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3:46:45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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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추존 황제
조조 | 曹操(Cáo Cāo)
파일:조조 초상화.jpg
출생 155년
후한 예주 패국 초현
(現 안후이성 보저우시)
사망 220년 3월 15일 (향년 64~65세)
후한 사례 하남윤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고릉(高陵)
재임기간 후한의 사공
196년 12월 ~ 208년 8월
후한의 승상
208년 8월 ~ 220년 3월 15일
재위기간 후한의 비정후
196년 6월 ~ 196년 9월
후한의 무평후
196년 9월 ~ 213년 7월
후한의 위공
213년 7월 ~ 216년 5월 29일
후한의 위왕
216년 5월 29일 ~ 220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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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操)
부모 부황 태황제
모후 태황후
형제자매 6남 중 장남
배우자 정실 정부인, 변부인
후궁 유부인, 두부인
자녀 25남 6녀
아명 아만(阿瞞), 길리(吉利)[1]
맹덕(孟德, Mèngdé)[2]
작호 비정후(費亭侯) → 무평후(武平侯)
→ 위공(魏公) → 위왕(魏王)
묘호 태조(太祖)
시호 무왕(武王) → 무황제(武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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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름3. 생애4. 가족 관계5. 무덤6. 평가7. 어록8. 기타9. 기타 창작물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중국 후한 말의 인물. 한나라의 마지막 승상이자 첫번째 위왕(魏王)이며, 삼국시대 위나라의 추존 황제이다. 추존 황제로서의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며, 사후 아들인 조비가 추증하였다.[3]

삼국지를 대표하는 인물들중 한명으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황실을 장악한 후 여러 군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중원을 장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위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나라가 천하통일과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마련하는데 실패하고 서진에 의해 멸망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춘추전국시대와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난세위진남북조시대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능력은 뛰어났던 영웅으로 여겨졌던 반면 자신이 신하로서 모시던 한 왕조를 무너뜨리는데에 크게 일조했다는 점에서 망탁조의의 일원으로서 역적, 간신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이런 양면적인 면모를 잘 나타내는 것이 조조를 평가하는 말인 이른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러한 양면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켜 유비의 숙적으로 묘사하여 지금까지도 삼국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인물로 여겨진다.

2. 이름

조조(曹操)의 이름인 조(操)와 인 맹덕(孟德)은 순자 권학편(勸學篇)의 구절 '덕조(德操)'에서 따온 것이다. 다음은 해당 내용.
是故權利不能傾也(시고권리불능경야)
그러므로 권세와 이익이 넘어뜨릴 수 없으며,
群衆不能移也(군중불능이야)
타인들의 압력이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天下不能蕩也(천하불능탕야)
천하도 흔들 수 없다.
生乎由是(생호유시) 死乎由是(사호유시)
살더라도 이 배운 것을 따르고 죽더라도 배운 것을 따르니
夫是之謂德操(부시지위덕조)
이것을 덕행(德行)의 지조(志操)라고 이르는 것이다.
德操然後能定(덕조연후능정)
덕행의 지조 있은 뒤에는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고,
能定然後能應(능정연후능응)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능히 적응해야 하며,
能定能應(능정능응)
마음이 안정되고 적응이 되면,
夫是之謂成人(부시지위성인)
무릇 이것을 일러 성인(成人)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북경어 발음으로는 차오 차오(Cáo Cāo). 고전 영문판 삼국지를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Cao Cao'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물론 당시 중국어는 현대 중국어와 발음이 많이 다르니 이게 원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시 발음이었을 상고한어로는 ŋtsˁu tsʰˤawʔ(응쭈 차웋)으로, 같은 음절의 반복은 아니다. 현대 발음으로는 성조의 차이가 있다.

일본식 독음은 そうそう(소-소-)[4], 베트남식으로는 Tao Thao(따오 타오)라고 읽는다. 상고한어와 마찬가지로 음절이 다르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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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관계

