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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히 알려진 만청(滿淸) 후기에 유행한 변발. 음양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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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식 변발
1. 개요2. 명칭3. 민족별 변발형태4. 실용적 이유5. 청나라의 변발
5.1. 만주족 입관후 변발 강요5.2. 청나라 중기5.3. 청나라 후기5.4. 신해혁명 이후5.5. 변발의 예외 대상
6. 한국사 국가의 경우
6.1. 고려6.2. 조선 후기
7. 변발을 한 인물8. 대중문화
8.1. 캐릭터
9. 같이보기
한자: /編髮(변발)
영어: Queue(큐)[1]
만주어: ᠰᠣᠨᠴᠣᡥᠣ(손초호 soncoho)
몽골어: ᠭᠡᠵᠢᠭᠡ(게제르 гэзэг)
카자흐어: айдар(아이다르)

1. 개요

중앙아시아동북아시아유목민족흉노족, 탕구트족[2],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특성상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유목민족들은 모자 및 금속제 투구를 쓰고 있으면 바로 투구를 만드는 금속의 내열성으로 인해서 머리가 뜨겁고 땀이 차서 불편하므로 머리카락의 일부분을 밀어버리는데, 이것을 변발이라 불렀다. 일본의 촌마게와 비슷하다.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2. 명칭

변발은 헤어스타일을 말하고, 땋은 머리는 변자(辮子)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만주족의 헤어스타일을 가리켜 "변발"이라는 말보다는 삭발을 뜻하는 "체발"(번체:薙髮, 간체:剃髮)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그 이유는 청나라의 중원 입관 이후 당시의 변발령 초기의 만주족 헤어 스타일은 황비홍 스타일의 땋은 머리를 늘어뜨리는 음양두가 아니라 가느다란 꽁지머리만을 남긴 박박 깎은 머리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3. 민족별 변발형태

거란족은 위 그림처럼 양 옆 조금만 남기고 다 밀어버렸으며,[3] 몽골족튀르크 계통의 돌궐족은 앞머리와 좌우 양쪽 머리를 조금 남기고 구레나룻을 2갈래로 길어 늘어놓았다. 여진족과 그 후신인 만주족은 뒷머리 일부만 남기고 죄다 깎아버린 뒤 남은 뒷머리를 땋아 길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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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라를 연주하는 카자크 노인.
러시아우크라이나동슬라브계 유목민족인 카자크 또한 성인이 되면 우크라이나어로 '추프(чуб)' 또는 '오셀레데츠(оселедець)'라는 변발을 했는데 이는 카자크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였기 때문에 잘리게 되면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겼으며,[4] 카자크들의 믿음에 따르면 적을 죽인 카자크는 사후에 지옥으로 가지만, 그가 조국을 위해 살인을 행했음을 아시는 신께서 그의 변발을 낚아채 지옥의 불구덩이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 여겼다.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대장 불리바>의 삽화나 율 브리너가 연기한 영화에서도 표현되었다.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바이킹 또한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변발을 했고 머리가 긴 남성을 게으름과 나약함의 상징으로 보았다.

또한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뿌리인 키예프 공국에서도 군주인 스뱌토슬라프 1세를 비롯한 상류층 남자들은 변발을 했는데, 키예프 공국은 인접한 하자르 칸국 같은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4. 실용적 이유

굳이 머리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쟁을 치를 때 편하라고 효율적인 뜻에서 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과거 냉병기 시절 전투는 두꺼운 옷 위에 쇠로 된 갑옷을 입고 역시 쇠로 된 투구까지 쓰고 격렬하게 움직이는데 이 때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 머리를 밀었던 것. 아무래도 다른 부위에 비해 가 열을 받으면 훨씬 후유증이 크다는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덮는 투구사슬 갑옷들을 착용하는 십자군 기사들은 짧은 머리를 해야 했으며, 현재도 방탄모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의 군인 두발은 짧은 머리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변발식 머리모양은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전쟁이 잦았던 유목민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 모습이고, 일본식 변발이라고 할 수 있는 촌마게전국시대처럼 잦은 전쟁 때문에 나온 형태이다. 본디 일본도 가마쿠라 막부 성립 이전인 아스카 시대헤이안 시대 때 머리스타일은 머리를 길게 길러 양쪽으로 묶거나(미즈라) 한국의 상투나 중국의 속발처럼 머리를 묶어 고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무사들의 시대가 시작되자 전국에서 내란이 잦아졌고 촌마게를 하게 된것이다.

한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변발이 유행했던 지역은 물이 부족하다. 대체로 스텝, 사막이거나 또는 강수량이 적은 냉온대기후 지역들. 굳이 스텝기후가 아니더라도 화북이나 만주 지방은 겨울이 매우 건조하다. 때문에 물을 아끼기 위한 측면도 컸다.[5] 청나라의 중원 입관 이후 화북 한족들이 화남 한족들에 비해 변발에 빠르게 적응한 것도 자신들이 살던 화북의 기후가 변발을 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었다.[6]

같은 이유로 사막 및 아열대 지방에서는 머리를 시원하게 하기 위해 아예 전부 밀고 천을 감았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던 조선시대 남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머리 일부분을 깎았다. 속알머리라는 표현이 그것인데, 머리의 가운데 부분을 밀고 양옆의 머리카락을 올려 상투를 틀기 쉽게 하거나 모자를 썼을때 덥지 않게 했다. 그래서 머리를 풀면 마치 거란족 헤어스타일에서 좌우 뒤쪽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내려온 형태가 된다.

