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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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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친미 미빠

1. 개요
1.1. 혐미
2. 상세3. 용어4. 국가별 사례5. 반미의 오용6. 주요 반미 국가
6.1. 현재6.2. 과거
7. 반미 성향을 지닌 인물/단체
7.1. 대한민국7.2. 기타 국가
8. 반미 성향 웹사이트 및 언론
8.1. 대한민국8.2. 기타 국가
9. 같이 보기

1. 개요

반미(, Anti-American) 또는 반미주의(Anti-Americanism) 미국인, 미국 패권, 미국 문화, 미국 정부의 정책 등 미국에 관한 것을 거부/반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1.1. 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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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전반, 즉 한민족이나 대한민국/북한 국적자 등에 대한 차별은 anti-Korean sentimen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혐한'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인]에 대한 혐오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북한[인]에 대한 혐오는 anti-Korean sentiment에 속하지만 보통 '혐한'과는 별개로 본다. 또한 ethnic Korean (한민족) 뿐 아니라 비한민족 계열 대한민국/북한 국적자도 넓은 의미의 Korean에 포함된다. }}}}}}}}}

잘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극단적인 반미를 혐미(嫌美)라고도 부른다. 일단 동아시아에서 반한/혐한, 반일/혐일, 반중/혐중 등 '반'[감]과 '혐'[오]를 구별하는 것과 달리, 영미권에서는 반미와 혐미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둘 다 Anti-Americanism이라고만 지칭한다.

2. 상세

그 기원은 18세기 중반으로 올라간다. 당시에는 프랑스의 귀족 뷔퐁 백작, 백과전서파 레날 신부 등을 비롯한 일부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식민지 미국의 풍토는 유럽에 비해 열등하므로 그곳에 건너간 사람들도 퇴화하여 진정한 예술가나 과학자를 전혀 배출할 수 없었다는 일종의 인종 차별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 점차 성장하면서 유럽의 웬만한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하자, 19세기 말 유럽인들 사이에서 미국인을 '예절도 모르며 그저 돈냄새에 환장하는, 편협하고 맹목적인 애국주의자'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붙여서 비아냥거리는 단어로 정착했다. 일부 유럽인들은 노골적으로 '귀족적이며 세련된' 유럽의 귀족 문화와 이른바 '천박한' 미국의 기 문화 등으로 대표되는 야성미와 자유도가 넘치는 대중 문화를 대비하며 흉보기도 했다.

이후 1차 세계대전 이후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한 일부 지식인, 공산주의자, 파시스트들에 의해 진정한 정치적인 의미에서 반미주의가 등장했다. 파시스트가 몰락하고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초부터는 자본주의 진영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제2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의 사상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며 냉전 종식 이후로는 그 의미가 일부 변화되었다.

3. 용어

반미주의라는 표현이 반일(反日)이나 반공(反共)과 마찬가지로 특정 주의/사상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 때문에 '반미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하여 논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반대만으로는 사상이 될 수 없으니까, 온전한 주의/사상이라면 지향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사회상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미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이데올로기(ideology)와 사상(thought, idea)의 정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개념 논리의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데올로기란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품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의 제형태.",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방법과 형태로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사상, 사고 방식 등 다양한 신념 체계 혹은 인식 체계"를 뜻하며, 사상(思想)은 "철학에서 판단이나 추리를 통해 생긴 의식 내용 또는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통일된 판단 체계" 혹은 "인간들이 생활하면서 지니게 되는 세계관을 총칭해서 부르는 역동적인 개념"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이데올로기는 '현 사회의 조직 구성이나 목표 설정 등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적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삶의 전체적 삶의 방향이나, 바람직한 삶에 대한 모습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구성 요건에서 "지향하고자 하는 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상"은 필수 성분이 될 수 없다. 현실에서도 추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없더라도 단순히 현존하는 사회를 유지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사회 행태를 부활하고자 하는 사상(ex.보수주의, 복고 사상), 단순히 현 사회의 구조를 해석하는 사상(ex.구조주의(Structuralism)) 등 다양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4. 국가별 사례

4.1. 아시아

4.1.1. 대한민국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군정 시기에 빚어진 반탁 운동과 대구 10.1 사건,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주권 침탈 및 식민지화를 묵인했다[1]는 것도 원인이다. 아이러니한 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을 무너뜨린 게 미국이었다.

반미주의자들에게 제일 큰 원인은 항복한 일본군의 한반도 철수 이후에 경성에 들어와 미군정을 실시하여 새로운 점령군 행세를 시작하며 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분할했다는 것으로,[2][3] "전쟁은 일본이 일으켰는데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분할했는가?"처럼 반미주의자들과 NL계열 운동권 출신 인물들에게 가장 좋은 명분이 됐다. 그래서 남북통일을 위해 일단 미군정으로 온 미군을 철수하자는 이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민족주의자들 중에서도 미국을 껄끄럽게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좌익 세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고 미국의 도움으로 멸망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면서 반미의 목소리는 쑥 들어가게 된다. 미국은 6.25 전쟁에서 자국의 수만명의 젊은이 목숨을 피로서 희생해 가면서 남한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한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력, 군사력 모두 열세에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나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전략적인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6.25가 끝난 이후로 매우 좋아져서 4.19 혁명이기붕 일가가 자살한 이후에 흥분한 군중이 이기붕의 집을 습격하다가 이기붕의 집에서 성조기가 나오자 주위가 순식간에 숙연해지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그 성조기는 사건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미국의 대통령였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방한했을 때는 당시 서울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100만여명의 인파가 몰릴정도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으며, 이후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대거 동원되었을 때도 당시에 다른 국가들에서 반전(反戰), 반미 의식이 있었던 것과 달리 한국은 그런 움직임이 미미했다.[4]

그렇다고 남한 단독 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군부 독재 세력들이 모든 면에서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미국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로써 독재자들에 대한 태도와 대우는 진짜 큰 이점이 없는 이상 동맹국이라도 매우 형편없었다. 북쪽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일본이 백년의 적이면, 중국은 천년의 적" 드립을 치는 것처럼, 남쪽의 독재자들 또한 미국과 의견충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정부/평가/부정적 평가/외교'문서 4.미국과의 관계악화 문단과 아래의 6.29선언에서 미국 정부의 개입, 후술할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당선에 축하논평 내용 등의 사례가 있다.

또 과거에도 미군 보초의 총기남용과 각종 월권, 무단침입자 가혹행위로 미군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았다. 부대 주변에서 깡통을 줍던 임산부가 강간당하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미군에 의한 성범죄, 주변 송유관에 앉아 있다가 미군 권총에 3살 아이가 죽은 사건, 부대 무단 침입자에 대한 가혹행위, 11살 아이가 부대안에 무단으로 들어가 도둑질을 하다가 발각되어 미군병사가 휘두른 대검에 팔과 무릎을 찔리고 못질한 나무상자에 넣어진 채 의정부 3군단으로 택배마냥 보내졌던 엽기적인 김춘일 린치사건, 동두천 여인 삭발사건, 파주 린치사건, 파주 나무꾼 사살사건 등으로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들이 잊을만 하면 터졌다. 또한 미군의 총기남용, 월권 행위가 잇따라 터져서 주한미군서양 귀신이라 부를 정도였을 만큼 미군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빴다. 심지어 1961년 2월 8일 장면 내각은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을 체결했는데, 협정 내용 중 원조당국 대표에 대한 외교관 대우 인정 등 불평등한 조약이 있어 논란이 됐다.

결국 이로 인해 미국 정부에 대한 감정이 극에 달하자, 1961년 초에는 '한미경제협정 반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최초로 반미 성격을 띤 집회를 벌였고, 서울대생 1,000명이 책임자를 엄단하고 한미행정협정을 체결하라는 시위를 하다 연행됐다. 이후 고려대생 2천명이 같은 구호에 구속학생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벌였고, 전국민적으로 지지를 받자 이례적으로 유엔군 사령관이 공개사과를 함과 동시에 백악관에서도 사과 성명을 내놓았다. 그 때 5.16 군사쿠데타로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였으나 이번만은 관대하게 봐준다며 구속학생들을 석방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이 1964년 6.3 항쟁과 1965년 한일협정 비준반대 투쟁[5]5.18 민주화운동이었다.[6] 소련과의 대치 구도 속에서 극동아시아 방어선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던 미국은, 한일 양국을 협박하여 조속히 국교정상화 작업을 이루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가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자 민주화 세력에서 반미주의자들이 대거 양산되는 원인이 된다.

그래도 유신정권 시기까지만 해도 반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 때까지만 해도 친미 성향인 사람들이 상당수 많았지만, 5.18에 대해 미국이 침묵한 이후로는 미국에 대한 분노 감정이 심화된다. 5.18로 인한 반미감정을 간략하게 요약을 하자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전두환이 군대로 시위를 진압하며 정권을 잡자, 사람들은 당연히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가 불과 반 년 전까지 인권외교와 한국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박정희를 견제했던 터라 이번에도 카터가 나서줄 것이라며 미국의 개입을 기다렸지만, 미국과 지미 카터는 반 년 전과 달리 전두환의 폭력에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하며 미국이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셈이 되었다. 심지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고 외국 정상으로서 처음 만난 것이 전두환임을 보며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서 반미 감정은 심화되었다.[7] 더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할 것.[8] 1982년 2월에 리차드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더 스테이트>지 회견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을 "버릇없는 아이들"이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이후 그는 5월 관훈클럽 초청 때 "반미감정은 보편적 움직임은 아니다"라고 했고, 9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강연 때 "민족적 자기중심을 탈피하라"고도 했다.

이후 1982년 3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5년 5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과 1986년 전방입소 반대 및 반전반핵투쟁 등이 대표적이었고, 이후 반미가 운동권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반미를 주창한 대표적인 운동권 단체로 전대협, 한총련, 한대련, 전국연합 등이 있다. 1983년 김성만이 쓴 팸플릿 <예속과 함성>이 대학가에 유포되기도 했다. 비단 학생이나 지식인만이 아니라 농민들도 1980년대 중반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이 개방되자 생업에 위협을 느껴 반미 감정이 암암리에 전파되기도 했다. 반미시위 때마다 피해를 입는 곳은 주한미국대사관, 주한미국문화원, 미국계 기업/은행, 주한미군기지 등이며, 이러한 시설들은 경찰의 주 투입대상이었다. 한미은행 역시 뱅크 오브 아메리카 지분이 투입됐다는 이유로 시위대가 점거하거나 화염병 세례를 받기도 했으며, 은행 내부에서 행명 변경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12.12와 5.18 당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국의 태도는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부가 6월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미국이 반대의사를 표출하면서 6.29 선언을 종용한 사실 또한 유명하다.[9] 이런 미국의 행위를 알아낸 운동권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서 미국의 내정간섭을 우려하여 반미감정과 반미운동을 부채질했다. 게다가 87년 대선당시 미국의 노골적인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축하논평으로 (KBS, MBC) 또다시 운동권은 대한민국의 반미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또 1988 서울올림픽 때 미국 선수단의 비행과 NBC의 편파보도 등이 알려지면서 운동권은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반미가 아닌 심정적 반미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씨 구명운동을 벌였던 톰 포클리에타 미국 하원의원이 1996년에는 전두환 선처를 호소하며 전씨와의 면회를 추진하여 논란을 빛었다. 포글리에타의원의 이번 방한(訪韓)은 명목상으론 韓.美우호협회 초청이며 협회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경희대도 방문하는 등 4일 출국때까지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라고, 그러나 金총재의 한 측근은 포글리에타의원의 방한(訪韓) 목적중 하나가 全씨 면회이며 全씨측에서 이를 요청했다고 밝혀 주목된다.포글리에타의원은 방한(訪韓)에 앞서 金총재에게 "全씨가 면회올 것을 요청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형선고가 종신형으로 감형되도록 힘써줄 것을 아울러 부탁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물어왔다는 것.이에 대해 金총재는 "나와는 상관없이 포글리에타의원이 美하원의원 자격으로 독자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10][11][12] , 이에 대해 전씨측은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부인하며 어느 누구도 폴리에타 의원과 면회를 요구한 바 없으며 그러한 사실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사실이면 개인적으로는 고마울수 있지만 국내 정치문제에 외국인이 개입하는 수치스러운 일인만큼 그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13]

1996년 11월 30일,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光州).전남(全南)공동대책위원회(5.18 공대위)는 30일 톰 포글리에타 美하원의원(민주당.필라델피아)이 전두환(全斗煥) 前대통령의 구명운동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보도와 관련, 성명을 내 "자신의 행위가 한미간에 심각한 외교적 문제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 공대위는 성명에서 "80년 광주학살에 대해 공동 책임을 의심받고 있는 미국은 포글리에타 의원의 돌출적 행동에 의해 그 혐의가 더해지는 우를 범하지 말고 우리의 법무부장관은 외국인인 그의 전두환(全斗煥)피고인에 대한 접견 신청에 대해 신중히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5.18 공대위는 이어 "이같은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의 우려를 넘어 全피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구명운동을 한다면 우리는 방한중 그의 안전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그는 방한중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金大中 국민회의 총재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인 포글리에타 의원은 30일 방한, 오는 12월 2일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全씨를 면회할 예정인 것으로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14]

결국 12월 1일, 국내의 거센 반발로 포글리에타 의원의 전두환씨 면회 및 방한은 취소되었다.[15]


파일:Screenshot_20200818-133052_Samsung Internet.jpg

1997년 6월 2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한국 정치외교 사학회가 전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대 강국 가운데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을 줄 수 있는 나라로는 응답자의 5명 중 2명이나 미국을 꼽아 이 조사에서 90년대 들어 심해진 반미 감정을 잘 나타내었다. 이 조사에선 미국 다음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를 꼽아 한국과 통상마찰이 잦은 미국과 일본에 더욱 반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16]

1997년 미일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근거를 마련한 점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이 반미 강력 주장에 적극적인 원인을 만들었다.[17] 1997년 15대 대선에서 미국 언론들의 한국 대선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도 내정간섭 논란도 있었으나 제임스 폴리 대변인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한국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나라의 경제주권을 IMF에 넘기라고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자[18] 또다시 반미 감정이 거세어졌다. 반미주의자들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금융시장을 미국식 금융자본에 종속시켜 놓는 만행을 저질렀고 한국은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부가 IMF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미국식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여 반미 정서가 강해졌다.[19]

1999년~2000년에는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대대적으로 재조명되면서 반미 감정이 다시 불붙었다. 각종 시민단체와 언론이 집중적으로 이를 다루었고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했다. 이로서 NL 세력들 입장에서 미국은 6.25 때 대한민국을 도와주기 위해 3만명이 전사했던 동맹국에서 죄없는 대한민국 국민 수천 수만을 학살하고 한반도를 분단시킨 학살자이자 전범국으로 뒤집어씌우기에 이른다. 2000년에 KBS2 <추적 60분>을 통해 화성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 폭격훈련으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피해 상황이 다뤄지면서 반미 투쟁이 일기도 했다.

