흡수하고 경북 서부의 맹주가 되었고 김천은 구미에 크게 뒤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김천구미역의 위치는 김천임에도 머릿수의 차이로 구미시민의 이용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김천시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병기역명으로 정해지는 걸 바라봐야 했다.

6.6. 의성군 vs 군위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참조.

6.7. 대구광역시 vs 군위군

대구경북통합신공항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 참조.

7. 전북

7.1. 서부 vs 동부

이쪽은 양 지역들 사이의 이익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2000년대 이후로 부상하고 있는 갈등이다. 다만 광주광역시와 별개로 자기 몫을 챙기는 전라남도와 달리 전북전주시의 광역시 승격 실패로 다툴 이권 자체가 적어서(...) 잘 부각되지 않는 편.

전북의 중심지는 예나 지금이나 전주시이며, 전주는 동부, 서부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지형적 특성상 산지가 많은 동부와 평야가 많은 서부 중 서부가 비교적 발전도가 높았지만 동부도 남원시 같은 경우에는 제법 도내에서 영향력이 강했다. 그러나 전북도가 전체적으로 쇠퇴하는 와중에도 2000년대 이후 서해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서부의 경우 이촌향도로 인한 타격이 덜한데, 동부는 쇠락의 정도가 서부보다 더 심각하다. 서부의 군산시[84], 김제시, 부안군으로 전북도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점차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추세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시군 통합 때 전북 서부 새만금 지역인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을 통합해서 새만금광역시를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 다만 일단 2018년을 기점으로 군산 GM공장이 철수했고 새만금 사업 역시 그 이전부터 경제성에 대한 논란이 크면서 도시 조성, 기업 유치 작업 역시 지지부진하기에, 서부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7.2. 전주시 vs 완주군

조선 시절의 전주부와 고산군이 1914년에 같은 전주군으로 통합을 했다. 그러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질적으로 여러번이나 시도되었던 완주군의 전주 편입 문제를 놓고 주민들끼리 갈등과 분쟁을 벌였다.

전주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완주와의 도농통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완주는 굳이 통합을 한다고 해도 도농 지역민간 갈등과 앙금만 남으며 전주 원주민들만을 우대하고 완주 출신들은 배척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고산면을 비롯한 산간 및 농촌지역 보수성향 노인들, 재정적으로 열세에 있는 전주와의 통합으로 복지정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봉동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현재까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2013년 통합 선거에서도 통합 무산이 확정되면서 갈등과 앙금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완주 일부 군민은 또다시 전주와의 시군 통합론이 나온다면 그때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실제로 2022년 다시 통합 논의가 올라오자 강하게 반발했다.# 또 전국에서 유이한 시군급 월경지이서면을 두고도 말이 많은 편.

완주군은 전주에 편입되면 농어촌 지역으로서 혜택이 사라지는 데다가 전적으로 관광업에 의존할 정도로 부실한 전주의 재정을 떠안아야 하며, 같은 생활권임에도 각기 다른 지자체로 존속하고 있는 수도권 (서울-인천-경기)과 서울특별시-광명시-과천시, 수원시-화성시-오산시, 대구광역시-경산시, 부산광역시-김해시-양산시의 사례를 들어 반발하고 있으며, 전주시는 완주군민들이 전주에 상업/문화적인 면을 의지해서 살고 전주시 세금으로 만든 인프라나 시설을 이용하면서 막상 통합하자고 하면 지역 독립성을 운운하는 데 불쾌감을 느낀다.

7.3. 전주시 vs 군산시 vs 익산시

최대도시광역시로서 중심 역할을 하는 대구권, 대전권 등 타지역과 다르게 전주는 대도시 특례를 받을 뿐인 도시로 상대적으로 왜소하며, 전주와 함께 전북을 지탱하는 군산, 익산과의 체급 차이가 크지 않아 과거 전북도청 익산 이전론부터 2020년 이전공공기관 유치전에 이르기까지 전북 내 이권으로 유독 다툼이 잦다.[85][86]

7.4. 군산시 vs 김제시

군산시는 군산항이 있는데 새만금신항까지 만들고, 새만금 관할권 문제를 놓고 군산시김제시는 새만금을 둘러싸고 현수막을 걸면서 지역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8. 광주, 전남

8.1. 광주광역시 VS 전라남도

광주공항/공항 이전 참조.

8.2. 서부 vs 동부

이 쪽 역시 정치와 경제의 괴리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즉 단순히 역사적, 문화적 갈등이 아니라 양 지역들 사이의 이익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2000년대 이후로 떠오르고 있는 갈등이다.

전라남도에서 정치적인 중심지는 보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인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 등 서부[87]가 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 호남의 정치세력만 하더라도 전남 서부가 비중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중이다.

