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23:17:03

유금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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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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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dc89,#670000> 태조 배현경 · 홍유 · 복지겸 · 신숭겸 · 유금필 · 최응
혜종 박술희 · 김견술
정종 왕식렴
광종 유신성 · 서필
경종 박양유 · 최지몽
성종 최량 · 최승로 · 이몽유 · 서희 · 이지백
목종 한언공 · 최숙 · 김승조
현종 강감찬 · 최항 · 최사위 · 왕가도
덕종 류소
정종 서눌 · 황주량 · 최충 · 김원충
문종 최제안 · 이자연 · 왕총지 · 최유선
순종 이정공
선종 문정 · 류홍 · 김상기
헌종 -
숙종 소태보 · 왕국모 · 최사추
예종 류인저 · 윤관 · 김인존 · 위계정 · 왕자지
인종 김부식 · 최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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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윤인첨 · 문극겸
신종 조영인
희종 최선 · 임유
강종 최이 · 정극온
고종 조충 · 이항 · 김취려
원종 이세재 · 채정
충렬왕 허공 · 설공검
충선왕 홍자번 · 정가신
충숙왕 -
충혜왕 한악 · 이규 · 이조년
충목왕 -
충정왕 이암 · 이인복
공민왕 왕후 · 이제현 · 이공수 · 조익청 · 류숙
우왕 -
창왕 -
공양왕 - }}}}}}}}}
유금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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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고려호족과 군벌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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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삼한벽상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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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
1등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2등
견권 능식 권신 염상
김락 연주 마난
3등
2천여 명(사서에 전하지 않음)
삼한공신
유금필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양유 · 김견술 · 서필
이상 배향공신
강공훤 · 강궁진 · 권행 · 금용식 · 김긍렴 · 김선평 · 김유렴 · 김인윤 · 김일긍 · 나총례 · 류차달 · 박지윤 · 소격달 · 왕경 · 염형명 · 원극유 · 윤신달 · 이금서 · 이능일 · 장정필 · 최정헌 · 한란 · 허선명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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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 유씨 가문 출신 배향공신
태조 의종
충절공 유금필 공숙공 유필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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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세가(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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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fedc89>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rowcolor=#670000,#fedc89>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rowcolor=#670000,#fedc89>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rowcolor=#670000,#fedc89>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rowcolor=#670000,#fedc89>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rowcolor=#670000,#fedc89>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열전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88권 「후비1(后妃一)」
89권 「후비2(后妃二)」
90권 「종실1(宗室一)」
91권 「종실2(宗室二)」·「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성무부인 소생 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혜종 정종 광종
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흥화궁군 · 태자 왕제 · 경화궁부인 · 정헌공주 · 명혜부인 경춘원군 · (문성왕후 소생 공주) 효화태자 · 천추전부인 · 보화궁부인 · 문덕왕후