5. 청나라의 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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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시기, 청나라 초기 중기 말기의 변발 형태

5.1. 만주족 입관후 변발 강요

이 변발이 가장 유행한 시기는 바로 청나라 시기이다. 사실 청나라의 만주족 뿐만 아니라, 중국을 정복한 거란, 몽골 등 유목민족들은 한족의 헤어스타일에 관심도 없었고, 강요를 하지 않았는데[7],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아예 자신들의 인구보다 수십배 많은 한족에게 이 변발을 강요했다. 변발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옷도 한푸 대신 치파오를 입으라고 강요했다. 이런 정책을 치발역복(剃发易服)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전족 금지령을 내렸지만 이것만큼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다만 만주족 여성은 전족이 금지되어 있었다.

만주족은 만주를 장악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한족에게 복종의 의미로 변발을 강요했다. 한족은 예로부터 유교적 관념으로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를 깎는 것을 극히 꺼렸는데, 그런 한족이 자신들의 풍습을 버리고 만주족의 풍습을 쫓아 머리를 깎을 정도라면 자신들에게 확실히 복종할 의지가 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한 것이다. 1644년, 순치제(당시 섭정이던 예친왕 도르곤의 명)는 이자성군을 무찌르고 북경에 입성하자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모든 한족에게 변발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마치 일본이 창씨개명으로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이름을 강요한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이후 이는 청나라신해혁명으로 인해서 멸망할 때까지 이어가며 중국의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치발령이 떨어질 당시에는 아직 남명과 같은 명나라의 잔존 세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자존심 강한 한족들은 야만족의 풍습을 따를 수 없다면서 전국 각지에서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게다가 머리를 한 가닥만 남긴다는 자체가 조선의 유생들이 단발령에 반발한 것 처럼 유교의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에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 보수적 경향이 강했던 양쯔강 이남에서 가장 극심하게 반발했다.

이 때문에 본보기로 성 하나를 전부 도륙한다는 도성(屠城)을 시행해 양주 대학살과 가정삼도가 일어났다. 가정삼도는 가정성에서 봉기가 연거푸 일어나 진압을 실시하고 본보기로 학살과 약탈이 벌어졌지만 이후로도 두번이나 연달아 봉기군 점령과 진압군 점령이 벌어지면서 세번 연속으로 가정성과 근방의 한족 거주민들의 씨가 말라버린 사건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이런 모습이 기묘해 보였는데 보통 '돼지꼬리(변발을 말한다.)를 거부하면 죽음을 당했다'이라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변발령 시행과 아울러 청나라는 한족의 복식을 종래의 한푸에서 자신들의 복식인 치파오로 바꾸는 역복(易服)도 강제했는데, 체발은 즉시 집행되었으나 역복은 옷감과 실의 수급 문제가 있으므로 1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그 이듬해에 본격 시행되었다. 다만 역복 정책은 변발 정책처럼 엄격하게 시행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이야 자르면 되지만 옷의 형태와 규격을 강제한다는 건 전근대사회, 그것도 중국처럼 거대한 영토와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사회에서 빈틈없이 시행하는 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이 멸망할 때까지 치파오보다는 한푸에 가까운 복장을 입고 다니는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는 산해관 입관 후 이듬해 남명 정권을 붕괴시키고 명나라 영토 대부분을 석권하자 전국에 변발령을 내리면서 "머리를 남기려면 머리털을 남기지 말고(留頭不留髮), 머리털을 남기면 머리를 남겨 두지 않겠다(留髮不留頭)"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엄포가 아닌, 말 그대로 '천명'이었으며, 이에 불응하는 것은 천명에 거스르는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다.

청나라는 변발령을 결연한 의지로 밀어붙여 체발(剃髮)에 불응하는 자가 새벽에 잡혀 오면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저녁에 잡혀 오면 저녁 해가 지기 전에 가차없이 처형했고, 변발령에 저항하여 일어난 봉기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진압하였다. 한편 변발령을 집행하는 관리가 마을을 방문할 때 체발 도구와 함께 먼저 거쳐 온 마을에서 체발에 저항하다 참수된 자들의 수급을 다발로 엮어서 가지고 왔다고도 하며, 고을 안에 변발을 하지 않은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고을의 관원들도 한 묶음으로 처벌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록 체발을 했더라도 규정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역시 처벌되었는데,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앞머리를 체발하고 뒷머리를 남겨 놓은 소위 음양두(陰陽頭)는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한 것으로서, 원래 변발은 동전 크기만한 면적의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체발하는 소위 금전서미(金錢鼠尾)로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머리는 동전 크기만 남기고 모두 체발하며, 남겨 놓은 머리를 땋았을 때 그 굵기가 쥐꼬리와 같이 가늘어서, 동전을 꿰는 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되어야 했다. 금전서미(金錢鼠尾)의 뜻 자체가 금전(金錢)이 동전을 뜻하고, 서미(鼠尾)는 쥐꼬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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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야 한다. 서미라는 말 그대로 쥐꼬리와 닮았다.

