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델의 중세 3대 문학 (Trois matières) | ||
영국의 이야기 (Matière de Bretaigne) | 프랑스의 이야기 (Matière de France) | 로마의 이야기 (Matière de R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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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85년경 제작된 아서왕 태피스트리(Tapestry) |
Arthurian Legend
전설 속 영국 왕 아서왕이 나오는 구전 문학, 운문, 산문의 이야기를 총칭하는 것으로, 중세 유럽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아서왕 전설은 본래 영국 브리튼섬 남부의 브리튼인의 신화였다. 로만 브리튼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선진 로마 문물을 받아들인 켈트족으로 기독교인이었다. 따라서 아서왕 전설 역시 켈트 신화가 바탕이 되는 가운데, 로마 신화의 요소가 더해져 있으며 기독교 신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바다 건너 넘어온 앵글로색슨족의 영향을 받으며 게르만 문화 요소가 더해졌고, 중세 시대 내내 전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유럽의 여러 영웅 서사들이 편입되며, 중세 유럽의 방대한 이야기군(群)인 아서왕 전설이 만들어졌다.
2. 인기
아서왕 전설은, 영국의 수도사 몬머스의 제프리가 라틴어로 <브리타니아 열왕사>(1135~39)를 쓰고 전 유럽에 퍼지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제프리는 웨일스 지방에서 구전되거나 흩어져 있던 아서왕 관련 전설, 민담 등을 모아 최초로 아서왕의 생애를 문헌으로 기록했다.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중세시대 가장 인기 있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서왕 전설의 필수 요소로 생각되는 것들 역시 <브리타니아 열왕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아서왕은 브리튼섬은 물론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오크니 제도를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했고 이후 노르웨이, 덴마크, 갈리아를 정복하며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다. 아서왕은 수많은 영웅을 거느리고 있는 왕 중의 왕이며 수많은 무공을 세운 최고의 영웅이자 중세 기독교 위인이었고, 예전에는 따로따로 존재하는 독립된 전승의 주인공인 영웅의 이야기들은 모두 아서왕 전설의 사이클에 통합된다. 아서왕 전설이 전 유럽에 퍼지며 해당 지역의 영웅들의 민담과 전설, 신화 속의 이야기들이 아서왕을 섬기는 기사 이야기로 계속 편입이 되며 아서왕 전설은 유럽 전설의 집대성판이 되었고 여기에 여러 문학가, 음유 시인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어레인지되며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중세 후반으로 가면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군웅할거하며 각기 무용을 펼치고 로맨스를 벌이는 양산으로 가며 '궁중 소설' 양식이 강해졌다. 아서왕 전설은 문헌마다 주제부터 사건, 등장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으로 모든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 같은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야기마다 다른 성격과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본(異本)들이 있는 이야기이다.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판본마다 그 차이가 심각하게 다르다. 프랑스나 독일 등 대륙으로 이야기가 전파되면서는 자국의 기사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들을 덧붙여졌고 시간이 감에 따라 원탁의 기사들 모험담이 늘어나며 프랑크 왕국의 왕 카롤루스 대제의 12기사 이야기나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 출신의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엘 시드, 부르군트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니벨룽의 노래 등과 함께 중세의 대표적인 기사도 문학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된다.
15세기쯤에는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의 문화, 종교, 전설 등이 난무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파생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버렸는데 1470년, 아서왕 전설을 집대성하여 출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토마스 맬러리(Thomas Malory)이다. <아서왕의 죽음>(Le Morte d'Arthur, 원래는 le morte Darthur로 작성)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집대성판은 분량이 웬만한 대하소설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전설 속의 왕인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출처에서 자료를 모아서 엮어낸 15세기의 중세 영어로 된 산문으로 이 작품은 완성된 아서왕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영국 최초의 산문 작품이기도 하다. <아서왕의 죽음>은 창작이 아니라 과거에 만들어진 여러 이야기들을 편집, 재배열, 해석 및 수정한 저술인 만큼 등장인물이나 내용에 일관성과 개연성이 없다. 말로리의 시대는 아서왕 전설이 관심에서 멀어졌던 시기였지만, 온갖 판본들을 수집해서 정리했다.