  • 부모
    • 아버지 조숭: 조덕과 함께 낭야에서 조조를 찾아가던 중 도겸의 부하에 의해 조덕과 살해당한다.
    • 어머니 태황후 정씨
  • 형제자매
    • 남동생 조덕: 조숭과 함께 낭야에서 조조를 찾아가던 중 도겸의 부하에 의해 조숭과 살해당한다.
    • 남동생 조빈(曹彬): 조조의 아들 조균이 숙부 조빈의 뒤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남동생 조옥(曹玉): 조조의 아들 조휘가 숙부 조옥의 뒤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남동생 해양애후(海陽哀侯): 하후형의 장인어른으로, '해양애후'라는 봉호만 알려져 있고 본명은 불명이라서 조조의 동생들 중 유일하게 봉호가 알려지지 않은 조덕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다.
  • 친척
    • 조카 조안민: 완 전투에서 조앙과 전사한다.
    • 조휴: 촌수로는 상당히 먼 것으로 추정된다. 대사마를 역임했다.
    • 조진: 조위의 3대 황제 조예 때 군부 일인자로 활약한다.
    • 덕양향주 조씨: 조진의 누이이다.
    • 조인, 조순: 이 두 명은 형제로 조인이 형이다.
    • 조홍
    • 하후돈, 하후연: 하후돈, 하후연과 실제 관계가 어떤지는 불명이다. 하지만 하후연의 경우 부인이 정부인의 누이라고 하니 동서 관계로 인척이긴 하다. 또한 하후돈의 아들인 하후무와 조조의 딸 청하공주가 혼인함으로 사돈관계이기도 하다.[5]
  • 처첩과 자녀들
  • 정부인: 첫 번째 정실. 여성 편력이 화려한 그 조조가 유일하게 몇 번이나 재결합하자고 애걸복걸했음에도 재결합에 실패한 여성이다.
  • 첩 진씨(秦氏)
  • 윤씨: 조비 등과 형제처럼 자라난 하안의 어머니 윤씨는 하진의 며느리였지만 조조의 첩으로 개가했다.
    • 1남 조구
  • 첩 왕소의(王昭儀): 조간의 양모이다.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조비가 황제가 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 첩 손희(孫姬)
    • 1남 조상
    • 2남 조표
    • 3남 조근
  • 첩 이희(李姬)
    • 1남 조승
    • 2남 조정
    • 3남 조경
  • 첩 유희(劉姬)
    • 1남 조극
  • 첩 송희(宋姬)
    • 1남 조휘
  • 첩 진씨(陳氏): 조간의 친모이지만 조간이 어릴 때 죽었다.
    • 1남 조간: 조조가 환갑을 넘어서 본 막내로[8] 조비와는 30살이나 차이 나서 조비를 보면 이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불러 조비가 "난 할아버지가 아니라 형이다."라고 고쳐줬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조카인 조예보다도 10살 이상 나이가 어렸다.
  • 양자
    • 진랑: 조조와 재혼한 두씨가 데려온 아들이다.
    • 하안: 조조와 재혼한 윤씨가 데려온 아들이다.

5.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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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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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업적과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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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vs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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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록

[ruby(寧敎我負天下人休敎天下人負我, ruby=영 교 아 부 천 하 인 휴 교 천 하 인 부 아)]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9]
삼국지연의》에서 여백사를 살해한 조조에게 진궁이 왜 그랬는지 묻자 조조가 답한 후 이어서 한 말.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奸賊)이요, 난세의 영웅(英雄)이라.
인물 평론가인 허소가 조조에 관상에 대해 한 평.[10]