하지만 경제력은 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항, 포스코 광양제철소 등 거대 공업단지들이 위치한 전남 동부, 특히 여순광이 거의 독차지하다시피한 상태다. 그리고 이 지역의 평균 소득이 굉장히 높아서 광역지자체 기준으로 소득평균을 내면 전라남도가 인식에 비해 생각보다 높은 소득값을 나타내는데 역할을 한다. 물론 서부인 영암군에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어느 정도 경제력이 늘어났지만 아직 동부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전라남도청 이전 문제가 갈등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라남도청은 광주에 있었으나 광주시가 1986년에 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면서 광주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라남도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뒤 전라남도 여러 지역들이 도청 유치 운동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 무안군 남악신도시[88]가 도청 자리로 결정되어 결국 2005년에 전남 도청이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되었다. 그런데 무안군전라남도 내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이라서 동부에서는 접근성이 불편했었다. 영암-순천 간 고속 도로(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교통이 불편한 편이었다. 물론 이전할 때에는 영암순천고속도로 개통을 전제로 이전했겠지만. 전남에 있는 국제공항도 무안국제공항, 서부 전남 해안 외곽에 있어서 동부 전남 사람들은 김해국제공항이나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J프로젝트, F1 등 여러 개발 사업들이 서부에서 이루어지고 그 외의 SOC 유치 등 예산 편성에서 서부가 더 예산 유치를 받는듯한 현상이 일어나자 동부에서 차츰 전남 동부 소외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부 입장에서 볼 때 동부 소외론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동부에는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고속도로가 일찍이 개통되었지만 서부에는 대불산업단지가 세워지기 전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었고 2001년 말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기 전까지는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권 자체에서도 전남 동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전라남도 전체 국회의원 선거구 중에서 전남 동부에 해당하는 선거구가 여수시 갑, 여수시 을, 순천시, 광양시-구례군-곡성군 으로 10석 중에 4석을 차지하고 있다. 서부, 중부의 선거구가 3~4개 행정구역을 합친 선거구임을 감안하면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다. 전남도의회 지역구에서는 전체 52석 중에서 동부 3개시에서만 1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전라남도에서 목포시 중심의 전남 서부가 정치를 주도하지만 동부의 존재가 만만치않고, 서부 중심으로 끌고 다니는 정치에 매우 큰 불만과 반감이 쌓여왔다.

이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대표 사례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벌어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이때의 전남 동부와 서부의 지역구 당선사례를 보면 이 간극이 극명히 벌어졌다. 당시 순천시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에서는 탄핵을 주도한 기존 호남 정치권인 새천년민주당을 심판하면서[89] 친노 성향인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쏟아냈는데[90] 목포시를 포함한 서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힘을 못 쓰고 새천년민주당이 그대로 대거 당선되어서 선거 결과 전남의 정당 구조가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에서 친노 성향의 여부를 따진다고 하면 서부보다 동부가 상대적으로 친노 성향이 강한 편이다.[91]

결국 순천시에서 이정현이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순천시/정치 항목 참조. 다만 이정현 본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완벽하게 파멸해버렸고,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간신히 구축한 교두보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는 동부의 친노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순천시에서 문재인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67.8%)를 기록하는 등 강한 지지율을 나타냈다. 반면 서부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역시 문재인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긴 했지만 신안군, 진도군 등 일부 지역의 읍면동에서 안철수가 1위를 차지하는 등 상대적으로 문재인 지지율이 낮은 결과가 나타났다.

현실성이 낮은 이야기임에도 동부 3개 시가 단일시로 통합해서 힘을 키우자는 주장이나 전남 동부가 분리 독립하여 광역시를 출범하거나 경남 서부의 소외지역과 손잡고 광역지자체를 만들자고 하는 일명 섬진광역시 이야기가 단순한 떡밥이나 헛바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과대학 확대를 두고 이 동서 대립 구도가 재발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에 의과대학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목포를 위시한 서부권에서는 목포대학교를 후보로 밀고 있고 순천을 위시한 동부권에서는 순천대학교를 후보로 밀고 있는 상황. 서부권에서는 섬과 같은 오지가 많고 중증 환자가 많은 의료 취약지란 점을 내세우고 있으며, 동부권에선 인구가 더 많고 대규모 공업단지들로 인한 산업 재해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https://news.ebs.co.kr/ebsnews/allView/60506049/N|#]

8.3. 목포시 vs 무안군

원래 목포시-무안군은 구한말까지 같은 무안부였던 걸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이를 목포부-무안군으로 재편한 뒤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92], 신안군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무안군으로 통합된 이후 1969년 신안군 분리가 있을 때까지 무안과 같은 지역으로 있었으니[93] 역사적으로 연원이 깊고, 남악신도시가 목포시와 무안군 양쪽에 걸쳐있기 때문에 행정이 서로 맞지 않으며, 2005년 전라남도청까지 이전하면서 더욱 머리가 아프다는 게 목포시의 주장. 게다가 목포시는 인구에 비해 면적이 너무 좁아 뭘 하려고 해도 할 땅이 없고, 무안군-신안군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긴 이미 글렀으니 통합으로 난국을 타개하자는 것.

이에 무안군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목포와 통합할 경우 농촌 지역인 무안이 개발에서 소외돼 변방으로 전락하고, 시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이유로 시세(市稅) 부과 등 각종 세금이 증가하며, 혐오시설도 모조리 무안으로 들어오고, 농어촌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선 무안군의 내로남불이란 주장도 있는데 사실 100여년 간 한번도 합친 적이 없는 곳에서 통합을 논하니 찬성치 않은 것이라 일리가 있다. 행정구역 개편/호남 문서의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 통합 항목에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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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여수시 vs 순천시 vs 광양시

전남 동부의 여수시광양시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제철소와 같은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개발로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발전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지 않은 순천시는 전남 동부의 중심지라는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주거단지, 문화시설, 소비시설들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이낙연 도지사 시절에 전라남도청 동부출장소를 제2청사로 키울 것을 염두에 두고 전라남도 동부지역본부로 승격시켜주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옆 동네 광양시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어도 내내 발전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순천은 지금도 도시 규모에 비해 대형 소비시설들이 발달해있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한때 코스트코가 전남 동부 전체를 상권으로 하기 위해 순천에 입점하려고 눈독을 들이기도 했을 정도.[94]