아서왕의 전설은 중세 시대 내내 큰 인기를 모으다 14~15세기 르네상스 문화 운동에 따라 연극, 희곡이 발전하며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19세기 중세주의, 낭만주의, 고딕 부흥 운동으로 부활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현재까지도 문학과 다양한 매체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중세에 완성된 무용담과 전설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힐 만큼 파급력이 높아 영국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 전설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문학 작품이 탄생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이 '아서왕 전설'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아 이를 바탕으로 하거나 모티브를 따온 영화/소설/드라마/게임 등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을 아울렀던 상상력의 원천이자 판타지 예술의 원류라 할 수 있다.
3. 탄생 배경
전설의 배경은 로마 제국의 약화된 로만 브리튼 이후(sub-Roman Britain) 시대로 로마 군단이 철수한 5, 6세기경이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의 선진 문화를 수용해 로만 브리튼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고 기독교를 믿는 이들은 로마군이 철수한 이후, 이교를 믿는 이민족의 침입에 직면하게 된다. 아서왕의 초기 설화들을 보면 아서왕은 브리튼의 영웅으로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는 신화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브리튼인들의 멸족과 망국에 대한 위기감과 구원자에 대한 열망이 아서왕 전설의 바탕이 되었다.로마 군단이 철수한 힘의 공백 아래 로마화된 켈트족인 브리튼인들은 야인(野人) 켈트계인 픽트족, 게인족, 스코트족의 잦은 약탈로 막심한 피해를 당하게 되었고 이후 주트족, 색슨족, 앵글로족, 프리시족 등 게르만계 부족들까지 북해를 건너오면서 영국 섬 안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면 게르만 대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브리타니아의 지배층이 게르만계인 앵글로색슨족으로 바뀌게 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의 브리튼섬은 국세가 기울어진 로마 제국이 대륙의 방어를 위해 주둔군을 모두 철군시킨 이후, 토착 민족인 브리튼인들과 유틀란트반도에서 몰려온 앵글로색슨족 등의 게르만족에서 갈라진 일파 간의 치열한 영역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브리튼인들은 지속적으로 대륙에서 건너온 게르만족과 로마군 주둔 시절부터 북쪽 칼레도니아 지역에 살고 있었던 픽트족 등에 밀려서 6세기 이후 웨일스 지역으로 쫓겨나고 만다. 이 시기는 흔히 영국 역사에서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로, 당대의 관련 기록이 극히 적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는 한참 후대에 기술된 문헌이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 따르면, 브리튼인들에게 암울하기만 했던 이 시기에 일시적으로나마 브리튼인들이 게르만족에게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게르만족의 공격이 크게 위축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학자들은 이때 브리튼인들의 승리를 이끌었던 군사령관이자 부족장을 바로 아서왕 전설의 원형이 되는 인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문헌 기록이 거의 전무하여 아서왕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 과연 실존했는지, 실존했다면 어떤 인물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자세한 것은 아서왕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시기 영국의 거의 유일한 당대 기록물로 가톨릭 수도자 길다스(Gildas)가 라틴어로 쓴 <브리타니아의 파멸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이라는 일종의 연대기가 있는데, 이 기록에 보면 브리튼인들이 마운트 바돈의 전투(Battle of Mons Badonicus, 바돈산의 전투)에서 게르만 일족인 앵글로색슨족을 크게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서는 브리튼인들을 누가 이끌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아서왕에 대한 언급은 9세기경 웨일스의 수도자 넨니우스(Nennius)가 감수한 것으로 알려진 <브리튼의 역사(Historia Brittonum)>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 문헌에서는 아서왕이 참전한 12개의 전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아서왕은 마운트 바돈 전투에서 십자가 깃발을 올리고 홀로 960명을 쓰러뜨렸다고 되어 있다. 이어 10세기경의 문헌인 <웨일스 연대기(Annales Cambriae)>에도 바돈 전투와 더불어 아서왕과 메드라우트(Medraut, Modred)가 맞붙었던 캄란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이때까지만 해도 모드레드가 반역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로만 브리튼인들은 서쪽의 웨일스로 밀려났으며 일부는 프랑스에 브르타뉴(Britany)로 건너갔고 잉글랜드에 남아 있던 브리튼인들의 경우 앵글로색슨족의 지배를 받다가 동화되었다. 헤이스팅스 전투 이후로 사본이 남아 있었던 베오울프를 제외한 고대 영어로 쓰여진 모든 문학 작품들이 소실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노르만 왕조 및 플랜태저넷 왕조의 영향으로 궁중 소설풍의 아서왕의 전설이 유행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결국 앵글로색슨이 영국 역사의 승리자로 남게 됨으로써 아서왕은 영국을 지키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현대의 윈저 왕조에 이르기까지 게르만 계열이며, 예외적으로 튜더 왕조는 브리튼(웨일스) 계열이다. 튜더 왕조의 시조 헨리 7세는 자신의 장남의 이름을 아서로 짓기도 했다.