경종 성종 목종
헌숙왕후 김씨 · 헌의왕후 유씨 · 헌애왕태후 황보씨 · 헌정왕후 황보씨 · 대명궁부인 유씨 문덕왕후 유씨 · 문화왕후 김씨 · 연창궁부인 최씨 선정왕후 유씨 · 궁인 김씨
- 원정왕후 · 원화왕후 - }}}
현종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평양공 왕기 · 검교태사 왕충 · 효정공주 · 천수전주 · 인평왕후 · 경숙공주 · 효사왕후 · 효경공주 · 경성왕후 · 아지
덕종 정종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문종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순종 선종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숙종 예종
명의태후 유씨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인종 의종 명종
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대령후 왕경 · 원경국사 충희 · 승경궁주 · 덕녕궁주 · 창락궁주 · 영화궁주 효령태자 왕기 · 경덕궁주 · 안정궁주 · 화순궁주 왕선사 · 왕홍기 · 왕홍추 · 왕홍규 · 왕홍균 · 왕홍각 · 왕홍이 · 연희궁주 · 수안궁주 }}}
신종 희종
선정태후 김씨 성평왕후 임씨
양양공 왕서 · 효회공주 · 경녕궁주 창원공 왕지 · 시령후 왕위 · 경원공 왕조 · 대선사 경지 · 충명국사 각응 · 안혜태후 · 영창공주 · 덕창궁주 · 가순궁주 · 정희궁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강종 고종 원종
사평왕후 이씨 · 원덕태후 유씨 안혜태후 유씨 순경태후 김씨 · 경창궁주 유씨
수령궁주 안경공 왕창 · 수흥궁주 시양후 왕이 · 순안공 왕종 · 경안궁주 · 함녕궁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제국대장공주 · 정신부주 · 숙창원비 김씨 계국대장공주 · 의비 · 정비 · 순화원비 홍씨 · 조비 · 순비 허씨 복국장공주 · 조국장공주 · 경화공주 · 명덕태후 홍씨 · 수비 권씨
강양공 왕자 · 소군 왕서 · 정녕원비 · 명순원비 세자 왕감 · 덕흥군 용산원자
충혜왕 공민왕 공양왕
덕녕공주 · 희비 윤씨 · 화비 홍씨 · 은천옹주 임씨 휘의노국대장공주 · 혜비 이씨 · 익비 한씨 · 정비 안씨 · 신비 염씨 순비 노씨
석기 · 장녕공주 - 세자 왕석 · 숙녕궁주 · 정신궁주 · 경화궁주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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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rowcolor=#670000,#fedc89>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rowcolor=#670000,#fedc89>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rowcolor=#670000,#fedc89>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
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2(姦臣二)」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128권 「반역2(叛逆二)」 129권 「반역3(叛逆三)」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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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101010> 권 1
신라
김유신 ·
신라
장보고 (정연) ·
신라
침나 (소나) ·
고구려
부분노 ·
고구려
을지문덕 ·
고구려
안시성주 ·
백제
흑치상지 ·
고려
유금필 ·
고려
강감찬 ·
고려
양규 ·
고려
윤관
권 2
고려
오연총 ·
고려
김부식 ·
고려
조충 ·
고려
김취려 ·
고려
박서 (송문주) ·
고려
김경손 ·
고려
이자성
권 3
고려
김방경 ·
고려
한희유 ·
고려
원충갑 ·
고려
안우 (김득배 / 이방실) ·
고려
정세운 ·
고려
정지
권 4
고려
최영 ·
조선
이지란 ·
조선
최윤덕 ·
조선
이종생 ·
조선
어유소 ·
조선
이순신 ·
조선
권율
권 5
조선
곽재우 ·
조선
정문부 ·
조선
황진 ·
조선
휴정 (유정 / 영규) ·
조선
정기룡 ·
조선
김시민
권 6
조선
이정암 ·
조선
임중량 ·
조선
김덕령 ·
조선
정충신 ·
조선
김응하 (김응해) ·
조선
임경업 ·
조선
정봉수 ·
조선
류림 (류형)
참고 : 윗첨자의 경우에는 독립적인 열전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해당 인물의 열전 속에서 함께 설명되는 인물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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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개국공(開國公) 충절공(忠節公)
유금필
庾黔弼
작위 개국공(開國公)
시호 충절(忠節)
본관 평산 유씨 / 무송 유씨
생몰년 ? ~ 941년(태조 24)
가족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
아들 유긍(庾兢), 유관(庾官), 유유(庾儒), 유경(庾慶)
1. 개요2. 약력, 지휘 부대3. 생애4. 기타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호족. 평산 유씨(平山 庾氏)[1]와 무송 유씨(茂松 庾氏)의 시조.[2] 태조의 여섯 배향공신 중 유일하게 후손도 태묘에 배향된 인물이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할 수 있게끔 혁혁한 공을 세운 후삼국시대 고려 최고의 용장이다.