또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이 터지면서 운동권에만 주로 퍼져 있던 반미 의식이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20] 참고

설상가상으로 2002년에는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가 발생, 이 참상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고 장갑차 승무원이 인지도 못 한데다 지역 공무원들의 구역통제 실패가 합쳐진 사고였음에도 "미군이 재미로 여중생을 깔아뭉개고 확인사살로 제자리서 왔다갔다." 했다는 출처불명의 헛소문[21]까지 퍼지자 한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반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사건 발생 5개월 후 재판에서 미군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수많은 운동권과 시민단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대적인 반미 시위가 벌였고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참했다. 심지어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내가 제일 존경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구전 동요가 나돌기도 했다. 반미 시위는 나날이 규모가 커졌고 2002년 연말에는 10만여명이 서울시청 앞에 운집하여 촛불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사고 자체보다도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후속 대처가 문제를 크게 일으켰는데, 실제로 이 이후로 미군 측에서도 이전에 비해 대처도 엄중해지고, 한국측의 국민감정에 크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22] 이것도 이후 약 10여 년에 걸쳐 반미정서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절도, 성폭력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주한미군을 비판, 비난하는 의견이 있었다. 사실 주한미군 범죄는 이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지만[23] 당시의 반미 열풍으로 인해 이전 시대의 주한미군 범죄들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고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같은 한국전쟁 시절 일들까지 들춰지면서 반미 풍조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대의 사건들이 국내의 반미감정을 자극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사실 부시가 당시 반미감정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2005년에는 매향리 사격장 소음 문제로, 2006년에는 대추리 사태[24]로 또다시 반미 운동에 불씨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이런 반미 감정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좌익 민족주의인데 우리 민족의 일에 외세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반미로 흐르게 되는 것. 반미주의자들은 구한말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본다. 심한 경우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국가와 교류를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단절하자는 것이다.

이들을 나이키 신고 반미 하는 위선자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25][26] 하지만 미국 그 자체가 아니라 단순히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미를 하는 사람에게 미국 기업 제품을 쓴다고 언행불일치라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은 미국 사람들조차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다만 단순히 위선자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틀렸지만[27] 반미주의의 근간에는 단순히 미국이 싫다를 넘어서 '미국의 모든 것이 한국에는 도움이 안 되고 되려 한국의 국력을 뺏어가고 있다.'라는 사상이 있는데,[28] 미국이 필요 없다는 반미주의자도 미국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미국의 국력은[29] 한국에 필수불가결하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기에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절대악이니 하등 필요없다는 이들의 근거 자체가 부정된다.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혐오하는 반미주의자들이 주도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큰 반향을 얻진 못하였다.[30] 후술할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1탄에선 반미를 외치던 한국인이 미국인 미녀로부터 "미국사람 싫어하십니까?"란 말을 듣자 얼굴이 빨개지더니 "글쎄..."라고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982년 부미방 사건 관련자 문부식도 2002년 한겨레 '하니리포터' 인터뷰 당시 윤금이 사건이나 미군 여중생 장갑차 사건 등도 '주한미군 철수 시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31] 그가 말하는 요지로는, 애당초 주한미군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일본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촌의 사례처럼 시민사회 간의 합의를 통해 존재를 인정하며 부조리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을 잇달아 일으키면서 범국민적인 친북 감정이나 민족주의적인 연대 의식이 많이 약화되었고,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사태 이후 미국이 즉각 제7함대 항공모함 전단 급파를 비롯한 지원을 하자 10년 전보단 전체적으로 상당히 친미적인 분위기가 되면서 이때 미국에서도 한국의 반미의식 위축을 분석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은 각종 시위에 하도 시달린 나머지 아예 반미시위대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분들은 이 시위대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주기적으로 당하는 사람들이다. 소음, 교통방해, 농작물 밟기 등... 정말 싫어할 경우 그냥 짜증나서 모인 그 근처 사람들이 단체로 쫓아온 사례도 있었다. 단체로 우루루 몰려오기는 했는데, 구심점 아래에서 뭉친 것이 아니라 낮 시간에 농사나 물 장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화가 치솟아 집결해서 '저 새끼들 조지자!' 이러고 그냥 닥돌한 것이다. 미군 고객들에 의존하는 상인들도 반미시위 탓에 매상이 줄어들까봐 우려했고,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사태 때 팽성상인연합회와 반미단체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의경들 입장에서는 그냥 원수들. 좀 규모가 작은 평화시위에도 전의경이 배치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큼지막한 폭력시위에서는 전의경이 반드시 투입되는 것이 보통이라서 다들 정말로 싫어한다. 게다가 부대 근처에 미군기지가 있으면 잊을만 하면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탓이다.

좀 옛날 일이지만 상당히 과격했던 운동권에서는 폭력 및 구타, 협박 사건을 터뜨리거나, 1982년 부미방 사건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사건까지 일으킨 전력이 있다. 이로 인해 안 좋은 여론이 많이 일었고 최근에는 좀 잠잠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과오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문부식 등 일부를 빼곤 반성과 사과를 표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2004년에 쓴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1권(10권)에선 "미국을 제대로 바라보고 친미든 반미든 하라"고 뼈아프게 충고했으며, 한국의 반미는 원래 미국의 패권주의와 정치권력 등을 반대한다는 원래 뜻과 달리 위와 같은 요소들을 뭉뚱그려 '미국'으로 보니 미국 그 자체를 싫어하게 된다고도 평했다.

좌익 계열에서도 비판이 있다. 친미-반미의 이분법은 결국 미국종속적인 사고의 일환일 뿐이라면서 결국 우리의 사고가 미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즉, 친미나 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탈미라고도 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딱히 용어를 규정짓지 않고 있다.

한국의 포경수술 반대론자들 중에서 포경수술이 도입되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것에 대해 미국의 영향이 있다보니 반미감정을 가진 경우도 있다. 물론 반미감정이 주 동기인 것이 아니라 인권적인 측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견 거세 보였던 한국의 반미 성향은 대중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비교적 소수인데 이는 여론조사에서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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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일시적으로 반미 여론(Unfavorable)이 친미 여론(Favorable)을 제쳤으나[32], 곧 친미 여론이 반미 여론을 반전시켰다.

한국의 친미 여론은 2007년 57%, 2008년 70%, 2009년 78%로 2년 사이 20% 가량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2014년 이후에는 80% 2017년에는 75%를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반미 여론은 2015년 기준 14%에 불과하다. 링크 심지어 2013년 시점에서 한국의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70%를 돌파하여 미국의 40%대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았다. 기사기사

이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 등으로 일시적으로 반미 여론이 강화되었지만, 이후 연평도 포격 사태 등에서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한국을 지원하면서 국민 여론이 친미로 반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삼일절에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중·일 과거사 문제는 세 나라 모두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적인 발언을 하면서 반미 감정이 다시 일어났었다. 기사

2015년 3월 5일 반미주의자 김기종이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참고.

2015년 5월에는 주한미군이 대한민국 정부에 사전통보도 하지 않고 탄저균 실험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청 사건으로 난리가 난 유럽처럼 미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인 사과와 함께 아무런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에도 반미 시위가 미 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관련기사 2017년 2월 28일에서 미국이 위안부 협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드러났다. 이로 인해 반미주의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2017년 4월 말에 사드 기습 배치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사드 배치 비용 10억 달러 내라는 발언으로 잠잠했던 반미정서가 감지되었다.

2017년 10월에는 '방탄청년단(방미 트럼프 탄핵 청년원정단)'이라는 반미단체가 도널드 트럼프가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미국에 가서 도널드 트럼프를 규탄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포스터도 만들고 SNS를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네티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리고 결국 미국이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재야 NL세력 등에 의한 반미집회가 열리자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및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 등 우익세력 및 호국보훈 단체 등이 환영집회로 응수했으며 경찰은 갑호비상령을 내렸다.

동년도엔 2000년~ 2006년 사이의 우리나라의 반미주의에 대해서 주한 미국 외교관이 쓴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史: 주한 미국 외교관이 바라본 한국의 반미 현상(Anti-Americanism in Democratizing South Korea)"가 번역되어 나왔다. 참고해볼 것.

한국의 반미 운동은 강성 NL이나 이적단체가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 운동권이나 자칭 진보 진영이 반미적 분위기를 이용한 선동을 하거나 삽질을 하고 가끔 미국 관련 음모론도 같이 퍼진다며 싫어한다. 과거의 극단적인 운동권의 예를 들어 모든 진보 단체를 싸잡아 반미주의자들이라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친러 성향을 보이는 곳에서도 친미 성향과 같이 나타나고, 친러를 하는 이유도 지극히 실용적인 것이니[33] 말 다했다. 정작 자신들은 과거를 들먹이면서 미국을 맹목적으로 비판하지만 실제로 과거를 얘기하자면 적성국이었던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적대적인 행위를 일삼았으며[34] 중국은 아예 6.25때 북한을 위해서 직접 참전하여 싸워줬고 중공군을 보낸 일에 대해서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자화자찬하며 한국에 사과하지 않는다.[35] 이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언급도 없다.

오히려 러시아에 대해선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친러를 주장하고 중국 역시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는데[36], 미국에는 지극히 원론적인 태도[37]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미국이 한국 편을 조금이라도 안 들어주면 바로 욕한다.[38]

2018년에는 북미정상회담과 남북화해무드로 반미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또한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과 일본 배척 분위기로 트럼프의 호감도가 높아지며 미중 무역전쟁에 대다수가 미국을 응원하는 분위기이다. 당장 반미 단체에서 과거에 트럼프를 비판하다가 지금은 북미정상회담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또한 이로인해 미세먼지 날리는 중국을 욕하고 미국을 응원하는 분위기로 많이 전환되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취임 이후 민주당계 정당까지 친미화되기 시작했다. 민주당계 정당은 트럼프의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비핵화 정책을 지지했고, 대신 보수 세력은 트럼프가 우리야 어떻게 되든 북한의 핵을 동결만 시키고 미국까지 가는 장거리 미사일만 폐기하는 방식으로 협상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오히려 보수가 반미 쪽으로 가는 듯 하기도 했지만, 사실 미국 자체에 대한 반미라기보다는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한 것에 가깝다. #1, #2 보수는 주류 보수정당이나 언론에서 반미성향을 보인 적이 없고 미국 공화당이나 민주당과 여전히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를 비판한 것이지 반미를 한 것은 아니다.

지소미아 종료가 임박하자 일부 극좌 단체들의 주한미군 철수 등의 반미운동이 다시 나오고 있으나,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어차피 한미동맹 파기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하다. 가능했으면 진즉에 철수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듯한 반미 운동이 트럼프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및 해리 해리스 대사를 문제삼아[39] 다시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친문 네티즌들이 해리스 대사가 기른 콧수염이 일제 순사를 연상시킨다며 콧수염까지 문제삼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을 퍼붓고, 심지어 여당에서도 송영길 등의 정치인이 해리스 대사를 일본계란 이유로 조선 총독에 비유하거나 대북문제는 자주권이라고 주장하는 등 서서히 반미감정 조장의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홍콩보안법 등으로 강해진 반중성향에 의해 묻힌 감이 강하며 저 반미감정 조장은 민주당계 일부 지지자들에 한정되어 있다. 오히려 민주당계의 가장 큰 지지층인 친문은 반미와는 거리를 두는 성향이다. 이후 바이든 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정권이 한국의 민주당계와 지향하는 바가 다른 방향의 정책을 편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반미 성향은 일부 한국 영화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로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나온 영화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미군이나 미국이 부정적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높다. 물론 작품내에서의 묘사나 스토리 진행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메인이 아닌 경우도 많으므로 이 시기에 미국의 세력이나 등장인물이 나오는 한국 영화 전체를 반미 영화로 규정짓는 행위는 옳지 않다.