아서왕 전설 속 배경인 시대에는 기사의 덕목은 있을지 몰라도, 기사도가 형성되기 이전이라 기사도가 존재하지 않았다.[1] 또한 원탁의 기사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독립된 전승의 주인공이며, 이들이 하나의 단체로 묶인 게 바로 원탁의 기사다. 여러 가지로 변형된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원작에 가까울수록 켈트적 요소가 많고, 변형이 많이 된 이야기일수록 강한 무기 등이 등장해 재미를 우선시하는 면을 보인다. 랜슬롯의 검 아론다이트, 아니 랜슬롯 자체도 프랑스의 음유 시인들이 중간에 짜깁기해 넣은 이야기의 변형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후기의 것들은 무용담의 성격은 옅어지고, 궁정 소설의 성격이 강해졌다.
4. 내용
아서왕의 탄생과 왕의 즉위는 멀린과 관계가 있다. 아서왕의 생애를 최초로 기록한 것은 1136년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Historia Regum Britanniae)이며, 멀린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 역시 이 책에서였다.5세기, 브리튼의 왕이자 로마 황제의 후손인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왕이 픽트족에게 암살당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콘스탄스(Constans)는 속세를 떠나 수도승이 되었고, 차남인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Aurelius Ambrosius)와 삼남인 우서(Uther)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 불과했다. 당대의 권력자인 보티게른(Vortigern)이 나서서 첫째 왕자인 콘스탄스를 왕으로 옹립했고 콘스탄스는 수도원을 나와 왕위에 올랐다. 보티게른은 선왕을 암살한 픽트족을 배척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용했고 결국 콘스탄스왕도 침실에서 암살되었다. 왕의 두 어린 동생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와 우서는 신하들에 의해 브르타뉴[2]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성장하게 되었고 더 이상 경쟁자가 없어진 보티게른은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보티게른은 왕위에 오르자 픽트족을 추출해 냈고 스코틀랜드인이 남침을 하자 보티게른은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난 주트족을 용병으로 고용해 이를 막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용병들은 돌아가지 않고 정착해 전쟁을 일으켰고 보티게른은 용병을 막아낼 또다른 용병들을 불러들였고 이민족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보티게른은 여러 개의 도시와 요새들을 넘겨주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다.[3] 도망친 보티게른 왕은 캄브리아(Cambria, 현재의 웨일스)에 정착해 요새를 건설하려 했으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건축의 기초를 놓자마자 밤새 땅이 그것을 삼켜 버리고, 결국 다음 날이 되면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었다. 사제들은 아버지가 없는 소년을 찾아 제물로 바치자 하였고 이에 한 소년이 잡혀온다. 그 소년의 이름은 멀린(Merlin)이었다. 멀린은 인큐버스와 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멀린은 공사하는 주춧돌 밑을 파내면 지하 웅덩이가 있고, 그것 때문에 주춧돌이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라며 지하수를 파야 한다 말한다. 그리고 지하수 바닥에는 돌이 있으며 그 안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잠들어 있으며 깨어나 백룡과 적룡이 싸울 것이며 적룡[4]이 승리할 것이라 예언했다. 예언은 적중했고 이 사건으로 멀린은 예언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멀린의 예상대로 선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왕자와 그의 동생 우서가 10,000명의 군대를 이끌며 밀려들어 왔고, 형제는 보르티게른이 들어간 성을 함락시킨다.