2. 약력, 지휘 부대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향직 대상(大相) 일리천 전투 시기의 품계
대광(大匡)
삼중대광(三重大匡) 유자우 묘지명 기록
직위 마군장군(馬軍將軍)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925)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933)
우장군(右將軍)(934)
도통대장군(都統大將軍)(935)
삼한통합제오호기위(三韓統合第五虎騎尉) 유자우 묘지명 기록
태사(太師)
작위 개국공(開國公) 유자우 묘지명 기록
시호 개국충절공(開國忠節公)고려사 예지 태묘조 기록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 북벌 군단
개정군
開定軍
지휘관
유금필
장병
기마병 & 보병 3,000명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 남정 군단
중군
中軍
지휘관
유금필
관무, 관헌 등
장병
기마병 9,500명
유금필은 후삼국시대를 끝낸 일리천 전투에 참가했다. 유금필은 자신이 복속시킨 북방 이민족을 전쟁에 참여시켜 총 9,500명의 정예 기마병을 끌고 내려온다.

3. 생애

유금필이 태어난 연도는 기록의 부재로 알 수 없다. 935년 나주 탈환에 앞서 자신이 이제 늙었다고 말한 바가 있는데, 이때 장수로서 늙은 나이인 50세가 넘었다고 본다면 880년대 이전에 태어났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918년 고려 건국 당시에는 30대 중후반 이상 정도로 예상할 수 있겠다.

유금필의 출신지인 평산은 신라 북부에서 대곡성(大谷城), 대곡진(大谷鎭) 등이 설치된 군사 거점이었다. 신라 말 지방 통제력이 무너지고 평주 토호인 박씨가 궁예에게 귀부 할 때쯤 유금필도 편입되어 태봉의 마군장군까지 오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918년 왕건고려를 건국한 역성혁명 당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기록의 부재 탓에 알 수 없지만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건국한 이후 홍유와 함께 궁예의 지지 세력들이 남아 있던 청주반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웠다.

유금필의 맹활약이 본격적으로 기록상에 나타나는 시점은 923년으로, 골암진[3]에 북번[4][5]이 자꾸 쳐들어와 위협을 가하자 왕건이 유금필을 골암성(鶻巖城)으로 보내 북쪽 변방을 지키도록 했다. 유금필은 북번의 추장 300여 명을 불러 성대한 연회를 연 뒤 이들이 거하게 취하자 “이제 그만 복종하라!”라고 위협하여 단숨에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북번의 촌락마다 사람을 보내 “너희 추장들이 복종했으니 이제 그만하고 너희도 숙여라.”고 하여 무려 1,500여 명이 항복해 왔고 포로로 잡힌 고려인 3,000여 명을 귀환하게 하는 데 성공해 왕건이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925년에는 연산진과 임존군[6]을 공격하여 후백제의 장군 길환과 군사 3,000명을 전사시키는 큰 공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장수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왕건과 견훤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대치 중이었던 조물성 전투에서도 유금필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창 우세하던 견훤이 유금필을 두려워한 나머지 왕건의 화친 제의를 받아들일 정도.[7] 당시 유금필은 오늘날 충청남도 지역에서 후백제 영토를 돌파하여 경상북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있던 조물성에 도달하였는데 견훤으로써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8]

이후 왕건이 공산 전투에서 참패함에 따라 후백제의 기세가 치솟았던 928년 탕정군(湯井郡)에서 축성 작업을 감독하고 있던 유금필은 왕건이 삼년산성[9]에서 패배하고 후백제 장군 김훤, 애식, 한장의 3천 군마에 쫓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신속하게 후백제군을 물리쳐 왕건을 구출해 냈다.

