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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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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方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 서진의 인물로 자는 문정(文正).
양주 회계군 영흥현 사람으로 집에 역병이 돌아 부모, 형제 중 첫째, 셋째, 사촌 등 13명이 사망했으며, 14세 때 낮이면 흙을 나르면서 밤이면 울부짖어 17년 동안 장사지냈으며,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고 까마귀와 맹수들이 유순했다.
오나라에서 인의도위를 지내다가 오관중랑장으로 옮겨졌고 조회 때 수레를 타지 않고 남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다녔으며, 오나라가 평정되자 산음령을 지냈고 죄를 지으면 회초리로 때려야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죄를 주지 않아 백성들이 크고 작은 것을 함부로 범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재임하고 주에서 수재로 천거했으며, 집으로 돌아가 87세에 사망했다.