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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0029><colcolor=#fff> KIA 타이거즈 | |||
KIA Tigers | |||
창단 | 1982년 1월 30일([age(1982-01-30)]주년)[1] | ||
법인 설립 | 1982년 5월 29일([age(1982-05-29)]주년) | ||
법인명 | 기아타이거즈 주식회사 | ||
상장 유무 | 비상장 기업 | ||
기업 규모 | 대기업 | ||
구단 사무실 |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임동)[2] | ||
구단명 변천 | 해태 타이거즈 (1982~2001) KIA 타이거즈 (2001~) | ||
주요 라이벌 | - 달빛 시리즈 - 헤리티지 시리즈,그분과그분이 있는데... - 단군 매치,전설의 그싸움 | ||
운영 법인 | 주식회사해태타이거즈 (1982~2001) 기아타이거즈 주식회사 (2001~) | ||
모기업 | 기아 | ||
연고지 | 광주광역시 (1982~) | ||
구단주 | 송호성[3] | ||
대표이사 | 최준영[4] | ||
단장 | 심재학 | ||
감독 | 71 이범호 | ||
주장 | 47 나성범 | ||
영구 결번 | 18 선동열 | 7 이종범 | ||
홈 구장 | 무등 야구장 (1982~2013)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14~) | ||
제2 홈 구장 | 월명종합경기장 야구장 (2001~)[5] | ||
2군 홈 구장 | 무등 야구장 (1988~2005) 전남 야구장 (2006~2011) 기아 챌린저스 필드 (2012~) | ||
킷 스폰서 | IAB-STUDIO[6] | ||
관련 링크 | | 팀스토어 | | | | | 팀스토어 | | | | ||
[7] | [8] | |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12회 / 최다 우승) | |||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2024년 | |||
페넌트 레이스 우승 (7회)[9] | |||
단일 리그 |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2024년 | ||
전·후기 리그 | 1983년 전기, 1988년 통합[10] | ||
포스트시즌 진출 (23회) | |||
한국시리즈[11] |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2024년 | ||
플레이오프 |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2002년, 2003년 | ||
준플레이오프 | 1994년, 2004년, 2006년, 2011년 | ||
와일드카드 결정전 | 2016년, 2018년, 2022년 | ||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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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승률 | 0.392 2005년 126경기 49승 1무 76패 | ||
최다 승 | 87승 2017년 144경기 87승 1무 56패 2024년 144경기 87승 2무 55패 | ||
최다 패 | 80패 2019년 144경기 62승 2무 80패 | ||
최다 관중 | 1,259,249명 2024년[12] | ||
최소 관중 | 69,203명 2000년[13][코로나19] | ||
최고 FA 계약 | 6년 150억 원[15] 2022년 나성범 | }}}}}}}}} |
1. 개요2. 상세3. 지배 구조4. 구단 디자인5. 홈 구장6. 역사
6.1. 구단명
7. 팀 컬러8. 팬9. 응원10. 타 구단과의 관계11. 역대 선수11.1. 영구 결번11.2.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11.3.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11.4. 역대 주장11.5. 역대 지명 선수11.6. 역대 1차 지명 선수11.7. 역대 외국인 선수
12. 역대 기록 및 인물13. 역대 은퇴식14. 역대 송별식15. 지역 연고 학교16. 논란 및 사건·사고17. 이야깃거리18. 출입 기자단19. 스폰서 및 제휴사20. 기타21. 관련 문서22.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2. 상세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해태그룹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2001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인수[16]되어 KIA 타이거즈로서[17]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년 구단이다.공식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호남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 KBO 리그의 연고지 개념이 2000년부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바뀌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광주광역시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전라북도,[18] 제주도까지 포괄했었다.
KBO 리그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산 12회 차지한 최다 우승 구단이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거둔 이후 [age(1983-10-20)]년 넘게 KBO 리그 최다 우승 구단 지위[19]를 지켜왔으며, 한국시리즈 12회 진출 및 12회 우승이라는 불패 신화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80년대에는 해태 타이거즈로서 4년 연속(1986~1989)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리그 최초의 왕조를 건설하였다.
상징 색은 빨간색이며, 보조 색으로는 검은색과 노란색이 주로 사용된다. 상징 동물은 호랑이인데, 호랑이에게서 느껴지는 전통성과 민족 기상의 표상이 해태제과의 오랜 연륜 및 순수 민족 자본 바탕의 성장 배경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원년부터 2013년까지는 무등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었고, 2014년부터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에 위치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사용하고 있다.
3. 지배 구조
기아타이거즈 주식회사 지배 구조 | ||||
주주명 | 소유 주식 수 | 지분율 | ||
400,000 | 100% |
4. 구단 디자인
4.1. 엠블럼
타이거즈 엠블럼 변천사 | ||
해태 타이거즈 | ||
1982. 1. 6.~1. 18. | 1982~1995 | 1996~2001. 7. 31.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
2001. 8. 1.~2003 | 2004~2009 | 2010~2016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
2017~2020 | 2021~ |
구단의 상징색은 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사용하던 빨간색이고[20] 세컨드 컬러로 검은색을 밀었다. 빨간색-검은색 조합은 해태 타이거즈를 상징하던 검빨 유니폼 컬러 조합이기도 하다. 그러다 2015년부터는 유니폼에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CI 컬러인 다크블루(감색)를 적용했고 점차 사용 빈도가 늘어났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응원 도구 색상은 노란색으로[21]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지켜온[22] 전통이다.
구단 최초의 로고는 창단 직전에 만들어서 아주 짧게 사용했던 로고가 있다. 2017년 어느 블로거의 발견 글 1982년 1월 6일에 공개되었지만 같은 달 18일에 모두가 기억하는 유명한 해태 타이거즈의 사각 로고로 변경했다. 최초의 로고는 영문으로 TIGERS가 찍혀 있는데 너무 짧게 쓰인 탓인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내 역사 박물관이나 구장 곳곳에서도 이 로고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KIA 타이거즈 초기 로고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유사한 글씨체를 차용했다. 비록 꼴찌를 두 번 찍는 참담한 암흑기를 거치기도 했고 충격과 공포의 회색 원정 유니폼을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이 로고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해에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팬들에게는 결국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로고이다. 실제로 KIA의 올드유니폼 데이(Go T09ether Day) 경기에서는 2009년 이전까지의 로고가 표시된다. 초창기 2003년까지는 기아자동차에서 사용하던 밀레니엄 로고 디자인이 적용된 게 특징이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는 이전의 대칭형 로고에서 벗어나 비대칭형 로고를 채용하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동시에 'KIA' 폰트도 모기업의 CI 폰트가 아닌 'KIA MOTORS'의 폰트[23]로 변경되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한화 이글스와 로고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 시기 KIA는 2011년 준플레이오프 진출과 2016년 와일드카드 진출을 제외하면 가을야구와는 연이 없었고, 특히나 KIA의 팜을 작살냈다는 평을 받은 선동열 전 감독의 부임 시기와 맞물리면서 KIA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로고가 되었다. 해태-KIA의 모든 로고를 통틀어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는 로고이기도 하다. 이 시기부터 KIA는 구단의 얼터너티브 컬러로 감색(어두운 청색)을 내세웠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는 이전까지의 비대칭형 로고 및 원형 로고에서 벗어나 대칭형과 홈베이스를 상징한 것이 특징이며,[24] 구단의 세컨드 컬러인 다크 블루(감색)[25]를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했다. 로고의 상하단에는 기아자동차의 특징인 호랑이코 그릴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도 특징이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현대글로비스 럭비단을 창단했는데 이 로고를 응용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의 로고 및 유니폼 디자인이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팬들 사이에는 처음에는 어색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깔끔한 폰트체로 해태의 공식 첫 로고 이후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덧붙여 이 로고 사용하자마자 통합 우승으로 V11을 달성하면서 산뜻하게 새 시대를 열었다.
2021년에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회사명을 '기아'로 바꾸고 회사 로고와 기업 상징색 또한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경하면서 구단 로고 역시 일부 변경했다. 기존 KIA 로고 부분에는 기아의 새 CI가 삽입됐고 붉은색 타이거즈 워드마크는 그대로 두되[26] 오각형 테두리의 색깔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오각형의 윗쪽은 붉은색, 아랫쪽은 다크 블루가 배치됐지만 오각형 테두리를 전부 검은색과 다크 네이비의 중간점 색깔이라 할 수 있는 '미드나잇 블랙'으로 변경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검은색을 넣으려면 역사와 전통의 빨강 메인-검정 서브가 있는데 검정을 메인으로 두는 바람에 어색하다는 볼멘소리가 많다.[27] 다만 이건 모기업의 컬러가 공식적으로 블랙으로 변경된 이유가 더 크다. 그래도 그 헤리티지를 남겨놓고자 한건지, 빨강을 서브로 남겨 두었다.[28] 현 워드마크와 심볼, 폰트 자체는 이전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었기에 오히려 폰트는 그대로 두고 색깔이 검빨로 바뀐 지금의 로고가 더 멋있다며 호평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직전 로고와는 달리 이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 첫 해에 팀의 순위가 9위로 곤두박질치며 안 좋은 기억으로 출발했으나, 4년차인 2024년에 V12를 달성하며 좋은 기억을 추가하게 되었다.
4.1.1. 우승 엠블럼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엠블럼 | ||
해태 타이거즈 | ||
1983 | 1986 | 1987 |
해태 타이거즈 | ||
1988 | 1989 | 1991 |
해태 타이거즈 | ||
1993 | 1996 | 1997 |
KIA 타이거즈 | ||
2009 | 2017 | 2024 |
4.2. 심볼
타이거즈 심볼 변천사 | |||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
1982~1995 | 1996~2001. 7. 31. | 2001. 8. 1.~2003 | 2004~2006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2007~2009 | 2010~2016 | 2017~2020 | 2021~ |
4.3. 워드마크
타이거즈 워드마크 변천사 | ||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
1982~1995 | 1996~'01. 7. 31. | '01. 8. 1.~2009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 |
2010~2016 | 2017~2020 | 2021~ |
4.4. 마스코트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마스코트 문서 참고하십시오.4.5. 유니폼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유니폼 문서 참고하십시오.5. 홈 구장
KIA 타이거즈가 홈 구장으로 사용 중인 곳은 다음과 같다.- 1군: 무등 야구장 (1982~2013)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14~ )
- 제2 홈 구장: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1989) ▶ 월명 야구장 (2003~ )[29]
- 2군, 3군: 전남 야구장 (2006~2011) ▶ 기아 챌린저스 필드 (2012~ )
6. 역사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하여 통산 우승 12회로 최다 우승팀[30],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두자릿수 우승팀이다. 매 10년대마다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다.[31] 역대 우승 연도는 1983년, 1986년 ~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 1997년, 2009년, 2017년, 2024년. 덧붙여 현재까지 인수/인계 경험이 있는 구단 중 처음으로 인수 전후 모두 우승을 달성했고, SSG 랜더스와 함께 인수 전후 모두 우승한 둘 뿐인 구단이다.[32]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우승은 선동열 효과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선동열 이전에도 1983년에 우승한 적이 있고, 선동열이 타이거즈를 떠난 후에도 이종범을 필두로 홍현우, 이강철, 조계현 등의 활약으로 인해 1996~1997년에 다시 2연승을 달성했고, 의외로 선동열은 한국시리즈에서 6승 1패 4세이브 72.1이닝 1.74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에서보다 다소 부진했다. 선동열은 프로 통산 1,647이닝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으며 0점대 평균자책점도 세 차례나 했으니 오히려 한국시리즈에서만큼은 네임밸류에 비해 부진이라고 하면 부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규시즌에서는 선동열의 역할이 컸고 타이거즈의 페넌트 레이스 우승에 기여를 해서 한국시리즈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었으니 선동열이 우승에 공헌했다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에는 선발 투수로 하루 등판시켜서 며칠씩 쉬게 하느니 선발, 불펜, 마무리 가리지 않고 등판시키는 방식을 썼다. 선발이 일찍 무너지거나 무너질 기미가 보이면 바로 올려서 몇 이닝씩 던지게 하고 심지어 컨디션이 엉망인 날에도 상대 구단 기죽이기를 위해 불펜에서 몸을 풀게 했을 정도. 실제로 선동열은 프로 통산 367경기에 출장했지만 선발로 출장한 경기는 109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 당시에는 에이스 투수고 나발이고 마구잡이로 굴리는 게 관례였다.
특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한국시리즈 4연패 기록은 깨지기 힘들 기록이라는 평을 받았다. SK 와이번스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3번 우승하며 이 기록에 도전하였으나 2009년엔 KIA가 직접 SK를 쓰러트리며 기록 달성을 저지했다. 이 4년 연속 우승 기록은 후에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가 타이 기록을 세웠다.[33]
또한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한 적은 있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면 무조건 우승했다. 즉,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이다. 7차전까지 갔어도 마지막에 꼭 이겼다. 반대로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이긴 적이 한 번도 없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989년 승리가 마지막이다. 여태까지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구단은 아래와 같다.
- 삼성 라이온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2024년 한국시리즈
- 빙그레 이글스[34]: 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1991년 한국시리즈
- LG 트윈스: 1983년 한국시리즈(MBC 시절), 1997년 한국시리즈
- 현대 유니콘스: 1996년 한국시리즈
- SK 와이번스[35]: 2009년 한국시리즈
- 두산 베어스: 2017년 한국시리즈
다만 삼성 라이온즈와는 달리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 삼성 라이온즈와 4번, 빙그레 이글스와 3번 만났기 때문에 생각보다 상대하지 않았던 구단이 꽤 된다. 아래는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 없는 구단이다.
- 롯데 자이언츠: 1992년 플레이오프(1패)
- 키움 히어로즈: 2018년 와일드카드 결정전(1패, 넥센 시절)
- kt wiz: 2022년 와일드카드 결정전(1패)
- 쌍방울 레이더스, NC 다이노스: 포스트시즌 상대전적 없음[36][37]
6.1. 구단명
해태 타이거즈의 경영 악화로 인해 당시 기아자동차가 인수하여 2001년 8월 현재의 이름으로 구단명을 변경했다. '기아'라고 한글로 구단명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굶주린다는 의미의 기아(飢餓)가 연상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존재한다. 이 소문의 가장 큰 배경은 해태 타이거즈의 말년과도 연계된다. IMF 한파 당시 모기업 해태제과가 부도를 맞았던 해태 타이거즈는 영광스러운 전성기에 비해 초라하고 가난한 말년을 보내야 했는데, 후신이 '굶어 죽는다'는 뜻을 연상시키는 구단명을 쓸 경우 부잣집으로 구단의 주인이 변했는데도 전신의 가난 DNA가 전수됐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영어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는 '해태와의 단절'을 추진했던 초창기 KIA 프런트의 업무 마인드와도 맥이 통한다.[38] 어쨌든 한국어 기반인 KIA는 로마자로, 영어 기반인 'Tigers'는 한글로 적혀있는 희한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참고로 모기업이 과거 운영했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KIA가 아니라 기아가 공식 구단 명칭이었다.2011년 기아자동차의 모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새 CI 통합으로 인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뀜에 따라 구단명도 현대 타이거즈로 바뀔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는 모기업 명칭이 아닌 모기업의 계열사명 중 하나를 딴 셈이 됐다. 두산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구단이 한때 두산이 아닌 OB라는 구단명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우선 현대자동차그룹 내부의 '1사 1구단' 정책[39]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의 광주 내 사업장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기아 광주공장[40]이고 다른 구단도 각각의 연고지 선정 이유가 있기에 구단별 담당 기업과 명칭을 대폭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모기업 중 가장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현대자동차는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자동차') 축구단을 전담하여 타이거즈보다 앞서 운영해 오고 있다.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현대글로비스 럭비단도 마찬가지이다.[41] 추가로 우리나라에서 남자 야구, 남자 축구, 남자 농구, 여자 농구, 배구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모기업이나 모그룹의 대표 명칭을 구단명에 넣는다.[42] 등이 있고 농구에서는 SK텔레콤-서울 SK 나이츠, LG전자-창원 LG 세이커스 등의 예시가 있다.
