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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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들아, 넌 살인범의 아들이 아니다.
― 이 사건을 재조명한 그것이 알고싶다 2001년 12월 15일 방송분의 부제
1972년 9월 27일에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일어난 어린이 강간살인 사건이자 조작 사건인 동시에 대한민국 사법계의 어두운 과오 중 하나. 비슷한 사건으로 아시카가 사건, 캐서린 브로우 살인사건 등이 있다.― 이 사건을 재조명한 그것이 알고싶다 2001년 12월 15일 방송분의 부제
2. 사건 발생, 대통령 명령, 검거와 복역
1972년 9월 27일 오후 8시쯤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이던 10살(1963년생) J모양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근처 만화가게로 텔레비전을 보러 갔는데[1]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J모양은 9월 29일 춘천시 우두동의 춘천측후소 뒤편의 논둑길에서 나체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성폭행을 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혈흔과 음모도 찾아냈지만 당시엔 유전자 검사가 없어서 누가 했는지 불분명했다. 이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파출소장 딸의 죽음인지라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받고 '어떤 놈이 경찰 가족을 건드렸다.'고 크게 노해서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이 사건을 포함한 3대 미해결 사건[2]에 대해 "10일 안에 범인을 잡아라. 못 잡으면 인사 조치다."라는 명령을 내렸다.[3]
시한이었던 10월 10일,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범인이라고 발표한 사람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만화 가게를 운영하던 정원섭(1936 ~ 2021)이었다.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정씨는 평소 소녀들을 성추행하고 심지어 만화가게 여종업원들을 성폭행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사건 당일 J양이 자신의 만화 가게에 오자 자신의 가게에선 TV가 잘 안 나오니 이웃 만화 가게로 가서 TV를 보자고 꾀어내 춘천측후소 뒤편 논둑길로 유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간한 후 범행이 들킬까 봐 두려워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검찰도 경찰의 수사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후 정씨를 기소했다. 현장에 정씨 아들의 연필이 있었으며, 증인들의 증언도 일치한 데다 정씨 본인도 사건을 자백했다. 1973년 3월 30일 춘천지방법원 1심 재판에서 정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후(72고합131) 서울고등법원(73노627)과 대법원도 정씨의 항소 및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정씨는 감옥에서 모범수로 복역해 특별 사면으로 15년형으로 감형되어 1987년 12월에 15년을 복역한 후 풀려났다. 그 뒤...
3. 고문과 조작, 39년만의 무죄
정씨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자신을 고문과 짜맞추기 수사로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씨는 1999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2001년 7월 13일 법원 측은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고(99재노17) 대법원으로 재항고했으나 2003년 12월 대법원도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재심 중이던 2001년 3월 21일에 관련 사연이 <동아일보>를 통해 알려져 다시금 쟁점화되었고 12월 15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아들아, 너는 살인범의 자식이 아니다' 편에서도 다루어졌다.[4]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경찰관으로 근무한 이들을 면담해 정씨가 당한 고문 수법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을 밝혀냈다. 한 경찰관으로부터 당시 다른 사건에서 정씨가 당한 것과 유사한 고문을 가하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당시 그는 경찰들로부터 잠 안 재우기, 통닭구이 등지의 고문을 당했고 사흘 만에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찰은 정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증인들을 위협하였다. 정씨가 운영하던 만화 가게의 여종업원들을 감금하거나 가혹 행위를 저질러 정씨가 자신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 한 뒤 협박을 했다는 허위 증언을 하도록 강요했다. 당연하지만 이 여종업원들도 죄를 물을 수 없는 게 이들이 허위 증언을 하게 된 것도 돈이나 회유 때문이 아니라 정씨와 마찬가지로 형사들의 가혹행위와 감금 및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위 증언한 것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여관으로 끌려가 옷이 전부 벗겨진 채 집단 구타와 집에 못 간다는 협박을 받았다.[5] 심지어 당시 여종업원의 나이는 14세, 17세의 미성년자였다. 여종업원들은 1심이 끝나자 성폭행 고소를 취하하고 진실을 밝혔다. 하지만 도리어 법원은 위증 혐의로 구속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처벌을 내리는 등 증인들도 크나큰 수난을 겪어야 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범인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당시 국과수는 이 범인의 혈흔을 조사해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정씨는 A형이 아니라 B형이었다. 취재팀은 국과수 기록 뿐만 아니라 당시 신문 기사에도 버젓이 범인의 혈흔이 발견되었고 혈액형은 A형이라고 나와 있던 것을 찾아냈다.