최근까지도 쉽게 볼 수 있던 중국의 거리 이발사는 청나라 때 변발을 깎으려고 파견한 하급관리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5.2. 청나라 중기

다만 현실적으로는 매일매일 빛나는 민머리로 관리하는 건 이발 기술이 발달된 현대 시대에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하물며 청나라 시대때는 그러한 관리가 더 힘들었기 때문에[8] 청나라의 통치가 정착된 이후로 보통 사람들은 평소에 중요한 일이나 잔소리할 사람이 없으면 그냥 뒤통수에 금전서미만 남긴 상태의 민머리를 어느정도는 '방치'하여 결과적으로 반삭 같은 짧은 머리 스타일에 꽁지머리만 달린 정도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스님들도 잠깐만 방치하면 해병대 머리 되기 십상이다. 만주족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그러다가 황제나 팔기의 높으신 분들을 중요한 일로 만나야 하면 급히 이발사 불러다 빡빡 깎거나 관모 써서 적당히 가리고, 공무가 해결되면 그냥 신경 끄고 지내는 식.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한인 민초들이 이런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속발까지는 아니지만 머리가 삐죽삐죽 자라서 단정하지 못한, 민초라는 말 그대로 '잡초 같이 자란' 머리로, 현실적으로는 모든 배우들에게 머리를 밀라 강요하지는 못해서였겠지만 변발이 정석대로 하려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머리라는 점에서는 100% 틀린 고증은 아닌 셈이다.

심지어 황제들도 어진을 잘 보면 관모만으로는 잘 안 가려지는 옆머리는 현대의 군인들처럼 검은머리, 흰머리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 옹정제의 젊은 시절처럼 머리 길이가 대머리라기보다는 현대의 군인머리 정도로 꽤 자랐는데 모자로 가리지도 않은 초상화마저 남아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의 귀차니즘이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초상화에다 이렇게 머리를 자주 드러낸 결과 탈모의 흔적까지 전해지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옹정제 문서 참조. 아울러 부모의 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머리를 깎지 않고 길러서 상중에 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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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황제의 딸의 등장인물들. 후기의 음양두를 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제작한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절 남자들의 머리 모양이 당시의 금전서미가 아닌 청 말기에 나타난 음양두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진짜로 그들 시대에 음양두를 하고 있었다면 당장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차라리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버커니어 대위의 머리 스타일이 원래의 변발에 가깝다. 물론 정수리에 모히칸 머리처럼 남긴 부분은 밀어야 한다.

5.3. 청나라 후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이렇듯 엄청난 반발이 있었는데, 변발을 행한지 몇 백여년 간의 오랜세월이 흐른 까닭에 점차 '역시 남자라면 변발이 멋져야지' 같은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발을 전문으로 가꿔주는 직업이 등장하는 등 한족들, 특히 화북 지역 중국인들의 경우 만주족들의 풍습처럼 중히 여기게 된다. 그 사례로 펄 벅의 작품 '대지(the Good Earth)'의 주인공 왕룽은 화북 지방 사람인데, 한족임에도 변발을 목숨같이 아낀다. 이발사가 장난삼아 '요즘 변발 자르는 게 유행이라더라, 이 변발만 자르면 흉한 농부 꼴은 면할 것이다'라고 하자, 기겁할 정도. 그런데 정작 나중에 기생 연화(롄화)에게 빠져 그녀가 촌스럽다고 하자 순식간에 잘라버리고, 아내 오란은 기겁한다.

사실 화남 지역은 예로부터 한족 전통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었고 그에 따라 청나라 초기의 변발령이 화남 지역에서 특히 반발이 심했으며 반청복명사상도 화남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 반면 화북 지역 한족들은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예로부터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화북 지역 한족들은 유전적으로 몽골인들과 비슷하며 동북 3성 한족들은 유전적으로 만주족과 비슷하다. 그에 따라 화북 지역 한족들은 다른 지역 한족들에 비해 변발에 적응하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신해혁명 이후의 변발 금지령은 변발령과는 반대로 화북 지역에서 특히 반발이 심했다.

변발령은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는 엄격하게 시행되었으며, 심지어 20세기초 청나라가 망하기 직전에도 해외에 유학하면서 변발을 잘라버렸던 지식인들도 귀국후에는 관원들의 단속을 피해 가짜변발을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중국 혁명군들은 음양두를 틀어올려 상투처럼 머리 꼭대기에 묶고 다니다 단속 때 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족의 부흥을 외친 반란세력들은 만주족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변발을 하지 않고 전통적인 속발을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태평천국의 반란군들이었다. 그리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장발족의 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19세기 말, 봉금령이 풀려 된 이주가 가능해진 연변지역으로 수많은 조선 출신 이민이 유입되었는데, 청나라는 이 조선인들에게도 변발을 강요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청나라가 전성기에 비해 심하게 쇠퇴한 탓인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강력하게 단속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 변발을 한 사람은 1%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