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는 왕은 색슨족 등 야만족들을 정벌했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물을 세우고자 멀린을 찾았고 멀린은 스톤헨지를 만들었다. 전쟁도 승리했고 기념비도 세웠으나 아우렐리우스왕의 치세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만다. 보티게른의 아들 파센티우스(Pascentius)가 색슨족과 동맹을 맺고 침략해 왔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왕의 동생인 우서 왕자가 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떠났으며 멀린도 고문으로서 우서와 동행했다. 그 사이 색슨족은 자객을 아우렐리우스왕에게 보내고 왕은 독살당한다. 왕이 숨진 바로 그 순간, 밤하늘에는 혜성이 등장해 어둠을 가로질렀고 우서 왕자는 군대를 이끌고 행진하던 중 이 혜성을 보고 공포와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멀린은 불타는 드래곤 모양의 혜성을 보자마자 아우렐리우스왕이 죽었다는 사실과 이제 우서가 왕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서가 혜성에 대해 묻자 멀린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 별과 불타는 드래곤은 바로 폐하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갈리아의 해안을 향해 쏟아지는 빛줄기는, 폐하께서 매우 위대한 아들을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상징하며 그의 통치는 저 빛줄기가 미치는 곳까지 닿을 것입니다." 이후 우서는 용의 머리를 닮은 혜성이 그의 즉위를 알렸다는 사실에 기반해 두 마리의 황금 용을 제작하여 하나는 교회에 놓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들고 다니는 상징물로 삼았다. 우서는 자신의 통치에 반발하는 콘월을 함락시키고 멀린의 도움을 얻어 마법으로 틴타겔성에 있는 공작 부인과 동침해 아서를 얻고 이후 공작 부인과 혼인하여 콘월과 화친을 맺는다. 이때 우서왕은 멀린에게서 한 조건을 받는데, 마법으로 얻은 아들인 만큼 그로 인해 태어날 아이를 내어달라는 것이었다.[5] 멀린은 장차 태어나게 될 우서의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예지했다. 아서가 왕이 되기도 전에 정적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을 염려한 멀린은 갓 태어난 아서를 충직한 기사인 엑터 경에게 맡겨 키웠다. 우서 왕은 적들이 물에 탄 독으로 암살을 당했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 아서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긴 후 눈을 감았다.
우서왕이 죽자 아서는 15세의 나이로 브리튼 국왕의 자리를 계승했다. 선왕의 하나뿐인 아들이 신분을 감추고 자라 바위에 박힌 전설의 신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자격을 증명하고 왕위에 오르는 이야기는 아서왕 전설 속 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멀린은 아서가 신탁이 쓰인 바위에 꽂힌 칼리번(엑스칼리버)을 뽑고 나서야 비로소 아서가 우서 펜드래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표하는데, 이런 극적인 스펙터클은 모두 멀린의 기획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은 경위에 대해서는 바위 또는 무쇠 모루에 꽂혀 있는, 왕이 될 자만이 뽑을 수 있는 것을 뽑았다는 이야기가 최초의 이야기로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후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호수의 여인에게 받았다는 설정이 13세기의 <Suite du Merlin>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그 뒤 두 설정을 혼합된 것도 나오게 되는데 일단 칼을 바위에서 뽑아 왕이 된 다음, 퍼시벌의 아버지인 펠리노어왕과 한 결투 중 이 칼이 두 동강이 나자 멀린의 주선으로 호수의 여인에게서 검을 받았다는 설로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왕의 죽음》에서는 혼합된 설정이 나왔다.
