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1:12:37

고요한 아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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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여담

1. 개요

▲ Fr. Norbert Weber,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5)[1]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은 19세기 후반 서구권에서 조선(朝鮮)을 소개할 때 사용한 초기 번역어이자 관용적 어구다.

21세기에도 구한말을 가리키는 별칭처럼 남아 있다.

2. 상세

서구인들은 조선이 어떤 나라고 그 국민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200년이 넘은 하멜이나 마르티니의 오래된 단서에 기대 '신비한 동방의 나라'를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 그리피스(W.E. Griffis)는 1882년 《조선, 은자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그런 조선을 서양에 처음 소개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이 섞인 서구인의 한국관을 해소하고 조선의 역사와 풍속을 상세히 설명했다. 다만 당시 그리피스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 번도 조선을 찾은 적이 없었고 일본인들에게 조선에 대한 참고를 받았는데 참고 문헌의 문제로 상당한 한계를 보였다. 그는 초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My purpose in this work is to give an outline of the history of the Land of Morning Calm-as the natives call their country-from before the Christian era to the present year.
이 책의 나의 목적은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고요한 아침의 땅(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름)의 역사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는 것.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VI. #

그리피스의 언급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조선의 어원은 한국의 고유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2000년이 넘은 문제로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글자의 뜻 그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조선의 선(鮮)은 고요할 선(禪)이 아니므로 깨끗하다, 선명하다, 생생하다 등으로 읽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그리피스도 본문에서는 재차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The native name of the country is chó-sen (Morning Calm or Fresh Morning), which french writers, spell Tsio-sen, Teo-cen, or Tchao-sian. (강조는 인용자)
그 나라의 현지 이름은 chó-sen(고요한 아침 또는 신선한 아침), 프랑스 작가들에게는, Tsio-sen, Teo-cen 또는 Tchao-sian으로 표기.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3. #

그리피스가 의도적으로 그 뜻을 왜곡, 적어도 취사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석화정에 의해 "originating from a Westerner's imaginative translation"이라고 표현되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의 은둔국 이미지를 '고요하다'는 문학적 수사로 삽입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문명을 개화하여 태양처럼 떠오른 왕국(Sunrise Kingdom)인 일본에 대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rea cannot long remain a hermit nation. The near future will see her open to the world. Commerce and pure Christianity will enter to elevate her people, and the student of science, ethnology, and language will find a tempting field on which shall be solved many a yet obscure problem. The forbidden land of to-day is, in many striking points of comparison, the analogue of Old Japan. While the last of the hermit nations awaits some gallant Perry of the future, we may hope that the same brilliant path of progress on which the Sunrise Kingdom has entered, awaits the Land of Morning Calm.
한국은 오랫동안 은둔국가로 남을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그녀가 세상에 공개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상업과 순수한 기독교가 그 민족을 고양시키기 위해 들어갈 것이며, 과학, 민족학, 언어를 전공하는 학생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유혹적인 분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금단의 땅은 여러 가지 놀라운 비교 점에서 옛 일본과 유사하다. 마지막 은둔 국가가 미래의 용감한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일출 왕국이 들어섰던 것과 동일한 빛나는 진보의 길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랄 수 있다.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10. #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L. Lowell)은 1883년 한양에서 약 3개월간 체류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2년 뒤인 1885년에는 기록을 정리하여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를 출간하였다. 그리피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morning calm” they called it; and it seemed not so much a name as its very essence"라고 말하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제목에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백과사전식으로 조선의 풍물을 기록하고 조선 풍경을 담은 사진 25매를 함께 엮어냈다.

정리하면 한국을 가리키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어구는 일본을 가리키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The Land of the Rising Sun)"에 상응했던 것이고 여기에는 조선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영국의 새비지 랜도어가 1895년 《한국 혹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제목으로 기행문을 출간하고 독일의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e der Morgenstille)》라는 이름으로 여행기를 출판하였으며 1925년에 기록영화로 만들었다.# 또 게이드와 스콧이 1919년 조선을 방문하고 《옛 한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이름의 회고록을 1946년에 출판하는 등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별칭은 한국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다.
"이 국호[조선]의 뜻은 매우 시적인데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의미하며 현재의 조선 사람들에게 알맞은 표현이다. 왜냐 하면 정말로 그들은 그들의 선조인 고구려의 정열과 힘을 전적으로 상실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에 기대하는 이미지는 이 기행문에서 단박에 깨지고 만다. 고요한 아침이란 정열과 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무기력한 나라였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게 되면 그는 나머지 돈으로 도박을 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대(大)자로 누워 24시간 동안 숙면하고 다음 날 12시쯤 땅 위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지게 옆에서 햇볕을 쬐면서 아직도 반쯤 졸린 눈으로 자기의 어리석음을 곰곰이 생각하며, 짐을 나를 인간 짐승의 봉사를 요구할지도 모를 행인으로부터 새로운 주문을 찾게 된다."
이 문단에서도 '고요한 아침'이라는 표현이 이르는 바가 명확히 드러난다. 해가 뜨고 사람들이 일어나 일할 준비로 부산스러워야 할 아침이 조용한 이유는 조선인의 무기력과 나태함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묘사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지은은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스스로 부르는 것은 서양인의 눈을 내면화해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은 당대에도 있었는데 구한말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호머 헐버트도 그리피스의 《조선, 은자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신 ‘서광이 비치는 아름다운 아침’이라는 뜻인 ‘Radiant Morning’이나 ‘Morning Radiance’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밝다. 아름답다. 깨끗하다’는 뜻의 선(鮮)자를 왜 ‘고요하다’는 뜻의 ‘Calm’으로 해석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한 한 부분에서 헐버트가 오류를 정확히 지적한 것을 알 수 있다.[2]

