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1 06:43:31

안함(동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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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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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fff> 서평정후(西平靖侯)
顏含 | 안함
시호 (靖)
작위 서평현후(西平縣侯)
(顏)
(含)
홍도(弘都)
생몰 불명
출신 낭야군(瑯邪郡) 신현(莘縣)
부친 안묵(顏默)
자녀 안모(顏髦), 안겸(顏謙), 안약(顏約)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진동진의 인물. 공자의 제자로 유명한 안회의 후손. 서진 시기 급사중을 지냈던 안흠(顏欽)의 손자. 여음태수 안묵(顏默)의 아들.

2. 생애

안함은 어려서부터 지조와 행실이 올곧았고, 효자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형 안기(顏畿)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아파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였기에, 안함의 식구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안기의 간호에 매달렸다. 그러나 한 달간 최선을 다해 보살펴도 안기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안함의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은 피폐해져만 갔다. 그때 어린 안함이 나서서 부모님을 대신해 몸소 형의 간호를 맡았다. 그는 그렇게 13년간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형을 보살피니, 서진의 대부호 석숭이 그 소문을 듣고 감격하여 맛있는 음식을 하사했지만, 안함은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안함의 정성어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안기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형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함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고, 다른 형 2명도 연달아 사망했다. 둘째 형수 번씨(樊氏)마저 병으로 실명하자, 안함은 그녀의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진심으로 형수를 봉양했다. 그는 매일같이 약선을 요리하고, 병세를 묻기 위해 형수를 찾아갈 때면 항상 의관을 단정히 하고 예를 갖추었다.[1] 안함에 관한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져 명성을 얻게 되니, 주(州)에서 그를 징소하고자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후 태부, 동해왕 사마월의 부름을 받고 그의 참군으로 임관했다가 개양(闓陽)의 현령으로 부임했다.

영흥 2년(305년) 8월, 낭야왕 사마예가 평동장군에 임명되어 하비(下邳)를 진수할 때, 안함은 사마예의 참군으로 배속받았다.

영가 원년(307년) 9월, 낭야왕 사마예를 따라 남진하여 건업(建業)에 도착하고, 상우(上虞)의 현령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옮겨져 낭야국 낭중, 승상동각좨주, 동양태수를 역임했다.

건무 원년(317년) 3월, 사마예가 진왕(晉王)에 올라 백관을 갖추고 종묘와 사직을 세우자, 안함은 태자중서자에 임명되었다가 승진하여 황문시랑, 본주대중정, 산기상시, 대사농을 역임했다.

함화 5년(329년) 2월, 소준의 난 토벌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평현후(西平縣侯)에 봉해지고 시중에 임명되었다. 이후 오군태수에 제수받고 부임하러 떠나기 전에 왕도가 안함에게 물었다.
"경은 지금 이름난 군(郡)에 부임하려는데, 장차 어떤 정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할 생각이오?"
안함이 답했다.
"임금의 군대가 수년간 전쟁을 치르면서 호구에 편성된 이들을 헛되이 소모했습니다. 남과 북으로 권세 있는 호족들이 앞다투어 백성들을 끌어모으니, 국가는 피폐해졌음에도 그들의 가문은 풍족해져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마땅히 세가들을 정벌하여 그들이 가져간 논과 뽕나무밭을 다시 백성에게 돌려 반드시 수년 안에 호구를 복구시키고, 현명한 인재를 선발해 예와 악으로 지역을 교화해야만 합니다."
안함은 과거에도 현명하고 능숙하게 지역을 은덕과 위엄으로 복종시킨 전적이 있었기에, 왕도는
"안공(顏公)이 부임하면 오인(吳人)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겠구나!"
라 탄식하며 안함의 부임을 중지토록 하고, 그를 다시 시중으로 돌렸다. 이후 국자좨주에 제수받아 산기시랑을 겸했고, 얼마 뒤에는 광록훈으로 옮겨졌으나, 안함은 연로함을 이유로 사양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길 청했다. 성제 사마연은 그가 그동안 충실히 직책을 수행한 것을 아름답게 여겨 좌광록대부를 더하고, 그의 집 문 앞에 행마(行馬)를 두게 했으며, 평상과 휘장, 이불을 하사했다. 또, 태관이 한 달에 4번 맛있는 반찬을 진상하게 하는 예우를 더했지만, 안함은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안함은 은퇴한 뒤로 20여 년을 더 살다가 93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호는 '정(靖)'.

3. 기타

  • 안함의 장례식이 한창 진행 중일때, 이웃집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안함의 집으로까지 불길이 번졌다. 사람들이 밧줄로 관을 바깥으로 끌어내던 중, 밧줄이 갑자기 끊어져 안함의 관은 불타는 집 안에 방치되었다. 그러나 불은 안함의 관에 닿자마자 바로 꺼지면서 다른 것은 다 불에 타도 안함의 관만큼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하늘이 안함의 순박함과 성실함에 감응하여 관을 지켜준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1] 야사에 따르면 이후 청의동자가 나타나 안함에게 살무사의 쓸개를 건네준 덕에 그것으로 약을 지어 형수의 병을 고쳤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