9세기 넨니우스의 <브리튼 역사(Historia Britonum)>에 따르면, 아서는 색슨족에 저항해서 12번의 전쟁을 치렀으며 몬스 바도니쿠스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또한 리엔스왕의 거인과 성 미카엘산의 거인을 토벌한 무용담도 있다. 아서왕 전설은 켈트 신화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거인 2명을 처치 등의 초기 아서왕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켈트 신화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가 있으며 여러 시대, 여러 지역의 여러 민족의 비슷한 설화가 섞여져서 다양한 이본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아서왕이 기사들에게 성배를 찾으라 명하는 성배 이야기의 원전 역시 켈트 신화의 누아다의 황금 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며 중세 시대 내내 기독교적 색채가 강화된 것으로 본다. 아서왕의 왕관은 성화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인들 뒤를 비추는 후광을 본뜨고 있으며, 이는 왕궁의 상징인 원탁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서왕은 기네비어와 혼인해 아버지 대에 이어온 동맹을 혈맹으로 발전시켰고 이후 해외 정복을 시작한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오크니 제도를 정복하여 아서 제국을 세웠고 그 뒤 아서왕은 재차 정복 사업에 나서 노르웨이, 덴마크, 갈리아를 정복하며 제국을 확장시켜 나갔다. 아서의 정복지 중 갈리아는 로마 제국의 영토였기에 아서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아서 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의 대결로 이어진다.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은 갈리아에서 로마 황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격파했다. 그러나 아서가 로마로 진격하려는 순간, 아서왕이 섭정을 맡긴 조카[6] 모드레드가 브리튼 땅에서 반란을 일으켜 기네비어 왕비를 아내로 삼고 왕좌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전의 웨일스 기록들을 보면 모드레드는 일관되게 아서왕의 휘하에 있는 인물로 그려지나 제프리 설정 이후부터는 반역자로 설정된다. 아서왕은 회군하여 모드레드를 창으로 찌르나 아서왕도 큰 부상을 입고 말았으며 이 전투에서 맏조카 가웨인을 잃는다. 프랑스로 전래되면서부터는 랜슬롯이 등장하며 기네비어와의 불륜을 저질러 재판을 통해 화형이 결정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사들이 서로 싸우며 죽게 되었으며 아서왕은 부정을 저지른 랜슬롯을 쫒아 프랑스로 가는데 모드레드가 반란을 일으켜 캄란 전투를 하게 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아서왕에게 자식이 없다는 설정과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당시 브리튼인의 멸족과 망국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서왕의 결말은 아발론으로 떠나는 것이다.
부상을 입은 아서왕은 아발론으로 가서 치유를 하며 안식을 하게 된다. 아발론이라는 지역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브리타니아 열왕사>(Historia Regum Britanniae)이다. 아발론은 아서왕이 가진 신검인 엑스칼리버(Excalibur)가 만들어진 곳으로 아서왕은 부상을 입고 마지막에 이상향 아발론으로 떠나게 된다. 아서왕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아발론에서 가게 되고 아발론의 여왕 모르겐에게 치료를 받아 불사가 되었으며 안식을 취하게 된다. 아서왕의 일대기는 영웅 서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고귀한 혈통, 비정상적 출생, 비범한 능력, 위기가 닥치고 위기를 벗어나고 극복하는 것이 그러하다. 또한 아서왕의 결말은 언젠가는 다시 부활해 재림하여 나라를 구원해 줄 영웅으로 마무리가 된다.
《아서왕의 죽음》에서는 이후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전투에서 베디비어와 아서왕만이 살아남고, 베디비어가 아서왕의 명령대로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지고 돌아오자 고어의 여왕인 모건 르 페이, 노스갈리스의 여왕, 퍼시벌의 숙모인 황무지의 여왕, 호수의 여인 니뮤에가 나룻배를 타고 찾아왔다.
"이제 나를 배에 실어라." 왕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몹시 천천히 실었다. 매우 애도하던 세 명의 여왕이 맞이하였다. 그들은 왕을 내려놓았고 그들 중 한 명이 아서왕의 머리를 무릎에 눕혔다. 그리고 그 여왕이 말했다."아, 사랑하는 동생아, 어찌 지체하였는가? 아아, 네 머리의 상처가 차갑게 식어버렸구나." 그들이 노를 저어 땅으로부터 멀어지자 베디비어 경이 떠나는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디비어 경이 외쳤다. "아 제 주군 아서여, 저는 어찌합니까, 이제 제게서 떠나시고 저를 많은 적들 사이에 홀로 두십니까?" "스스로 위안을 가져라." 왕이 말했다.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내게 의지할 수 없노라. 나는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아발론의 계곡으로 떠난다. 만약 더는 나에 대해 듣지 못한다면,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하라."