젊은 세대들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젊은 세대들 중에서 영어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즉 속된 말로 영포자들은 반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간혹 있다. 다만 정치적인 반미랑은 차이가 있다.

2023년 일본 오염수 방류 논란에서 미국이 일본 편을 들면서 이에 비판적인 좌파 측에서 반미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듯 했으나, 중국에 관한 여러가지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논란이 심화됨에 따라 이러한 여론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또한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와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발언을 하는 사건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반중 감정이 극에 달하며 반미 여론은 사실상 씨가 마른 상황이다.

2021년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의 철수 이후, 탈레반을 독립군으로 비유하면서까지 반미 정서의 일부 기사들까지 올라왔는데 네티즌들의 반응은 "일제시대때의 독립투사들 모독하는 거냐?"라는 냉담한 반응이 압도적이다. 결국 이런 반미 행동이 오히려 반미에 대해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데에 일조하게 돼버렸다.[40]

2022년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전 이후에 반미성향의 러빠들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범죄를 심각한 오류적 논리까지 써가면서 러시아와 푸틴을 옹호하고 미국,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비하를 함으로서 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서 반미성향에 대한 역반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버렸다.[41][42]

최근에는 주한미군 철수 시위 구호를 할때 "주한미군 철수"가 아닌 "주한미군 철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 진영 내에서도 독자적 핵개발을 지지하는 이들의 경우 반미 정서가 나타난다는 카네기 재단 등 미국 주류 분석가들의 평가가 있다. # 다만 미군 철수까지 주장하는 급진 좌파 진영에서의 반미 정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 외에 외교나 역사 문제[43]가 아닌 문화적 반미주의의 경우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반대하는 일부 보수 단체 등에서는 미국을 인권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며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사례를 언급하면 사대주의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PC성향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경우가 있는데, 미국이 PC문화의 총 본산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짜로 미국을 싫어하는것이 아닌, 미국의 문화적 위상이 PC에 매몰되어가는 것을 한탄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이런 언급이 나오는 커뮤니티 등지를 보면, PC를 이유로 진심으로 반미를 외치는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PC가 활성화되었다는 이유로 싫어하려면 미국만으로는 끝나지도 않는다.(...)[44] 그리고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친공화당 성향에 반민주당 성향이여서 반미라 부르긴 애매하다.

4.1.2.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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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철천지원쑤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반미 국가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며, 적화통일 노선과 더불어 반미 그 자체가 이 나라를 지탱하는 원동력 중 하나라 봐도 무방하다. 아시아 국가중에 이란과 더불어 미국을 아예 배척하는 둘 뿐인 나라다. 반미를 버리는 순간에는 지도층과 군부의 반발을 사 정권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미국과의 수교 자체가 없으며 세계적으로 히트한 미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등이 일절 개봉되지 않는 나라이니 말 다했다. 당연히 미국 영화를 본것이 문제시 되면 처벌 받을 수도 있다.[45] 그 시초는 1945년 남북분단 이후 소련의 영향에 의해 미국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으며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대한민국에 군대를 파병하게 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자 미국을 '미제(米帝)' 라고 부르며 반미감정을 고취해왔다. 특히 김일성은 휴전이 성립되자 "미제놈들 때문에 한반도 적화통일이 물건너갔다." 면서 미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 백과사전의 미국에 대한 설명. 반미적인 서술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는 "미국남조선을 앞세워 북침(北侵)을 하였다." 며 역사 왜곡을 일삼기도 하였고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에서 열렸던 올림픽에까지도 불참하는 등 반미성향을 고수해왔다.[46]

한때는 두만강 국경지대를 취재하였다는 미국 국적의 여기자 2인을 납치하기도 하였으나 클린턴 전(前) 대통령이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여 여기자들을 구출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그 이후로도 여러차례 미국인들을 억류했고[47] 2014년까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를 수년간 억류했지만 2014년 늦가을 들어서 전격적으로 그를 석방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린 듯하다. 끝내 오토 웜비어 사건이 터지자 미국 측에서는 북한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였다.

한때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고 북미대화 및 6자회담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대화를 하기도 하였지만 고정적인 반미성향은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측 분석에 의하면 미 공군의 폭격으로 북한의 공업 및 주거시설의 2/3에서 3/4이 파괴되었으며, 나머지도 주변시설의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북한 주민들은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으며 '미제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모든 게 파괴되고 전 인구의 약 3분의 1이 죽거나 다친 나라의 사람들이 한(恨)에 사무친 반미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일일 것이다."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50년대 제2권』, 인물과사상사, 2004, 49쪽
북한의 반미는 북한 정권이 조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민중들 사이에서 만연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북한 정권이 반미를 엄청 조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 기억 때문에 민중들 사이에서의 반미 의식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정권 유지 차원에서 반미 행각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은 미군 철수 등 반미 주장들이 국내 정치용이라고 밝힌 바 있다.#

4.1.3. 일본

일본은 한국과 달리 반미세력의 주축이 전통적인 강경극우좌파, 강경극좌로 반미자체가 마구잡이로 분산되어 있다.[48] 일본의 좌익은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미 제국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본의 좌익 정당인 일본공산당, 사회당 등의 세력과 일본의 학생운동 조직인 전학련, 전공투는 1970년대가 될 때까지 미 제국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을 천명하며 용어구분을 확실히 했었다. 즉,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아니라는 셈. 다만 이시기까지도 그늘속에서 소련등의 반미 대일공작이 개입하고 있었던게 관계자를 통해서 폭로되기도 했다. 당장 안보투쟁만 봐도 그렇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래로 일본 우익은 전반적으로 친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국가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극우파 계층이나 일본의 완전한 독립국으로서의 국가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세력들은 미국이 일본의 독자성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하여 반미주의로 빠지기도 한다. 전자는 일본의 기성 정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일본의 신우익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일본의 신우익들은 첫째로 일본의 국가 정체성이 패전 이후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점에서 반미주의를 강하게 내세운다. 전형적인 보수논리로서 일본 그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단순히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부분에서의 반미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일제의 치부에 관련된 역사서를 미국에 의해 덮어씌워진 자학사관(패배주의)이라 폄하하며 , 이들 스스로가 전쟁이 가능했던 시절의 국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전쟁에서 진 건 사실인데 군대도 못 갖는 나라가 무슨 국가냐"라며 일본의 재무장을 이야기 하며, 이러한 부분의 걸림돌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의 미국의 터치가 들어간 체제, 더 나아가 평화헌법 체제를 반대하며 반미를 내세운다.

이러한 진영들의 논리가 접점을 찾은 시기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일본의 좌/우 각 사회단체들은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대(약칭 베평련. 일본어로는 베헤이렌)를 조직하여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여 나갔다. 이 단체는 전후 일본 최대의 좌우합작 단체라고도 평가받는다. 물론 좌익 세력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반대하고 북베트남군의 승리를 지원하기 위해서 반대한 것이었고, 우익 세력에서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무차별적 살육행위를 반대하고 '조국'이 전쟁의 전진기지로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대한 것이었지만, 국제평화와 인류애라는 시각에서 폭넓게 연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베트남에 가고싶지 않다"는 미군들을 빼돌려서[49] 국외 망명을 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한다.[50]

베트남 전쟁 종료 후, 반미주의는 각각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좌익은 "제국주의 야욕 분쇄"의 일환으로, 극우는 자주권 회복의 일환으로 전개된다. 1960년대부터 일본은 각 진영에서 신좌익, 신우익운동이 활발해졌는데, 전자의 대표적인 반미활동은 전공투와 전학련이 맡았다고 할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반미활동은 일수회(一水會)등이 맡았다고 할 수 있다.[51] 일본 좌익 진영에서의 반미는 소련 몰락 이후 어느정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편이다.

일본 극우의 반미는 미국이 군사력을 비롯하여 일본의 각 부분에서 사실상 점령한 상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민족, 국수주의적, 제국주의적 사상의 찌꺼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이 반미를 외치는 이유는 과거의 대전패배와 함께, 미국이 일본을 제대로 된 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극우층이 주측이 되어 재무장을 하게 된다면 일본군, 더 나아가 전전 이전의 일본에 대한 부활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일본이 외치는 반미 구호나 아시아 공영 같은 프로파간다는 특히 상당히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밖에도 극우층에서 반미를 외치는 요인에는 예전 미국의 일본에 대한 경제적 제제등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라자 합의. 이러한 미국의 일본에 대한 경제적 제제나 조치들과 플라자 합의가 실제 일본의 경제에 크게 영향을 끼쳤느냐 아니냐는 논란은 제쳐 두고 이 합의에 대해 미국의 일본에 대한 경제 간섭으로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상당하다는 것에 유의하자. 즉 이들은 미국이 일본이 경제적으로 강대해지는 것을 제제하고 견제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완고하고 타협하기 어려운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제국주의 이념 자체에 반대한다는 궤는 얼핏 좌측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정작 이들은 좌익들의 사상또한 외세의 일본 침탈에 불과하며, 일본은 일본만의 가치를 가지고 미국식 패권주의를 몰아내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질서와 같은 내로남불식 주장을 한다.

오키나와 지역도 반미감정이 만만치 않다. 일단 한때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의견 반영 없이 미국땅이 되었고, 주일미군의 범죄로 오키나와 주민들의 속을 썩여와서 미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며, 거기다 1995년에 일어난 미군 오키나와 초등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좌익단체와 오키나와 주민들의 투쟁으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사과하고 SOFA 개정을 할 정도로 미군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아직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해노코 미군기지 건립을 두고 오키나와 주민과 사회단체들이 투쟁 중이며 현재도 미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더 알고 싶다면 오키나와/역사 문서를 찾을 것.

4.1.4. 중국

여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과 같은 정치적 의도. 단순히 중동, 남미처럼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써 기인한 반미뿐만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의 패권을 쥐려는 정치적 대립감이 포함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미중관계 문서로.

중국이 반미를 내세우는 이유도 소련과 같다. 자국 내의 사회적 모순을 민족주의적 선동 메시지 반미로 돌려 소련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로 흔들리는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 옛날 중화제국처럼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뻗치는 유일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것. 물론 그 미국도 초강대국이 막 된 초기에는 여러모로 정치적 시행착오라는 이름의 깽판을 부렸고, 중동, 남미는 그게 현재진행형이니 중국의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할 처지는 못 된다. 다만 현재의 미국은 처세술이 나름대로 무르익었지만 중국이 세계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면 신생 초강대국이 된[52] 미국이야 신생국가니까 무슨 짓을 할지 당시엔 알 수 없었지만, 중국은 수천 년 동안 패권주의 제국이었으므로 중국이 어찌할 지 예측하기 쉬울 수도 있다.[53] 중국이 저지르는 여러 정치적 시행착오를 겪을 세대들이 바로 현재를 살고 있는 주변국라는 사실 때문에 중국의 패권국 진출을 주변국이 경계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어 현재의 미국 같이 좀 더 신사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쳐도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 국가들이라면 몰라도 동북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쪽은 해당사항이 없다. 당장 미국이 지금 라틴 아메리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모질게 대하지만 "시진핑보다는 낫다" 수준으로 수위조정은 한다.

또한 지리적인 면과 원교근공의 법칙 때문에 이렇게 되는 면도 있다. 일단 중국은 미국과는 달리 사방의 주변국과 육지로 이어져 있으며,[54] 미국이 동서로 탁 트인 태평양과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해양진출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반면 중국은 해양진출하려면 동남의 2면(실질적으로는 거의 1.5면), 그나마도 얼마 못 가 주변국의 영해이기 때문에 해양진출 좀 해보려면 영해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불합리한 지형조건인 셈. 이래서야 충돌이 안일어날래야 안일어날수가 없다. 또한 중국의 주변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서 영토나 영해 문제같은 직접적인 사안으로 충돌할 이유가 없는 미국 같은 강대국보다는 중국처럼 바로 이웃한 강대국과 마찰이 더 자주 벌어질테니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보이는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들 나라 옆에 미국도 붙어 있었다면 그 미국과 영토, 영해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맥도날드 등의 미국 대표 브랜드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중국인들이 미국산 대중매체를 즐기고 있는데 이는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긴 하지만 역사적 갈등 문제보다는 단지 정치적으로 필요하기에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코스트코미중 무역전쟁이 진행중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1호점을 개장했는데 주차까지는 3시간, 계산에도 2시간 소요될 정도로 인파가 밀려들고 결국 매장의 영업을 중지하였다. #

2023년 들어서는 대만과 관련해서 미국과 충돌이 잦아지면서 중국인들의 반미감정이 강해지고 있다.