2017년 초에 광양에 대형 아울렛이 들어서며 대규모 메이저 영화관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순천시로 영화를 보러 가야 했을 정도로 경제와 문화시설 간의 괴리가 상당히 컸다.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통합을 할 경우 여수시의 엄청난 빚(...)과 순천시의 부족한 경제기반 탓에 순천시에서 여순광 통합을 추진하려고 하면 여수시광양시는 반대 입장이며, 특히 경제기반도 있고 재정도 가장 좋은 광양시가 크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광양시에서는 교통, 상권, 인프라, 국회의원 배정 등 순천시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고 또 광양시에서 밀던 순천대 공대 이전, LF아울렛 건설 과정 등 인프라 유치 과정에서 생긴 분쟁들이 풀리지 않고 계속 쌓고 묻어두면서 점점 심화되는 갈등이라고 보면 된다.

한 편 여수시는 1998년에 삼려통합을 하면서 구)여천과 구)여수간의 지역내부의 통합시청사문제와 그외의 지역현안문제등 생긴 고전적인 소 지역주의가 여전히 일정 부분 남아있는 상황으로,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 할 수도 있고, 순천의 부족한 경제기반 탓에 그리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8.5. 보성군 vs 벌교읍

일제가 행정구역을 이상하게 짜깁기 해놓아서 생긴 매우 유서 깊은 갈등으로, 실제로도 벌교읍은 보성군내 인구 3할을 점유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푸대접받는 동네이다. 그 이유는 벌교가 인구는 많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북부4면이나 조성면을 제외한 보성군 나머지 지역에서는 오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항상 최다 인구 지역을 배려하느냐, 면 지역을 배려하느냐 때문에 항상 고민인 보성군. 그러다가 실수로 보성군청에서 벌교 꼬막 축제 예산 1억을 삭감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빡친 벌교읍민들이 순천시로 편입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벌교읍 문서 참조.

9. 제주

9.1. 제주시(북부) vs 서귀포시(남부)

그다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섬의 남북 간에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내 고등학교 축구 대회인 백호기가 있다. 고등학교 축구대회인데 3학년까지 전교생이 참가해서 사관학교에서나 하는 카드섹션보다 몸으로 하는 바디섹션을 한다. 강릉의 농일전/일농전과 함께 가장 응원열기가 뜨거운 고교축구 이벤트. 제주 축구 팬은 백호기 출전 학교로 나눠져서 단합이 안된다는 말도 있다. 산북 VS 산남보다 오현고 VS 제일고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는 말도 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백호기 경기 끝나고 학생들끼리 경기장 인근에서 대놓고 각목들고 맞섰다는 흑역사가 있다. 2000년대까지도 일부 학생들끼리 충돌이 암암리에 있었는 듯. 축구에서 비교적 약체인 D모 고등학교의 경우 패배한 후 응원을 총지휘하는 학생회장이 수능 때 두고보자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으며, 실제로 도내 남자고등학교 중에서 수능평균점수가 가장 높은 편이다.[95] 현재 바디섹션 응원은 제주도 내 중·고등학교 여러 학교에서 한다. 다만 중학교 바디섹션은 교복을 가지고 하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응원복(사실 그냥 체육복)을 가지고 더욱 전문적으로 진행한다.

남북만 있는게 아니고 은근히 권역별(마을별)로 쪼개져서 지역감정이 있다. 제주도 주민들에게 들어본 결과 이들 사이의 어느지점은 전투종족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사실상 농업위주의 구 북/남제주군과 관광 인프라 중심인 서귀포시가 경제/교육/문화등 여러 방면에서 제주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제주시내 중고교생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단적인 예로 제주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4곳인대 비해서 서귀포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1곳, 구 북/남제주군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다. 또 서귀포시의 경우 서귀여고를 제외한 고등학교들의 경우 평균수능성적이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며, 심지어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남학생들이나 제주시에 연고가 있는 일부 여중생들의 경우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많이 진학한다. 서울 공화국 현상의 제주판인 제주시 과밀화 문제가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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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서부 vs 동부