아서왕 전설은 수많은 내용이 덧붙여지고 달라져 왔지만 결말만큼은 오늘날에도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의 구원의 열망을 따르고 있다. 아서왕이 아발론에서 언젠가 다시 귀환할 것이라는 결말은 아서왕 전설에서 대단히 중요 요소이자 핵심 모티브여서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는 메시지를 남겨주고 있다.
5. 세계관
5.1. 가계도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아서왕의 탄생과 죽음까지 그 생애를 서사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문헌[7]으로 《브리튼인의 역사》나 《캄브리아 연대기》가 그러했듯 《브리타니아 열왕사》에서도 역시 아서왕의 시대를 로만 브리튼 이후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켈트 신화에서 아서 왕이 신들의 후손이었다면, 《브리타니아 열왕사》에서는 로마 왕조의 후손으로 나온다. 아서왕의 전설에는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의 여러 영웅들의 스토리가 들어 있으며, 그 때문에 시대순으로는 연결이 안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즈음이지만 로마인인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등장하기도 한다.아서왕의 할아버지 '콘스탄티누스 2세'는 브리튼섬에 처음 상륙한 건국왕 브루투스와 연결되며, 그보다 더 올라가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다. 우서왕은 자신의 통치에 반발하자 콘월을 함락시켰고, 전투에서 공작이 전사하자 틴타겔성에 있는 공작 부인과, 마법으로 아서를 얻고 혼인했는데 이 설정[8]은 바로 제프리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서 이후 일반적인 설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에 따라 아서왕의 고향은 콘월(Cornwall)의 틴타겔이 되었고, 영국 왕실도 의미를 부여해 국왕의 장남을 '콘월 공작'으로도 지명하며, 그의 부인은 '콘월 공작 부인'이라는 공식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전설에 나오는 적룡은 현재 웨일스의 상징으로 웨일스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아서왕의 가계도 |
5.2. 등장인물
5.3. 무구 및 아이템
5.4. 지명
- 카멜롯
- 아발론
- 카얼리온 아르 위스그
- 코르베닉
- 틴타겔
- 아르모리크 브르타뉴
- 디나스 엠리스
- 로그레스(Logres): 아서왕이 다스린 왕국의 이름. 즉 고대 브리튼의 이명이다. 영어식으로는 로그레스(Logres) 혹은 로그리스(Logris)라 표기하며, 라틴어식으로는 로에그리아(Loegria)로 표기한다. 라틴어식 표기인 로에그리아는 웨일스 신화에서부터 언급되는 지명으로 어원은 중세 웨일스어에서 잉글랜드를 뜻하는 단어인 흘로에거르(Lloegyr)이다. 현대 웨일스어에서는 흘로에그르(Lloegr)라는 표현으로 잉글랜드를 부르고 있다. 한편 카멜롯은 이 로그레스 왕국의 수도의 이름이며 성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쪽은 본래 웨일스 신화에서는 없었던 지명으로 프랑스에서 창작된 것이 시초.
5.5. 상상의 동물
- 드래곤: 이 작품 속에서는 총 네 마리가 등장했는데, 그중 두 마리는 색슨족을 상징하는 하얀 용과 브리튼인을 상징하는 붉은 용이다. 나머지 두 마리는 하나는 트리스탄과 싸운 독룡이고, 다른 한 마리는 랜슬롯과 싸웠다.
- 거인: 여러 거인들이 있다. 아서왕은 성 미카엘산의 거인과 싸웠다고 하며, 랜슬롯은 티퀸이라는 거인 기사와 싸웠다고 전해진다. 콜랑이라는 키가 5m나 되는 거인도 등장한다.
- 퀘스팅 비스트
- 아팡크: 아서왕이 죽인 반은 수달에 반은 파충류의 모습을 한 호수 괴물이라고 한다.
- 악마
- 거인의 말: 콜랑이 탔던 거대한 말.
- 카스 팔루그: 케이 경이 퇴치한 괴물 고양이.