4.1.5. 중동

We endlessly bomb these countries and then we wonder "why they get upset with us?"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나라들을 폭격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왜 저 나라들이 우리를 이렇게 싫어하지?"

-론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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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반미감정이 안생길래야 안생길수가 없다. 이쪽은 석유와 관련된 이익이 있다 보니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오폭 등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면서까지 여러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의 블랙옵스 작전도 굉장히 활발,가장 많이 무력개입해서 반미감정이 굉장히 커졌다. 특히 이스라엘이나 서방국가들의 과도한 개입으로 상당수의 중동 국가들이 그런데, 일부분은 종교 극단주의 및 극단적 반세속주의라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와 다른 경향이 있다.[55] 또는 팔레스타인 분쟁과 이스라엘 정부를 강력히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 반감으로 반미감정을 대부분이 갖는다.

일단 대표적이고 급진적인 반미 국가들로는 시리아, 이란, 팔레스타인 그 외에 각종 테러 조직도 활발하다. 쿠웨이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오만, 바레인을 비롯해서 정책은 친서방적인 국가들도 있지만 그 대중은 이스라엘을 편드는 서방국가와 미국을 영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위에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wn_with_usa_mural.jpg
مرگ بر آمریکا
미국에게 죽음을
이란은 아예 건물 벽에다 반미문구가 담긴 포스터를 그려넣을 정도로 미국을 증오한다.[56]

다만 중동의 대중이 미국을 싫어하는 게 종교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다. 미국이 대개 자신들과 친하면 그 상대가 독재자이건 아니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대중의 미움을 사는 독재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했고 대중들은 독재자들을 미워하면서 그 후원자인 미국도 독재자만큼은 아니지만 싫어하게 되는 것. 이 점은 중남미랑 같다.

이는 수니파보다는 시아파 쪽이 더 강한데 수니파는 시아파보다 훨씬 더 많아서 친미정권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며[57] 그 중에서도 미국 측 책임이 확실하게 인정되는 나라 중 하나가 이란으로, 팔라비 왕조를 미국이 후원하고 이후 혁명으로 레자 팔라비가 미국으로 망명하자 이란 대중의 팔라비에 대한 분노는 죄다 미국으로 돌려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444일간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다. 게다가 미국은 선배 패권국인 영국과 마찬가지로 중동의 값싼 석유 확보를 위해 정권을 뒤집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니, 이란의 민족주의 성향이었던 모사데크 정권을 뒤집어 버린 것(CIA가 개입한 1953년 8월의 쿠데타)이 대표적인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값싼 인력을 얻기 위해 전두환을 전격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 이것도 미국이 자초한 일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대하는 중동국가는 무조건 경제 제재를 가해서 심한 경제적 타격을 가했던터라 중동 사람들의 반미감정은 더욱 크다.[58] 물론 수니파 쪽 역시 반미, 반서방 감정이 극심하다. 당장 중동 나라 여럿이 반미감정이 심하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중인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59]미국의 기독교 극단주의 목사 테리 존스가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을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테러리스트들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60] 공개적으로 쿠란 서적을 불태우는 짓을 공개하면서 중동 전체가 이를 보고 격앙과 분노로 이어져 반미감정이 짙어지기도 하였다.

4.2. 아메리카

4.2.1. 라틴아메리카

이쪽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패가 반미감정을 불러일으켜, 중동과 함께 세계에서 반미감정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이른바 원교근공의 원리. 그리고 이곳에서 미국이 갖는 이미지는 동북아시아남아시아 국가에서 중국이 갖는 이미지(혐중 정서)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몇몇 반미좌파,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규모 지역강국의 급진적 반미주의자들의 경우 북한, 중동처럼 중남미식 반미좌파 극단주의자들이 북한, 중동의 반미세력과 협력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서로 협력하면서 계속 미국을 견제하면서 살고 나중에 패권국가 지위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미국과 서방세계가 몰락하면 자신들이 신흥 패권국가가 되어 세계를 주름잡는 온건한(?) 패권주의, 제국주의를 추구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어떤 국가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나치 독일군과 전쟁 당시 나치군에게 협력한 유럽의 매국노들을 숨겨준 바도 있었고,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당시의 대통령이 여전히 아르헨티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도 결국 진영논리를 따라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는 제국주의는 옹호하면서 광신도와 뜻을 같이 하려는 반서방 극단주의적인 면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 히스패닉의 비율은 무시할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대신 유럽은 이슬람계 이민자 수가 약간 증가하자 중남미에서 쌤통이라고 고소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이다.

19세기 유럽 세력이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화를 진행해 나가자 미국 또한 이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태평양 지역의 섬을 식민지화하는 동시에 중남미에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가 독립하고 필리핀의 소유주가 바뀐 것 또한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중남미 독립 운동이 폭발하던 1820 ~ 1830년대 선언된 먼로 독트린으로 인해 뒷받침되었다. 세계 대공황 이후 미국의 대남미 정책 변화에 따라 이러한 구조가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으나 중남미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고,[61] 이는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민족주의 혁명과 중남미 좌파의 확산으로 폭발하였다. 특히 치명타가 된 것은 냉전시기 미국이 반공이랍시고 민중을 수탈하는 독재정권과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현 치키타), 돌, 델몬트 같이 한 나라를 바나나 공화국으로 전락시킨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지원해준 것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친미 반공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에서도 무능했기에 1980년대에는 중남미 전체가 경제적으로 개판이 돼버린다.[62] 당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은 국내에서 민중의 저항에 직면해 있던 중남미 군부독재정권들의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당시 미국은 과테말라에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하코보 아르벤스 정부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던 농지를 토지개혁을 한다는 이유로 쿠테타를 사주했고[63] 칠레에서 역시나 선거를 통해서 좌파연립 정부가 들어서자 CIA를 동원해서 군부를 배후조종, 쿠데타를 사주하여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하는 막장 행각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니카라과에서는 이란-콘트라 사건에도 관여했다. 이러니 반미감정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침탈에 대항한다는 먼로 독트린은 어디가고 노골적으로 영국을 지원하면서 미국은 이중잣대라는 비판까지 받게 된다. 다만 이때는 아르헨티나가 먼저 시작한 것이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전후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았다.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기준으로 반미적인 모습을 강하게 보이는 대표적인 국가로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를 들 수 있을 것이다.[64] 볼리비아 역시 쿠바처럼 반미국가이지만 미국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고 자극하지도 않기에 미국으로선 볼리비아가 싫어도 공격할 명분이 없기에 놔두고 있다. 미국의 내정간섭과 CIA의 쿠데타 지원, 신자유주의 도입 과정에서의 경제 악화 등의 원인으로 인해 반미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결국 2000년대, 그것도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기에 우고 차베스를 위시한 좌파정권이 콜롬비아[65]를 제외한 남미를 장악하게 되었다.[66]

베네수엘라는 특히나 눈에 띄게 반미를 하는 국가 중 하나인데 우고 차베스 집권 당시 미국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자 지원금 보내줄까? 하고 도발한 적도 있다. 물론 미국은 무시했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쉽게 건드리지 못한 것은 석유 때문. 미국이 가장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베네수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낡은 정보가 되어버렸고 2016년 초부터는 미국으로부터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의 막장 독재와 포퓰리즘 정책에도 국가가 유지되었던 것은 순전히 오일머니 때문이었는데, 미국의 셰일 가스 개발로 유가 폭락을 맞아 경제가 파탄났다. 미국이 뜻하지 않게 한 방, 아니 열 방을 먹인 셈.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 대책도 없는 비민주적인 대중주의독재로 베네수엘라는 현재진행형으로 매우 크게 몰락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으로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에게서 경제제재를 받고 있어 경제사정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이 반서방적인 성향으로 전향한 걸 볼 수 있는 사례로는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67]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우 대부분 자국 내 여러 민족이나 부족들이 있어서 분리주의 문제를 안고 있고(인도의 경우 카슈미르 분리주의 문제가 있다.) 아시아의 상당수의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라서 눈치를 봐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정작 남미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고 분리될 지역은 이미 다 분리되어 자국 내 분리주의 문제에서도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지 6년이 지난 2014년 2월 기준으로도 오히려 아프리카나 아시아보다도 코소보를 승인한 국가 비율이 훨씬 더 낮다. 이건 반미 또는 반서방 성향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반미가 아니고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 과테말라도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승인 문제[68],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서방세계에서 개입하자 NATO를 비판한 것[69], 대표적인 반미국가 중 하나인 이란과의 관계 강화[70] 등이 있다. 심지어 이란뿐만 아니라 친러, 친중 성향까지 보이고 있으며, 이들과의 무역 교류도 실질적으로 크게 증가했고,[71] 군사협력까지 하는 등 중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과 손잡고 서방세계를 같이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4년 3월 27일 UN 총회에서 크림 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영유권, 영토보전을 인정하고 크림반도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결의안 투표에서 북중미카리브 쪽은 그래도 대부분 찬성을 했지만, 남미에서는 콜롬비아, 페루, 칠레 빼고는 다 반대 아니면 기권(abstained)을 했다. 여기 지도에서 남미대륙이 어떤 색으로 칠해져있는지 잘 보자. 크림 반도 문제의 경우 대놓고 러시아 편에 서서 반대표를 던지기가 곤란한 부분을 감안해도[72] 이 정도면 뭐...게다가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이렇게 서방세계와 마찰을 빚는 나라들이 정작 러시아, 중국, 이란, 시리아 등이 잘못했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예 2000년대 후반 이후로 미국이나 서방세계와 의견이 일치했던 사안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2013년 칠레의 시위라던가 2016년의 아르헨티나의 관련 뉴스들을 봐도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미감정은 별로 풀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은 반미 국가이긴 해도 정작 친미국가인 일본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품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본은 미국과 달리 브라질을 건드린 적이 없으며 브라질에는 일본에서 온 이민자의 후손들(일본계 브라질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73] 브라질은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미국과의 역사적 악연이 덜한 편이기도 하고 외교적 성향이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비교해도 온건한 편이긴 하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친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고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집권 이후 친미로 돌아섰다.

일단 중남미는 2010년대 후반경부터는 예전에 비해서는 반미감정이 상당히 약해진 편이라고 한다. 미국이 과거 자신들이 남미에 막장으로 개입했음을 인지하고 남미에 대한 개입을 크게 자제해왔기 때문. 미국의 개입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남미에서도 반미가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반미감정으로 친중노선을 탔지만 중국 측에서 중화사상으로 어그로를 끈 것도 있고, 러시아는 경제가 크기에 비해 좋지 않다는 점도 적용되어서 어쩔 수 없이 미국과도 적당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냉전 이래로 미주상호원조조약 가입국, 즉 미국의 동맹국이다. 특히 브라질아르헨티나, 콜롬비아는 주요 비 나토 동맹국(Major Non-NATO Ally)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남미 8개국[74]이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비난하며 기존의 남미국가연합(UNASUR)을 탈퇴하고,[75] 2019년 남미발전포럼(PROSUR)을 창설한 것만 봐도 현재 남미의 반미감정은 상당히 희석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남미에 개입하려고 치면 반미 감정이 다시 요동친다. 베네수엘라의 개입[76]과 이후 미주정상회의 때 미국이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를 초청대상에서 제외하자 반발이 일었다. 멕시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볼리비아에서 이를 항의해 정상이 불참해 외무장관이 왔고,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는 아예 불참했다.[77] 아르헨티나는 대통령이 왔지만 미주정상회의에서 비민주주의국가라고 초청대상에서 제외한 행동에 대해 비판했다.

4.2.2. 캐나다

캐나다 가이드-캐나다의 반미주의
캐나다인들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이지만 한 편으로 캐나다는 가장 오랜 반미감정을 지닌 나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독립 전쟁 직전의 13개주 식민지가 보낸 대륙회의 초청장을 씹어버릴 정도로 미국의 독립을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국 독립 전쟁 중에 독립군측이 퀘벡을 공격했다가 패배하고, 미영전쟁에서도[78] 미국과 박터지게 싸우는 등 미국에게 있어서 캐나다는 독립 전부터 악연을 넘어 건국 및 독립 후에도 당면한 최초이자 가장 위협적인 적대국가이기도 했다.

이후부터 캐나다인들은 미국을 멍청하고 무질서하고 탐욕스럽다고 비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미국식(American-styl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79]. 마치 영프관계에서 안 좋은 건 서로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캐나다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도 자신을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한다.[80] 정치권에서도 서로를 공격하는 데 '미국'의 이름을 많이 판다. 한국의 정치환경에서 일본, 중국, 북한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캐나다의 정치권은 미국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다는 것.

2020년대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19의 미국 대확산은 캐나다 국민들이 반미주의가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외로 미국 관광 및 상품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수준의 깊은 반미성향을 보인다.