7. 팀 컬러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팀 컬러 문서 참고하십시오.8. 팬
8.1. 인기
<colbgcolor=#ea0029><colcolor=#fff> 2017년 한국시리즈 4차전 잠실 원정 경기 |
2024년 한국시리즈 5차전 광주 홈 경기 |
연고인 광주광역시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고였던[45] 전주시, 제2 홈구장이었던 군산시 등 사실상 전라도 전 지역이 KIA의 대표적인 팬 베이스다. 추가로 전라도 출신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전국구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전라도 밖에서도 호랑이 군단의 전성기인 해태 왕조의 호성적으로 인해 수도권, 충청도 등지에도 팬층이 상당하다.
성적이 들쭉날쭉이지만 특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과 인천 SSG 랜더스필드 및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와 고척 스카이돔 등 수도권 원정 때마다 아무리 성적이 안 나와도 구장 절반은 붉은 유니폼과 노란 막대로 뒤덮여 있다. 이를 통해 KIA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실감할 수 있다. 잠실, 문학, 고척은 물론이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역시 장성호 은퇴식 때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두산은 서울 연고 구단이지만 KIA는 연고지가 광주다. 두산 베어스 응원 영상(주말) KIA 타이거즈 응원 영상(평일) 또한 기존 연고 구단의 입김이 센 타 지방 구장에도 KIA 팬들이 반대편 내야석에 꽤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팬 수가 많은 데다가 구단 특성상 롯데, LG 등과 함께 팬들이 열성적인 것으로도 유명해서, 실제로 야구장에 가보면 응원 소리가 정말 크다. 가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홈 팬들이 KIA 팬들의 응원 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행열차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그야말로 혹여나 KIA의 성적이 좋으면 팬들이 앰프 없이도 간단하게 타 구장을 본인의 홈구장처럼 만들어버리는 저력을 선보이게 된다.
프로야구가 태동한 1980년대 5번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쥔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 최초의 어린이 야구단/팬클럽 사업을 시작하는 등 철저한 팬 관리도 병행했다. 여기에 산업화 과정에서 전라도를 떠나 전국 각지로 진출한 연고지역[46] 출신 팬들은 물론 해태의 압도적인 성적과 아우라, 그리고 기라성 같은 스타들에 의해 유입된 비연고지 팬들까지 합쳐지며 전성기에는 원정에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 관중버프를 등에 업고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의 몰락 시기와 이후 성적 침체기에는 당연히도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간 줄 알았으나... 2009년 우주의 기운을 받아 몇 년만에 상위권에 오르더니 후반기 8월에만 20승을 할 정도로 성적이 올라가자 말 그대로 다시 최절정의 인기를 보여줬다. 말 할 것 없이 2009년 8월 마지막 경기의 잠실[47] 두산전 영상이나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중립구장 경기 규정으로 잠실에서 열린 5차전 시작 전의 조선일보 기사나 6차전 영상을 한 번 보자.
이렇듯 전국구 인기구단의 위상을 잃지는 않았으며, 잠실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엄청난 관중 동원을 보장하고 있다. 수도권 경기에서 50%는 KIA 팬이 채운다고 느끼는 팬들이 많다. 잠실의 경우 농담삼아 제2 홈구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이고[48] 그 외에 고척, 문학, 수원 등 기타 수도권 구장들에서도 공격 때 엄청난 응집력으로 응원 열기가 홈 팬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22년부터 대전도 응원단이 파견되면서 대전 역시 3루 관중석에 KIA 팬들이 많이 모여 앉으며 홈 팬들 못지않게 응원한다.[49]
2015년과 2016년부터 각각 추가/변경된 수원, 고척 원정 역시 마찬가지. 한마디로 수도권 원정경기는 말이 원정이지 최소한 중립경기나 다름없다. 특히 2009년, 2017년, 2024년 등 우승에 도전하는 시즌의 잠실경기 정도 되면 '전광판 빼고 모두 우리 것'이라는 선수들의 호언장담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09년 후반기 승승장구하며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올 즈음의 잠실은 KIA 관중이 홈 구단 LG/두산 관중의 1.5배 가까이 될 정도였으며 한국시리즈 잠실 중립 경기 때도 SK팬보다 최소 2~3배는 훌쩍 넘겨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SK팬들은 3루측 가운데와 상단 일반석 정도에만 앉아 있어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라고 언급했다.
2017년 시즌 막판 두산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일 때 수원에서 kt와의 3연전이 마지막 일정이었을 때는 kt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위즈파크 3경기 연속 매진이자 3연전 시리즈 전체 매진을 기록한다. 물론 KIA 관중들이 절대다수였던 건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2017년 한국시리즈에 두산 베어스가 진출하면서 잠실에서 3~5차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최근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1~7차전 모두를 홈에서 치르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양현종이 "자신들은 이번 7연전이 홈 7연전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강력한 발언을 했는데, 직접 KIA 팬들이 그 말을 증명해주었다. 사실 그 전 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전광판만 LG 것이고 나머지는 다 KIA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강력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한동안 무등 시절에는 광주의 관중동원이 원정보다 적어 '홈도 못 채우는 주제에 무슨 인기구단이냐?'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해태 시절부터 무등야구장 관중동원 실적은 어디까지나 원정에 비해 좋지 못한 편인 것은 맞다. 상대적으로 적은 광주광역시 인구와[50], 규모도 작았지만 환경도 열악했던 무등구장의 취약함 탓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행정적으로 보면, 잠실이나 문학 등지를 가득 채우는 원정 KIA 팬들이 다 홈 구단 관중으로 집계되는 집계 시스템 문제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겠다. 실제로 원정관중 동원은 2011년에 1위로 나타났다. 2016년에 진행한 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에서 두산, LG 다음가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동희 기자가 쓴 기사라든가 여타 기사등을 보면 KIA가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 1위를 달린다는 지표를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타종목인 K리그 광주 FC의 남기일 전 감독은 라이벌팀을 꼽는 기자의 질문에 여타 K리그 팀이 아닌 KIA 타이거즈를 언급할 정도로 같은 연고지에서 넘어야 할 산[51]으로 여기고 있다. 전라남도에 연고를 둔 전남 드래곤즈[52]도 사실상 마찬가지인 상황.
과거 해태 시절의 영광과 전라도 출신의 이주민들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점, 전라도에 연고를 든 야구단이 KIA 하나 뿐[53]인 점이 합쳐져 매년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는 추세이다. 충청도의 유일한 야구단[54]인 한화 이글스 또한 인기 많은 구단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 이런곳에선 누가 야구 본다고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연고지 구단 팬이라는 전제를 깔고 간다.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완공된 후 평균관중수 1위를 기록 중. 성적도 좋지 않지만 팬들이 이 정도로 몰린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 그동안의 홈관중 동원 부진은 정말 옛 무등구장의 열악했던 시설과 환경 때문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무등경기장의 열악함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바로 광주에 거주중인 KIA 팬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성적 하락에 가속화가 붙은 6월부터는 관중수 역시 줄었지만 66만으로 총 관중수 5위를 기록. 2016년에는 71만명을 기록하면서 기존 수치를 경신했다. 새구장도 있겠다, 성적만 좋으면 80~90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7년, KIA는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며 또다시 수많은 관중을 불러모으는 중이다. [줌업]중계방송 시청률이 말하는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은 KIA 광주의 자존심 KIA, 꿈의 첫 100만 관중 보인다 암흑기였던 2012~2014년에도 관중 동원은 꾸준히 했던 구단인데 올해는 성적까지 좋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우승이라는 호성적에 힘입어 첫 100만 관중 기록을 달성했다.
관중 수 증가에 이은 또 다른 호재는 바로 팬덤 연령대의 하향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라도 출신 노년, 중년 이상 연령층들이 주로 좋아하는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압도적이있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야구 인기가 최고조로 올라온 직후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해태의 올드 팬과 베이징 뉴비의 대거 유입의 효과를 제대로 누렸으며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팀 연령대가 낮아지고 팀 컬러가 180도 달라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10~30대 젊은 팬층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2017 시즌의 선전과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과정에서도 많은 젊은 팬층이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시즌에는 KBO의 유일한 홈구장 매진 0회라는, 구단 마케팅 역사에 길이 남을 매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KIA보다 성적이 더 나쁘면서도 홈 관중석이 더 많은 롯데와 삼성이 각각 5회, 4회를 매진시키고, 홈 관중석은 적지만 리그 꼴지를 기록한 키움이 2회를 매진시킨 반면, KBO에서 KIA 혼자서만 홈을 매진시키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홈관중 동원도 리그 6위(717,025명)에 그쳐버렸다.
그런데 거꾸로, 이 해 원정 경기에서는 14회를 매진시키며 KIA가 KBO의 원정 경기 매진 1위를 기록하였다. 2023년 KBO 리그에는 총 45개의 정규시즌 매진 경기가 있었는데, 이 중에서 거의 1/3에 가까운 14개가 KIA의 원정 경기였다. 9연승의 순간이었던 9월 6일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잠실 야구장에만 2만여 명의 관중이 몰리며[55] 여전한 인기를 증명해냈다.
또한 잠실 경기에서 이기거나 지는 거에 상관 없이 경기 후 3루 복도에 모여 뒷풀이를 하기도 한다 2023년 두산전 9연승 2022년 10월 4일 엘지전
종합하자면 2023년 시점에서 KIA는, 홈(0회 매진)과 원정(최다 매진)에서의 관중 동원력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벌어져있는 셈이다. 일단 원정 경기는 매진시키고 있는데다가 대한민국 인구 구조와 연고지 분배상[56] 비인기팀으로 떨어질 일은 없지만, 그동안 마케팅에 너무 안일했던 건 아닌지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해인 2024년에는 흥행면에서 초대박이 터졌다. 불과 25경기 만에 역대 챔필 시즌 최다 매진 기록인 10경기[57]를 경신, 사상 최초 챔필 6경기 연속 매진[58]을 기록했다. 2024년 6월 6일 기준 개막 후 현재까지 32경기 중 16경기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이다. 감독 교체, 시즌 초반 1위 순항, 김도영을 필두로 한 선수 뎁스 및 성적 향상 등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원정 경기 측면에서는 역대 최초 고척 스카이돔 주중 3연전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하였다.
지역별 팬층도 다양한데 연고지인 전라도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가 포함된 수도권에도 팬층이 매우 두껍다. 광주광역시와 전주시는 기본이고 인근의 전남과 전북 지역도 마찬가지로 호남 그 자체다. 특히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지역 연고 야구단이 사라진 전북도민들과 전북 출신 사람들은 쌍방울의 해체 이후 옛 쌍방울 선수나 전북 출신 선수들이 다수 소속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거나[59] 소수지만 전북과 가까운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있지만[60][61] 여전히 절대 다수의 전북 야구팬들은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고 있다.[62][63]
모기업 기아 또한 현대자동차그룹 소속인 만큼 현대차그룹 임직원,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을 응원하는 팬들은 지역과 관계없이 응원하는 편이다. 같은 전라도인 전북은 두말할 것도 없이 K리그와 AFC의 최고 클럽인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를 타이거즈와 함께 응원하는 팬들이 수두룩하다. 농구는 울산광역시 연고인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가 있고 배구 또한 천안시 연고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수원시 연고의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팬들 중 성적을 중시하는 팬들의 경우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대신 모기업의 영향과 함께 KIA의 팬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외 기업친화적이며 과거 기아자동차 공장을 인수한 현대위아[64]가 있는 창원시와 서산시의 일부 야구 팬들은 오히려 KIA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덧붙여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지금까지 리그에 남아 있었다면 야구계 현대가 더비, 일명 현대 시리즈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재미있는 요소가 더욱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런 인기에 비례해 안티도 매우 많다. 이는 인기 구단의 팬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인 무개념 팬들의 끊이지 않는 분탕과 더불어, 전라도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지역 차별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65] 실제로 KIA가 패배하거나 소속 선수나 구단의 범죄 등 안 좋은 일을 겪은 날에 기사에 들어가보면, 가장 기본적인 비하 단어인 생선 이름부터 시작해, 심하면 5.18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비하 드립이나 고인 모욕까지 나오는 등 타 구단에 비해 지역드립이 훨씬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뉴욕 양키스 사례를 보더라도 많은 팬을 보유하면 안티 또한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긴 하다.[66] 다만 단순 지역드립 수준을 넘어서 5.18 민주화운동에 관련된 비하나 고인 모욕은 기본적인 역사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더 악질적이다.
한국갤럽에서 매년 조사하는 프로야구 선호 구단 조사에서 2018년 롯데 자이언츠를 제친 이후 6년째 1위 자리를 석권 중이다.# 이외에도 중앙일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KIA가 종목을 불문하고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 최고 인기 구단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잠재적인 팬까지 합치면 팬 수가 약 44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끔 팬 분포도를 금호고속과 엮여 야구계의 금호고속으로 불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참고로 금호고속은 전국구이자 최대 고속·시외버스 기업이며, KIA 타이거즈와 같은 연고지에 위치한 기업이며 광주·전남 지역에 고속·시외버스 노선 점유율이 높기에[67] 이를 비유하기에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68]
'2024 시청률 결산' 흥행 돌풍의 주역, 여심을 사로잡은 구단은? |
2024년 한국프로야구 대흥행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영화관 등 다른 문화생활의 상대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2024년은 프로야구 관중수가 1천만명을 돌파하고 ‘20대·미혼·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야구가 엄청난 흥행몰이를 한 해였다. 이 절묘한 시기에 KIA가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의 통합 우승을 일궈내면서 팬 세대교체와 신규 팬 유입을 성공적으로 이뤘다.[69]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삐끼삐끼 춤 챌린지도 올해의 인기에 많은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8.2. 팬 서비스
팬 서비스란 개념도 희미하던 시대인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이 오히려 팬과 선수, 구단 간의 유대감은 더 좋았단 소리가 나올 정도로[70], 팬 관리가 굉장히 서툴고 성의조차 부족하다. 이것은 선수단 측면에서도, 구단 차원의 차원에서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선수단이 팬을 외면하고 사인을 하지 않는 것이 지상파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으며, 구단 유튜브 채널의 경우는 다른 구단과 비교하면 보수와 대우가 상당히 짜서 영상의 퀄리티가 낮다. 2018 시즌 들어서 좋아졌지만, 사실 이 동영상 편집 및 관리도 거의 열정페이 수준이다.[71] 거기에 구단은 팬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데, 이는 팬들의 의중을 무시한 정재공 단장 현수막 사건이나 선동열 재계약 사태, 김기태 사퇴 운동 시 보여주었던 사찰행동에서 잘 나타난다.같이 팬 서비스가 나쁜 구단으로 손꼽혔던 롯데와 삼성은 선수 차원에서든 구단 차원에서든 개선 의지라도 보이지만[72] KIA는 팬 서비스 교육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크다. 오죽하면 야구선수의 팬 서비스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대표 사례로 KIA가 나오겠는가?