현재도 화북지역의 중국인 남성들은 아주 젊은 층을 제외하면 머리를 잘 기르지 않는다. 물이 부족한 기후의 영향이 여전히 크다.[9] 머리를 월 단위, 심하면 절기 단위로 감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리고 노년층들은 민머리가 많다. 딱히 변발 풍습이라기보다는 위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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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청나라 사람들의 미국 이주가 활발해졌는데, 미국인들은 중국인의 변발을 보고 돼지 꼬리(pig tail)라며 조롱했다. 능지처참과 마찬가지로 이런 머리를 하는 중국인은 야만적이므로 우리가 개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널리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그 ‘야만인’들에게 은 수백~수천냥씩을 쥐어주고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사와서 상류층의 문화로 즐겼다는 말이 되니 틀린 관점이다. 물론 당시 서구의 가치관상 그런 모순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진짜 우리만 문명인이고 남들은 전부 야만인이라고 믿었고 이 믿음에 부합하는 논리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쑨원 등의 혁명가나 청나라 출신 유학생들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변발은 원래 중국의 풍습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고 다녀야 했으나, 평범한 서양인들이 만주족과 한족이 뭐가 다른지를 알았을리가 없다. 이때쯤이면 만주족도 많이 한화되었고 애초 중국 사람은 대부분은 한족이니 중국에서 아무나 한 명 찍으면 한족인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만주족과 한족을 구별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때문에 이들 중국인들은 난데없이 열폭하는 사람 취급을 못 면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변발을 자르고 단발을 하고 다니던 사람들은 변발 없이 중국에 들어오다 걸렸다가는 목이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에 가짜 변발을 붙인 모자를 쓰는등 여러 방법으로 변발을 '연출'하곤 했다. 영화 <아편전쟁>에서는 극 초반부에서 입항을 앞두고 남장을 한 영국인 여주인공이, 청나라 출신이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단발로 지내던 남주인공이 꺼내 쓰는 모자를 보고 여자애 같다고 웃어대다 모자를 뺏어서 도망다니는 장면이 묘사된다. 청나라 사정에 밝은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를 보고 쟤는 저거 없으면 모가지라며 혼을 내서야 겨우 돌려준다.

5.4. 신해혁명 이후

1911년 10월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우한에서 봉기한 혁명군은 점령한 도시마다 변발을 잘라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청나라가 정식으로 망하면서, 1912년 3월 중화민국의 임시대총통에 오른 쑨원은 변발, 호복 금지령을 내렸다. 여담이지만 이때, 청나라 호복을 금지하면서 권장 복식으로 인민복의 원형이 나온다.[10]

하지만 막상 변발금지령이 나오자 약 300년간 실행되었던 변발을 이제는 중국의 전통으로 여기는 풍조도 있어서 이번에는 변발령 때와는 정반대의 저항이 있었다. 그리하여 정부관리가 가위를 들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변발한 사람을 보면, 이를 잘라버리는 광경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북방민족에 동화된 일부 지식인들과 변발이 전통 한족의 풍습이 아니란 걸 몰랐던 일반인들이 '변발은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것이므로 자를 수 없다'면서 반발했다고 한다.

변발금지령은 실시되었으나, 청나라의 변발령처럼 사형으로 다스린 것은 아니고, 단속나온 관리가 거리에서 눈에 띈 변발을 잘라버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학자들[11]이나 왕정복고파들은 변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청나라의 지지세력이 많던 북경에서는 청나라가 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어도 변발이 꽤 많았던 듯 하다. 1920년대 북경 거리 사진을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변발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하지만, 순식간에 지배계급에서 밀려난 만주족들은 한족의 학살을 피해 헤어스타일로 민족구분이 될 수 있는 변발을 잘라버렸고, 심지어는 마지막 만주족 황제였던 푸이조차도 자금성에서 추방되면서 변발을 잘라버리고 서양식 헤어스타일을 했다. 친청 성향 한족들 중에서도 일부는 신해혁명에 가담했던 반청 성향 한족들에 의한 탄압을 피해 변발을 자르는 경우가 있었다.

1917년 장훈복벽으로 12일 간 청나라가 복고되었을 때는 변발의무가 폐지되어 신민의 자유에 맡긴다고 포고하기도 했는데 12일 동안이니 의미는 없고... 극단적인 경우 원래 한족의 상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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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에서는 아무래도 전통 한족의 문화는 아닌데다가 비주얼적으로도 좀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변발을 비난하는 중국인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얼른 변발 같은 유목민족의 풍습이 아니라 전통 한족의 모습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한족 민족주의 지식인들 입장에서는 절대 치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자민족의 헤어가 아닌 오랑캐의 헤어가 한족의 것으로 외국에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는 변발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데, 많은 성인 남자들이 삭발을 하거나 스포츠형 머리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은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별수없이 하는 경우가 많고, 대만도 마찬가지로 2000년대 중반 이전에는 다수의 학교에서 길이 3cm내외의 스포츠형 머리를 강제당했다.

5.5. 변발의 예외 대상

한편 이러한 변발령에서 예외인 자들이 딱 하나 있었는데 다름아닌 '승려'들이었다. 이때문에 변발을 피해 승려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승려는 아예 삭발을 하여 변발이나 삭발이나 머리를 밀어야 한다는 점은 똑같다. 비교적 종교에는 관대한 유목민 왕조의 특징인지 일부 도사들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만약 청나라 시대, 그것도 한창 변발 보급하던 초창기가 아니라 변발이 정착된 시기가 배경인 사극에서 예전 한족 옷을 입고 속발을 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도사다. 영화 무인 곽원갑에서도 중간에 순식간에 지나가긴 하지만 도사로 추정되는, 변발이 아닌 속발을 한 사람이 있었다. 중화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떤 드라마에도 다른 남자들은 다 단발을 하고 있는데 도사인 듯 유독 혼자서 속발을 한 사람이 나와 뭐라뭐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게 괜히 나온 것일 리도 없고...비록 속발이 청에 의해 금지되고 일부 도사에게만 허용되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의외로 변발이 없어진 것보다 더 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유달리 한족들과 회족들에게 강압적으로 시행되었다. 청나라 치하의 몽골족은 자신들의 알타이식 변발을 만주족의 퉁구스식 변발로 바꾸도록 강요당하지 않았으며, 청나라 치하의 위구르족은 4품 이상의 관리들만 퉁구스식 변발을 하였고 나머지는 몽골족과 마찬가지로 알타이식 변발을 그대로 유지했다.