외지인이 보았을 때 눈에 띄게 드러나는 제주도내 지역감정은 산남 지역과 산북 지역 - 또는 과거 제주시와 그 외 지역[96]이다. 그러나 실제 제주도 내에서 가장 심한 지역 감정은 제주 동부와 서부 간의 지역 감정이다.[97] 산남과 산북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실상은 서로 나쁜 감정이라기 보다는 산남 지방 사람들의 일방적인 소외감에 가깝고 산북 사람들이 자신들을 '산북'사람으로 크게 의식하지도 않는데다가 인구가 3배 가까이 차이나니 크게 부각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동촌과 서촌의 지역감정은 조선시대 이래로 역사가 오래고 서로 인구 또한 대등해서 20세기 중반 이전에 출생하신 어르신들 세대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지역감정이다. 심지어 지금도 특히 동촌 사람들은 제주도 동부가 서부에 비해 개발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낙후된 지역이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평소에는 '도시와 시골'이라는 구도의 산남-산북 지역감정처럼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다. 제주도는 동서로 긴 형태이고 가운데를 한라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동서간 교류는 남북간 교류보다 매우 적다. 또한 도시-시골간 갈등 형태가 아니어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도시-시골간 갈등은 도시에서는 시골보고 촌스럽다고 하고 시골에서는 도시를 보고 싸가지 없다고 하는 전형적 패턴이 존재하지만 동서 갈등은 도시-시골 갈등 형태가 아닌 데다 서로 교류도 많지 않아 평소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사는 외지인들이 산남-산북 지역감정은 잘 알고 있지만, 동서 지역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제주 동서 지역 감정이 표출되면 산남-산북 지역 감정은 그냥 아이들 말장난 수준. 제주도 동부랑 서부는 고려, 조선 때부터 토착 왕자 성주가 갈려 대립했다. 과거부터 제주 서쪽이 동쪽보다 훨씬 잘 살았고[98], 개발도 꾸준히 서쪽 중심으로 이루어졌다.[99] 제주도는 동부와 서부의 풍경이 확연히 차이난다. 서쪽은 완만하고 평지가 많으며 오름들이 둥그렇고 낮은 반면, 동쪽은 높은 오름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으며 평지가 많지 않다.[100] 더군다나 일주도로변 주변 밭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부는 땅이 모래흙인 경우가 많아 서부보다 농사짓기 어려운 지역이 넓다. 당장 주요 농작물만 비교해 보아도 서쪽은 감자, 동쪽은 당근...제주 감자는 타지역 저장 감자가 거의 떨어져갈 때 출하되어 높은 가격에 팔리지만 당근은 가격 폭락 뉴스가 종종 떠서 수확하지 않고 엎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한 제주시가 성장하기 전 북제주군 한림의 오일장이 제주시 오일장보다 규모가 더 컸던 적도 있었다. 서쪽 사람들은 동쪽 사람들을 억세고 거칠고 사납다고 하며 싫어하며[101], 특히 김녕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투종족 취급을 한다. 예컨대 3.1 운동의 제주 버전인 '조천 만세 운동'도 동쪽 지역인 조천에서 일어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되기 전, 타지역 사람들이 제주도의 지도를 보고 왜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가르지 않을까 종종 궁금해했다.[102]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 분리-승격되었기 때문에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은 지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북제주군청은 제주시에, 남제주군청은 서귀포시에 위치했다.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행정구역개편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 격차 및 지역감정 심화 때문이었다. 동서 지역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제주 신공항에 대한 입장도 서부와 동부가 갈린다. 제주 신공항 예정지인 동부는 찬성, 서부는 반대다.

9.3. 제주도 vs 한반도

제주도는 이런 섬 안의 지역감정보다 지역적 정체성 - 제주도와 육지[103][104] 구분이 훨씬 강하다. 때문에 타지역에서, 그리고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는 제주도 사람들끼리 잘 뭉친다. 한국 사람이 지역끼리 으르렁대기도하지만 외국과의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 뭉치듯이말이다. 역사,문화적으로 지역적 정체성이 매우 강하고 타지역 사람들과의 교류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타지역 사람들로부터 '의리가 없고 자기들끼리 뭉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잡일 잘한다고 타지방에서 제주도 사람을 좋아한다고도 하더라.

외지인에 대한 편견과 지역감정(마을별) 역시 4.3 사건 등의 영향이 크다. 사실 역사적으로 외지인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사단을 일으키고 거기에 도민들이 괜히 휩쓸려서 참극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삼별초 항쟁, 목호의 난, 길운절-소덕유의 난[105] 신축민란, 4.3 사건 등.