대부분의 구단이 그러하듯이 KIA도 젊은 선수들은 투타 불문하고 팬서비스가 좋은 편이고, 투수조는 주축이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양현종이고 최고참 임창용도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라 윤석민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팬 서비스가 무난한 편이지만 문제는 베테랑 야수조였다. 주전 야수조 가운데 팬서비스가 좋다고 내세울 수 있는 선수는 안치홍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2019 시즌이 끝난 후 안치홍도 롯데로 이적해버렸다.
김주찬과 최형우는 전 소속 구단에서부터 팬 서비스가 나쁘기로 유명했고, 인터뷰할 때마다 팬을 자주 언급하고 또 구수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범호는 팬서비스가 당연히 좋을 거라고 사람들이 막연하게 착각하지만 실상 전혀 좋지가 않다. 또한 SK 백업 시절엔 늦게까지 사인을 잘 해줘서 절찬을 받았던 김민식은 KIA 이적 후 주전으로 도약하더니 김주찬, 최형우 수준으로 팬 서비스의 퀄리티가 추락했다. 그리고 신인 시절엔 나름 괜찮았던 김선빈은 상무 입대를 전후로 해서 극도록 나빠졌다.[73] 사정이 이러하니, 심지어 프로 야구 선수들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팬 서비스가 아주 나쁜 편에 속하는 나지완은 안 좋은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또 그 동안 쌓아놓은 이미지가 별로라서 최악의 팬서비스를 보여주는 선수로 오인되지만 실제론 KIA 타자들 기준에선 최소 중간은 간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구단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팬 서비스가 상당히 좋지만 KIA는 외국인 선수들마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팻 딘만 팬 서비스가 좋고 헥터는 외국인 선수치고 팬 서비스가 별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버나디나 같은 경우는 2017 시즌엔 그럭저럭 좋다는 여론이 우세했으나 2018 시즌엔 평이 갈리는데 어쨌든 작년보단 안좋아졌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된다.
또한 이전 KIA에 소속되었던 선수들 중에도 팬서비스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있다. 이용규, 강한울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한울은 삼성으로 이적해서도 평이 좋지 않다. 이용규는 그나마 한화에 가서는 KIA 시절보단 조금 나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시각에선 별로다.
2020 시즌 최종전에서 양현종, 박찬호, 김태진을 제외한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손인사도 안해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광주 홈경기였고 장내 아나운서 김영호가 손을 흔들어 달라고 3번 마이크를 통해 말했으나, 선수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큰 논란이 되며 주요 스포츠 뉴스와 기사를 장식하게 되었다. 결국 선수단과 임직원 측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선수들은 손인사를 해달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을 못들었다고 해명했지만 그걸 들어야만 손인사를 해주는 것이냐는 팬들의 반문이 역시 거세다.
그러나 2022 시즌 들어서는 FA로 나성범을 영입하고 양현종이 복귀하며 구단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경기 중 홈런이 나오면 홈런의 주인공이 더그아웃에서 호랑이 탈을 쓰고 세리머니를 펼친다. 1~3루타를 쳐서 출루하면 손가락 브이 자세를 취하며 출루를 기념한다. 2022 시즌 전에 FA로 야심차게 영입한 나성범은 NC 시절부터 팬들의 사인 요청을 정말 바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잘 응해주는 편이므로 구단의 약점인 좋지 않은 팬 서비스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받았다. 실제로 전체적인 개선을 이끌어냈으며 오히려 전 구단에서 하지 않았던 각종 세리머니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나성범 본인이 밝혔다.
게다가 구단에서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가리지 않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경기 승리 시 수훈 선수가 경기 종료 후 호랑이 무늬의 담요를 덮고 스피커로 선곡한 노래를 틀며 팬들 앞에서 런웨이를 하는 일명 "호랑이 담요 세리머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고[74]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다수의 젊은 선수는 팬 서비스가 훌륭해 최악의 팬 서비스를 가진 구단이라는 오명에서 점점 벗어나는 중이다. 다만 인스타그램에서 경기 승리 시에만 경기 결과를 게시해서 수많은 팬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 점 역시 2024년 시즌부터는 개선되어 패배한 경기의 결과도 게시되고 있다.
===# 유명 타이거즈 팬 #===
- 강경원 ★
- 강민혁: 부모님도 KIA 팬이다. 2023년 9월 9일 더블헤더 1차전 시구를 위해 챔피언스 필드를 방문했고 끝까지 경기를 직관하며 승리요정이 되었다.#
- 강성범
- 강성형 ★: 무안군 출신으로 광주 지역 학교를 졸업했다. V-리그 2019-20, 2021-22 시즌이 코로나19로 인해 조기에 종료된 가운데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압도적인 1위로 이끌었다. 이후 2022년 6월에 시구를 하러 홈구장을 방문했다.#
- 고경표
- 고민정 #
- 고원: 가족 중 친오빠를 제외한 모두가 KIA 팬이라고 한다. 인천 출신이라 문학 경기장을 여러 번 가서 떡볶이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오빠만 혼자 LG 팬이라 집안에서 배신자라고 불린다고.
- 고현지 : 청주 KB 스타즈 농구선수. 인스타그램에서 구단 공식 계정과 김도영, 윤영철 계정을 팔로우했다.
- 기보배 ★
- 기성용 ★
- 김규종 ★
- 김광두 ★: 전직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김 전 부의장 집안 사람들 모두가 다 KIA 팬이며 실제로 김 전 부의장의 외갓집 6형제들이 궁내동 김 전 부의장 자택에 모여 함께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 김수희: 부산 출신인데도 본인의 히트곡 남행열차가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국민 응원가로 등극하자 자신도 그 덕에 해태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 덕으로 시구 행사에 초청 받기도 했다.
- 김병조 ★: 80년대 초반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로 유명세를 탔던 개그맨.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에 과거 해태그룹이 망할 때도 "일부러라도 부라보콘만 먹고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를 꼭 사먹게 하곤 했는데!" 라며 당시 비통한 심정을 보여주기도 했을 정도로 베테랑 해태-KIA 팬이다. 얼마나 골수 해태 팬이였냐면 MBC 코미디언 실에서 "MBC 청룡 응원하러 가자!"라고 할 때 경기장에서 청룡 응원하는 척하다가 살짝 빠져서 해태를 응원했을 정도였다고...[76] 해태그룹이 몰락할 때 가수 남진 외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해태 살리기 운동 본부'를 만들어서 본인이 본부장을 맡았을 정도다. 그때 그 상황을 크라운제과 측이 알게 되어 오늘날 매년 명절 빠짐없이 과자를 받는다고 한다. 전 가족이 해태-KIA 팬임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영상[77]
- 김아랑 ★
- 김종석 ★
- 김지효
- 김의성: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원준의 유니폼을 입고 찍은 인증 사진을 게시했다. 글 문구에는 "가자 V12"를 적은 것으로 보아 KIA 팬 확정.
- 김원희
- 김태원 ★: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KIA 타이거즈 골수 팬으로 유명하다. 2018년 7월 21일 광주 kt-KIA 경기에서 절친이자 같은 KIA 팬으로 알려진 이현과 함께 시구도 했다. 최근에는 KIA 타이거즈 출신 서동욱[78]과 '야구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하고 있다.[79]
- 나얼 #
- 남보라
- 남진 ★: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 김병조와 함께 해태 살리기 운동 본부에 참여했을 정도로 해태 골수 팬이었으며 오늘날의 KIA 팬이기도 하다. 2016년 8월 21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vs LG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그야말로 올드 팬. #
- 남현종 : KBS의 아나운서, KBS 메인 축구 캐스터
- 던밀스 #
- 루탄 ★
- 라도 ★
- 라라 ★
- 류효영, 류화영 ★: 쌍둥이가 둘 다 KIA의 팬이다. 목동 야구장에서 KIA 시절 진해수의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 문근영 ★
- 문현준 ★: T1 소속 프로게이머이며, 광주광역시 출신. 야구선수를 할 적에 이의리와 실제로 친구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하며, 2024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자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팬을 인증했다.
- 문호준 ★: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 스크린야구 실력도 괜찮을 정도로 상당한 야빠라고 한다. 고향이 군산이라서 골수 타이거즈 팬이라고.
- 민희 ★
- 박나래 ★ #
- 박성광
- 박신혜 ★: 그 유명한 '랜디 신혜' 시구를 2006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한화 이글스와의 광주 홈경기에서 보여줬다. 2024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광주 홈경기에서도 시구자로 초청되었으며, 결과는 7:5로 승리하면서 우승요정이 되었다.
- 박준형
- 박지성
- 박지원 ★
- 박철민 ★
- 박희순
- 배유람: 2023년 5월 19일 10:1로 키움을 이긴 경기에서 시구를 하며 부모님이 여수 분으로 모태 타이거즈 팬이라고 밝혔다.
- 배혜지 ★: KBS 기상캐스터 포함 종합 방송인. 과거 구단의 어린이 회원이었으며 2024년에 시구를 했다.
- 백성현: 2024년 5월 15일 두산전에서 승리기원 시구를 하였으며, 결과는 8:4로 승리하면서 승리요정이 되었다. 또한 양현종과 오래된 찐친 사이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 백지헌 ★
- 변기수
- 변희재: 김성한의 대학야구 시절부터 팬이였다고 밝혔으며, 이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해태를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성한의 선수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기아의 팬이며 지금도 경기 중계방송을 본다고 한다.#
- 빈지노: 자신이 런칭한 의류 브랜드 아이앱 스튜디오가 KIA 타이거즈의 킷 스폰서가 된 것을 계기로 팬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BX: 가족이 KIA 팬이다. 2023년 가족들과 직관을 한 다음부터 팬이 되었다. 바로 그 다음주에 챔피언스 필드를 방문해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을 관람하고 팀스토어에서 옷을 사입고 인증샷을 남겼다. 이후로도 버블과 본인의 생일 라이브 등에서 KIA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보여주었고 2024년 3월 26일 경기의 시구자로 선정되었다.
- 서아(tripleS) ★
- 서재덕 ★
- 설주완 ★ : 유튜브 방송에서 기아팬임을 인증했다#
- 성찬: 부모님의 영향으로 KIA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
- 송가인 ★: 2021년 9월 2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SSG 랜더스 와의 경기 전 승리를 기원하는 시구를 했다.
- 송대관 ★
- 송영재 ★
- 송하영 ★
- 수빙수
- 수스 #
- 시온(NCT) ★: 전라남도 목포시 출신.
- 신정윤 ★: 전라남도 구례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응원한 모태 KIA 타이거즈 열성팬이라고 한다. 또한 2024년 5월 10일 SSG전에서 승리기원 시구를 했다.
- 신정현: 前 DWG KIA 소속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트위치 스트리머. 롯데 자이언츠 팬이기도 하지만 담원 게이밍을 후원하는 기아와 부모님의 영향으로 KIA 팬이기도 하다.
- 심우철 ★: KIA 타이거즈가 잠실로 원정 오면 보러 간다고 한다.
- 심은진
- 심재철 ★
- 심현섭 ★ 광주 출신으로 99년에 그 유명한 김응용 감독의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성대모사를 했다. 이후 김응용 감독 팔순에 진행자로 섭외됨.
- 아이디 ★
- 안산 ★: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인 고독한 안산방에서 다른 스포츠 보는 걸 물어보자 배구와 야구를 보며 그 중 KIA 타이거즈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 양학선 ★
- 양홍원: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밝혔다.
- 어글리덕 ★
- 엄원상 ★: 광주 FC 소속 시기에 시구를 하러 챔피언스 필드를 찾기도 했다.
- 여름: 시구를 통해 인연을 맺었으며 2024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자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팬을 인증했다.
- 영준
- 오지호 ★
- 오정태(개그맨) ★
- 위근우
- 원필 #
- 유노윤호 ★
- 유송화 ★
- 유현조
- 윤경 ★: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걸그룹 로켓펀치의 멤버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오빠와 직관을 자주 갔다고 하며, 연습생 시절에도 휴가를 받으면 집보다 챔피언스필드를 먼저 찾아가 직관했을 정도로 찐팬이라고 한다.
- 윤경호: 2024년 ENA의 프로그램인 찐팬구역에 KIA 팬으로 출연했을 때 양현종 선수가 자신이 신던 스파이크에 싸인해 선물 받았다면서 신발을 자랑했다.
- 윤영찬 ★
- 윤태진: 과거 선동열의 팬이었으며 '타이거즈 키즈'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2017년 8월 16일 NC 다이노스와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기사 참조
- 윤호 ★: 어린 시절 KIA 타이거즈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또한 킹덤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이종범의 응원가인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하며 이종범 응원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2024년 5월 25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 시구를 하였다.
- 이다혜 ★ 2017년 우승 후 KIA 팬이 되었다고 한다. 2019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단 KIA 타이거즈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하여 성공한 덕후가 되었지만 응원단장의 극성 팬덤 저격 사건으로 2022년을 끝으로 타이거즈를 떠나게 되었다. 2023년은 KBO에서는 활동하지 않고 CPBL의 라쿠텐 몽키스에 진출했다.
- 이동욱: 강심장에 당시 KIA 타이거즈 소속이었던 이용규가 출연했을 때 KIA에 꼭 남아달라고 부탁하면서 KIA 팬임을 밝힌 적이 있다.
- 이동윤: 2019년 4월 23일 잠실 KIA vs LG 경기에서 개그맨 김태원과 함께 직관 온 것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이때 이종범의 해태 타이거즈 시절 반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 이문식 ★: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이다. 2016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 잠실야구장에 출연했다. 다음 해 7월 2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는 시구까지 했다. 이때 정용운의 특유의 루틴을 따라하며 타이거즈 골수팬임을 인증하였다.
- 이보람: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팬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KIA 팬이 됐다고 한다. 얼마나 타이거즈 덕후냐면 최군과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응원가는 기본이요 치어리더와 서한국 응원단장 이름까지 알 정도이며 김동재 코치 돕기 일일호프에서도 선수들과 인증샷 까지 남길 정도로 타이거즈의 덕후를 인증했다. #1 #2
- 이보영: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시구한 적이 있다.
- 이봉규(아나운서) ★: CBS 아나운서. 본인이 진행하고 있는 이봉규의 어떤가요에서 야구 관련 댓글이 나오면 KIA 타이거즈에 대한 팬심을 종종 드러낸다.
- 이사배 ★
- 이상준 ★: 트위터나 유튜브 채널 등에서 자신이 KIA 팬임을 언급한 적이 있다.
- 이석훈
- 이영애 #
- 이용대 ★: 최단신과 화순초-화순중 1년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둘이 같이 배드민턴을 치고 놀았다고 한다.
- 이용섭 ★
- 이정현(1987) ★: 광주광역시 로컬 보이이기도 하며, 나지완과는 서로 농구장과 야구장을 번갈아 직관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농구와 야구가 시즌이 겹치지 않기도 해서 그런지 김주찬의 사이클링 히트 경기와 차일목의 끝내기 만루 병살타 등 좋고 나쁜 굵직한 기록을 다 봤을 정도다.
- 이정현(방송인): VCT의 통역 겸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KIA 말고도 두산 베어스와 두산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오재원 선수의 팬이기도 한다.
- 이정효 ★: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 어린 시절에 해태 타이거즈 경기를 자주 보러 다녔고, 지금도 기아의 경기를 자주 시청한다고 밝혔다.#
- 이제훈: 무려 1989년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 이진(배구선수)
- 이채연 #: 이채연 2022년 5월 22일 시구자로 나서며 아빠와 함께 경기를 끝까지 즐긴 후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고, 인스타 라이브 방송으로 시구 후기를 이야기했다. 동생인 채령도 KIA 팬이다.