티베트족 또한 변발령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티베트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는 황제의 스승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에게는 특별히 변발을 면해주었다.

변발령이 내려진 초기에는 경극배우, 특히 남자이면서 여자 역할을 맡은 남단(男旦)은 대충 봐 줬다고 한다. 법으로 예외라 규정한 건 아니지만, 변발을 하고 여자 연기를 하는 건 어려우니 여자 연기가 생업인 사람은 예외 라는 식으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이후 변발령이 강경하게 시행되며 변발을 하지 않은 남단 몇 명이 시범 케이스로 참수당했고, 그 후로는 남단도 예외없이 변발을 해야 했다. 그 대신 무대 의상으로 속발 가발을 쓰는 건 허용되었다.

대머리의 경우 가짜 변발이라도 붙여야 했다. 사실 아예 머리털이 없는 사람은 극소수고 대다수의 탈모가 있는 사람들은 정수리와 앞머리가 없으니 뒷머리만 길러서 땋으면 되었다. 다만 무모증같이 진짜로 없으면 가발을 써야 했다.

전투적인 머리모양이지만 후기에 유행한 음양두는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 듯. '변발을 잡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군인같은 경우 초~중기의 변발을 했다. 머리채를 잡히면 상대가 원하는대로 본인과의 거리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특히 등 뒤에서 머리채를 잡히면 냉병기 시대에는 치명적이다.[12]

6. 한국사 국가의 경우

6.1. 고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변발이 북방 오랑캐들이나 하는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고려의 원간섭기 시절에 충렬왕이 변발을 틀고 귀국하면서부터 몽골의 문화가 전파되어 일부 고위층들과 관료들 사이에서 변발과 몽골풍 옷을 입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물론 초기에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라서 충렬왕의 모습을 직접 본 백성들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으며[13] 신하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쏟아질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고려 백성들 가운데서도 변발이 유행했었다. 그러나 고려는 변발을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강요했던 건 아니다. 처음에 쿠빌라이 칸이 불개토풍(不改土風) 약속을 했기 때문. 고려의 당시 왕태자이자 충렬왕의 아버지인 원종과 몽골 황태자 쿠빌라이 칸이 강화 교섭 당시 고려 측에서 내세운 조건 가운데 하나. 그런데 충렬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몽골식 변발과 호복을 강제하고, 따르지 않는 신하들은 회초리로 때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쿠빌라이 칸은 고려에서 몽골식으로 변발하고 호복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히려 "지 아버지가 고려 풍속 안 바꾸겠다고 해서[14] 나도 승낙했는데 쟤 왜 저렇게 오버해?"라고 의아해했을 정도다.

친원파들은 세계제국인 원나라의 유행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몽골식 복식과 변발을 하고 심지어는 몽골 이름을 쓰고 몽골어를 상용하기도 했지만, 고려 대다수의 일반인들과 유학자들은 여전히 상투를 틀었고, 몽골로 유입된[15] 이들이 역으로 고려식 의복 스타일을 몽골 궁정과 상류 사회에 퍼뜨려 유행시키기도 했다. 반원 정책을 펴던 공민왕이 왕위로 오른 이후로는 고위층들에게 변발을 풀고 다시 상투를 틀도록 명하고 자기 자신도 상투를 틀며 변발 유행은 이렇게 1세기도 안 가 사그라들었고 다시 이전처럼 변발이 촌스러운 헤어스타일 취급을 받는다.[16]

6.2. 조선 후기

조선인들은 청나라의 변발 풍속을 오랑캐의 미개한 짓이라고 여겨 무척이나 혐오했다. 청나라는 조선에게는 변발과 호복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정복한 명나라의 한족들한테는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으나, 조선은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의외로 두발과 복식을 이전처럼 하도록 허용했다. 그 이유와 관련해서 연암 박지원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처음 홍타이지가 조선의 항복을 받고 난 뒤에 청에게 투항한 한족 관리들이 나서서 "조선인들도 한족한테 하는 것처럼 변발시키고 만주족처럼 옷을 입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홍타이지는 듣지 않았고, 신하들에게 "그랬다가는 의관에 목숨 거는 조선놈들이 더 날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처럼 활동성이 좋은 옷을 입고 나면 쓸데없이 군사력 증강 같은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다른 것에 관심 돌릴지도 모르지. 그냥 지금 쟤들 하는 대로 치렁치렁한 넓은 소매나 상투에 목숨 걸게 만들어서 예법이네 전통이네 따지느라 다른 건 말도 못 꺼내는 저런 식으로 살게 놔두는 게 낫다."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상 조선인들에게 변발을 굳이 강요하지 않은 것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연암은 "변발과 호복을 하지 않은 것은 조선으로서는 다행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조선을 문약하게 만들어 도리어 청에게 이익을 주었다"고 평했다. ##