5.6. 기타
6. 문헌
- 12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수도승 몬머스의 제프리는 저서 《브리타니아 열왕사》, 《멀린의 생애》를 통해 아서왕 전설을 1차로 정립한다. 아서왕의 생애를 최초로 기록한 문헌인 《브리타니아 열왕사》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며 아서왕과 아서왕 전설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 12세기 후반 프랑스 작가 크레티앙 드 트루아는 《에레크와 에니드》, 《클리제스》, 《사자의 기사 이베인》, 《짐마차의 기사 랜슬롯》을 창작했으며 아서왕 전설을 기사도 문학으로 확립시켰다. 미완성작으로 《성배 이야기, 페르스발》이 있다. 아서왕 전설의 성배 이야기 중 최초라고 하지만 Graal이 성배인지 확실하지 않다. 한국에선 《짐마차의 기사 랜슬롯》은 《죄수 마차를 탄 기사》로, 《성배 이야기, 페르스발》은 《그라알 이야기》로 번역되어 출간됐다.
- 15세기 영국의 작가 토머스 맬러리는 《아서왕의 죽음》을 집필하여 다양한 출처에서 자료를 모아 그간에 나온 여러 가지 아서왕의 전설을 집대성했다. 15세기의 중세 영어로 된 최초의 영어 산문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토머스 불핀치의 축약판만 번역되었다가 2010년에 나남에서 출간.
-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1375~1400년경 영국 중서부 지방에서 만들어진 전기적 두운시. 중세 영국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7. 창작물
- 국내에 완역된 저작 중에서는 장 마르칼의 《아발론 연대기》가 켈트적 원형을 그나마 가장 잘 살렸다고 한다. 다만 바로 아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말 그대로 그나마이다.
- 국내에 버나드 콘웰 경의 《아서 왕 연대기》[9]라는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내용은 아서왕 전설을 '역사에 이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일단 아서가 왕이 아니라 실권자이지만 장군에 머무는 점이라든지, 기존에 알고 있던 여러 가지 신성한 의식이나 인물이 상상을 초월하게 바뀌어서 나온다. 예를 들어 원탁의 기사의 원탁은 그냥 돌 탁자라거나, 랜슬롯이 희대의 쓰레기[10]라거나. 재밌는 게, 위의 프랑스 작가 장 마르칼이 쓴 쪽에서는 랜슬롯이 참 훌륭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 영국인 입장에서 프랑스인들이 자기네 왕비 네토라레하려고 만든 캐릭터가 참으로 고까워 보였나 보다.
- 1979년 일본에서 토에이가 SF 서유기 스타징가의 후속작으로 <원탁의 기사 이야기 - 불타올라라 아서>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후지TV에서 방영했다. 한국에도 수입 방영 되었으며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라는 가사로 유명한 한국판 주제가는 80년대 응원가로 널리 쓰였다.
-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이야기 시리즈 중 소닉과 암흑의 기사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따왔다.
- 영화로는 수없는 작품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유명한 것은 엑스칼리버, 카멜롯의 전설, 킹 아더, 아서 왕: 검의 전설 등이 있다.
-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가 바로 이 아서왕 전설의 패러디다. 주인공인 아서왕을 포함해 원탁의 기사들이 제대로 망가지는데, 결말에서는 성배가 있는 '아아악성'(Castle of Arrrgh)으로 진격했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영국 경찰에게 전원이 체포되어 끌려간다.
- 유희왕 오피셜 카드게임의 "성기사" 카드군이 이 전설을 다뤘다. 랜슬롯이 타락하여 아서와 맞붙는 것과 엑스칼리버, 성배 전설, 베디비어가 엑스칼리버를 반납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허나 모드레드가 클라렌트를 습득하는 묘사가 나온 반면 아서와 마지막 싸움을 벌이던 모습은 "아서가 랜슬롯과 맞붙다 아발론으로 사라졌다"라는 식으로 묘사된 것인지 등장하지 않았다. 샤를마뉴의 12기사 전설 역시 "불꽃성기사" 카드군으로 등장했지만, 이쪽은 샤를마뉴 일행의 적수로 등장했던 사라센 세력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 가면라이더 세이버에선 성검, 아발론 등 아서왕 전설을 오마주한 부분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왕의 자격을 갖춘 두 마리의 용이 대립하는' 부분은 기사왕의 힘을 얻기 위해 세이버, 칼리버가 두 마리의 용으로서 대립한 장면으로 오마주했으며, 세이버는 "아서왕이 원탁의 기사들을 믿었던 것처럼 나 또한 동료(검사)들을 믿어보겠다"라고 외쳤다. 키 아이템으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를 상징하는 '킹 오브 아서'란 이름의 아이템이 나오기도 했다. 정작 킹 오브 아서는 작중 핵심 키워드인 성검과는 별 관련이 없는 가면라이더 세이버가 다루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로만 묘사되었으며, 초반부 이후로는 아서왕 전설이 키워드로 등장하지 않는다.