- 이해찬
- 이현 ★ #
- 임종석 ★
- 임형철: 해외축구 및 K리그 축구 해설위원. 양현종 선수와 김선빈 선수의 인스타에 좋아요가 있다. 축구도 같은 호랑이인 울산 현대의 팬으로도 알려졌다.
- 장하성 ★
- 전웅태: 2020 도쿄 올림픽 근대 5종 동메달리스트. 광주광역시청 소속이며 KIA 팬으로 2021년 8월 26일 롯데전에서 시구도 했다.
- 정가예: 현 응원단의 치어리더. 2018년 여름에 입단해서 현재 몇 안되는 프랜차이즈 치어리더로 알려졌다.
- 정다한 ★
- 정만식 ★: 2017년 8월 19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기사 내용 참조. 홈에서 시구하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 정세균 ★: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자로 나왔고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조계현 단장의 열혈한 팬으로 시구당시 입었던 유니폼의 번호가 조계현 단장의 선수시절 번호이다. #
- 정종철: 충청도에서 태어났지만 전라남도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KIA 팬이 됐다. 안치홍과는 절친한 사이다.
- 제이홉 ★
- 조광일 ★
- 조나단 ★
- 조주영
- 조충현(아나운서):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대놓고 인증하고 있다. 심지어 기념 굿즈가 새로 나올 때마다 그 때 그 때 다 수집을 할 정도
- 지성: 배우자 이보영과 같은 KIA 팬이다. 그런데 2017년 두산 베어스의 시구자로 초청되어 시구를 한 적이 있다.
- 지성(NCT): 소년멘탈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느 출연자분이 KIA 팬이라고 하자, 자기도 KIA 팬이라고 손을 드는 장면이 나왔다. 그 후 브이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장면(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을 기억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 채령: 아버지의 영향으로 KIA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2017 한국시리즈 직관 인증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언니인 이채연고 KIA 팬이다.
- 채리나: 전 kt wiz 선수이자 현 LG 트윈스 주루코치 박용근의 아내. 인스타그램에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시청하는 모습을 올리고 KIA가 우승한 것에 감격을 표했다.
- 최문희 ★: 가수를 하기 전 직관도 다니던 KIA 팬이었다.
- 최미선 ★
- 최진혁 ★
- 태은 ★: 라니아의 전 멤버이자 트위치 스트리머. 전북 남원 출신으로 트위치에서 KIA의 팬심을 드러내고 있다.
- 하슬 ★ #
- 한민관★: KBS N SPORTS에서 방영했던 "불야성"이란 프로그램에서 KIA 팬 대표로 출연했다.
- 혜린 ★
- 홍진영 ★
9. 응원
9.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2025 시즌 응원단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응원단장 | 장내 아나운서 | |
<rowcolor=#ea0029,#fe385b> V13 서한국 | MC 김영호 | ||
마스코트 | |||
<rowcolor=#ea0029,#fe385b> V13 호걸이 | |||
치어리더 | |||
<rowcolor=#ea0029,#fe385b> 1 유세리 · 5 신혜령 · 7 정가예 [[팀장| ☆ ]] · 8 윤수인 · 10 박성은 · 12 염세빈 · 19 유세빈 · 30 천소윤 · 44 김한나 [[팀장|★ ]] | }}}}}}}}}}}} |
2022년 5월부터 KBO 10개 구단 중 최초로 홈과 원정 전 경기에 응원단을 파견한다. 다만 매년 5월 18일은 구단의 연고지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응원단을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
9.2. 응원단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응원단장 |
{{{#!wiki style="" {{{#FFFFFF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50403 | <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임갑교 (1982~1995) ★ ★ ★ ★ ★ ★ ★ | 김창규 (1996~2001) ★ ★ | 조지훈 (2002~2003) | 김주일 (2004~2014) ★ | |
<rowcolor=#ffffff> 5대 | 6대 | |||
(2015~2016.06.04.) | 단장 대행 호돌이, MC이슈 (2016.06.05.~06.27.) | 서한국 (2016~ ) ★ ★ |
- 임갑교 응원단장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구단에서 공식으로 임명한 응원단장. 원래는 해태제과 직원이었고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해태와 롯데의 원년 개막전에서 활동한 것이 응원단장 커리어의 시작이다.
- 김창규 응원단장은 당시 팬들에게는 붐붐 아저씨 내지는 붐붐 단장으로 불렸다. 응원단장으로 있을 당시 원래 생업은 식당 운영. 광주지방법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해태 타이거즈의 최후를 지킨 응원단장으로 2000년대 초 해태 살리기 운동에도 나선 바 있다.
- 사실 임갑교 단장과 김창규 단장 사이에 구단에서 임명한 응원단장이 있었으나 사설 단장이었던 김창규 단장보다 응원 실력이 부족해 오래 부임하지 못했고 결국 구단은 김창규 응원단장을 공식 응원단장으로 임명했다. 이로 인해 2대 단장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김창규 단장을 실질적인 2대 단장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 조지훈 응원단장은 지금이야 약 10년간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으로 일하다 보니 롯데 이미지가 아예 고정된 사람이지만 KIA에서도 혁혁한 공적을 쌓았다. 이종범과 장성호, 홍세완 등 2000년대 초반부터 KIA에서 뛰던 선수들의 응원가는 다 이 사람이 만들었다. 그야말로 응원가 제조 측면에서는 신계에 도달할 수준. 응원단장직을 내려놓고 입대했고 제대 후 롯데 응원단장으로 옮겼다.
- 김주일 응원단장은 현재 KIA 타이거즈의 응원 체계를 구축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 덕에 10년 간 한 구단에서 장수 응원단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다만 응원단장이라는 직업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있었고 그 외에도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인해 결국 kt wiz 응원단장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완전히 타이거즈와의 연이 끊어진 건 아니었던 것인지 2017년 한국시리즈 때 서한국 단장에게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자비로 구매했던 약 100만 원짜리 호랑이 가운을 빌려줬다! 바로 이 옷.
- 서한국 응원단장은 타이거즈 팬 출신으로 전임자가 망친 팀 응원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고, 특히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응원 리딩 능력이 빛을 발했다. 새로 제작한 응원가의 임팩트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2022년 소크라테스 응원가가 제대로 터졌다.
9.3. 장내 아나운서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장내 아나운서 |
{{{#!wiki style="" {{{#ffffff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50403 | ||||
초대 | 2대 | |||
MC이슈 (2014~2018) | 김영호 (2019~ ) |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첫 해부터 전문 장내 아나운서를 고용하여 응원단장의 업무를 덜어주고 있다. 초대 장내 아나운서는 MC이슈다. 2018 시즌까지 5년을 함께 했으며 결혼 이후 가족에 집중하게 되며 사임했다. 기사
- 2대 장내 아나운서는 치어리더로 활약했던 최미진의 남편이자 프리랜서 MC로 활약 중인 김영호를 선임했다. 김주일, 나윤승, 서한국 응원단장 밑에서 대리로 일한 경험도 있고 그 후에도 개인 경력을 쌓아올리며 2019 시즌부터는 대리가 아닌 장내 아나운서로 돌아왔다.
9.4. 치어리더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치어리더 문서 참고하십시오.{{{#!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치어리더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8년 | ||||
한나더 외 미상 |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
{{{#!folding (4명) | 미상 | {{{#!folding (5명) | {{{#!folding (5명) | {{{#!folding (5명) |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
{{{#!folding (6명) | {{{#!folding (7명) | {{{#!folding (9명) | {{{#!folding (8명) | {{{#!folding (10명) |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
{{{#!folding (11명) | {{{#!folding (14명) | {{{#!folding (10명) | {{{#!folding (11명) | {{{#!folding (14명) | |
2024년 | |||||
{{{#!folding (13명) | |||||
※ 2009년 이후의 치어리더 명단을 기재했다. ※ 팀장은 적색으로 표시했다. |
9.5.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응원가 문서 참고하십시오.9.6. 응원도구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응원도구 문서 참고하십시오.9.7. 호랑이 가족 한마당
자세한 내용은 호랑이 가족 한마당 문서 참고하십시오.시즌이 끝나면 매년 실시하는 구단의 축제 겸 팬 미팅.
9.8. 커뮤니티
10. 타 구단과의 관계
10.1. 삼성 라이온즈 - 달빛 시리즈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
10.2. 롯데 자이언츠 - 헤리티지 시리즈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 롯데 자이언츠 {{{+1 {{{#ffffff 'Lotte Giants'}}} }}} |
10.3. 두산 베어스 - 단군 매치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 두산 베어스 {{{+1 {{{#ffffff 'Doosan Bears'}}} }}} |
10.4. LG 트윈스
엘롯기 동맹으로 묶여 언뜻 사이가 좋아보일 지 모르나, 사실 KIA와 LG 두 팀은 LG가 MBC에서 지금의 LG가 된 1990년부터[80] 2024년 현재까지 역사가 상당히 깊은 KBO 역사상 최악의 불구대천의 라이벌 관계이며 지금까지도 KIA 선수단과 팬들 사이에서 무조건 LG전은 이기고 봐야 한다는 마인드가 강하다. 특히 팬들 사이에선 팀이 10위를 하더라도 LG전은 꼭 잡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역사를 살피자면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MBC 청룡이 해태 타이거즈를 꺾었다면 프로야구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당시 한국시리즈는 전·후기리그 우승팀이 맞붙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MBC는 후기리그를 1위로 마쳤지만 보너스 지급 문제를 둘러싼 선수단의 내부 분열로 자중지란에 빠졌고 결국 전기리그 챔피언 해태에 1무 4패로 완벽하게 패하며 홈구장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원정팀 해태에게 우승을 내주게 된다. 한국시리즈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해태는 이후 1986~1989 시즌 4연패를 차지하는 강팀이 됐고, MBC는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도 한 번 나가지 못하는 만년 중하위권 팀이 되고 말았다.[81] 1989 시즌까지 MBC가 프로야구에 참가한 8시즌 동안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한 게 최고 성적.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두 팀 사이에는 딱히 라이벌 구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82] LG의 옆집인 OB 베어스 역시 1987년을 PO 진출을 끝으로 투수들의 혹사 문제와 선수들의 노쇠화로 급격한 내리막을 겪었기 때문에 역시 해태와 라이벌로 엮이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 LG그룹이 MBC 구단을 인수하며 모든게 달라졌다. LG는 그 해 8월 25일까지 53승 42패(승률 .558)로 3위, 해태는 47승 3무 41패(.533)로 4위였다. 두 팀은 잠실에서 이 날까지 주말 3연전 경기 중 두 경기를 치러 1승 1패를 주고받은 상태였고, 1990년 8월 26일 경기에서 그 유명한 잠실구장 패싸움 사건이 터진다. 원래라면 구장관리 미흡으로 홈팀 LG의 몰수패를 선언해야 되지만, 원정팀 해태 팬들이 난동을 피웠기에 심판들도 몰수패를 쉽사리 선언하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난동이 진정되고 1시간 뒤에 재개되어 해태의 1-13 대패로 경기가 끝나게 된다. 해태는 결국 페넌트레이스를 2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3전 전패를 당한 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다. 거꾸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LG는 여세를 몰아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정상에도 오르게 된 것.[83]
서울시민들 중 다수는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많고, 토박이가 적기 때문에 출신 지역이 다양하다. 덕택에 프로야구 원년부터 '서울팀=우리팀'이라는 인식은 미미했고 오히려 '고향팀=우리팀'의 인식을 가졌거나 본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님의 응원팀을 따라서 응원하거나 항상 이기던 해태의 야구 자체에 매료된 비연고성 팬층도 상당했다.
그래서 전라도 출신 팬과 전라도와 관련이 없지만 해태 자체를 좋아하는 팬[84]으로 해태의 잠실 경기는 항상 북새통을 이뤘다. 더구나 포스트시즌 4차전 이후부터는 대개 잠실에서 치르도록 되어 있는 중립구장 규정 탓에 가장 잠실에서 많은 빅 게임을 가진 구단도 다름 아닌 해태였고 잠실은 해태의 보조 홈구장이라는 말도 통용되던 시절이었다.[85] 그리고 후술되겠지만 성적과 상관 없이 워낙 큰 팬층을 가진 영향으로 지금도 KIA의 제2 홈구장이 잠실이라는 말이 많이 퍼져 있다.[86]
또한,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해태 팬들이 LG를 놀리려고 만든 노래인 고래사냥이 탄생하게 된다. '자~ 떠나자~ LG 잡으러~' 라고 개사를 해서 잠실구장에서 떼창을 시작했고, LG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응원가가 되었다. 이 응원가는 그 이후 쭉 이어져서 부르다가 결국 2010 시즌을 앞두고 김주일 응원단장의 사과로 더 이상 공식 응원단에서는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응원단에서는 말리지만 일부 KIA 팬들이 고래사냥을 부르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LG 팬들은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1990년 LG에 입단했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1994년 해태로 이적한 이병훈 前 해설 위원은 "LG 시절엔 솔직히 해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재계 라이벌인 삼성이나 잠실 라이벌 OB에 포커스를 맞췄다.[87] 그런데 해태에 가보니 'LG에는 지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확실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이광환 전 감독은 "그 때도 지금처럼 LG는 인기가 대단한 팀이었다. 잠실에서 해태하고 맞붙으면 정말 힘든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는 날에 팬 3,000명 정도가 모여 '감독 나오라'고 외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감독으로서도 더 이기고 싶은 경기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라이벌 의식이 절정에 달했던 건 1997 시즌[88]이었다. 이 해 해태는 LG와의 잠실 원정에서 3승 6패로 밀렸는데, 그 6패 중 5패가 8회 이후 역전패였다. 4월 15~16일 2경기 연속으로 연장 끝내기 패를 당하더니[89] 6월 29일 경기[90]에서는 박재용이 9회초 당대 최고의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내고도 9회말 수비에서 재역전패를 당했다. 9월 10일에도 임창용이 9회말 투아웃까지 잘 잡아내고도 허문회에게 1루수 강습 안타를 내준 이후 쓸데없는 견제로 2루를 허용한 후 이병규에게 동점타를 내주어 연장 14회 역전패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절정은 1997년 한국시리즈였다.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진출팀이 서울 연고팀일 경우 순위에 상관 없이 1, 2, 5, 6, 7차전을 잠실에서 열도록 하는 규정 때문에 해태는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도 홈 어드밴티지 없이 경기를 치렀지만, 승자는 해태였다. 마운드에서는 이대진, 타석에서는 이종범이 팀을 이끌며 V9를 이뤄냈다.
이후 2001년, 팀 이름이 KIA로 바뀔 때까지 더 이상 해태가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적은 없다. 결국, 해태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마지막 우승 모두 상대 팀이 MBC-LG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해태 팬들 사이에서는 '잠실은 해태 안방 구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기도 했다.