8. 기타

갑(𢂿, 모자)은 위나라 무제가 만든 것이다. 군중에서 복장의 간편함을 위해 만들었으며, 또한 오색의 갑(𢃫)을 만들어 방면(方面)을 표시했다.
고금주 『여복』
위나라 무제는 마노석으로 만든 말 재갈과 거거(車渠)[11]로 만든 술 사발을 만들었다.
고금주 『잡주』
봉(棒)은 최정웅(崔正熊,최표崔豹)의 주註에서 이르길: 거폭車輻이다. 한나라 때 집금오(執金吾)의 금오(金吾) 또한 봉이다. 구리로 만들고 황금으로 양 끝을 칠했기에 금오라 하였다. 어사대부, 사례교위 또한 그것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수레바퀴에 끼웠기에 거폭이라 하였다. 한편으로는 그 모양이 수레바퀴살과 비슷해서 거폭이라 했다고도 한다. 위나라의 조조가 낙양북부도위로 있을 때 문에 오색 봉을 걸어 호활(豪猾)들에게 위엄을 보였다.
중화고금주
위나라 무제는 일찍이 골짜기에서 검을 하나 얻었는데 금가루로 맹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무제는 늘 그것을 착용했다.
도검록
  • 삼국지 3개의 세력 지도자 중에 유일하게 생일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 춘추시대의 어느 나라를 조조의 종씨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주나라 왕실 종친이다.
  • 사물기원의 설명에 의하면 최초로 전하(殿下)로 불렸다고 한다. 전하라는 호칭은 원래 한나라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위왕으로 봉해진 조조를 두습이 전하로 호칭한 것이 전하라는 존칭의 시초라고. 전하 문서 참고.
  • 조조가 끈질기게 등용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한 인물 두 명이 있다. 바로 관우태사자였다. 둘 다 무예로는 당대급 수준이었는데 관우는 일시적으로 부하로 두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얼마 못 가 조조를 떠나버렸다. 태사자에게는 조조가 직접 당귀를 선물하며 등용을 시도했으나 태사자는 잠시 보류하고 있다가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키자 실망해 조조를 거부했으며 나중에 손책의 휘하로 들어갔다.[12]
  • 젊은 시절에 하후돈, 하후연 형제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놀고 먹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 객잔에서 가기를 겁탈하려는 취객을 막으려다 그 취객을 살해해버렸다. 이것 때문에 관군에게 잡힐 위기에 몰렸는데 그 가기가 조조의 검을 빼앗아서 하후연에게 쥐어준 뒤 조조를 도피시켰다. 이후 하후연은 체포당했고 조조는 집에 가서 돈을 많이 들고 관가로 찾아와서 하후연을 체포한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하후연을 데려왔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고 조조는 그 객잔을 다시 찾아가서 그 사건에 연루된 가기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이후 계속 같이 살았다.
  • 조조의 성인 조씨는 원래 그의 성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인 조숭환관 조등양아들로 들어가면서 얻은 성씨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원래 성씨는 하후씨라 하며, 하후돈이나 하후연과는 친척 형제에 해당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조조의 원래 성씨가 하후씨인지 정말로 하후돈과 하후연이 친척 형제인지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숭 항목 참조.
  • 도굴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아 평생 도굴에 신경썼고, 부장품으로 군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주요 수입원이기도 해서, 조조 휘하 부대에는 항상 도굴 전담 부대가 존재했다. 오죽하면 도굴을 담당하는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이라는 자리와 도굴된 묘들에서 나오는 보물 등 부장품을 긁어모으는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자리까지 만들어 도굴을 전담시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무덤을 만들 때도 도굴당할 것을 염려해 위나라 영토 각지에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조묘 관련 의문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