연암 자신이 쓴 소설 허생전에서도 허생이 북벌에 대한 계책을 물으러 온 이완에게 "청나라 오랑캐들한테 원수 갚겠다는 놈들이 치렁치렁한 넓은 소매에 큼지막한 갓이나 쓰고 다니면서, 그런 옷으로 어디 전쟁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냐? 초상 치르는 것도 아닌데 흰옷은 왜 입고 다니고, 상투도 남방 오랑캐들이나 하는 거구만 그딴 것도 꼴에 예법이네 뭐네 이러면서 고집하는 주제에 북벌은 무슨 북벌?"이라고 까는 대목이 나오기는 한다. 연암의 글에서 나오는 내용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조선 후기 실학자들, 특히 박제가의 글에서도 "조선 의복은 갓도 큼지막하고 옷소매도 넓어 쓸데없이 불편한데 그걸 예법이네 전통이네 이러면서 고집하고 앉았으니 답답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면 조선의 실학자들도 당대 조선식 의복의 불편함을 인식하고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효종도 같은 내용으로 비판했는데 아무래도 이 때는 반청의식이 워낙 거세서 그런지 이에 대해서 사관은 왕이 호복을 숭상했다고 비판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지원(朴趾源 1737~1805년)이 직접 청나라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일을 적은 기행문인 열하일기를 보면 초반에 많은 조선 사신단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느 선비가 "도대체 중국에 볼 만한 것이 뭐가 있느냐? 천자로부터 노비로 이르기까지 모두가 오랑캐의 변발을 했지 않았느냐? 만약 나한테 10만 대군이 있다면 산해관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가 오랑캐가 남긴 더러운 유산을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하며 북벌론을 외치자,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옳다고 여겼다는 내용을 언급한다.

연암이 쓴 소설 허생전의 내용만 생각해도 연암은 그 선비를 매우 냉소적으로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당시 청나라는 연암 생존 당시 당시 4억의 인구에 육박했고, 조선 인구는 2천만도 안되었는데, 청나라는 '강건성세'라고 불리던 시대로 조선의 10만 대군으로 어쩔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애초에 효종 시기에서 조차 조정에서는 말로만 북벌을 외쳤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송시열 자신도 효종과의 독대에서 북벌을 논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북벌에 대한 뜨거운 의지를 내보인 건 효종이고 송시열은 지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효종 자신도 언급만 할 뿐 북벌을 공식적인 의제로 올리지는 않았다.

일개 번국인 조선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청나라 내 한족의 반란이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을 텐데 굳이 철두철미하게 변발을 시행시킨 것이 설명이 안 된다고 할 사람도 있는데, 말 그대로 내 집 안에 가둬 두고 직접 지배해야 할 한족과 집 밖에서 살려는 두되 간접적으로 영향력만 행사하며 대들지 못하게 잡아 두어야 할 조선인에 대한 대처 방식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에게 넘볼 생각도 못하도록 묶어 두는 방법이 꼭 군사적인 강제력만 있는 것은 아니며, 내부적으로 뭔가 어떤 문제에 집중하게 여론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것도 분명하게 정치술의 하나이다. 청으로서는 조선이 자신들끼리 재조지은이니, 소중화니 하는 명분을 지키겠다는 정신승리를 할 수 있도록 조선인들의 고유한 '중화' 문물(로 조선인들이 인식하던 것)들을 다 짓밟지는 않고 남겨 두었고, 어차피 군사로 청에 상대가 안 되는 줄 조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 '오랑캐' 청 앞에 무릎꿇었다는 현실 앞에서 "그래도 우리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어. 이렇게 국토도 정부도 풍습도 다 보전하고 살잖아? 한족은 이러지도 못하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그나마 나은 거 아냐?"라는 한 줌 남은 자존심이라도 세우며 한편으로는 청 왕조의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걸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고 모욕을 주고 한 미개한 오랑캐 새끼한테서 배우자는 말을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선비냐? 청나라에 대한 복수는 생각도 안 하고 니가 그러고도 조선인이야? 청나라에 배우자니, 그럼 뭐 우리 옷 다 버리고 변발하고 호복 입자 이 소리냐?"라며 비난해 찍어 눌러 버리는 인간들이 나대고 설칠 수 있는 상황을 그들 스스로 조성하도록 몰아간 것이다.

