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9 19:09:23

손성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오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손성(삼국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3. 손성의 삼국지 인물 평가4. 기타

1. 개요

孫盛
302년 ~ 373년

동진(東晉)의 병주 태원(太原)군 중도(中都)현 사람이며 자는 안국(安國)으로 손자의 현손이다.

2. 생애

박학하며 명리(名理)를 잘 말했기에 당시 이름을 날리던 은호와 더불어 대항하며 논의하던 이는, 오직 손성 뿐이었다고 한다.

좌저작랑으로 천거됐다가, 유양령으로 보임됐다. 도간, 유량, 유익, 환온의 군사에 두루 참여했고, 작위 안회현후를 받았다가, 오창현후로 진봉됐다. 차츰 승진해 비서감이 됐고, 급사중이 더해졌다. 향년 72살의 나이에 죽었다. 위씨춘추(魏氏春秋)20권, 진양추(晉陽秋)32권, 촉세보(蜀世譜), 이동잡어(異同雑語) 등을 저술했고, 그 외에도 시(詩), 부(賦), 논란(論難)을 합쳐 수십 편을 지었다. 손성은 젊을때 가난하고 고생했기 때문에, 출세하면서 횡령(...)을 저질렀지만, 환온은 묵인하고 죄를 묻지 않았다.

그의 저서들을 배송지삼국지에 주석을 넣을 때 많이 활용해서 유명하다. 성향은 모두 까기 인형. 예형이나 우번에 걸맞는 양비론자다. 배송지는 삼국지 주석에 손성의 기록이나 평가를 맞장구 치는 경우도 있지만 기록이 말이 안 된다거나 그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디스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사서의 인물의 발언을 춘추좌씨전 등에서 인용된 고사로 윤색하는 경향이 있는 점을 비판했다.

진양추를 집필할 때 환온의 북벌이 실패한 일을 기록하였고, 환온이 노해 손성의 아들에게 재작성을 요구했는데, 이에 손성이 환온의 적인 전연(前燕)의 모용준(慕容儁)에게 자신의 저작을 주어, 결과적으로 손성의 저서가 보존되었다고 한다. 태원(太元) 중, 효무제(孝武帝)가 이문(異聞)을 널리 구하다, 비로소 요동에서 이를 얻어서, 서로 참고하여 조사하니, 다수가 같지 않아, 책은 마침내 두 판본이 존재하게 됐다.

3. 손성의 삼국지 인물 평가

다음은 삼국지에 있는 그가 한 부정적인 평들을 대충 줄여놓은 것들.
  • 강유
    • 극정이 얘를 한 시대의 모범이라 평가했는데, 강유가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다고? 이건 마치 도둑이 훔친 재물을 나눠주는 걸 의롭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구만.
    • 촉나라 사람들이 왜 강유가 촉을 부흥시키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는가? 절의를 지키지도 못히고 항복한 주제에 이제와서 무슨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가?
  • 소칙: 이미 한나라를 섬겼다가 위나라로 갈아탄 양반이 뭐가 찔려서 거기서 발끈하고 난리야? 시경이나 읽고 다시 생각하시지?
  • 손권
    • 능통이 죽자 남은 아들을 보살피고, 주태가 다치니까 눈물을 흘리고, 여몽이 위독하니까 눈물을 흘리고, 진무가 죽으니 첩을 순장하는 식으로 부하를 챙겨주다니, 과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황제를 칭할 만한 이유가 다 있었네. 하지만 찌질하게 부하한테 그런 세세한 짓을 왜 해주는데?
    • 거기다가 부하를 애도한답시고 첩을 순장시키다니 과연 동오가 3대밖에 안 간 것은 다 이유가 있었네.
  • 손책: 나라 사정이 그 모양 그 꼬라지면서 조조가 관도에 간 틈을 타서 허도를 점령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작작해라!
  • 손호: 이 인간은 닥치고 효수해서 원혼들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귀명후라고 우대한 것은 잘못이다.
  • 여대: 그딴 식으로 남을 속여서 해쳤으니 후손을 남기지도 못 했지. ㅉㅉ
  • 유비: 어떻게 죽을 때 제갈량에게 자기 아들이 능력이 부족하면 대신 다스려 달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나? 유선과 제갈량이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자기가 세운 나라를 스스로 말아먹을 유언을 함부로 하다니 참으로 생각이 없네.
  • 조조, 조비, 조예: 미천한 자들이다. 그렇게 비천한 여자를 황후로 들여서 어쩌려는데?
  • 조비: 하후돈의 장례를 치루는데 직접 성문 밖까지 나가서 곡을 하다니, 황제란 사람이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란다?
  • 조조
    • 도겸이 죄 좀 지었다고 죄도 없는 백성들을 학살하다니!
    • 역적 원소의 가문을 챙겨주는 것이 큰 실수이다. 조조는 그런 실수를 왜 하는가?
    • 아무리 막내 아들을 귀여워해도 그렇지, 얘가 죽었다고 다른 아들들 앞에서 후계자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지!
    • 모개가 자기를 좀 원망했다고 겨우 모함 한 마디 듣고 내쫓아버리다니! 한고조소하를 대우한 일을 본받아봐라.
  • 조엄: 그따위로 백성을 속이다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 좀 해라!
  • 종예: 오와 촉이 없으면 서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작작 아첨해라.
  • 제갈량 : 공신이란 이유로 함부로 나대는 법정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 했으면서 어떻게 법과 형벌을 제대로 처리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 허정: 법정이 얘를 곽외 급으로 대우해달라던데, 허정이 곽외 급으로 대우될만한 껀덕지가 있기는 하던가?
  • 화흠: 속세를 떠나서 은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숨을 바쳐서 충성한 것도 아니고. 한다는 게 고작 우번처럼 손책에게 굴복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로구만.
  • 허자, 호잠: 촉한에 인물이 얼마나 없었길래 이 따위 능력도 없는 잉여들이 진수가 만든 촉지에 따로 전에 실려 있냐?

4. 기타

의외의 사실이지만 동진 시조 진원제 사마예의 '우씨' 논란을 만든것이 손성이라고 한다. 그는 사마예의 어머니 하후광희우금과 사통했다는 말을 지어낸 최초의 사람으로 의심받는다.중국어 위키백과의 '우계마후(牛繼馬後)' 에 관련 글

왜 그랬는가 하면 일단 손성 자신이 조위의 명문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모두 조위때 고관을 지냈고 때문에 손성은 사마씨가 권력을 찬탈한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또 오나라 멸망 이후 반중원 친손오 정서가 팽배한 강남은 "중원은 마땅히 패하고 오나라는 응당 복귀될 것이다(中國當敗吳當復)", "다섯 필의 말이 강을 건너가서, 한 마리의 말이 용이 되었네.(五馬遊渡江, 一馬化爲龍)"[1]과 같은 진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사마씨를 비웃는 참위설이 성행하였다. 이렇게 강남의 민심을 휘어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사마씨에 대해 손성이 실망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성 당대에 동진황실은 이미 환온 등 권신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허수아비가 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손성은 참위설을 이용해 동진 사마씨 황실을 조롱하며, 동진황실은 진짜 사마씨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사마예 우씨설을 자신의 저서 진양추(晉陽秋)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1] 서진 멸망 당시 사마씨 친왕 다섯명이 강남으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 사마예만이 세력을 떨쳐 황제가 된 일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