고려와 후백제의 운명을 가른 930년 고창 전투 때는 왕건을 비롯한 제장들이 전투에 소극적인 가운데[10] 무기가 흉악한 도구이며 전쟁이 위험한 것은 자명한 것이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겨우 승리할 판인데 어찌 적을 앞에 두고도 지는 것을 겁내는 겁니까?”라는 폭풍간지스러운 명언을 남기며 홀로 결전을 주장하는 동시에 직접 선봉에 서서 돌격하였다. 이에 고려군이 힘을 다해 싸워 후백제군 8천여 명을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으며 유금필은 고려가 후삼국의 패권을 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1]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공을 이어갔지만 931년 참소를 받고 곡도(鵠島)유배를 떠나게 되는데 왜 유배길에 올랐는지는《삼국사기》나《고려사》등 사서에 이유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왕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유금필을 견제하려는 다른 공신이나 패서 호족들의 움직임이 있었던게 아닐까 추정된다. 당시 유금필은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고려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었고 고창 전투에서의 맹활약으로 왕건의 최측근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왕건이 무고함을 알면서도 엄청난 공을 세운 유금필을 유배 보내게 할 정도로 무시할수없는 막강한 세력은 고려 초기 당시에는 개국 집단인 패서계 호족들밖에 없었다. 외척인 나주 집단은 태생적인 한계 탓에 권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고려에서 큰 권력을 쥐게 되어 후일 문벌귀족에 이르는 삼남 지방의 호족 가문들도 아직 고려에 편입되기 전의 시점이었다. 다만 왕건 본인 역시 유금필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그랬을 가능성도 높은데 군사적 능력에 정치력까지 겸비한 무장은 시대를 막론하고 군주에게 경계 대상 1호일 수밖에 없다. 당장 왕건부터가 태봉의 왕 궁예의 휘하 무장이었다가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여 왕이 된 장본인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유금필을 경계한 공신들과 패서 호족들이 연계하여 유금필을 참소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충분히 일리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유금필은 곡도에서 지낸 유배 생활 중에도 태조와 나라를 걱정하며 상소를 올리는 등 충의를 꺾지 않았다.

932년 후백제 수군 장군인 상귀상애가 지휘하는 특별 함대가 각각 송악대우도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예성강 전투) 상귀가 고려 수군을 불사르는 등 대승을 거두었고 이에 고려군의 함대는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왕건은 장수 만세를 보내 대우도를 약탈하려는 상애를 막도록 하였으나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위험한 상황에서 유금필은 곡도에서 유배 중인 몸임에도 불구하고 몸소 함선을 모은 뒤 의병을 일으켜 대우도에서 송악을 넘보려던 상애를 몰아내는 공을 세웠다.[12] 이 공로 덕분인지 유배 생활을 마치고 조정으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유배를 떠난지 2년 후인 933년 정남대장군에 임명되었다는 기록으로 보면 그 사이에 유배형이 풀린 듯하다.

933년 5월 후백제군 사령관이자 견훤의 장남 견신검이 다시 신라 국경을 침공한 탓에 서라벌이 6년만에 다시 후백제 손에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왕건은 다급히 유금필에게 구원 명령을 내렸다. 유금필은 군사들을 모을 시간도 없어 겨우 80기의 부하만 이끌고 급히 서라벌로 달려가던 도중 후백제군과 조우하게 되었지만 필사의 각오로 후백제군을 물리쳤다. 이 때의 이야기도 멋지기 그지없는데, 강을 건너기 직전 부하들에게 "이 전투에서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만 너희들까지 희생돼선 안 된다."며 각자 살 길을 도모하라 말하였으나, 부하들은 "장군님과 같이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럴 수는 없다."며 유금필과 함께 강을 건넜다. 후백제군은 그 기세에 눌려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하였다. 이후 서라벌에 입성해 서라벌을 안정시키고 7일간 환대를 받은 다음 돌아오는 길에 다시 후백제군과 맞붙어 적장 환궁과 금달을 사로잡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왕건이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한 건 당연지사.

이후 운주성 전투에서는 직접 선봉에 서서 야간의 기습을 감행해 견훤의 군대를 크게 무너뜨리고 적장 상달과 최필, 술사 종훈, 의사 훈겸 등을 사로잡는 등 큰 공을 세웠다. 나주 탈환 작전[13]의 총사령관을 맡아 왕만세, 충질, 오담, 능선, 향예 등과 함께 참여하여 역시 으뜸가는 공을 세웠고 견신검에 의해 금산사감금당했던 견훤이 탈출하자 함대를 이끌고 견훤을 보호하여 고려에 오게 하였다. 후삼국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일리천 전투에서도 자신이 예전에 복속시킨 말갈 기병 9천 5백을 통솔해 공을 세웠고 6년 후인 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4. 기타