현재는 외교적으로 미국의 최우방국 중 하나이지만 어쨌거나 캐나다에서 반미감정이 사라질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으며, 사실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생활 방식, 행동 및 문화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캐나다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미국을 까는 것뿐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4.3. 아프리카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포르투갈 같은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수탈, 자원 약탈, 민간인 학살, 노예 무역 역사로 인해 사하라 사막 이남 대부분 국가들이 반서방, 반미이다. 북아프리카 또한 모로코와 튀니지 정도를 제외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식민지배, 미국의 리비아 내전 개입 등으로 북아프리카 무슬림들 사이에서 미국 인식이 좋지 않다. 무슬림들 사이에서 반미 감정이 뚜렷하여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서도 반미감정이 있다.

4.4. 유럽

서유럽,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미국과 함께 서방 진영, NATO의 일원으로 똘똘 뭉쳐있고 대외적으로 친미 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나라들에서도 민간 차원의 악감정은 찾을 수 있다. 주로 "우리가 원조이다", "미국은 진정한 백인 국가가 아니다."[81] "미국인들은 무식하다.", "미국인들은 돈만 알지 기초적인 외모 관리도 안 해서 평소에 선크림이나 바르는지는 모르겠고 하나같이 뚱뚱하다." 같은 문화적 우월감이다. 물론 중동과 중남미의 몇몇 국가들만큼 심하지는 않다.

대표적인 국가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한동안 프랑스맥도날드가 프랑스인들에 의해 업무방해까지 겪을 정도. 서양음식문화를 선도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이니만큼 미국의 패스트푸드에 대해 '저질음식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혐오하고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GMO 농작물의 유해성 논란이나 '풀 대신 옥수수를 먹여서 키운 소에서 나온 소고기나 우유를 먹으면 오메가-6 때문에 먹는 사람도 체중이 증가한다.' 등등 같은 주장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온 것이다. 고기나 곡류, 채소 같은 식자재 외에도 프랑스인들은 미국인들의 맥주, 와인 등까지 모조리 싸잡아서 다 까는 편이다.[82]

한편 프랑스의 대중 지식인인 기 소르망[83]은 프랑스 등 유럽의 반미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라고 비판한다. 유럽인들의 반미는 미국이 누리고 있는 패권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며, 알고 보면 유럽이야말로 현재의 미국보다 더한 횡포와 폭력을 세계에 휘둘렀다는 것. 오히려 지금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야말로 1,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유럽 주도의 세계 질서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게 프랑스는 미국 독립의 대표적인 후원국이기도 했던만큼, 정치적으로는 미국과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대한민국에 번역된 유럽의 반미주의에 대한 책으로는 안드레이 S. 마코비츠의 "미국이 미운 이유(원제: Uncouth Nation: Why Europe dislike America)"가 있는데 주로 서유럽 쪽을 다루고 있는게 특징.

그리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기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이 폭주했던 것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는 인구 비율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이 (화이트컬러 직종 기준) 임금 수준이 훨씬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내 복지, 공교육이나 의료 등등을 문제로 미국 이민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국가 출신 이를테면 폴란드나 루마니아 혹은 구소련 출신 리투아니아나 우크라이나 등등 국민들도 미국 이민보다는 대신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영국 이민을 희망하는 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백인이 미국의 기득권이지만 단순히 비율상으로는 신생아 기준으로는 미국에서 백인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상황이고, 새로 이민을 가서 집세가 싼 곳에 정착하면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서 히스패닉이나 흑인이 많은 동네가 치안이 문제 되는 것은 사실이다. 외국인이 미국 여행을 가면 주로 미국 대도시로 가니 "가보니까 미국은 서양이라고 할것도 없고 유색 인종 투성이더라"하는 말부터 시작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긴 하다. 다인종 세계화를 거부하는 차원에서 반미 감정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날 유럽인들이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갖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자유방임주의 경제 정책, 무한경쟁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페인 또한 미국-스페인 전쟁 때 해외 식민지의 상실로 인해 스페인 내부에서는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뒤집히고, 군부가 설치고, 온갖 개판이 뒤따르면서 국가 막장 테크를 밟게 되었던 데에 미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라는 관점에서 미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애초에 스페인 제국의 가장 큰 상실이었던 중남미의 독립 전쟁 자체가 바로 미국의 전례를 이념적으로 충실하게 따른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와 역사적으로 한다리 걸친 반미주의를 주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사실 유럽 전반적으로 특히 전쟁 전 세대와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노년층에서 자국의 젊은이들이 갈수록 싸구려 미국식 패스트푸드나 찾고, 미국식 대중 음악이 자국 전통 음악을 대체하고, 길거리에 나가보면 뭔 할렘가인지 동네 남녀애들은 죄다 바지 허리춤이 엉덩이까지 내려와있고 약이나 빨고 문란해져 프리 섹스나 탐한다는 둥 이런 식의 전형적인 꼬장꼬장한 문화적 관점에서의 반미 감정은 널리 퍼져있다. 포르투갈 또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반미감정이 더 강한 편이다. 서유럽권에서는 이 두 나라가 전반적으로 제일 반미감정이 심한 편이다. 심지어 이둘은 중국에 빌붙으려 하는 추태까지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미국 중앙 정보국의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 침입이 스페인 내 반미감정을 부채질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스페인포르투갈미국의 동맹국이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문화적인 반발만 있는 것이지, 중국과는 경제적 관계 외에는 멀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애초에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라틴 국가들의 자국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은 친미 국가다. 애초에 주요 NATO미군 기지스페인포르투갈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에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스페인포르투갈이 반서방 국가라고 보기에는 힘들고, 친서방인 서유럽 국가들 중 중국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봐야되는 것이 맞다.

허나 유럽 연합아이슬란드,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과 같은 서유럽 내 NATO 회원국들과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중립국이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미국의 제일 든든한 우방으로 있는 한 반미란 각국 국민들의 사적 감정일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대 들어서 EU권, 특히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 (이전에 비해) 반미적인 행보가 보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반미라기보다는 2000대부터 꾸준히 지속되어온 미국 의존도의 하락과 결속력의 약화, 그리고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반유럽 발언이나 EU-미국간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대립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유럽 국가들이 이전보다 친미 경향성이 줄어들었다고 반미로 보는 것은 억지인 감이 있으며, 자국, 혹은 EU권의 이익과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대미의존도를 줄여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동유럽의 경우는 복잡하다. 세르비아의 경우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미국을 위시한 NATO 동맹군의 군사개입으로 사실상 미국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2008년 코소보 독립으로 미국, 서방과 갈등을 빚기도 했을 정도로 이 때문인지 일반 국민들에 대한 반미 감정이 심하다. 반면 폴란드나 불가리아,[84]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등은 미국과 서유럽 세계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편인데 아무래도 역사적, 정치적으로 냉전시대에 러시아, 소련의 위성국화와 내정간섭으로 자국 주권이 크게 침해당하고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자 EU와 NATO에 가입할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컸던 것도 있다. 심지어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폴란드,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경우는 미국으로 건너간 자국 이민자들과 지속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으며, 미국 내에서도 이들 이민자 그룹이 사회 주류에 크게 진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삼촌이 사는 시카고"란 식으로 호감을 품는 경우도 많다. 대신 이들은 중국, 러시아랑은 경제협력만 할뿐이지 미국, 일본, 한국과 관계가 더 깊으며 중국, 러시아는 싸잡아서 주적으로 간주한다.

튀르키예북키프로스의 경우도 좀 많이 복잡하다. NATO 회원국이자, 미국 다음으로 거대한 군사규모를 가진 NATO회원국이 튀르키예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튀르키예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있고 대러시아 견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튀르키예를 놓칠 수 없고,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도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카프카스 지역안보 및 영향력에서 적대적이어봐야 좋을게 없는 상황이다. 튀르키예는 에르도안 대통령 장기집권 이후 미국과 거리를 보이는 것 처럼 보이고 때때로 반미적 언행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맹 같은 멘트도 같이 해준다. 전통적인 서방진영의 일부로써의 튀르키예라는 기존 외교전략이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줄타기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면 적절하다.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튀르키예는 국익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다가도 거리를 두는 등 복잡한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다가가는것 같다가도 위구르와 소수민족 문제를 들고나와 일정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반미감정은 엉뚱하게도 서양 특유의 일본 애호 성향과 결합하기도 한다. 반미 성향과 친일 성향을 함께 가진 유럽인들은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쿄 대공습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통해 착하고 무고한(?) 일본인들을 학살했다고 주장, 야만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미국이라며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꽤 있다. 반미 성향 유럽인들은 이 두 사건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 빗대어 미국을 까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유럽권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 아시아 역사에 대한 교육 부재 및 무관심이 맞물려 "일본인은 친절하고 착한 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이 어느정도 있는데다가 일본의 전쟁범죄가 유럽권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마치 소련의 침공 때문에 나치 독일과 손잡은 핀란드처럼 일본 역시 미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같은 악당들과 손을 잡았다고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미와 친일 성향을 동시에 보이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은 브라질 등 남미 국가에서도 보이며, 일부 대안 우파 성향 인물들 중에서 이러한 사람들도 있다.

4.4.1. 러시아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역사상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경쟁국가였던 나라였고, 그 시절엔 당연히 반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절의 소련은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지만 일단 겉보기엔 미국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국가였기에 이들의 반미감정은 경쟁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러시아의 민주화 기회를 날린 것은 푸틴이 아니라 서방 국가였다. 30년 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미국 경제학자들은 러시아 지도자에게 경제 개혁에 집중하고 민주주의는 뒷전으로 미루도록 설득했다. 결국 푸틴 정부가 들어선 후 러시아 민주화는 없던 일이 됐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결코 사소한 우연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서방이 러시아 문명을 존중하고 있는지에 관한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 일들을 복기해보자. 1991년 11월 러시아 소비에트 최고회의는 당시 러시아 대통령인 ① 보리스 옐친에게 13개월 동안 개혁에 착수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다. 1991년 12월 ② 벨라베자 조약으로 독립 국가 연합이 창설되면서 소련은 해체됐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서로의 독립을 존중하기로 선언했다.

러시아 개혁가들과 서방 학자들에게 둘러싸인 옐친은 전례 없는 경제적 ③ 충격요법을 시행했다. 대통령 결정에 따라 가격이 자유화됐고, 국경이 열렸으며, 빠른 민영화가 시작됐다. 옐친 지지자 중 누구도 그 정책이 러시아 국민이 원하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이 러시아를 위한 헌법 기반을 발전시킬 기회나 선거를 통해 그들을 이끌 지도자 선출을 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러시아 개혁가와 서방 경제학자들은 시장 개혁이 헌법 개정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단순하게 결정짓고, 민주주의는 경제 정책 입안을 지연시키거나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빠르게 행동해야 러시아가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공산주의자들이 영원히 권력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또 급진적 시장 개혁을 통해 러시아 국민이 눈에 보이는 이익을 얻게 되면 자동으로 민주주의에 매료될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옐친 정부는 경제, 사회, 법, 정치 등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소련식 중앙계획경제를 13개월 내 개혁하겠다는 러시아의 계획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가격과 무역 자유화 자체로만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관련) 법률을 만들어낼 기관이 필요했지만, 이를 세울 시간조차 없었다. 물론 거리에 시장이 생겨나고 극심한 결핍(shortage)은 사라졌지만, 그것은 기업과 가계가 필요로 하는 자원 배분을 촉진하는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충격요법은 급작스럽고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혼란을 촉발해 대중이 (옐친 정부의) 개혁과 개혁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다. 소비에트 최고회의는 더는 옐친의 권력 확장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후 일어난 일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제의 부상을 위한 발판이 됐다.
<이코노미조선 해외칼럼>옐친의 ‘충격요법’부터 푸틴의 전쟁까지 - 카타리나 피스토르(Katharina Pistor)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자본의 코드’ 저자
결정적인 계기는 소련 붕괴와 이후 러시아의 엄청난 사회 혼란, 그리고 미국에서 밀어준 옐친 정권에서 러시아를 국가 파산에 달할 정도로 무능한 통치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옐친 시기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이 대거 와서 러시아의 시장경제로의 변환과 경제 개혁들을 시도했는데 러시아의 경제가 파탄나서 러시아인들이 심각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게 된 것이 가장 컸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잘못된 접근을 해대서 러시아내 친서방, 친미 세력들이 송두리째 박살나버린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물론 여전히 강대국이고 군사적인 면에서는 미국과 어떻게든 동반자살 정도는 가능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넘사벽급으로 뒤쳐졌고 군사적인 면에서도 핵을 제외하곤 넘사벽인지라 다시 과거 소련의 위상을 찾기는 힘들어보인다.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냉전승리로 이어졌고 러시아인들에게 미국이란 우리의 영광을 빼앗아간 나쁜놈들인 것이다. 사실 옐친독재 시절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이들의 독재를 외면하거나 방조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점으로 인해 러시아인이 미국 등을 불신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옐친이 물러난 이후 집권한 푸틴이 반서방주의를 주장하고 이런 점에 호응하는 이유도 이런 배경에 있다. 즉 러시아의 반미는 패자의 승자에 대한 열폭에 가깝고, 그래서인지 미국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후 러시아군의 재건으로 러시아가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하는 현재 더이상 패자의 열폭이라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경우처럼 미국이 굴기하는 대국을 원치 않는 것이며 러시아 경기가 어려운 것은 저유가도 있지만 러시아가 크림반도 사태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에 당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5. 반미의 오용

반미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우디는 왕족들이 자국에서 나오는 석유를 미국에 팔아 넘기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그 이익을 제대로 돌리지 않지만, 메카의 수호자라는 종교적인 권위와 빈곤에서 나오는 국민들의 불만을 종교와 반미로 승화시켜서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카타르도 비슷하다.