그 외에도 외지인[106]에 대한 편견[107]도 일부 존재한다. 그런데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닌게,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육지에서 제주도로 갈 일이 별로 없었다. IMF이후 타지역에서 노숙자들이 대거 몰려온 이후 강력범죄가 증가하자 그 들이 1순위로 타겟이 되기도한다. 50년대 모 시인의 경우 여대생과 서울에서 바람을 펴고 임신시켜 본처를 피해 제주도로 이주해 약 반년간 생활하기도 했으며, 여대생의 아버지가 제주도로 내려가 집으로 데리고갔는데 당시 이별의 모습을 표현한 가곡이 떠나가는 배로 그 시인의 제자인 양중해시인이 작사하고 명태의 작곡가이자 당시 도내 모 중학교의 교사였던 변훈이 작곡하였다.[108]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육지'로 수학여행을 가면 '한라산에서 공차면 바다로 빠지느냐, 전기는 들어오느냐' 따위의 은근히 놀리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전기가 안 들어와서 촛불 켜고 비디오 본다.'고 응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109][110] 심지어 최근에도 조랑말 타고 등하교하냐고 심히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사람이 있다거나, 와이파이가 터지긴하냐, 제주도에는 아파트가 없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지방에 대해서 심하게 무지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조용히 지도 앱을 켜서 경치를 보여주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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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노원구의 경우는 강남보다 훨씬 늦게 개발되었음에도 강남구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이유는 강남구는 강북 인구 및 인프라 분산 목적으로 개발된 곳이지만, 노원구는 태생부터가 베드타운이기 때문이다.[2] 3당 합당의 영향이 크다. 1987년 13대 대선이나 1988년 13대 총선까지 통일민주당이 강남에서 강세였는데 3당 합당으로 그 지지가 대부분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강남3구 6개 선거구 중 민자당 후보는 서초구 을김덕룡만 당선되었으나 같은 해 14대 대선부터 강남3구는 보수정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민자당은 국민의힘의 전신. 영남 기반의 제1보수정당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름과 성향은 다소 바뀌었으나 그 법통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3] 예컨대 김덕룡 전 의원의 경우 서초구의 남부 지역(서초 양재 등)인 서초구 을에서 13대 총선('88) ~ 17대 총선('04)까지 5연속 당선되었는데, 첫 총선 즉 13대 88년 총선은 소위 보수 본당이라고 인식되는 민정당이 아닌, 통일민주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었다.[4] 구 잠실주공 시절 파출부들이 많았던 것을 비하하는 것[5] 실제로 잠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데 강남에서 보자고 말하는 사람은 송파구민중에서도 사실상 없을 것이다. 반면 서초구 강남역 유흥가 일대에서 약속을 잡는데 강남에서 보자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다.[6] 다만 광명시의 사례에서는 서울에 대한 단순하면서 역사가 오래된 악감정 내지는 독자적 정체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철산동, 일직동에 비해 도시발전에서 비교적 소외당해온 하안동 주민들의 억감정과 교통 불편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이 크긴 하다.[7] 다만 이 드라마는 경기도의 발전도나 서울과의 관계를 현실과 다르게 지나치게 과장 및 왜곡해서 표현한 드라마라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의미는 있다.[8] 대한민국 수도권의 쓰레기들을 수용한다. 참고로 수도권 매립지에서 수용하는 쓰레기의 출처 비율은 서울특별시가 48%, 경기도가 33%, 인천광역시가 19%이다.[9] 1993년 난지도매립장을 공식적으로 폐쇄,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로 이전한 것을 끝으로 서울 시계 내에는 쓰레기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10] 의정부시, 고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파주시 등.[11] 수원시, 성남시, 부천시, 용인시, 안양시,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 등.[12] 남양주시, 고양시 등: 수자원 보호구역, 군사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규제 해제 VS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 등: 의정부는 경기북도청을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 유치, 양주와 동두천 등은 의정부의 발전을 통한 간접적 이익.[13] 도청 소재지가 될 의정부시와 의정부를 중생활권으로 하는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 지역에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해온 편이지만, 물주가 될 형편인 고양시, 파주시에서 크게 반대하는 편이고 서울 강동-송파지역 또는 강원도 영서지역과의 교류가 많아 경기북부라는 자각이 크지 않고 경기동부라는 인식이 같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구리시, 남양주시, 양평군, 가평군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14] 실제로 그렇다. 오히려 가평군춘천시와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편이다. 학교나 대학도 당연히 춘천으로 보통 많이 간다. 다만, 현리(조종면)/설악면 지역의 경우에는 좀 더 서울 잠실동이나 남양주시와 교류가 상당히 많다.[15] 실제로 구한말 이전 갈매, 별내 일대는 조선시대 노원면(현 서울 노원구)의 일부였고,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1990년대까지 들어가 있었으며,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기존 구리, 남양주 지역보다 서울 노원, 중랑 지역과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지리적으로도 그렇다보니 간혹 교통난 때문에 서울 편입이 되었으면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별내면의 중심지인 청학리 또한 의정부랑 교류는 조금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경기북도에 반대를 위치는 상황이다. 