7. 변발을 한 인물

8. 대중문화

중국에서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을 때는 어설프게 대머리 가발을 씌우지 않고 진짜로 머리를 삭발한 다음 그 위에 변발을 씌운다. 황제의 딸을 보면 얼마나 빡빡 밀었는지 머리에서 빛이 날 정도. 중국이 아무리 삭발이나 반삭에 관대하다지만 이 때문에 중화권 남배우들은 청나라 시대 사극을 찍는 걸 꺼릴 정도로 변발이 중국 남자 배우들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는 매우 크다. 사실 일본 남배우들 또한 후술할 촌마게 때문에 전국시대에도 시대가 배경인 사극에 출연할 때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서양권 남배우들도 동유럽이 배경인 사극에서 카자크 역할을 맡거나 고대 이집트 배경 사극에서 이집트인 역할하고 중세 유럽 배경 사극에서 바이킹족 역할 맡을 때 마찬가지로 삭발이 필요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례적으로 이연걸처럼 변발이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비주얼의 50% 정도를 날려버리기 때문에 젊은 남자 배우들이라면 청대 사극 찍기 전에 고민 좀 한다고 한다. 그나마 중국 드라마 특성상 100% 사전제작인지라 촬영이 끝난 뒤 드라마 제작보고 기자회견이나 홍보용 토크쇼 같은 자리에서부턴 조금씩 길러서 활동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스님 역할을 제외하면 사극에서 삭발할 일이 없다. 일본도 촌마게를 재연하려면 삭발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스님 역이라도 그냥 분장으로 머리를 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예외로 장기간 진짜 머리를 밀었던 사례는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를 맡은 김영철. 이 드라마에서 궁예는 드라마 중반까지 거의 주인공급으로 등장 횟수도 많고 비중도 높은 인물이라 촬영할 때마다 분장을 하기엔 시간 소모가 장난이 아닌지라 편의를 위해서 그냥 머리를 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촬영 시에도 스님 역할을 할 때에는 통상적으로 삭발을 한다. 최소 몇개월에 걸쳐 촬영을 이어나가기 때문.

중국에서는 또한 누르하치부터 시작해 홍타이지와 도르곤의 삼각관계, 도르곤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순치제의 복수와 로맨스 등등 대대로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청대 사극임에도 변발이 시청자들의 입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심리적 장벽이기도 하다.

원나라 배경 사극의 경우 진짜 몽골식 변발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예 순화한 머리모양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원나라 배경은 아니지만 토목의 변이라는 시대적 배경상 몽골계 유목민족 오이라트부가 등장하는 명나라 배경 드라마 여의명비전에센 타이시의 헤어스타일은 그 중에서도 백미로, 거의 락스타나 아이돌 수준의 폭풍간지를 자랑한다. 이쯤 되면 변발이 아닌 것 같지만 잘생겼으니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한편, 청나라 사극에서는 오랫동안 옥살이를 하거나 영고탑, 신강, 영하 등으로 유배되는 죄수들의 머리가 잡초처럼 자란 상태로 그리기도 한다. 이런 배역을 맡는 남배우들은 촬영 일정이 꼬이고 꼬이면 기껏 광이 나도록 깎은 머리에다 가발을 쓰고 연기하는 불상사도 자주 빚어진다.

한국 사극에서는 주요 인물들에게서 변발이지만 정작 해당 고증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기황후왕은 사랑한다가 그 예. 그러나 해당 작품들도 일부 몽골 남성 캐릭터들은 제대로 한 몽골식 변발은 아니지만 일단 부분적으로 머리를 민, 대충 북방 유목민족을 연상시키는 머리모양으로 나오긴 했다. 이런 경우 대놓고 변발을 무시하고 어이없는 머리스타일로 등장하기 시작해서 욕을 먹었다. 심지어 엽기적인 그녀는 주연급도 아닌 비중이 그저 그런 청나라 태자조차도 변발을 안 하고 나온다. 최소한 머리를 밀지 않더라도 변발 가발이 달린 청나라 전통 모자 소품을 썼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거란족이 대거 등장하는 고려 거란 전쟁에서 소배압을 비롯한 거란 인물들이 머리 가운데를 밀고 양 옆만 남기는 거란식 변발 분장을 하고 나온다. 그외에도 병자호란 등 조선 후기를 묘사한 사극들에서 등장하는 청나라 장수나 사신들은 대부분 금전서미가 아니라 음양두 가발로 등장하곤 한다.

장철 감독의 영화 자마(刺馬)(진가신 감독의 영화 명장의 원작격인 작품)에서는 머리를 밀지 않고 그냥 땋은 정도로 우리나라의 댕기머리와 상당히 비슷한 변발을 등장시키는 혁명(?)적인을 방법을 제시했다. 그 당시까지는 만주인의 청나라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인데다 비주얼도 좀 그런 탓에 아예 변발이 등장하는 자체가 선호받지 못했다. 등장하더라도 악당의 상징으로 등장했었다. 모택동 집권 당시에는 치파오도 입지 못하게 했었으니 말 다했다. 2000년대 이후 청 배경이 사극에서 등장하긴 했으나 청 황실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잘 없으며 그 속에 살아가는 인물의 고뇌가 중심이 된다.

시간적으로는 청나라를 다룬 작품을 보면 변발에 대해 있던 듯 없던 듯 왠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한 변발 같은 게 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민국 시대 같은 비주얼이다. 고증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듯도 한데 이소룡정무문이나 성룡취권이 이런 예.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각각 곽원갑제자와 아무도 신경쓰지도 않고 아무래도 상관없고 알지도 않지만 황비홍이다. 시간적 배경은 청나라 말기인데 비주얼은 민국 시대 같다. 어쨌든 이런 암묵적인 징크스를 최초로 깬 작품인 셈. 이 비주얼과 나름의 고증을 동시에 가지는 시도는 제법 성공해서 이후 80년대 청나라 시대극을 이러한 순화 변발로 찍는 게 유행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청나라 배경의 시대극도 조금씩 흥하기 시작한다. 이소룡이 찍을 뻔 했던 연갱요도 '자마'의 영향을 받았는데, 돌아다니는 스틸컷의 의상이 바로 자마 촬영에서 적룡이 입었던 것. 이 시기의 무협물들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며 일본 만화에도 영향을 줘 중국무술만화가 유행하거나 인기소재가 되었고, 이미지를 정착시켜서 일본 작품에서 이러한 순화 변발을 차용한 중국풍 캐릭터를 제법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란마 1/2의 주인공 사오토메 란마 등이 있을 듯. 주성치 주연의 청나라 배경 영화들(녹정기, 무장원 소걸아, 구품지마관 등) 및 유위강 감독의 자희비밀생활은 모두 자마에서 영향을 받은 댕기머리식 변발로 등장한다. 이후 90년대에는 서극 감독의 황비홍의 음양두가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하여 변발의 상징으로 남았다.