또한, 반미를 주축으로 내세우는 세계 각국의 좌파들은 반미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미국과 대립했던 세력들(소련, 중국, 베트남[85][86], 쿠바, 이란, 이라크)를 무리하게 미화하고 정당화를 저지른다.

일례로 유럽의 반미-좌파들은 냉전 초기에 소련의 스탈린을 적극 지지했다.[87] 소련에서 자행되는 온갖 반인권적인 숙청과 탄압을 몰랐을 때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잔인한 불만 세력 탄압과 인권 유린 실태가 전 세계에 공개되자[88], 유럽의 좌파들은 소련에 크게 충공깽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좌파들은 6.25를 일으킨 김일성을 지지하는가(...) 하면 1960년대 중엽 미국과 북베트남의 전쟁이 터지자, 북베트남을 가리켜 "전 세계 약소국들의 희망"이라는 식으로 북베트남을 띄워주었다.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사관을 본 받아 미국의 괴뢰로 취급했다.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과 싸우는 이라크는 좋은 놈 → 이라크는 좋은 놈이니까 하는 짓도 정당함 → 그러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은 정당한 일이라고 침략을 미화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이런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으며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물론 침략당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에 이를 간다. 자세한 건 쿠웨이트 항목을 참조. 이런 주장의 끝판왕은 마이클 무어인데 화씨 9.11을 보면 미국 침공 이전의 이라크는 지상락원이 따로 없다.[89]

한국 인터넷에서는 미국의 모가디슈 전투를 들어 민간인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하고 소녀 처녀 유부녀들을 마약을 중독시켜 창녀로 전락시켜 마약 팔아 돈 챙기고 소년병 일선에 내보내는 아이디드 군벌 패거리들을 무슨 소말리아 독립 투사처럼 미화하는 짓을 저지른 바가 있으며[90]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 사태에서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반미 정치가라는 점 때문에 두둔하고 나서며 오디세이 새벽 작전의 미국을 "석유를 노리고 리비아를 침공했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카다피가 반미 정책을 포기한건 2004년으로 이미 미국에 알랑방귀 뀐지가 옛날인데 말이다. 다만 오디세이 새벽 작전 당시의 미국과 서방 국가들도 폭격을 하여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 잘한 건 없었다. 문제는 몇몇 반미-반서방 감정을 가진 가진 사람들이 이걸 확대해석하거나 너무 지나치게 나가는 형식의 비난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일부는 카다피를 옹호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6.25 전쟁에 대해서도 매우 논란이 많다. 6.25 전쟁이 무조건적으로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종북주의자들의 발언이 바로 그 예인데, 일단 6.25 전쟁보다도 한반도의 남북 대립 자체는 일단 미국소련의 영향이 크긴 했다. 2차대전 막바지에 일본이 중일전쟁의 수렁에서 중국군에 둘러싸여 골골거리는 동안 세력을 늘리려는 소련이 중국 만주를 건너 일본군을 소탕하고 한반도에 진입하면서(김일성을 비롯한 한국 사회주의자은 소련과 연줄이 많았다.) 북쪽을 점거, 소련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는 미국은 남쪽을 점거하는 식으로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발생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과 북한의 대립에 미국과 소련의 개입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립이나 분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켜 이 대립을 확인사살시킨 건 바로 김일성이다. 게다가 전후 김일성의 종파사건, 남침 위협 등으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이기는커녕 자신이 지도하는 국가를 망쳐놓는 '악질 독재자'라는 사실이 결국 밝혀진다.

다만 애치슨 라인 때문에 비판이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한데, 이것만큼은 미국의 실책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애치슨 라인은 실질적 의미는 적지만 그 당시 북한에게 사기 진작이 되는 명분을 주었고, "미국이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대해 자세한 파악을 하지 못했다!"라는 인상을 주어 한국 침공에 자신감을 가지게 하였으므로 까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거 하나 때문에 해당 '라인'을 주창한 딘 애치슨은 6.25 전쟁 이후 미국 정계에서 욕을 양동이 단위로 처먹었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해당 정책을 변호해야했다.

그 외에도 반미가 지나치다못해 심각하게 반미를 내세우는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들도 자세히 보면 그들이 그렇게 비방하는 '종미(숭미)'만큼이나 괴상스러운 내용들 뿐이다. 서방세계 국가들의 인권이나 전쟁 문제, 정치체제적 문제(미국을 비롯해 터키,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를 비판하면서도 반서방 국가들을 옹호하고 후빨치는 발언을 일삼는데, 대한민국 국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비롯해 서방세계 라인에 서 있는 국가에서 무슨 일만 일어나면 '인권탄압'이라고 주장하고 비방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이나 북한, 시리아 등이 인권 탄압을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나 가치관을 그들에게 들이대지 마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저 이중잣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인권이나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그저 미국이 싫은 것이다. 이들은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를 마치 미국에 대항하는 투사처럼 묘사하며 영웅 취급했다가 완전히 파탄나고 실태가 속속히 드러나자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에서 미국 당국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고, 관련 미군들은 연신 사과하며 PTSD를 앓는 중이며, 여중생들의 부모님들 역시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미군들에 대해서 누그러진 지 오래였다. 근데도 반미단체들은 아직까지 그 사망한 끔찍한 여중생 시신 사진을 퍼나르며 미국 OUT을 외치고 있으니, 여학생들의 유족이 저 반미단체의 행동 자제를 촉구했는데도 무시하고 저러고 있으니, 피해자 여중생이 가엾고 안타깝다는 마음은 그냥 허울뿐이었고, 고인드립이나 하며 '미국 나쁜놈' 만 주창하고 있다.

반미주의는 과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1957년부터 시작된 미·소간의 우주 경쟁의 결과물인 아폴로 계획을 미국의 음모로 치부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아폴로 계획 음모론 자체는 미국의 작가인 윌리엄 찰스 케이싱이 제기하였고, 창조론 단체인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에서 재창한 것이다. 이것이 반미주의와 맞물려, 아폴로 계획은 소련의 우주 개척을 견제하고자 미국이 꾸민 음모라는 음모론이 꾸준이 주장되고 있다.

이는 소련을 다시 없을 우주 기술 강국이고, 미국은 그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사기를 친 나라라는 주장으로 이어져, 위에서 언급한 미국과 대립하던 세력을 미화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91] 정도가 심한 아폴로 계획 음모론자들은 NASA의 최근 성과인 큐리어시티도 지구에서 촬영하고 있는 조작이라고 주장하거나, 2012년 8월 25일 타계한 닐 암스트롱의 소식을 접하고는 뉴스 기사 댓글 등으로 사기꾼이 잘 죽었다 혹은 사기꾼이 입을 열지 않고 죽었다고 발언하는 등, 미국과 NASA가 관련된 모든 과학적 업적을 부정하고 고인드립을 서슴치않는 모습을 보인다. 버즈 올드린이 괜히 음모론자를 두들겨팬 게 아니다.[92]

하지만 정작 냉전 시기 소련은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음모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한 적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아폴로 계획 음모론 문서의 냉전 문단 참고. 그리고 이 아폴로 계획 음모론의 발생지도 미국이고, 해당 음모론이 가장 성행하는 곳 또한 미국이라는 사실이 우스울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반미 국가들 중에서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와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나라가 전혀 없다. 그나마 러시아, 중국이 영향력이 크지만 선진국이라 보기는 어려우며, 세르비아도 민주주의가 돌아가고 있기는 하나 선진국까진 한참 멀었고, 이 외에도 문제가 많다. 당장 러시아나 중국, 베네수엘라, 이란, 북한 등 죄다 권위주의 내지는 저개발국이거나 개발도상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되는 이유가 이들 국가들의 대부분의 공통점이 독재국가라는 점인데 독재국가의 특성상 경제적 자유나 창의성, 사회적 경직성이 극화되어 국가의 역량과 국력을 깎아먹고 소모시켜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상당수 반미 국가들이 반미를 지도자의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써먹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반미를 외치는 목적 자체가 불순하거나 혹은 불순한 쪽으로 변질되어버린만큼 오용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를 통해 십중팔구 미국 진영에 대한 내로남불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예견된 일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한 현재도 극단적인 반미, 반서방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한 진출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자행하는 전쟁범죄 행위들에 대해서도 애써 부정하거나 심지어는 정당화까지 일삼고 있다. 일부는 러시아측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과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6. 주요 반미 국가