  • 유검필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흔히 유금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한자를 음독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이라는 한자가 ‘검을 검’, ‘귀신이름 금’이라는 2가지 음으로 읽히기 때문이며[14] 오늘날에는 유금필이라는 명칭이 유명하지만 조야기문(朝野記聞) 같은 조선 시대 사료에서는 유검필이라 표기되어 있다. 명칭이라는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기에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으며 당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유검필, 현대 기준을 중시한다면 유금필로 읽으면 된다.
  • 전쟁사 중심으로 후삼국시대를 서술할 경우 챕터 하나를 유금필이 독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전공이 말 그대로 미친 수준이다.[15] 비교적 빈약하게나마 전해져 오는 후삼국시대의 기록들만으로도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 말갈족기병들을 활용한 능숙한 기병대 지휘는 물론 수군까지 잘 다루며 일생 동안 패배를 모르는 장수로서 일선에서 맹활약했다. 북번의 여진족을 제압하여 복속시키는데 성공했고 급기야 그들에게 대추장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고 하니 통솔력 또한 군대를 이끄는 무장답게 출중했던 듯 싶다.
  • 의외로 개국공신으로서의 등급은 낮아서 개국 1, 2등 공신 목록에도 유금필의 이름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고 1번에 2,000여 명을 임명한 개국 3등 공신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918년 왕건의 고려 건국과 920년 골암진 파견 이전까지의 기록이 없다면 궁예의 위사 출신인 박술희처럼 무명의 장수를 파격적으로 중용했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겠으나 왕건이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 직후인 918년 7월에 개국 1등공신 홍유와 함께 궁예 친위 세력이 잔존해 있던 충청북도 진천으로 파견된 기록이 남아있다. 1등 공신인 홍유를 보좌해 내려갈 위치라면 왕건 즉위 시점에 무명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른 기록이 없으니 추정만 해볼 수 있을 뿐인데 무명은 있었으나 비밀스럽게 진행된 왕건의 고려 건국 역성혁명에는 기여한 바가 적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크고 되려 왕건이 직접 정치적으로 안배를 해준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본래 이런 공신들을 책봉하는 건은 사건 이후의 혼란 및 터져나올 수 있는 반감을 수습하고 지지 기반을 얻기 위해 특별히 한 일도 없는 사람을 공신으로 책봉하여 우대해주거나 반대로 크게 공을 세운 인물을 일부러 낮은 등급에 책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신 등급과는 별개로 유금필의 딸은 태조의 9번째 비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이 되었고, 유금필 사후에는 태조의 배향공신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 사후 가림현[20]의 성황신으로 모셔졌고 가림성이라 불렸던 부여 성흥산성 안에 유금필의 사당이 세워졌다. 사당을 관리하는 무속인이 1명 있기는 하지만 사당 자체는 유금필의 후손을 자처한 무송 유씨가 관리하고 있으며 사당에 모셔져 있던 나무를 깎아 만든 유금필 부부와 아들, 딸의 목상이 2008년쯤에 도난당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는데, 목상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묘연하다고 한다. #
  • 유금필의 또 다른 후손인 유자우(庾自㥥)[21]의 묘지명이 현존한다. 유자우는 무송 유씨로 공숙공 유필의 5대손인데 스스로 유금필에게서 '계(系)'가 나왔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유금필의 관작은:
  • 삼한통합제오호기위(三韓統合第五虎騎尉): 삼한통합은 후삼국 전쟁에 참여했다는 뜻일테고 제오호기위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호기위는 왕식렴도 가지고 있었는데 직위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 하다. 왕식렴은 그냥 호기위지만 유금필은 제5호기위이다.
  • 태사(太師): 천자의 스승으로 삼사 중 최고위 직.
  • 개국공(開國公): 고려 개국공신에게 주어진 미칭. 왕식렴도 가지고 있었다.《고려사》에는 개국공이라고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개국충절공처럼 시호에 덧붙어 있다.
  • 삼중대광(三重大匡): 1품 1등위 향직 품계로 가장 높은 향직 품계.
  • 장위익대광위협보좌성저정공신(壯威翼戴匡衛協輔佐聖底定功臣):《고려사》에 등장하지 않는 저정공신호.
  • 충절공(忠節公): 시호.《고려사》에도 등장.