또 KIA로 바뀐 다음에도 라이벌 관계가 지속되어 선수들끼리 벤치 클리어링이 나면 유독 KIA가 LG를 먹이는 언플을 하기도 했으며 특히 고참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을 중심으로하여 LG쪽으로 돌진하는 일이 잦았다. 이때 벤치 클리어링에 소극적인 구단인 LG 트윈스는 늘 KIA 타이거즈에게 호되게 당하곤 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박정태[91]-이대형 벤클 당시에 젊은 투수 임준혁이 이대형을 밀어서 부각이 덜 되지만 코칭스태프와 서재응을 비롯한 고참 선수들이 일제히 LG쪽으로 죽일 듯 달려가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92] 이후 임준혁의 협박성 인터뷰나[93] 서재응 이종범 등의 인터뷰로 LG와 이대형을 싸인 스틸러로 만들어 복수했다는 등[94] LG팬들의 혈압을 올린 인터뷰는 덤. 허나 재미있게도 이대형은 2014년에 KIA 타이거즈로 오게 되어 단 한 시즌이지만 호성적으로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이종범은 2019년부터 LG 트윈스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LG라고 맨날 당한 것도 아니다. 2002 시즌 페넌트레이스 4위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던 LG는 플레이오프에서 박용택의 활약과 김진우의 부진으로 3승 2패로 KIA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후에는 2009 시즌 초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덕분에 KIA는 V10을 이룩하게 됐고, '아낌없이 주는 LG'라는 놀림을 받게 된다.[95] 하지만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KIA의 부진과, 2013 시즌에는 LG 김기태 감독의 활약으로 무등구장에서 6월 2일 경기를 통해 LG 팬에게는 명경기, KIA 팬에게는 치욕의 경기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즌 LG 트윈스는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나게되고 이 시즌부터 LG의 우세가 계속되기 시작하고 이 기세가 10년 동안 지속되게 된다.[96]
2015 시즌부터는 김기태 감독이 KIA로 부임하며 다시금 양 팀 팬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고, 2016 시즌에는 정규시즌 중에 2016년 잠실 야구장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가을야구 와일드카드에서 치열하게 맞붙기도 하며 라이벌 관계가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허나 그 김기태 감독도 우승했던 2017 시즌 빼고는 LG한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나쌩 클럽으로 악명높은 류중일이 LG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LG는 KIA전 우세 시즌을 다시 만들어냈고 류지현 체제까지 KIA에 계속 우세한 흐름을 이어갔다.
트레이드 면을 살펴보면, 90년대 해태-LG 시절에는 한대화로 LG가 이득을 봤으나 2000년대 들어 김상현 트레이드로 기아가 이득을 보고 있다. 2009년 김상현 트레이드 이후 LG 프런트는 KIA와 전혀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으나 2019년 1월 중순 정용운을 받고 문선재를 보내주며 10년 만에 트레이드를 단행하기도 했다. 정용운은 2020 시즌 후 방출되고 문선재는 기량 발전 없이 나이만 먹어가며 노망주의 표본이 되어 루즈 앤 루즈 트레이드로 흐르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한정으로는 10개 구단 팀갤 중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LG 트윈스 갤러리와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경기만 졌다하면 쥐갤에서 개념글에 전두환의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였던 적도 있었지만, 박용택 은퇴 때 은퇴투어 자격 논란으로 분위기가 안 좋은 가운데 KIA 프런트에서 고별 행사를 마련해 준 것에 감동받았는지 이후 사이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97]
그러나 2022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김현수가 이틀 연속으로 장종훈스러운 빠따질로 양현종과 션 놀린에게 연달아 부상을 입히는 플레이[98]가 나오면서 양팀의 관계가 다시 악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해 5월 13일 잠실경기에서 양현종이 박해민에게 헤드샷을 던져 다이렉트 퇴장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말았다.[99]
그 뒤 2023시즌을 앞두고서는 장정석 KIA 전 단장의 FA 뒷돈 요구 파문으로 박동원이 LG로 이적하게 되고, LG의 29년 한을 푸는 데 결정적인 활약을 하면서 마치 2009년 김상현의 리버스 버전이 되어버렸다.
두 팀 매치업의 인기는 앞에서도 누차 이야기했듯 KBO 최고의 흥행카드 중 하나로, 2020년대 들어서도 변함이 없는데 2023년 4월 말 잠실야구장에서 LG전 주말 3연전을 하면서 금요일 경기를 제외한 두 경기가 매진 사례[100]를 이루어 라이벌전의 광경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기도 했다. 사실 KIA가 2013년부터 10년 동안 LG전 상대 전적이 영 좋지 못하지만[101] 이전까지는 해태 시기부터 LG전에 우세한 경험이 많고[102] 상술된 호남 출신+비호남 출신으로 구성된 두터운 팬층과 역사깊은 라이벌 구도로 인해 지금 당장의 성적과 상관없이 매 시즌 경기마다 잠실 주말 경기[103]는 항상 매진되거나 혹은 거의 매진에 가까운 수준의 관중이 몰리곤 한다. 그리고 이 첫 시리즈에서 KIA가 스윕승을 기록해 다시 한번 LG와의 대결 구도가 주목 받고 있다. 결국 2023년에는 9승 7패를 거두어 2017년 이후 6년만에 KIA 타이거즈가 상대전적 우세를 가져가게 되었다.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통산 상대전적은 383승 14무 356패로 KIA의 우세다. 승패마진은 +27, 시즌 우세는 KIA가 LG보다 딱 2시즌 더 했다. 21시즌 우세, 2시즌 동률, 19시즌 열세.
2024년에는 KIA 타이거즈가 7월 10일 경기 기준으로 8승 3패를 달성하여 조기에 열세 불가를 확정지었고, 바로 하루 뒤인 11일에는 9승을 달성하여 우세가 확정되었다. 12년만의 LG전 2년 연속 우세.
10.5. SSG 랜더스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프랜차이즈와의 관계도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6년 장문석의 시오타니 가즈히코 사구 사건과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을 계기로 양팀간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것[104]을 시작으로, 이상하게 KIA는 SK에 강한 면을 보이며 무려 7년 연속으로 상대 전적 우위를 가져갔다. 이후로도 두 팀은 만났다 하면 이상하리만치 치열한 경기를 이어갔고, 2017년에는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어메이징한 경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SK가 무난한 1위를 달리며 강자의 모습을 보인 2019년에는 순위만 보면 별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7위 KIA를 상대로 1위 SK가 열세를 기록하며[105] 다시 한 번 KIA와 SK의 관계가 주목받았고, 이 결과로 인해 당해 SK의 정규시즌 우승 실패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그러다가 SK가 SSG 랜더스로 간판을 바꿔 단 뒤로부터는 이 천적 관계가 완전히 뒤집혀[106], SSG의 첫 시즌이었던 2021시즌에 SSG를 상대로 6승 1무 9패의 열세를 보여 2012시즌 이후 처음으로 열세를 기록하였고, 2022 시즌에는 5승 11패로 크게 밀렸다. 2023 시즌에도 초반에 열세를 기록했지만 이후로는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10월 10일 두 팀간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도 SSG 랜더스가 최종 스코어 6-5로 승리하면서 KIA 타이거즈는 SSG를 상대로 시즌 7승 9패, 3년 연속 열세가 확정되었다. 2024 시즌에도 이 관계가 유지되며 6승 10패를 기록, 4년 연속 열세를 이어가게 되었다. 특히 9월 18일에 열린 SSG와의 최종전까지도 패배하였는데, 2위였던 삼성 라이온즈가 동시에 패배를 당하며 남아있던 매직넘버를 모두 줄이고 정규시즌을 우승하게 되었다.
2024년 시즌 기준 통산 상대전적은 KIA가 213승 7무 215패로, 작년까지의 우세가 뒤집히게 되었다.
11. 역대 선수
11.1.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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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영구 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rowcolor=#fff> 선동열 (1996.01.16.) | 이종범 (2012.04.04.) | ||
※ 선수명 하단 일자는 영구 결번 지정일이다. | }}}}}}}}} |
선동열의 18번과 이종범의 7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KBO 리그에서 영구결번 기준이 매우 높은 구단 중 하나로 꼽히는데, 타이거즈는 KBO 리그 최다인 12회의 우승과 다수의 전국구적인 활약을 한 레전드들을 보유하고 있고, 리그 내에서 최상위의 팬층을 보유한 명문 구단이며, 특히 해태 타이거즈 시절엔 20세기 최강팀이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간 9회의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프라임 타임을 지냈음에도 영구 결번의 수가 너무나도 적다. 이에 김응용[107], 김봉연[108], 김성한[109], 이강철[110], 한대화[111], 이순철[112], 홍현우[113], 장성호[114], 조계현[115], 이대진[116] 등 뛰어난 성적과 상징성을 가진, 팀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레전드들을 영구 결번하자는 여론이 많다. 그 대상이 될만한 레전드를 많이 보유한 만큼 이들을 모두 영구 결번을 하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로 영구 결번을 하게 되면 현역 선수들의 번호가 없다는 우려섞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역 선수 중 영구 결번이 확정적인 선수는 54번의 양현종뿐이며, 범위를 넓혀도 22번째 시즌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후보로 급부상한 KBO 리그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34번의 최형우가 언급될 뿐이다. 또한 앞서 언급된 레전드들은 15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프라임 타임의 결과물이기에 이와 같은 영구 결번 추세를 예상하는 건 쉽지 않으며, 무엇보다 현역 선수들의 번호가 없을게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려야 할 레전드를 기리지 않는 건 결코 마땅치 않다.
더불어 타 리그인 MLB와 NPB를 보면, 각 리그의 최다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모두 소속 리그에서 가장 많은 영구 결번을 가진 구단이기도 하다. 뉴욕 양키스는 0번을 제외한 한 자리수 등번호가 모두 영구 결번 되어 사용할 수 없고, 20명이 넘는 레전드가 영구 결번 되었다. 순혈주의가 강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영구 결번을 잘 하지 않는 분위기의 리그에 속해 있음에도 영구 결번에 순혈을 따지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해태색 지우기의 경향도 없다시피 하고, 레전드에 대한 대우와 팬들을 생각하는 면에 있어 KIA 타이거즈가 훌륭하게 나아가고 있기에 레전드들의 영구 결번이 머지 않아 진행될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존재한다. 레전드들에 대한 영구 결번이 진행된다면, 현역 선수들이 팀의 압도적이었던 과거와 팀에 훌륭히 기여한 선배들을 기리고 명문 구단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보다 와닿게 느끼게 되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영구 결번의 진행이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에 되었으면 하는 팬들이 많다.[117]
11.1.1. No. 18 선동열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 문서 참고하십시오.<nopad> | |
KIA 타이거즈 No. 18 | |
선동열 宣銅烈 | Sun Dong-yol | |
프로 입단 | 1985년 1차 지명 |
역대 소속 구단 | 해태 타이거즈 (1985~1995 / 11시즌 / KBO) |
주니치 드래곤즈 (1996~1999 / 4시즌 / NPB) | |
영구 결번 지정 일자 | 1996년 1월 1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이닝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ERA | FIP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WHIP | WAR | ||
367 | 1647 | 146 (5위) | 40 | 132 | 0 | .785 (1위) | 1.20 (1위) | 1.37 (1위) | 968 | 28 | 404 | 1698 (3위) | 0.80 (1위) | 78.83 (3위) |
선동열의 18번은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 이적을 확정짓자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KBO에서 은퇴 전에 영구 결번을 지정한 최초의 사례다.[118] 1996년 당시 기사
하지만 해태를 KIA가 인수하면서 KIA 프런트가 해태색 지우기의 일환으로 선동열의 영구 결번을 무효화하고 신인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던 김진우가 사용하게끔 하려 했다.[119]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에게 크게 비판을 받았으며 18번을 잠시 받았던 김진우도 부담이 되었던 눈치라 없던 일로 되며 그대로 KIA에서도 영구 결번으로 남았다. 선동열 본인이 KIA 감독으로 복귀할 때 이 번호를 되살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영구 결번의 취지를 살리고자 감독 선동열은 90번을 사용했다.
11.1.2. No. 7 이종범
자세한 내용은 이종범 문서 참고하십시오.<nopad> | |
KIA 타이거즈 No. 7 | |
이종범 李鍾範 | Lee Jong-beom | |
프로 입단 | 1993년 1차 지명 |
역대 소속 구단 | 해태-KIA 타이거즈 (1993~1997, 2001~2012 / 16시즌 / KBO) |
주니치 드래곤즈 (1998~2001 / 4시즌 / NPB) | |
영구 결번 지정 일자 | 2012년 5월 2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706 | 6060 | .297 | .370 | .458 | .828 | 1797 | 340 | 29 | 194 | 730 | 1100 | 510 (2위) | 634 | 622 | 126.1 | 69.22 |
이종범의 7번은 2012년 3월 31일 본인이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동년 5월 26일에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을 동시에 거행하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두 번째 영구 결번자가 됐다.
11.2.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선수단 문서의 레전드 올스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09.07.25. 한국야구위원회 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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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20.08.26. KIA 타이거즈 공식 어플리케이션 팬 투표 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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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2025 시즌 프런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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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 송호성 · 대표이사 최준영 · 단장 심재학 · 71 이범호 [[감독| ★ ]] ''' | |
운영팀 | |
1팀[1] 팀장 권윤민 · 2팀[2] 팀장 김동혁 | |
전력기획팀[3] | |
팀장 김잔 데이터 파트 미상 스카우트 파트 팀장 권윤민 백정훈 · 박서준 · 이석현 · 오준형 김성호 전력분석 파트 방석호 · 조승범 · 박규민 · 이진우 신용진 · 이진경 | |
<colcolor=#fff> [1]: 1군 선수단 지원 및 관리 [2]: 2군 선수단 지원 및 선수 육성 [3]: 스카우트 업무(신인 드래프트, FA, 트레이드, 외국인 선수) 총괄, 데이터 분석 및 중장기 선수단 운영계획 수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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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박창민 · 정영 · 정상옥 · 조희영 박준서 · 황종현 2군 김민기 · 조준회 · 백승훈 · 김동후 노민철 · 박정욱 · 김덕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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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등록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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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 22 주효상 · 26 한승택 · 42 김태군 · 44 이상준 · 55 한준수 | |
내야수 | 1 박찬호 · 3 김선빈 · 5 김도영 · 6 홍종표 · 11 윤도현 · 12 김두현 · 14 김규성 · 23 최정용 · 29 변우혁 · 37 박민 · 52 황대인 · 56 오선우 · 58 서건창 · 59 정해원 | |
외야수 | 8 이창진 · 15 박정우 · 16 최원준 · 25 이우성 · 27 김호령 · 30 소크라테스 · 34 최형우 · 35 김석환 · 47 나성범 · 57 고종욱 · 61 예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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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2025 시즌 1군 엔트리 현황 (2025년 3월 22일 기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코칭스태프 | |
71 이범호 [[감독| M ]]68 손승락 · 72 김상훈 · 73 정재훈 · 75 조재영 · 76 박기남 · 77 홍세완 · 80 이현곤 · 83 타케시 · 85 이동걸 | ||
투수 | ||
0 곽도규 · 4 유지성 · 10 유승철 · 13 윤영철 · 17 임기영 · 20 이준영 · 24 김승현 · 28 김민재 · 31 박준표 · 39 최지민 · 40 네일 · 41 황동하 · 45 김민주 · 51 전상현 · 53 김기훈 · 54 양현종 · 60 김도현 · 62 정해영 · 69 김대유 | ||
포수 | ||
26 한승택 · 42 김태군 · 55 한준수 | ||
내야수 | ||
1 박찬호 · 5 김도영 · 11 윤도현 · 14 김규성 · 23 최정용 · 29 변우혁 · 56 오선우 · 58 서건창 | ||
외야수 | ||
'''8 이창진 · 15 박정우 · 16 최원준 · 25 이우성 · 30 소크라테스 · 47 나성범 [[주장| C ]] · 57 고종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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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373a3c,#ddd> - | ||
<colbgcolor=#ddcba4,#5b4822>● 편집일 기준 1군 엔트리 등록 선수만 작성한다. ● 등번호 순으로 배열한다. | ||
출처: 한국야구위원회 | }}}}}}}}} |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등번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11.4. 역대 주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display: inline-table; max-width: 33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000> 1982~1983 | 1984 | 1985 | 1986~1988 | 1989 |
김봉연 ★ | 김준환 | 김일권 | 주장직 폐지[1] ★ ★ ★ | 김성한 ★ | |
<rowcolor=#000> 1990 | 1991 | 1992~1994 | 1995 | 1996 | |
김종모 | 한대화 ★ | 이순철 ★ | 선동열 | 김정수 ★ | |
<rowcolor=#000> 1997 | 1998 | 1999 | 2000~2001 | 2002~2004 | |
이건열 이순철 (임시 주장) ★ | 이강철 | 이강철 → | | 이종범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2010 | |
김종국 | 이종범 | 이종범 → 장성호[2] | 장성호 → 김상훈[3] | 김상훈 ★ | |
<rowcolor=#fff> 2011 | 2012 | 2013 | 2014~2016 | 2017~2018 | |
최희섭 → 김상훈[4] | 차일목 | 김상훈 | 이범호 | 김주찬 ★ | |
<rowcolor=#fff> 2019 | 2020 | 2021 | 2022~2023 | 2024~ | |
김주찬 → 안치홍[5] | 양현종 | 나지완 | 김선빈 | 나성범 ★ | |
[1]: 김일권 이후 장기간 주장직 폐지 출처 [2]: 이종범의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3]: 마무리 캠프 직전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인한 주장 교체 [4]: 스프링 캠프 후 주장 교체 [5]: 2019년 5월 15일, 김주찬의 재활과 부진으로 인한 주장 교체 | }}}}}}}}} |
해태 시절 주장에 대한 역사는 특이한 역사가 있다. 원년부터 이어진 김봉연(1982~1983)-김준환(1984)[120]-김일권(1985) 이후 주장직을 폐지했던 것이다.