6.1. 현재

6.2. 과거

  • 소련공산권 국가들 - 소련 수립 초기부터 이념적 차이로 서로 대립했으나 대영제국의 존재 때문에 완전한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나치 독일이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하자 두 나라는 서로 협력하기도 했고, 독소전쟁 당시 미국이 소련에 랜드리스를 추진한 것이 그 예시이다. 하지만 전후 냉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냉전 참조.
  • 그레나다 - 197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에릭 게일리의 폭압적 독재정치에 맞서서 무력 쿠데타가 일어났고, 1979년 모리스 비숍그레나다 인민 혁명정부를 수립하며 일시적으로 반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소련과 쿠바와 협정을 맺고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노골적인 친소 정책을 폈던 그레나다는 미국에게 '소련의 군사기지'로 인식되었고, 결국 1983년 그레나다를 침공하고 인민정부를 무너뜨리며 양국 관계는 회복되었다.
  • 나치 독일 - 나치 집권 초기까지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먼로주의를 고수하며 중립을 유지했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의 전체주의, 파시즘 정권에 대해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영국과 소련을 물자적으로 지원하면서 사실상 적대 관계에 있었다. 나치 역시 자신들이 싫어하는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을 좋아할 리는 만무했으며 유대-자본주의와 타락의 본산이라고 깠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진주만 공습 이후 나치가 미국에 선전포고하며 양국은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미국이 나치가 점령한 지역들을 차례차례 해방시키면서 1945년 나치는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후 전후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은 서독을 전폭 지원했고 미군을 주둔시키는 등 동맹관계가 되었다.
  • 리비아 - 무아마르 카다피가 1969년 왕정을 전복시키고 아랍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한 이후 친소련 정책을 펴면서 미국과 적대관계가 되었다. 오일 쇼크를 통해 신흥 강국으로 성장한 리비아는 제3세계의 선도국 입지를 다지고 핵개발도 추진하며 미국 심기를 사사건건 건드렸으나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한편 경제 침체에 시달리면서 핵개발도 취소하는 등 반미, 반서방 정책을 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이 찾아오며 발생한 1차 리비아 내전NATO가 반군 편으로 개입하면서 완전한 적대관계가 되었고 결국 카다피는 권력을 잃고 반군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리비아는 긴 내전 속에 빠져들어 정상적인 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
  • 멕시코 -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이후 미국이 서부로 진출하면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와 갈등을 빚었고, 텍사스 등의 영토를 놓고 벌어진 분쟁은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멕시코가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미국이 완전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반강제적으로 친미국가가 되었다. 이후 석유 국유화, 이민, 마약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긴 하지만 복잡미묘하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베트남 -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했을 때는 베트민이 미국 OSS에게 지원을 받을 정도였지만 전후 냉전 구도가 시작되고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변했다. 베트남의 독립은 지지했지만 공산화는 용납할 수 없었기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는 프랑스를 지원하며 적대관계가 되었다. 대신 지원의 대가로 남베트남에 친미 정권을 수립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과거에는 지원했던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주의 북베트남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고 미국이 철수하면서 친미 정권은 무너졌으며 외교는 단절되었다.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때는 무려 미국이 크메르 루주를 간접지원하기도 했으며 중월전쟁에서도 중국 편을 들 정도로 완전한 적대관계였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갈등도 완화되며 1995년 양국은 수교했고, 21세기 들어 미국-중국 패권 경쟁이 시작되며 팽창하는 중국에 맞서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수단 - 가파르 니메이리의 사회주의 정권 때까지도 관계가 나쁘진 않았으나, 오마르 알 바시르의 쿠데타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적 국가가 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정부 차원에서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면서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에게 완전히 테러지원국으로 찍혀버렸고 경제제재가 가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미국이 경제제재를 대폭 완화하고 있으며 수단이 북한과의 관계도 단절하고 대북제재까지 성실하게 동참하며 양국 관계는 진전되었으며 2019년 이후 오마르 알 바시르가 축출되어 버리며 완전히 반미 성향을 버렸다.
  • 알제리 - 알제리 전쟁 당시 미국이 프랑스 편을 들었던 것을 계기로 반미국가가 되었다. 그나마 미국과 수교는 맺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1967년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을 이유로 단절되었다. 대표적으로 우아리 부메디엔은 비동맹주의 외교와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며 미국과 척을 지기도 했지만 1974년 미국과 외교관계가 복구되고 알제리가 미국-이란 간 협상을 중재하기도 하면서 관계는 좋아진 상태다.
  • 에티오피아 -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의 친미 제정 정권이 무너지고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면서 적대관계가 되었다. 이후 오가덴 전쟁에서는 소련의 지원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소말리아에게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1991년 멩기스투의 정권 역시 내전으로 무너졌고 반미 정책은 종결되었다.
  • 에콰도르 - 2006년 라파엘 코레아의 좌익 반미 정권이 집권하면서 일시적으로 반미 정책을 펴기는 했다. 우고 차베스, 에보 모랄레스 등 좌익 지도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미국과의 FTA 논의 중단, 미군 철수 등을 추진했지만 코레아 이후 양국 관계는 다시 회복된 상태다.
  • 우간다 - 1966년 밀턴 오보테의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한 이후 친소, 반미 정책을 폈지만 1971년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강행하며 중단되었다. 하지만 아민은 애초에 확실한 외교적 기조도 없었고[96] 그냥 미치광이에 불과했던지라 어느 날에는 갑자기 미국에 전쟁 선언을 하고 바로 다음 날 승리했다는 선언을 하는 기행을 펼치기도 했다.
  • 이라크 - 1968년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의 바트주의 정권이 집권한 이후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사담 후세인이 집권한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세인이 쿠웨이트 침공을 벌이며 걸프전이 발생하면서 양국은 완전한 적대적 관계가 되었고 9.11 테러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다. 전쟁으로 후세인의 정권이 붕괴되고 친미 정권이 세워졌지만 반미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 이집트 -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집권한 이후 나세르 정권은 수에즈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의 중재로 수에즈 운하를 얻어내기도 했으며, 군사 지원을 받기도 하는 등 초반에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과 대립하며 미국과 갈등을 빚게 되고 반미, 친소련 기조로 돌아선다. 나세르가 사망하고 안와르 사다트가 집권한 후에는 이스라엘, 미국과의 화해가 이뤄지며 관계가 회복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심지어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음에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덕분에 제재는 딱히 가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속화 정책으로 미국에게 지지를 받은 몇 없는 군부가 이집트의 엘시시 군부이다.
  • 이탈리아 왕국 -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으로서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과 싸웠으며 이념적으로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적대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허무맹랑한 정책과 이탈리아군의 트롤(...) 덕분에 이탈리아가 항복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 인도 - 1947년 독립 직후 미국과 인도는 수교했지만 자와할랄 네루의 비동맹주의 노선은 당시 적색 공포로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져 있던 냉전 초기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1950년 인도가 중국과 수교하고 1954년 미국이 파키스탄을 중앙조약기구에 가입시키며 관계는 더욱 틀어지게 된다. 이후 소련과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고 베트남 전쟁 때는 월맹을 지원하는 등 반미 정책을 펼쳤다. 반미 기조가 최고조에 달했던 인디라 간디 시기에 벌어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는 미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하고 대서양 함대를 벵골만으로 파견하는 등 압박을 넣기도 했으며, 인도가 핵개발을 추진하자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제재가 해제되고 양국간 관계는 회복되었으며 파키스탄이 탈레반 지원, 친중 정책으로 반미 국가로 돌아서며 인도는 미국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의 주요 국가로 참여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일본 제국 - 19세기 말부터 가까워진 양국 관계는 미국이 러일전쟁 후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하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으면서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태평양 영토 문제와 만주 철도 이권 관련 갈등으로 관계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29년 찾아온 대공황은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이 전체주의 국가가 되고 국제 연맹 탈퇴를 선언, 급기야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양국은 급격히 적대관계로 들어섰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일본과의 협력을 완전히 끝내고 중화민국을 원조했으며,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양국 간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1945년 일본이 항복하고 GHQ가 세워졌으며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국과 일본은 공산주의에 맞서서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 우호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 칠레 -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하고 쿠바, 소련과 친선관계를 맺고 다국적 기업을 국유화하는 등 적극적 반미 정책을 펼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다. 특히 구리 국유화 문제로 발생한 갈등이 확대되어 미국이 경제제재를 가하고 우익 반대파를 지원하는 등 완전한 적대관계로 발전했다. 결국 1973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반미 정책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반미감정은 계속해서 남아 있는 상태다.

7. 반미 성향을 지닌 인물/단체

7.1. 대한민국

7.2. 기타 국가

8. 반미 성향 웹사이트 및 언론

8.1. 대한민국

8.2. 기타 국가

  •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의 정부에서 운영하는 언론 매체.[103] 근본주의 성향 무슬림이 운영하는 사이트.
  •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선전 매체
  • 미국의 내정 간섭을 겪은 기타 중남미 국가들에도 반미 사이트가 많다. 대표적으로 방송사인 텔레수르와 그 홈페이지.