더욱이 경찰의 짜맞추기 조작 수사는 경찰이 정씨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들이민 정씨 아들의 연필에서도 드러났다. 경찰은 정씨의 아들을 범행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정씨 아들의 연필을 현장에 집어던진 뒤에 '이게 너의 연필이냐'라고 물었다. 아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하자 '그럼 입에 한번 물어봐라' 하고 아들의 이빨 자국을 내게 한 뒤 그걸 가지고 증거를 찾아냈다고 했던 것이다. 심지어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은 노란색 몽당연필이었던 반면 정씨 아들의 연필은 기다란 파란색 연필이었다.[6][7]
2001년 3월 16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건 당시 정씨를 수사했던 경찰관은 총 9명이었다. 이들 중 2명은 사망, 3명은 행방불명 상태였으며 취재팀은 4명만 찾아 인터뷰했다. 그 결과 A는 정원섭을 고문했던 걸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범행을 부인하는 용의자에겐 비행기 태우기 같은 고문을 시켰다"며 "정씨가 그랬다면 그러할 것"이라며 사실상 고문을 시인했다고 한다. 사건 당시 정원섭의 자백을 받아내서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는 B는 고문 여부에 대해서 "사건에 관해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수사 당시 현장인 춘천경찰서와 강원도 경찰국 간 연락 및 서기 업무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 표창장은 상부에서 파견간 탓에 받았다고 주장했다. C는 "정씨가 범인이라 단정할 물증은 없지만 자백을 녹음한 테이프 때문에 심증을 굳혔다"며 "녹음테이프 내용은 범행을 직접 안한 이상 불가능"하다며 당시 기자들이 진을 쳤기에 고문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직도 정원섭이 진범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D 역시 수사 당시 다른 곳에 파견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다른 직원들이 일한 터라 해당 업무에 관여치 않았다고 했다.
당시 수사를 맡던 검사 측도 경찰관들에게 정원섭의 고문 주장이 믿을 만한 건지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1~2심 당시 판사들도 이 사안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며 부인했다.(관련 기사)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로 재심이 다시 이루어졌다. 2008년 11월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으므로 정씨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2008재고합1) 검찰이 항소해 서울고법에서 2심이 열렸고, 2009년 2월 6일에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다.(2008노3293) 이후 검찰이 다시 상고해 대법원까지 판결이 넘어가게 되었다. 대법원에서는 공판 날짜도 잡지 않고 2년이 넘게 사건 판결을 미루다가 마침내 2011년 10월 27일 2심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009도1603) 이로써 정씨는 39년 동안의 치욕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39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 동안 정씨가 당한 고통과 강간살인범이라는 치욕스런 낙인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리고 정씨 가족들이 당한 수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씨의 아내는 강간살인범의 아내라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어린 아이였던 아들이 목격하는 등 가족들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정의롭지 않은 공권력은 무고한 여러 사람의 인생을 짓밟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더군다나 경찰과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조작하고 공소시효도 지나버리는 바람에 정작 사건의 진범은 밝혀지지도 않았다. 결국 범인은 영원히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되어 죽은 피해자의 한 또한 영영 풀 수 없게 되는 비극이 일어났다.[8] 이 사건은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권위주의 및 실적주의 편중의 전형적인 사례다.