청학리는 사실상 구리, 중랑구와 압도적으로 교류가 많은 이유는 1-1번은 구리로 통학하는 학생들은 물론, 10-5번을 타서 돌다리에서 먹고 마시는 일도 많은 편이다. 2004년 이후 10-5번 버스 개통 이후 노원구와의 교류가 제법 늘어났는데, 특히 33-1, 10-5, 10번 또한 청학리~당고개역 구간은 전철이 없는 관계로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서울 도심으로 나가는 출퇴근 수요가 제법 많다. 물론 청학리 자체가 연천, 포천, 양주, 의정부 일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며, 의정부와 양주에서 쓰이는 국번, 즉 동의정부 전화국의 국번인 031-84X, 82X, 85X국번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이 지역은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들이 좀 있는 편이며 구리와의 교류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토박이의 말을 들어 보면 양주군 별비곡면 청학동/동학동 시절 대부터 구지면, 망우리면, 즉 현재의 구리시와 서울 중랑구 일대와 교류가 많았다고 하니 당연히 반대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16] 2021년 기준으로 남양주는 현재 토박이들이랑 외지인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지라 분도는 딱히 원하지 않는다. 특히 다산신도시 택배사건으로 남양주 이미지가 개판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17] 일반적으로 구성남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18] 대형평형 아파트 및 고급 주상복합아파트[19]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전연령대에 걸쳐 상당하다.[20] 병점 및 동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21] 동탄신도시, 병점 지역[22] 화성시는 수도권에 자리잡아 접근성이 좋은데다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쓰레기 매립장, 음식물 처리시설, 폐수 처리시설 등이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특히 우정읍, 마도면, 서신면 등 개발에서 소외되고 주거환경이 나쁜 서부가 주요 대상이다.[23] 다만 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당연히 지금이 크다) 일산은 분당에는 항상 밀리는 신세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서울에서 분당까지 가려면 강남을 경유하는 반면 일산은 시골(이었던) 덕양구 남부를 지나야 하기 때문.[24] 경의선을 기준으로 경의선 대곡~탄현 동북쪽 지역을 말한다.[25]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 가치는 이미 도시화된 지역(화정동, 삼성동, 원흥동, 지축동, 행신동 등등) 기준으로는 일산신도시를 역전했다. 성남으로 치면 수정구 일대가 분당구보다 지가가 비싼 셈이다. 다만 감가상각을 고려하여 동일연식 동일평형 신축 매물들을 비교하면 여전히 일산권역이 우세하긴 하다. 똑같은 신축 택지지구에 해당하는 삼송지구와 킨텍스지구를 비교하면 아직도 일산 권역 선호가 있기는 한 편이다. 이것은 일산과 덕양 간 생활 인프라 차이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삼송이든 행신이든 덕양구는 당장 백화점 가려면 일산 가든지 신촌 가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삼송 스타필드 고양과 화정 세이브존이 있다고는 하나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결국 일산이든 신촌이든 명동이든 다른 중심상권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일산은 멀쩡한 건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하나뿐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명목상 백화점만 2개(현대백화점 킨텍스점, 롯데백화점 일산점)인데다 거의 모든 소비, 여가생활은 도시 안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일산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의 소비나 인프라 향유(명품, 오페라, 뮤지컬 공연 등)가 목적이라면 어차피 전국 어디에 살든 명동이나 강남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자신의 생활패턴을 고려했을 때 저러한 고급 인프라가 필요 없다면 서울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덕양구가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말은 그러하나 백화점 자주 갈 일 없는 서민층이라 해도 없으면 뭔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26] 3기 신도시가 중심생활권 구축을 해주며 개발의 수혜지[27] 삼송, 지축, 원흥과 마찬가지로 시정에서의 영향력 확대 및 시가지 파편화 문제가 해소되는 장점과 3기신도시 교통대책 중 고양선 경전철 건설, 화정-신사간 도로 건설의 수혜를 받으나 어쨌든 시가지가 노후된데다 일산보다는 덜하지만 창릉 대비 지리적 비교열위로 자산가치 하락 우려가 있음.[28] 어떠한 인프라 및 생활환경의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서울과 가까운 곳에 대량의 주택이 공급됨으로써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 우려, 지금도 덕양구에서 상당한 도로정체 및 광역전철(경의선) 객차 혼잡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창릉신도시 입주시 교통망의 부하가 현재 덕양구 수준의 1.5~2배이상 가중됨으로 교통대란 우려.[29] 마찬가지로 수혜받는 것도 없는 상황에 물량이 늘어나는 걸 좋아할 리가 없으나 그나마 GTX-A선 킨텍스역 도보역세권인 관계로 창릉의 압박을 상쇄할 수 있는 정도.[30] 남동, 연수(송도), 미추홀[31] (영종), [32] 서구, 청라, 공촌, 검단[33] 부평, 계양[34] 보다시피 알짜배기 개발지역들은 남인천에 집중되어있다.[35]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인천군 일부 지역(인천항, 개항장)만 남기고 부평군과 인천군 잔여 지역을 부천군으로 개편했다. 지금의 부평구와 계양구 지역은 1940년에 경성부 대신에 인천부(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고 인천시로 편입되지 않은 부평지역이 바로 지금의 부천시이고, 인천시로 재편입되지 못한 원인천지역이 지금의 시흥시 북부다.[36] 원래 부천시 자체가 '부평+인천'이 어원이다. 부평과 부천은 '부평도호부'라는 하나의 동네였는데, 일제강점기 인천항과 동인천, 제물포 지역만 따로 떼어버리고 인천군 잔여지역과 부평군을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다. 훗날 원인천이 다시 인천항 지역과 합쳐지면서 부평구를 가져왔고, 부천시는 그대로 부평+인천으로 남아버린 것. 