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3 16:13:38

조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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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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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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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曹攄
(? ~ 308)

서진시대 문관이자 조휴의 증손자, 조조의 손자로 예주 패국 초현 사람.

2. 생애

장은張隱의 [문사전文士傳]에 이르길 – 조조曹肇의 손자 조터曹攄는 자가 안원顔遠인데 젊어서 지조가 높고 박학하여 글짓는 재주(才藻)가 있었다. 진晉나라에 임관하여 공부公府에서 벼슬하고 낙양령洛陽令을 역임했는데 유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대사마 제왕 경冏(팔왕의 난을 주도한 황족 중 한 명인 사마경)이 정사를 보좌하자 조터는 제 사람(齊人)인 좌사左思와 함께 기실독記室督에 임명되었다. 중랑中郎을 지내다 양양襄陽태수, 정남사마征南司馬를 역임했다. 천하가 난이 일자 조터는 사마략의 명을 받고 적을 토벌하기 위해 오로 향했는데 싸움에 져서 죽었다.

남북조시대 종영이 지은 문학비평서 시품에 중품으로 올라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