2013년 7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당 사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며 국가가 정씨와 그 가족에게 26억 3752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2012가합540547)
4. 정부의 의도적인 국가배상 소멸시효 단축
2014년 1월 23일[9]에 서울고법 민사8부에서는 소멸시효 기간이 열흘 지났다며 정원섭 씨와 그 가족에게 손해배상금 26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2013나2015072) 전혀 다른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2013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12일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전까지 민법에 따라 3년으로 통용되던 소멸시효 기간을 뜬금없이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못박았다. 1심과 2심 사이에 이 판결로 1심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멸시효가 적용되면서 결국 정씨는 단 한 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에 상고까지 했으나 5월 29일 상고심(2014다205539)에서도 마찬가지였다.(링크 1, 링크 2, 링크 3)[10] 한 네티즌은 '그럼 위안부 문제를 시간이 흘렀다고 배상 못 한다고 하면 어쩔래?' 라는 댓글을 썼고 많은 공감을 받았다. # 이 논리는 실제 위안부 부정 세력의 논리와 똑같다.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국민라디오 <고상만의 수사반장>이란 팟캐스트 방송에서 8월 26일 편과 9월 2일 편에서 들을 수 있다.
위에 나온 방식으로 조작된 후 허위자백을 할 때까지 정원섭 목사는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아 왔으며 검찰에서는 '편하게 말하시면 돼요' 라는 말에 경찰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진술을 하기 무섭게 경찰서에서 자신을 고문을 한 그 경찰이 다시 들어와서 또 다시 고문했다. 이것만으로도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문으로 조작을 한 사건인데 그에 대해서 형사사건 재심과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한 민사 1심까지는 멀쩡했던 판결이 위에 나온 저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뒤집히면서 정원섭 씨와 가족들은 또 다시 난도질당한 것이다.
참고로 그 과정의 문제가 바로 위에 나온 소멸시효 기간을 갑자기 줄인 것이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은 소송 절차나 인지세 등이 필요해 준비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무조건 소송접수 기간을 초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서 '니가 더 서둘렀어야지' 라고 훈계질을 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한 판결이라는 것이 문제점이다. 그리고 이 판결은 인민혁명당 사건이라든가 부림사건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앞세운 폭력 피해자,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간첩조작 사건으로 최종 판결이 날 경우 늦게 소송을 제기했다가 소송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기한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을 한 푼도 하지 않겠다는 선례로 사용하겠다는 것을 표명한 재판이었다.
이 우려는 더 나쁜 방향으로 현실이 되어 2015년 5월 28일에 광주 인화학교 사건(일명 도가니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범죄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5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청구권한이 소멸했다는 판결이 등장했다.기사 이것이 마지막 범죄가 일어난 시점부터 5년이라고 쳐도 2010년이고 최초 범죄가 벌어진 시점부터라고 한다면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소송을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편 정원섭 측은 2014년 8월 위 국가배상 관련 판결 취소를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2020년 11월 26일 기각되었다.(2014헌마735)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전 정권에 대한 수사 중 2018년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이 불거진 뒤에야 그 비밀이 비로소 알려졌다. 2015년에 쓰여진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협상추진 전략> 및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11]라는 문건이 폭로되면서 '합리적 범위 내에서 과거사 정립'이란 명분으로 사법부 차원에서 국가배상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로서 실행되었음이 드러났다. #
4.1. 국가와 판검사의 책임 부정
정원섭 목사는 다시 자신을 고문한 경찰관, 기소한 검사, 판결을 내린 재판관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16년에 일부 승소하여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연대해 23억 88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국가의 책임은 모호하지만 경찰이 당시 정씨를 협박한 정황은 명확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고문 경찰과 검찰의 협력으로[12]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기소한 정용식 검사와 이를 알고도 무기징역을 내린 윤상목 판사, 그리고 실질적으로 말도 안 되는 10일 안에 강압적으로 범인을 잡아오라 하여 사실상 조작을 묵인한 국가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다.