다만, 1989년 김성한을 시작으로 1990년 김종모, 1991년 한대화, 1992년 이순철, 1995년 선동열, 1996년 김정수, 1997년 이건열[121], 1998년 이강철로 이어지는 상조회장이라는 직함이 있었으며 사실상의 주장 역할을 했다.
또한 군기 반장이라는 비공식적으로 선수단의 규율을 잡는 역할의 선수가 있어 왔는데 흔히 그 계보는 김일권-김성한-이순철-송유석-이호성으로 여겨진다.[122] 이들 중 김성한과 이순철이 대표적인 해태의 군기 반장으로 유명했다.
2007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4년 간 주장 교체가 많이 이루어졌다. 우선 2007 시즌은 이종범이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시즌 중 극도의 부진으로 인해 6월 19일 장성호로 교체되었다.[123] 장성호는 2008 시즌까지 주장직을 이어갔으나 조범현 감독의 지시로 2008년 10월 마무리 캠프를 앞두고 김상훈으로 교체되었다. 김상훈은 2010 시즌까지 주장직을 수행하였고 2011 시즌에는 최희섭이 주장직을 이어받았으나 당해 3월에 다시 김상훈이 주장직을 맡게 된다.
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종범이 주장을 가장 오래 했으며[124], 김상훈도 주장을 길게 했다.[125] 그 외에도 이적생 출신 최초로 주장을 맡은 이범호도 주장을 오래 한 편이다.[126]
2020 시즌에는 양현종이 주장을 맡게 됐다. 투수가 주장을 맡게 된 것은 1998 시즌 이강철 이후 22년 만이다.
2021 시즌에는 팀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지완이 주장직을 맡게 됐다.
2022 시즌에는 선수단 투표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선빈이 주장으로 선임했다.
2024 시즌에는 2023 시즌 종료 후 호랑이가족한마당에서 주장 변경 소식을 전했다. 2019년 김주찬 이후 5년 만에 이적생 출신인 나성범을 주장으로 선임했다.
11.5. 역대 지명 선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ea0029><tablebg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지명 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2022년 | 2023년 | ||||
* 2021년 문서부터 존재한다. |
11.6. 역대 1차 지명 선수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1차 지명 선수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김용만(2) | 장진범 조종규 |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 송영복(1) 조계현 한경수(1) |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 정회열 | 오희주 |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
박재홍 | 이종범 | 최재영 | 김동호 | 김종국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오철민 | 최희섭(1) | 정성훈
| 김성호 | 정원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김진우 | 고우석 | 김주형 | 곽정철 | 한기주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정영일(1) 오준형 | 전태현 | 정성철 | 심동섭(2) | 한승혁(2)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박지훈(2) | 손동욱(2) | 차명진 | 이민우 | 김현준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유승철 | 한준수 | 김기훈 | 정해영 | 이의리 |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김도영 | 윤영철(2) | 조대현(2) | 김태형(2) | ||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 }}}}}}}}} |
11.7. 역대 외국인 선수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선수단 문서의 역대 외국인 선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ea0029> | KIA 타이거즈 역대 외국인 선수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fff>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2002년 |
숀헤어 | 브릭스 샌더스 | 피어슨(1) 배스(3)(2) 미첼(3) 말레브(1) 포조(3)(2) 타바레스(3) | 산토스 타바레스(2) 젠슨(3)(2) 리치(3) 루이스(2) 레스(3) | 리오스 키퍼 뉴선(2) 펨버튼(3) | |
<rowcolor=#ffffff>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
리오스 키퍼(2) 존슨(3) | 리오스 마뇽 | 리오스(2) 그레이싱어(3) 존슨(2) 블랭크(3) | 그레이싱어 서브넥(2) 스캇(3) | 서튼(2) 스코비(3) 에터톤(2) 로드리게스(3) | |
<rowcolor=#ffffff>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리마(2) 데이비스(3) 발데스(2) 디아즈(3) | 로페즈 구톰슨 | 로페즈 로드리게스(1) 라이트(3)(2) 콜론(3) | 로페즈 트레비스 | 알렉스(1) 라미레즈(3)(2) 소사(3) 앤서니 | |
<rowcolor=#ffffff>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
소사 앤서니(2) 빌로우(3) | 필 어센시오 홀튼(2) 토마스(3) | 필 험버(2) 에반(3) 스틴슨 | 필 헥터 지크 | 버나디나 헥터 팻딘 | |
<rowcolor=#ffffff>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
버나디나 헥터 팻딘 | 해즐베이커(2) 터커(3) 터너 윌랜드 | 브룩스 가뇽 터커 | 브룩스(2) 다카하시(3) 멩덴 터커 | 로니(2) 파노니(3) 놀린 소크라테스 | |
<rowcolor=#ffffff> 2023년 | 2024년 | 2025년 | 2026년 | 2027년 | |
앤더슨(2) 파노니(3) 메디나(2) 산체스(3) 소크라테스 | 크로우(2) 알드레드(4) 라우어(3) 네일 스타우트(4) 소크라테스 | 네일 올러 | |||
(1) 시즌 전 방출/계약 취소 (2) 시즌 중 이적/방출 (3) 대체 영입 (4) 일시 대체 영입 * 등록명을 우선적으로 기재했다. |
12. 역대 기록 및 인물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기록 및 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3. 역대 은퇴식
KIA 타이거즈 역대 은퇴식 | |||
이름 | 활약 기간[127] | 날짜 | 비고 |
김성한 | 1982~1995 | 1995년 9월 24일 | 광주 MBC 영상[128] |
이강철 | 1989~1999 2001~2005 | 2006년 4월 12일[129] | 광주MBC 영상[130] |
김종국 | 1996~2010 | 2010년 9월 15일 | 영상[131] |
이종범 | 1993~1997 2001~2011 | 2012년 5월 26일 | 영상[132] |
유동훈 | 1999~2014 | 2015년 6월 13일 | 구단 영상[133] |
김상훈 | 2000~2014 | ||
최희섭 | 2007~2015 | 2016년 5월 15일 | 구단 영상[134] |
서재응 | 2008~2015 | ||
이범호 | 2011~2019 | 2019년 7월 13일 | 구단 영상[135] |
윤석민 | 2005~2013 2015~2019 | 2021년 5월 30일 | 구단 영상 |
나주환 | 2020~2021 | 2021년 10월 29일 | 구단 영상[136] |
나지완 | 2008~2022 | 2022년 10월 7일 | 구단 영상 |
- 프로 야구 초창기에는 은퇴식이라는 문화가 없어서 초창기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선수 생활을 마감한 김봉연, 김준환, 김종모 등 타 구단으로 트레이드되지 않고 해태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레전드 선수도 은퇴식을 하지 못하고 바로 플레잉 코치를 해야 했다.[137]
14. 역대 송별식
KIA 타이거즈 역대 송별식 | |||
이름 | 활약 기간[138] | 날짜 | 비고 |
이명기 | 2017~2019 | 2019년 8월 3일 | 구단 영상[139] |
김기태 | 2015~2019[140] | 2019년 9월 24일 | |
홍건희 | 2011~2020 | 2020년 7월 17일 | 구단 영상[141] |
문경찬 | 2014~2020 | 2020년 8월 20일 | 구단 영상[142] |
박정수 | 2015~2020 | ||
이동건 | 2021[143] | 2021년 4월 13일 | 구단 영상 |
백용환 | 2008~2021 | 2021년 8월 10일 |
- 조계현 단장 부임 이후로 새롭게 생긴 행사다. KBO에서는 이전에 없던 역대 최초의 시도이며, 트레이드로 이적한 선수가 광주 원정을 오게 되면 그 동안의 공로를 축하하며 간단히 기념품을 챙겨주는 행사로 시작했으나, 김기태 前 감독이나 이동건 불펜포수를 챙겨주는 걸 보면 팀 공헌도가 있었던 관계자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15. 지역 연고 학교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에 3개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다만 실질적으로는 광주전라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전라도 소재의 고교들도 KIA 타이거즈의 연고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16. 논란 및 사건·사고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과 더불어 팬 많기로 유명한 구단이기에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은 편이다.
17. 이야깃거리
자세한 내용은 KIA 타이거즈/이야깃거리 문서 참고하십시오.18. 출입 기자단
- 이선호 OSEN 기자 - KIA 팬 사이에서는 'KIA 타이거즈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불린다. 실상 양질의 기사를 쓰는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KIA 팬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출입 기자단에 대한 KIA 팬들의 성토가 심각한 편인데 2019년 김윤동 혹사 논란 등이 나와도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여서 논란이 있다. 여러모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출입 기자단과 비슷한 문제를 겪는 중. 잘못된 출입 기자단 선정으로 논란이 된 경우가 장강훈이다.
- 김여울 광주일보 기자 - 광주일보 유튜브 채널에 KIA 덕아웃 영상을 꽤 자주 올린다. KIA가 광주에서 승리하는 날에는 웬만해선 영상이 업로드된다고 보면 된다.
19. 스폰서 및 제휴사
- 키트 스폰서
- 오피셜 스폰서
- 지정병원
- 선한병원
- 밝은안과21병원
- MK한방병원
- 뉴욕미래치과
- 서울화이트치과
- W여성병원
- 최정섭 이비인후과
- 세계로 비뇨기과
20. 기타
21. 관련 문서
-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2군
- 달빛시리즈
- 기나쌩 클럽
- 기아
-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 박전문
- 아재콘
- 엘롯기
- 윤석민상
- 일레븐
- 전설의 타이거즈
-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 타이거즈 러브투게더
- 해태그룹
- 헬로키티
- 현대자동차그룹
- 호랑이가족한마당
22. 둘러보기
{{{#!wiki style="color:#ffffff,#000000; 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002c5f; 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003c83><colcolor=#ffffff> 그룹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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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lus KIA의 경우 기아가 네이밍 스폰서일 뿐, 공식 스포츠단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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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OB 베어스 | ★ 1회 | ||
1983 | 해태 타이거즈 | ★ 1회 | ||
1984 | 롯데 자이언츠 | ★ 1회 | ||
1985 | 삼성 라이온즈 | ★ 1회 | ||
1986 | 해태 타이거즈 | ★ ★ ★ ★ ★ 5회 | ||
1987 | ||||
1988 | ||||
1989 | ||||
1990 | LG 트윈스 | ★ 1회 | ||
1991 | 해태 타이거즈 | ★ ★ ★ ★ ★ ★ 6회 | ||
1992 | 롯데 자이언츠 | ★ ★ 2회 | ||
1993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7회 | ||
1994 | LG 트윈스 | ★ ★ 2회 | ||
1995 | OB 베어스 | ★ ★ 2회 | ||
1996 | 해태 타이거즈 | ★ ★ ★ ★ ★ ★ ★ ★ ★ 9회 | ||
1997 | ||||
1998 | 현대 유니콘스 | ★ 1회 | ||
1999 | 한화 이글스 | ★ 1회 | ||
2000 | 현대 유니콘스 | ★ ★ 2회 | ||
2001 | 두산 베어스 | ★ ★ ★ 3회 | ||
2002 | 삼성 라이온즈 | ★ ★ 2회 | ||
2003 | 현대 유니콘스 | ★ ★ ★ ★ 4회 | ||
2004 | ||||
2005 | 삼성 라이온즈 | ★ ★ ★ ★ 4회 | ||
2006 | ||||
2007 | SK 와이번스 | ★ ★ 2회 | ||
2008 | ||||
2009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10회 | ||
2010 | SK 와이번스 | ★ ★ ★ 3회 | ||
2011 | 삼성 라이온즈 | ★ ★ ★ ★ ★ ★ ★ ★ 8회 | ||
2012 | ||||
2013 | ||||
2014 | ||||
2015 | 두산 베어스 | ★ ★ ★ ★ ★ 5회 | ||
2016 | ||||
2017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11회 | ||
2018 | SK 와이번스 | ★ ★ ★ ★ 4회 | ||
2019 | 두산 베어스 | ★ ★ ★ ★ ★ ★ 6회 | ||
2020 | NC 다이노스 | ★ 1회 | ||
2021 | kt wiz | ★ 1회 | ||
2022 | SSG 랜더스 | ★ ★ ★ ★ ★ 5회 | ||
2023 | LG 트윈스 | ★ ★ ★ 3회 | ||
2024 | KIA 타이거즈 | ★ ★ ★ ★ ★ ★ ★ ★ ★ ★ ★ ★ 12회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16db9> | KBO 리그 (한국야구선수권대회) 원년 참가 구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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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 삼미 슈퍼스타즈[1] | 삼성 라이온즈 | |
해태 타이거즈[2] | MBC 청룡[3] | OB 베어스[4] | |
[1]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現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 [3] 現 LG 트윈스 [4] 現 두산 베어스 |