원래 부평과 부천이 하나였던 만큼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37] 공통학군, 특목고 재학 학생들은 약속 장소가 대개 구월동, 부평역 인근이고 부천 지역 백화점은 서울, 인천 지역 백화점들에 비해 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까운 부천중동을 두고 영등포, 구월동으로 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부천시민들도 그럴 정도니 말 다했다. 젊은 층도 부천 상권보다는 부평역 인근이나 멀지않은 서울 홍대나 수도권 버스들의 집결지인 강남역 등이 더 왕래가 잦다.[38] 철원, 이천, 평강[39] 김화, 회양, 화천[40] 춘천, 양구, 인제, 홍천, 가평[41] 원주, 횡성[42] 참고로 현 강원도지사인 김진태는 춘천 출신이다.[43] 아예 춘천권인 화천에서는 심지어 도청을 화천역 예정지 앞으로 이전하자며 부지를 제공하겠다고까지 밝혔다.[44] 현재 갈말읍에 속해 있는 정연리는 원래 평강군 남면이었다.[45] 정확히는 철원은 대한민국지역이 2/3, 김화는 북한지역이 2/3 정도이다.[46]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김화군을 철원군에 편입하였다. 단, 이북 5도 체계 하에서 김화군은 여전히 명목상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47] 김화권에서는 군인가족을 제외하면 전쟁 이전부터 지역 주민이었던 경우가 많다.[48] 예를 들어, 원주에서 춘천을 가느니 차라리 서울을 간다던지. 사실 강릉 - 춘천 거리는 구철원 - 춘천보다 훨씬 멀다.[49] 춘천-철원-북평(동해)-강릉 순이었다. 원주는 15위 이하.[50] 현재는 춘천-원주-강릉이 3대 도시이고 속초와 동해가 그 뒤를 잇는다.[51] 김화 지역에서 포천시와 붙어있는 곳이 서면에 있는데 47번 국도로 연결된다. 그러나 자등6리부터 선형이 별로고 이 도로도 이동면(장암리)-일동면(기산리)-내촌면(신팔리)를 통해 진접으로 이어져서 포천시내에 가려면 상당히 돌아가야 한다.[52] 2006년경 개통. 이전에는 길이 없었다.[53] 그나마 충청 내륙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지역색이 옅여서, 지역갈등이 아직은 심각치 않은 편.[54] 홍성, 예산이 천안 생활권인 것은 장항선의 영향이 크다.[55] 예를 들어서 광주/전남지역의 경우 전남대학교병원과 조선대학교병원을 제외하면 대학병원이 없다. 이래서 별다른 경쟁도 없이 전남대학교병원,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조선대학교병원 모두 3차 상급종합병원에 선정됐다.[56] 천안에 순천향대학교병원 천안병원, 단국대학교병원이 있고, 대전에 충남대학교병원,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건양대학교병원이 있다.[57] 통칭 내포-천안권으로 천안, 아산, 홍성, 예산, 당진, 서산, 태안이 이쪽 권역이다. 2021년 기준 총 인구 156만 명, 최대도시 천안의 인구는 66만 명.[58] 대전권 서부. 대전, 세종, 공주, 금산, 논산, 청양, 서천, 계룡, 보령. 2021년 기준 총 인구 246만 명, 최대도시 대전의 인구는 145만 명.[59] 광역 인구가 아니라 도시 인구만 따져도 천안 인구보다 대전 인구가 2배 이상 많으므로 대전에 2개 배정되는 것이 상식이다.[60] 위의 충남도청 이전과 연결된다. 내포신도시가 소재한 홍성과 예산은 압도적으로 천안 생활권이다. 즉, 천안의 충남도청에 가하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62] 정확히는 좌동, 우동, 중동 지역.[63] 실제 사례로 동부산 지역 거주민이 서부산 지역 거주민 상대로 "아직도 그런곳에 사냐"고 하면서 서부산 주민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며 어서 이 쪽으로 이사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것을 목격한 것이 있다.[64] 함정은 대표적인 주거지역 재송동, 반송동, 반여동, 석대동 이런 쪽도 전부 해운대구다. 이런 쪽은 서부산, 원도심, 동래 분위기다.[65] 부산광역시장 3선이 꼴랑 부산광역시의원 1번 지낸 후보한테 경선에서 진 것이다.(...) 나이가 49년생으로 많기는 했지만.[66] 부산은 동부경남 입장에서는 명백한 종주도시이지만 서부경남 입장에서는 진주에 마땅한 시설이 없을 때 가는 도시에 가깝다. 웬만한 시골 동네가 서울을 바라보는 입장을 생각하면 편하다.[67] 대표적으로 부산과 가까운 울산, 창원, 거제, 김해, 양산 등의 도시는 크게 발전했고, 동부경남에 위치한 소도시인 함안과 창녕, 밀양 역시 군이나 소규모 시치고는 비교적 양호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남의 전통적인 대도시였고, 현재도 서부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진주는 부산과 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68] 경북 남부vs경북 북부[69] 전남 서부vs전남 동부[70] 충남 북부vs충남 남부[71] 사실 이 항목에 나오는 지역감정 사례들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분당 사람이 자신을 성남시민이라고 말하지 않거나, 벌교 사람이 자신을 보성군민이라고 말하지 않거나 하는 등[72] 이후 청주시+청원군 통합이 있었기는 하나 이쪽은 1995년 도농통합 때 이뤄졌어야 하는 걸 뒤늦게 한 것에 가까우므로 논외[73] 다만 실제 여론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이미 선거에서 진해 독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몇몇 존재했었지만 누구도 당선된 적은 없다.[74] 수성구 내에서도 원도심권 vs 시지지구로 또 나눠진다.[75] 특히 서구, 남구, 달성군 등 대구 서부.[76] 다만 신청사 예정지에서 북쪽으로 200m만 가면 서구다. 신청사가 들어서는 두류동 자체가 달서구 신설 이전엔 서구 내당동의 일부였다.[77] 사실 북구에서도 산격2동, 산격3동, 산격4동, 대현동, 복현동, 검단동을 빼면 4호선의 수혜를 볼 수 있는 지역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북구엔 3호선이 있어 도시철도가 제법 탄탄하다.[78] 특히 서구에서 불만이 큰데, 이 지역은 대구 내에서 가장 도시철도가 부실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쇠퇴중인 남구1호선이 구의 중심지를 관통하고, 군 지역인 달성군1호선, 2호선의 종점역이 위치하지만 서구는 도시철도가 전부 스쳐지나간다. 게다가 서구를 관통하기로 예정돼 있던 5호선, 국채보상로선4호선, 6호선에게 밀리면서 해결이 더더욱 요원해지고 있다.[79] 참고로 수성구 내에서도 지산범물지구, 두산동, 파동달성군 가창면가창댐에서, 북구 검단동, 산격동, 복현동공산댐에서 원수를 확보한다.[80] 이 때문인지 인구 수로는 구미나 포항에 역전당한 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경북 내에서의 안동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경북 북부에서는 계속 중심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81] 경주 사람이 문경 사람을 우호적으로 보며, 김천 사람이 울진 사람을 우호적으로 본다.[82] 방송구역도 KBS안동방송국, 안동문화방송이 아닌 KBS포항방송국, 포항문화방송이다.