  • 현대에 와서는 주로 일본 창작품의 영향을 받아서 미남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위서에 '키가 작지만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키가 작았을 것이다. 일본 미디어에서의 조조=직전신장 공식에 의해 조조를 한나라를 부정한 혁명가, 개혁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한나라를 부정하기는커녕 협천자를 칭하며 한나라의 권위에 기대어 등골까지 쪽쪽 빼먹었지만 말이다.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의 조조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의 모습과 거의 같다. 코에이 사의 역사 시뮬레이션이 인물 개개인의 매력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만큼, 여러 인물들의 특징적인 면들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일이 왕왕 발생하는 것. 코에이를 비롯한 일본에서 씌여진 2차 창작에서 조조와 오다 노부나가를 등치시키는 면이 상당히 강하다. 일본에서 조조를 '냉혹한 초인'으로 묘사한 것은 나쁠 것 없는 캐릭터 해석이었다. 중화권의 삼국지 컨텐츠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코에이 게임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 삼국지 팬덤의 현실상 코에이 게임의 이미지 메이킹, 특히나 그 정점에 선 캐릭터인 조조의 이미지는 한국 삼국지 팬덤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근래에 이르러 사서에 기록된 조조의 만행들이 속속 알려짐에 따라 삼국지 독자들 사이에서 조조를 한 글자로 합쳐서 '쬬'라는 별명이 붙었고, 조조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별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삼국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조조를 비하하는 별명을 부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고우영은 호색하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조조를 가리켜 '조'라고 놀렸다.
  • 실제로 과부와 남편에게 버려진 여자만을 건드렸지 유부녀를 건든 적은 없었지만, 밈에서 시작된 잘못된 상식으로 대중매체에서의 조조는 유부녀 취향으로 그려지는 일이 잦다. 유부녀를 건들지 않은 아버지와 달리 진짜로 원희의 처인 견씨를 처로 삼았다가 당대에 조조까지 함께 비난당하게 만든[13] 아들 조비도 함께이다. 야사의 영향도 있는데, 고대 중국의 상류층 가십거리인 야사 모음집인 <세설신어>에서 어릴 적 원소와 짜고 남의 집 신부를 납치하려다 발각되어 달아난 적이 있다는 내용이나 견씨를 원했다는 내용이 있지만 세설신어는 정사가 아니다. 그 전에 조조가 호색한이었다는 것은 당대부터 유명한 평가였다.[14] 워낙 난세이다 보니 온 나라에 과부가 넘쳐났고 크게는 호족들 간의 정략결혼, 작게는 국력을 위해 과부들이 수절하기보다는 개가해서 건강한 씨를 받아 애를 낳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기 때문에 개가하는 사례는 많았다.[15] 조조가 건드린 여자들 중 유부녀로 알려진 장제의 처 역시 남편인 장제는 이미 사망한 상태라 과부였으며, 윤씨 역시 남편이 사망한지 한참 지난 과부였다. 또한 관우가 원했으나, 조조가 약속을 어기고 차지해버린 두씨 역시 진의록이 원술에게 파견간 후, 원술의 주도로 한나라 유씨 여자를 처로 삼았기에 두씨는 진의록의 전처로 기록됐다. #
  • 조조가 유부녀 킬러가 잘못된 상식이라 반박하는 글에 높은 확률로 항상 "미망인으로 만든 것이 조조다."라는 말이 달리며 그것이 사실인양 믿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조조가 취한 과부들 중에서 조조에게 남편을 잃은 사례는 언급된 것이 없으며 모두 조조와 상관없는 이유로 죽었다.[16]
  • 유부녀 취향이 아니었는데도 대중에게는 유부녀 취향 취급이라 대만에서는 유부녀 속성 캐릭터 팬덤을 조씨종친회 라고 부른다. 참고로 동명의 유부녀 온리전도 존재한다. 비슷하게 드라마 삼국에서는 조조가 유부녀 킬러로 나오는데 문제는 정사에서 실제 유부녀를 건든 사람이 없다보니, 죄다 창작 및 오리지널 설정이 붙었다. 이 탓에 드라마를 보고 조조가 유부녀 킬러인줄 알았으나, 정사에서 실제 유부녀를 건든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는 사람들도 많다.