[1] 전신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일로 프랜차이즈 개시일이다. 물론, KBO에서 인정하는 공식 창단일은 KIA 구단 인수 년도인 2001년이다.[2]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내 2층.[3] 기아 대표이사 사장.[4] 기아 대표이사 사장.[5] 2014년 이후로 프로야구 제2 홈구장 경기가 없지만 제2 홈구장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6] 2023~2027년[7] 호랑이 사랑방[8] V13을 위하여 응원하는 타이거즈[9] 단일 리그 기준.[10] 전기, 후기 우승.[11] KBO 리그 유일의 한국시리즈 전승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12] 포스트 시즌을 제외한 정규 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17,250명.[13] 포스트 시즌을 제외한 정규 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1,049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는 제외.[15] 계약금 60억 + 연봉 60억 + 옵션 30억.[16] 해태 타이거즈 시절 모기업이었던 해태그룹은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영난에 허덕이자 야구단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그룹은 외환 위기로 무너진 기아그룹의 계열사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했고, 2000년 '왕자의 난' 끝에 정몽구가 그룹을 분리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을 출범시켰는데, 정몽구 회장은 프로야구단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던 상황이었다. 마침 광주광역시에 기아자동차 공장(구 아시아자동차 본사)이 위치해 지역 연고 요건도 이미 충족한 상태라 광주 지역 여론도 호의적이었기에 해태 타이거즈가 KIA 타이거즈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17] 2011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구단명을 '현대 타이거즈'로 바꾸지 않는 이유는, 그룹 내부의 '1사 1구단' 원칙에 따라 한 개의 계열사가 한 개의 프로 구단을 전담케 하여 구단명에 계열사 이름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것처럼, 현대자동차는 프로축구단을, 현대모비스는 프로농구단을, 현대캐피탈은 남자 프로배구단을, 현대건설은 여자 프로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18] 전주시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자리했던 1990~1999년은 제외. 이 당시 전북 야구팬 중에는 쌍방울 레이더스를 응원하는 이들도 제법 존재했으나 역사와 성적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팬층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그마저도 쌍방울 구단 해체 이후에는 대부분 타이거즈 팬으로 되돌아왔다. 일부는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 SK 와이번스로 옮겨가기도 했다.[19] 1982년부터 1985년까지는 OB 베어스-해태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로 모두 다른 팀이 우승했기 때문에 공동 최다 우승 구단이 네 개까지 늘어났었다. 타이거즈가 단독으로 최다 우승 구단 지위를 차지한 것은 1986년 한국시리즈 우승부터다.[20] KBO 리그 원년 구단 중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상징색을 한 번도 안 바꾼 팀이다. 서브 컬러는 달라진 적이 있어도 타이거즈의 메인 컬러는 늘 빨간색이었다. 삼성은 채도의 차이가 다소 있어도 원년부터 푸른색을 상징색으로 썼고 두산도 원년 OB 시절부터 남색을 구단의 상징색으로 삼고 1999년~2009년의 반달곰 한정으로 서브 컬러로 노란색을 병행 사용했으나, 이때도 남색을 원정 유니폼 색상으로 유지하다가 2010년 CI 교체부터 다시 남색 컬러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1996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상징색을 바꿨고 푸른색을 상징색으로 썼던 MBC 청룡은 구단 명칭이 LG 트윈스로 변경되면서 붉은색의 팀으로 바뀌었다.[21] 노란색이 활용된 최초의 응원도구는 깃발이었다. 1983년 한국시리즈와 1986년 한국시리즈 당시 영상을 보면 해태 응원석에서 팬들이 노란색 깃발을 흔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왜 노란색이 응원도구 색상으로 쓰여졌는지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각에서는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은 정치인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의 상징색이 노란색이었기에 타이거즈도 자연스럽게 노란색을 썼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평화민주당이 창당된 것은 1987년 11월이고 그 이전부터 노란색 깃발이 쓰여졌기에 이 가설은 맞지 않는다.[22] 일명 '단무지'라고 부르는 노란색 막대풍선은 1996년부터 사용했다. 2001년 KIA 인수 직후 잠시 흰색이나 붉은색 막대 풍선을 썼으나 얼마 못 가서 과거의 노란색 막대 풍선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환경오염과 유해 물질 검출 등을 이유로 PVC 소재 막대풍선 대신 종이 소재 클래퍼를 사용하는 추세에 맞춰 노란색의 '호통이'를 사용한다. 해태 시절에는 응원 깃발도 노란색이었지만 KIA로 와서는 붉은색 깃발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23] [24] 'KIA' 폰트도 다시 모기업 CI의 것으로 돌아왔다.[25] 모기업의 로고 변경을 반영하면서 색상 일부를 함께 바꾸었다.[26] 다만 붉은색도 일부 변화가 있다. 색깔의 톤이 살짝 밝아졌다.[27] 기아의 로고가 바뀌면서 타이거즈의 로고도 약간 바뀌었다.[28] 타이거즈 인수 시 팬들의 염원을 담아 타이거즈 구단명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29] 1999년까지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제2 구장으로 활용했다. 다만 월명 야구장의 시설이 낙후하고 숙박 시설 등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가 있는 데다 주 연고지 광주광역시에 최신식 홈 구장이 개장한 2014년 이후 군산 경기는 배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 홈 구장 지위를 잃지는 않았다. 다만 2026년 초부터는 과거 타이거즈 제2 홈 경기를 열었던 전주에 새 야구장이 개장하게 되면 군산이 아닌 전주에서 홈경기를 분산 개최할 가능성이 높다.[30] 여담으로 NPB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MLB에서는 뉴욕 양키스가 최다 우승팀이다. 이 세 구단은 묘하게 닮은 점이 많긴 하다. 팬이 많다던지, 그만큼 안티도 많다던지, 외모 규정 같은 세부사항이 엄격하다던지 등등. 여담으로 이 세 구단이 한꺼번에 우승한 시즌은 2009년이다. 2009년 한국시리즈와 2009년 일본시리즈, 2009년 월드 시리즈 참고.[31] 원년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는 1990년대에, 두산 베어스는 2020년대에 우승 경험이 없으며, 롯데 자이언츠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승을 해봤지만 21세기 이후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 가본 적도 없다. LG 트윈스는 1990년대에만 두 번 우승했다가 2023년에 세번째로 우승했고 현대 유니콘스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짧고 굵게 네 번 우승을 차지하다 해체의 비운을 맞았다. 확장 구단 중에는 1985년 창단한 한화 이글스가 1990년대 마지막 해에 유일하게 우승을 맛봤고 1990년 창단한 쌍방울 레이더스는 구단 역사상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채 구단 문을 닫았다.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2000년대와 2010년대, SSG 랜더스로 바뀐 2020년대 모두 우승 경험이 있고 2008년 창단한 키움 히어로즈는 아직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2010년대에 창단한 NC 다이노스와 kt wiz는 모두 2020년대에 와서 첫 우승을 경험했다.[32] 현대 유니콘스는 1980년대~1990년대 삼청태 시절에 우승한 적이 없고, LG 트윈스도 MBC 청룡 시절에 우승한 적은 없으며 베어스와 이글스는 구단명만 OB와 빙그레에서 바뀌었을 뿐 창단 당시부터 모기업은 그대로 두산그룹과 한화그룹이었다.[33] 삼성은 2015년에도 페넌트 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한국시리즈 5연패 신기록에 도전했지만 원정 도박 사건의 여파로 준우승에 그치며 기록 달성에 실패한다.[34]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이 바뀌고 나서 만난 적은 없다.[35] SSG 랜더스로 구단명이 바뀌고 나서 만난 적은 없다.[36] 쌍방울의 경우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을 뻔 했다. 1996년 플레이오프 전주 1-2차전에서 쌍방울이 현대 유니콘스에게 2승 무패로 기세를 올릴 때만 하더라도 "사상 처음으로 전라도 연고 야구단끼리 한국시리즈가 열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뒤이어 열린 인천 3-4차전과 잠실 5차전에서 쌍방울이 내리 지는 바람에 사상 첫 전라도 연고 구단 간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쌍방울이 1999년을 끝으로 해체되면서 전라도 연고 구단 간의 한국시리즈 매치업은 전북 연고의 신생 구단이 다시 탄생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게 됐다.[37] NC의 경우에는 2022년에 5위와 6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38] 참고로 기아자동차에서의 '기아 는 '아시아에서 일어나다.'(起亞)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단어인 Gear를 일본식 발음대로 옮겨적은 것이기도 하다.[39] 기아자동차가 타이거즈를 맡으면서 본래 기아자동차가 관리하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농구단을 다른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에 이관했다.[40] 이전에는 향토기업인 아시아자동차의 공장이었다.[41] e스포츠단 Dplus KIA는 네이밍 스폰이라서 상관없다.[42] 타이거즈도 기아자동차(現 기아) 담당 구단이지만 인수 당시부터 '기아'라는 대표 명칭을 사용한다. 현대 유니콘스도 현대전자 담당이었지만 '현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기타 예시는 축구에서의 예시는 기업 구단의 경우 HD현대-울산 현대, 하나금융그룹-대전 하나 시티즌[43] 선두를 질주한 해는 말할 것도 없고, 1등이 아니었던 2018~2023년에도 평균 시청률에서 압도적인 1위였으며 매 시즌 최고 시청률 TOP 50경기도 KIA 경기가 독식하고 있다.[44] 1982년-2019년 조사결과 1998년-2021년 조사 결과[45] 쌍방울 창단 이전에는 제2 홈구장이었다.[46] 서울 내 전라도 출생자만 해도 21% 정도로 적은 수가 아니며(자녀, 손주는 포함하지 않은 값이다), 그 외 수도권이나 부산 등지로 떠난 전라도 출신도 많다.[47] 분명히 원정이다.[48]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잠실의 KIA 경기를 보면 홈 구단과 원정 구단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광주구장과 마찬가지로 3루 응원석을 쓰기도 하고). 때문에 일부 KIA 팬들이나 금지어 응원단장이 잠실 KIA 챔피언스 필드라고 부르는 경우까지 있었으나 KIA 팬들끼리만 모인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LG, 두산 팬들은 이 표현을 매우 불쾌해하며, 애초에 충분히 무례한 표현이다. Here is another Old Trafford가 왜 욕을 먹었는지 생각해보자.비유하자면 중국인들의 문화공정과 동북공정급의 엄청난 망언이다.[49] KIA의 또다른 팬베이스인 전북의 중심 전주가 대전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이쪽에서 원정응원을 가는 팬들이 많다.[50] 같은 전국구 인기구단 소리를 듣는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광역시는 330만의 인구가 뒷받침하는 덕에 홈팬 규모도 상당한데, 광주광역시의 인구는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145만명이라 밀릴 수밖에 없다. 2017년에 KIA가 홈구장 최초 시즌 100만명 관중을 기록한 것을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이유.[51]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섰을 정도이다.[52] 전 경기를 광양과 순천에서만 개최하니 서부인 목포나 나주 등지만 가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다. 최근엔 광양, 순천 주변에서도 인기가 좋지 않고 2부리그로 강등될 정도로 성적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해태왕조 시절의 성과를 현재 진행형으로 구가하며 지역에서 존재감이 상당한 전북 현대 모터스만 사정이 다른 편.[53] 1991~1999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전북권에 자리잡은 적이 있었다.[54] 한화 이글스가 창단되기 전 OB 베어스가 잠깐 충청권을 연고로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글스 창단 이후로는 이글스만이 줄곧 충청권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55] 이날 다른 구장에서의 관중수를 모두 합쳐도 2만 8천여 명이다.[56]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있지만 수도권 인구의 토박이 비율이 낮다. 따라서 인구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파이를 수도권 5개 구단이 갈라먹는 셈인데, 게다가 비수도권은 여러 구단이 한 연고지를 공유하지도 않아서, 비밀번호 좀 찍어도 지역민들이 차라리 야구를 쉬면 쉬었지 다른 팀으로 갈아타지 않는다. 비수도권 4개 광역시(광주, 부산, 대구, 대전) 구단은 어지간한 미친 짓으로는 비인기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57] 2017년 통합 우승 시즌에 72경기 동안 10회의 매진 사례를 기록.[58] KIA의 종전 홈 야구장인 무등 야구장의 최다 연속 매진 횟수는 5경기.[59] 대표적으로 만화가이자 스트리머인 이말년과 래퍼이자 방송인인 데프콘 등이 있다.[60] 대표적인 예가 농부이자 스트리머인 셀옹이다.[61] 이와 반대로 과거에 전라도였던 금산군에서는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존재한다.[62] 사실 쌍방울 레이더스가 있던 시절에도 적지 않은 전북 야구팬들은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이유는 전북 야구팬들이 원년부터 해태를 계속 응원해오기도 했고 80년대 해태의 주축 선수들 상당수(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조계현 등)가 군산상고 등 전북 지역 출신 선수들이었으며, 뭣보다 쌍방울이 하위권을 멤도는 동안 해태는 90년대에 제2의 전성기를 열어 4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호성적을 기록했기 때문. 이 때문에 한동안 전주 야구장에서 쌍방울과 해태가 맞붙으면 해태 팬이 더 많은 진풍경도 이뤄지곤 했다. 이후 90년대 말에 해태가 기업의 경영난으로 여러 선수를 팔아 넘기고 거꾸로 쌍방울은 김성근식 야구로 반짝하면서 잠시나마 전북 야구 팬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했지만 얼마 안 가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다시 대부분의 전북 팬들은 타이거즈로 돌아오게 되었다.[63] 쌍방울이 계속 있었다면 야구계 호남 더비, 호남 시리즈가 확고히 자리잡았을 것이다.[64] 현대기아차 부품회사 및 KTX 부품회사로 본사가 경상도인 창원 성산구에, 공장이 충청권인 충남 서산에 있으며 추가로 현대트랜시스 성연공장과 자기업인 동희오토 본사도 서산에 위치해있다.[65] 특히 2009년 우승 이후 안티가 급격히 늘었다. 사실 우승팀을 까는 건 KBO 팬덤에서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니나, KIA의 경우 21세기 첫 우승인 2009 시즌이 하필이면 인터넷 지역드립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던 시기라서 특출나게 많이 까였고, 비하 별명들의 다수가 이 시기에 정립됐다.[66] 요미우리는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들이 부르는 '뒈져버려라 요미우리!'에 칸사이의 인기구단인 한신과의 라이벌리로도 유명하고, 양키스는 '악의 제국'이라는 악명으로 유명하다. 다만 2009년 월드 시리즈 이후 우승권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데다 극성 양키빠들이 벌이는 진상짓에다 찐따 행태로 인해 안티가 더 많이 양산되고 있다. 양키스의 본진인 뉴욕에 조차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이 적지 않다는 게 그 방증이다.[67] 반대로 전북특별자치도는 대한고속, 전북고속·전북여객, 전주고속, 그리고 대한관광리무진 이렇게 나뉘어져 있고, 각 지역을 연결하는 시외버스 노선 점유율도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68] 바리에이션으로 대전의 한화 이글스는 야구계의 금남고속,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는 야구계의 천일고속, 창원의 NC 다이노스는 야구계의 중앙고속, 수원의 kt wiz는 용남고속버스라인, 인천의 SSG 랜더스는 야구계의 삼화고속, 서울의 LG 트윈스·두산 베어스는 야구계의 동양고속, 같은 서울의 키움 히어로즈는 야구계의 한일고속으로 비유할 수 있다.[69] 재밌게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기적으로 야구에 대한 인기가 폭증했을 때 KIA는 2009년 한국시리즈 명승부 끝에 우승했다. 시기적 행운을 등에 업고 많은 베이징 뉴비를 흡수하여 팬 고령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적이 있다.[70] 다만 해태 역시도 당시 팬서비스는 상당히 안좋았다는 말도 많다. 김진우의 경우에도 고교시절 볼보이로 구장에 가서 대선배들에게 싸인 요청을 했는데, 아무도 싸인을 해주는 선수가 없어서 섭섭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 광주진흥고 출신의 토박이인 김진우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해태 역시도 별로 팬서비스가 좋지는 않았는 듯 하다. 게다가 당시 감독 김응용 성격상 경기후 팬들의 싸인요청에도 그냥 버스타고 바로 쌩 하고 출발하는 문화였다.[71] 타 구단은 SPOTV에 외주를 맡긴다거나, 혹은 적당한 보수를 주는데 KIA는 연봉 2,400에 포토샵+일러스트 자격증 소유자를 찾고 있다. 게다가 1명만 모집했고, 유튜브 편집자가 구단 홈페이지도 관리해야 한다.[72] 롯데는 팬 서비스가 나쁜 대표적인 선수였던 이대호가 MLB 리턴 이후 팬 서비스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삼성은 성적이 떨어진 2016~2018년에 거쳐 팬 서비스 교육이 강화되어 전체적으로 팬 서비스가 나아졌다.[73] 2019년 5월 10일에는 '김선빈 팬서비스'로 실검에 오르기도 했다.[74] 선수들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즐긴다.[75]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이나 과거 광역 연고지였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포함한다.[76] 그래서 친한 선배인 배일집이 ' 배추 어디 갔어 배추' 라고 찾았고 해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걸 알고 '저 배추 소금 뿌려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77] 공교롭게도 그와 동명이인 야구 선수가 1992~1997 시즌에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적이 있다.