- Fate 시리즈의 시작인 Fate/stay night는 본디 아서왕 전설 중 성배 탐색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창작물이었으며, 인게임 에피소드 중 하나인 Fate 루트는 아서왕 전설과 직접적인 연장선상에 있으며 아서왕이 핵심 인물이다. 이후 Fate/Zero를 시작으로 원탁의 기사들이 서번트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설정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다. 이후 Fate/Grand Order에서 신성원탁영역 카멜롯에서 아서왕 전설을 한번 본격적으로 다뤘고, 2부 요정원탁영역 아발론 르 페이에서 아서왕 전설의 악역이자 조력자인 모건 르 페이를 중심으로 한 번 더 다룬다.
-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에 나오는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의 모티브가 되었다. 또 원탁의 기사들 이름을 따온 등장인물들이 몇 있는데 행보가 원작을 따라가기도 한다.
- 영국의 워해머 40,000의 인류제국을 건설한 황제와 그가 창조해 낸 프라이마크들의 설정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모드레드의 반란으로 브리튼 왕국의 전성기가 끝나버린 것은 호루스 헤러시로 인류제국이 광신이 지배하는 암울한 시기로 넘어가는 것을 모티브로 하였다.
- 디즈니에서도 이 이야기를 토대로 아서왕의 검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다만 성배 탐색 같은 본격적인 모험담까지는 가지 않았고 아서가 검을 뽑는 순간까지만 나와서 원탁의 기사도 케이만 나온다. 원전에선 의붓형이지만 액터 경을 아서의 후견인이 아니라 몸종으로 부리는 영주라 그냥 주인과 하인 관계다.
- 비행 슈팅 게임 에이스 컴뱃 시리즈 중 6번째 넘버링 작품인 에이스 컴뱃 제로 The Belkan War는 아서왕 전설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11]
8. 관련 문서
[1] 물론 전설에 고증 따지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 이 시기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시기이다. 따라서 원탁의 기사들의 모습도 중세의 기사들보다는 로마 제국 무인들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실제로 로마 제국 시절 브리튼섬은 로마화가 꽤 진행되었고, 반달족이나 고트족의 게르만 전사들과도 당연히 다른 모습이었다.[2] 콘스탄티누스왕의 아버지, 즉 아서왕의 증조할아버지가 브르타뉴(Brittany)의 왕 코나누스(Conanus)이다.[3] 역사적 배경을 보면 449년, 브리튼에 정착한 주트족, 색슨족, 앵글로족 등 게르만계 일파들은 브리튼인들을 몰아낸 뒤에 7왕국을 세웠다.[4] 아서 왕가의 상징이자 웨일스의 상징이다.[5] 판본마다 내용이 많이 다르다. 어린이를 위한 판본에서는 수위 때문인지 콘월 공작 부인과 동침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결혼 후 아서를 가졌다는 판본들도 많다.[6] 모드레드를 조카, 반역자로 설정한 것은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가 최초였다.[7] 아서왕 전설은 웨일스 지방의 신화로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브리타니아 열왕사》가 저술되면서 비로서 기록 문학이 된다.[8] 마법에 의해 태어난 아이[9] 원제는 워로드 크로니클즈.[10] 동생의 연인을 겁탈하는 것부터 시작해 수많은 쓰레기 짓을 저지르는데,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것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 사실 랜슬롯 자체가 후대에 추가된 거라 뺐어도 됐는데 굳이 출현시켜 망가뜨린 걸 보면 어지간히 랜슬롯이 마음에 안 들었던 듯.[11] 주인공 사이퍼의 행적을 보면 엑스칼리버를 뽑고 기사들에게 원탁의 (마)왕으로 인정받지만 마법사의 꾀임에 넘어간 요정 모르간에게 공격받고, 아발론 댐에서의 작전(Operation Point Blank, Zero)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