9. 같이 보기



[1]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주권 침탈을 묵인한 국가는 미국만 있는 것은 아니며 가쓰라 태프트 밀약 체결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영국을 비롯하여 당시 식민제국이었던 유럽 국가들도 있었다.[2] 여러 이유가 있다. 일본 본토는 완전히 미국에게 패망했지만, 만주와 붙어있던 한반도는 위에서 하나라도 떡고물(공산국가 늘리기)을 먹으려던 소련이 내려오고 있었다.[3] 사실 한반도를 분단시킨건 미국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기 1주일 전에 참전해서 한반도 북부를 공산화 시킨 소련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1941년부터 일본과 싸워왔다.[4] 거기엔 단순히 미국과의 감정 문제만이 아니라 북베트남의 공세를 받은 남베트남을 과거 북한의 침공을 받은 남한과 동일시하는 정서도 있었기 때문이다.[5]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일회담 반대투쟁 편[6]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95p[7] 하지만 독재자 전두환을 만난 것은 당시 억류되어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석방하는 거래 조건이었다. 전두환은 미국의 인정이 없으면 정통성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응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레이건 입장에도 카터의 미흡한 대처로 이미 사태는 엎질러진 물이 되었고 남한을 제2의 남베트남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정권을 승인해 남한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8] 미군 관계자는 미군은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한국 언론에 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쓰냐며 항의했지만 이미 확산된 반미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9] KBS, MBC 자료 참고.[10] 포글리에타美의원 '全씨 면회 예정' 연합뉴스[11] DJ구명운동 미 의원 이번에는 전씨 껴안기(한겨레)[12] 전씨 미 의원에 면회- 감형노력해달라(동아일보)[13] 미 의원에 면회요청 설, 전씨측 공식부인(조선일보)[14] 5.18공대위,포글리에타의원 방한 관련 성명(연합뉴스)[15] 전씨 감형요청 및 면회요구, 미 의원 방한 취소(동아일보)[16] 한반도 전쟁 발발시 청소년 3명 중 1명 피난가겠다[17] 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개정, 주변국들의 우려 높아져[18] 이에 대해 아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이권다툼에서 한국이 희생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19] 하지만 구조조정의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전적으로 IMF의 지원을 받은 나라들이 경제 주권을 포기할 정도라는 말이 있듯, IMF가 그냥 무조건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며 IMF의 명령에 따라 경제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IMF의 식민지배를 받는 당시 정부의 판단하에 시행되었다. 당시 정부는 대우그룹을 날려버리는 등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정치성이 다분히 개입된 조치를 취하기도 했고, 노동운동마저 구조조정의 걸림돌로 보고 가혹히 다루었다. IMF 협약 반드시 지켜야[20] 사실 한국에서 대중적이고 노골적인 반미의 모습은 묘하게 스포츠 이벤트와 함께 커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2010년대 강남스타일로 전세계 히트친 싸이도 흐름에 편승해 상업용 반미노래를 발매했다가 훗날 재발굴되어 까였다. 이전 88 서울올림픽 때, 미국과 소련의 농구 경기 때에 한국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응원했던 일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방송에서는 부랴부랴 반미 움직임을 걱정하는 전문가 대담이 있었다.[21] 미군 사고 중 재미로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있지만 이들이 싸이코패스이지 미군은 군법대로 고의성이 확실하면 처벌했다. 그리고 사고 당사자인 미군은 귀국 후 PTSD에 걸리기도 하였다.[22] 이 시위가 인터넷에 힘입어 매우 커지기도 했고, 또 한국이 국제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국력 수준까지 올랐다는 점도 있다. 비록 한국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2002년 당시 한국은 이미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고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상태였으며 경제 규모도 상당했다. 현실적으로 후진국 시절과 대처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미 80~90년대부터 조금씩 진행 중이었는데 이 사건이 결정타였던 셈.[23] 주한미군 범죄는 소위 "기지촌" 문제와 함께 1960년대 전후가 피크였고 당시 남한은 미국에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못 됐으므로 쉬이 근절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과 급속한 산업화로 남한의 정치-경제적 입지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한미 양측의 공조가 시작되어 1980년대 이후로는 많이 줄어들었다.[24] 하필 2004년 MBC가 한국 동요 80주년을 맞아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동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인 노을배경이 된 곳이다.[25] 2010년대부터는 아이폰 쓰면서 나이키 신고 반미하는 스타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로 반미하는 사람들 중에는 삼성 같은 대한민국의 대기업에 반감을 품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26] 특히 나이키애플의 경우 중국, 베트남 등 저임금 노동국가에 OEM 즉 하청생산을 맡긴다. 나이키의 아동 노동착취 문제나 애플 하청생산기업의 노동착취문제는 국제적인 이슈인데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하청생산으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미제 서방 악덕기업의 수익에 일조하는 꼴이다.[27]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이 싫다'와 '미국제품이 싫다'는 전혀 다른 사항이기에 그러하다.[28] 정작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주장하니 이를 싫어한다. 미국이 한국의 국력을 뺏어가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도널드 트럼프의 보호무역은 되려 한국을 보호하는 셈인데 말이다.[29] 기업들 역시 국력에 포함된다.[30] 실제로 반미감정이 한창 융성했던 시절, 운동권 학생회가 잡고 있던 모 학교에서는 미국 제품 쓰지 말자고도 했다. 문제는 그게 윈도우, 워크래프트3, 기타 등등이었고 당연히 나이키 등의 물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장실 등에 가면 미국제품 쓰지 말자는 구호와 함께 그럼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도 하지 말게? 윈도우 등의 상표가 밑에 붙어 있었다. 간접홍보 광고비 받아야 될 듯 그리고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31] 2003년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있다.[32] 다만 한국에서 반미 여론이 친미 여론을 제쳤던 2003년은 조지고 부시는 모 대통령이 한창 이라크조지고 부실 때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반미 여론이 강했던 때였다. 당시에는 독일(호감 45%, 비호감 54%), 프랑스(호감 42%, 비호감 57%), 스페인(호감 38%, 비호감 55%) 같은 국가들에서도 반미 여론이 친미 여론을 앞서고 있었다. 참조[33] 대개 중국/일본보다는 러시아가 낫다던지, 러시아와 친해지지 않으면 남북통일은 이룰 수 없다던지 등.[34] 김일성이 남한을 얼른 치자고 수십번 요청하긴 했지만, 소련이 북한을 지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의 유엔 가입도 소련의 거부 때문에 1991년에야 이루어졌다.[35] 아예 6.25를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하고, 시진핑이 직접 미국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36] 대략 중국은 곧 세계최강 경제대국이 되고 한국의 최대교역국이니 친하게 지내면서 돈이나 벌자 중국 조금이라도 비판했다가 중국이 보복하면 그냥 무조건 한국이 미안했다고 하고 조용히 넘기자로 요약된다.[37] 한국과 미국은 대등한 관계이니 절대 굽힐 필요도 없고 그러면서도 한국이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38] 예를들어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일본 편을 들어주면 바로 욕한다. 당연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국가와 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이고, 여기서 미국이 일본이 아닌 한국의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도 괜히 그런게 아니라 일본이 아예 미국의 충실한 조수(loyal sidekick)로 미 언론에 불릴 정도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39] 다만 이건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의 주한미국대사관저 침투사건 때문인 점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데, 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저 행위는 주거침입죄가 성립되는 불법행위다.[40] 탈레반의 성향을 잘 보자. 낮은 여성인권, 지나치게 짙은 내셔널리즘 등으로 인해 아메리카 연합국, 일본 제국, 나치 독일, 크메르 루주의 21세기판이자 북한과 2013년 이후의 중국, 미얀마군 치하의 미얀마, 블라디미르 푸틴 치하의 러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버전이라 할 정도로 성향이 엄청나게 극단적인 세력이다.[41] 물론 미국도 전쟁범죄를 많이 저지른 부끄러운 흑역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의 이러한 미군이 저질러온 전쟁범죄와는 궤를 달리하는 도를 넘은 잔악한 전쟁범죄 옹호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42] 당장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범죄들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 중 소수민족 관련은 일제 당시의 한국이 피해받았던 일본의 전쟁범죄 및 국가폭력과 상당히 유사하다.[43]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일제강점기, 러스크 서한, 애치슨 라인, 미군정의 실책 등.[44] 당장 위의 캐나다뿐만 아니라 서구권 대부분이 PC를 정책적으로 받아들인 케이스가 많다.[45] 과거 미국과의 전챙을 벌였던 베트남과 세르비아, 멕시코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 이라크 전쟁 등으로 반미감정이 심한 중동 아랍국가들, 정치적으로 미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도 미국과의 국교관계를 유지하고 미국 헐리우드 영화 작품들을 자국 극장가에서 개봉, 상영하는 것을 허용하는데 북한은 그런것도 없다.[46] 그러나 1996년 미국에서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은 공식 참가하였다.[47] 6.25 참전 용사란 이유로 고령의 미국인을 잠시 억류한 적도 있었으나 곧 석방했다.[48] 실제로 서구진영의 극우들은 한국에서의 오해와 달리 상당수가 반미 성향인 경우가 꽤 된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식의 자유주의나 세계화가 전통을 해친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칭되는 러시아의 권위주의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좀 있다.[49] 당시 한국 전쟁 고아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군에 입대한 김진수(영어명 케네스 그릭스) 이병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50] 그런데 이게 웃기는 것이, 미일상호방위안보조약에 따르면, "일본은 미군요원의 일본국 입출국에 대해 처벌할 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게 불법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베평련 구성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51] 이로 인해 이들은 골고루 사이좋게 일본공안의 추적을 받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52] 사실 중국은 원체 강대국의 역사가 길었기에 현재의 미국의 위치가 되면 신생 초강대국이라 정치적 시행착오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수천 년 동안의 패권제국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긴 하다.[53] 하지만 문화대혁명 같은 짓으로 역사, 사회학적 기반이 송두리째 박살나고 현재 중국 정부의 허수아비같이 되어 버린 현지 인문학계와 역사학계들의 실태들을 감안하면, 오히려 더 엄청난 시행착오를 저지를 공산이 높다.[54] 미국은 남으로는 멕시코, 북으로는 캐나다 이렇게 2개국. 중국은? 동북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북한,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총 14개국이다.(...)[55] 물론 라틴아메리카도 제국주의적인 면에서는 또다른 제국주의 논란이 있는 국가를 옹호하거나 제국주의 잔당을 받아주거나 하여 완전히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말못하지만 세속주의/반세속주의적인 면에서는 중남미와 중동이 큰 차이를 보인다.[56] 저 포스터가 있는 장소가 바로 옛 미국대사관 자리이다.[57] 하지만 시아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은 미국과 나쁜 관계가 아니지만 중국을 더 우선시한다.[58] 일례로 미국한테 밉보여 경제 제재 당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3 국가들 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당해내지 못하고 사실상 항복했다.[59] 메이완드 구 살인 사건칸다하르 학살 사건이 있다.[60] 이 사람은 아예 '이슬람은 악마의 종교다'라는 반이슬람 책까지 만들었다.[61] 심지어 일부 중남미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등의 추축국이 승리해서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지길 은근히 바라기까지 했고,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의 남미 도주 때는 도망쳐온 나치 잔당을 숨겨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냉전 시대였던 1970년대와 80년대 당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악화되자 소련이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으로 부상하길 내심 희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 또는 러시아가 미국을 누르고 패권국으로 부상하길 희망하고 있다.[62] 대한민국의 1997년 외환 위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 상황이 1980년대 내내 중남미 전체에서 이어졌다. 남한으로 치면 친북, 친중, 친소 군사정권이 냉전기 소련의 지원 하에 쿠데타를 일으켜서 경제적으로 개판을 만든 상황에 비유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즉 해당 중남미 국가 입장에서는 친미가 오히려 매국노, '한국 사회에서의 빨갱이, 종북, 친소, 친중'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63] 하코보 아르벤스는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에서 아르벤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선동을 했다.[64]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기준으로 이들보다 정도는 약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태평양에 접하지 않은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도 온건한 반서방 노선을 걷고 있다. 이렇게 세계를 친서방, 반서방으로만 나눴을 때 반서방에 들어가는 남미 국가들은 정부의 행동도 그렇지만 서방세계에 대한 국민 감정도 좋지 않은 편이다. 다만 쿠바의 경우 2015년에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였다. 관련 기사[65]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드물게 강한 친미 성향을 보이는 국가이다.[66] 단, 중미(중앙아메리카)에는 좌파정권이 아닌 정권들, 혹은 친미 정권도 꽤 있다. 파나마가 그 예.[67] 코소보/독립 인정 국가 목록을 보면 코소보 독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국가들 중 하나가 미국인데, 정작 남미에서 현재까지 코소보를 승인한 국가들이 별로 없다.[68] 미국은 팔레스타인 승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옹호하지만, 정작 2010년 12월 1일 ~ 2011년 3월 15일에 걸쳐서 거의 모든 남미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공식 승인했다. 사실상 코소보 승인 문제와 팔레스타인 승인 문제를 계기로 중남미에서 어떤 국가가 반서방 진영에 속하고 어떤 국가가 친서방 진영에 속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하다.[69] 카다피의 잘못에는 침묵하면서 서방세계만을 비판했으며, 게다가 일부 급진적인 중남미 반미 국가들은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를 승인하길 거부했으며, 특히 우고 차베스는 카다피가 사망하자, 카다피를 애도하기까지 했다.[70] 관련기사 참조.[71]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경우 대중무역의존도가 대미무역의존도를 넘어섰다. 이 두 나라는 중국의 이웃나라나 주변국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지리적으로 중국과의 거리보다 미국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운) 나라들이다.[72] UN 총회 투표에서도 정작 러시아와 같은 표를 던진 나라는 러시아 포함해서 11개국밖에 안되는데 그 중 중남미 국가들이 4개국이나 된다.(유럽 3개국, 아시아 2개국, 아프리카 2개국. 여기서 아르메니아는 유럽으로 간주함.) 또한 반대를 안한 중남미 국가들도 대부분 찬성이 아니라 기권을 할 정도면(중국, 인도 등의 나라들도 반대 대신 기권을 했고, 대놓고 러시아 편에 투표한 나라들보다 기권한 나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만큼 미국, 서방세계가 하자고 하는 걸 지지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73] 이건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르헨티나가 반서방 국가들과 친한 건 맞지만,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와 같은 친서방 국가들과도 친하다.[74]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에콰도르, 가이아나, 파라과이, 페루. 다만 가이아나는 남미국가연합을 탈퇴하지 않았고 남미국가연합과 남미발전포럼 양 기구의 회원국이다.[75] 이 때문에 현재 남미국가연합에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가이아나, 수리남 4개국만이 남아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76] 남미 국가들이 마두로를 지지하는 게 절대 아니다. 마두로야 막장 정치인인데 문제는 미국이 개입하니깐 내정간섭 문제로 불거진 것. 과이도가 쿠데타에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77] 과테말라는 신임 검찰총장 임명을 둘러싼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불참 및 대리인파견, 우루과이는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대리인 파견이다.[78] 당연히 당시 캐나다는 영국령이었다.[79] 예를 들면 의료보험 개편 등[80] 사실 이건 대부분의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인데 좋은 예로는 뉴질랜드인을 호주인으로 착각하는 것을 뉴질랜드인들이 싫어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81] 주로 러시아 같은 동유럽에서[82] 물론 파리의 심판 문서에서 보듯 괜히 근자감으로 미국을 비하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83] 기 소르망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교수 생활을 역임했으며, 현재 활발하게 저술과 평론을 하고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저술가(public intellectual)이지 학문적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석학'은 아니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특정 계열의 입맛에 맞게 과장되어 있다.[84] 현재 EU, NATO에 가입하였지만 19세기 러시아-투르크 전쟁 때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85] 베트남은 냉전이 끝난 후로는 미국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남중국해 영토분쟁 문제도 있어서 미국과 협력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미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사실 베트남은 애초에 반미성향의 국가가 될 가능성은 적은 나라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지도자 호치민의 경우도 가장 경계하는 국가는 중국이었지 내심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했다는 설이 있다. 왜 베트남 전쟁 건으로 미국이 비판받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86] 사실 대가리 좀 굴러가는 지도자들은 공산권이든 제3세계든 어지간하면 다 미국과 친해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미국은 공산주의와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인물은 다 쳐냈는데, 문제는 레닌의 민족주의 지지 정책 때문에 독립운동가들 중에 공산주의와 관련 없는 사람은 김구, 이승만 같은 골수 중 골수 우파가 아닌 이상에야 제국주의 부역자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공산주의와 관련있는 지도자들이 계속 집권해 미국과 척을 지거나(호찌민, 카스트로 등), 공산주의와 관련없는 제국주의 부역자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독재를 했다가 쫒겨나고 반미 세력이 정권을 잡는(남미 대다수 국가, 캄보디아(여긴 더 이상한 짓을 했는데, 반미 세력을 쫒아내고 친미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다시 쿠데타로 반미 세력이 정권을 잡는 거까진 평범하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반미 세력인 크메르 루주를 지원해주었고, 그 결과 반미 세력 크메르 루주가 쫒겨나고 다른 반미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이 무슨...)) 병신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헨리 키신저가 괜히 까이는게 아니다.[87] 심지어 근대 서양 화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카소마저도.[88] 현재도 러시아는 소련 시절과 똑같이 불만 세력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89] 이라크 전쟁 이전 후세인 정권의 학살극은 세계에 덜 알려졌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1988년 쿠르드족을 10만명이나 학살했고#, 1991년 시아파 봉기 때는 10만의 이라크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학계에서 후세인 정권이 학살한 인구는 대략 63만명 정도로 잡고 있다.[90] 대표적으로 강풀 차라리 정치비판 만화를 그리면 모를까 정치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자세한건 항목 참조.[91] 단, 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는 우주강국이 맞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세계 최초로 우주로 보낸 생물, 세계 최초로 우주로 보낸 인간 등. 소유즈 우주선은 수십년간 개발되면서 지금은 궂은 날씨에서도 발사가 가능하고 90% 이상의 안정적인 발사기록을 가진 명품 우주선이다. 그리고 소련이 냉전 당시 이룬 업적도 숨겨진 사실이 있기는 하나, 업적 자체는 실제로 이룬 성과다. 하지만 반미를 목적으로 소련을 찬양하는 경우에는 소련의 단점을 덮어놓고 미화하고 있다.[92] 버즈 올드린은 이 사건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받았다.[93] 애시당초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념 아래 뭉쳐 냉전 시대부터 소련이나 중국의 직접적 영향력에서는 벗어나 있었으며 냉전 이후에는 철저한 고립주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나라라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은 아예 버릴 순 없어도 골칫거리 같은 존재다.[94] 또한 북한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체제 붕괴이기 때문에(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같은 한류 탄압법들도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만든 법들이다) 그냥 미국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애당초 김정은 본인도 해외 유학까지 한 적도 있기에 이미 서방 문화에 대해 충분히 접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데니스 로드먼과 절친한 관계라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다만 자신이 나중에 북한의 지도자가 되자 체제 유지를 위해 겉으로만 반미, 반한 감정을 선동하는 것일 뿐이다.[95] 일단 세르비아와 미얀마는 이슬람을 탄압하는 국가들이라 상극이고, 이란의 경우도 시아파라 수니파 근본주의 성향의 탈레반과 거리감이 있다. 현재는 반러는 아니지만 1차 집권기 시절에는 러시아와도 껄끄러운 관계였다. 북부동맹을 러시아와 이란이 후원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신인 무자헤딘부터가 반소 게릴라 집단이었다.[96] 소련제 무기를 도입하고 북한의 지원도 받았다는 걸 보면 제1세계보단 제2세계에 가까웠던 것 같긴 하다.[97] 참고로 PDCA등은 해당되지 않는다.[98] 당연히 방탄소년단과는 다른 단체이다![99] 강령에서 한미동맹 해체는 물론이고 '반제국주의투쟁은 미국 등 패권국가에 맞선 투쟁이다.'라며 미국에 대한 투쟁을 공식화함. 이 정당은 반북 성향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민주사회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노동당 입장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관료적 스탈린주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100] 대한민국의 경우, 북한, 중국, 러시아와 달리 반미국가가 아닌데다 권위주의 체제는 아니지만 북한, 중국, 러시아와 달리 반미+반서방 정책의 일환이 아닌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피해와 악영향, 친일파들의 헤게모니 장악등을 이유로 반일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일본의 강경 우익 성향 인사들은 대한민국에 적대적이며 한국의 반일정서에 대해 북한, 중국, 러시아등 반서방 세력이 그 배후에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한국을 적대하는 주목적은 동아시아 패권장악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방국이 되기 위해서이다.[101] 파시스트라는 것은 낙인찍기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두긴 본인부터가 스스로를 '민주적 파시스트'라고 칭한다.[102] 표어 부터가 알라후 아크바르,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이며 헤즈볼라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시아파 무장단체이다.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 주도 연합군을 '위선자'로 지칭하면서 게릴라 전과 이란제 탄도 미사일로 괴롭히고 있으며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지스함에 몇 차례 미사일을 발사한 적도 있고 미국의 무인기를 격추시키거나 무인 잠수정을 나포하기도 한다.[103] 예를 들면 알 자지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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