정 목사는 가난한 경찰과 그 유족들이 무슨 죄냐면서 이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손해배상액도 받지 않겠다 공언했는데 권력을 가진 검사와 판사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했다. 그러나 국가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책임은 눈 감아주고 경찰[13]의 유족에게나 23억이라는 금액을 토해내라는 전형적인 '가진 자들의 논리'를 펼친 셈이다.# 정 목사는 '빌딩을 수 채나 가지고 있는 정 검사(당시 기소한 검사)는 왜 배상 책임에서 자유로운지 알 수 없다'며 단돈 만 원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넘어갈 생각이 있다고 했다. 아마 그 검사도 돈도 돈이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를 싹 박탈당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그걸 인정할 리가 없다. 그걸 바로잡아 줄 국가가 검사, 판사와 같은 편이니 답도 없다.
당시 검사 정용식 전 서울동부지청장은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등 후일 무죄로 나온 공안조작 사건을 연달아 조작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넘어 전두환 휘하에서 사법 조작으로 승승장구했다. 이후 1989년 2월 검사직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검사 14기와 함께 급하게 빠지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아들도 2013년에 아버지와 같은 육군 3군단 부대에 법무장교로 들어갔다. 나름 대를 이어 법무 장교로 복무한 것이라고 국방부에서는 뉴스도 냈으나 당시를 기억하던 변호사들과 로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각 로펌들이 공식 계정으로 굳이 뉴스란 들어가서 '그저 웃을뿐'이나 '허허허허허허'만 댓글로 다는 지경이었다.
5. 여담
- 사건의 초기부터 법조인 이범렬이 정원섭의 국선 변호를 맡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경력에 1차 사법 파동의 핵심에 위치할 만큼 법조계의 거물이었고 독재 치하의 사법계에 환멸을 느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야인으로 활동했는데 부조리한 사법 사건을 나서서 맡던 중 담당한 것이 해당 사건이다. 대법원 최종심까지 변호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3심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음에도 부조리한 기록들을 전부 문서로 보존시키는 정성도 보이기도 했다.[14] 그러나 공들인 사건의 최종 무죄 판결을 지켜보지 못한 채 1996년 식도암으로 별세했다. 여담으로 정치인 이홍구가 그의 매부라고 한다.#
- 사건이 돌아가는 모습은 1981년 경주 당구장 여주인 살인사건이나 윤보살 피살사건, 여대생 박상은 피살사건과 비슷한 양상이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같은 식의 수사와[15] 검사의 추정에 의한 추리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된 사건들이다. 윤보살 피살사건 같은 경우 경찰은 만행을 하나 더 저질렀는데 형사 중 한 명이 사건 현장에서 죽은 피해자의 돈을 훔쳤던 것이[16] 꼬리가 밟혀 구속된 것이다.
- 또 다른 차이라면 경주 사건은 판결 이후 한 민완기자의 활약으로 억울함이 밝혀져서 재심이 이루어졌고, 진범도 잡혀서 무죄 판결로 결국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윤보살 및 여대생 피살사건은 혐의 당사자가 고문 피해를 폭로한 후, 진범은 못 잡았기에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지만 상소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의 민완기자가 바로 조갑제였다.[17] 춘천 사건도 당대에 이런 추적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진상이 밝혀졌겠지만 이미 전년도 사법 파동 후 사법부가 점차 정부에 순종한 뒤였다. 게다가 윤보살 및 여대생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린 사람들은 금수저 집안 출신[18]이었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다들 비슷한 집안 출신이던 친구들이 재판에 오러 방청석에 줄을 섰으니 재판하는 측에서도 조금 눈치를 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정씨는 평범한 서민층 자영업자였고 법조인들이 두려워할 것 없는 만만한 존재였다.
- 과거에는 이렇게 실적 잡기용으로 무고한 사람을 엮어서 범인을 만드는 일이 제법 있었는데 21세기가 되어서도 실적주의 및 권위주의를 버리지 못한 탓에 힘없는 약자를 상대로 범인으로 모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감시가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 일본에서도 이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야마 사건이 일어났다. 단 이쪽은 범인이라는 증거와 아니라는 증거가 대립하고 있으며 끝내 재심 무죄 판결도 받지 못했다.
- 2018년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정원섭의 근황이 밝혀졌는데 노환으로 인한 뇌출혈 및 치매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며 아들도 그때의 연필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해 8월 10일 MBC <판결의 온도>에서도 해당 사건이 소개되었다.