9.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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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둘러보기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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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조조 ,조등 왕준, 조비
3권 「명제기(明帝紀)」 4권 「삼소제기(三少帝紀)」
조예 ,학소 진랑 맹타, 조방 ,장특, · 조모 · 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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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후비전(后妃傳)」
무선황후 · 문소황후 · 문덕황후 · 명도황후 · 명원황후
6권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 7권 「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 8권 「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
동탁 ,이각 곽사 마등 한수,
원소 ,저수 전풍 원담 원희 원상, · 원술
유표 ,유종 부손 괴월 한숭 채모,
여포 ,장막 진궁 진등, · 장홍 공손찬 ,유우, · 도겸 · 장양
공손도 ,공손연,
장연 · 장수 · 장로
9권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 10권 「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詡傳)」
하후돈 ,하후무 한호 사환, · 하후연 ,하후패, · 조인 ,조순, · 조홍 · 조휴 ,조조(肇),
조진 ,조상 이승 환범 하안, · 하후상 ,하후현 이풍 허윤,
순욱 ,순의 예형, · 순유 · 가후
11권 「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凉國田王邴管傳)」 12권 「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 13권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원환 · 장범 ,장승, · 양무 · 국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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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염 ,공융 허유 누규, · 모개 · 서혁
하기 · 형옹 · 포훈 · 사마지
종요 ,종육, · 화흠 · 왕랑 ,왕숙,
14권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15권 「유사마량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 16권 「임소두정창전(任蘇杜鄭倉傳)」
정욱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유도, · 장제 · 유방 ,손자,
유복 ,유정, · 사마랑 · 양습 ,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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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명은 아만(阿瞞)인데, 만(瞞)과 조(操)는 비슷하게 조작하다(날조를 뜻하는 조작(造作)이 아니라 조종한다는 의미의 조작(操作)),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 이름대로 조조는 간사한 간웅(奸雄)의 이미지로 잘 알려졌으며, 실제로도 교묘하고 복잡한 인물이었다. 또 다른 이름은 길리(吉利). 리(利)라는 글자도 교묘한 느낌을 풍기기는 마찬가지다.[2] 이름의 조(操)와 자의 덕(德)자는 순자가 쓴 글의 권학편에서 언급되는 덕조(德操)에서 따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일등공신이었던 순욱과 순유가 순자의 자손이다.[3]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왕에 오른 조비가 조조에게 무왕(武王)의 시호를 올렸으나, 220년에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되고서는 묘호와 존호를 더해 조조를 태조 무황제(太祖 武皇帝)로 추존하였다. 조조 본인은 황제에 오르지 않았고, 명목상으로나마 한나라의 신하로 죽었으나 선양을 받고 위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된 아들인 조비에 의해 황제로 승격된 것이다.[4]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는 さうさう. 아마 옛날에는 '사우사우'로 읽었을 것이나 후대에 철자는 남은 채 '소-소-'로 발음이 바뀌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좀 더 간단한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 교체되면서 そうそう로 쓰게 되었다.[5] 정사 기준으로는 조조가 조참의 후손이리고 나오니 하후씨와는 인척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오나라의 신원미상의 인물이 쓴 조만전에서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원래 하후씨였다고 나오기에 조숭의 원래 성이 조씨인지 하후씨인지 불명인 것이다. 어쨌거나 하후씨들은 공식 기록상으론 조조와 같은 집안이라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하후돈이 조조와 사실상 의형제에 가까운 관계라 조씨 황실은 대대로 하후씨를 중용하고 사실상 인척에 가깝게 대우했다.[6] 당시 진의록은 한나라 유씨 여자랑 결혼해 두씨는 전처가 됐다.[7] 호사가들은 관우가 조조를 떠난 이유가 두씨를 조조가 차지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허나 만일 그랬다면 관우가 조조에게 받은 은혜는 꼭 갚고 떠나겠다고 하진 않았겠고, 관우는 조조에게 받은 상을 다 봉한 채로 은혜를 갚고 떠났다. 애시당초 관우는 조조에게 받은 은혜를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안량 참살과 백마 포위 해제라는 큰 공으로 갚았다. 조조에게 앙심이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으려 하진 않았을 터이다. 다만 관우 성격에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니 조조를 유비보다 낮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됐을 것이다.[8] 조조가 60대 중후반에 사망했으니, 조간은 조조가 죽기 몇 년 전에 얻은 늦둥이다.[9] "내가 다른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칠지언정, 다른 사람들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게 할 수 없을 것이오." 정사에선 '천하' 대신 '다른 사람'이었는데 연의에서 약간 각색된 것이다. 난세의 간웅이란 정체성을 지닌 조조라는 인물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홍길동전의 판본 중에는 “천하가 나를 저버릴지언정, 내가 천하를 저버리지 않겠다.”라는 대사로 패러디 됐는데, 이 대사는 중국에서 만든 신삼국 삼국지 드라마판에도 조조의 반대편에서,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유비가 하는 대사로 나온다.[10] 조조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는 평범한 관리 시절 때였다.[11] 커다란 조개껍데기, 꽤나 비싼 사치품이라고 한다.[12] 삼조시문역주에 따르면 제갈량도 회유한 적이 있다.[13] 공융은 조조를 돌려서 까는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14] 만화가 고우영은 이런 조조를 좆조라고 놀렸다.[15] 이슬람에서 정실을 4명까지 허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부족사회로 전란이 끊이지 않는 중동 상황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했다간 여자들이 굶어죽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 어려웠던 유목민족들은 형사취수제와 같은 풍습이 있었다.[16] 윤씨의 경우는 남편이 이전에 죽어서 가난하게 살다가 조조랑 재혼한 경우였으며, 정사에서 성을 알 수 없는 장제의 처는 장제가 형주를 약탈하다 화살을 맞고 죽었기에 과부가 된 것이다. 하다못해 남편 진의록이 한나라 유씨 여자를 새로 부인으로 맞이해 버려진 여자인 두씨의 경우도, 전 남편인 진의록은 조조에게 따로 항복해 좋은 대우를 받았었다. 그러다가 장비가 전처인 여자를 차지한 조조의 아래에 있는 것이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냐고 꼬드겨 넘어갔으나, 이내 후회해서 조조에게 돌아가던 중에 장비에게 살해당했다. 그래서인지 윤씨와 두씨의 아이들은 조조에게 양자 취급을 받았고, 위나라에서도 준 황족의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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