위의 자마와 달리 리메이크작이라 할 수 있는 명장에서는 꼬박꼬박 변발이 나오며, 그것도 전쟁중에는 밀어버린 앞머리 부분에서 뾰족뾰족 머리카락이 올라오다가 난이 평정되고 생활이 안정되니까 앞머리가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밀려있는 등 깨알같은 디테일을 보여준다. 특히 유덕화, 금성무가 연기한 조이호, 강오양은 원래부터 황비홍으로 유명했던 이연걸이 연기한 관군 출신 방청운과 달리 산적 출신이었던지라 그냥 오늘날 훈련병들과 비슷해보일만큼 대책 없이 방치된 변발로 등장하는데, 중화권 최고 미남들의 비주얼 덕에 변발이 얼굴빨을 받았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후에는 남경 거리에서 한족들이 기껏 길러놓은 머리를 다시 변발로 밀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만주족 가수로 유명한 중국의 가수 송희동宋熙東(만주명 악샨ᠠᡴᡧᠠᠨ)은 평소에도 음양두를 하고 다닌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헝가리훈 제국이나 헝가리 대공국 초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훈족이나 마자르족의 변발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사극에서는 상술한 카자크식 변발을 볼 수 있다. 또한 북유럽 사극에서도 바이킹식 변발을 볼 수 있다.

8.1. 캐릭터

9. 같이보기


[1] 원래는 줄이나 대기 행렬을 의미한다.[2] 친척뻘 민족인 티베트인, 보테족(부탄의 주류 민족), 시킴족 등 대다수의 티베트 제민족들은 변발을 하지 않고 장발을 하였다. 출처[3] 또한 갓파처럼 주변머리는 남기고 정수리만 밀기도 했으며, 이 변발은 곤발이라고 불렀다.[4] 오죽하면 "변발 없는 카자크는 카자크가 아니다(Без чуба казак не казак)"라는 말도 있다.[5] 그밖에도 유목민들이 살던 지역은 매우 춥고 서늘한 기후라서 물이 차가운 관계로 머리카락을 감기도 어려우니, 차라리 그냥 밀어버리는 편이 나았다.[6] 물론 화남이라고 해서 변발이 완전히 무의미한 건 아니었으며, 단지 유교의 영향으로 변발령에 반대했을 뿐이다. 화남의 아열대 기후에서 전쟁 참전이나 중노동 같이 고된 일을 하면 머리에서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화남에서도 변발이 완전히 자리잡은 후에는 변발이 나름대로 실용적인 머리 모양이 되었다. 화남과 기후가 유사한 일본에서 촌마게가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외세인 만주족에 의해 강요된 변발과 달리 촌마게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다니던 머리 모양이었다는 것이다.[7] 오히려 많은 유목민들이 한족에 동화되었다. 이렇게 동화된 유명한 민족중의 하나가 선비족이다.[8] 사흘마다 삭도(削刀)로 듬성듬성 자라난 잔머리를 다듬어 주고 열흘에 한 번 변발을 풀어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해 주어야 했는데 혼자서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삭도는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 피부가 베이거나 상처를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9] 물이 부족한 곳은 황하 이북이며, 사실 남방 지역은 한반도보다 더 비가 많이 온다.[10] 인민복을 마오쩌둥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원조는 쑨원이다.[11] 캉유웨이나 구홍명 등의 유학자들은 변발을 죽을 때까지 하고 다녔다. 한국사로 치면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개편된 후에도 많은 유학자들이 상투를 틀고 다닌 것과 비슷하다.[12] 예를 들어 당시의 소설 아Q정전에서 주인공 아Q가 다른 건달들에게 쳐맞을때 항상 변발부터 잡힌 뒤에 쳐맞는 묘사가 나온다.[13] 기절하는 사람도 나왔다고 한다.[14] 이미 이렇게 변발 호복하자는 주장은 원종 때에도 나왔었는데, 원종 자신은 "나는 조종의 옛 법을 차마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 내가 죽고 난 뒤에 경들 알아서 변발을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끝까지 고려식 의복과 머리 모양을 고수했다.[15] 유이민이나 포로 혹은 공녀, 환관으로 차출된 이들이었다.[16] 다만 고려인들이 퍼뜨린 고려양은 여느 몽골 풍습과 마찬가지로 명나라 중기까지 여전히 명에 남아 있었다.[17] 비주얼 업데이트 후에는 리 신 특유의 변발이 더욱 눈에 띈다.[18] 돌격머리처럼 옆/뒷머리를 바짝 깎고 윗머리만 길러 뒤로 묶은 변형된 형태이다.[19] 초기 한정. 뒷머리 한가닥만 남기고 머리를 전부 민 금전서미에 가까운 형태다.[20] 물론 모든 오크들이 다 변발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다 변발이다.[21] 마이에브 섀도송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 감시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