5.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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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산은 평주(平州)라고도 부른다.[2] 정청주에 따르면 평주 유씨와 무송 유씨는 원래 다른 집안으로 고려 후기에 와서 평주 유씨의 세력이 약해지고 무송 유씨가 평주 유씨를 흡수하면서 평주 유씨의 시조였던 유금필을 자신들의 시조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정청주 《신라말 고려초 호족 연구》 일조각, 1996년)[3] 오늘날의 강원도(194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바뀌었다.) 안변군 신좌리[4] 기록에는 이들의 주체가 나와있지 않지만 학계에서는 대체로 말갈족 부락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 발해가 점점 쇠퇴하는 탓에 주변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무너지면서 고려에 인접해 있던 말갈족들이 귀순하거나 약탈을 벌인 기록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5] 실제로 왕건에게 항복한 윤선이라는 인물 역시 궁예의 폭정을 피해 골암진으로 무리를 이끌고 달아난 후 이민족들을 끌어들인 탓에 주변 고을이 해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2년 전인 921년에도 말갈의 일파인 달고가 신라의 북방 지역을 공격하자 그 근처인 삭주에 주둔하고 있던 견권이라는 장수가 그들과 맞서싸워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6] 오늘날의 충청남도 예산군[7] 조물성에서 왕건과 견훤 중에 누가 먼저 화친을 정했는지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8] 태조 왕건에서도 유금필이 순식간에 연산진과 임존군을 함락했다는 소식에 마침 전염병으로 인해 걱정 중이던 후백제군이 경악하는 나온다.[9] 충청북도 보은군. 신라가 470년(자비왕 13년)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요새로 동으로는 상주, 서북으로 청주, 북으로는 충주, 서남으로는 옥천, 남으로는 영동으로 이어지는 요충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보니 방어하는 후백제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다.[10] 왕건과 다른 장군들 상당수가 거듭된 패배로 어느 정도 질려 있었다. 홍유와 강공훤은 후퇴할 길부터 닦아놓자고 말할 정도.[11] 물론 유금필의 용맹함뿐만 아니라 고창 지방의 호족들이 왕건을 지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12] 태조 왕건에서는 지역 추장들의 고깃배를 모아다가 싸웠다는 묘사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고 해안 지역 호족이나 후삼국시대 당시 한반도 서해와 남해는 해외 기록에서 신라구로도 등장하는 해적이 들끓고 있었는데 친고려 성향 해적들을 규합하여 함대를 급조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13] 이런 공세가 있었는다는 것은 기록이 있으나 성패 여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이후 견훤이 배를 타고 후백제를 탈출했으므로 탈환했을 수도 있고 나주 근방의 도서 같은 일부 거점 지역만 확보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14] 인천광역시 검단신도시의 검 자가 같은 한자를 쓴다.[15] 신성재, 2018, 《후삼국 통일 전쟁사 연구》, 혜안.[1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0761 참조.[17] 다만 태조와 동양원부인의 아들인 효은태자는 광종 대에 역모에 연루되어 사사된다.[18] 정확히는 효은태자의 후손으로 조선 초기의 왕씨 숙청에서 살아남은 왕미(王亹).[19] 고려 초기 왕자들 호칭의 경우 생모의 출신지나 태어난 거처의 호칭을 따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태조의 제11비 천안부원부인 임씨 소생의 왕자는 천안부원낭군(천안낭군)으로 불렸다던가 하는 식.[20]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성흥면[21] 유금필 → ... → 유필 → 유자량 → 유경현 → 유홍 → 유해(경원군부인(慶原郡夫人)과 결혼했는데 작호로 보아 인천 이씨로 보인다.) → 유자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