[83] 여담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에는 경북도지사 후보로 저 세 지역 출신이 한 명씩 나왔는데, 1번 더불어민주당 오중기 후보는 동해안(포항시) 출신, 2번 자유한국당 이철우 후보는 남부내륙(김천시) 출신, 3번 바른미래당 권오을 후보는 북부내륙(안동시) 출신이다. 다만 여전히 보수색이 강한 경북답게 이철우가 당선됐지만…[84] 익산도 있지만 새만금 영향보다는 전주 교통목으로서의 장점(?)이 큰 도시이다.[85] 국립과학관 유치 ‘내부 경쟁 안 돼’…전북도 역할론 대두[86] [전북]지자체, 수도권 공공기관 유치 과열[87] 영암군, 강진군, 장흥군, 해남군, 완도군, 진도군.[88] 행정구역상 무안군이지만 실질적으로 목포 생활권으로 여겨진다.[89] 본문의 탄핵 사태 문서에 보면 나오지만, 한나라당이 탄핵한 것이 아니라 대선 경선 당시의 악감정이 쌓여서 기존 정치권이던 서부 기반의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먼저 제안함.[90] 이때 순천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는 서갑원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는 노관규가 서울에서의 낙선 이후 순천으로 출마했었다. 순천시/정치 항목의 역사가 이때부터 본격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91] 20대 총선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보면 전남 서부에서는 더민주의 득표율이 27.0%에 그쳤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33.6%를 득표했다. 특히 순천시에서는 더민주 35.81% vs 국민의당 41.78%로 5.97% 차이가 나왔는데 전남 전 지역에서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비례대표 격차가 가장 적게 나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대 총선 당시에는 전남 서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43.3%를 득표했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50.8%를 득표.[92] 무안군의 경우 1968년까지는 군청이 목포시 내에 있기까지 했다! 1969년 신안군이 분리되면서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2011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을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하여 현재에 이른다. 또한 목포시의 법정동 중에도 '무안동(務安洞)'이 있는데, 일제 때 목포 개항장에서 옛 무안 읍내로 가는 길목이고 목포도 원래 무안의 일부였다는 의미로 '무안통(務安通)'이라 불렸던 것을 해방 이후 일제 행정구역 단위명인 '통(通)'을 '동(洞)'으로 바꾸어 이어진 것이다.[93] 13도제 이전까지는 무안현 관할이 아니라 영광, 나주, 광주 등의 월경지로 존재했다. 그리고 13도제가 시행되며 '지도군'으로 분리된다.[94] 순천의 지역 유지들과 정치권이 코스트코를 반대했는데, 여기에 더해 여수, 광양쪽에서도 거세게 반대했다는 후문.[95] 근데 이것도 2000년 이후 이야기. 그 전까진 오현고와 제주일고가 성적마저 압도했다.[96] 북제주군, 남제주군, 서귀포시[97] 이게 제주도 내에서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 온 육지 사람을 걸러내는 방법으로 많이 쓰인다. 아무리 정보통신이 발달해도 몇 마디만 해보면 걸리기 때문.[98] 동부 지역 토질이 농업에 부적절했다.[99] 동쪽지역에 기반한 지역정치인들이 일부러 조장한 인식이긴 하지만 일정부분 사실이다. 실제로 동부의 대표적 지역인 구좌읍 지역이 자기 지역 연고 인사들에게 당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몰표를 몰아주기로 유명한데 원희룡 이전에 민선 제주도지사 자리를 서로 돌려가면서 하던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전 지사들은 모두 구좌읍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던 인사들이다. 그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막상막하였어도 구좌읍의 몰표를 바탕으로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동서지역간 갈등을 공공연히 조장해서 이용했었다.[100] 사실 서부의 경우 4.3사건 이전에는 중산간 마을과 해안가 마을의 지역감정과 차별이 굉장히 심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중산간 마을 사람들이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낮게 인식했었는데 4.3사건으로 중산간 마을들이 큰 타격을 받고 이후 개발이 먼저 도로망이 갖춰진 해안가 마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갈등이 상당히 희석된 것이다. 동부 지역에서는 서부시역처럼 중산간에 넓고 평탄하고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 부족하였으므로 서부처럼 중산간 마을들이 일찍부터 대규모로 발달하지는 못했다. 동부의 중산간 마을들은 1990년대가 다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간 마을들도 있을 만큼 낙후된 동네들이었다.[101] 농사짓기 어려운 토지 때문에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102]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도지사 선거 공약으로 그러한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있었다.[103] 제주도민이 한반도 본토를 부르는 말.[104] 그래서 수도권 등 타지역에 이사간다고 하면 대부분 OO가 육지로 이사간다고 한다.[105] 1600년대 초에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유입된 외지인들인 길운절과 소덕유가 제주도에서 반란을 선동하여 중앙정부의 대규모 토벌이 있었던 사건이다. 그러한 중앙 조정에서는 청음 김상헌을 안무어사로 제주로 보내어 민심을 수습하고 제주에서 특별 과거시험을 실시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김상헌이 남긴 기록이 남사록이다.[106] 육지에서 이사온 사람들[107] 육지에서 부부가 이사 왔는데 주민들이 분명히 육지에서 바람펴 애낳아서 도망왔을 것이다고 쑤군쑤군 → 그 부부는 결혼식 사진을 거실에 걸어놓고 살게 되었다 등[108] 심지어 요즘도 제주도로 이사오거나 심지어 제주도 출신인데도 육지에서 살다가 귀향한 사람이 제주도 지역 발전 이전에 육지 정치 이야기부터 하면 일단 안좋은 소문부터 확 퍼진다.[109] 이미 1970년대부터 일본과 가까운 위치 덕택에 일본의 영향을 받거나 일본으로 일하러가서 떼돈벌어오는 경우도 있으니 일본의 최신 문물이 많이 들어오는건 당연한 일.[110]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일본하고 원체 가까운지라 한국에서 설정만 잘 하면 일본 TV 채널이 수신이 되었었다. 애초에 일본이 지척이니 일본에서 물건 떼오기도 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