3. 여담

  • 위와 같이 자세히 일일이 따지고 들어보면 부정적인 뉘앙스를 세 단어로 표현한 호칭이지만 현대 한국에서도 종종 쓰인다.[3] 대표적인 예로 대한항공의 상급 마일리지 단계 및 기내 소식지 이름이 여기서 따온 '모닝캄'이다.
  • 이승만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 YMCA에서 행한 연설 제목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ㅡ 한국」이었다.[4]
  • 김재준이 작사한 찬송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에도 매 절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 현대에 와서는 반어법이나 와전된 의미로도 쓰이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로 불렸지만 실상을 뜯어 보면 전혀 신사적이지 않았듯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고요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물론 반어법보다는 그냥 뜻 그대로 수식어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주로 한국인에 의해서 쓰인다.
  • 단어의 뜻도 당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주로 쓰냐에 따라 아예 뜻하는 바가 바뀌기도 하듯이 현대에 들어서서 굳이 한국을 비하할 목적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응용하는 경우는 없다. 현대에 쓰기에는 어감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시적인 데다 헬조선 같이 이미 한국을 비하할 다른 과격한 단어와 주제도 많을(...)뿐더러 이 용어를 아는 외국인들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본래 비하의 뜻을 담은 단어임을 아는 한국인들도 많지 않다. 그리고 비하의 대상인 한국인들조차도 본래 뜻을 거의 모르는 단어인데 외국인들이 상세한 내막을 아는 경우는 아시아 개화기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훨씬 더 희귀하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현대 들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대한항공의 예에서처럼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사실상 용법의 전부를 차지한다.
  • 한편 그리피스가 썼던 Hermit Nation(은자(隱者)의 나라 혹은 은둔의 나라) 역시 영미권에서 당대 조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널리 쓰였다. 이 표현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주로 Hermit Kingdom(은둔의 왕국)이라 하여 폐쇄적이고 고립된 북한을 이르는 표현으로 쓰인다.
* 기아준대형 세단 K8의 2023년형 광고에서 해당 문구가 쓰였다.60초 버전
  • 빅토리아 3의 도전 과제명이다. 조선으로 동학 농민 운동 탄원[5]에 성공하면 은자의 왕국이 완료된다. 실패하면 농민들이 내전에 가담하며 청나라의 조공국인 경우 자동으로 개입하며 일본도 특약으로 부를 수 있다. 일본을 부르는게 나쁜 건 아니지만 뭔가 굉장히 찝찝하면 안 불러도 제압하는 건 문제없다.

[1] 1911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조선의 민속 문화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베네딕토회의 베버 신부가 1925년 조선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찍은 기록영화다.[2] 참고로 그리피스는 1902년 미국 동부에서 발행되는 잡지(<뉴잉글랜드>)에 ‘한국, 난쟁이 제국(Korea, the Pigmy Empire)’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이에 헐버트는“한국인을 마치 미개하고 지능이 낮은 열등민족으로 표현했다”는 반박글을 기고(<The Korea Review(한국평론)>·1902년 7월호)했다. 오류에 대한 비판과 함께 헐버트는 “조선은 지금 개화를 앞당기고 있고, 정치형태도 변하고 있어 더는 운둔의 나라가 아니”라면서 “그리피스는 제발 조선에 와 보고 조선 관련 글을 쓰라”고 그리피스를 지적했다.[3] 적어도 20세기~21세기 초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압축성장과 호황기를 겪은 역사가 있다. 암울하기 짝이 없던 구한말 시대와는 다르게 희망찬 미래를 지칭하는 식으로 바꿔 쓰기도 한다.[4] 李元淳, 《人間 李承晩》, 1956, 新太陽社, p. 127[5] 농민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양반을 여당에서 내쫒고 고립주의를 제정하는 퀘스트, 고립 주의의 패널티가 커서 컨셉용 일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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