[78] 김태원이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중이다.[79] 그러다보니 주요 컨텐츠 내용도 KIA와 타팀 경기에 편파 입중계, KIA와 타팀 경기 리뷰, 김도영, 황대인 등 기아 선수들과의 영상통화, 게스트를 불러도 양현종, 나지완 등 주로 KIA 출신 선수들이 대부분인 것이 특징이다.[80] 즉, 해태 타이거즈였던 당시부터.[81] 1986년과 1987년 MBC는 김건우와 김용수의 활약으로 막판까지 치열한 포스트시즌 경쟁을 했지만 1987년 시즌 막판 김건우의 교통사고 이후 OB와 사이좋게 하위권으로 추락했다.[82] LG 레전드 김용수가 스톡킹에서 청룡과 해태가 잠실경기를 하면 해태 팬들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83] 해태는 시즌 내내 4위에 머물다 9월 들어 폭풍 상승세를 기록하는데 선두였던 빙그레와의 4연전을 싹쓸이해 휴식일이었던 LG가 선두에 등극했다. 이후 페넌트레이스 우승경쟁 구도는 4강체제로 갔다가 다시 LG와 해태가 선두 자리를 다투는 흐름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LG의 최종전에서 LG가 OB에 승리하고 해태가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패배하며 LG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결정됐다.[84] 보통 선동열의 투구와 이종범의 화려한 플레이로 해태 팬이 된 경우가 많다.[85] 실제로 타이거즈의 포스트 시즌 역사상 가장 승률이 높은 구장이 잠실이다.[86] 당시 LG는 OB와 연고지의 문제가 있긴 했어도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기록하고 있어 라이벌이라는 의식이 강하지 않았던 반면, 해태와는 승패마진이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접전을 많이 벌이며 격 시즌으로 서로 우세를 가져가는 바람에 라이벌리가 확실히 강했다. 이로 인해 양팀의 올드 팬들 사이에서 사실 원조 잠실 라이벌은 LG와 해태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87] 단 1990년대에는 LG-OB간의 라이벌리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LG가 OB를 상대전적에서 압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88] 해태의 마지막 전성기였다.[89] 4월 17일 경기도 연장까지 갔는데 이 경기는 해태가 이겼다.[90] 김응용 감독 참외 사건과 이종범 연속 도루성공 종결이 이 한 경기에서 발생했다.[91] 현재의 박근홍[92] 보통 코칭스태프들이 벤클 중재 역할을 하는데에 비해 여기서는 확실히 전투 태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KIA 코치 한 명을 LG 선수단 여러명이 말리는 건 덤.[93] 무려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복수하겠다는 뉘앙스였다.[94] 이종범이 이대형에게 싸인 훔치지 말라고 혼냈다고 인터뷰했는데 이 당시 이대형은 이종범에게 혼난 적이 없다.[95] 해태 시절에는 LG가 해태와의 트레이드에서 승자(94년 LG는 한대화 트레이드로 2번째 정상에 올랐다.)가 됐지만 KIA로 바뀐 뒤에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96] 기아는 2013-2022 10시즌 중 우승했던 2017 시즌 단 한 시즌을 제외하고 남은 9시즌 모두 LG에게 우세를 내주었다.[97] 전두환 사진이 아니더라도 늘 홍어라고 부르며 지역드립을 일삼던 LG 갤러리에서도 이 날 이후로 거의 1년 동안 기아, KIA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현종 은퇴투어때 LG가 많이 도와주겠다면서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98] 물론 김현수의 이같은 플레이는 고의성이 없었지만 과거 윤석민이 롯데 타자에게 두 번 연속으로 사구를 던진 사건을 생각하면,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불구대천의 라이벌인 KIA와 LG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 좋아질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99] 물론 양현종의 평소 인품을 생각하면 고의로 헤드샷을 던졌을 던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LG팬들로서는 김현수 사건 이후 첫 대결부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간판타자에게 상대팀의 에이스투수가 헤드샷을 던진 셈이 되었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100] 토요일인 2023년 4월 29일 경기는 2023년 LG 트윈스 홈경기 첫 매진 사례이기도 하다.[101] 상술되어 있듯 시리즈 우세는 2017년을 빼고 전부 LG가 가져갔다.[102]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22년까지 20시즌 우세 2시즌 동률 19시즌 열세로 LG전에 호각세를 띄고 있다. 1988년과 2009년처럼 KIA가 압도적인 우세를 가져간 시즌이 있어 KIA가 크게 앞설 거라 생각하지만 두 시즌을 빼고는 양 구단의 승패 마진이 그렇게 크지 않다. 또한 2013년부터 LG가 계속 앞서가게 되어 그 두 시즌의 압도적 열세를 상쇄시켜가면서 상대 전적이 더더욱 비등비등한 편이다.[103] 특히 야구 인기가 절정에 올랐을 당시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평일 경기도 매진이 아닌 경우가 드물었다.[104] 또한 이 시리즈는 사제 간의 대결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당시 SK 감독이었던 김성근은 당시 KIA 감독 조범현이 충암고 재학 당시 감독이었다.[105] KIA를 상대로 두산이 13승3패, 키움이 10승1무5패, LG가 10승5패를 기록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106] 타이거즈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인 김원형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후술하듯 감독으로써도 강한 모습을 보였다.[107] 39번, 70번. 18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성적을 남긴 KBO리그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리그 최초의 양번호 결번도 납득이 갈 정도의 역사를 남겼다.[108] 27번. 프로 출범 당시 최고 연봉의 기준이 된 실업리그의 슈퍼스타이자 KBO 리그 원년 홈런왕으로 팀 최초의 전국구 스타이다.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이미 30대의 나이로 당시로서 노장의 나이에 프로에 입단하게 되어 7년이라는 기간 밖에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며, 프로에선 눈에 띄는 누적 기록을 만들진 못했다. 다만 타이거즈라는 강팀의 초석을 다진 선수로 성적을 기반으로 영구 결번을 받을 만한 선수들 외에 상징성으로 영구 결번이 주어진다면 단연코 김봉연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109] 11번. 김봉연의 뒤를 이은 해태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로 리그 최초의 30홈런과 20홈런-20도루, 이도류 활약, 특유의 카리스마와 오리궁둥이 타법으로 유명하다. 은퇴 선수 중 이강철과 더불어 가장 영구 결번의 가능성이 높은 선수이다.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110] 19번. 오랜 기간 꾸준히 팀내 투수 2인자의 위치로 팀에 기여한 선수로 리그 최초의 10년 연속 10승, 100탈삼진 기록으로 유명하다. KBO 리그 투수 중 손에 꼽히는 누적 기록을 남겼기에 김성한과 더불어 은퇴 선수 중 가장 영구 결번의 가능성이 높은 선수.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111] 8번. 20세기 최고의 3루수로 해태 시절 KBO 리그의 전국구 타자로 활약하며 8년간 7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선동열, 김성한과 함께 타이거즈의 최전성기인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4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었다. 누적 기록은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팀 소속 당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기에 삼성의 장효조나 쌍방울의 김기태의 영구 결번이 당연해 보이는 것과 같이 그의 영구 결번을 당연히 여기는 여론이 많다. KBO 리그 30주년,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112] 14번. 20세기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외야 수비를 선보였으며, 이종범 등장 이전 리그 최고의 호타준족 선수였다. KBO 리그 30주년,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113] 5번. 90년대 최고의 야수로 손꼽히는 선수로 해태 타이거즈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이종범과 함께 전국구적인 활약을 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뛰어난 출루 능력과 리그 내 몇 없는 내야수 30홈런-30도루 기록 등으로 유명하며 타이거즈에서 50이 넘는 WAR을 기여한 레전드 선수로 영구 결번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다.[114] 1번. 9년 연속 3할 기록과 뛰어난 출루 능력으로 유명하며, 언급되는 은퇴한 레전드 선수 중 유일하게 KIA 타이거즈 시절에 더 많은 활약을 한 선수이다. 전국구적인 활약을 하였으며, 타이거즈에서 50이 넘는 WAR을 기여한 레전드 선수로 영구 결번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다.[115] 17번. 선동열의 뒤를 이은 선발 에이스 선수로 다양한 투구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는 등 타이거즈 야구팬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활약을 남겼다.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되었다.[116] 26번. 90년대 중반 고졸 루키로 혜성 같이 등장해 150km의 강속구와 리그 최고의 커브를 바탕으로 활약하며 이종범, 홍현우와 함께 팀의 후기 전성기를 이끈 선수로 이른 나이에 부상을 입으며 더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활약할 수 있는 위치에서 팀을 위해 기여하며 통산 100승을 달성하는 등의 귀감이 되었기에 성적 외의 영구 결번 후보를 꼽을 때 김봉연과 함께 항상 이름을 올리는 선수이다.[117] 다수의 영구 결번으로 인해 현역 선수들의 등번호 사용 혼란이 예상된다면 마리아노 리베라의 사례처럼 현역 선수의 현 등번호 사용은 유지시키면 된다.[118] 이승엽도 NPB를 거쳐 다시 삼성으로 복귀한 후 복귀 시즌부터 영구 결번 지정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은퇴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119] 실제 김진우는 등번호 18번을 배정받고 2002년 초까지 18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를 뛰기도 했다. 실제 사진 1 실제 사진 2[120] 이 당시 해태 타이거즈 불고기 항명 사건이 터졌다.[121] 이건열이 주로 2군에 머물며 이순철이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122] 주장직을 폐지했던 시기에 역할을 맡을 만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한다면 실력으로나 성격으로나 김성한을 1순위로 들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해태의 군기 반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123] 참고로 장성호는 1991년 한대화 이후 16년만의 비(非) 호남 출신 주장이다.[124] 특유의 리더십으로 국가대표에서도 주장을 여러 번 맡았다. 2002~2004, 2006~2007 6월. (4시즌 반 역임)[125] 2009~2010, 2011, 2013. (약 4시즌 역임)[126] 2014~2016. (3시즌 역임)[127] 현역으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연도만 기록했다.[128] 유일하게 해태에서 치러 준 은퇴식이자 타이거즈 역사상 첫 번째로 은퇴 경기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129] 원래 4월 11일에 진행하려 했으나 우천취소로 하루 미뤄졌다.[130] KIA 인수 이후 처음 개최한 은퇴식이다. 경기는 접전 끝에 4: 4 무승부로 끝났다.[131] 서재응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신종길의 4안타에 힘입어 5: 6으로 승리하며 은퇴식을 빛냈다.[132] 구단 최초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을 동시에 진행했다. 선동열의 경우에는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자마자 영구 결번자가 됐다. 은퇴식 날인 LG전에서 KIA 선수들이 전부 이종범 배번인 7번을 입고 뛰었다. 결과는 5:6으로 극적인 승리를 따내며 은퇴식을 빛냈다.[133] 구단 최초 합동 은퇴식. 은퇴식에서 기아 K5 앞좌석 창문을 열어놓고, 유동훈이 그 사이로 공을 던지고 공이 그 사이로 빠져나와 김상훈이 포구를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보기 그날 경기 결과는 4: 7로 승리하며 은퇴식을 빛냈다.[134] 구단 두 번째 합동 은퇴식.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입었던 홈 유니폼을 재현한 2009 챔피언스 저지를 입고 투수들은 서재응의 등번호 26번, 타자들은 최희섭의 등번호 23번을 달고 뛰었다. 경기는 7: 8로 극적인 승리를 따내며 은퇴식을 빛냈다.[135] 전 소속 구단인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하길 원해 2019 시즌 전반기 주말 한화전으로 정했다. 은퇴식과 은퇴 경기 및 개인 통산 2,001경기 출장을 같이 진행했다. 6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며 현역 마지막 타석은 2사 만루에서 좌익수 뜬공으로 경력을 마감했다. 은퇴식과 은퇴 경기가 동시에 열린 사례는 팀 역사로 보자면 김성한에 이은 두 번째 사례.[136] 역대 팀 은퇴식 선수들 명단을 보면 나주환이 타이거즈에서 쌓은 공로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됐던 팀 내에서 보기 드문 은퇴식이었다.[137] 더욱이 김응용 감독의 특성상 선수의 가치가 떨어졌다 싶으면 바로 트레이드를 해서 타 구단으로 보내 버렸다. 구단에 돈이 없어서 트레이드로 보낸 경우도 많아서 타이거즈에서 은퇴를 한 레전드를 보기 힘들다.[138] 현역으로 타이거즈에서 몸담았던 연도만 기록.[139] 갑작스럽게 트레이드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이명기에게 2017년 우승의 공로를 예우하며 선수들은 상의 유니폼에 사인을 했고 액자로 선물했다. 박흥식 감독 대행과 조계현 단장, 안치홍 주장은 꽃다발을 건네고 사진을 찍었다.[140] 현역 시절에서는 타이거즈에서 뛰지 않았고, 감독 재임 년도다.[141] 주장 양현종과 맷 윌리엄스 감독이 각각 홍건희에게 꽃다발을 주며 격려 인사를 전했고, 조계현 단장은 홍건희의 KIA 시절 배번이 써진 사인 유니폼을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한편 방출 이후 KIA에 입단한 홍상삼도 두산 선수단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셀프 송별식을 진행(?)했다.[142] 주장 양현종과 윌리엄스 감독이 각각 문경찬, 박정수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문경찬과 박정수는 옛 동료인 KIA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그 자리에 있던 장현식, 김태진도 옛 동료인 NC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143] 불펜 포수 시절은 2017~2020.[144]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가 존재했던 전라북도는 팬 분포가 일방적으로 KIA 팬인건 아니지만 전라북도 내 야구팬 대부분이 KIA 팬이긴 하다. 당시 전주시에서도 연고팀 쌍방울의 인기가 해태 타이거즈의 인기를 넘지 못했다. 해태에도 초창기부터 군산상고 등 전북 출신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던 데다가 성적도 해태는 IMF 전까지 밥먹듯이 우승을 하는 팀이었지만 쌍방울은 창단 후 한동안 최약체 수준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쌍방울도 가을야구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팬이 늘기 시작했지만, 전성기는 너무도 짧았다. 쌍방울 해체 이후에는 대부분이 타이거즈 팬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몇몇 소수는 쌍방울 선수단 대부분을 이어받은 SSG 랜더스를 응원하기도 한다.(이런 대표사례로 이말년과 데프콘이 있다. 이말년은 익산 출신이고 데프콘은 전주 출신이다.) 그리고 또 다른 소수들은 지역적으로 가깝고 쌍방울이 해체된 1999년에 우승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기도 한다.[145] 군산상일고와 전주고는 한동안 NC 다이노스의 1차지명 대상 학교로 편입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교 배분에 의해 1차 지명권을 행사할 권리를 얻은 것이지 제2 구장 홈경기 개최와는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