- 2021년 4월 29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8회에서 이 사건을 소개하였다.# 피해자 정원섭의 아들 정재호가 출연하여 당시의 상황과 혼란을 진술하기도 하였다. 7월 29일에 시즌 2의 마지막 방송에서 다시 한 번 정재호 씨가 출연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정원섭 목사가 5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정재호가 아버지의 납골당에 방문하는 장면도 나왔다.
6. 외부 링크
- 춘천 강간살인의혹사건 조사보고서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8.
- 다음 스토리펀딩 <재판 거래 피해자를 만나다>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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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는 TV가 귀한 시절이라 동네의 부유한 집에 한 대 꼴로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게 같은 곳에서 요금을 받고 TV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았다.[2] 서울 아현동 국민은행지점 납치사건,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 그리고 이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이다.[3] 애둘러서 인사조치라고는 했지만 당시 대통령의 기분을 고려하면 '옷 벗을 각오하고 범인 잡아라.'고 한 것과 다름없다.[4] 2008년 12월 20일에 후속편이 나왔다.[5] 당시 정씨 가게 종업원은 "5~6명이 나를 가운데 놓고, 머리 때리고 잡고 흔들고… 그 상황에서는 죽였다 그러면 죽인 거고, 봤다 그러면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라고 말하였다#.[6] SBS 생방송 투데이 2013년 3월 21일 방송분에 나온 내용.[7] 이 사건의 최초 목격자도 경찰이 내세운 파란색 긴 연필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당시 현장에서 봤던 연필인 노란색 몽당연필이라고 증언했으나 바로 위증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목격자는 다음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하자 풀려났다고 한다.[8]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에 30대 정도 되는 남자가 피해자와 비슷한 외모의 여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이 있었다고 한다. 이 남성이 진짜로 범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느라 진범을 잡았을지도 모를 기회를 놓친 셈이다.[9]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개봉한 지 정확히 1주년이 되는 날이다.[10]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독재·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폭력, 조작 간첩, 의문사 사건 등 반민주·반인권적인 '과거사' 피해자들은 여전히 많다. 이 판례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정씨들' 이 줄줄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11] 문건 제목과 내용부터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정부란 행정부를 말하는 것이고, 사법부가 행정부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상호견제를 위해서다.[12] 앞서 언급되었듯이 검사에게 고문 사실을 털어놓자 고문했던 경찰이 다시 들어와 고문했다.[13] 그렇다고 해서 당시 경찰들을 절대 옹호해 줄 수는 없다. 2008년 재심 이후 경찰들은 고문 협박 사실을 일체 부인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무부장관의 시한부 검거령 때문이었다고 하기에는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십수년 간 옥살이를 하게 만들고도 자신들은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런 그들 본인도 아니고 그 유족까지 포함해 모든 배상 책임을 물리는 건 그것대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유족들은 이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그 경찰들의 가족으로 태어났을 뿐인 사람들이다.[14] 그가 적은 자서전 수필에서도 "그 사건만 생각하면 창자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며 해당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15] 심지어 증인을 조작하기 위해서 당구장 종업원을 협박해서 여종업원이 경찰의 괴롭힘을 피하여 나체로 탈출하는 일도 벌어졌다.[16] 피해자는 당대 유명했던 무속인으로 꽤 부자였다.[17] 조갑제는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했을 때 독자적으로 취재하러 내려갔으며 당시에는 진보 성향의 기자였다.[18] 윤보살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린 조카며느리는 아버지가 의사였으며 본인은 서울대 졸업생 출신이었고 남편은 검찰공무원이고 딸도 명문대에 보냈다. 심지어 그녀가 대학을 다닌 시대는 50년대였는데 당시엔 국졸과 무학이 대부분이었음에도 서울대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것도 여자가! 여대생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린 피해자의 남자친구도 해외여행 자율화조차 안 되었던 시대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19] 1972년에 36세였으므로 1936년생으로 추정된다. 2021년에 85세가 되므로 고령의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